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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17/10/22 12:59:48 ID : fRzXzhvxwrf
이거 구레딕에 있었지 않아?그리워져서 만들었어...;ㅁ; 내가 먼저 주제 쓰면 되는거겠지? '여름'(누군가...해줘...제발...)
이름없음 2019/04/20 23:15:28 ID : K3TTWi8rtdx
어려서부터 나는 상처가 많았다. 넘어져 생긴 상처,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생긴 상처, 날카로운 것에 찔린 상처 등등. 참 다양하게도 다쳐왔고 나는 다칠 때마다 치료 받기 위해 사람들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놀라며 상냥히 치료해주었다. 상처에는 딱지가 생겼고 새살이 돋아났다. 하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자 치료해주던 사람들도 점점 짜증난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 점점 상처가 생겨도 혼자 넘기기가 일쑤였다. 그에 치료받지 못한 상처들은 이상하게 낫거나 낫지 못 하고 터져버리는 등의 일이 생겼다. 그것이 아려왔지만 미움 받기 싫어 혼자서 참아가며 그것을 넘겼다. 사람들은 내가 귀찮게 하지 않자 다시 나에게 상냥해졌다. 몇몇은 나에게 괜찮냐고 걱정스레 물었지만 웃으며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안심했다는 얼굴로 다시 평소처럼 말을 걸었다. 가끔 상처가 터져 표정이 일그러질 때가 있었지만 눈 깜짝할새에 원래대로 돌아온 내 얼굴에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넘어갔다. 그에 나는 안심했다. 귀찮게 하지 않으면 돼. 상처정도야 익숙하니까. 어릴 때부터 있던 거잖아. 참아, 넘겨, 웃어. 아. 시야에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바닥을 구르는 반지가 보였다. 익숙한 모양의 반지. 그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엉망으로 깨져 원래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없는 반지를 훑는다. 그가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다. 그에 상대방이 움찔거리더니 자신이 그랬다는 것에 화라도 났는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뭐, 뭐야, 왜 표정이 그 따위야?! 이딴 싸구려 반지가 뭐라고 그딴 표정을 지어?! 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가 그 소리를 듣고선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 먼 곳을 보듯이 초점이 흐린 눈동자, 창백히 질린 피부와 그 위를 타고 흐르는 눈물, 그리고 공허한 표정. 그 표정이 마치 상대를 타박하는 듯 했다. 그에 상대는 얼굴을 매섭게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 뭐야. 갑자기 질질 짜고 지랄이야 지랄은. 쯧, 알았어, 알았다고. 새로 사주면 되잖아, 사주면! 진짜 저딴 싸구려 때문에 이게 뭔 꼴이야, 진짜. 짜증나게 시리.” 마치 자신이 한 수 봐준다는 어투로 내뱉어진 말에, 공허했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초점이 흐렸던 눈동자에는 이채가 서렸다. 아, 또다. 또 상처가 터져버렸어. 웃자. 웃어야지. 저 눈에 짜증이 서리기 전에.. ‘넌 숨기는 게 문제야. 상처 받았으면 울어야지 왜 웃어? 어쭈, 또 웃네? 내가 우숩냐, 엉?’ ‘이걸 줄게. 이걸 가지고 있으면 내가 널 찾을 수 있어. 금방 올게. 나 믿지?’ ‘... 거짓말쟁이.’ 아. 일그러졌던 그의 얼굴이 담담해졌다. 이채가 서렸던 눈은 평온해졌다. 그에 상대가 자신이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곧 그 표정에 당황이 서렸다. 그가 그를 돌아 나갔기 때문이다. “뭐, 뭐야. 어디가?! 야! 사람 말 무시하냐?! 어디가냐고! 당장 이리 안 와?!” 뒤돌아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 상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한 번 뒤돌아 보지 않고 그대로 걸어나갔다. 마치 아무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상처가 나면 바로 치료해야해. 아무리 사소한 상처여도 그 안으로 세균이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귓가에 들리는 듯한 소녀의 목소리에 걸음을 옮기 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에는 네 말이 맞아. 근데 이미 늦었는 걸. ...보고싶네. 금방 온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 네가 나한테 안 왔으니까, 내가 갈게. 화내면 안 돼, 네가 먼저 거짓말 했으니까. ..그렇다고 네 잘못이라는 건 아니지만. 응, 그냥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그런거니까. 지금 만나러 갈게. 쿵ㅡ. 다음 주제: 밤하늘
이름없음 2019/04/22 02:42:27 ID : bu1dzPfSILc
551년 백제. 나는 한강유역에서 살고 있었다. 나이는 12살. 집에는 돈이 필요했다. 한강 근처에서 멀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한강유역은 석방된 죄인이나 도망친 노비, 유배된 양반, 가난한 농민 등이 모여 하나의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수도 없이 일어나는 전쟁때문에 늘 가슴 졸이며 살아야했고, 개울에서 빨래를 하다 사체로 발견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12살은 살림살이를 하기에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해가 뜨면 일어나 눈을 감기 전까지 집안일, 집안일, 집안일. 그 소년을 만나게 된 건 그 해 여름에서 가을 그 사이 쯤일 것이다. 빨래를 하러 개울에 갔다. 그 개울에서는 한 소년이 돌을 던지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나였다. - 그렇게 돌을 던지다가는 개울에 남아나는 개구리가 없겠습니다. 분을 풀고 싶으시거든 빨래나 두들겨 보시는게 어떠십니까? 소년을 조용히 손에 있던 돌을 놓고 내가 내민 빨래 방망이를 집어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빨래를 내어주었다. 이후 우리는 매일 그 곳에서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져갔다. 그 소년은 양반집 첩의 자식이라고 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소년은 왕과 사노비 사이에서 나온 아이였다. 거의 버린 자식이나 다름 없는... 왕의 씨를 가진 노비의 자식. 소년은 곧 나의 세상이 되었다. 소년이 가져다주는 곡식덕에 가난했던 우리집은 조식과 석식 두끼를 든든히 해결 할 수 있었고 혼인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었다. 매번 나의 옆에서 집안일을 도와주던 그 소년이 나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행복했던 2년, 그리고 553년 신라 군이 쳐들어와 닥치는대로 집을 불태우고 사람을 죽였다. 백제가 한강유역을 포기한다고 선언을 하였다고 한다. 이미 불타버린 집과 바닥에 누워 의식이 없는 부모님. 소년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그 소년은 산 속으로 도망을 쳤다. 우리가 살았던 한강유역의 작은 마을은 군사 기지가 되어갔다. 산 속으로 도망을 오고 사흘 밤을 보낸 후 나와 소년은 먹을 것을 찾으러 계곡으로 갔다. 그 때였다. - 거기 서라!! 신라의 군사들이었다. 잡히면 안되는 것을 알기에 나와 소년은 도망쳤다.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 했지만 신라의 군사들은 진을 치기 시작했고, 얼마 안가 군사들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군사들은 계집인 나를 겁탈하려 하였고 그런 군사들을 막던 소년의 비단 옷에 피가 물들었다. 신라 군이 때리고 짖밟아도 악에 바쳐 소리를 지르는 나를 차마 겁탈 할 수가 없었던가보다. 그들은 돌아갔고 피로 물든 그 산 속에 소년과 나 둘 뿐이었다. 쓰러진 소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소년의 가쁜 숨소리가 나를 더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 안됩니다.. 아니되어요...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눈 감으면 아니되옵니다! 그 소년의 눈 끝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힘겹게 힘겹게 겨우 말을 내뱉는 소년의 손을 잡아주었다. - 오래.. 있다.. 오시오...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눈을 감았다. 나의 세상이었던 그가 사라졌다. 절망 속에 흐느끼며 10살이 되던 해에 선물 받은 작은 칼이 달린 노리개. 그 노리개를 꺼내들어 목에 가져다 대며 마지막 말을 그 산 속에서 혼자 남겼다. - 신체발부 수지부모... 이런 선택 하는 것, 용서해주십시오. 부디 평안하시어요. 작은 그 칼로 있는 힘껏 베었다. 베인 곳을 또 베고 또 베었다. 힘이 다 빠질 때 까지. 그리고는 털썩-. 소년의 옆에 몸을 뉘었다. 희미해져가는 눈 앞에 별이 빛났다. -‘ 벌써 밤입니다. 짧은 삶이었지만 함께하여 행복했습니다.’ 옆에 있던 소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내 생에 마지막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다음주제: 미소
이름없음 2019/04/23 23:46:44 ID : 3vdBfeY63U6
지금 내 앞에 있는 수많은 술병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 저거 다 내가 마신건가..?'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 차가운 밤공기가 몸을 스쳐지나간다. 그제서야 주변을 살펴보면 포장마차의 간이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있던 저를 발견하고는 허탈한 웃음을 흘려보낸다. ''아아, 이거 혼나겠는걸..?'' 주머니에 고이 들어가 있던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면 '부재중 59통, 문자 167통' 이란 하얀 글씨에 다시 웃음이 나오고 만다. 그레도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무거웠던 몸이 조금은 가벼워 지는 느낌이였다. ''흐이차..집에 들어가 보실까나ㅡ?'' 집에가는 길 휴대전화가 한번 더 울렸다. ''여브세오오?'' 술기운에 혀가 조금 꼬인다.. -..! 야..! 너 지금 어디야? ''나아~? 지금..집에 가그이써..'' -... ''여브세여?'' -걱정했잖냐.. 역시 나를 걱정했나보다. 내가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에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 피어오른다. -드르륵 ''나왔어~'' ''ㅇ..어서와'' 나를 기다렸던 것인지 조금 피곤해 보이는 동생이 현관에서 마중을 나와 주었다. 내가 웃어보이자 동생은 뭐가 웃기냐면서 툭- 치더니 나를 따라 웃는다. 역시- 행복하다
이름없음 2019/04/23 23:52:14 ID : 3vdBfeY63U6
다음주제 가방
이름없음 2019/04/25 04:15:42 ID : PbeLfgo7zhA
며칠 전 가방이 고장 났다. 지퍼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뻑뻑하게 올라가는 지퍼에 그저 올리는 방식이 잘못되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에 지퍼는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게 벌써 며칠 전이지만 난 아직 가방을 바꾸지 못했다. 다른 가방을 들고 나가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결국에는 그 고장 난 가방을 다시 들고 나섰다. 그 가방이 아닌 다른 가방을 메고 나가면 어딘가 내가 향하는 곳을 잊게 되는 듯 했다. 제 기능을 못하는 건 버려져야 한다. 라고 늘상 말했지만 이미 은연 중에 알고 있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님을. 이 가방은 이미 지표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 가방이 없는 날엔 길을 잃는 것만 같았다. 아무 것도 없이 세상에 버려진 고아가 된 것 마냥 처량해지는 듯 했다.
