1.☆☆창작소설판 잡담 스레 2☆☆ (464)
2.청춘은 켜켜이 쌓인 하루하루의 잔상이라고 (27)
3.일상에서 문득 생각난 문구 써보는 스레 (724)
4.If you take these Pieces (487)
5.글 잘 안 쓰는 소재구걸주 (61)
6.이름 남기고 가면 간단한 분위기 대답해주기 (214)
7.ㄱ부터 ㅎ까지 좋아하는 단어 적는 스레 (103)
8.생각난 소설의 개요만 쓰고 가는 스레 (2)
9.나 로판식 제목짓기 잘함 (31)
10.요즘 글 쓰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1)
11.홀수스레가 단어 세 개를 제시하면 짝수가 글 써보자! (705)
12.✨🌃통합✨ 질문스레(일회성 스레 말고 여기!!!!!!!)🌌 (219)
13.네 홍차에 독을 탔어 (208)
14.내가 작가가 된다면 쓰고 싶은 대사 혹은 문장 (89)
15.요즘 릴레이 소설이 너무 하고 싶은데 (4)
16.제일 쓰기 어려운 게 bl 빙의물인듯 (4)
17.다들 캐릭터 이름 만들때 쓰는 방법있어? (33)
18.:D (64)
19.다치거나 아픈 사람 묘사 (2)
20.소설 써보고싶다 (1)
판타지 장르 로맨스고 순수창작이야... 약간 왕겜 같은 분위기도 날듯?
여기다 올려도 되려나...?
블랙톤 윈터 가든(Blackthorn Winter Garden)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아릴레이아 대제국(The Great Empire Of Arileia)의 7개 지역 중에서도 남서부에 위치한 리비에라(Riviera)는 수도인 킹스랜딩(King’s Landing)과 맞먹을만큼 살기좋은 곳이었다. 남쪽에 위치한 칼리고 사막(Caligo Dessert)와 서면 전체를 둘러싼 펠리체 해협(Felice Straits) 덕분에 사시사철 온난한 날씨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름이면 따가운 햇살이, 겨울이면 포근한 빗방울이 내리는 이 땅은 혹독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위한 여관이나 각종 관광지 따위가 활성화된 탓에 언제나 떠들썩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매년 2월이면 15일간 밤낮으로 두 눈이 멀어버릴 만큼 화려한 카니발 축제가 열렸고, 시장에서는 계절마다 색색으로 피어나는 꽃들의 아름다움과 그 향기를 마음껏 만끽할 수도 있었다. 야자수가 즐비한 산책로 너머로는 천사들의 만이라고도 불리는 푸르른 젬(Gem)해변이 가득히 펼쳐져 있었다. 회색빛 둥근 자갈이 뒤섞인 고운 모래밭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눈부신 햇빛 아래 녹아내린 에메랄드가 일렁이는 것처럼 황홀했고, 속이 비칠 듯 투명한 물결이 반짝이는 광경은 마치 안데르센 동화 속에나 나오는 신화 속 인어의 비늘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북적한 도심 외곽에서 조금 벗어나 조금은 한적하고 엄숙한 리비에르의 중앙 지역에, 실베스테르(Silvéster;숲이 무성한) 후작 가문의 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들의 성씨와는 달리 그 저택은 숲 전체를 완전히 밀고 세운 것이었다. 햇살을 반사하기 위해 외벽을 온통 새하얗게 칠한 이 거대한 건물은 바로크 양식의 정점에 서있는 듯 대단히 사치스럽게 장식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복잡한 미로정원, 분수대, 진귀한 조각상과 사방천지에 피어난 온갖 꽃나무들이 웅장하다 못해 마치 지상낙원과도 같았다. 입구까지 길게 내어진 돌길 가운데 만들어진 인공 운하는 또한 그들의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백조 떼가 헤엄치는 드넓고 깊은 이 호수에서는 뱃놀이도, 수영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것을 가진 열 일곱 살의 아리엘 셀레스틴 엘리시아 실베스테르 데 리비에라(Ariel Celestyn Elysia Silvéster De Riviera)는 조금도 행복하지 못했다. 사방으로 찬란한 빛을 흩뿌리는 크리스탈 샹들리에, 섬세하고 예술적인 벽화가 천장까지 그려진 무도회용 홀, 나풀거리는 드레스 자락까지 그 어느 것도 소녀는 온전히 누린 적이 없었다. 그 어느 것 하나 소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 한번도 원한 적 없는 불행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단지 그저 소녀의 탄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관능적인 짙은 피부와 따뜻한 헤이즐빛 눈을 가진 이 곳에서, 온 몸이 눈꽃처럼 새하얗게 뒤덮인 채로 태어난 알비노는 저주받았다 여겨질 만큼 눈에 띌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명하리 만치 여리고 연약한 피부는 내리쬐는 남부의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잠시도 견뎌낼 수 없었고, 흡사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을 연상케 하는 연보랏빛 신비로운 눈동자는 너무도 갸냘픈 탓에 여차하면 태양빛에 시력을 잃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아리엘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성 안에 갇혀 방 밖으론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한 채 갇혀 자라야만 했다.
