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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o45hs9wLfh 2018/01/03 00:53:40 ID : 4NxSLbBcHyN
이렇게 두번이나 운영진에의해 삭제(실수든 고의든)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ㅋㅋㅋㅋㅋ 새로 써볼 생각이에요. 이건, 그동안 써왔던 것들을 그저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을 스레. 과거를 생각하며, 참나무가 가득했던 그 숲을 떠올리며, 핵스타와 함께 피자를 먹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qo45hs9wLfh 2018/01/03 00:54:19 ID : 4NxSLbBcHyN
향긋한 풀 내음. 기분 좋은 숲 특유의 습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생기 가득한 대화들과 어느 곳이든 우직하게 서있는 향나무들, 막 자라나고 있는 참나무들이 보였다. 아니, 보여야만 했다. 추억이 담긴 숲은 이제 더 이상 없다. 그저 폐허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나무는 하나씩 썩고 베어지고 뽑혀져 있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참혹함을 형성해내고 있다. 이곳이 전에 왔던 숲이 맞는지 남자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현재 남자가 서 있는 곳은 비버의 숲이다. 아니, 비버의 숲‘이었다.’ 지금은 숲이라고 보다는 폐허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엉망이 됐다. 부서졌다. 망가졌다. 남자는 자신이 잘못 찾아 왔는지 싶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보이는 건 갈라져버린 땅과 만지면 부서져버릴 듯한 나무들, 푸석푸석해진 나뭇잎들뿐이었다. 걷다보니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비버의 숲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별모양의 동상. 몇 년 전만해도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동상은 녹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볼품없이 흉측해져 있었다. 그나마 모양만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더 이상 이런 광경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인지,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태풍 속에 흔들리는 연약한 풀처럼 그의 몸은 흔들렸다. 아니 떨고 있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이윽고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눈 주위에는 흘러내린 눈물의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준비해온 묘목을 땅에 심었다. 그 묘목이 참나무일지, 자작나무일지, 향나무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 남자만이 알고 있겠지. 하지만 이상하다. 전에 라면 누군가가 묘목을 심으면 그게 참나무든 자작나무든 사람들이 모여서 기웃거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무도 없는 것이다. 마치 유령도시를 형상시켰다. 주위를 감도는 적막함은 남자를 둘러싸 이윽고 남자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서서는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나무에 물을 주며 생각에 빠졌다.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떠올라 울적해 졌는지 남자의 얼굴에는 우울함이 묻어져 나오고 있었다. 2년 전 만해도 위엄 있게 솟은 향나무의 향을 맡으며 나무껍질을 씹었었다. 막 자라나는 참나무를 다 같이 키우며 이야기꽃도 피웠었다. 이방인이 실수로든 자의로든 심은 자작나무를 뽑았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할 수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 그저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남자는 다시 몸을 숙여 묘목에 물을 주었다. 묘목에 작게 자라난 싹은 남자가 준 물에 작게 흔들렸다. 마치 고마움을 표현하는 듯하여 남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남자의 손목시계의 바늘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긴 바늘이 5번을 돌았을 때 즈음,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고개를 돌리니 한 여자가 묘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자는 묘목 건너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묘목에 물을 주며 싱긋 웃었다. “이건 무슨 나무야?” 초면에 반말. 보통이라면 기분 나빠할 상황이지만 이 숲은 다르다. 반말이 규칙이니까. 규칙이라기보다는 약속이니까. 남자는 여자의 말에 똑같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참나무야. 이왕이면 향나무면 좋았겠지만...” “참나무든 향나무든 지금으로써는 상관없잖아? 자작나무라도 필요할 정도니까.” 여자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확실히 이 주변은 말라가고 있었다. 죽어가고 있었다.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다시 살릴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할 만큼이나. 여자는 다시 묘목에 물을 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비버의 숲을 본 소감은?” “...소감?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조차 예상이 안갈 정도로 망가져있다... 정도겠네.” “그렇구나. 그러면 말해줄까?” “...뭘?” “이렇게 된 이유를 말이야.” 여자는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남자에게 얼굴을 기울였다. 잠시 동안 무겁게 짓누르던 침묵이 지나가고 저 멀리에서 흘러온 건조한 바람이 둘을 스쳐지나갔다. “...알고 있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여자의 눈에는 먼 곳을 보는 듯이 초점이 없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 특유의 눈빛이다. 