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일어났던 방사능 유출사고인데, 매우 심각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원전에 의해 묻힌 사건이다. 스레 중간에 방사능에 피폭된 인부의 사진이 사람에따라 매우 혐오스러울수 있으니, 열람에 주의바람! 레스는 마음껏 달아도 되~

1. 1999년 9월 30일 오전 10시 35분에 일본 이바라키현 나카군 도카이촌에서 발생한 레벨 4 원자력 사고. . . . 핵연료 재처리 회사인 JCO가 도카이촌(東海村)에 세운 핵연료 가공시설에서 일어났다. 이 사고로 인해 현장에서 작업 중이었던 오우치 히사시 (大内 久, 1964~1999, 당시 35세)가 18그레이, 시노하라 마사토(篠原理人, 1959~2000, 당시 40세)가 10그레이, 이 둘을 지휘하던 상사 요코카와 유타카 (横川豊, 당시 54세)가 1 ~ 4그레이 가량 피폭됐다. 1그레이/시버트는 과거의 렘/라드 단위의 100배로, 6그레이 이상의 피폭 후 생존자는 거의 없다. 오우치는 83일 만에, 시노하라는 211일만에 사망했으며, 사망자를 포함하여 피폭자는 수십 명이 나왔다. . . . . 18시버트가 얼마나 큰 양인지 체감이 안되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1년간 허용 방사선이 1밀리시버트이다. 1시버트=1000밀리시버트이므로, 18시버트면 1만8천년동안 받을 방사선을 한순간에 받은것.

2. 3년 만에 처음 핵물질을 처리하는데도, 작업자 자격요건과 훈련을 제대로 확립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업자들은 5% 미만의 저농축된 재료를 처리한 경험은 많았지만, 이 날 다룰 고농축 재료의 위험성에 대한 이해와 교육은 없었다. . . . . 사고는 불순물 제거작업에서 시작하였다. 원래는 이산화우라늄 분말을 질산에 녹여 별도의 용기에서 잘 섞은 후 조금씩 침전조에 집어넣어야 하지만, 작업자 3명은 그러한 정규과정에 대한 숙지도 없이 질산에 농축도 18.8%인 이산화우라늄 분말을 녹인 후 그냥(!) 침전조에 부어버린 것이다. . . . 물론 이것만으로 사고가 나진 않았다. JCO에서 규정한 임계제한량은 2.4kg이고 용기에 들어가는 용액의 무게는 2.3kg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업자들은 계속 이런 식으로 작업했고, 안에 들어간 우라늄의 양이 16kg에 달했을 때 임계질량을 돌파했다. 본디 순수한 우라늄-235라면 임계질량은 약 22.8kg 정도이지만 하필이면 이것이 수용액이었기 때문에 임계질량보다 적은 질량에서 핵분열이 일어난 것.

3. 그 다음은 '임계사고'라고 부르는 제어하지 않은 핵 연쇄반응이 시작되었다. 그렇다. 도카이 마을 한가운데에 갑자기 활짝 열린 원자로가 나타난 것이다. 그나마 농축도 18% 내외였기 때문에 폭발적 반응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작업장 전체가 그야말로 방사선 전자레인지가 되어버렸다. 일반인이라도 위험 상황이 발생했음을 즉각 인지할 수 있는 폭발보다도, 조용하지만 치명적이면서 훨씬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초보적인 더러운 폭탄이나 다름없는 사태였다.

4. 작업자들은 체렌코프 현상으로 발생한 푸른 섬광을 목격한 직후 바로 피폭당했고, 공장에는 감마선 경보가 울렸다. 비록 폭발은 없었으나 핵분열 부산물이 건물 내로 퍼져나갔다. . . . . 경보음이 울리자마자 다른 방에 있던 요코카와가 "도망치라"고 외치는 걸 시작으로, 다들 방사선 관리 구역 바깥까지 도망쳤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방사선 피폭 증상이 나타나 탱크에 가장 가까웠던 오우치와 시노하라는 즉각 통증과 구역질, 호흡곤란 등 증상을 보였고 요코카와 또한 몇 분 후 의식을 잃고 토하기 시작했다. 그 극히 짧은 순간의 중성자선 피폭만으로, 오우치와 시노하라의 염색체는 "산산조각나 버렸던 것이다."

