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4/01/13 12:24:35 ID : wpPa02mtz9i 1
올해 스물 되는 여학생이야. 엄마가 나 수능 주간에 유명하다는 사주를 한 4군데 정도 보고 오셨는데, 나보고 외교 쪽으로 직업 추천하고, 사회적 직위에 대한 욕구도 크다고 뭐 대충 이쪽으로 말해주면서(내가 지향하는 진로긴 해) 올해 재수하면 원하는 학교 가게 될 거다 뭐 이런 좋은 얘기를 공통적으로 해주셨대. 근데 내가 말한 적도 없는 예술적 재능을 자꾸 들먹였더라. 그쪽으로 관심은 많으나 그쪽으로 안 맞는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며, 엄마가 전해주는 게 왜이리 짜증나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엄마가 그 말 듣고 신나하는 것 같기까지 해. "예술에 관심은 많다." 이게 날 꼭 저격하는 것 같아. 물론 나에 대해 잘 몰랐던 시절에는 막연히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문학, 언어 공부를 하면서 돈 못 벌더라도 그쪽을 열렬하게 업으로 삼고 싶어한 적이 있었고 이젠 더이상 말 안하고 다니지만 몰래몰래 안 놓고 계속해왔어. 본격적으로 수능국어 공부를 시작하기 이전에, 글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을 좀 키워보고 싶어 가까운 도서관에 하루를 보내던 게 일상이야. 아직도 취미로 피아노치기나 편곡, 소설쓰기 등등 하면서, 책도 잘 안 읽는 인간이 도서관 가서 작법서도 찾아읽는 게 스스로 이해가 안 가면서도 그냥 이거 하나는 분명히 내가 원하는 거구나 싶어서 몰래 해왔지. 미래도 취미도 무엇하나 불분명한 가운데 이것만은 원했어. 나름대로 잘하려고 애썼는데 저런 얘기 들으니까 이런 내 시간들을 전부 비웃는 것 같아서 자존심 상하게 눈물이 나.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네. 외교 쪽으로 말하는 일로 벌어먹고 산다고 말해줄 때는 좋아서 끄덕여놓고, 이런 얘기 들으면 괜히 사주 때문에 엄마가 날 함부로 재단하려는 같단 생각, 사주가 알면 뭐 얼마나 아냐는 생각 등 별... 그럼 내 취미는 아무 쓸모 없는 거겠네. 내가 남몰래 잘하려고 했던 노력들은 전부 존나 웃긴 거였네. 내가 숨기려고 했던 꿈이 남들에게 얼마나 멍청해보이고 가당치도 않았을까? 좆같아. 원하지도 않았는데 발가벗겨진 기분이야. 사주쌤도 내 사주 보면서 분명 내가 웃겼을 거야. 하지만 난 이미 그 길 놨는데. 성공까진 못할 거 아니까 말 안 하고 몰래, 적어도 주변인들 가운데서는 가장 잘하려고 했는데 왜 숨는 것조차도 못하게 해? 뭔데 그걸로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부모한테 지도펼치듯 내보여주는데. 내가 했던 모든 병신같은 일들은 다 안 해도 됐을 일들이란 거잖아. 이래서 사주가 싫어. 사주 전해주는 엄마 입에 왜인지 미소가 띄워져 있더라. 중학생 때 뮤지컬 배우 되겠다며 난리난리쳤던 걸 다 보셨으니 뭐. 근데 난 유일한 내 숨구멍이자 정체성을 잃은 느낌이야. 원한 적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분하지 않았을 텐데, 사주쌤은 내가 그걸 직업으로 삼길 바랐던 적이 있었다는 것까지 아셔서 그렇게 말했겠지. 난 현장에 없었긴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내가 완전히 헛짓거리했다며 비웃는 것 같아. 재능이 없다는 말까지는(뭐 이거나 저거나) 안 들어서 그나마 다행인가. 그랬으면 아까 전에 차에 치이러 나갔을 듯. 혹시 난 이제 취미로라도 예술생활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 거야? 취미로도 쓸모없고 가당찮아? 내가 뭘 어떻게 읽고 쓰든 이제 상관 없는 건가.
2 이름없음 2024/01/13 13:48:17 ID : 641B87bxB86 0
나도 너랑 비슷한 상황이야. 마침 나이도 비슷하네. 내가 올해 생일 지나면 만으로 스물한살 되거든. 난 예술 쪽에 엄청 목매던 적이 있었고 지금도 취미로는 계속하고 있어. 왜냐하면 예술을 즐기는 건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이니까. 예술 해서 돈 버는 게 쉽지 않단 건 다들 알 거고 그래서 관두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그런 것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취미로라도 계속하는게 맞다고 봄. 나도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에 돈 벌고 밥 먹고 자고 그러는 건 단순히 한 생명이 죽지 않게 하는 행위라고 생각해. 연명에 가까운. 하지만 인문학, 예술, 철학 같은 것들은 살아갈 이유를 만드는, 사람이 살아가게 하는 행위임. 그니까 네가 살아갈 이유가 그거라면 계속해도 되지 않을까? 단순히 죽지 못해 살아가는 기계적인 삶보다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보고 즐기면서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좋잖아.