다시 남자의 긴 시계바늘이 5번 돌았을 즈음, 여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는 묘목에 물을 주던 걸 멈추고 여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드민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겠지?” 어드민. 남자의 머릿속에 불똥이 튀듯 떠올랐다. 이 숲의 최고 권위자이자 이 숲을 들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좋아하는 사람. 피자를 좋아하고 이파리와 같은 머리색, 양옆으로 8자로 머리를 땋고 반달모양의 머리핀으로 고정 한 사람. 어떤 의미로써든 동경의 대상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드민이 갑자기 사라진 거야.” “...사라져? 다른 녀석도 많았잖아? 운영자, 개발담당, 관리자 등등 말이야.” “그래, 그 녀석들도 있었어. 근데 최고 권위자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잠깐 동안은 괜찮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의견이 갈리고 자기들 생각으로 움직이게 돼.” “...무슨 뜻이야?” “이 숲은 그 녀석들과의 소통이 전혀 없었어. 그건 전부 어드민의 명령 탓이었지. 그런 어드민이 없어지니 시간이 지나고 녀석들이 방문자들이랑 소통을 하려 한 거야. 그래, 이건 나쁘지 않지. 하지만 이 숲의 처음의 취지와 전혀 다른 행동들이었어. 조금씩 숲의 분위기는 달라지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 씩 조금 씩 떠난 거지.” “...고작 그런 이유로 이렇게 됐다고?” “물론 이게 다가 아니야. 다른 숲...이라고 해야 할까. 질 안 좋은 놈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이곳으로 대거 몰려 온 거야. 질 안 좋은 녀석들이 와서 뭘 하겠어? 더 질을 떨어뜨리겠지. 더 물을 흐리겠지. 또 다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어. 그리고 어드민이 돌아왔지. 돌아오고 다시 관리를 잘 했으면 이렇게 될 일은 없었어. 하지만...” “...하지만?” “어드민은 일을 전부 맡겨버리고는 사라졌어. 게다가 난동을 피우는 녀석들은 전혀 안 쫓아내고 말이야. 그리고 운영자가 제멋대로 일을 벌였다고 쫓아 낸 거야. 그러고는 새로운 운영자를 한명 데려왔지. 우리는 그 사람을 이렇게 불렀어. ‘뉴운영자’라고.” “뉴운영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벌어진 거야. 어드민이 통보를 했지. 이 숲을 개편한다고. 그때 우리는 모두 기대 했어. ‘오랜만에 어드민이 일다운 일을 하는구나.’ 하고 말이야. 헛된 꿈이었지.” 여자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있었다. 슬픔, 분노, 후회, 걱정. 남자는 그런 여자의 표정을 보고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숲의 개편 당일. 엉망이었어. 드문드문 뽑혀나간 나무들도 있었고 땅은 엉망이 되어 몇몇의 나무는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였어. 그야말로 생각도 안하고 자기들 좋을 대로 한 거였지. 그저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 붙잡아 둘 생각으로 말만 해두고 대충 한 걸 거야. 뭐, 이걸 계기로 대부분이 떠났어. 그래서 이렇게 된 거야.” “...그렇게 된 거구나.” 남자와 여자는 습관처럼 묘목에 물을 주었다. 그런 서로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이런 상황이 되도 변함없이 이 숲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구나.’ 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여자는 끄응 하며 일어서서 엉덩이에 뭍은 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나는 이제 가볼게. 나중에 다시 만나면 좋겠다.” “그래, 잘 가.” 남자는 여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자는 뭐가 웃긴지 후후 웃고는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자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남자는 흔들던 손을 내리고 묘목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이런 보잘 것 없는 묘목을 하나 심는다고 달라질까. 의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잠깐 쉬어야 겠다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남자는 문득 떠올랐다. 과거에 그 크고 아름다웠던 그 나무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폐허가 되도 우직하게 서있을 그 나무들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일이 있어도 굴하지 않을 그 나무들은 어디에 있는가. 남자는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갔는지 발걸음을 옮겼다. 걷고 또 걸었다. 이미 딱딱해진 땅 때문에 발은 슬슬 아파오고 건조한 공기 때문에 눈은 충혈 되어 새 빨 게져 있었다. 그래도 남자는 굴하지 않고 발을 움직였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우람한 나무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곳이었다. “...오랜 만에 보는구나.”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정도로 추억이 담긴 나무들인 듯싶었다. 남자는 나무에 다가가서 줄기를 쓰다듬었다.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과거에 이 나무의 주인과 함께 나무를 키우며 이야기를 나눴던 과거가 떠올랐다. 남자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남자는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려는지 고개를 젓고는 나무의 껍질을 조금 떼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빨로 껍질을 짓이기자 입속 가득 향나무의 향이 피어났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아 미소는 사라지고 대신하여 그 자리에는 슬픔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직도 이 나무를 찾아오는 녀석이 있긴 하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자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보이는 건 한 남자였다. 