여섯 살 터울의 제 오라버니, 젊은 망나니 코요테(Coyote)가 후작이자 남부의 대영주, 남쪽의 관리자, 황제의 수호자인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며 킹스랜딩을 비롯한 온갖 지역을 여행하고 살피면서 제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동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방 안에 틀어박혀 수를 놓거나, 책을 읽거나, 온갖 진귀하고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한 보석함을 정리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멍하니 앉아 창가를 내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녀가 남부를, 리비에라를 떠날 수 있게 된 날. 그녀가 좁은 새장 밖으로, 또 다른 세상 속으로 첫 발을 내디디는 날은……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한낱 노예나 가축처럼 비참하게 팔려가는 날이었다. 그것도 욕심으로 눈이 먼 제 오라버니의 손에 의해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리 예상했어야 했다. 그는 항상 그녀를 미워하고, 증오하다 못해 눈 앞에 보일 때마다, 아니, 그렇지 않을 때도 구태여 찾아와 폭력을 휘두르고 가곤 했으니까. 데테스타투스(dētestátus;저주받은)!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으며 하인들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었고, 식사 자리에서 너 때문에 입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머리 위로 쏟아붓는 일도 다반사였다. 방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성의 복도나 계단 따위를 걸을 때 쓰는 베일을 일부러 숨겨놓아 아리엘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도 했고, 한번은 정말로 소녀를 발코니 밖으로 떠민 뒤 몇시간 동안이나 그대로 가둬놓아 그녀를 죽을 위기에 처하게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 때 아리엘은 피부에 경미한 화상까지 입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리엘을 정말로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거칠고 험악한 언사도, 끊임없는 욕설 따위도 아니었다. 그녀는 결코 성질 더럽고 포악한 제 오라버니를 힘으로 이길 수 없었고, 그 사실은 언제나 그녀를 소스라칠만큼 두렵게 했다. 조금만 심기를 거스르게 해도 곧장 쏟아지는 주먹질, 발길질은 아리엘을 차가운 대리석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뜨렸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 모든 분노의 행위가 끝날 때까지 몸을 최대한 둥글게 말아 스스로를 보호한 채 무력하게 누워 신음하는 것 뿐이었다. 가문의 수치, 저주받은 마녀 주제에 리비에라의 후계자에게 감히 반항한 대가는 곧장 돌아올 더 큰 폭력 뿐일 것이 분명했으므로.
오라버니는 항상 더 큰 부를, 권력을 탐했다. 그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그는 출세를 원했고, 오래전부터 언제나 자신의 이름으로 된 상단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미 가문의 명의로 된 상단이 존재했으나 욕심많은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저만의 온전한 상단을 댓가로 제 하나뿐인 여동생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북동부의 대공에게 팔아넘기려 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심장이라는 뜻을 가진 겔리다 코르(Gelida Cor), 말 그대로 겨울에는 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혹한의 추위가 대지를 덮치는 땅에 사는. 낯설기 짝이 없는, 익숙한 것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잔혹하기 짝이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이미 오래전에 모든 감정이 메말라 버린 야수, 흉폭한 괴물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그의 신부로.
유달리 건조하고 기온이 높은 아침이었다. 아리엘은 발코니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갔고, 창을 통해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비로소 그녀의 이마에 맺힌 구슬같은 땀방울들을 식혀주었다. 공기 중에서 푹 익은 오렌지와 포도, 석류의 달큰하고 무른 향내가 났다. 분명 한 입 베어물면 모두 혀가 아릴 만큼 달겠지.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내가 비싸게 팔릴까?”
