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1/12/21 23:59:46 ID : urgmNwNvDuk 3
아빠가 아프다고 한다. 늦기전에 쓰는 일기 일기의 끝이 없었으면 한다.
2 이름없음 2021/12/22 00:01:15 ID : urgmNwNvDuk 0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빠가 초등학생이었을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친할아버지가 없다.
3 이름없음 2021/12/22 00:03:06 ID : urgmNwNvDuk 0
기왓집이었던 아빠의 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벽이 스티로폼이었던 판잣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빠는 3녀 2남 중 장남이었다.
4 이름없음 2021/12/22 00:04:46 ID : urgmNwNvDuk 0
고모들은 공부를 곧잘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공장에 취직해 일을 하셨다고 한다. 장남인 아빠는 누나들의 뒷바라지로 공부를 하셨다. 아빠는 고모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5 이름없음 2021/12/22 00:06:59 ID : urgmNwNvDuk 0
나는 아빠의 대학교가 어딘지 모른다.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아빠는 낮에는 노가다, 밤에는 공부를 하며 대기업에 입사했다. 집안을 일으켜 세운 장남. 고모들과 삼촌은 시장에서 일을 한다.
6 이름없음 2021/12/22 00:09:40 ID : urgmNwNvDuk 0
내가 태어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신 친할머니. 내가 아는 거라곤 엄마를 많이 괴롭혔다는 것 밖에 없다. 집안을 일으켜 세운 장남, 대기업에 입사한 장남, 그리고 동네에서 가장 큰 기왓집 딸이었던 우리 엄마. 우리집은 친가와 왕래를 하지 않는다.
7 이름없음 2021/12/22 00:12:01 ID : urgmNwNvDuk 0
아빠는 소싯적 김밥을 10줄이나 먹을만큼 식성이 좋았다고 한다. 아빠는 자연곱슬에 머리숱이 빽빽하게 많았다. 아빠는 이제 김밥을 2줄 밖에 먹지 못한다. 아빠의 머리숱은 많이 줄어들었다. 아빠는 여전히 내 옆에 있다.
8 이름없음 2021/12/22 00:15:20 ID : urgmNwNvDuk 0
아빠의 집은 기왓집에서 판잣집으로, 20평 남짓이었던 아파트에서 40평이 넘는 사택으로 바뀌었다. 아빠의 집이 바뀌는 동안, 아빠는 딸부자가 되었다. 아빠의 가족은 6명에서 5명이 되었다.
9 이름없음 2021/12/23 01:52:35 ID : urgmNwNvDuk 0
아빠는 스무살이 훌쩍 넘도록 연애 한번 못해봤다고 한다. 엄마는 사정이 생긴 은행 동료 대신 소개팅을 나가 아빠를 처음 봤다고 한다. 엄마는 나보고 되도록이면 얼굴도 보고 결혼하라 그랬다.
10 이름없음 2021/12/23 01:59:18 ID : IHyKZcq1wms 0
씨 김밥이 뭐라고 새벽에 울컥하냐..
11 이름없음 2021/12/23 02:00:35 ID : urgmNwNvDuk 0
아빠가 처음으로 미국에 출장을 떠난 날, 인상이 험악해 공항에 붙잡혔다고 한다. 아빠는 동료들에게 미안했다고 한다. 아빠는 캐나다 공항에서도 한번 붙잡힌적이 있다.
12 이름없음 2021/12/23 02:05:38 ID : urgmNwNvDuk 0
아빠가 처음 해외로 출장을 다녀오던 날, 유치원생이었던 나는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고 뻐기다가 정류장까지 엄마와 마중을 나갔다. 정류장으로 가던 길 육교를 뛰어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가 그때 사온 열쇠고리는 내 가방에 아직도 걸려있다.
13 이름없음 2021/12/23 02:13:08 ID : urgmNwNvDuk 0
아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내가 보행기를 타고 다니다 아빠의 발가락을 찧은 기억이다.
14 이름없음 2021/12/23 02:14:43 ID : urgmNwNvDuk 0
눈썹이 짙고 머리는 숱이 많아 붕 떠있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볼에는 살이 많아 올라간 눈꼬리, 날카로운 코. 안검하수 때문에 아빠가 쌍꺼풀 수술을 하고 온 날 나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아빠의 눈이 커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아빠의 눈은 많이 순해졌고, 얼굴에는 살이 빠지고 눈썹도 더 이상 올라가있지 않다. 아빠는 여전히 웃긴 표정으로 나를 웃게 한다.
15 이름없음 2021/12/23 02:19:18 ID : urgmNwNvDuk 0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밥 먹는 속도가 다른 식구들보다 느렸다. 항상 식탁이 다 치워진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고 있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나는 항상 설거지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있었다.