이름없음 2019/04/25 17:50:20 ID : jbjy2E5Wkla
?다음주제는 어디있니
이름없음 2019/04/27 06:40:20 ID : 3vdBfeY63U6
안보는거 같은데 다음에 쓸 사람이 쓰고싶은데로 쓰게하자
이름없음 2019/04/28 21:23:59 ID : grxSLhs3xyI
그냥 내가 하고싶은 주제로 쓸게! 스크류바 오늘같은 날이면 꼭 아파트 옆 꼬질꼬질 작디작은 슈퍼에서 분홍색 어여쁜 포장지 속 스크류바를 집어들곤 했다. 쪼르르 집으로 돌아와 얇은 비닐포장지를 뜯으며 슬쩍 뒤돌아본 창밖 속 하늘은 늘 우중충한 먹구름들이 한가득. 오늘같은 날 내가 꼭 스크류바를 사먹어야 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왠지 오늘같은 날들엔 꼭 스크류바가 먹고싶어질 뿐. 언제부터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 날마다 스크류바가 그렇게나 떠올랐던 걸까, 굳이 기억쪼가리들을 헤집어보면 아마 그 애가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들을 봤던 날이었지? 그 애랑 같이 있으면 나는 하늘을 보지 않게 된다. 해서 그 애와의 시간속에서 나는 그날의 하늘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맑은 날들 뿐이었을걸. 그 애가 제일 좋아하던게 스크류바였다. 사실 나는 그애가 스크류바를 좋아하기 전까진 그다지 스크류바를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사실은 애초에 아이스크림 자체를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였고. 근데 언제부턴가 슈퍼만 들렸다하면 한 손에는 스크류바를 집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건 언제부터였는지 곰곰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더웠던 여름날, 내 옆의 그 애가 건넨 스크류바 하나에 물들여져있었다. 공원 옆 큰 바위에 나란히 앉아 손에 든 아이스크림도 까먹고선 신나게 웃어버리다가 그만 녹아버린 그 해의 여름은 온통 시큼한 딸기향으로 뒤덥힌, 끈적끈적 분홍색 시럽이 녹아내리던 스크류바였다. 정말이지 그 애가 내 옆에 있었던 기억들은 모두 웃고있어서, 나는 그 몇년 남짓 기억을 놓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스크류바를 먹으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이제는 훌쩍 옛날이 되어버린 그때처럼, 바보같게도. 스크류바를 찾는다 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순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있다. 이제는 함께했던 시절보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훨씬 긴 그 애가 어젯밤의 꿈이었다는 듯 다시 내 앞에 나타나 함께 웃을 리 없다는 것도. 나는 뭘 하자고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던 스크류바를 손에 쥐고있는지.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 내 세상은 온통 스크류바였다. 내 주위를 둘러싼건 수천개의 스크류바. 코를 찌르는 지독한 딸기 향은 사실은 그날 여름의 향, 너의 향기. 그리고 스크류바는 금세 눈녹듯 녹아버리고 만다. 네가 있었던 그 날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듯이. 진득한 분홍 시럽만이 질척거리는 세상 속에서 나는 헤엄치지 못한다. 온 세상이 분홍빛 딸기향이 가득한 스크류바. 어쩌면 나는 영원히 딸기 시럽 속에 잠겨버리는 건 아닐지. 순간 손끝에 차가운 감각이 스며든다. 아, 스크류바가 녹고 말았구나. 나는 멍하니 흘러내리는 분홍색 싱그러운 시럽을 바라본다. 아니 내가 뭘쓴거지ㅋㅋㅋㄱㄲㅋ 다음 주제 : 낙엽
이름없음 2019/05/03 14:11:37 ID : hArwGoGnxDB
가을이구나 라고 깨달은 건 하교길에 흩날린 붉게, 또 노랗게 물든 낙엽들을 보았을때였다. 이제는 떠나버린 그가 옆에서 속삭인다. ''이야~ 단풍 이쁘다. 그치? 다 떨어지기 전에 소풍이라도 갈까?'' 밝게 미소지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이 공중으로 흩어지고 그 자리에 붉은 단풍 하나가 바람에 날려 떨어져내린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의 모습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때 더 잘해줄걸 이라고 생각해봤자 그는 돌아오지 안는다.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교과서에 소중히 끼워넣고 조용히 그와의 추억을 되새겨 본다. 어느 봄날 그와 함께 벚꽃 축제에 갔던 일, '그는 내 앞으로 뛰쳐나가' 여름에 같이 바다에 가 수영을 했던일, '그대로 역에 들어오던 기차에 부딪쳐' 겨울에 같이 눈사람을 만들었던 일,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정도로 뭉게지고 피로 물들어' 그리고 가을, 내가 그를 떠나보낸 일. '내 앞에서 떠나갔다.' 아 정말 빨갛네. 가을에 물든 낙엽보다 빨게. 예쁘구나... 어느새 내 발걸음은 한 건물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 놓여있었다. 이 앞으로 가면 나도 낙엽처럼, 너처럼 붉게 물들어 너에게 갈 수 있을까? 낙엽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붉게 물들어 나무를 장식하던 낙엽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짓밟히고 뭉게져 사라져간다. 다음주제: 버스
이름없음 2019/05/05 21:35:16 ID : cq3SK59fRA4
톡, 톡 지끈거리는 머리에 직접 울리온다. 이 시간만 되면 머리가 아파온다. 머리 위에서 냉기를 뿜어내는 에어컨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아침에 약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억지로 움직이고 있어서 뇌가 오작동이라도 일으키는걸까. 원인 모르는 미약한 통증이 계속되는 머리를 살짝 들었다 다시 차가운 ㅡ방금전까지 머리를 대고 있어 약간 열이 오른 부분의 옆의ㅡ유리창에 머리를 갖다댄다. 톡, 톡 톡 마치 자신이 머리를 대길 기다렸다는 듯이 울려오는 약한 진동에 다시 머리를 땐다. 이번엔 눈을 반쯤 뜨고, 하지만 옆으로 돌아보진 않는다. 정면으로 보이는 좌석 커버의 스피치 광고는 눈에 띄는 주황색 배너를 번쩍이고 한편엔 멈춰있는 사진임에도 입을 크게 벌리고 금방이라도 시끄럽게 소리를 지를 듯한 남성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버스 좌석의 광고가 자주 바뀌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그런 광고를 쳐다볼 여유가 없어져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하는 참으로 실속없는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감고 머리를 창문에 탁, 톡 톡 톡 톡 가져가는 순간 다시 울렸다. 이번엔 정신을 차려 자세를 똑바로 하고 눈을 크게 떴다. 사람은 세번 참으면 군자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두번 밖에 참지 못했으니 성인 군자는 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리라. 하지만 이번엔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유리 맞은편을 치는 듯한 소리였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그냥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으리라. 주변엔 사람들이 빼곡히 늘어서서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을 하고 있다. 하품을 쩍쩍 하지만 잠에 들진 못하고 잠을 깨기 위해, 혹은 다른 무언가를 위해 각자의 손 안의 여러가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들의 신경은 오직 자신이 서있는 자리와 그 주변에 앉을 자리가 생기는지 아닌지에만 반응한다. 하지만 8차선 도로에서 쌩쌩 달리지 못하고 머리를 상대의 뒷꽁무니에 부딪히며 나아가는 이 안에서 그들의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긴 힘드리라. 반쯤 감겼다 다시 뜨인 눈을 돌려 창문을 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창문을, 내 머리를 두드린 것을 보기 위해. 하지만 그 자리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체되어있다해도 버스라 그 누군가를 지나쳐버린 것일까. 창문엔 그저 피로에 찌든 유리같은 눈을 한 자기 자신이 죽상을 쓴 상태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정말 추하면서도 우스워 피식 웃고 말았다. ㅡ다음 정류장은ㅡ 머리를 가볍게 한번 털어주고는 머리 위에 놓인 버튼을 누른다. 빽빽히 들어찬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를 연신 말하며 그들 사이를 비집고 가까스로 출구를 빠져나왔다 두통은 이내 사라졌다. 다음 주제: 클렌징폼
이름없음 2019/05/17 01:06:55 ID : vDxRCjfTU7t
정말로 잘못했어요. 근데... 나는 그냥... 언니가... 낮에는 이뻣는데... 저녁에 오며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못생겨져서 나오고... 자고 일어나서 또 이뻐지고 하니까... 화장실에, 언니가 쓰는거... 물어보니까... 클렌징폼 이라고 해서... 그거... 없으면... 언니 안 못생겨지니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거, 버려놓고... 엄마가, 나 예뻐지라고 쓰라고 준거... 샴프 놔뒀는데... 언니가 오더니... 나한테... 그거, 버렸냐고... 왜 버렸냐고... 막 화내서... 나도... 샴프 줬는데... 막 소리 질르니까... 나를... 먼저 때리고... 나도 때리고... 해서... ...언니꺼 물건... 함부로 버리는거... 잘못 했어요... 앞으로 언니꺼 물건, 함부로 안 건드릴게요. ...언니... 미안해요... 다음 주제: 면허(증)
노네임 2019/05/18 22:31:16 ID : PhgkpPfUY9u
따르르릉ㅡ "음..?" 무슨소린가 했네. 알람이였어 근데 내가 알람을 왜 맞춰놨지? 아....설마...... "오늘 면허 따는 날이였어!!!!!" 지금 시각은 8시. 아침을 거르면 늦지 않는다. '내가 과연 안늦을수 있을까..?' 내 예상과는 달리 30분만에 준비가 끝났다. 어젯밤에 머리감길 잘한듯하다.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 버스가 언제 오는지 봤다. '아 C..왜 하필 10분 후야' 오늘따라 차 타는 사람들이 더더욱 더 부러웠다. 때마침 택시가 보였다. 바로 택시를 잡아 장소를 말했다. "00운전교육장으로 가주세요." 택시운전사는 별 말 없이 목적지를 향해 갔다. 15분후. 도착했다, 드디어.. 드디어!!! 순서 표를 뽑았다. 내 번호는 266번. 왜지. 아무튼. 순서를 기다렸다. '배고프다..' 순서가 생각보다 오래걸려 삼각 김밥 하나를 먹었다. 평소에 챙기는 자이리톨로 입을 대충 헹궜다. "266번. 266번 대기자님 들어오세요." 헉. 이렇게 빨리? 난 씹고있던 껌을 뱉고 달려갔다. 비주얼은 버린지 오래. "당신이 226번입니까?" "ㄴ..네..." 아니 왜 평소처럼 말이 안나오냐고!!!! "운전석에 앉으시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려주시면 됩니다." "아 네. 엑셀은 여기 브레이크는 여기 핸들은 여기 사이드 미러는..." 한 10분은 걸렸다. 쉣 "다음엔 자율 운전입니다." 난 배웠던 대로 운전을 하였다. 아 기운빠져 이젠 주찬가? "이젠 주차입니다. 얼마 안남으셨네요" "아..그러게요" 주차도 펄펙트. 생각보다 잘했다. "결과는 1시간 뒤에 나올 예정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66번 000님." "네 감사합니다~' 이제 1시간만 기다리면 되는구나..과연 합격할수 있을까 어디서 감점될지 몰라..되게 떨린다 빨리 결과가 나왔으면.. 다음ㅁ주체:초능력
이름없음 2019/05/19 01:39:17 ID : fapO5Wrzala
어쩌면 아무도 이해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남의 머릿속 생각을 너무도 빨리 읽어낼 수 있다는 것도 때로는 피곤하니까. 매체나 소설 등에서 독심술을 무슨 대단한 능력처럼 여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비약적으로 빠른 내 두뇌 회전 속도에 우쭐했고, 종내에는 절망했다. 알고 싶지 않았어. 정말로. 하지만 날카롭게 다가오는 진실은 나를 상처 입히고, 타인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이제 더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따위 읽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참 멍청하다. 자신이 완벽한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라이투미'에서 그랬듯이 분명히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고,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있다. 타인이 속아 넘어갔다고 믿곤 자축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만을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작 그런 것만으로는 돌아가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글러먹었다는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침대에 누워서, 이제는 별로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내 꼴이 참 한심하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쉴 새 없이 머릿속에 들이치는 정보, 그리고 익숙한 두통. 나는 그것을 활용하여 괴로워지기보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을 택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아. 오늘도 방 안에 갇힌 나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아, 어쩌면 가장 멍청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일 지도 모른다. 다음주제 : 거짓말
이름없음 2019/05/20 23:08:30 ID : 8mGts3Ci2k3
소년과 소녀가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복에 두툼하게 쟁여넣은 가방을 메고 길을 걷고 있다. "야 사회 숙제했어?" 소년보다 두걸음 더 앞선 소녀가 소년을 보며 걸으며 물었다. "응" 소년의 시선은 소녀 한번, 소녀의 배경의 한번 소녀는 히죽이고는 걷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야 이제 벚꽃에 남녀공학이면 나도 남자친구정도는 생기지 않을까?" 소녀의 말에 소년은 퍽이나- 웃고 말아버린다. "야 비웃었냐?!" 소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소년에게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앞이나 보고 걸어" 라며 소녀의 팔을 잡고 옆으로 당겼다. "아니 솔직히 나정도는 괜찮다고 보는데?!" 몸을 돌려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웃기고 있다" 아이씨- 소년의 뒤를 따랐다. "숙제 걷어라" 얆은 뿔테 안경을 올리며 남성이 말했다. "헐 나 어떡해 안 빌려왔다" 옆자리 친구에게 속삭이며 울상을 지었다. "숙제 어딨냐" 교실을 한바퀴 돌던 남성이 소녀의 자리 앞에 서 날카로운 눈초리로 물었다. "..제가 친구한테 교과서를 빌려줘서.. 딸꾹!"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을 하던 소녀가 큰소리를 내며 딸꾹질을 했다. "끝나고 교무실로 와라 피노키오야" 아 진짜.. 소녀는 스스로를 멍청하다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오늘도 교무실에 출석했냐" 축 처진 어깨의 소녀의 옆으로 소년이 걸으며 딴지를 걸었다. "이번에도 깜지?~" 소녀의 손에 있던 종이를 빼았았다. "내놔라 장난칠 기분아니다" "난 장난칠 기분인데" "아 내놓으라고!" 종이를 가지고 달리는 소년의 뒤를 소녀가 뒤쫓으며 소녀의 반까지 다다르었다. "ㅋㅋㅋ잡아봐" "아 달라고!" 종이를 들고 팔을 올려 소녀가 닿지 않도록 뛰었다. "야 매점 안가?" 창문 너머로 소년을 부르는 소리에 소녀가 소년의 옆구리를 치자 소리를 내며 팔을 떨어트렸다. "꼭 매를 벌어요" 소녀가 소년의 손아귀에서 종이를 빼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쌤이 깜지쓰래?" 소녀의 친구들이 물으며 다가왔다. "야 근데 너네 사겨?" 한 친구가 고개를 숙이며 소녀에게 물었다. "아니?" "그럼 너 쟤 좋아해?" "아니~.." 대롭지 않게 여기며 필통을 꺼내는데 순간 소녀의 목구멍에서 큰 공기방울이 올라오더니 딸꾹- 소녀의 딸꾹질이 터졌다. 다음 주제 : 텀블러
이름없음 2019/05/22 00:53:35 ID : srvveKY2k1c
사고 전, 소년은 웃는 얼굴로 즐겁게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했다. 나는 이 그림을 반드시 완성할 것이라고, 완성한 그림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소년이 항상 들고 다니던 무색의 낡은 텀블러 안에는 수십 장의 그림과 몇 장의 손으로 쓴 글귀가 들어 있었다. 화통을 살 돈으로 더 많은 물감과 붓, 종이를 살 것이라며 집에 찌그러져 있던 텀블러를 가져온 네가 그렇게 실없이 보일 수 없었다. 단순한 사고사라 했다. 내가 위험하다며 극구 뜯어말린 끝에 올라가지 않기로 약속한 건물 옥상에서의 추락사였다. 내가 없는 며칠 간을 틈타 몰래 올라간 거겠지. 그 옥상의 야경은 끝내주니까. 너는 타인과 다른 세계를 본다. 두 개의 눈으로 야경을 듣고, 두 개의 귀로 소리를 본다. 해서, 너는 항상 신비롭고 다채로운 그림을 그렸다. 그 날도 너는 텀블러를 들고 있었다. " 그 텀블러, 너무 밋밋하지 않아? " 도시의 매캐한 야경을 보며 내가 생각없이 툭 던진 말에, 너는 깜짝 놀라 한동안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네가 죽는 날까지, 이 텀블러를 네가 버린 줄로만 알고 있었다. 너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들고 다니는 작은 노트에 몇 문장을 끼적이며 나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도시의 야경을 설명하는 것이 다였다. 네가 죽고 난 뒤에 무명으로 배달돤 택배 안에 들어있는 무색의 낡은 텀블러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도시의 매캐한 야경이 새겨져 있었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텀블러가 새하얀 국화 사이를 이질적으로 메운다. 잘 가, 나의 도시. 다음 주제: 타로카드
이름없음 2019/06/12 01:21:04 ID : g7y1ClCphtg
나의 아름다운 아가씨. 이 손을 놓으면 당신이 사라져 버릴 까 무서워. 당신을 잡은 손에 힘을 줘요. 그런 나를 바라보는 당신이, 당신의 그 눈에 나만을 담는 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고 나는 문득 생각했어요. 당신도,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듯이 나의 손을 꽉 잡아요. 당신이 울고 있어요. 당신의 뺨을 따라 흐르는 그 눈물이 이제는 내 손마저 적시고 내 마음마저 적시고 있어요. 그런 그대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저는 다시 사랑에 빠집니다. 당신이 나에게 처음 안기던 날, 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나요? 신분 차이를 운운하며 당신을 향한 제 마음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랑마저 외면하던 제가 너무 답답해 점성술사를 찾아갔다고, 그 자가 저희 사이를 The Lovers라는 카드로 예측했다고요. 점성술사가 말했다고 했지요, 봄을 간직한 나무의 따스함과 여름 매미 소리를 담은 두근거림, 가을 언덕 위에서 부는 바람, 그라고 겨울에 내리는 눈의 순수함을 담은 카드니, 둘은 천생연분이라고. 제 품에 안겨 아가씨는 신기하다고 했어요. 타로카드로 그런 것 도 읽을 수 있냐고 환하게 웃었지요. 그런 당신이 너무 당신다워, 저는 당신에게 입을 맞췄어요. 우리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서로의 신분을 잊기 위해서, 더욱 서로를 원하고 원하며 입을 맞췄어요. 그 때 아가씨는...저는...우리는 울고있었어요. ...집시인 제 친구가 얘기하더군요, The Lovers 라는 카드는 시련의 극복을 의미하기도 한다고요. 정말 우리에게 어울리는 카드지요? 우리는 시련을 극복했잖아요. 당신이 내 손을 조용히 놓아요. 문득 사라지는 당신의 온기에 마음 속으로 키스를 보내요. "우리의 사랑은..영원해요." 새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이 곳에 울리는 단 하나의 속삭임에 나는 웃어요. 그래요, 우리는 지금 시련을 극복하고 함께 있어요. 가문을 위해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명하던 '당신의 아버지' 그런 명에 결국에는 순응한 '당신'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밖에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지켜나갈 수 밖에 없는 '나'. "우리의 사랑은...영원해요." 나의 사랑스러운 아가씨, 당신이 듣질 못 할 걸 알지만 다시 한 번 속삭여요. 당신의 목을 조르던 손을 놓아요. 당신에게 입을 맞춰요. 우리의 첫 날 밤처럼 우리의 입맞춤은 눈물을 머금고 있어요, 하지만... 그 때는 따스하던 아가씨, 당신의 입술이 왜 이리 차가운지, 그래도..걱정마요. 우리는 시련을 극복한 진짜 연인이니깐요. 예전 어느 나라의 어느 시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속삭이며 방랑하는 음유 시인들이 있었다. 그 중 유독 한 시는 아름답고 간절했지만, 음울했다고 전해진다. 그 시를 낭송하는 자 중 가장 인기 있던 자는 하인의 마지막을 연기하기 위해 단검을 들고 다니던 자로, 사랑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막을 내린 그들의 사랑을 유독 슬프고 간절하게 읊었다고 한다. 시의 낭송이 끝나면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에도 웃는 법이 없이, 늘, 타로카드 한 장 뒤로 그의 눈물을 감추었다고 전해진다. 앗..! 다음 주제는 봄의 노래! 잘 부탁해!!!