5. 쓰러진 작업자들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들이 출동했지만, 오히려 방사선 피폭 사태를 악화시켰다. 신고자가 '임계사고 같은 게 우리 시설에서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소방관들에게 방사능 누출에 관해 어떤 경고도 하지 않은 것이다. 방사능 대비를 하지 않고 뛰어든 소방관 3명은 당연히 피폭되었고, 사고가 발생한 지 10분이나 지나서야 사고의 정체가 밝혀졌다. "작업자들이 푸른 섬광을 봤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것이다. . . . . 그런데 공장이 있는 이바라키현에 사고를 보고한 것은 사고발생 1시간이 지난 후였고,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한 때는 4시간 30분 후였다. 사고가 난 곳에서 반경 350m 이내에는 주민 40세대가, 500m 이내에는 100세대가 거주하였으며, 그 주변 도로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음을 생각하면, 책임자들이 목숨은 내다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의심스럽다.

6. 문제의 연쇄반응은 다음날까지 계속되었으나, 이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기에 작업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투입되었다. 연쇄반응을 멈추게 하려면 침전조의 냉각수를 빼야 하므로 작업자들은 우선 냉각수 밸브부터 손대었으나, 방사선이 너무 강력했기에 안전을 위해 작업시간은 몇 분 정도로 제한되었다. 몇 분만 일하고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작업한 끝에, 망치를 동원하여 파이프를 부수고 침전조에 가스를 주입, 냉각수를 모두 빼냈다. 이게 오전 5시 무렵이었다. 그 후 붕산수를 침전조에 주입하여 겨우 사태의 막을 내렸다.

7. 이 사고 이후 문제의 공장은 폐쇄되었으며, JCO의 관련자 6명은 집행유예, 그리고 JCO에는 벌금 100만 엔(약 1천만 원)이 선고되고 회사는 문을 닫았다. 이 관련자 중에는 첫 작업자 3명 중 하나였고, 오우치와 시노하라에겐 상사인 요코카와도 포함됐다. 그는 피폭량이 치명 수치는 아니라서 치료 후 퇴원하고 이후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오우치와 시노하라를 이끌고 문제의 작업을 총괄하는 담당자라는 입장상 책임을 추궁받은 것.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상급자에게 있었고 그의 관리부실로 두 명이 사망했으며 후일 피폭 후유증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사망한 사람은 더 많기 때문에 현장에서 본인이 피폭당해 같이 죽지 않은 이상 처벌을 면할 수는 없었다. 요코카와도 책임을 인정했고, 훗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사고는 무지의 산물이었다." 하며 스스로를 크게 책망하기도 했다. . . . 그러나 일본은 이 사고에도 재처리공장을 단념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32조원을 들여 아오모리현의 롯카쇼무라에 연간 800톤의 핵물질에서 핵무기 1000개 분량인 8톤의 플루토늄을 분리할 수 있는 새로운 재처리 공장을 만들어 2022년부터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8. 가장 많은 피폭을 당한 두 작업자 오우치 히사시와 시노하라 마사토는 모두 1년이 채 못 가 매우 참혹하게 사망하여, 일본 전역에 충격을 주었다. 오우치는 피폭된 이후 두꺼운 비닐로 덮인 상태에서 도쿄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걸 목격한 기자들과 사람들은 "겉보기엔 멀쩡한 사람을 왜 저렇게 비닐로 덮은 채로 이송하는가??"라며 의아해했다고 하며 처음에는 담당 의사나 간호사들마저 응급실로 온 너무나도 멀쩡한 오우치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 . . . 맨 처음 오우치에게서 눈에 띄는 건, 당시 우라늄 용액을 부은 깔대기를 잡고 있어 가장 심하게 피폭된 팔이 빨갛게 부어오른 정도뿐이었다. 그 외에는 여러 질문에도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며 서로 쾌유를 빌기도 하는 등, 전혀 응급실에 온 환자 같지가 않았다고 한다. 의료진의 술회에 의하면, 오우치는 셋 중 가장 심하게 피폭되었음에도 정신적으로는 가장 침착했다고 한다. 간호사들은 밝은 성격을 보여주는 "유쾌한 오우치 씨"라고 부르기도 했다.