혼잣말같은 그녀의 중얼거림에 몸종인 리베라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가씨…….” 안타까워하다 끝내 기어코 견디지 못한 듯 눈물을 내비쳤다. 그러나 아리엘은 그쪽으로는 시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오히려 담담한 말투로 제 시녀를 위로할 뿐이었다. 헐벗은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가벼운 튜닉 차림의 행인들이 모여 흥정하는 상인들에게서 물건을 사는 먼 곳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이미 초연하다 못해 체념의 빛이 어려 있었다.
“슬퍼할 필요 없어. 황실의 핏줄인 겔리다 코르 대공 전하의 신부인데, 명성에 걸맞는 값을 치렀겠지. 어쩌면 오히려 우리 쪽에서 영광으로 여겨야 할 지도 몰라.”
황제의 아들에게 시집가다니, 이 얼마나 영예로운 일이니? 그에 리베라가 곧장 굽슬거리는 흑발을 거세게 휘날리며 숨죽여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이상 아리엘은 그녀를 달래줄 수 없었다. 곧 아리엘의 남편이 될 이의 가신들이 흑마를 타고 대륙을 건너 달려오고 있었다. 아리엘은 머릿속에서 그의 아내가 되어 그들을 따라 복동부로 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한평생을 무더운 남서쪽에서 지내던 그녀가 사방에 눈과 얼음이 쌓인 곳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낼 수 있을까? 만일 겨울이라도 온다면? 언제고 그 끔찍한 계절은 예고없이 들이닥칠 수 있었다. 그녀는 부디 제가 낯선 땅에서 얼어죽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과연 대공 전하께서 날 마음에 들어할까?”
아리엘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현재 그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만일 그가 자신을 탐탁치 않게 여겨 그 자리에서 이 결합을 파기하기라도 한다면? 그녀를 다시 남부로 되돌려 보낸다면? 그렇게 되면 오라버니는 원하던 상단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었고, 자신의 완벽한 계획을 망쳐버린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나도 리베라처럼 피부가 올리브빛이고, 가슴도 컸으면 좋았을걸. 너같은 여인을 그 누구도 거부할 리 없잖아. 이렇게ㅡ 뭐랄까, 매력적인데.”
부러운 듯 자신의 몸종을 바라보는 아리엘에 리베라가 황급히 제 주인을 변호하고 나섰다. “무슨 소리세요! 아가씨야 말로 얼마나, 전 아리엘님 만큼 어여쁜 사람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답니다!” 그러나 아리엘은 그 말에 좀처럼 동의하지 못했다. 저주받은. 마녀. 별종. 집안의 수치. 혹시 서녀이거나 주워온 게 아니냐며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수근거리는 사용인들. 알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주며 오히려 그녀를 볼 때마다 대놓고 혀를 차며 못마땅해 하던 아버지.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지만 어느 것 하나 말릴 힘이 없어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보는 어머니.
“그 분은 북방에서 오셨잖아요. 분명 그 곳 풍경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아가씨를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하실 거에요.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따뜻한 위로의 말에 아리엘은 겨우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누가 사랑하라 했던가. 또 사랑받으라 일렀던가. 자신은 그저 두 지역의 결속에 힘을 더하고, 리비에라의 번영에 일조하면 될 일이었다. 대공의 피를 이은 아들만 낳아주면, 더이상 그와 마주칠 일도 없었다.
바깥에서 부드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 아리엘은 그들을 허락하며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하녀들이 들어와 절을 하고는 곧장 자신들이 할 일에 착수했다. 그들은 항아리에 길어온 차가운 물을 욕조에 채우고 향유로 향긋하고 좋은 향을 더했다. 어린 계집아이가 아리엘의 얇은 튜닉을 벗기는 것을 도왔다. 이윽고 몸을 담근 물은 아주 시원했고, 아리엘은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더위며 온갖 번뇌가 한층 가시는 것을 느꼈다.