이름없음 2019/06/12 01:22:38 ID : g7y1ClCphtg
두근두근
이름없음 2019/06/12 01:49:02 ID : oGk9xTVdO3u
아직도 잊지 못한다. 피를 흘리는 목덜미를 부여잡고 온 제 애인의 모습을, 제 피를 갈망하는 애인의 모습을. 그 일이 일어난 건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나와 애인은 3주년을 기념하여 파티를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유난히도 그날밤은 애인이 늦었다. 시계는 이미 12시를 넘겼고 졸음을 이기지 못한 나는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 쯤 지났을까,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잠에서 깼다. 애인이 온 것이었다. 나는 잠에서 덜 깨 비몽사몽한 채로 애인을 보러 나갔는데 숨을 헐떡거리며 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목에서는 답지 않게 달콤한 향이 나는 피가 흘렀고 나는 깜짝 놀라 왜 이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애인은 이렇게 답하였다. 나... 흡혈귀한테 물렸어.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존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지만 날마다 애인은 변해갔다. 까맣던 머리칼은 점점 하얗게 변해갔고 송곳니는 점점 뾰족해졌다. 피를 원했고 아름다웠다. 나는 널 사랑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이제 앞으로 널 사랑하고 이해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어. 아, 이건 영원히 나만 아는 비밀. 다음 주제는 악기
이름없음 2019/06/12 01:50:37 ID : oGk9xTVdO3u
분명... 주제가... 뱀파이어였던 것 같은데 ㅜㅜ 바꿨네??
이름없음 2019/06/12 02:04:53 ID : g7y1ClCphtg
앗! 중간에 수정했어ㅠㅜ
이름없음 2019/06/16 03:38:37 ID : TO9BxTQoGk6
있지, 내가 일곱살 때인가? 그때쯤에는 거의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지냈단말야. 그런데 진짜 시골이라서 막 전기도 안 통하고, 내 또래 애들도 없고. 거의 맨날 동네 개들이나 쫓아다니면서 놀았는데. 너어무 심심한 거야. 아, 정말로 이러다간 정신 나가겠다 싶어서. 그냥 막 돌아다니면서 뭐 할 거 없나 찾았는데. 피아노가 있더라? 그래서 좀 딩동거리다가 어디서 주워들은 노래나 따라 쳐봤는데. 그걸 또 지나가던 누가 봤는지, 우리 할머니 귀에 들어간 거야. 그게 또 우리 엄마 귀로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더라. 그런데 어릴 때는 그냥저냥 말만 잘 들어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잖아? 그거에 기분 좋아져서 또 열심히 한다고 빨빨대고, 어쩌다가 상도 몇 번 타고. 난 나름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 그거 알아? 피아노는 페달이 세 개 달려있는데, 그중에 연음이란 게 있단 말야. 그걸 발로 꾹 누르고 치면 음이 계속 겹쳐지면서 나름 웅장하게 들리거든. 그냥 좀 길게 들리니까 있어 보이는 거지. 나도 그런 거였나 봐. 그냥 좀 오래 해서 그럴 듯해 보였나 봐. 발을 떼면 금방 사라져 버릴 텐데.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조금 말이 길었나? 다음 주제는... 그래, 별이 좋겠다.
이름없음 2019/06/17 01:23:59 ID : RvgZhhs9wLf
별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도심 속에서 벗어나 잠시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홀로 밤하늘을 보며 너를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들이 떨어져 있게 되어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서로를 생각한다면 분명,분명 닿을 수 있을 거야] 라며 말하던 너의 상냥한 목소리. 나는 홀로 밤하늘을 보며 너를 생각한다. 함께 별을 세며 웃었던 날들. 가끔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너는 성호를 긋곤 했었지. [별똥별이 떨어지는 건,별처럼 빛났던 누군가가 영원히 잠든거래.] 나도 옆에서 같이 성호를 그으며 너의 손을 잡았었지. 나는 홀로 밤하늘을 보며 너를 생각한다. 천문대로,옥상으로,작은 어느 시골 마을로,산으로,바다로. 너와 함께 했던 나날들. 그런 날 밤에는,늘 별이 함께 있곤 했었는데. 이제 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툭. 조용히 눈물이 떨어진다. 별똥별도 밤하늘에서 반짝,떨어진다. 나는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빛났던 네가 쉬러 돌아가는구나..... 정말 고맙고,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안녕.....] 나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다음 주제:자해
이름없음 2019/06/18 22:12:05 ID : cIGmoLdWlBa
-너 팔에 그거 뭐야? -상처 -..누가 그런거야? -내가했는데 -왜 한건지 물어봐도돼? -그냥 -그냥? -빨간색이 좋아서 -피 말고도 빨간건 많잖아 사과도 빨갛고..무당벌레도 빨갛고.. -사과나 무당벌레 같은건 안예뻐서 싫어 -그거 안하면 안돼? -응,힘들어서 안돼 -그래도..아프잖아 소년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밴드를 꺼내들어 상처가 가득인 소녀의 팔에 붙여주었다. 꾹 눌러붙이자 채 아물지 못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 밴드를 적셨다. -너도 아픈거 싫지? -딱히 -앞으로 빨간색이 보고싶으면 상처내지 말고 나를 불러.사과던 무당벌레던 토마토던,정 없으면 성냥이라도 들고올테니까 -지금 너도 되게 빨간거 알아? -..그럼 나도 좋아? -아니 -...너 미워 노을지는 강가를 등지고 소년이 붉어진 귓바퀴를 만지작거렸다. 다음주제는 교향곡
이름없음 2019/06/18 23:37:06 ID : 0q6jg3Qk5U3
텅 빈 교실에 혼자 누워있는 소녀, 지금은 점심시간.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아이들은 순식간에 나가버리고 오직 고른 숨소릴 내뱉던 그 소녀만이 남아있었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저번 교시에 수업했던 내용이 빼곡히 칠판에 적힌 것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보이는 건 이미 급식을 먹으러 가는 시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시계였다. "아, 망했네. 오늘 점심은 거를까...." 점심을 거를까 생각중이던 그녀는 갑작스레 들린 피아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반은 음악실 아래인데, 빈 복도에서 울린 피아노소리가 어느새 그녀의 귀에까지 들렸다. "무슨... 누구지? .......피아노. 정말 잘친다." 왜인지 끌리는 듯한 느낌에 일어서 윗층에 발을디딘 그녀는 열린 음악실 사이로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 연주가 가장 절정에 올랐을때, "....와아." 그 짧은 감탄사 한마디에 피아노 소리는 뚝 끊겼다. "어, 언제부터..?" 얼굴이 화악 붉어지는 누군가는 바로 옆반의 소년이었다. 그녀는 살풋 웃므며 아까부터-라고 대답하였다. "네 연주를 듣고싶어." "....." 붉은 귓볼을 만지작거리다 곧이어 팔을 뻗어 피아노에 소년의 손이 향한다, 그리곤 다시 아름다운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교향곡 5번...' 눈을 감고 감상하다보니 어느새 끝난 연주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쳤다. "난 피아노 연주가 좋더라~" "...그럼 내일 점심시간에....오면 들려줄게." "정말? 고마워, ...벌써 종이 칠 시간이네. 내일 점심시간에 만나자!" "....."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 소년과 웃으며 달려나가는 소녀의 볼에는 붉은꽃이 잔뜩 피어난 그날은 어느 한 여름날이었다. 다음 주제는 <미래>
이름없음 2019/06/19 00:36:53 ID : Basqkk79eNu
미래는, 없다. 왜일까,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오늘은 내일도 아니다. 내일은 오늘의 다른 말일 뿐. 내일은 언제 올까? 우리의 미래는 언제 올까? 미래는 언제 와? 현재는 미래야? 아니, 현재는 현재일 뿐이야. 그럼 내일은 내일이야? 그렇지, 오늘은? 내일이야? 아니, 오늘은 오늘이야. 반복되는 현재의 삶 미래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 주제는<TS(성전환)> 이왕 하는거 여자가 남자되는거 해줘
이름없음 2019/06/23 01:33:54 ID : 3vdBfeY63U6
깜빡- ''아, 졸아버렸네...'' 시계는 오후 11시 56분을 가리킨다. 아, 오늘도 얼마 남지 않았네. 혼자사는 작은 자취방에는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 차갑게 빛난다. '그나저나, 목소리는 쉰... 건가? 낮고 갈라지네...' 아- 아- 목소리를 몇번 울려본다. 졸아서 그런지 몽롱한 머리 속 낮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푸훗, 남자목소리같아~ 이제 자고, 내일 회사나가야지...'' ----삐비비빗, 삐비비빗 '후으아암... 아, 머리가...?' 어째서인지 잔뜩 짧아진 머리, 낮은 목소리, 뭔가 찬... 느낌...? 아, 설마 달려간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은 건장한 성인 남성...? ''우아아!? 이게 뭐야? 핸드폰 스크린 안에 있어야 할 사건이 왜!? 뭐야이게!'' 하.. 회사 나가야 되는데? 치마입고 가라구요? 제정신입니까? 혼란한 머리속을 비집고 나온 건 회사. 곧 출근 시간이다. ''어머나.. 이제 과장님께 뭐라 말해야되? 자고 일어났더니 남자가 됬다? 믿겠냐! 사실, 남자였다는 반전입니다? 돌았냐고...'' 왜 이딴 일이 하필 나한테 일어난걸까? 너 위에 ts써달라 했던놈이지!? 일단 너 확정이니까ㅠ 그런건 네가 쓰라구... 다음 주제 라디오
이름없음 2019/06/23 04:49:39 ID : uq3U6paq0qY
오랜만에 라디오를 틀었다. 기분좋은 딸깍- 소리와 함께 전파의 잡음이 들려왔다. 굳이 라디오 방송을 틀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져오는 백색소음. 치지직 거리는 그 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 전파의 소리속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담겨있다. 누군가의 고민, 하소연, 풋풋한 사랑이야기, 끈끈한 우정의 이야기가 섞여 조화를 이룬다. 무질서처럼 느껴지는 그 소리속에는 자연의 속삭임이 있고,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음주제: <여름밤>
이름없음 2019/06/23 05:21:42 ID : 1a9xRyLhAjd
아이들이 웃는 소리, 작지만 소란한 대화 소리, 자연스러운 일상의 소음들이 마구잡이로 얽혀 귀를 비집고 들어온다. 신경질적으로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잠깐 잠들었었나, 중얼거리곤 테이블에 놓여있던 파우치를 집어들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하루, 이 곳은 낙원이다. 낙원,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2074년, 점차 시스템이 무너지고 지독한 열기가 지구를 집어 삼켰다. 이에 세계 각 국가들은 생존자들을 모아 연합지구를 결성하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Protection in Atrium of Radical Air-heated situation by Instant System for Everyone, 즉 PRADISE. 생존자들은 낙원에 모여 열기 완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했고, 그렇게 진행된 것이 ' 프로젝트 여름밤 ' 이었다. 낮의 열기를 밤에 식히는 여름처럼,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은 뒤 뚜껑을 덮어 지열을 식히고, 충분히 식었을 때 인공 태양을 띄워 부족함을 해결하자는 프로젝트. 여기까지만 풀겡... 피곤해ㅠ 다음 주제는 <어금니>
이름없음 2019/06/23 14:02:45 ID : A7tiqpbu3u7
