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5/08/03 18:35:40 ID : hcJWpdPa000 0
손에 쥐면 깨어질 것만 같이. * 단편 창작 독백 모음집 * 각 독백의 화자는 전부 구별된 개개인입니다 * 반응 환영
2 이름없음 2025/08/03 18:39:12 ID : hcJWpdPa000 0
사랑이라고 명명된 그 구조는 처음부터 기울어 있었다.
 정확히는, 누가 기울게 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형태로.
 나는 네 쪽으로 기울어졌고, 너는 내 쪽으로 기대는 척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균형을 가장한 비대칭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부서져 갔다. 너는 나를 사랑했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나라는 주체가 아니라, 너를 비추는 어떤 정념의 거울로서의 ‘나’였어.
 나는 사랑의 발신자였고, 너는 그 발신을 받아 확인하며 살아 있는 느낌을 얻었겠지.
 결국 너는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 거야. 아, 이게 얼마나 역겨운 모순인지. 
아니, 역설인지.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는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했고, 그 비틀린 회로 속에서 나는 점점 대상이 아니라 기능이 되어갔다.
 네가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증거물.
 그게 나였지. 그리고 네가 날 다시 찾은 그 때는... 그 순간은 너무 빨랐어.
 아니, 너무 늦었어... 네가 나를 이해한 때는 너무 빨리 찾아왔어. 아니, 아니... 너무 늦게. 
...어느 쪽이든 잘못된 시점이었다는 사실만은 명확해.
 그 시차는, 너의 온도와 나의 균열 사이에 끼어 있던 마지막 가능성마저 비틀어 찢어발기기에 충분했다. 너는 나를 알아봤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내 안의 ‘너를 사랑하던 나’를 수없이 죽이고 매장한 후였다. 
그 시체 위에 서서 너는 아직 사랑이 가능하냐고 묻더라.
 나는 답하지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다시 살아날 것 같았으니까. 너는 그제서야 날 바라보았어. 너무 빨리. 아니, 너무 늦게. 그제서야 내게 질문했어. 이제는, 아니, 아직은 그 질문이 필요 없는데. ...우리는 애초에 사랑의 주어가 달랐다.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는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했으니까. 
이 관계는 문장으로 환원하면 이해는 가능하지만 공존은 불가능한 구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그 문장의 끝을 붙잡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랑이라기보다는 악착같음이었다.
 기억과 욕망과 증오가 서로 물고 뜯으며
 결국은 나 하나만을 겨누는, 비가역적 감정의 질량. 우리가 어디까지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어디까지 망가졌는지가 중요하지. 인정하기 싫다며 울부짖고 고개를 비틀어도, 결국은 그것만이 증거니까.
 이 모든 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던, 그 날것의 현실만이 지금 내게 남아 있으니까. 눈 돌리지 마. 네가 나를 상처 입혔어. 너무 빨리, 아니, 너무 늦게. ...아직도, 나는 그 문장 안에 살고 있다.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 너.
 그리고 그런 너를 끝까지 사랑해버린 나.
 해석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감정의 잔해 속에 살고 있다. 붙잡으면 안돼. 너무 늦었어. 아니, 너무 일러. 이제는 돌아갈 수 없어. 시간이 흘렀으니까, 아니... 오지 않았으니까.
3 이름없음 2025/08/05 00:03:37 ID : hcJWpdPa000 0
어쩌면 당신은 그날, 태어나는 순간부터 틀린 선택을 한 거예요. 아니, 그보단... 틀릴 수밖에 없던 자리에서 태어난 거라고 해야겠죠. 사람들이 말할까봐 두려운거죠? 당신이 틀렸고,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망가졌다고. 그리고 나는 알아요. 그 말이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거짓이라는 걸요. 나는 그것도 기억하거든요. 누가 어떤 얼굴로, 어떤 억양으로, 어떤 침묵으로 당신을 떠밀었는지. 그 바닥 없는 바닷물 속에서, 당신이 몇 번이나 잠들고 싶어 했는지도요. 그때 당신이 꺼낸 말 한마디, 숨결 한 줄기까지도 나는 전부, 기억해요. 그건... 내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누가 묻든, 어떻게 묻든, 그 기억은 내 것이니까. 그건 나만의 존중이에요. 나를 존중한 당신에게, 내가 돌려줄 수 있는 방식. 사랑이요? 글쎄요. 그게 사랑이라면, 인간의 말이 참 유용하겠네요. 당신도 인간 남자였죠? 가끔은 잊어버려요. 그만큼, 너무 깊이 들여다봤나 봐요. 당신은 그 누구보다 복잡한 사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걸 참 단순하게 받아들여요. 당신이 틀린 선택을 할 때마다, 나는 항상 옆에 있었으니까요. 지켜보는 거, 지켜내는 거. 그건 선택이 아니라, 내 몫이에요. 처음부터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당신은 나를 존중했고, 나는 그걸 배신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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