16 이름없음 2021/12/23 02:22:11 ID : urgmNwNvDuk 0
아빠는 아침형 인간이라 9시면 눈에 졸음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아빠는 자다가도 일어나서 매번 12시가 훌쩍 넘어서야 자는 내 침대에 와서 잘 자라고 이야기 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간다. 문단속을 하고, 막내와 첫째 방을 들리고 난 후 그제야 아빠는 다시 자러 들어간다.
17 이름없음 2021/12/23 02:26:04 ID : urgmNwNvDuk 0
밤을 새던 날, 아빠는 새벽 세시에도 나와 문단속을 했다. 그날은 아빠가 매일 밤 두번씩 문단속을 하는걸 처음 알게 된 날이다. 겨울이 되면 아빠는 베란다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느라 바쁘다. 자박자박, 나는 아빠의 슬리퍼 소리를 구분할수있다.
18 이름없음 2021/12/23 02:28:55 ID : urgmNwNvDuk 0
아빠의 도움 없이 자란 아빠는 내 마음을 어렵게 한다. 어렸을적 지금 내 나이 때 아빠의 아빠가 돌아가셨다며 말하던 아빠는 슬퍼보였다. 아빠랑 등교를 같이 할때면 가방을 들어주고, 신발끈을 묶어주고, 키는 얼마나 컸는지, 어디 아픈곳은 없는지, 학교에서 별 문제는 없는지, 아빠가 가서 다 엎어 버려야할 일은 없는지, 뭐 필요한건 없는지, 아빠가 아빠로서 책임을 다하려 노력할때, 나는 눈물이 날것 같다.
19 이름없음 2021/12/24 03:05:01 ID : urgmNwNvDuk 0
외할머니집은 동네 어디서든 보이는 4층짜리 기왓집이다. 3명의 사위 중 우리 아빠는 가장 성실히 일을 했다. 아빠가 커다란 고무대야 앞에서 장을 섞는 기억이 있다.
20 이름없음 2021/12/24 03:07:37 ID : urgmNwNvDuk 0
시간이 날때면 매번 아빠 회사 앞으로 마중을 나가곤 했다. 아빠를 부르는 내 큰 목소리에 아빠는 난처해 하면서도 한번도 오지 말라는 소리를 한적이 없었다.
21 이름없음 2021/12/24 03:12:13 ID : urgmNwNvDuk 0
내가 초등학생이었을때, 아빠가 휴가를 낸 날이었는데 아빠는 내가 등교하는걸 베란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아빠를 부르면서 손을 흔든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며 아빠는 웃으면서 말하곤 한다. 아빠는 그때 행복했다고 한다.
22 이름없음 2021/12/24 03:13:21 ID : urgmNwNvDuk 0
초등학교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 훈화를 듣고 교실에 들어왔는데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 이름을 기억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조용한 교실에서 손을 들고 이름을 말한 학생이 한명 있었는데 그게 아빠는 그렇게 자랑스러우셨나 보다. 아빠는 무슨 영웅담처럼 그 이야기를 한달에 두세번은 하신다.
23 이름없음 2021/12/24 03:16:26 ID : urgmNwNvDuk 0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이 될때까지도 내 양말을 신겨줬다. 소파 옆에 서서 팔걸이에 발을 올려놓은 다소 불량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으면 아빠가 와서 양말을 신겨줬다.
24 이름없음 2021/12/24 03:26:20 ID : urgmNwNvDuk 0
내가 3살이던 무렵 아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는 4년을 내리 울었다고 한다. 지금은 병이 없어도 가는데 순서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이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
25 이름없음 2021/12/24 03:26:50 ID : urgmNwNvDuk 0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10살일때 돌아가셨다. 아빠의 심장에는 구멍이 있다. 내 심장에도 구멍이 있다.
26 이름없음 2021/12/24 03:47:07 ID : urgmNwNvDuk 0
아빠는 소주를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는 사람이다. 얼굴이 벌게지는건 간이 해독을 못한다는거다. 방금 아빠의 술잔을 뺏고 오는 길이다. 아빠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 얼굴을 보고 자꾸 웃는다.
27 이름없음 2021/12/24 03:47:56 ID : urgmNwNvDuk 0
아빠는 술을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는 사람이지만 나는 단 한번도 아빠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적 없다.
28 이름없음 2021/12/28 22:24:51 ID : urgmNwNvDuk 0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끔 자기가 먹으려고 놔둔걸 부모님이 먹는게 짜증이 난다고 한다. 나도 밖에서 받은걸 꼭 집에 들고가는 습관이 있었다. 나도 있었고, 동생이 그걸 배웠는지 동생도 꼭 무언갈 집에 들고오곤 했다. 보통 부모님 먹으라고 들고 오는건데, 먹으라고 놔둬도 어느새 내 입에 들어오곤 한다. 아빠도 항상 회사에서 받은 과자나 떡을 안먹고 가져온다. 뭘 이런걸 닮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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