b93e633efae6b6754e3679f9da2bcfa2007f7f77c1d7f98e4898252e6768c0196e3e180aadd592d5d58cf936904eaf9ed87359310d82518ad4086602ec.jpeg9. 그러나 그 후. (사진을 봐주세요)(약간 혐오) 오우치 히사시의 산산조각난 염색체 사진. 사고난 직후 저 지경이 된 것이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골수세포의 염색체가 찍혀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사진에 담겨 있는 것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까만 물질이었다. 히라이가 지금까지 익히 보아온 인간의 염색체와는 모양이 완전히 달랐다. . . . . 염색체는 모든 유전 정보가 모여 있는, 이를테면 생명의 설계도와도 같은 것이다. 통상 23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번부터 22번에 이르는 상(常)염색체와 여성의 X, 남성의 Y와 같은 성(性)염색체가 번호별로 정해져 있어서 순번에 따라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오우치의 염색체는 어느 것이 몇 번 염색체인지 도저히 식별하기 어려웠다. 순번에 맞게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잘린 채 다른 염색체에 달라붙은 것도 있었다. 염색체가 산산이 흩어졌다는 건, 앞으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피폭한 순간, 오우치의 몸은 설계도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출처. <83일> P.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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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주치의 히라이 히사마루(平井久丸)는 오우치 히사시의 혈액 샘플에서 염색체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부서진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20년차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였던 히라이는, 이 때부터 이미 오우치 히사시와 시노하라 마사토의 고통스런 최후를 예상했다고 한다. . . . . 처음에는 세포분열이 가장 활발한 혈액 속의 백혈구가 가장 먼저 싹 전멸했다. 특히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는 사고 직후부터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특히 항체를 생성하는 B세포가 속한 림프구가 거의 없어졌으므로 면역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즉 AIDS 환자 같은 상태로, 기회감염(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감염되지 않다가, 환경이 바뀐 후 감염되는 상황)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으로, 정말 지극히 위험한 상태다. 이 때문에 오우치는 멸균실에 입원해야 했고, 여러 기회감염균에 대해 실시간 중합 효소 연쇄 반응 (Real-Time PCR. qPCR) 시스템을 사용하여 실시간으로 검사를 받게 되었고 결국 극심한 백혈병 증세가 일어났다. 이와 더불어 혈소판 역시 감소하여 혈소판 수혈을 받아야 했다. . . . . 그 다음으로 세포분열이 활발한 피부가 더 이상 세포 재생이 되지 않으면서 '자멸'을 일으켜 벗겨지기 시작했다. 의료용 테이프를 붙여둔 피부가 테이프와 같이 뜯겨 나오거나, 수건으로 발을 닦는 수준에도 피부가 손상되었고, 나중에는 손톱마저 빠져버렸다. 이러한 양상은 가장 피폭량이 많은 오른손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의료용 테이프와 의료기구를 뗀 자리의 피부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을 시점의 의료 기록지에는, 오우치 히사시가 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읽기만 해도 환자의 격심한 고통이 느껴질 정도이다.