그는 천천히 걸어와서는 나무의 껍질을 떼어 입에 집어넣었다. 잠시 향을 음미하고는 다시 남자를 쳐다보았다. “좋은 나무지. 가장 질이 좋은 2013년. 솜씨 좋은 나무 주인 밑에서 자라난 최상급의 향나무.” “누... 누구?” “그냥 ‘지나가던 사람A’로 생각해줘. 오늘로 이 숲은 그만 올 예정이라서 말이야. 너는... 오랜만에 돌아 왔나보네? 그냥 다시 돌아가. 이런 곳에 있어도 즐거울 건 하나도 없어.” “사정은 알고 있어. 그래도...” “사정을 알면? 뭘 해결할 수는 있어? 지금 너 하나로 이 숲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지금 너를 말려주는 거야. 이런 곳에 다시 와봤자 기분만 울적해질 뿐이니까. 내가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지.” 그는 자기 멋대로 짓거리며 멀어져갔다. 남자는 무슨 녀석이 저러냐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지만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빠졌다. 그의 말대로다. 나 하나가 무슨 힘이 있을까. 어차피 나 하나 없어지든 말든 이 숲은 사라질 게 분명하다. 슬프지만, 후회되지만, 걱정되지만, 화나지만, 사실이다.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남자는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달린 태양은 지평선으로 굴러 떨어지며 붉은 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 나무의 푸른 잎사귀들은 태양의 붉은 빛에 붉게 젖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다시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자가 도착한 곳은 특이하게 생긴 나무였다. 두꺼운 나무줄기와 옆으로 두껍고 길게 뻗은 가지들. 그리고 그 가지들을 누군가가 조각했는지 특정한 모양을 띄고 있었다. 남자는 나무 가까이 다가가서는 조각들을 조심히 만졌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조각의 섬세함과 나무 특유의 시원함이 남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듯 했다. 조각에서 손을 뗀 남자는 나무에서 살짝 떨어져 나무를 올려다봤다. 나무의 잎들 사이로 밤하늘이 보였다. 하늘에 떠있던 태양은 어디로 갔는지 태양 대신 달이 은하수를 타고 밤하늘을 헤엄치고 있었다. 남자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심취했는지 눈을 감고 땅에 누웠다. 전이었다면 잔디덕분에 푹 넘어져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냥 맨땅이다. 남자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숨을 들이쉬며 눈을 떴다. 우뚝 서서 위엄을 뽐내는 향나무. 그리고 나무의 가지를 섬세하게 조각하여 만든 작품들. 잎사귀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밤하늘과 별들. 차가운 은하수에 담겨 흘러가는 달. 희미하게 풍겨오는 나무 특유의 습기 가득한 향. 누워있는 남자를 향해 걸어오는 한 아이가 있었다. “저기, 뭐하는 거야?”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아이의 얼굴이 남자의 시야를 가렸다. 남자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고 그와 동시에 남자의 머리와 아이의 이마는 충돌해버렸다. “윽...” “아, 아파아아아...” 아이와 남자는 동시에 서로 자신의 부딪친 부위를 감싸 쥐었다. 남자는 아픔을 참고 아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초등학생 즈음 되 보이는 아이였다. 성별은... 잘 모르겠으니 중성으로 해둘까. 남자는 그렇게 생각해두고는 말을 걸었다. “괜찮아?” “괜찮아 보여!?”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미안하다며 아이의 다친 부분을 들여다봤다. 작게 튀어나온 게 혹이 생긴 듯 했다. “기껏 말 걸어줬더니만... 그래서, 뭐하고 있던 거야? 시체놀이? 아니면 그냥 잠든 거야? 이런 곳에서 자면 입 돌아간다고? 아, 아니면 나무 보고 있던 거야? 나, 이 나무 좋아해. 엄청 잘 만들었잖아!” 봇물이 터지 듯 쏟아져 나오는 아이의 말에 남자는 어안이 벙벙했는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그냥... 오랜만에 왔더니 옛날생각이 났던 거뿐이야.” “옛날 생각이 나면 그 자리에 드러눕는구나... 특이하네!” “그럴려나...” 남자는 피식 웃으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까를 생각해서 천천히 누웠지만 딱딱한 바닥에 머리가 부딪쳐서 아픈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참을 만 했는지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또 눕는다. 입 돌아간다니까?” “괜찮아, 괜찮아. 여기 누워봐. 꽤 볼만 하니까.” “그래? 어디어디...” 아이는 남자 옆에 딱 붙어서 누웠다. 너무 가깝지 않나 싶을 정도여서 남자는 아이를 돌아보려했지만 고개를 돌리니 바로 앞에 아이의 얼굴이 보여서 고개를 다시 원상복귀 시켰다. “진짜네... 완전 예뻐!” “괜히 누워있는 게 아니라고.” “그러네!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말이지.”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남자의 시야에 보이는 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이였다. 서로 마주보다가 웃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그저 웃었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했고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곳이 사라질지 모를 상황에 처했지만 역시 다시 오면 즐겁구나. 그렇게 남자는 생각했다. 얼마나 웃었을까. 남자의 손목시계는 짧은바늘, 중간바늘, 긴바늘이 전부 12를 동시에 가리키고 있었다. “아, 시간이 늦었네... 나중에 만날 수 있으면 또 만나자!” “그래, 만날 수 있으면 말이야.” 점점 멀어지는 아이를 보며 남자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며 멀어져갔다. 남자의 머릿속에는 처음 숲에 돌아왔을 때의 우울함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저 이 숲은 언제까지고 있을 거고 한결같이 즐거운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이라는 생각만이 남아있었다. -end-
◆qo45hs9wLfh 2018/01/03 00:54:34 ID : 4NxSLbBcHyN