꿈을 꿨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너와 함께였다. 바다를 보면서 너와 얘기했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기쁘고 슬펐던 기억만이 남아있었다. 잘 기억나지 않는 가게에 들어갔다. 하루에 몇번이고 먹었던, 우리가 가장 좋아한 사탕이 있었다. 그 사탕을 먹으면 항상 어금니 사이에 사탕의 부스러기가 끼어서 불편했지만 투덜대면서도 매번 먹었던 사탕이었다. 사탕을 입에 물고 너와 그 가게를 나왔다. 막연하게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라는걸 깨달았다. 너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느껴질리 없는 사탕의 달디단 맛이 어금니 사이에서부터 퍼지는 걸 느끼면서 다음 주제 <히아신스>
이름없음ㆍ 2019/06/23 14:52:12 ID : o7z9g5fdO01
빈민가의 허름한 반지하 집에서 한 남자가 고독사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자 언론은 앞다투어 그 남자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 남자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수려한 외모와 훌륭한 연기력으로 각종 드라마,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유명 배우 K씨였기 때문이다 K씨는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등 승승장구하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으나 수 년 전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이후 성추문까지 생기며 이미지가 추락, K씨는 끝까지 자신에게 걸린 모든 혐의를 극구 부인했으나 경찰의 압수수색 결과 K씨의 집 창고에서 마약의 일종인 메스암페타민이 발견되고, 결국 연예계에서 퇴출당했다. 그는 그 이후 술과 도박에 빠져 비참한 생활을 하다 결국은 알콜 중독으로 사망한 것 같다고 경찰은 밝혔다. 장례식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배우 L씨가 사비를 털어 아주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각종 범죄에 연루되었고 알콜중독자로 전락한 K씨였기에 한시대를 풍미한 배우였음에도 조문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초라한 마지막이 끝나고 화장된 그의 뼛가루를 든 친구이자 배우 동료 L은 그가 생전 좋아했던 한 호숫가에 그의 뼛가루를 뿌려주러 갔다. 아무도 없는 호숫가에 서서 L은 우수에 잠긴 표정으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S양이 많이 울더라고, 그래도 네가 그렇게 추락하기 전까진 너랑 연인이었으니 남은 정이 있었겠지" 그렇게 말하는 L의 표정이 점점 싸늘하게 굳어져갔다. "그러게 작작좀 나대지 그랬어, 그렇게 욕심 부려서 이거 저거 전부 다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고 말이야" "내가 S양을 좋아하는걸 알면서도 보란듯이 사귀게 됐다고 선언하러 왔을때 니새끼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부터 치밀하게 준비했지, 유통 경로를 통하면 꼬리가 밟히니까 아는 약사 형한테 큰돈 찔러주고 기록 안남게 재료를 구해서 제조법 공부해가며 마약을 직접 만든다던지, 여자를 하나 고용해서 일부러 너한테 접근시킨 거는 뭐.. 그건 어렵지는 않았네 아무튼.. " L은 흥분을 가라앉히듯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혼잣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네가 이렇게 죽어줘서 한시름 놓았어, 굳이 내가 수고를 들여서 제거할 필요가 없어졌거든.. 잘 가라, 이렇게 돼서 유감이지만 그쪽에서는 적당히 나대고 행복해라" L은 등을 돌려 돌아가려다 뭔가 생각난듯 다시 호숫가로 달려왔다. "아 맞다 나 다음달에 S양하고 결혼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거, 그래도 마지막에 꽃 하나 정도는 줘야지." 그는 노란 히아신스 한 다발을 친구의 유해가 뿌려진 호숫가에 꽂아놓고는 등을 돌렸다. "그리스 신화의 제피로스도 사실 죽이고 싶었던 것은 휘아킨토스가 아닌 아폴론이었을거야 .. 하지만 그에게 불사신인 아폴론을 죽게 만들 힘이 없었을 뿐이지.. 그런데 너는 불사신이 아니었잖아?"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에는 단 한 점의 죄책감도 없었다. 노란색 히아신스, 꽃말은 승리 그 의미대로 그는 승리를 거둔 것일까.. 노란 승리의 꽃 위에 붉은 단풍이 떨어져 덮었다. 다음 주제는 <구름>
이름없음 2019/06/23 17:59:27 ID : rs04Mi09tfS
그러니까 구름이 되고 싶다고 뭐라는 거야, 내 대답을 들은 욱은 하늘을 봤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훑었다. 물감을 종이에 흩뿌린 모양새의 구름이 하늘에 널브러져 있었다. 욱은 담배를 마저 피우며 연기를 내뿜었다. 그의 속에는 이미 구름이 있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술을 씹기만 했다. 욱의 눈은 담배연기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붉어졌다. 무작정 담배를 피우자고 나오라던 욱의 메시지가 아른거렸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말 했잖아 구름이 되고 싶다고 퍽이나 왜 담배 하나 피려고 여기까지 왔냐고 그럴 수도 있지 듣고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럴 수도 있었다. 그래도 욱의 떨리는 입가와 턱, 코를 마시는 소리, 길게 머금고 뱉는 담배 연기는 나를 더 궁금하게 했다. 요근래 욱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었다. 물론 내가 그의 모든 걸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게 보이는 모습이 그의 전부였다. 그래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 그러길 바라기도 했다. 왜 우려는 거야 사실 나는 구름이야 네 입에 물고 있는 게 대마였던 거야?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움직이고 있어 비밀이다? 이해가 안 가 연거푸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느새 필터 끝까지 태우고 말았다. 난간에 기댄 한쪽 팔로 팔을 괴고 구름을 봤다. 담배 연기가 위로 올라가 잠깐 맺혔다 흩어졌다. 욱, 너는 이런 존재가 되고 싶은 거야? 그는 담배 연기가 아닌 구름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내게는 비슷했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는 것처럼 구름도 다음 날엔 사라져 있었다. 욱은 그렇게 몇 주 후 실종됐다. 읽지 않은 취업 최종탈락 메일만 남긴 채. 다음 주제는 <카레>
이름없음 2019/06/23 22:53:09 ID : moMpgjcnwoN
누렇게 뜬 황색깔 빛은 식탐을 만들어내지 않건만 입안에 들어가면 녹아오르는 풍미는 혀를 적시네. 이에 씹히는 건 감자. 혀로 녹이는건 당근. 목에 넘어가는 건 고기.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밥에 뿌리면 그야말로 저녁 한끼의 라면이 두렵지 않네. 한국인의 마음이 울어나오는 김치 한조각도 있다면 동네 박씨 아저씨 가게의 돈까스가 생각나지 않지. 유럽인조차 따봉을 치켜세운 인도 문명이 만들어낸 음식은 그렇게 오늘도 내 식탁 위에 오르네. 그래. 오늘 저녁은 카레. 다음 주제는 <라면>
이름없음 2019/06/24 00:38:43 ID : 3vdBfeY63U6
비가 주륵주륵 내리던 그 날, 좁은 자취방에서 처음으로 혼자 끓여먹었던 라면이 그렇게나 맛있었다. 언제나의 인스턴트 식품이지만 '혼자' 라는 느낌이 새로워 가슴이 묘하게 저렸다. 계란도 풀고 파도 썰어넣은 뒤 조금 더 끓이면 어느새 맛있어 보이는 붉은 빛이 감도는 라면이 끓고 있었다. ''완성-'' 아무도 없는 좁은 자취방. 아무도 듣지 않는 작은 나의 음성 ''잘먹겠습니다~'' 따뜻한 라면이 차가운 이 방 안을 따뜻하게 대워간다. 나의 마음부터 서서히. 다음주제 《모니터》
이름없음 2019/06/25 00:44:21 ID : 7y2Gsphunxv
문득 그런 기분있지.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쳐다 보는 기분. 내가 눈을 감으면 옆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런 기분이 들어 슬그머니 눈을 떴을 땐 내 시야엔 항상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어. 어쩐지 모니터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거야. 하루는 마음 편히 자기 위해서 모니터가 벽을 향하도록 돌려놓았어. 그날 밤 신기하게도 시선이 느껴지지 않더라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모니터가 향한 벽을 봤는데, 마치 커터칼로 긁어놓은 것 마냥 거친 글씨체로 벽에 적혀있는거야. '왜 내 목을 꺾어?' 다음주제 <캔들>
이름없음 2019/06/25 14:23:53 ID : moMpgjcnwoN
쓰고 나서 정신차리고 다시 보니 주제랑 상관 없는 내용이라 지움. 다음 주제는 그대로 캔들.
이름없음 2019/06/30 21:50:25 ID : 7htbfXvA3Wo
흔들흔들거린다. 흔들거리는 캔들속에 불을 보면 그때의 너와 나의 사이가 다시끔 떠오른다. 문뜩 떠오른 너의 미소와 그에 맞는 그때의 내 감정, 지금의 내 감정. 좀 다르지. 아니, 많이 다르다. 우리가 그렇게 헤어지지않았다면 난 이 캔들을 다시 볼려고 하지않을까. 매일 밤 잠에 들지못할때 캔들에 불을 붙이고 멍때리며 흔들거림만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가 없지않았을까. 다음 주제는 <가로등>
이름없음 2019/06/30 22:31:48 ID : jfPcq0k4JTS
너무 어두웠던 밤, 깜빡거리는 가로등의 불빛에 의존해 너에게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백했어. “좋아해” 지금은 우린 각자의 길을 걷지만 난 아직도 기억해. 너희 집 앞 공원길 앞에서부터 6번째 가로등 밑 그곳.. 그날의 추억속 향기가 나에게는 지금도 생생해.. 잘지내지? 8월의 한여름밤 그날에 우린 너무 어렸던 걸까 다음주제는 (보라색)
이름없음 2019/07/01 00:49:44 ID : qnRu1eGpPhc
보라색 어느덧 나의 하나뿐인 엄마가 말하는걸 들었어.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보라색이야" 그래서인지 침대 이불도 배게도 벽지도 보라색이야. 엄마는 집을 보라색으로 채울때 웃어 채우다가 힘들어도 웃어 하지만 내가 엄마가 힘들게 할때도 내가 싫대 어떻게해야 엄마를 힘들게해도 안 힘들까 생각하다 나는 엄마가 벽지를 색칠하던 보라색을 나한테 칠했어 이제 나를 좋아하겠지?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다가왔어 엄마는 분명 좋아할꺼야. 보라색을 좋아해서 이제 나를 좋아할꺼야! 힘들때도 화내지 않을꺼야..! 엄마는 나를.. 다음날 드디어 나에게 보라색이 생겼어! 전에는 검은색이여가지고 싫었는데.. 이 보라색으로 나를 채우면 엄마는 날 좋아하겠지? ... 이상하게 검은색밖에 안 생겨.. ... 드디어 생겼어! 빨간색도 있지만 곧 있으면 보라처럼 될거야 이제 보라색 많으니까 엄마가 좋아하겠지? 그치 엄마..? 엄..ㅁ..ㅏ 진짜 의식의 흐름대로 썻네; 다음 주제는 [ 창문 ]
이름없음 2019/07/01 18:51:44 ID : 5go45gnXBs2
창문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차들이 점점 줄어 들어가고 한 두 대의 차만이 지나갈 때 쯤이 되서야 커튼에 그림자가 지며 네가 왔다. 언제나처럼 검은 정장에 검은 구두를 신고 창문을 통해서 내 방으로 들어오는 네게서는 피곤함과 죽음의 향이 느껴졌다. "왔어?" 평소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너를 불렀지만 나를 잠식해가는 죽음이 네게도 전해졌는지 아니면 내 명부가 네게 전해진 것인지 몰라도 네 표정은 내 남은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짐작 할 수 있을 정도로 안 좋아졌다. "들어가있어." 기껏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지만 너와 한마디 대화조차 해보지 못 하고 끝나는 매일 매일이 내게는 심장을 찌르고 혈관을 자르는 듯 한 아픔이란 걸 너는 알고있을까... 죽음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을 알고 있기에 내게 그렇게 대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창문 너머로 다시 올 너를 기다린다 다음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순간!]