11. 유튜브에 있는 오우치의 83일을 기록한 '피폭치료 83일의 기록, JCO 임계사고'라는 다큐멘터리에서 그 내용이 나오는데, '제발 그만해주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엄마…' 등등 오우치가 남긴 말이 메모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야말로 생으로 피부가 뜯겨지고, 폐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엄습하는 격통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저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그리고 나중에는 아예 전신을 붕대와 거즈로 싸매고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했고, 눈을 감을 수 없게 되어서 눈에 연고를 발라주는 조치를 취해야 할 지경이 됐다. 또한 이따금씩 눈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 . . . 치료 11일째에 피부가 계속 뜯어지고 숨쉬기가 힘들어지자, 오우치는 간호사들에게 "당신들 적당히 해! 난 기니피그가 아냐!"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내가 회복될 가망 자체가 없지 않느냐?!"고 끈질기게 추궁했다고 한다. 오우치가 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원자력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만큼 피폭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러니 무사히 회복될 것이라는 의료진들의 듣기 좋은 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통스런 죽음을 이미 예감했던 듯하다. 처음에는 부인하던 담당 주치의 마에카와 카즈히코(前川和彦)와 간호사들도, 오우치의 계속된 추궁에 결국엔 인정했다고 한다. 오우치는 평소에 화 한 번 낼 줄 모를 정도로 온화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그런 그조차 저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결국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i14104118045.jpgi14104118045.jpg12. (사진이 매우 혐오스러울 수 있음.) (오우치와 시노하라의 피폭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놓은것. 살점이 거의 없어 흰 부분만 남은 얼굴이 보인다.) 다음으로 장기의 점막이 소멸해가며 소화장애를 유발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대량의 설사가 유발되어 비교적 장의 점막 상태가 양호했을 때부터 "혈액을 통한 점액 형태의 영양 흡수보다, 위장으로 직접 영양소를 흡수하여야 건강 회복에 좋다"는 마에카와의 조언 아래 위장으로 투여하고 있던 영양액이 거의 소화되지 못하고, 초록색의 물설사 형태인 거의 그대로의 양으로 배출되었다. 물조차도 흡수되지 못하였고, 하얀 동그라미 형태로 장의 일부 점막이 소생하기는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진료 초기 이전 방사선 피폭 사망자들의 다발성 장기 부전-사망의 케이스를 통해 담당 주치의 마에카와가 가장 우려하던 증상이 결국 발현된 것으로, 나중에는 출혈 사태가 벌어져 위와 십이지장이 피바다가 되어버렸다. . . . . 또한 가장 심하게 피폭을 당한 팔부터 점차적으로 신체가 부패하면서, 근육까지 손상되었다. 혈액에서는 미오글로빈이 녹아나왔다. 이로 인해 신장의 부담이 커졌다. 이에 러시아의 피폭 의료 전문가는 팔을 절단하기를 권했으나, 절단면이 회복될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이 나와 시행하지 않았다. 나중에 부검했을 때는 근육의 선을 발견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i15943508548.jpgi15943508548.jpg13. (사진이 매우 혐오스러울수 있음. 온몸에 온전한 피부가 남아있지 않은 환자, 피가 스펀지처럼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사진이다.) 오우치 히사시와 시노하라 마사토가 피폭 후 7일간은 겉보기엔 멀쩡하다가 순식간에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심각한 방사능 피폭으로 인체의 설계도인 염색체가 완전히 파괴되어 새 세포를 전혀 생성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는 세포들의 약한 전기자극에 의해 연결돼 있는데, 방사선, 그것도 이들이 피폭된 강력한 중성자선은 그보다 무려 10만~100만배나 강한 에너지를 가졌고, 이것이 신체를 통과하면서 이 전기자극을 뿔뿔이 끊어놓았다. 정상인이라면 오래된 세포가 파괴되면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가 재생해야 하는데, 이 세포를 구성하는 염색체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려 시간이 지나면서 남아있는 세포들은 전부 노후하여 떨어져 나가 사라져 버렸는데, 더 이상 세포가 재생하지 않으니 피부가 벗겨지고 근육을 비롯해 모든 장기들이 완전히 망가지게 되는것이다. 처음에 멀쩡했던 이유는, 방사능 피폭은 천단위의 시버트를 받지 않은 이상 충격으로 인한 상해가 전혀 없기에 멀쩡했던 거지만, 오래된 세포가 유지되는 기간이 1주밖에 안 되니 바로 망가지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 . . . 물론 의료진도 이전부터 축적되어 온 방사능 피폭 피해자들의 자료들을 통해 이런 악화를 어느 정도는 진작에 예상하고 있었고, 새로이 신체에 백혈구 등의 면역력을 되찾아줄 수 있는 조혈모세포 이식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세계 최초로 방사능 피폭자로의 세포 이식에 성공도 했고 일시적이지만 백혈구 수치가 다시 정상에 가깝게 상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 . . . 그러나 이런 성공조차 의미 없었던 것이, 바로 피해자들 자신의 몸속 물질이 방사성 물질로 변해, 스스로 지속적으로 방사선을 방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껏 이식에 성공한 세포의 염색체가 얼마 못 가 손상되어, 의료진을 경악하게 했다. 또한 오우치나 시노하라 모두 조혈모세포 이식은 성공했지만 백혈구 중 고도의 면역 기능을 가진 림프구는 미숙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나중에 가면 그 증가된 백혈구들마저, 방사선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증식한 매크로파지(대식세포) 로부터 공격받아 결국 대다수가 파괴되었다. 심지어 이 매크로파지의 활동으로 인하여 적혈구 수치마저 같이 줄어들었다.