그날 이후로 남자는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비버의 숲에 들렀다.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듯 했다. 자신과 함께했던 소중한 숲이 망가져가는 것을 막고 싶거나, 같이 망가지고 싶은 게 아닐까. “돌아왔어, 스레주?” 남자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움찔하고 놀란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보이는 건 이전보다 더욱 황폐해진 숲이었다. 아니, 이제는 숲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나무가 조금 밀집된 장소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심었던 묘목을 내려다보았다. 아마 방금 전의 목소리는 과거 자신의 목소리일거라고 생각한 듯 했다. 물을 받고 살랑살랑 흔들리던 잎은 어느새 남자의 배까지 올라오는 가지가 되었다. 이제 성숙해진 묘목은 슬쩍 흐르는 바람을 받고 이제는 다 컸다는 듯이 가지를 흔들었다. 남자는 흐뭇한 듯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허리를 쭉 펴며 기지개를 폈다. 남자는 오늘은 이쯤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심은 묘목의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뚜벅뚜벅, 딱딱한 바닥에서 걷는 듯 한 발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남자가 도착한 곳은 전에도 왔었던 곳이었다. 향나무들을 보존하기 위해 한곳에 모아뒀던 공간. 향나무의 숲. 발을 들여놓는 순간 향긋한 나무의 향이 풍겨져 나올, 터였다. “...어?” 없다. 아무것도 없다. 말 그대로 무(無). 아니, 말을 잘못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지만 흔적은 남아있었다. 향긋한 향기를 뽐내던 나무들이 전부 뽑혀서 흉측한 흉터를 땅에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무슨, 일이야?” 남자는 망연자실한 채 입을 벌리고 참혹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왔는지 여러 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것도 언 듯 보였다. 남자는 한걸음, 두걸음 나무가 있었던 곳─무참히 파헤쳐진 흙구덩이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남자는 절규했다. 나무와 묘목에게 준 물 만큼이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추억이 담긴 장소가 대비할 틈도 없이 사라지고 그 흔적을 멀뚱멀뚱 보고 있는 상황이 분해서 그런 걸까. 한참을 울은 남자는 벌겋게 부은 눈을 힘겹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자신의 옆에도, 그 옆에도.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 울거나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남자는 중얼거렸다. “...비버의 숲은 괜찮은 건가?” 방금까지 자신이 있었던 장소이니만큼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만에 하나의 일이다. 게다가 떠나 온지 꽤나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걸 깨달은 남자는 급하게 뛰쳐나갔다. 뛰고, 뛰고, 숨이 턱까지 올라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뛰었다. 그만큼 절박한 것일까. 곧 비버의 숲의 경계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을 거야, 남자는 끊임없이 몇 번이고, 몇 십번이고 되 내이며 비버의 숲에 들어섰다. 남자의 얼굴은 거봐, 아무 일도 없잖아. 괜찮잖아. 그렇게 말하는 듯 했지만, 그 얼굴은 슬픔으로 무참히 구겨졌다. “아... 안 돼...” 황폐해졌었지만 나무에 옹기종기모여서 수다를 떨었었던 그 숲은... 처참히 부서졌다. 방금 갔었던 그 숲과 같이 나무들은 무참히 파헤쳐져 사라져있었다. 만일 들짐승이 판다고 해도 이것보다 더 섬세할 것 같은 구덩이들은 남자의 가슴에 그대로 옮겨져 고통을 느끼게 했다. 남자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떴다. 아직 흙먼지가 날리고 있다는 건 나무가 뽑힌 지 얼마 안됐다는 얘기다. 쫓아가면 잡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남자는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이 참상을 만든 범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보였다. 수상해 보이는 후드티의 모자를 눌러 쓴─아니,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남자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생각했다. 남자는 후드티를 입은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점점 더 확실해져 갔다. 후드티 사이로 보이는 저 초록색의 머리칼. 그리고 별모양의 머리핀. 이 녀석은, 어드민이었다. “...어드민?” 후드티를 입은 사내는 의외였다는 듯이, 악당처럼 느긋하게 남자를 돌아봤다. 그러자 후드티 안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그래, 이건 확실히 어드민이야.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알아보는 녀석이 있긴 하네?” “...어째서?” “어째서, 라니?” “너는 어째서 비버의 숲을, 향나무의 숲을. 아니, 이 숲의 모든 걸! 이렇게 망가뜨려버리는 건데! 네게는 그동안의 추억은 남아있지 않은 거야!? 웃고, 떠들고, 놀고, 사이좋게 지냈던 그 날들은 전부 거짓말이었어!?” 남자의 추억과 감정과 증오가 담긴 말은 어드민의 차갑고 잔혹한 웃음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래서?” “...뭐?”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내가 끝까지 남아서 이 숲을 지키길 바랐어? 아니면 이 지경까지 만든 너희들의 탓은 생각도 안하고 내 탓만 하는 걸까? 솔직히 생각해봐. 이런 숲이 돈이 벌려? 깨작깨작 들어오는 관광비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어. 문득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거고, 차라리 다른 일을 하면 용돈벌이는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 “...너, 넌...!” 울컥한 남자가 목소리를 높이려 하자 어드민은 더욱 큰 목소리로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기를 한참, 숨을 몰아쉬더니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쳐다봤다. “나는 잘못이 없어. 