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딕

이건 공주한테 하는 말입니다 아예 모르고 평생 안 듣길 바라다가도 악의 없이 툭 쳐서 뱉고 상처를 주고 싶기도 해 떨어진 거리와 시간만큼 나는 네 생각을 하거든 너도 그럴까?

공주 때문에 듣지도 않던 국힙을 좋아하고 있어 롤에 빠졌고 생전 처음인 말버릇이 옮았지 네 지난날이 궁금해 내가 없던 공주의 세상이 궁금해 많이 아팠다면서 그래 지금은 좀 나은지 그게 날 만나서인지 묻고 싶어

그러니까 왜 거리를 두는 척하다가 모든 걸 성토했는지 왜 내 말에 사소한 행동과 습관을 다듬는지 왜 수시로 날 먼저 찾는지 왜 이따금 이름을 불러 주는지 왜 다정하게 예의를 지켜주는지 왜 날 궁금해하는지 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 주는지 왜 내 앞에서만 언어 습관을 고치고 배려해 주는지 왜 의미 모르게 웃는지 왜 노래는 그렇게 잘 부르는지 왜 예쁘게 생겼는지 왜 나랑 한 게 다 처음이라는지 왜 나한테만 하나하나 가르쳐주는지 왜 나한테만 화도 짜증도 안 내는지 왜 해 달라면 다 해 주는지 거리 두는 게 그렇게 좋다면서 아프다니까 왜 걱정해 주는지

그러면서 왜 종종 첫사랑 얘기를 꺼내는지 친구와 지인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왜 그때 여자로 안 본다고 선 그었는지 왜 지금 연락 안 하는지

상처를 많이 받았댔지 이해 못 한 척 굴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잘 알아 공주야 너는 부정하지만 내 세상에 너만치 다정한 사람이 없었어 타인에게도 네가 얼마나 예쁘게 보였을지 짐작이 가 하지만 그게 네 천성인 거지? 그래서 착각한 사람들의 고백에 찔려서 허둥대고 거절하며 그 사람들이 뱉은 첨예한 말에 베여서 아파했고

그러니까 나는 제대로 정신 잡고 있어 공주야 아마 내가 너한테 삼킨 말을 뱉을 날은 오지 않을 거야 그러다가도 이따금 멍청하게 네가 미워져서 죄다 쏟아내고 내 이름을 상처로 남기고 싶기도 해

그러면 넌 다시는 천성대로 사랑을 할 수 없겠지?

다 내 망상인 걸 알아 그래서 미안해 공주는 원래 이런 사람인데 내가 그렇질 못해서 모든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복기하고 재고 따지고 정말 소름끼치게도

웃기게 들리겠지만 나도 뭐 대단하게 거창하고 숭고한 사랑 하는 거 아니야 공주야 네 생각 간간이만 했어 비는 시간마다 그러니까 잠깐 선생님의 말에서 주의를 놓치고 칠판에 멍청히 시선 박을 때만 창밖 힐끔댈 때만 집 갈 때만 샤프 놓치고 주울 때만 집 도착해서 노트북 켤 때만

네 천성이 너무 다정해 공주는 습관처럼 좋은 사람이야 나는 그게 미울 뿐이지

그렇다고 덜 좋은 사람이진 말아 줘 계속 나를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 줘 종종 연락도 해 주고 지금처럼 내가 보이면 바로 와 줘

우리가 안 되는 이유는 수천 개고 그 중에는 공주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게 첫 번째겠지? 하여간 나는 시차 깊은 사랑만 사랑하는 게 업인가 봐 정말 너무하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보지 않고 내가 보지 않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묻고 싶어 토요일엔 무슨 일이었어?

날 피하는 것 같아 아무리 봐도 그렇지 평소엔 오지 않던 시간에 들어오고 내 스케줄 꿰고 있으면서 들어오지 않고 알바 문제라기엔 글쎄 내가 켕기는 게 좀 많아서 그래 어쩌면 토요일이 우리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겠다 공주야 그렇다면 금방 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아주 익숙하지만 원하는 사랑을 넘치도록 받는 감각에는 좀체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공주야 너는 짐작도 못 하겠지 늘상 내치기만 하는 내가 이렇게 방대한 감정을 먹고 있을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