14. 그렇게 절망적으로 악화되는 가운데 어떻게든 생명을 유지시키려고 폐에 기관을 넣은 인공호흡기 부착과 지속적인 수혈 및 기계적인 수분 공급, 진정제와 진통제는 물론 임상실험 중인 약물 투여에 피부 이식까지 시도했다. 여러 대학이 보유하고 있었던 70매의 배양 피부를 오른쪽 배와 발바닥에 이식했으며, 12월 경에는 여동생의 피부도 이식했는데, 이것은 피부 손실로 벌어진 체액의 유실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여러 번에 걸친 이식에도 얼마 가지 못해 체액이 새어나와 피부가 들떠버려, 이식은 실패하였다. 결국 고통스러운 시간만 연장시키다가, 오우치는 83일 만에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사망했다.

15. 오우치는 사실 죽기 수십 일 전에도 3차례 심장마비와 소생을 겪는 등 위급한 상태에 놓이기도 하였다. 피부 손실로 인한 출혈 및 장 점막의 손실로 인한 장기 출혈은 거의 하루 10리터에 이르렀고, 이에 대해 적혈구와 혈소판 등을 반나절 동안 10회를 넘겨가며 지속적으로 잦은 수혈을 반복한 결과, 심장에 계속 마라톤 선수와 같은 무리가 간 결과였다. 소생에는 성공했지만 3차례나 심장이 멎었던 것 때문에, 안 그래도 엉망이었던 다른 장기와 뇌의 기능이 현저히 저하됐다고 한다. 혈압도 제대로 유지할 수 없게 되어, 혈압을 올려주는 염산도파민, 염산도부타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승압제를 써서 혈압을 맞추긴 했으나 이를 줄이자마자 바로 혈압과 맥박이 불안정해졌다. 이른바 승압제 의존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주변 자극에 거의 반응하지 못하는 혼수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의료진도 3차례 마비 후의 소생 이후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것을 보고, 83일째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면서 심장이 멎었을 때는 앞서 결정하여 가족들에게 미리 통보한 대로 더 이상의 소생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 . . . 그나마 심장만은 피폭을 덜 당해서, 오우치는 83일 동안'이나' 살아있을 수 있었다. 만약 심장까지 피폭당했다면 1달도 못 버텼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부검한 근육 사진에서 근육 조직이 거의 사라진 대흉근과는 달리, 심장의 조직은 대부분 온전하였다. 이에 오우치를 부검했던 의사 미사와 쇼고(三澤章吾)는 혼자 빨갛게 또렷하게 남아 있던 심장 조직에서 오우치의 생존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15. 가족으로는 부모와 형제 및 여동생, 아내,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이 모든 비극을 여과없이 전달받아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오우치의 생존을 기원하며 다들 종이학 접기를 반복했고, 그 중 하나라도 병실 안에 놓이기를 희망했으나, 감염 우려로 거부당했다. 방사능 피폭 우려로 접근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아직 양호한 상태였을 때는 유리벽 등을 사이에 둔 면회 정도는 가능했다고 하나, 폐에 직접 기관을 넣은 인공호흡기 부착 후로는 대화도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그나마 사망 당일날인 83일째에, 아들과 아내가 혼수 상태에 빠졌던 오우치에게 다가가는 게 허락된 정도. 그리고 오우치는 그날 밤 숨졌다. . . . . 오우치 히사시는 일본 역사상 첫 임계사고 피폭 사망자로 기록되었으며, 이 때문에 그의 죽음은 일본 전역은 물론 바다 건너 한국에서까지 대서특필되었다. 한편 오우치 히사시가 피폭 후 83일째 되는 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노하라 마사토는 울면서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피폭량이 오우치보단 적었지만 그도 치사량인 건 마찬가지라, 결국 시노하라도 똑같이 끔찍한 몰골이 되어가다 몇 달 뒤 같은 최후를 맞았다. . . . . 오우치 히사시의 치료기록은 <83일>이라는 제목으로, 배경이 하얀 표지를 단 책으로 출판되었나왔다. 궁금한 사람은 참고할 만하나, 책 중앙에 있는 빳빳한 소재의 종이 부분은 실제 사진을 넣었으므로 유의해서 보기를 권한다. 