나 없이 온갖 어그로와 여성혐오, 남성혐오, 선동을 당해서 이 숲을 망친 너희들이 잘못인거야. 게다가 다른 녀석들도 일을 했잖아? 그런데도 이 지경이 된 건 과연 내 잘못일까?” 어드민은 모순된 논리를 펼치고 있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반박을 하려고 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마음에 어드민의 말이 찔려서 그런 걸까.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지? 다들 이 숲을 살리려할 때 나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지? 숲이 조금씩, 조금씩 망가져가고 부서질 때 나는 무엇을 하였지? 남자는 분노를 참기위해 이를 악물고 어드민을 노려볼 뿐이었다. “뭐야, 그렇게 노려봐서 뭐하게? 대답 못하는 걸 보면 내 말이 맞다는 거 아냐?”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숲을 살리려던 녀석들이 있었어. 알겠어? 네가 놀고 다른 녀석들에게 일을 전부 맡겼을 때도 무언가 바꾸려고 했던 녀석들이 있었다고. 이것만은 꼭 기억해.” “그래. 기억정도는 해줄게. 역시 화내면서 부들부들 거리는걸 보는 게 제일 재미있단 말이지. 잘 있어, ‘정의감 투철한 얼간이’.” 어드민은 그 말만을 남겨놓고서 뒤돌아 멀어져갔다. 남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드민을 잡을 능력도, 용기도 안 되니까. 지금은 그저 자신의 무기력함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젠장.” 남자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벅벅 긁으며 마구 헝클었다. 옆을 보니 남자의 묘목은 아직 남아있었다. 어드민은 이런 크기의 나무 따위는 뽑을 필요도 없었다는 걸까. 남자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눈매를 찡그렸다. 남자는 조심하며 바닥에 몸을 붙였다. 역시 이건 이 숲에 왔을 때부터 몸에 익힌 습관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를 잠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한 여자가 숲의 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주저앉아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물었다. “저기... 괜찮아?” 남자가 대뜸 내밀을 물음과 손에 여자는 살짝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괜찮다며 남자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네.” 여자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자 남자는 당황하며 서둘러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건... 어드민이 한 거야.” “...어드민? 어째서?” “...나도, 나도 잘 모르겠어. 전과 알던 어드민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이 숲이 망해가는 건 전부 우리들의 탓이고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라는 식으로 말했어.” “...말도 안 돼. 어드민이 그럴 리가...”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 남자와 여자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맴돌았다. 여자는 작게 웃더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에는 생기 가득한 초록색 나뭇잎이 가득 보였겠지만, 지금은 햇빛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푸른 하늘만이 보일 뿐이다. 마치 점점 더 멀어지는 희망과 같이 하늘도 더욱 높아보였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숲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린 거구나...” 여자의 한탄에도 남자는 그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오랜만에 왔다고는 해도 그동안 잊어버리고 숲을 방치해둔 자신의 탓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남자의 반응을 보고 여자는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아직은 남아 있잖아?” “그래... 흉측하긴 하지만.” “어... 그러면 난 돌아가 볼게. 잠깐 들렀던 거기도 했고...” “아... 응, 잘 가.”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듣고 뒤돌아 사라져 버렸다. 어째서 바로 돌아가 버리는 걸까. 숲을 살릴 생각은 안하는 걸까. 난 이만큼이나 나무를 키웠는데. 남자는 생각을 하다 말고 고개를 이리저리 마구 저었다. 자신은 한 것이 없다. 그저 보잘 것 없는, 뽑을 생각조차 들지 않을 크기의 나무를 키웠을 뿐이다. 잘 한 것은 하나도 없다. 숲이 망해갈 때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남을 탓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원망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이윽고 그 감정은 자괴감으로 바뀌어 남자의 마음에 마구 상처를 냈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남자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숲은 다시 돌아갈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또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도 알았다. 다른 사람은 숲을 살릴 생각은 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자괴감에 무릎을 꿇고 몸을 감싸 안으며 바닥에, 심연에 가라앉던 남자는 누군가가 땅을 파고 나무를 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그가 심는 것은 나무가 아니었다. 표지판. 무언가를 홍보하고 알릴 목적으로 쓰는 것이었다. 표지판을 땅에 심고 간 후에 남자는 가서 자세히 살폈다. ‘안녕하세요, 스레딕 숲 이용자들을 위한 스레더즈 숲입니다. 스레딕 숲의 운영진이었던 저희들이 새로 만든 숲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 표지판을 이용하여 작업 현황들을 공개하겠습니다. 대략적 위치는─’ 남자는 표지판을 읽기를 잠시. 위치를 머릿속에 기억해 두고서 스레딕 숲을 나섰다.