이름없음 2019/07/02 00:56:44 ID : BBs2k7aq0sl
세상에서 가장 짧은순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순간이라, 어떤 순간일까." 평소 매우 부정적인 나는 머리에 온통 부정적인 생각뿐이다. 자금 드는 생각은 차에 치일때? 아니면 즉사하는 경우들? 오늘도 나는 별 시답잖은 주제로 고민에 빠져본다. 근데 있잖아, 어찌보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이렇게 부정적이고 불행한 나에게 이보다 짧은 순간이 어딨을까. 온갖 불행함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에게 미소라는걸 찾아볼 수나 있을까. 근데 너는 그런 짧은 시간을 생기게 하는 능력이 있더라. 너만 보면 웃음이 나고 계속 생각나. 해맑게 웃는 걸 잊은 나에게 다시 웃는 법을 알려준 너는 웃는게 참 예뻐. 하지만 웃는 널 보면 내가 너무 비참해.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지 않는데, 이보다 더 비참한게 어딨겠어. 그래서 나에게 미소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간이 될 수밖에 없나봐. 고마워, 날 웃게 해줘서. 너가 날 바라보지 않는 것은 알지만 나는 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내 삶의 작은 낙이자 소소한 행복인 넌 웃는게 예뻐, 눈 부실 정도로. 그니까 날 보면 웃어줘, 제발. 다음주제 [죄책감]
이름없음 2019/07/03 17:37:58 ID : pU0qZgY2rap
죄책감 아이야.아이야.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를 나는 애정하고 내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단다. 너를 사랑하는 나는 너를 위해서 저기 저 하늘을 위에서 밝게 빛나는, 뜨거운 태양도. 저기 저 하늘 위에서 고고히 빛나는, 차가운 달도. 저기 저 하늘 위에서 작게 빛나는, 진주같은 별도. 아이야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단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아이야. 부드러운 비단을 주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부를 너에게 주랴? 누군가의 위에서 설 수 있는 권력을 주랴? 그도 아니라면 이 세상을 너에게 주랴? 아이야. 무엇이든, 어떤것이든, 너는 다 가질 수 있단다. 하지만 한가지. 한가지만 지켜주렴. 다치지말고, 아프지 말고, 혼자서 슬피 울지말고, 걱정을 숨기지 말고, 혼자서 상처 받지 말거라. 너에게는 정말로 모든 것을 줄 수 있단다. 내 목숨도 사랑도 줄 수 있는데. 네가 죽어버리면 쓸모가 없어지지 않겠니. 혼자 남을 나는 어찌하고. 나는 어찌하고. 그렇게, 그렇게 가버리려하니.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야,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너에게 태양도 주지 말걸 그랬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너에게 달도 주지 말걸 그랬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너에게 별도 주지 말걸 그랬지. 이럴 줄 알았으면 너에게 부도, 권력도 주지 말걸 그랬지. 이럴 줄 알았으면, 세상도, 너에게 안기지 말걸 그랬지. 아이야. 난 후회한단다. 내가 애정하고 사랑하는 아이야. 나는 죽도록 후회해. 내 모든 사랑이 너를 죽음으로 이끌고 말았구나. 내 모든 것이 너를 불행으로 떨어뜨리고 말았구나. 내 모든 애정이 너에게 상처로 남게하고 말았구나. 아이야. 아이야. 내가 부르다 슬퍼 울게 될 아이야. 미안하다. 미안해. 염치도 없이 나는 너에게 상처를 주고 불행으로 떨구게 한 나는 오늘도 또 이렇게 밤을 새고 있단다. 눈물 한 방울에 네가 웃는 모습이 떠오르고 눈물 한 방울에 네 웃음소리가 들리고 눈물 한방울에 네 따쓰한 손이 보이는데. 아이야 아이야. 내가 사랑하는 아이야. 너는, 너는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 미안하구나.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모든것이 미안해. 하지만 염치없게도 못난 나는 네가 이렇게 그립단다. 다시 와주련, 밝게 웃은채로 따뜻한 웃음소리를 내며 내게 손을 뻗어서. 다시 나에게 와주지 않겠니. 아이야 죄책감과 그림움과 슬픔이 얼룩진 밤이. 오늘따라 더 아프게 느껴지는구나.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은 너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과오요.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요.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이 모든것이 합쳐진 나의 미련과도 같은 마음이란다. 아이야. 꿈에서라도. 한번이라도 와주련. 미안하단다 아이야. 다음주제:복수
이름없음 2019/07/05 01:42:31 ID : grxSLhs3xyI
만약 네 눈동자가 나를 스쳐갔다면 그렇게 스쳐만 지나갔다면 날 알아보고도 그 눈길을 거둔거라면 나를 보고도 못본 척 그렇게 고개를 돌린거였다면 나는, 너를 죽여버릴거야. 복수를 한다는 건 누군가가 나를 져버렸다는 말이고 누군가가 나를 져버렸음에, 단지 누군가를 죽여버릴 듯 치솟는 감정을 휘젓지 못한다는 건 네가 나에게 폭풍의 크기만한 사람이었음을 뜻한다. 나는 너를 죽여버릴거야.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네가 빠져버린다면 사라져가는 널 보고 난 눈물흘릴거야 너를 죽일만큼 좋아하고 있어. 다음주제 : 꽃이 피던 겨울날
이름없음 2019/07/05 02:23:32 ID : gZjvwtuoIK7
우리는 죽었다. 우리라는 것은 이제 없다. 그 겨울날은 이상하게도 꽃이 피었다. 꽃은 추위속에서 덜덜떨며 피어났지만 우리라는 것은 그렇게 졌다. 그렇다만, 한가지 말을 너에게 전하고싶다. 언젠가 해는 지고, 달은 지고, 별 또한 지고, 꽃도 진다. 이리도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이기는 것이 아닌 지는 것이다. 그래, 우리라는 것은 너무 아름다웠기에 진거야. 그러니까 울지마. 담주제 [ 절망 ]
이름없음 2019/07/06 21:12:24 ID : WlyE8jgZiqo
검붉은 덩어리가 울컥울컥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 처참한 모습에 나는 눈을 감지도 못하고 한때 생명이었던것을 바라보았다. 계획은 실패했다. 언제 어디부터였지 어디서 오류가 난거지? 계획은 완벽했다. 난 앞으로 이어질을 알고있었고 그들의 패는 이미 까발려져 시험지 앞에 문제의 답이 붙어있는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조커는 내손 안에 있었고 그저 원하는 카드만을 뽑아 이 판을 짜고치는 포커로 만들어버려 그들을 밟고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 아래 있었고 모든것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없었다. 이미 체크메이트까지 무결점에 가깝게 계획된 시나리오. 그런데 내앞에 물결치는 저 심홍빛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당신이 왜 내 앞을 가로막은거지.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갑게 식어내리고 머릿속에 응어리진 생각들이 날선 고드름이 되어 머리를 차가운 서릿조각으로 가득 메우고 아무생각도 할수없게 뇌를 그대로 박제시켜놓으며 조소를 날렸다. 뇌수부터 차갑게 얼어붙어 흘러내리며 천천히 온몸을 시체같이 날카롭게 푸른 냉랭함으로 물들였다. 당신은 여기 있어선 안되었다. 당신이 내앞을 막고있는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였다. 당신이 나를 사실은 지키고 싶어했다는 사실자체부터 부정되어왔다. 나는 당신의 온정에 기댈만한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죽음은 내 계획에 있지 않았어. 섬세하게 피어난 얼음장미의 가시에 살점이 뚫리고 할퀴어져 온통 검은 핏방울로 세상이 물든다. 아아 그래. 나는 결국 실패했다. 커다란 까마귀때의 무자비한 절망이 차갑게 식은 나의 시체를 흑암의 색깔로 덮어버린다. 다음 주제: 노스탤지어
이름없음 2019/07/06 21:39:54 ID : jiktwIJTSMn
담담하게 굴던 지난날들이 순식간에 무너졌어요. 이럴까봐 그토록 악을 썼던건데. 연휴철, 공휴일, 대학생 시절의 방학도 포함해 엄마는 고향에 내려오라고, 잠깐이라도 좋으니 얼굴 좀 비치고 가라고 수십번을 애원했어요. 내가 당신이 있던 곳을, 당신과 함께 했던 곳을 길가의 풀마냥 취급하며 아무렇지 않게 다녀갈수 있을리 없잖아. 결국 나는 엄마가 병들고 나서야 이 곳을 다시 오게 되었네. 당신의 기억으로 묽어졌던 이 곳을 나는 또 다시 오게 되었네. 마냥 당신과의 기억을 곱씹으며 이 곳을 언제까지나 모른 척 하기엔, 고향을 떠나지 않은 채 그저 병상에 누워 계실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했어. 그래서 다시 왔어요, 정말 미안해요. 십여년 전의 어느 날 결국 당신을 죽여버린 그 날, 바다에 흘려보내기전 그 때 흐린 화질의 카메라로 당신의 모습을 열심히 담아두었던 걸 너무 다행으로 여기고 있어요.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두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사실 틈만 나면 그 사진들을 뒤적이지만, 역시 당신의 아름다운 시체가 있던 이 곳을 직접 오는건 견디기 힘들것 같았어요. 그 날의 생각만 하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흥분하는데 하물며 직접 오는건 어떠려구. 마지막까지도 죽고 싶지 않아했던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도. 그런데 역시 직접 오니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 오지 않겠다며 욕망을 억누른 지난 십년이 허무할 정도로. 창백했던 당신은 인어공주같은 예쁜 모습으로 바닷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을까, 혹은 다른 누군가의 뱃속에 있을까.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 당신은 그래도 사랑스러울테니까. 주체할 수 없이 좋아져버렸어 어쩌면 좋지. 난 정말 당신의 핏자국이 가느다랗게 남아있는 이 곳이 너무 좋아요. 그 때도, 지금도. 당신을 잊으려했던 그 십년조차도 고요히 눈을 감은 당신을 너무 사랑했고, 사랑했어. 사랑해요. (다음 주제-손목)
이름없음 2019/07/07 20:33:18 ID : BBs2k7aq0sl
아이의 손목은 말끔했다. 누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손목이였다. 어느날, 상처가 하나 생겼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것처럼, 하지만 깊지는 않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내 가벼운 질문 하나에 상처가 하나 더 생길 것만 같아서. 다음날 그 애의 손목에는 상처가 하나 더 늘어있었다. 당연히 물어보지 않았다. 그 애의 아픔을 꺼내기 싫어서. 그 애 손목의 상처가 없어질 때쯤 그 아이도 없어졌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나에게 말없이 떠닌걸 보면 많이 힘들었나보다. 그랗게 나는 깊었고 길 것 같았던 운명을 잃은채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손목을 감싸줄, 잡고 행복한 미래까지 이끌어줄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내 손목은 깔끔했다. 볼 때마다 그 애가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상처 하나가 생겼다. 그 애의 상처보다는 깊고 컸다. 하지만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다. 혼자 버티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무거웠다. 다음날 내 손목에는 상처가 하나 더 늘었다. 그 누구도 보지 않을 수 없을만큼 크고, 아픈 상처였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내 손목에 상처가 점점 사라져갈때쯤, 나도 같이 사라졌다. 다음 주제:포스트잇
이름없음 2019/07/08 12:12:30 ID : rcFcnu65fht
기억과 거리를 두고 싶으면 메모하는 습관을 버리라던 말이 생각났다. 고작 패러독스에 마음이 동했는지 한참 수첩을 들고 서 있었다. 정신 차리니 그 애는 가고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건 일말의 대수. 사람 하나의 존재를 습관에 담기에는 너무 컸기 때문에 손이 부을 터였다. 숨을 쉰 지 햇수로 십년이 훌쩍 지나 자율 신경에 중독된 머리는 이미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네가 그걸 몰랐을 리 없다. 항복을 권하는 말조차도 스치듯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었는가. 그게 네 고질병이라면 다정이 베인 습관은 버리라고 썼다가 지웠다. 글자가 남은 자국이 보기 싫어 포스트잇 조각을 뗀다. 구겨서 버렸다. 파과같은 썩은 단 내가 입 속에 고였다. : 그림
이름없음 2019/07/10 12:36:35 ID : nU47uk8lA0o
"제 얼굴을 그려주세요." 길거리에 앉아 용돈이라도 벌려고 자판상인이 된지도 대략 두어 달. 간간히 커플들을 그리고 4000원 정도를 받았다. 더운 날씨에 이마의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이만 들어갈까싶은 참에 그녀가 나타났다. 조금 앳된 나이에 보드라워 보이는 볼살은 혼자서만 뽀송해 보였다. "아~ 네네. 여기 세 종류의 그림타입이 있는데 어떤 걸 원하세요?" "음... 세밀화로 그려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당장 주시지 않아도 되고 어떤 가격이든 상응하게 드릴게요." 어딘가 결연한 듯한 목소리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곧 흥정을 시작했다. "저 작가는 아니지만 미술 전공자거든요. 아무리 못해도 세밀화면 20000원은 받아야 되겠는데..." "좋아요." 응시하는 시선에 표정은 망설임없이 흔쾌하다. "언제까지 주실 수 있나요?" "아... 저도 오래끄는 건 싫으니까, 3시간 정도면 충분 할 거에요." "...계속 여기 앉아 있어야 할까요...? 사진으로 찍어두면.." 그녀는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그것도 돼요. 사진 지금 찍을까요?" 이 자리에서 고생 안 하고 다른데서 그려도 된다는 생각에 도달한 나는 마음에 신이 났다. 찰-칵 "여기서 다시 오후 6시에 뵈요." 하고 헤어지고, 인근의 친구 작업실에서 시원한 커피와 함께 선을 따는데 착수했다. 그런데.. 앨범 속의 그녀의 사진이 온데간데 없었다. 갑자기 전보다 더한 땀이 흘렀다. 어쩌지...? 낭-패, 큰일이다. 기억에 의존하여 그리거나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거나하는 선택의 순간이 남았다. 세밀화를 요구한 탓에 기억에 의존하기는 조금 무리다. 퀄리티가 낮아서 상대가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가지 않는 것 또한 양심의 가책이었다. 3시간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자. 애초에 그녀가 시간은 걸려도 된다고 했으니 약속장소에 나가서 내일 만나기로 하고, 어떻게든 사진을 다시 찍어보자며 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단은 손풀기로 그녀를 그려본다. 앳된 얼굴의 검고 긴 머리카락.... 손이 허공에서 제자리걸음을 한다. 그림은 실존하는 대상이 확실하다면 그 앞의 대상이 없고서는 담아낼 수 없었다. 진실이 정직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다음주제: 결혼
이름없음 2019/08/12 12:56:29 ID : kmpQpTWrunC
단상에 서있던 주교가 나에게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묻는다. 아니, 답은 이미 정해져있으니 대답하라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매일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성녀가 떠올랐다. 밤마다 찾아오던 정체불명의 그도 떠올랐다. 참았던 눈물이 조금씩 조금씩 흘러나온다. 두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있고..... 쨍그랑! 단상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깨지며 검은 인형이 떨어져내렸다. 온몸을 휘감은 검은 망토와 얼굴 전체를 가린 하얀 가면. 그였다. 단상 위로 사뿐히 내려않은 그는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큰일이다. 그가 위험했다. 당자 그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커다랗고 억센 손이 나를 막았다. 고개를 돌리자 왕자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서있는 게 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왕자에게 손을 놓아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왕자는 여전히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힘이 점점 강해졌다. 손목이 아파졌다. 어떻게든 그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왕자는 끈질기게 나를 놓지 않았다. “놔.” 듣기 좋은 미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더 이상 손목에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미안해. 당신을 포기할 수 없었어.”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그에게서.... 아니,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녀가 내게 묻는다. 자신과 함께 가겠냐고. 날 안고 있는 그녀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이 사람을....... 나는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속삭였다. 신기했다. 아까는 무언가가 목구멍을 틀어막은 것처럼 나오지 않았던 말들이 너무나도 쉽게 쏟아져 나왔다. 그녀도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신전에 그려져있던 여신의 문양이 밝은 빛을 내며 우리를 축복해주었다. 신탁이 맞았다. 성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나도......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다음주제: 겨울
이름없음 2019/08/12 20:05:12 ID : dA6jcoJU6ry
내가 동성의 후배에게 고백을 받았던 날은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은 눈이 펑펑 내렸고, 그 아래서 나는 소복히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상장을 받았다. 앞에선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옆에선 선생님이 날 부르는 소리가, 밑에선 카메라 소리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모든걸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크게 와닿진 않았지만 이 광경을 무대 위 가운대서 한번에 보자니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끄러움 사이에서, 그저 나는 기타부타 없이 상장을 받고 꾸벅 인사하고 내려왔다. 친구들은 가운데서 엉엉 울고있었지만 나는 딱히 달래주고싶지도, 그쪽까지 많은 사람들의 인파를 뚫고 갈 자신도 없었다. 나중에 연락하면 되겠지. 안일히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가까이 있던 애들이 졸업을 축하한다고 붙었다. 딱히 기억도 안나는 아이들이지만 사진을 같이 찍었다. 구경하고 있던 여자후배와 남자후배들도 다가왔다. 의도치 않게, 내가 마치 이 커다란 강당의 주인공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눈을 빛내던 여자 후배가 꽃다발을 나에게 안겼다. 눈에 익은 아이였다. 나는 웃었고, 그 애도 따라웃었다. 나는 눈을 내리깐채로 웃음을 흘렸다. 사실 모든게 지루하고 따분했다. 나는 어쩌면 공감장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강당 밖으로 나왔다. 잡는 아이들에겐 부모님이 기다린다고하고선. 밖에도 학부모들과 학생이 많아 혼잡했다. 난 걸었다. 어짜피 내 부모님은 오지 않는다. 나는 걷고 걸어서 집에 가려다가, 마지막으로 학교를 한번 둘러보려고 걸음을 멈췄다. "...." "...." 고개를 돌리자 네가 있었다. 같은 동아리라 이름은 기억했다. 뛰어왔는지 숨은 헐떡거렸고, 무릎은 후들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고개를 기울였다. "아, 그니까, 선배..." 그 애가 눈을 굴렸다. 얼굴에 열이 쏠렸는지 붉었다. 나는 시선을 마주했다. 같은 동아리, 접점은 많이 없고 학년도 다르지만 날 언제나 눈동자로 쫒았던 주인공. 나는 내가 한발자국 다가갈때마다 한발자국 뒤로 물러갔던 너를 기억한다. 어려운게 있다며 질문을 했으면서 내가 다가가면 숨도 멈출정도로 긴장하던 너도, 순간 손이 닿았을때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서 얼굴을 바라보니 붉었던 너도, 축구를 하다 같이 엎어졌을때 내 아래에서 멍하니 날 올려다보던 네가. "졸업축하드려요!" ".. 고마워." 나는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동자가 휘었다. 이 웃음을 지을때마다, 저 애는 날 멍하니 바라보았다. 티가 안날꺼라고 생각한건가. 나는 이 순간이 퍽 기꺼웠다. "너도 오늘 좋은 하루 보내고." 나는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다시 따라올거라는걸 느낌적으로 예상했다.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그 애는 내 생각대로 따라왔다. 팔목이 잡히고, 몸이 뒤돌려진다. "저, 선배..." 바로 앞에서 시선이 엉켰다. 그 아이의 눈동자가 일렁인다. 그 눈동자 속에는 기민한 남자아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미묘하게 웃는 그 남자아이가. "어, 그러니까, 사실 저," 볼이 붉어지고 눈동자가 일렁였다. 눈위를 엄지로 쎄게 짓무르면 울겠지. 피부가 하얀편이라 붉어지면 티가 잘날것이다. 내 음습한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했다. 속눈썹이 팔랑인다. 평소에는 답답한걸 싫어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선배를... 좋아하고 있어요." 그가 시선을 들어올렸다. 다시 눈이 마주친다. 올곧은 시선이었다.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다음주제 사랑
이름없음 2019/08/12 22:33:50 ID : koKY9yY2smN
"바다가 보고싶어." 뜬금없는 소리였다.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네가 그런 소리라니... "그러고 싶으면 어서 낫기나 해. 못 데려다 준다는 걸 알잖아." "나는 못 나아." "그런 소리 하지 말랬잖아." "부정 못 하는 사실이야. 받아들이지 그래?" 물론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도 받아들이면, 너를 포기하면 되면, 정말로 네가 떠나버릴 것 같아서... 다시는 널 못 보게 될 테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 약속 하나 해줘. 언젠가 정말로 바다를 보게 해달라고." "...그래." 그런 기억도 이젠 추억이다. 이제야 너에게 바다를 보여줄 수 있어... 네가 떠난 지도 오래인데, 왜 나는 계속 너에게 붙잡혀 있을까. 밀어내려해도 결코 나가지 못하는 너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다음 주제는 솜사탕!