여기에는 시노하라 마사토의 치료기록도 부가적으로 기재되었으며, 당시 오우치를 치료한 의료진의 고뇌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 . . . 사망 이후 오우치 히사시와 시노하라 마사토의 시신은 이미 그 자체로 방사성 물질이 되어버린 탓에 차폐 차원에서 콘크리트 몇 겹으로 된 석관에 두꺼운 납으로 된 완전 밀봉한 관을 넣어 매장하였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희생자들인 '바실리 이그나텐코' & '알렉산드르 아키모프'를 포함한 수많은 피폭 사망자들, 고이아니아 방사능 유출사고의 사망자들, 방사능 물질의 일종인 라듐으로 만든 약인 라디톨을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된 의사로부터 처방받아 3년을 마셔대다 심각한 내부피폭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에벤 바이어스 역시 똑같은 처리를 거쳤다고 한다.

재밌다 스레주 더 많이 풀어줘 나중에 심심하거나 화장실 갈 때 읽게 진짜 재밌어 ㅠ

소름돋네...사진도 무섭다

16. 한편 일반 대중들은 의료진을 크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 이전에도 심각한 방사능 피폭을 당한 사람들이 결국 똑같이 고통과 끔찍한 몰골로 변해가다 사망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치료한답시고 오우치와 시노하라 에게 죽는 순간까지 격심한 고통을 겪게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방사능 대량 피폭은 사고로부터 21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고칠 방법이 없고, 전술했듯 염색체가 부서져 나간 순간 세포분열 자체를 더 이상 못하기 때문에 산 송장이 되기 때문이다. 연구자료 수집을 위해 오우치와 시노하라에게 그런 격심한 고통을 겪게 한 거 아니냐는 의견. 비슷하게 대량 피폭사고를 겪은 루이스 슬로틴과 해리 K. 더그힐란 2세에게, 의료진들이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임종을 맞이하게 했던 사례와 비교된다는 것. 실제로 <83일>의 저자도 "오우치 히사시와 시노하라 마사토에게 의료행위를 한 병원 측에 큰 분노를 느낀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 . . . 하지만, 안락사 제도는 그 자체로 상당한 논란거리이며,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의사들이 선뜻 선택하기는 어려웠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안락사에 협조했다가 의료자격이 날아간 의사들의 사례가 있고, 당장 <83일>만 읽어봐도 의료진 본인들 또한 완치 가능성이 없는 치료행위에 대해 "단순한 고통의 연장일 뿐, 의미가 없는 건 아닌가??" 라고 크게 고뇌했음이 드러난다. 게다가 오우치와 시노하라가 몸과 마음이 처참하게 무너져가며 죽는 걸 이들은 옆에서 그다지 효과도 없는 치료와 처치를 해가며 생전 처음 목격하는 그 모든 증상들을 일일이 두 눈으로 목도해야 했으니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아니고서야 정신적 고통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의료진들은 가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치료를 계속하기 위해 스스로가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자 회의 때마다 어떻게든 가능성이 희박한 대책이라도 거론했으며, 시간이 갈수록 그마저도 빈도가 낮아지는 가운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체 뭐냐는 자괴감에 빠져들고 있었다고 한다. . . . . 시노하라 마사토의 사망 이후, 우연인지 치료활동 중의 피폭 영향인지, 피폭환자들의 치료와 연구에 깊이 관여했던 히라이 히사마루도 2003년 5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 . . 주요 피폭자이자 사망자들의 상관인 요코카와 유타카는 치료를 받고 퇴원해서 직장에 복귀했고 2004년에 정년 퇴직했다. 위에 언급했듯이 본인 또한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았으며, 스스로도 잘못이 있다고 반성하였다. 2020년 현재 간토 지방에서 살고 있으며, 2개월에 한 번은 시노하라와 오우치의 묘전으로 간다고 한다.

