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5/09/19 15:26:30 ID : nTXBAqjg2IF 0
그들은 서정적인 세상에서 한가닥 이성으로 남아있기를 바랬고, 그렇게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2 이름없음 2025/09/19 16:18:52 ID : nTXBAqjg2IF 0
루스부르크 항구는 늘 바다 안개에 잠겨 있었다. 조수(潮水)가 오르내리는 리듬은 인간의 심장박동처럼 느려터진 규칙성을 지녔으나, 그것이 깃든 바다는 사람의 이해를 거부하는 어떤 초월적 존재와도 같아보였다. 낮에도 항구 위를 떠도는 안개는 햇빛을 흐리게 했고, 밤이 되면 짠내와 어둠, 그리고 오래된 목선들이 부딪히며 내는 삐걱임이 항구 전체를 괴이한 성가(聖歌)처럼 감쌌다. 이곳에서 자란 이라면 누구든, 바다가 품은 비밀을 굳이 캐묻지 않는 법을 배우기 마련이었다. 빈센은 그 진득한 항구의 숨결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결국 바다를 업으로 삼은 사내였다. 키는 거의 2미터에 달했으며, 파도와 고기잡이, 그리고 고된 노동에 단련된 팔뚝은 밧줄처럼 뻣뻣했다. 하지만 그러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이 서 있었다. 항구의 선원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뱃노래를 부르고, 흥취에 젖어 잠시 바다의 두려움을 잊어보려 애쓰는 사이에도 빈센은 그 무리에 섞이지 않았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술잔보다는 바다와 하늘을 오래 바라보는 것을 더 선호했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흐름을 포착하는, 기묘한 통찰이 그의 눈에 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얼마 전, 그는 오랜 일터였던 화물선에서 해고당하고 말았다. 선주의 탐욕과 선원들의 뒷담화가 얽힌 탓이라지만, 그가 해고당한 정확한 이유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빈센은 그저 묵묵히 짐을 꾸려 부두에서 걸어 나왔다. 항구의 여관 주인은 그에게 한숨을 쉬며 “인생이 그런 거지”라 했지만, 빈센은 그 말이야말로 무가치한 위로라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때, 빈센에게 한때 갑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가 찾아왔다. 그는 이제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의 등대지기로 일하고 있었다. 외딴 섬, 사람의 발길이 드문 등대. 그곳에서 홀로 지내야 하는 일은 대부분이 기피했으나, 빈센 같은 외톨이에겐 알맞은 자리였다. 동료는 술잔을 기울이며 그에게 제안을 건넸다. “빈센, 넌 그런 일에 적합한 놈이야. 가족도 없고, 애써 돌아올 이유도 없는 놈. 밤마다 불을 지키는 건 거칠지만 단순한 일이니까. 그 등대는 누군가 있어야 해. 바다는 그 불을 원하거든.” 그의 말 끝에는 미묘한 떨림이 숨어있었다. 언뜻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리를 떠넘기는 듯 보였지만, 빈센은 그 뒤에 무언가 감춰져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당장 내일이면 배를 굶게될 쳐지였고, 돈을 벌 수단이 확실한 수단이 필요했다. 결국 빈센은 동료가 건넨 푼돈과 함께 등대지기 자리를 건네받을 수 밖에 없었다. 며칠 뒤, 빈센은 찝찝한 마음을 뒤로한 채 짐을 꾸려 등대섬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항구를 떠나는 순간, 그는 기묘한 시선을 느꼈다. 부두에 남은 몇몇 주민들이 마치 불길한 운명을 바라보듯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바람은 이미 항구를 벗어나 바다 한가운데로 그를 데려가고 있었다. "기분탓이겠지..." 가까스로 항구에서 시선을 돌린 빈센은 스스로를 위로하려 애썼으나, 한평생 배를 타온 그는 잘 알고있었다. 오래된 항구에 얽힌 수많은 미신들과 괴기스러운 설화들을. *** 잠시 뒤, 수평선 너머로 섬이 보이기 시작하자 빈센은 뱃머리에 올랐다. 섬은 멀리서 보아도 음침했다. 바위투성이 절벽 위에 세워진 등대는 마치 하늘을 떠받드는 거대한 기둥처럼 보였고, 파도는 그 기초를 쉼 없이 두드려댔다. 거칠게 뻗어난 암벽들 사이에는 해초가 썩어 문드러져 있었고, 바람은 바다와 육지 사이의 틈새에서 묘한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빈센은 뱃머리에 서서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섬을 감싸는 안개 속에서 언뜻 비현실적인 형상이 어른거리는 듯 보였다. 구름 사이에서 드리운 그림자였는지, 혹은 바위 절벽의 굴곡이 만든 환영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기묘한 형체, 인간의 이성이 설명하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3 이름없음 2025/09/19 16:48:48 ID : nTXBAqjg2IF 0