늙은 여인은 말없이 아리엘의 길고 새하얀 백은발을 감기고 엉킨 머리를 부드럽게 풀었다. 계집아이는 아리엘의 등과 발을 문질러 닦으면서 그녀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아가씨보다 네 살이 많은 대공 전하는 제국에서 손꼽힐만큼 미남이래요. 또 돈은 얼마나 많은지 노예들에게도 금목걸이를 채우고 비단옷을 입힐 정도이고, 성은 방이 200개인데다 은으로 만든 문이 달렸다죠.” 아리엘은 문득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과연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까? 코요테나 아버지처럼 용을 닮아 벌름대는 콧구멍에 얇은 입술, 험상궂은 인상을 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머니처럼 아름다운 녹색 눈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아치형 눈썹의 온화한 미모를 갖고 있을까?
하지만 단지 한 가지 소박한 바램이 있다면 성격만큼은 부드럽고 착했으면 좋겠어. 날 겁주지도, 아프게 하지도 않고 그저 따스하고 넓은 품으로 한가득 나를 안아줬으면 좋겠어…….
계집아이가 몸의 물기를 닦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녹인 백금처럼 반짝일 때가지 빗어주는 동안 늙은 여인은 정원의 장미로 만든 향수를 온 몸에 발라주었다. 양 손목에 두 번, 목덜미에 한 번, 사타구니에도 한 번. 그녀는 세월에 쉬어버린 목소리로 아름다운 레이디에게선 아름다운 향이 나는 법이지요, 다정히 말을 건넸다. 물론 아리엘은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나, 그녀는 그저 말없이 미소지으며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은은한 꽃향기를 맡으며 아리엘이 막 안정을 되찾을 때, 다시 한 번 문이 열리며 오늘 그녀가 입을 옷을 든 하인이 들어와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 채비하셔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오늘 아가씨는 가장 빛나야 한다고, 영주님이 특별히 준비하신 거에요! 너무 눈부시죠?"
가장 싱그럽고 푸르른 잎들을 가장 모아 엮은 드레스는 민망 하리만치 어깨와 가슴골을 훤히 드러낸 모양새였고, 기후를 고려한 듯 짧은 치맛자락은 바다를 닮은 쪽빛이었으며 손끝에서 공기처럼 가볍게 흘러내리는 재질이 이제껏 걸쳐본 적 없는 것이었다. 꼭 끼는 목장식의 크고 굵은 사파이어는 아름답고 섬세하게 세공되어 있었고 모든 것이 숨막히도록 화려했다.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반짝이는 드레스를 걸친 후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전신거울 속 자신을 가만히 응시했다. “세상에, 정말로 절세미인이세요!” 계집아이와 리베라가 호들갑을 떨었으나 아리엘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냉정한 비판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찬찬히 살피는 것이었다.
보기 싫게 툭 튀어나온 팔꿈치, 앙상한 손발목과 가느다란 팔다리, 곧 부러질 듯한 허리와 최소한의 곡선만이 남은 밋밋한 가슴까지 여성성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대공 전하가 나 따위를 좋아할 리가 없지. 나 같이 못생기고 매력없는 여자도 또 없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새하얀데다 왜소하고 마르긴 했으나 아리엘은 무척 아름다운 소녀였다. 갸름하고 창백한 얼굴에 콧대가 오똑 높이 솟아 있었고, 커다란 눈매는 꼭 겁먹고 경계하는 강아지처럼 순하고 초리하게 축 처져 가련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눈동자였다. 마치 유리구슬과도 같은 그것은 시린 겨울밤 얼어붙은 호수의 물빛이었고, 동시에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밤하늘의 연보랏빛 오로라였다. 그러나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달빛으로 뽑아낸 은실처럼 길고 새하얗게 빛나며 찬란하게 허리께로 출렁이고 있었다. 나비날개처럼 가볍게 나부끼는 길고 풍성한 속눈썹도, 곧은 눈썹도 모두 완전한 백색을 띠고 있었다.