끝! 사진이나 더욱 많은 자료를 원하면 계속해서 올려줄께.

미안한데 >>16 사진 많이 무서워??ㅜㅜㅜㅜㅜㅜㅜ

>>24 피부가 벗겨지고 빨개진건데 무섭다기보다 비위약하면 못 보는거? 위는 등?인데 그렇고 아래는 빨간 피 미라같은 느낌

방사선 공부하는 학부생인데 이 사고 알고서 굉장히 충격받았었다. JCO에 비하면 후쿠시마는 정말 정말 안전하게 관리된 편이고, 비유하자면 체르노빌에서 300명이 받았을 방사선량을 단 세 명이 나눠받았다고 할까. 보통 세포가 기준치 이상의 방사선을 맞으면 어딘가 일부가 고장난 상태로 계속 복제돼서 암이 되는 건데, 이 사고는 세포가 암도 되지 못하고 그냥 녹아버린거지. 그것도 전신이. 화상이나 암이면 이식이라도 하지 온몸이 그냥 젤리처럼 녹아버리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고민하다가 사진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다 방사능이 진짜 심각한 문제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사진으로는 본 적 없어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하네

와.... 난 지금까지 피폭이 뜨거운 열 때문에 화상을 입어서 피부가 상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냥 회복 자체를 못하게 하는 거였구나.. 진짜 허무하고 고통스럽겠다..

유튜브에 '83일' 이라고만 검색해도 다큐멘터리 나오니까 궁금한사람은 한번 봐봐.. 보기 힘든 사진은 없더라.

와 진짜 너무 고통스럽겠다 나 같으면 바로 안락사 해 달라고 빌거같아

나는 체르노빌(?) 그거 앞부분만 보고 화상때문에 피부가 그런줄알았는데 재생이 안되서그러는거였구나 ㄷㄷ 염색체 분열보고 소름돋았어 나같으면 안락사해달라고 울면서 빌것같아

사진 볼 사람들 조심해. 잘못하면 트라우마 남을 수도 있겠다

⚠️⛔사진 볼까말까 고민하는 레더들에게⛔⚠️ >>15이건 얼굴이라 피부녹은거랑 눈보면 진짜 보면 충격먹을거야,.. 특히 초중학생 절대 보지마 ..진짜 난 경고했다 >>16이건 몸이라 얼굴에 비해서는 좀 낫긴한데 진짜 피부 다 벗겨진 빨간 핏덩이모습이라서 이것도 난 충격이였어 비위약하거나 무서운거못보면 성인이라도 절대보지않길바래!! 정말정말 궁금하다면 밝기낮추고 폰잡은 팔 쭉뻗어서 멀리서 봐,... 난 아직도 심장이 겁내 뛴당께..,.후하후하

>>33이 아주 명확하게 사진에대해 써줬어. 사진 보기 무서우면 참고해! 고어, 오컬트 마니아가 아니면 안보는걸 추천!

