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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1/06/20 07:16:56 ID : fWjh9eIGsmE
시험 한 과목 남은 새내기야 사실 그 과목 던져서 마음속으로는 자체종강한 상태라 입시썰 풀어도 괜찮냐고 질문했는데 누가 좋다길래 써볼게... 대학이랑 학과 특정될 만한 거 말고는 질문이나 반응도 좋아
이름없음 2021/06/20 07:22:02 ID : fWjh9eIGsmE
원래도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본격적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어. 어떤 캠프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멘토로 오신 대학생 분들이 대학생활 소개해주시고, 과잠 자랑하고 하는 게 너무 멋져 보였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분야를 연구해서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라면서 본인의 진로를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이 너무 빛나보이고 닮고 싶었어.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그런 모습이랑 좋은 대학은 별 상관이 없고, 그냥 마음가짐의 문제였던 것 같다.
이름없음 2021/06/20 07:27:44 ID : fWjh9eIGsmE
그 때쯤 진로 관련해서 고민도 많고 여러 모로 힘들었는데, 그냥 막연히 좋은 대학에 가면 저런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 하나로 고등학교 2학년을 버텼어. 내신 시험이나 모의고사를 치고 이것밖에 안되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가채점한 시험지 들고 울기도 했고, 피드백이고 뭐고 그냥 시험지 찢어버리기도 하고 멘탈도 체력도 점점 바닥을 향했던 것 같아. 주말에 공부한다고 학교 나가서 그냥 하루종일 울고 돌아오기도 하고, 기분 안 좋을 때 욕으로 빼곡히 채우는 용도로 공책 하나를 쓰기도 하고... 지금 돌아보면 거지같았다 정말
이름없음 2021/06/20 07:31:07 ID : fWjh9eIGsmE
고3 넘어가는 겨울방학 때는 정말 한국에서는 아니겠지만 우리 지역 안에서는 내가 제일 열심히 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었어. 코로나 전이었으니까 매일매일 학교 나가고, 하루에 한 권씩 문제집 풀어보기도 하고, 목표를 잡으면 꼭 이뤄내는 게 너무 재밌었어. 고2-고3 중에 거의 유일하게 공부가 재밌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름없음 2021/06/20 07:37:55 ID : fWjh9eIGsmE
그러다가 코로나가 시작되고, 개학 밀리고, 입시일정도 싹 다 엉망이 되면서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 남들은 별 일 아니라고 했지만, 일반인들도 '코로나 블루'라면서 힘들어하는데, 수험생들은 오죽했을까. 숨쉬기도 벅찬 게 고3이라는데, 사람도 못 만나고, 사회생활하는 가족들이 혹시 병에 걸려서 내가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입시에 실패할 것만 같은 불안감, 앞으로 계획을 세워도 언제 어그러질지 모른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왔었던 것 같아.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서 병원에는 못 가봤지만, 내 생각엔 우울증이었어. 아무튼, 2020년 봄은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어
이름없음 2021/06/20 07:42:24 ID : fWjh9eIGsmE
그러다가 작년 여름, 드디어 수시 원서를 고민하고 써내야 하는 시기가 왔어. 우리 학교는 정말 거지같았고, 나는 학교 도움 없이 입시를 혼자 준비해야 했어. 어떻게든 다른 학교 친구나 입시 커뮤니티(입시 커뮤니티 믿고 입시 준비하는 건 미친 짓이야), 다른 지역 친구한테 물어물어 수시카드를 완성했고, 아무 선생님한테도 컨펌받지 않고 그냥 가을에 원서를 접수했어. 자소서도 당연히 비슷한 방식으로 혼자 썼고, 지금도 내가 했던 모든 결정을 전혀 후회하지 않아.