이름없음 2019/08/14 16:44:30 ID : fXunu8rxU1D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이 떠다니는 모습을 보는걸 좋아한다. 그 모습이 너무 자유롭고 평화로워서 멍하니 바라볼때가 많았다. 그 때도 그랬다. 학교에 창가에 위치한 내 책상에 팔을 포게어 눕고 구름을 보면서 스르륵 눈이 감길때 갑자기 "우악!!!" 하며 큰 소리에 놀란 나를 보며 푸하하 큰 소리로 웃는 너의 모습을 보며 얼굴에 열이 오르는걸 느끼며 들키고 싶지 않아 엎드려 버렸다. 이런 나의 모습을 화났다라고 생각했는지 안절부절 못하며 미안해하는 너를 보며 겨우 괜찮다라고 말하는 나를 향해 맑게 웃으며 별 내용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있지, 근처 대학교에서 오늘 저녁에 축제를 연다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라는 말에 그러자 라고 하니 기뻐하며 저녁에 보자하고 가버린 너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구름을 보았을 때 문뜩 너는 구름을 닮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든 친절하고 자유롭고 보고 있으면 편해지는게 딱 구름이라고 생각했다. 저녁날 축제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축제에서 만난 너는 학교에서보다 더 펄펄 날아다녔다. 신기한것도 많고 연애인 무대를 보기 위해 사람들 틈에서 서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잡았다. 무대가 끝나고 신이나서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너를 보고 있으니 나까지 신이나서 웃어버렸다. 그러다 눈에 띈 꽃 모양 솜사탕이 보여 빨간색으로 사줬더니 너가 좋아해줘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불꽃놀이에 너는 갑자기 내게 볼을 붉히며 좋아한다고 고백해왔다. 주변이 어두움에도 너의 두 볼을 빨갛게 물들여 있었다. 불꽃때문에 더 그렇게 보인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들고 있는 빨간 꽃 모양 솜사탕을 보며 너가 더 예쁘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나는 참 중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낮에 했던 내 생각을 정정해야 했다. 너는 구름이 아니였다. 보고 있으면 평화로워 구름같고 나에게 달콤함을 스며들게해 기분 좋게 만드는. "그래."너는 솜사탕이였다. 다음 주제는 달!
이름없음 2019/08/14 18:15:39 ID : xSLcNy7ta1f
그날 밤도, 오늘처럼 아름다운 야경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도시의 네온사인, 시끄러운 차 소리, 하늘에서 떨어져 녹는 흰 눈, 그 모든것이 이미 한번 내 눈에 펼쳐졌던 것이었다. 그날 그곳에서 네가 나에게 물은 것. "있지, 네가 기억하던 모든게 누군가 만든 거짓이라면 어떡할거야?" 그 말에 내가 "일단 내 기억을 전부 거짓으로 만든 사람을 의자로 쳐버릴거 같아!" 라고 대답한게 문제였냐고... 내 대답을 듣고 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린 그때도 일의 심각함을 잘 몰랐었지. 네가 그런 말을 한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건데.. 나는 그렇게나 오랬동안 너와 만났으면서도 아직도 너를 전부 알지 못했었나봐 "..." 그날과 같은 풍경인데도 이 자리에 너는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날짜를 확인했다. 2××3년 1월 13일 수요일, 역시 그날이 맞다. 달라진것은 고작 그날의 시끄러운 차소리는 사람들의 비명으로, 밝게 빛나던 네온사인은 피에 덮혀 붉은 색을 발하는것 뿐인데 어째서일까 "...인하야" 아, 네가 왔다. 나는 아래를 응시하던 얼굴을 돌려 너를 보았다. 넌 어째서 그렇게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걸까 "이거... 네짓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표정이 조금 찡그려졌다. 평소처럼 웃어주길 원했는데 어째서? "... 대답해줘 서인하, 네가... 이 좀비사태를 만들었어?" 목을 크게 끄덕였다. 너는 얼굴을 찡그린다. 나는 그때 네게 말한대로 내 삶을 거짓으로 만든 그것과 대면했을때 앉아있던 의자로 그것을 쳤다. "왜 너야.. 왜..!!" 그리고 그 후에 그것이 내게 뭐라 한것 같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라지기 직전에 나의 시간을 돌렸고, 나는 금세 일의 심각함을 깨달았었다. 이젠 전부 옛이야기 "...싫어... 싫단말이야... 서인하... 아니라고 해.. 아니라고 하라고..!!!" 거짓말은 안되니까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는 얼굴을 찡그린다. 이번에도. 이것으로 몇번째지? 수없는 시간을 보냈다. "인하야... 서인하... 이런걸 원한게 아냐... 눈 떠, 응? 서인하... 눈 뜨라고!!" 그리고 오늘 너의 웃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달은 붉어졌다. 다음주제는 데스매치~
이름없음 2019/08/15 01:06:21 ID : pSE61yGmo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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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19/08/15 01:24:44 ID : pSE61yGmoIK
허하고 무언가 가득 찬 공기가 숲을 에워싸고 있다. 습기 때문에 발은 계속 미끄러지고 왼쪽 팔목은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다. "퉷-" 무거운 공기를 좀 가볍게 하고 싶어 무심결에 침을 뱉는다.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입안에 가득 찬 피의 비릿함이 더욱 진해졌을 뿐이다. 상쾌하고 시원한 물을 한껏 들이켜서 입속의 비릿함을 지워버리고 싶었으나 지금은 물은커녕 붕대조차도 없어 지혈도 못한다. 어제저녁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난, 이 나라 왕녀이며 곧 있으면 대관식을 거행하는 몸이니까. 즉, 왕이 될 사람이었다. 이 대제국 그뤤바흐의 제왕으로 말이다. 재수 없게도 지금은 비렁뱅이보다도 못한 신세지만. 어제 나에게 왕위를 탈환한 사람은 내 오랜 친구였던 진이었다. 예전부터 내가 많이 의지하고 참 좋아했던 친구였다. 하루 종일 일한 진을 내가 안아주면 그는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가 하루 종일 입고 다닌 셔츠에서는 아침에 뿌리고 나간 버베나와 시트러스 향이 옅게 베여있었고 시큼하지만 포근한 그의 체취가 강하게 나곤 했다. 난 그 향기가 좋았다. 진의 체취와 옅은 향수내음새는 궁중에서 썩어가는 나를 들뜨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진은 언제나 진중했고 조심스러웠으며, 행동 가지 하나하나마다 이유 없는 것들이 없었다. 반면 나는 내 본능대로 움직였으며, 왕녀라고 하기엔 좀 천박한 행동이나 말투를 사용했다. 궁중에서는 그런 나를 어떻게든 엘레강스한 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진을 보냈지만, 진 또한 나에겐 궁중에서 의지할 즐거운 장난감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 그를 사랑하게 됐지만, 아쉽게도 그는 아니었나 보다. 지금 숲에서, 이렇게 뒹굴고 있으니 말이다. "진-!" 무심결에 튀어나온 그의 이름이 숲속 가득히 울려 퍼진다. 아니다. 무심결은 아니다. 좀 화가 났다. 이런 감정을 가지면 안 되는데, 그렇지만 한 나라의 왕녀를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내가 사랑한 그에게 화가 치밀었다. 당연한 건가. 진은 이해타산적이었지만 나는 이익이고 뭐고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니까. 숲을 돌아다니며 내 딴에는 결판을 짓겠다고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으나, 아쉽게도 그 숲속에는 내 목소리만 가득 차 올랐다. 그래도 허튼짓은 아니었나 보다. 옅은 잠에 취해서 이끼 낀 바위 옆에 기대 있던 나에게 익숙한 버베나와 시트러스 향이 밴 짙은 적색 망토가 덮여졌다. 내 어깨에 그의 손이 닿을 직전, 나는 눈을 부릅 떠버렸다. 조금 놀랄 줄 알았지만 상대는 진이었다. 그는 전혀 놀라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건넸다. "셰, 여기를 떠나도록 해. 곧 날이 개면 왕실 군대를 숲에 보내겠다고 내가 결재를 해 놓았으니까." 익숙한 향기와 무심한 말투지만 사람을 조금은 화나게 만드는 말이었다. 나는 참을 수 없었고, 비릿한 피맛이 다시 입안에 가득 올라왔다. "뭐 하자는 거야. 진. 네가 이 상황을 초래했어. 그런데도 뻔뻔하게 그런 말을 지껄인다니. 전부터 느꼈지만 나를 우아하게 만들긴커녕 나에게 사람 피도 거꾸로 솟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 같네." 진은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들어줬다. 그리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도, 셰. 난 네 곱슬머리 정말 좋아했어. 앞으로 만날 수 없겠지만 건강하게 잘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별 무리 없이 쳐다보고는 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난 이성을 잃고 폭주해버렸다. 그가 말안장에 앉았을 무렵, 난 재빠르게 그의 등 뒤에서 단도를 꺼내어 진이 타고 있던 말의 동맥을 끊어버렸다. 진의 말은 곧이어 피가 솟구쳤고, 사지가 꺾이더니 쓰러져 버렸다. 진은 빠르게 안장에서 내렸지만 발을 빼는 도중 오른발 인대가 나간 것 같았다.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 같아? 내가 그냥 보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진." "셰, 내가 항상 말하지만, 넌 너무 감정적이야." "하, 내가 누누이 얘기했지만 진, 네 그 이해타산적인 태도를 인간관계에까지 끌어들이면 언젠가는 자멸할 거라고 충고했을 텐데." "미안, 셰. 그 말 명심하도록 할게." 나는 평소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진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왼쪽 팔목이 저릿하게 아파온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진. 아쉽지만 넌 왕실까지 타고 갈 말이 없지. 곧 30분 뒤엔 왕실 군대가 찾아올 거야. 자. 누구 시체가 먼저 군대에게 보일지 궁금하지 않아?" "셰, 아까도 말했지만-" 난 곧바로 아까 진의 단도로 진의 급소를 찌르려고 했다. 진의 말과 같은 방법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미스였다. 진은 아무렇지 않게 급소로 향하는 내 손을 쳐냈다. 나 또한 반동을 통해 차분하게 진의 또 다른 급소를 향했다. 진은 또 막았다. 우습다는 듯이 왼쪽 손에는 그의 또 다른 단도가 쥐어져있었고 생각을 끝마칠 시간도 없이 욱신거리는 내 왼쪽 팔목을 진은 아예 보내버렸다. 아팠지만 틈을 보여줘선 안된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아니 죽이기 위해선 말이다. 경동맥을 끊어 아예 보내버리리라. 다시 진의 경동맥을 향해 칼날은 향한다. 진은 간과했다는 듯 경동맥을 내어주지 않는다. 우습다는 듯 그의 나이프는 나의 경동맥을 향한다. 빠르게 쳐내지만 곧이어 그 칼날이 허벅지에 박힌다. 차가운 칼날이 극렬한 근육을 스치는 듯한 고통에 조금은 흔들리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난 그의 나이프를 뽑아낸다. 그리고 그의 허리를 아까의 나이프로 깊숙이 담근다. 진의 따듯한 피가 내 손을 적신다. 진은 작게 신음한다. 곧이어 내 허리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나와 진의 피가 무겁고 중후한 그 숲을 붉게 물들인다. 내가 칼을 뽑으려고 하자 진은 그 칼을 더욱 깊숙이 내 허리로 담근다. 다시 입 안 가득 피비린내가 올라온다. 질세라 나 또한 들고 있던 칼로 진의 아랫배를 그어버린다. 이제 그 누구도 살아나갈 수 없다. 진의 아랫배에선 붉은 선혈과 함께 내장이 조금씩 비겨 나온다. "셰, 너무 아프잖아. 아무리 그래도, 난-" "숲에서도 버베나와 시트러스 향기가 나니까 만족하도록 해. 진은 이제 죽어줘. 난 새로운 진을 찾은 것 같으니까." "셰, 그 말-" "진?" "..." "진, 이번 데스매치는 내가 이겼네. 하지만 이젠 축하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저 멀리서 왕실 군대의 행군 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일어나 진을 바라본다. 저렇게 눈을 감고 있으니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의 가방을 뒤지니 가벼운 리볼버가 들어가 있다. 조심스럽게 4발의 탄환을 장전한다. 그리고 진의 시체를 향해, "하나-" 탕- "이건 우리 가족에 대한 복수." 탕- "이건 선대 왕들에 대한 복수." 탕- "이건 내가 하는 복수." 마지막 탄환이 남았다. 총소리를 들은 군대가 바삐 달려오고 있는 듯하다. 탕- "이건, 네가 하고 싶었던 나에 대한 복수." 총으로 죽는 건, 역시 아니다. 진. 이 개새끼. 다음번엔 리볼버 말고 한 방에 가는 샷건 같은 걸 가져오란 말이야. 조금씩 잔상이 흐려진다. 역시, 이 숲은 버베나 시트러스 향기가 진해. 다음주제는 연호(年號)!