와 지린다... 피부 재생이 안 되니까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고 다 녹고 와 ㅠㅠㅠ 간만에 무서운 거 봤다 엄마랑 자야지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부풀어 오른 얼굴? 그런 느낌이였는데 나중에 볼수록 정말 피부 한점도 남아있지않구나 하고 소름끼쳤다,, 전에 방사능 피폭 관련 만화영화를 봤었는데 그 영화의 피폭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충격과 비교도 안돼.. 진짜 실사로는 저렇구나...

아 ㅅㅂ 눈버렸네 얼마나 무서우면 무섭겠어라고 생각했는데..

나 비위 강한 편인데 이건 못 보겠더라

어우.. 진짜 충격이다

일본이 일본한 일이 99년도에도 있었구나

CSI나 NCSI,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미드 보면서 시체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사진 보니까 무섭더라.

너무 무섭다 진짜... 사진도 사진인데 죽어가면서 느꼈을 고통을 상상하니까 소름이 끼치네..

2022년 재처리공장 가동예정이라니.. 참..

고기굽다 튀는 기름에 데이는것도 쓰라리고 겁나아픈데 온몸에 살이 다 뜯겨나가는 고통은 상상을 할수가없네...

방사능 위험하다고만 알고 있었지 이정도일 줄은 몰랐네.. 핵 터지면 대피하지 말고 최대한 가까운데서 빨리 죽어야겠다...

83일 읽어봣는데 막판에 진짜 개슬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무섭다

진짜 방사능 무서운거같아..ㅠㅠ 독일이가 어느나라는 위험성때매 이제 아예 안사용한다는데..ㅠㅠ 우리나라도 그런쪽으로 해야하는거 아닐까 ㅠㅠㅠ

이야 이렇게 끔찍한 방사선이 잔뜩 있는 방사능 폐수를 바다로 대량 방류하겠다고 개씹당당하게 세계에 공표한 일본이 레전드다 진심

난 사진을 보고 그 끔찍함은 전달됐지만 무섭다기보다는 뭔가 깊이 생각하게 됐는데.. 너무 무섭다고 생각할수록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 만약 내 주변 사람이 저렇게 고통스러워 한다면 징그럽다고 생각할까, 저 가족들은 어땠을까 싶네.. 방사능 피폭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느꼈어..

>>16 만 봤는데 숨막힌다.. 애초에 약한 고어만 봐도 무서워해서 사진 빼고 보려다가 잘못하고 눌렀는데 트라우마 생길것같아..ㅅㅂ아 미치겠다 계속 아른거려

ㅅㅂ 사진보고 놀라서 폰던짐

저 사진 보자마자 알아차린건데 막 아무런 설명없이 극혐 고어짤이라면서 돌아다니던데 피폭당하신 분의 몸이었구나 ㅠㅠ

저기 있잖아... 아무리 스레딕 괴담판이여도 이렇게 끔찍한 사건을 사진으로 남기고 혐오스러울 수 있다거나, 눈 버렸다던가, 고어 오컬트 마니아가 아니라면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솔직히 고인 능욕인 것 같아. 내가 진지하게 그러는 것 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이 계속 사람들에게 기억되어 앞으로 더 이상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두고 경각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스레 세우는 것은 지양해 주었으면 좋겠어. 누군가에게는 정말 가슴 아프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을 이 사건을 우리 마음 속으로만 기리자. 정말 괴담 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들 불편했다면 미안.

사진은 본적있는데 사건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봤어 레주도 글 고맙고 댓글로 갱신된것도 고마운데 이젠 정말 스탑 걸고 써줘!

스탑 걸고 쓰는데 진짜 무섭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고 고인분께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걸 알지만 솔직하게 안그래도 시험기간이라 스트레스 받는데 매번 호기심 때문에 이런 글이나 범죄 이야기 같은거 읽었다가 몇달동안 생각나면서 시달림.. 진짜 왜 매번 이렇게 후회할짓만 하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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