양쪽으로 나눈 머리칼 사이사이에 꽃과 나뭇가지, 잎을 엮어 자연스럽게 틀어올리고, 눈매에 짙은 화장을 해 음영을 더한 후에야 비로소 모든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 생기넘치는 분홍빛 입술에 광채가 흘러나오는 뺨을 한 아리엘은 한결 아름다워 보였고, 어른스럽다 못해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끈 형태로 된 낮은 가죽 샌들을 신은 그녀는 잠시간 망설이다 시종이 건네준 베일을 두른 뒤 방을 나섰다. 누가 뭐래도 오늘은 그녀의 날이었다. 그것이 비록 오늘뿐일지라도. 그러니 오늘만큼은 용기를 내보자고, 그녀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첫 번째로 도입부에 세계관이나 배경 설명하는거
저렇게 구구절절 써놓는 방식은 10년쯤 전에 유행함 지금은 최대한 간결하게... 무슨 백과사전 읽는 느낌이야
문체나 글 실력은 꽤 괜찮다 기본기가 있는 느낌 근데 앞에서도 말했듯 묘사가 너무 과함 보통 소설이 30의 묘사를 한다면 넌 100정도를 하고 있음
물론 그걸 장점으로 내세울 수도 있긴 해. 근데 니 매력을 어필하기 이전에 사람들로 하여금 한 글자라도 읽어보게 해야지... 필요없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자 쓸 땐 쓰고 안쓸 땐 안 써야 효과도 큰 법
묘사할 때 습관이 좀 보이는데, 예시를 들거나 행동,소품을 나열할 때 막 세네 개씩 나열해놓는다? 알고있음? 굳이 필요도 없는데 넘 많이 써놔 이런 상황에선 가급적 하나만 예로 들고... 많아봤자 3개?
한두 개로 모조리 줄여보면 좋겠다
그리고 위위 레스 마지막 부분만 세세하게 들어가보자면
양쪽으로 나눈 머리칼 사이사이에 뭐 어쩌구 넣고... 눈매에 짙은 화장으로 음영을 더한 후에야 어쩌구 저쩌구
넘 길다는 생각 안 드나 나같으면
머리에 꽃과 잎사귀를 꽂아 틀어올리고 눈매에는 짙은 화장을 더했다. 비로소 나설 준비가 다 된 것이었다.
이런식으로 ㅈㄴ 간결하게 썼을듯
고전적인 향취가 녹아나는 글이라서 좋은 것 같아 확실히 요즘 트렌트에 맞는 문체는 아닌데, 그렇다고 가독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특히 섬세하고 다채로운 묘사가 돋보여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미려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도입부의 세계관 배경설명이라던가, 가문설명 이어지는 부분 머릿속에 잘 그려지게 잘 묘사해놔서 읽는 재미가 있었어. 그런데 순수 판타지 소설이라면, 지명을 영어로 풀어서 괄호로 전부 넣어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잠깐 들더라 약간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라서 넣는 이유가 있다면 들어가야겠지만, 만약에 들어가야 한다면 도입을 축소해서 주인공이 등장하는 씬을 일찍 보여주거나 아니면 아예 주인공 등장 씬부터 시작해서 어떤 배경인지 궁금증을 유발할 장치만 몇가지 넣어두고, 뒤에 장면 전환에서 세계관이나 가문 설명을 넣으면 좀 더 몰입도 있게 읽힐 것 같은 느낌! 웹소설, 로판 장르로 연재할 목적이라는 전제하의 조언이야 ㅎㅎ
아리엘이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드넓은 연회장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사용인들이 모든 준비를 끝낸 뒤였다. 아버지의 탐탁지 않다는 듯한 검은색 눈이 그녀를 위아래로 무례하고 거칠게 훑어보고는 “……그만 하면 네 년 치고는 꽤 봐줄 만 하군.” 흡족한 빛을 띠었다.
“데테스타투스,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도록 해라. 만일 그랬다간 널 볼로(Volo)의 먹잇감으로 던져 줄테니.”