이름없음 2019/08/15 22:34:00 ID : fXunu8rxU1D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께서 승하하신 후 첫째 아들이 병을 얻어 일찍 죽어 둘째 아들인 '용덕'이 그 뒤를 이었다. 그는 자존감이 낮아 속이 좁은 자였다. 그래서 일까? 대신들이 조금만 뭐라해도 화내기 일 수 였다. 그 눈빛들이 마치 첫째 대신 저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속상하고 화가 났다. 첫째 용한은 아버지처럼 무예가 뛰어났으며 머리또한 좋아 한가지를 알게 되면 열을 알게 되는 천재였던 것이다. 그런 형을 존경하고 따라가려고 애를 쓰고 이겨보려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를 했으나 이겨본적이 없거늘 그리 허망하게 가버려 자신은 영원히 그에게 이길 수 없게 되버렸다. 그렇게 그는 술독에 빠져 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이룬 업적들을 더럽히고 있을 때 어느날 자신의 아이가 다가와 울며 말하기를 "폐하! 밖에 백성들이 지금 굶주려 있고 탐관오리들은 배를 불리고 있사옵니다. 또한 오랑캐들이 우리의 땅을 더럽히고 있사옵니다! 부디 제발 통촉하여 주시옵서서! " "그래서 어찌하란 말이더냐!! 짐이 무능하다 이것이냐?! 그래서 너 또한 내가 죽어야 하고 내 형님이 살아계셨어야 한다 이말이더냐!" 그 말에 아들은 더 통곡하며 말하기를 "그 말이 아니옵니다! 폐하 나의 아버지.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은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들 이옵니다. 큰아버님이 천재였든 뭐든간에 저에게는 아버님께서 최고 이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리 변하셨습니까. 또한 그분을 이기기 위해서만 아버님께서 공부를 하신게 아니지 않사옵니까? 아버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디 총기를 되찾으셔 어진 임금이 되주소서. 이 소자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며 아들이 울자 머리에 벼락을 맞은듯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형님과 자신을 비교하는 말과 시선에 이길수 없다는 것만 생각에 실의에 빠져있었거늘. 오직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형님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니였다는 사실을 자신의 아들을 통곡에 깨달았던 것이였다. 존경하는 형님과 함께하고 싶어 노력했거늘 왜 이리 변했나 자책하려는 그때 갑자기 미친듯이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아들앞이라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천천히 말하였다. "그래. 미안하구나. 내 그동안 무심했구나. 걱정하지 말고 자러 가려무나." 하고 아들을 돌려보내고 용덕은 생각했다. 자신은 민심을 돌리고 탐관오리들을 휘어잡기엔 너무 늦었다고. 다만 자신의 아들이 뒤를 이어 왕이 되기전에 왕실에 대한 위엄을 되찾겠다고. 그래서 다음날 용덕은 대신들을 불러 뜬끔없이 자신의 연호를 건흥이라 부르기로 했다며 세자는 나의 명을 받아 아버지 광계토대왕을 기르는 비석을 만들라고 지시하였고 그는 자신의 연호대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법의 기반을 잡아 간신들을 쳐내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리 한들 앞서 한 만행때문에 자신의 대한 평이 좋지 않아 결심하고 역사를 쓰는 사관을 불러 이르기를 "나의 아들은 나의 아들이 아닌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아들로 기록하거라 또한 짐이 한 좋은 일들을 다 그가 했다 쓰거라. 또한 저가 한 일은 아버지의 흠이니 기록하지 저를 기록하지말라." 라고 하고 아들에게 너는 부디 오래 살고 어진 임금이 되길 바란다 라고 말하고는 사망하였다.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어진 임금이 되고 나라를 부흥시켰다. 그가 바로 장수왕이다 *사극은 어렵네요.... 연호가 힘들었 쿨럭. 장수왕을 검색해보니 광개토대왕의 아들이 아닌 그의 둘째아들 '용덕'의 아들이였다는 말이 있길래 썼습니다^^;;;; 다음 주제는 물!
2019/08/16 07:02:25 ID : 3wnxDvyGsi9
'바다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까?' 우리가 마시는 물은 어디서부터 오고 어떻게 순환하는지를 생각할때마다 봉착하는 질문이다. 내 냉장고 속에 깨끗한 천연암반수라고 포장해놓은 생수도 누군가의 오줌이고 체액이고 피였겠지? 쓸데없는 상념에 잠겨 문득 마시다 놓은 생수병을 보니 슬슬 또 구비해놓을때가 되었구나 싶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얼굴부터 목,그리고 팔 다리. 옷으로 가려지지않은 맨살에 달라붙는 기분나쁜 음습함 들숨으로부터 폐까지 전해지는 축축한 느낌 몸에 남이있는 기운을 전부 인터넷 서핑같은것에 소모라도 했는지 다리에 기운도 하나 없는 느낌이 정말 익숙하다 밖으로 나가는 그 짧은 찰나에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못하고 딱히 뭘 할 계획도 없이 인터넷에 들어간다. 왜 인터넷 접속이 안되지? 애초에 데이터도 켜지지않고 있다. 미납된 요금으로 드디어 정지가 된건가? 층수는 4층에서부터 3층, 2층.. 1층.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시선을 자동문 밖으로 옮긴 순간 유리 밖 풍경은, 아쿠아리움처럼 물로 가득찬 세상이었다. 이 물은 다 어디에서 온거지? - 다음주제 : 사후세계
이름없음 2019/08/17 23:14:01 ID : xXvxu8pe7wL
주변이 조용했다. 매일 지나던 횡단보도를 건넌 후 였다. 여름인데도 덥지 않았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게 회색빛이지만 바닥에 핏자국이 흩뿌려져 있지만, 온도가 느껴지지 않지만, 여기는 내가 지나던 길이다. 지났던 길이다. 여기는 그곳이 아니라고 알지못해도 처음봐도 알수있었다. 나는 죽었고 여기는 죽은 나의 세상 다음은 보라색 초!
이름없음 2019/08/18 04:29:03 ID : vA4Y1h9ii66
소녀는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작고, 차갑고, 보잘것없는 그 무엇이었다. 작은 방은 소녀를 삼키며 점점 커지더니 광활하고 외로운 우주가 되었다. 그 긴긴 시간을 떠다니던 소녀는 문득, 무언가를 가까스로 떠올려냈다. -저, 이거. -뭔데? -보면서 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소녀는 손을 뻗었다. 넓디넓은 공간의 크기에 비해 서랍은 너무도 쉽게 그녀의 손에 닿았다. 떨리는 손으로 소녀는 그 안에서 작은 초를 꺼냈다. 몇 번의 서툰 시도 끝에 마침내 불을 붙인 소녀는 홀린 듯이 일렁이는 불빛을 바라봤다. 작고, 밝고, 뜨거운 그것은 소녀의 시야를 부옇게 흐리며 타올랐다. 너를 생각하고 있어. 초를 들고 맑게 웃던 소년의 미소처럼 화려한 보라색이 높이, 더 높이 타올랐다. 다음 주제는 고양이!
이름없음 2019/08/18 04:43:36 ID : RyJTXwK6knB
밤의 공원은 화목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만약 1시간 전 그에게 온 메시지가 합격 문자였다면 그 또한 웃고 있는 저 군중 사이에 끼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귀하의 능력은 참으로 우수하나...' 그는 메시지를 곱씹었다. 우수하다고? 우수하다면 뽑혔겠지. 정말 우수한 놈들은 따로 있으니까 떨어진거겠지. 그렇게 그는 자기비하를 하며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발목을 부드러운 무언가가 쓸고 지나간다. 빗자루인 줄 알았더니 길고양이였다. 정말 흔히 보이는 잡종 얼룩 고양이일 뿐이다. "먜옹" 짧은 울음소리였다. 어째서인지 고양이는 계속 그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급기야는 위로 올라와 옆구리를 부비적대기 시작했다. "줄 거 없어." 그는 미안해하며 달라붙은 고양이를 번쩍 들어올려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의 안전한 배송을 마치고 일어났다. "다음에 회사 합격하면 뭐라도 사줄게." "먜옹" 그의 말에 고양이는 마주앉아 알겠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거렸다. 떠나고 난 빈 자리에는 그와 고양이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번 주제는 가난으로 해볼까. 이거 재밌네.
이름없음 2019/08/18 11:47:17 ID : kk79g1wrbzT
난 어렸을때 부터 가난이 두려웠다 매일 좋은밥 좋은옷 좋은것들로 나를 치장하고 학교에서 웃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나이지 못했다 매일 너그러운척 괜찮은척 하면서 나를 좀먹었다 언젠가는 나를 덥쳐올것 같은 가난에 내 마음은 조금식 조금식 좀먹어 그음달만큼 남아버린 것 같았다. 그러다 한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가난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속이 좁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없어도 남에게 배풀고 매일 싱그러운 웃음을 보일 뿐 이었다. 그는 많은 나에게도 배풀어 주었다 치가 떨렸다. 어떻게 가난함에도 남에게 배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려웠다 항상 내 주변은 사람은 많으나 진실한 친구는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좋은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사실 내가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가난이 나를 덥쳐왔다. 이번 주제는 시선
이름없음 2019/08/19 02:15:24 ID : BBs2k7aq0sl
오늘도 길을 걷던 중 시건을 느꼈다. 운동을 하던 중 시선을 느꼈고 밥을 먹던 중 시건을 느꼈다. 난 그 시선들이 싫다. 좋은 시선이든 나쁜 시선이든 누군가가 나를 쳐다본다는 건 나를 판단하는 기분이 든다. 나를 좋게 보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 시선들이 너무 무섭다. 시선들이 무서워져 이제는 사람들조차 무섭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스스로 일어서기도, 눈을 마주치기도 어렵다. 이제는 모든게 다 무섭다. 그러던 어느날 내 속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 내가 말을 하면 들어주고 위로해준다. 그 사람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마음을 바라봐준다. 위로의 눈길로 말이다. 내가 울때나 우울할 때나 곁에 있어준다. 기쁠때도 나와 같이 내 기쁨을 나눈다. 하지만 언제나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다. 왜 항상 혼자인 기분인걸까. 나와 같은 반에는 좀 특이한 친구가 있다. 항상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유 모를 공포에 떨고 있던 그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안정 되어 갔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갑자기 평소 보인 적 없던 미소를 보인다. 허공을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 가끔은 말도 한다. 흔치 않은 미소도 잠시 가끔씩은 멍을 때리기도 한다. 그 아이가 멍을 때릴 때 한 구석이 많이 쓸쓸해 보인다. 웃는게 예쁘던데, 좀 웃고 다녔으면 좋겠다 - 호감
이름없음 2019/08/19 07:23:04 ID : bhcINzcFh83
"대충 면도를 해서 그런지 군데군데 삐죽 튀어나온 수염에 웃을 때마다 고르지 못한 치열이 거슬려요." "넙데데한 콧망울에 아주 잠깐 자세히 쳐다봤는데 보이는 코털도 더러워 보이고요. " "눈을 마주치지도 않으면서 허세같은 말만 늘어놓는 허영심같은 자신감도 마음에 안들어요." "계속해서 말을 섞고 싶을 정도로 호감이 있는건 아니지만, 최소한 이야기 할때 눈을 쳐다보면서 허물없는 대화라도 어느정도 대화가 이어져 가는게 이런 고문에 시간을 내준 나한테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친구 및 지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에어컨은 추울정도 쌩쌩 돌고 있었지만 여자는 속이 타는 것처럼 음료수를 한 모금 벌컥 들이켰다. 실내의 분위기는 싸늘했고 입 안에서 날붙이를 뱉어대는 듯한 여자의 말에 남자의 간담은 더욱 더 오싹해져 간다. 더 이상 관계 개선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남자도 여자도 그리고 숨죽이고 두 남녀를 지켜보던 카페 안의 누군가도 그렇게 확신했다. 이윽고 여자는 눈길을 끌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내려쳤다. 손을 떼자 곱게 펼쳐진 천원짜리 네 장이 늘어져 있었다. 그녀가 마신 망고 스무디의 가격이었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지품을 가지고 카페로 나가 버린다. 사고회로가 세 박자정도 느려터진 멍청한 머리통과 눈앞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상황이 엇갈려 간신히 입에서 나온 말은 알아듣지도 못할 고장난 헛소리였으며, 자기도 모르게 뻗은 손은 내려올 기약도 없이 문을 지나서 유유히 떠나는 여자의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인 남자였다. 하릴없이 뻗은 손을 어색하게 거두기도 민망해 그녀가 남기고 간 천원짜리를 줏어 든다. 4천원. 그것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한 그녀의 마지막 인내였으며, 관계의 종막을 알리는 무언의 선고였다. - 하얀 와이셔츠
이름없음 2019/08/20 23:14:00 ID : bdyNzbDtfU2
나는 그 아이가 아버지의 흰 와이셔츠 깃을 쥐고 울던 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유년기의 귀뚜라미 우는 여름밤에, 죽은 친구의 초상을 치르러 그 아이는 아버지의 등을 타고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 강물을 건너 산골짜기의 적요한 집으로 가는 내내 그 애는 울었다. 때때로 아버지는 어르듯 어린 아이를 업은 등을 춤추듯 덜썩거렸으나 이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묵묵히 걸었다. 어머니는 조금 초조한 표정이었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조금은 맹한- 부모님의 핀잔에 의하면- 나는 축축하게 땀이 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끔씩 코를 훌쩍거리면서 종종걸음으로 가족들을 따라왔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말없이 초상집 가는 길을 걸었다. 어렴풋이 흐느끼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풀벌레도 그 애와 같은 마음이었던지 우리가 가는 길 내내 구슬프게도 울었었다. 나는 조금 졸린 눈꺼풀을 껌벅이면서, 오늘을 아마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아버지의 옷자락과,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그 아이의 울음을. 왜, 노스텔지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겐 아버지의 와이셔츠가 그것이었다, 이제는 지나간 것들을 추억하는.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의 옷들을 불태우기 전 어머니가 정갈히 다려 놓은 흰 와이셔츠가 문득 눈에 띄었었다. 혹, 아버지가 죽었다고 한다면 너는 뭐라고 했을까? 그 때처럼 서럽게 울었을까? 물어보았자 내 가슴을 할퀴는 생채기임에 지나지 않음을 알면서 나는 반문했다. 이제는 아버지와 나란히 세워져 있는 그 애의 영정을 보면서. 젊어서 죽은 아이는 웃는 얼굴이 예뻤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걸 느끼며, 난 조용히 사진 액자 틀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다 문득 뺨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축축한 물기가 부드러운 살 위에 죽죽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벌겋게 열이 오른 눈가를 필사적으로 무시하다가, 결국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뜨거운 눈물이 시야를 흐리고, 쇳소리인지 짐승의 비명인지 모를 소리만 목구멍 너머에서 윽, 윽 하고 꿀떡꿀떡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손에 쥔 와이셔츠기 젖어들어갔다. 바스락 하고 손아귀에서 옷깃이 구겨지는 걸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제아무리 참으려 해 봐도, 결국엔 이런 짝이었다. -장미