3 이름없음 2024/01/13 14:35:47 ID : SFeJPba8jh8 0
고마워. 답글 마지막 부분에서 나한테 깨달음을 줬네. 내가 취미로 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 이유를 잠시 잊고 있었나봐. 사람은 40% 정도 사주에 따라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이미 결정된 내 삶에 대해 헛된 발악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취미들이 나한테 주던 행복도 실은 쓸데없고 무의미한 건가 했거든. 전부터 어렷품이 고민해온 문제이기도 했어서 더 감정이 커졌던 거 같애... 예술을 즐기는 게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스레? 레스?를 잘 모르지만 당신두 좋아하는 일 계속 하면서 즐겁게 살길 바라. + 근데 혹시 자신의 가치를 찾는다는 말이 스레 입장에서 어떤 건지 알려줄 수 있으까??
4 이름없음 2024/01/13 15:13:25 ID : byHA1CmMlzP 0
사주가 곧 진리고 사주대로 안살면 큰일날것처럼 굴고 사주를 맹신하는 인생이 더 불쌍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이 사주처럼 살지는 않아 조심하라고 하는 부분(건강이라던지..)은 평소에도 신경써야되긴 하는거니까 그런 부분은 듣긴 하지만... 그냥 재미로 봤다치고 좋아하는거에 더 집중하자
5 이름없음 2024/01/13 15:59:42 ID : 641B87bxB86 0
음... 솔직히 나도 가치라는 걸 아직 약간 잘 모르겠다. 그래도 현 시점에서는 거기 시간과 돈을 쏟을 이유? 그리고 그걸 하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음 사실 레주 사주에서 관심은 많지만 그쪽으로 가기엔 안 맞는단게 내 사주는 아니지만 굉장히 공감가는 부분이었음. 난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들을 내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보면서 막 즐겁고 만족스러워지는 그런 형태로 그려내고 싶거든. 그래서 남의 가치관이 개입할 여지를 안 주다보니 이걸 업으로 삼아서 남한테 돈 받아먹고 살기엔 글렀다 싶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 받으면 그 사람 말대로 그려야 하잖아. 의욕이 팍 곤두박질쳐버림... 암튼 얘기가 중간에 샜지만 난 예쁜 걸 더 예쁘게 표현하고 싶다! 라는 어찌 보면 좀 바보같은 이유로 거기에 시간과 돈을 쏟고 있음. 그리고 그걸 통해서 굉장히 행복하고. 그게 내게 있어 예술의 가치가 아닐까 싶어. 그리고 스레 세운 사람은 스레주 레스 쓴 사람은 레스더 or 레스주 보통 줄여서 레더라고 함
6 이름없음 2024/01/13 16:04:25 ID : SFeJPba8jh8 0
웅웅!! 사주가 뭐래도 최대한 내 삶에 집중하는 게 훨 이롭겠지...
7 이름없음 2024/01/13 16:09:08 ID : SFeJPba8jh8 0
와 내가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걸 포기한 이유가 비슷해ㅜㅜㅋㅋㅋㅋ 난 내가 만드는 거에 고집이 엄청 세거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그걸 계속할 이유들은 지금 생각해보니 꽤 적지 않은 것 같네 레더 조언이 많이 도움됐어..!!!
8 이름없음 2024/01/13 16:24:13 ID : 641B87bxB86 0
너도 그런 타입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술쪽 진로 열심히 하다가 포기한 애들 중에 이런 애들 생각보다 많은거같더라고 예술은 좋은데 남 요구사항 맞추면서 돈 받고 하자니 죽어도 못할거같아서 관뒀습니다... 하는 애들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아하면 반대로 직업으로서는 힘든거같더라 그렇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줘야지 인생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게 되는 거 아니겠어? 레주도 힘내랑 (^∇^)b
9 이름없음 2024/01/14 00:22:16 ID : js6Y3A7xU0r 0
하고싶은거 하는거지 뭐 취미에 사주고 뭐고 정답이 있게?
10 이름없음 2024/01/14 13:17:56 ID : wpPa02mtz9i 0
네 말이 맞아. 아무래도 한 번 포기했던 적이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저 말 듣고 울컥한 듯..ㅋㅋㅋㅋㅋ 답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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