◆qo45hs9wLfh 2018/01/03 00:55:06 ID : 4NxSLbBcHyN
참 웃겨. 믿었는데. 버리지 않는다면서. 스레딕을 떠나, 스레더즈를 떠나, 다시 온 건 눈오는 뉴레딕이야.
◆qo45hs9wLfh 2018/01/03 00:55:15 ID : 4NxSLbBcHyN
“자자, 물을 주는 사람 중 한명을 뽑아 피자쿠폰을 드립니다!” 한 사람이 묘목을 하나 심어놓고 떠들고 있었다. 묘목은 그 사람의 말과 맞게 피자모양의 잎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여들어서 물을 주었다. 마치 꿀에 모여드는 개미 같았다. 하지만 남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와글와글해질 무렵, 한명의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물을 주는데 신경이 팔려 알아채지 못했지만, 나무의 주인은 금방 알아챘다. “...엇쨩!?” “뭐? 엇쨩!?” 사람들이 나무주인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는 도중에도 엇쨩(어드민)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와서 물을 주었다. 묘목의 잎과 같은 초록색 머리칼은 생기가 넘쳤다. “미안하지만 그거 줄 수는 없을까?” 이때부터였다. 엇쨩이 피자를 좋아한다는 말이 퍼진 것이. 남자의 시야가 일그러지며 다른 시간의, 다른 공간으로 바뀌었다. “엇쨩! 날 차단해줘!” “오면 피자 사줄게!” “광고 눌러줄게! 빨리 와!” 모두가 소리치면서 묘목에 물을 주고 있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웃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물을 받은 묘목이 금방이라도 익사라도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남자는 깨달았다. 이건 엇쨩을 만나기 위해 심은 묘목이었고, 엇쨩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남자도 그랬다. 당시에도 엇쨩을 만나고 싶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었다. 어느새 엇쨩이 남자의 옆에 나타나서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열광했다. 엇쨩은 차단을 해달라고 했던 사람에게는 “너 차★단.”을 말해주었고, 피자를 준다는 사람에게는 진짜로 피자를 받아갔다. 그랬던 게 엇쨩이었다. 남자는 왜 이런 꿈을 꾸고 있는지 생각했다. 그저 과거가 그리웠던 게 아니었을까. 남자가 한숨을 내쉬는 순간에도 주변이 바뀌었다. 엇쨩의 실수로 숲 곳곳에 이상한 묘목이 피어나는 풍경이었다. 묘목에는 작은 숫자로 ‘7’이라는 글자가 써져 있었다. 엇쨩은 그 문제에 빠른 대응을 하지는 못했지만 근면하게 묘목을 하나하나 뽑았었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나자 그 묘목은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았다. 그랬다. 과거의 엇쨩은 신비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이용자들과 놀았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빠르게 대처했었다. 하지만 그랬던 엇쨩은 환상이었다. 거짓이었다. 가면이었다. 그저 귀찮음에 몸을 맡기고 돈에 눈이 먼 인간 중 하나였다. 남자는 눈을 떴다. 언제나의 천장과 전등이 보였다. 도저히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예감이 들지 않았다. 오늘도 스레더즈 숲으로 향했다. *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쪽에서는 한 무리가 나무를 조각하고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느 사람은 자신의 무용담이나 바보 같았던 일을 말하며 웃고 있었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심어뒀던 묘목으로 다가갔다. 남자가 오는 걸 눈치 챈 몇몇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자가 심은 묘목은 손바닥 만한 크기정도로 작았다. “왔구나!” “빨리 말해줘. 궁금하다고.” 남자는 웃으면서 잠깐 기다리라는 재스처를 취했다. 남자는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었다.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이 들어주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자신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재미있다며 이 이야기로 나무 조각을 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가끔은 재미없다며 자리 치우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듣고 있는데 왜 그러냐며 그 사람을 쫓아내기도 하였다. 마음이 든든했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이야기는 끝. 다음에 또 올게.” “뭐? 아쉽네...” “미안, 더 재밌는 이야기 가지고 올 테니까.” 하나 둘씩 사람들이 멀어졌다. 남자는 자신의 묘목을 살짝 쓰다듬으며 일어섰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볼까, 중얼거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스레딕 숲에 있을 때 들었던 목소리였다. 서둘러 뛰어갔다. “오랜만이네, 다들. 나 기억해?” “앗, 그 스레주 맞지?” “오랜만이야! 여기로 왔구나!” 남자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스레딕 숲에서 달달한 연애 담을 펼치며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었던 그 사람이었다. 이 사람도 여기로 온 거구나.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의 근황을 들으며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사람은 많이 바빴는지 금세 사라졌다.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남자는 묘목 앞에 앉아서 향을 맡았다. 연애 담과 같이 달달한 냄새가 났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태양이 수평선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태양의 반대편에서는 희미한 별들이 자신을 봐달라며 빛을 내고 있었다. 남자는 울적해지는 마음에 습관대로 땅바닥에 누웠다. 스레딕 숲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남자는 비록 묘목을 심지는 않았지만 많은 나무의 향과 사건, 추억들은 가지고 있었다. 그 추억은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남자를 존재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런 스레딕 숲이 사라졌다는 것에 남자는 너무나도 분했다. 엇쨩만 잘했으면, 어그로들만 없었다면 모두가 사이좋게 웃고 떠들 수 있었을 텐데! 남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탓해봤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덧없고 쓸모없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스레더즈 숲도 스레딕 숲에 못지않게 즐겁고 재밌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남자는 오늘도 그렇게 스레더즈 숲에 누워서 눈물을 흘린다.