등대에 도착한 날 밤, 그는 대충 짐을 던져두곤 방 한쪽에서 눅눅한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바다 한가운데, 눈부신 별빛 아래서 거대한 무언가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해일보다 거대했고, 심연보다 더 깊은 눈동자로 빈센을 내려다봤다. 그는 그것의 이름을 알 수 없었고, 심지어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존재 앞에서 자신이 겨우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허억, 헉..." 꿈에서 깨어난 직후, 그는 거친 호흡을 내쉬며 자리를 박차곤 일어났다. 창 밖의 바다는 죽은 듯 고요했다. 바람조차 불지 않았고, 파도는 그저 검은 비단처럼 미세한 물결만 일으킬 뿐이었다. 그러나 그 적막의 한가운데에서, 빈센은 불가능한 광경을 마주쳤다. 등대였다. 그것은 분명 낮에 자신이 살펴본 그대로, 오래된 기계와 불안정한 등명기를 지닌 낡은 탑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꼭대기에서 불빛이 켜져 있었다. 빈센의 숨이 막혔다. 그는 자신이 불을 올린 적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불빛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켠 것이다. 파도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빛은, 인간의 손길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기묘한 의지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것은 바다를 비추기 위함이 아니라, 심연 저편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향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빈센은 숙소 안을 허둥지둥 뒤졌다. 그 와중에 낡은 책상 서랍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망치 하나를 발견했다. 오래되어 손잡이에는 갈라진 흔적이 있었으나, 손에 쥐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비록 바다에서 기어나오는 괴물과 맞서 싸우기엔 턱없이 보잘것없을지언정, 적어도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어둠 속에 나설 수는 없었다. 그는 망치를 단단히 움켜쥐고 숙소를 나섰다. 섬은 온통 적막만이 맴돌았다. 등대 불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 길고 긴 그림자를 만들었고, 그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는 듯한 환영이 눈에 밟혔다. 빈센은 숨을 고르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발걸음마다 자갈이 뭉툭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 그는 차라리 발을 들고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달리면 곧바로 공포에 휩쓸려 무너질 것 같았다. 등대에 다다랐을 때,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는 숨을 삼키며 문고리를 잡았다. 철제 손잡이의 냉기에 한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끼쳤다. 천천히 손잡이를 밀어 올리자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는 망치를 든 손을 앞으로 내밀며 조심스레 계단을 올랐다. 나선으로 휘어진 계단을 올랐고, 위로 갈수록 음산한 적막이 더 짙게 내려앉았다. 한 발, 또 한 발. 그의 숨결 소리가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마침내 꼭대기에 다다른 순간, 빈센은 망치를 꽉 쥔채 다락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등대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등명기는 홀로 깜빡이며 불을 내뿜고 있었고, 바깥 유리창은 검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의 인기척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빈센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으나, 곧 등대의 전등을 끌려 시도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전원 스위치를 내렸음에도 전구의 불빛은 여전했다. 결국 빈센은 공포와 불안 속에서 등대 꼭대기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새벽녘, 파도 위로 피처럼 붉은 빛이 비칠 때까지, 등대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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