성큼성큼 다가와 아리엘의 팔목을 아프게 잡은 코요테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이를 갈며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커다란 손가락이 얇은 살을 그대로 파고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리엘은 아무런 반항 한 번 할 수 없었다. 볼로는 그가 기르는 애완 독수리의 이름이었다. 아리엘은 섬뜩함에 몸을 떨며 “알았어, 명심할게.” 다급하게 대답했고, 그제서야 코요테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팔뚝이 아릿한가 싶더니 이내 붉게 손자국이 남았다. 아리엘은 그대로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더한 부상을 입지 않은 것을 천운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만일 다리라도 절며 사절단을 맞이했다간 그는 결코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아름답구나.“ 소매가 넓게 퍼져 바닥에 끌리는 형태의 우아하고 기품있는 녹색 긴 튜닉 드레스 차림의 어머니가 건네는 칭찬에 아리엘은 무릎을 가볍게 굽혀 “감사합니다, 어머니.” 답하고, 그에 어머니 아벨라는 어딘가 서글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래봤자 아무런 권력 없는 허수아비 후작부인일 뿐이라, 어머니로서 제게 해준 것은 그저 낳아준 것 말고는 아무런 것도 없는 탓에, 아리엘은 그녀에게 단 한번도 그리움이나 애정 같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모정을 느껴본 적 없었으며 그녀 또한 자신에게 모성애를 준 적이 없었으리라.
“사절단 일행들 오십니다!”
그 때 시종 하나가 큰 소리로 외치고, 곧이어 커다랗고 육중한 올리브 나무로 만든 문의 입구가 활짝 열렸다. 그 옆에선 거세한 소년과 어린 소녀가 높고 달콤한 목소리로 그들의 입장을 노래했다. “겔리다 코르의 군주(Lord of Gelida Cor), 북부의 관리자(Warden of the North), 황제의 아들이자 수관(Hand and the Son of the Emperor), 늑대 영주 (Wolf Lord), 제국의 수호자 (Protector of the Empire),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혈통의 킬리언 아돌프 율리시스 카르타고 데 겔리다 코르(Cillian Adolph Ulysses Carthago de Gelida Cor) 대공 전하를 곁에서 보필하며 지혜와 조언을 더하는 학사 랄프(Ralph)와 근위대장 월터(Walter), 그 밖에 영광스럽게도 현재 그 분을 모시는 병사들과 각종 신하들 드십니다.”
호화롭게 장식된 홀 안으로 들어오는 무리의 선봉대에 앞장 선 뜻밖에도 남자는 늙은 노인이었는데, 그의 망설임없는 걸음은 무척이나 침착하면서도 물흐르듯 유려한 것이었다. 아마도 분명 상당히 깊은 내공이 쌓여있을 것이라고, 아리엘은 속으로 조용히 짐작할 뿐이었다. 그 뒤로 근위대장과 호위병들이 발맞추어 행진하듯 각을 맞춰 걸었고, 그 뒤로는 노예와 시종들이 각종 진귀한 금은보화가 가득 담긴 상자들을 짊어지고 행렬을 따르고 있었다.
“……여기 이 레이디가 대공비가 되실 분인가요?”
그, 그렇소만. 아버지의 대답에 노인이 탐색하는 눈으로 아리엘을 샅샅히 살피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푸른 눈은 마치 현자의 것과도 같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진 얼굴과 회색으로 새어버린 머리칼은 늙은이의 지혜와 역사, 철학과 살아온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그의 눈길은 결코 무례하지 않았음에도 아리엘은 노인의 앞에서 어딘가 발가벗겨진 듯한, 그러니까 소위 말해서 꿰뚫리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수치심에 가까웠으나 이상하게도 결코 불쾌하지는 않은, 차라리 고해성사에 가까운 어떤 것이었다.
“너무 말랐군요. 북부의 추위를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염려스럽다는 듯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젓는 노인의 모습에 행여 책이라도 잡힐까 아버지가 진땀을 흘리며 상석에서 황급히 일어나 급히 손사래쳤다. “아, 아무 문제없소! 이 애가 이래뵈도 초경도 마친데다 제법 건강한 몸이오. 아무렴 하자있는 딸을 감히 함부로 대공께 시집 보내겠소, 우리 가문의 체면이 있고 황제폐하를 볼 낯이 있지.” 그제서야 노인은 조금 안심한 기색이었으나, 아리엘은 뒷줄의 근위병들이 여전히 자신의 빈약한 가슴에 시선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녀가 이토록 마른 것은 그동안 주변인의 관심과 보살핌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나 이 자리의 누구도 그 사실에는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만찬이 시작되었다. 하인들은 그들이 앉은 자리 위로 끊임없이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올려보냈고, 구운 양고기에서는 월계수의 향긋한 향이 풍미를 더했으며 붉게 농익은 무화과 속에 크림치즈를 넣은 핑거푸드는 입 안에서 말캉거리며 녹아 무엇이 혀고 무엇이 과육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시원한 포도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취기가 돌며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졌고, 동시에 시야가 어슴푸레하게 흐릿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기분이 훨씬 좋아진 아리엘은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밤이 찾아와 바깥에는 어둠이 내린 뒤였다. 햇빛이 없을 때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으므로 그녀는 낮보다는 밤을 훨씬 사랑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걸음이 복도를 지나 정원으로 향한다.