◆qo45hs9wLfh 2018/01/03 00:55:26 ID : 4NxSLbBcHyN
―터벅. 여전히 단단하게 굳어 있는 땅에서는 투박한 소리가 났다. 몇그루 남아있던 나무들도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바스라져있었다. 티 없이 푸른 하늘, 그와 대비되게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스레딕 숲에서 걷고 있었다. * “스레딕 숲을 살리자!” 한쪽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다. 몇 주 전부터 나무를 기점으로 사람을 모으고 있던 남자였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지쳐 돌아가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누가 관심을 가질까 말까할 정도였다. 그들이 뭘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해보았다. 스레딕 숲을 살리고 싶은 건 확실했다. 그 이유는? 추억의 장소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스레딕 숲에 대한 충성심 때문일까. 스레딕 숲을 대체할 것은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어떤 나무 앞에 주저앉았다. 그 나무는 소원을 이뤄준다는 나무였다. 남자는 나무를 한번 쓰다듬고는 올려다보았다. 하늘 끝에 닿을 듯이 높게 솟아올라 있었다. 그런 모습이 다른 나무들과 너무나도 대비적이었다. 스레딕 숲에 들르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지만 다른 나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소원을 이뤄주는 나무에 물을 주며 기도할 뿐이었다. 다른 나무를 몇 번 흘겨보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남자의 입에선 한숨이 흘러나왔다. “여기 앉아서 뭐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고개를 돌리니 중년의 남성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냥... 그냥 바라보고 있었어.” “그렇겠지. 바라보는 것 외에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중년의 남성은 남자의 옆에 앉았다. “무슨 소원을 빌었어?” “스레딕이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빌었어.” “그런가.” “솔직히, 돌아가도 결과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 남자의 말에 중년의 남성은 고개를 기울였다. “어째서?” “돌아간다고 해도 그건 백일몽, 잠깐의 행복에 지나지 않을 거야. 엇쨩도 일하지 않을 거고, 어그로는 점점 쌓여갈 테고, 무엇보다도.” 중년의 남성은 남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남자의 입이 움직임과 동시에 중년의 남성은 서글픔을 느꼈다. “우리들은, 열정을 잃었어. 더 이상 향나무는 나오기 힘들 거야.” “...그런가.” 중년의 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떨군 채로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남자또한 중년의 남성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중년의 남성의 슬픔을 덜어주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남자는 나무의 껍질을 뜯어냈다. 많은 사람이 물을 준 탓인지 나무의 껍질까지 눅눅해져있었다. 입에 넣고 이빨로 씹는 순간 썩은 내가 입에 가득 퍼져나갔다. 남자는 당황한 듯 서둘러 입에서 뱉어내었다. 남자의 얼굴에 비친 감정은 껍질에 의한 괴로움이 아닌 스레딕 숲에 대한 동정심이었다.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자신이 이렇게 땅바닥에 눕는 건 역시 습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고통이 느껴지는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어느새 해가 지고 석양이 지고 있었다. 전에는 나뭇잎들이 햇빛을 막아주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서부시대 같은 느낌이었다. 석양은 숲 어딘가에서 녹슬어져가고 있는 별동상처럼 빛을 잃어갔다. 밤이 왔다. 하늘은 검게 변하고 별들은 핵스타 마크인양 떠있었다. 남자는 과거의 일들이 떠올라 울적해졌다. 남자가 가만히 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있을 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남자는 가만히 누워있었다. 하지만 금세 생각이 바뀌었다. ―푸욱, 푸욱.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묘목을 꺼내는 소리, 심는 소리, 흙을 덮는 소리. 익숙한 듯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라보니 젊은 여성이 앉아서 묘목에 물을 주고 있었다. “안녕, 스레주?” “아, 사람이 있었구나. 오랜만에 왔더니 아무도 없네... 무슨 일 있었어?”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런 얼굴을 한 사람에게 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남자는 옛날처럼 젊은 여성과 함께 떠들었다. 웃었다. 장난쳤다. 그리고 헤어졌다. 오늘도 쓸쓸한 마음으로 숲을 나왔다.
