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은 당신이 아는 그거 2020/11/01 00:53:06 ID : 9h860oL88ry 4
1. 약탈, 살인, 강도, 폭력. 소음, 소음, 소음. 혼돈이다.
2 ◆08rzak2lck5 2020/11/01 00:53:26 ID : 9h860oL88ry 0
2.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졌다. 모든 건 색을 잃었다.
3 ◆08rzak2lck5 2020/11/01 00:53:38 ID : 9h860oL88ry 0
3. 그날은 유독 아침부터 고요했다. 출근 시간에도 도로에 차 하나 없었다. 있어도 길 한복판에 세워진 주인 없이 버려진 차 정도. 문득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미친 듯이 나가기 싫었다. 아니, 무언가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것 같았다. 뭐가 문제지?
4 ◆08rzak2lck5 2020/11/01 00:53:46 ID : 9h860oL88ry 0
4.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옆에서 유쾌한 휴대 전화 알림음이 울린다. 나는 저런 음을 설정한 기억이 없는데. 이불을 걷어버리고 화면을 확인하니 알 수 없는 문장이 떠 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 세계의 신이 되었습니다!] 삼류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나는 저것이 진짜라는 확신이 강하게 드는 것을 부정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5 ◆08rzak2lck5 2020/11/01 00:53:57 ID : 9h860oL88ry 0
5. 그 빌어먹을 문장을 본 지 일주일이 지났다. 세상에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어찌어찌 밖에 나가 돌아다녀 본 결과, 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결론지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남은 것 같았다. 방송도 라디오도 나오지 않고, 가게들은 문이 열린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이건 꿈일까? 그래, 너무 피곤해서 조금 긴 꿈을 꾸는 것일 터이다.
6 ◆08rzak2lck5 2020/11/01 00:54:33 ID : 9h860oL88ry 0
6. 한 달이 지났다. 휴대 전화 화면에는 이상한 메뉴들이 떠 있다. [생명체 옵션]-인간, 동물, 식물 >상세보기< [재난]-홍수, 지진, 해일 >프리미엄 가입< . . 등등.
7 ◆08rzak2lck5 2020/11/01 00:54:48 ID : 9h860oL88ry 0
7.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간]을 눌렀다.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몇 번 더 눌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웠다. 나는 커튼을 걷었다. 사람이다! 이건 도대체 뭐지. 마음이 급해져 황급히 [인간]을 더 눌렀다. 허공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반가운 마음에 창문 밖으로 소리쳤다. 저기요! 3층의 베란다에서는 잘 들릴 것이다. 그래야만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다. 이곳에서 소리가 났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진짜 미치겠다. 아무래도 2번이 틀린 것 같다. 색뿐만 아니라 소리도 사라졌나 보다. 아니면 사람들 귀가 맛이 갔거나.
8 ◆08rzak2lck5 2020/11/01 01:24:07 ID : 9h860oL88ry 0
8. 두 달이 지났다. 아,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 언제까지 이곳에 고립되어 있어야 하지?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목도 마르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게 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주, 좋지 않다.
9 ◆08rzak2lck5 2020/11/01 01:28:22 ID : 9h860oL88ry 0
9. 그때 화면을 누른 후 나는 덜컥 겁이 났었다. 이게 진짜라면, 다른 종류, 이를테면 그래. 재난 같은 것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건 절대 누르지 말아야지.
10 ◆08rzak2lck5 2020/11/12 21:45:42 ID : 9h860oL88ry 0
10. 나는 매일같이 창밖으로 사람들을 관찰했다. 낯선 곳에 떨어진 사람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했다. 두 번째는 관계를 쌓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회를 만들어 갔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이것저것 얻으며 생활했다. 재미가 없어져서 몇 명 더 추가해 주었다. 그들은 사람을 반겼다.
11 ◆08rzak2lck5 2020/11/12 21:46:21 ID : 9h860oL88ry 0
11. 싸움이 일어났다. 두 남자다. 의견 차이로 일어난 말싸움이 과격하게 변한 듯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묘하게 한쪽 남자를 지지하는 눈치다. 저 사람, 미움받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성격이 조금 나빴던 것 같기도 하다. 뭐, 아무렴 어때. 역시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다더니 진짜 재밌다. 아, 요즘 진짜 왜 이럴까? 그나마 한 줌 남아있던 도덕성이 저 멀리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12 ◆08rzak2lck5 2020/11/12 21:46:30 ID : 9h860oL88ry 0
12. 반년이 지나갔다. 집 밖의 사람들은 변화하는데 나만이 멈춰있다. 머리카락도 손톱도 자라지 않는다. 머리에 기름이 생긴다거나, 때가 밀린다거나 하는 일도 없다. 그 무엇도 변한 것이 없다. 집, 아니. 애초에 이곳이 집이 맞는가? 어째서 보고자 하는 곳은 다 보이는가? 갑자기 주어진 이 능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건 마치, 신과 다름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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