이름없음 2021/06/20 07:44:46 ID : fWjh9eIGsmE
원서접수 이후에 학교는 개판이었어. 수업시간에도 다들 교실 뒤에 모여서 게임을 하고, 쉬는시간이나 식사시간에는 크게 노래를 틀고 뮤비를 보며 소리를 질러댔어. 나는 매시간 교과 선생들한테 빌어서 따로 나가서 공부를 했고, 배려는 커녕 존중도 받지 못하는구나 싶어서 그때도 정말 많이 울었었다
이름없음 2021/06/20 07:49:33 ID : fWjh9eIGsmE
학교가 아무리 거지같다고 해도, 수능 응원도 못 받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담임은 끝까지 아무 말도 없었어. 참 만감이 교차하더라... 아무튼 그렇게 수능날이 됐어. 멘탈 단련에 힘을 많이 써서 그런지 내가 친 어떤 시험보다도 떨리지 않았고, 그냥 담담하게 치고 나왔어. 담담하게 쳤다고는 하지만 시험 치고 나오면서 머릿속으로 욕을 엄청 했다... 진짜 망한 것 같았거든. 최저를 하향으로 쓴 학교까지밖에 못 맞출 것 같았고, 너무 우울해서 토할 것 같이 메슥거리는 느낌이 계속 들더라
이름없음 2021/06/20 07:53:05 ID : fWjh9eIGsmE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해봤는데 내 예상보다 더 맞은 건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등급컷이 많이 낮더라고. 한두 등급 여유를 두고 상향으로 쓴 학교 최저까지 다 맞췄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까 그제야 긴장이 풀려서 배달음식을 엄청 시켜먹었어ㅋㅋㅋㅋ 그 이후에는 뭐 면접 혼자 준비해서 영상도 혼자 찍고 알아서 제출했고, 5승 1패로 입시를 마무리했어. 1지망 붙었을 때 느꼈던 모든 감정이랑 그 날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름없음 2021/06/20 08:00:32 ID : fWjh9eIGsmE
그냥 꿈같이 기쁜 생활 하다가 학교 기숙사에 올라왔어. 그리고 1학기를 마치면서 드는 소감은, 나는 내 어린 시절 전부를 공부에 바친 게 하나도 억울하지 않아. 예전에는 놀러 다니는 친구들 보면 너무 부럽고,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면서 학창시절 예쁜 추억도 못 만드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하나도 안 들어. 내가 결국 이런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고생을 했었구나 싶다. 동기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배울 점이 너무 많은 사람들 수십 명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는 게 진짜 너무 행복하고, 훌륭하신 교수님들께서 너무 잘 대해주셔서 하루하루가 기대가 돼. 수험생활 내내 마르고 닳도록 들여다본 사진 속 캠퍼스를 산책하고, 달달 외우고 다녔던 슬로건이 내가 받는 책자에 적혀있어.
이름없음 2021/06/20 08:04:14 ID : fWjh9eIGsmE
그리고 이건 나한테만 해당되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대학생활 손해본 건 별로 없는 것 같아. 학번 단체 모임을 못 하는 건 아쉽긴 하지만, 나름대로 대면수업 몇 개 들으면서 학교 건물도 드나들고, 동기들이랑 밥도 먹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인생에서 5살 때 이후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재밌어. 과제하고 공부한다고 밤을 새기도 하지만, 사실 밤샘도 대학생의 특권이 아닐까 하는 망상도 하고... 수험생 시절에는 할 일이 남아서 다 못 끝냈다는 죄책감이나 스트레스가 있어도 다음 날 컨디션을 위해 그냥 억지로 잤었거든. 그래서 나는 이것도 나름 마음에 들어
이름없음 2021/06/20 08:05:35 ID : mMi8i783u1i
멘탈 단련은 어떻게 했어...? 나 진짜 시험장에선 유리멘탈이거든...ㅠㅠ
이름없음 2021/06/20 08:12:24 ID : fWjh9eIGsmE
마지막으로, 수험생활 동안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도, 살게 했던 것도 주변 사람들의 기대였던 것 같아. 잘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지치고 힘들긴 했지만, 나를 믿어주고 내가 잘 해낼 수 있다고 응원해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절대 여기까지 못 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 학창시절 노력의 결과물이긴 하니까 정말 뿌듯해.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은, 힘들어도 마음씨를 곱게 써야해.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재고 따지지 말고 도와도 줘보고, 알려달라고, 가르쳐달라고 하면 열과 성을 다해서 가르쳐줘보고. 그것도 하나의 공부고, 그렇게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가식으로든 진심으로든 나를 응원해줄 때, 그건 내가 남을 도울 때 느낀 노력의 몇 배를 더 노력할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이 될 거야.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들이 성공하는 건 봤어도, 그런 사람 주변에 모이는 사람은 똑같이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라 내 능력이나 사회적 가치가 떨어지면 다 떠나가게 되어 있어. 내 성적과 성과에 상관없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는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을 거야.
이름없음 2021/06/20 08:18:39 ID : fWjh9eIGsmE
제일 중요한 건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 첫 번째는 하한선을 설정하는 거야. 시험장에서 도움이 되는 마인드는 '잘하면 1등급도 나오겠는데?'가 아니라, '아무리 못해도 2등급은 나오겠다'는 생각이야. 그 하한선이 붕괴될 때 심리적 하한선도 같이 무너지고, 그 때부터 멘붕이 온다고 생각해. 태도를 잘 점검해서 절대 일정 수준 이하로 점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면 그 때부터는 떨리지 않아. 그리고 두 번째로, 그걸 확신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충분히 했어야 해. 내가 열심히 했다는 걸 믿고, 나는 모르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가져야해. 실전에서 모르는 문제를 만나도, '내가 모르면 남들도 다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긴장하지 않을 수 있어! 덧붙이자면, 긴장하지 않는 거랑 성적이 잘 나오는 건 좀 달라. 일자로 찍고 자는 9등급들도 긴장은 안 하니까... 다만, 내가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긴장을 풀 필요가 있는 거지!
이름없음 2021/06/20 09:10:19 ID : mMi8i783u1i
오...그렇구나 고마워 도움이 됐어!!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줘서 고마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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