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첫사랑은 고등학교 때였어 다른 반 남자애가 가끔 우리 반에 놀러 왔었거든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던 거 같아 약간 날티나는 그런 애 알지? 난 워낙 소심해서 그런 스타일은 좀 거리감 느껴지고 그랬었어

근데 이상하게 걔한테는 그게 평소보다 더 심한 거야 우리 반에 놀러 오는 날에는 걔랑 눈 마주칠까봐 공부하는 척하고 엎드려 있었을 정도였어

사실 이쯤되면 눈치채야 정상인데… 내가 이런 거에 엄청 둔했거든 전에 누굴 좋아해 본 적도 없고 연애 같은 거 관심 가진 적도 없어서 아… 내가 얘를 진짜 싫어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어

진짜 바본가

그렇게 입덕부정기가 시작됐어 걔가 우리 반 놀러오는 횟수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였고 걔가 우리 반에 올 때마다 다른 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라

신경쓰여서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한 번씩 몰래 보게 되기도 했고 진짜 아무 이유도 없이 싫어하는 내가 너무 이상했어 아니 걔 볼 때마다 심장이 터질 거 같은데 그걸 싫어하는 걸로 착각할 수가 있다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없어ㅋㅋㅋㅋ

말로는 싫어한다면서 걔 생각은 또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 학교 운동장에서 애들이랑 운동하는 거 보고 잘하네 이런 생각도 하고 공부할 때만 안경 쓰는건지 가끔 안경 쓴 상태로 반에 왔는데 의외로 잘 어울린다거나 웃을 때 입꼬리가 엄청 올라가는데 되게 시원시원하다거나 그런 생각들을 거의 이틀에 한번꼴로 했어

근데 이러고도 눈치못챈 게 레전드… 걔만 보면 맥박이 빨라지는 건 얼굴만 봐도 화나서, 걔가 우리 반 오고 갈 때마다 쳐다보는 건 언제쯤 가는지 확인하려고, 걔 생각 엄청 하는 건 거슬리는 애라서 이따구로 자기합리화를 시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존심만 드럽게 세서 그랬던 거 같아 평소에도 도덕관념 엄청 따져서 조금이라도 논란 있는 연예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랬거든 그니까 저렇게 날티나는 애를 좋아할리가 없다!!! 이렇게 믿고 싶었던 거지

그런 말도 안되는 부정만 하다가 자리가 바꼈는데 하필 걔 친구 뒷자리였어 그땐 진짜 너무 싫어서 아 존망… 이랬는데 그와중에 뭔가 진정이 안돼ㅋㅋㅋㅋㅋㅋ 사실 엄청 설레고 기대하고 있었던듯 그러던 와중에 드디어 걔가 반에 놀러왔어

설렌다

개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