“……아앗!”
그 때였다. 어두운 시야에 가려 미처 발 밑의 돌부리를 보지 못한 그녀가 휘청이며 쓰러지려는 찰나의 순간에,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아채 품에 안은 것은. “어이,조심해야지! 그 쪽이 털 끝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아니, 작은 생채기라도 났다간 죽어나가는 건 우리 쪽이라고?” 안긴 상태로 어림짐작해보건대 키나 덩치는 제법 크고 탄탄한 듯 싶은데, 목소리는 아직 영락없이 장난스러운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저기, 잠시만, 이것 좀……” 이제 괜찮으니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아리엘에 응? 알아듣지 못한 듯 되묻던 소년이 한 박자 뒤늦게 지금의 자세를 깨달은 듯 그녀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손에서 힘을 풀었다.
“아, 맞다. 미안.”
그리고 그제서야 아리엘은 달빛에 비친 소년의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눈매는 치켜올라간 듯 했으나 사납지는 않았고, 우뚝 솟은 코와 높은 광대는 꼭 깎아놓은 조각같았다. 아직 여물지 않았으나 날렵하고 단단한 턱선과 잘빠진 굵은 눈썹에서는 제법 남성의 태가 났다. 제멋대로 사방에 뻗친 거칠고 뻣뻣한 갈색 머리카락에 눈동자는 거의 회색빛에 가까웠다. 여독으로 고생했는지 볼이 움푹 파여 있기까지 했다.
“……거긴 많이 추워?”
소년의 온몸에서 쉴새없이 뚝뚝 떨어지는 흥건하다 못해 발밑으로 고여드는 땀의 홍수를 바라보다 아리엘이 저도 모르게 별 생각없이 툭 내뱉은 말이었다. 얼마나 뜻밖이었냐면,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이토록 대담하고 무례하고 예의없이 초면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이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잠시 고민하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야 뭐 사실 거기서 나고 자라서 추운 게 뭔지도 잘 모르지만, 확실히 이런 데서 살던 애한테는 적응하기 많이 힘들긴 하겠다.”
소년이 에휴, 하고 한숨을 쉬며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이내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제가 살던 지역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겔리다 코르는 말과 가축들을 기르는 고원 지대를 제외한 사방 천지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어. 여름에야 잠깐 녹긴 하지만, 그래봤자 농사를 지어서 모두가 먹고살기엔 토지의 양이 턱없이 부족하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 사냥을 해. 거긴 너희처럼 이렇게 과일이나 작물이 풍부하지 않거든.”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말 타는 법을 배웠지. 그리고 활쏘는 법, 창 던지는 법, 덫을 놓는 법, 피냄새를 감추는 법, 사냥한 짐승 손질하는 방법도. 나같은 소년들이 한무리는 있었어. 우리가 자루에 고기를 한가득 담아 돌아오면 여자애들은 그걸로 스튜같은 요리를 했고.” 어느새 추억에 잠긴 듯 조금 젖어든 소년의 말은 계속되었다. “무두장이 아저씨에게 벗겨낸 순록이나 사슴, 늑대 가죽 따위를 가져가면 아저씨는 그걸로 옷을 만들어주곤 했지. 우린 그렇게 혹독한 겨울을 버텨냈어. 남쪽 지방에 사는 너희라면 정말 상상도 못할 이야기지.”
“몰랐어, 정말이야. 나는…….”
문득 아리엘은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나 생활방식이 다르고, 계절도 기후도 다른 곳에서 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겨울이 오기 전에 먼저 얼어죽는 것은 아닐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짐승을 사냥하고 그 가죽으로 옷을 입는 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니, 내가 내 배우자를 야만적이라고 느끼게 된다면 어쩌지? 그녀의 걱정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소년이 걱정 말라며 아리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야, 걱정 마. 넌 우리랑은 다르니까.”