◆qo45hs9wLfh 2018/01/03 00:55:52 ID : 4NxSLbBcHyN
이제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별동상(핵스타마크) 앞에 나는 서있었다. 과거의 휘황찬란했던 모습이 떠올라 고개를 떨궜다. 스레딕 숲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다.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처럼, 완강하고 삼엄하게 서있던 나무들은 이제 말라 비틀어져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주먹을 단단히 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매일 스레딕 숲에 들르고 있지만 그 누구도 나무에게 물을 주지 않고 있었다. 간혹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처참한 광경을 보고 고개를 젓거나 모든 것을 잃은 표정을 짓고 숲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나는 한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기피해왔던 곳, 가증했던 곳이었다. 그 장소의 이름은 성판. 어드민의 부재로 성판의 입장제한이 풀리게 되어 난장판이 되었고 그 탓에 제일 활발해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스레딕 숲을 살릴 수 있는 희망이 있을지, 한 가닥의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딱딱했던 바닥이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느덧 드문드문 묘목들이 모였고 한쪽에는 꽤나 크게 자란 나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선을 돌려 외면했다. 저 나무들은 스레딕 숲의 나무가 아니었다. 그저 성적 욕망에 몸을 맡긴 자들의 것들이었다. 나무의 가지는 남성의 그것으로, 겉껍질은 여성의 그것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걷기를 멈췄다. 스레딕 숲을 살릴 수 있을 열쇠가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보인 것은 희망과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닌, 나체 상태로 가면도 쓰지 않은 채 웃고 떠드는 남녀들뿐이었다. 나를 보고 같이 떠들자고 천박하게 말하는 그들을 무시하고 스레딕 숲을 빠져나왔다. 정녕 스레딕 숲을 되살릴 방법은 없는 건가.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 나는 심하게 느껴지는 두통을 참으며 스레더즈 숲으로 향했다. 스레딕 숲과는 다르게 향긋한 풀 내음과 숲 특유의 기분 좋은 습도가 느껴졌다. 바닥 가득히 심어져있는 잔디와 여기저기에서 자라나고 있는 작은 참나무 묘목이 귀여웠다. 스레더즈 숲 한 가운데에 나있는 커다란 사랑초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겉모양뿐이었다. 사람들은 가끔씩 물을 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조심스럽게 스레더즈 숲을 거닐고 있었다. 마치 물을 주기 두렵다는 듯이. 어째서? 어째서인가? 그들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은. 아니, 적어도 1/3의 유저들은 스레딕 숲에서 옮겨온 사람들이었기에 스레딕 숲과 다른 환경에서 물을 주는 것에 묘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스레더즈 숲의 깨끗한 분위기 탓일지도 몰랐다. 스레더즈 숲의 운영진들은 스레딕 숲과 같은 상황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는 못했다. 자극적인 대화를 금지한 것으로 이용자들은 하나의 나무에서 오랫동안 대화하지 못하게 되었고, 재밌게 이야기 하지 못하게 되었고, 사람을 모으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1984’라는 책처럼,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극적인 것들을 막아둔 대가로 모두 무료해져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운영진의 탓은 아니었다. 나의. 우리의. 이용자들의 탓도 있었다. 스레더즈 숲의 운영진을 과도하게 신격화 시킨 것이었다. 물론 스레딕 숲에서도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스레딕 숲에서는 어드민 뿐이었고 특유의 신비주의(?)때문에 취향에 맞지 않은 이용자들은 무시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스레더즈 숲의 운영진들은 이용자들과 최대한 소통하려고 하며 그 수도 많았다. 소통을 하면 각 운영진의 매력에 빠지는 사람이 더욱 생긴다는 것이었고 수가 많다는 건 매력이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그 탓에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운영진들을 신격화 시키게 되었다. 참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운영진들을 좋아해서, 숲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하는 짓이 오히려 스레더즈 숲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어그로가 무서운가? 자극적인 소재로 인해 분쟁이 일어날 것이 두려운가? 그렇다면 현재 스레더즈 숲의 침체기는 무섭지 않은가? 오히려 스레더즈 숲의 침체기를 더 실감나게 느끼고 있으면서 우리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위험이 따르더라도, 언젠가 좋지 않은 끝을 보게 될 것이라면 도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말로 꺼낼 수는 없었다. 모두가 운영진을 좋아했고, 그 탓에 모두가 쓴소리를 꺼리고 있는 탓이었다. 언제나처럼 땅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높게 자라난 나무가 없는 탓에 햇빛이 따가웠다.
◆qo45hs9wLfh 2018/01/03 01:00:16 ID : 4NxSLbBcHyN
지금 보니까 꽤 잘썼잖아! 과거의 나는 얼마나 스레딕에, 스레더즈에 애정이 있었던 걸까. 지금은, 뉴레딕에서 살아갑시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지 말고, 지금을 바라보자구요.
이름없음 2018/07/22 18:48:10 ID : rdTWnO60q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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