“넌 장차 대공비가 될 몸이야. 넌 비단과 명주실로 지은 옷을 입을 테고, 네 이불 속에는 거위털이 가득 차 있을 테지.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여기 있는 과일들을 상자째 수입해 올 수도 있을걸. 내가 지금이야 너랑 이렇게 편하게 있지만, 북부로 돌아가면 어림도 없어. 평민에 말단 기사단 출신 주제에 너한테 함부로 하대했다간 손목부터 잘릴걸.”
익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 짝이없는 말투에 그녀가 무어라 할 말을 더 찾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자신은 곧 대공비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차라리, 차라리, “…….면 좋을 텐데.” 입술을 달싹거리며 하는 중얼거림에 소년이 듣지 못한 듯 “뭐라고?” 되물으며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망설이던 아리엘이 붉어진 얼굴로 작게 속삭이고, 이내 소년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때까지 커진다.
“ㅡ차라리 네가 내 결혼 상대라면 좋을 텐데……..”
그 순간. “칼릭스(Calix)!” 우렁찬 한 병사의 고성소리에 소년이 아차,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네, 갑니다!” 잽싸게 대답했다. “나 이제 가봐야 돼. 조금 있다가 출발할 때 다시 봐.” 그리고는 이내 날렵하게 문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남겨진 아리엘은 가만히 입 속으로 소년의 이름을 끊임없이 되뇌일 뿐이었다. 칼릭스, 칼릭스……. 처음 사귄 친구, 처음으로 만난 외지인. 부디 북방의 모든 사람들도 다 칼릭스처럼, 아니, 그의 반만이라도 친절했으면……. 잠시간 공상에 빠져있던 아리엘이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귓가에 지저귄 새소리가 아니었다면 영영 달콤한 꿈에서 깨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시계가 어느새 열한 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행렬은 열두 시에 북부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이제 슬슬 연회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리엘이 조심스럽게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이미 사절단이 실어온 어마어마한 양의 재물에 눈이 팔려 그녀의 존재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의 부재조차 눈치채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작별인사 따위 기대한 적도 없었지만 한편으로 허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독 하리만치 외롭고 쓸쓸하고 두려웠다.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은지도 몰랐다. 그저 사랑받고 싶었다. 저 그림같은 완벽한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
행렬은 처음 리비에라에 도착할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초라하게 떠나갔다. 송별회도, 마중나와 이별에 가슴아파 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먹고 마시고 떠들고 즐기느라 바빴다. 아리엘 하나 떠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그녀가 탄 마차는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덜컹거리며 끊임없이 굴러갔다. 창 밖을 내다볼 수 없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지금 지나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눈을 뜨면 리베라가 반기는 익숙한 방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밤이 찾아오면 그들은 말을 세웠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물과 간단한 음식으로 허기를 때우며 휴식을 취했다. 그 때가 아리엘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고, 그 때마다 그녀는 칼릭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 시간을 할애하곤 했다.
“영주님, 그러니까 대공 전하께서는 정말이지 끝내주는 분이셔!” 칼릭스가 잔뜩 흥분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분의 화살은 백발백중에, 힘은 어찌나 세신 지 짐수레 밑에 깔린 상인을 직접 수레를 들어 구해주신 일도 있고, 전하께서 직접 잡아서 길들인 늑대개는 또 얼마나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지, 곁에 두고 있으면 산짐승들이 감히 덤비지를 못한대! 게다가 학문에도 출중하셔서 저번 흉작 때 훌륭한 정책으로 우리를 구제해주셨고, 또, 또……” 소년이 눈을 빛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왜 사람들이 그 분을 두고 괴물이니, 무섭다느니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돼. 얼마나 제국민들을 생각하시는 완벽한 분인데!”
아리엘은 제 남편이 될 사람의 모습을 속으로 그려본다. 겉으로 보기엔 차갑고, 냉정하고, 엄격하고 엄정한 냉혈한 같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 자신보다 남들을 먼저 생각하고, 온정을 베풀 줄 아는 사람. 강하고, 굳세고, 충분히 나를 지켜줄 수 있을 만큼 멋진 사람.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간절히 바래본다. ㅡ과연 그렇다면,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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