이름없음 2019/08/20 23:31:33 ID : ZeIJO9wK6o2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어 졌습니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다가간 나에게 그녀의 가시가 꽂혔습니다. 그녀에겐 상처가 있었습니다. 16살때 옆집의 20살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것입니다. “너도 내 몸이 좋아서 그러는 거지!” 그녀의 말이 가시가 되어 쏘아 집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그녀에게 깊은 상처가 있는 걸 알았는데 어떻게 그걸 요구하겠어요. 저는 그녀의 다친 마음을 만져주고 싶었습니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하지 않을 거야. 너의 다친 마음, 내가 고쳐줄 수 있을까?”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 자리잡고 있는 깊은 상처는 가시를 쏘아댑니다. “너에게 상처주는 말을 마구 내 뱉을지도 몰라. 결국엔 너도 돌아서겠지.” 지금, 나는 아름다운 그녀와 사귄지 5년째, 아니 3년동안 사귀고, 2년동안은 부부의 연을 맺고 살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지내는 5년동안 그녀의 얼굴에도 웃음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마워.” 그녀의 나체를 사랑스럽게 보듬을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평생 오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행복합니다. 나는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아픈 가시도 점차 줄어드는, 장미같은 그녀와 함께....... 주제 : 청룡언월도
이름없음 2019/08/24 02:11:50 ID : hxO5Vhy1Cph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이 사 주셨던 삼국지를 자주 읽었다. 분명 어린이용은 아니었으나 책장을 펄럭거리면 생생하게 펄떡거리는 그림이 신기해서, 그리고 조금 더 커서는 삼국지에 푹 빠져서, 아마 종잇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그 책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마 잃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초록색 옷과 긴 수염, 적토마의 붉은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긴 창칼을 우뚝 쥔 대추색 얼굴의 남자. 삼국지의 다른 인물들은 몰라도, 난 그만은 기억했다. 언젠가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간 중국집의 카운터에서 그 남자의 목각상을 보았던 게 계기였다. 그리고 그 목각상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중국집의 카운터 위에 세워져 있었다. 여전히 긴 창칼을 손에 쥐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부리부리하게 노려보면서 말이다. 지금이야 남자의 이름이 관우고 그 창칼이 청룡언월도라는 것을 알지만, 어린 날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어린애가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유독 선명했던 건, 온통 초록색이며 거친 바람에 펄럭거리는 옷차림을 한 남자가, 그리고 눈이 아프게 빨간 털갈기를 한 말의 곁에서 서 있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어린 나의 눈에 보기에도 대단히 멋있고, 또 굉장히 '쩔어 보이는' 그림이었다. 비록 그땐 이름도 뭣도 몰랐었지만.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특히 긴 창칼을 휘두르면서 적들을 베는 장면은 내가 만화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였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꽤나 강도 높은 따돌림을 당했다. 인마, 새끼, 등신, 머저리, 병신... 온갖 모욕적인 인신공격은 물론 지속적인 '셔틀' 노릇을 떠맡으면서 내가 매일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아, 그냥 죽을까? 그때 즈음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하시고 이혼을 준비하면서 나의 이상야릇한 충동은 박차를 가했다. 아침에 학교를 가는 길에, 횡단보도의 초록불 신호를 기다리며 트럭 앞에 뛰쳐나가 볼까 생각했었고, 수업시간 내내 창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뛰어내려 볼까도 고민했었다. 우울증이 왔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 진짜 우울증이 왔었다. 하루 종일 죽음을 생각하고 오늘이 며칠인지, 내가 머리를 감았는지 아닌지조차 구분을 못했으니까. 그때 우연히 삼국지 만화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펼쳐 본 책장에는 그가 그려져 있었다. 관우 말이다. 위풍당당한 나의 영웅. 어쩌면 그는 진짜 나의 영웅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난 관우가 그려진 페이지를 잘라 지갑에넣고 다녔다. 어쩌면 나도 관우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자기암시와 함께. 그건 거의 지독한 맹신이요 동시에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몰아치는 폭풍우 사이의 구명줄 같은 거랄까. 그렇게 2년을 버텼던가? 드디어 난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개놈들과 작별하게 되었다. 사유는 갖가지 비행과 학교폭력 혐의로 인한 퇴학이었다. 놈들이 검은 손을 뻗은 상대가, 재수없게도 소위 '높은 분'의 자제였던 것이다. 시나리오가 뻔히 보인다. 그 멍청한 놈들은 꽤 잘 살아보이고 동시에 유약한 인상을 풍기는 안경잡이 멸치를 하나 붙들어서, 적당히 손을 봐주고 꽁돈을 뜯어냈을 것이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실컷 낄낄댔겠지. 그러게 좋은 말 할 때 순순히 상납했어야지, 응? 아마 그것이 본인들의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르고. 애지중지하던 외동아들이 험한 꼴로 집에 돌아온 것을 본 '높은 분'과 '사모님'께서는 크게 분노했을 것이다. 누가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학교 당국에 압박을 넣고, 범인을 색출해 온갖 혐의와 죄목을 덕지덕지 매달아 나락으로 꼴아박는다, 끝. 정말 전형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한 마디 첨언하자면, 나에겐 절대로 상투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다. 존나게 짜릿한 복수극이지. 나는 질릴 정도로 삼국지를 팔락거리며, 그리고 지갑 속의 관우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그 개새끼들을 지옥에 쳐박을 용기를 다졌다. 그리고 그 위대한 첫 발걸음을 떼기 위해서, 일단 병원을 찾아가 진단서를 뗐다. 증거사신이 될 만한 신체 사진을 충분히 찍어 둔 후에 말이다. 그들은 내게 SNS로 매일같이 욕을 퍼부으면서, 동시에 본인들의 계정에도 날 핍박한 증거를 자랑스럽게 올렸었다. 내가 고통스러운 과거를 전부 캡쳐하고 놈들의 계정에 올라가 있는 글과 사진들을 백업하자 그 수가 몇백장에 달했다. 정말 대단하더라,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그러나 제일 중요했던 건, 놈들이 건드린 안경잡이 멸치의 유일한 친구가 나였다는 것이다. 그 애는 돈만 썩어넘치게 많았지 인간관계에 있어선 영 꽝이었으니까. 난 그 애의 부모님이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가임을 알았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개가 순진하거나, 세상 물정을 몰랐다. 그래,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그 애를 조금... 이용했다. 그러니까, 그 개새끼들이 이 도련님을 괴롭히는 데 어느 정도는 일조했다는 뜻이다. ... 자세한 내막은 말할 수 없다. 그건 내가 살면서 드러낸 가장 어두운 일면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저 순진한 친구가 울면서 내게 괴롭힘당한 일을 늘어놓자마자 나는 대답했다. 복수하자고. 지금 네가 한 말을 전부 녹음해서 퍼뜨리면 그 새끼들 매장되는 건 식은 죽 먹거라고. 그건 사실이었다. 특히 빅-브라더를 등에 업고 적을 짓뭉개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훨씬 쉬웠다. 그리고 짜릿했다. 그 빌어먹을 사회의 버러지 종자들이 처참하게 으깨지는 꼴을 구경하기란 두번 다시 없을 기회였다. 나는 여전히 관우의 그림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청룡언월도를 들고 위풍당당히 서 있는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이다. 사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만화책의 한 페이지에서 찢어낸 이 종이 쪼가리가 나를 어떻게 바꿨는지. 내겐 그 그림이 관우의 청룡언월도요, 여포의 방천화극이었다. 끄트머리가 노랗게 바래진 그림이 이렇게 큰 힘을 가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랜만에 들린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난 생각했다. 10년 전과 똑같은 자리에 선 관우상이 내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 부리부리한 눈을 바라보며 난 살짝 눈을 찡긋해 보였다. -태양
이름없음 2019/08/24 20:18:32 ID : 1io5cHvharg
저 멀리로 해가 진다. 산 너머로 숨어버리는 햇님의 뒤를 따라 석양이 내려앉는다. 동쪽은 이미 완연한 밤, 내 곁으로 다가온 네 얼굴에 주홍빛이 어렸다. 곧 시작할거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붉게 타는 줄 알았던 해가 져간다. 원래의 해는 무서워 숨어버렸으니 우리가 만들어야지. 처음에 네가 이 말을 꺼냈을때 나는 네가 미친줄알았다. 이 세상엔 이제 영원한 밤이 올것이라고 모두가 포기했을때 너만이 희망을 외쳤다. 아직 시간이 있어요, 해는 오늘밤까지는 있을테니까. 고작해야 미성년인 꼬맹이의 급조한 계획에 과반수가 반대했다. 빠듯한 수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모두가 침묵했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듯 목청을 키우며 너무 허술한 계획이라고 비난했다. 많이는 필요없어요. 하고 싶은 사람만 나와요. 등을 돌려 떠나가는 네 뒤를 따라 나간건 고작해야 나와 널 잘 따르던 해일이, 그리고 안경 누나와 백수 아저씨뿐이었다. 쭈뼛거리는 해일이를 보고 너는 활짝 웃었었지. 태양은 네가 되어야해. 해일이 이름에 해 자가 들어가서 그래? 안경 누나를 보지도 않고 너는 대답했다. 해는 안돼요. 지금 있던 해도 졌는데 하나 더 있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우리가 만들건 태양이에요. 이 세상 가장 거대한 존재 태양. 그 아래서 어둠은 물러날거예요. 확실하냐? 백수 아저씨가 묻자 너는 고갤 저으며 해질녘을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몰라요. 그냥 가만히 죽기싫어서 나온거니까. 그리고 지금이다. 우리는 각자 얼마 남지 않은 빛가루를 탈탈 털어 해일이에게 건넸고 안경 누나와 백수 아저씨, 나는 삼각형의 꼭짓점에서 손에 나름대로의 무기를 든채 태세를 정비했다. 너는 해일이와 내접원에 들어서 모두를 지휘하기로 했다. 우우웅. 대기가 운다. 시린 바람이 얼굴을 핥고 지나간다. 골프채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상체를 낮췄다. 저 멀리서 어둠이 온다. 조심해! 안경 누나의 외침과 함께 곧 눈 앞이 어두워졌다. 딱딱하고 차가운 것들이 옷자락을 잡아챈다.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골프채를 정신없이 휘둘렀다. 골프장에서 휘둘렀다면 바로 장외가 될만큼, 그렇게. 팔뚝이 욱씬거리고 찢어진 바지자락에 들어난 발목에 어둠이 휘감아 온다. 몸이 무겁다. 정막 속에서 혼자 있는듯한 두려움이 치솟았다. 혹시 나 혼자 이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섬찟한 예감이 든다. 볼에 서리가 에인양 찢길듯 아팠다. 어깨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몇번이나 손잡일 고쳐쥐었는지 모르겠다. 덜컥 어둠이 울부짖는다. 더불어 비바람이 몰아치듯 찬기가 사방으로 뻗는다. 더이상은 버틸 수 없다. 단단히 힘을 주던 팔에서 힘이 나도 어쩌지 못할정도로 빠지는 순간. 후욱, 온기가 끼쳤다. 아.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누나와 아저씨가 나처럼 두리번 거린다. 엄마품처럼 등 뒤를 따뜻하게 감싸안는 빛에 홀린듯 뒤를 돌아보았다. 빛을 내는 것은 태양. 가히 세상의 가장 거대한 존재. 울음이 쏟아질것같았다. 주춤거리는 어둠을 향해 공격 태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포기하지 마요!! 태양이 여기, 태양이 있다. 다음 주제 : 쪽지
이름없음 2019/08/25 04:06:27 ID : koKY9yY2smN
상자에서 낡게 바랜 쪽지 하나를 꺼냅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그 시절 제가 가장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건 말간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와 나를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너었습니다.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 할 그런 구덩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했고 그건 언제나 내 속에 있었습니다. 그 구덩이 속에 계속 있고 싶었습니다.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구덩이 속에서 밀어내 밖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 . 나는 그걸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황급이 달려간 곳에 더 이상 천국은 없었습니다. 당신은 멀리 떠나간 후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종이에 모든 걸 적어내렸습니다.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적었습니다. 이제까지 보관하고 있던 소중한 추억입니다. 쪽지 한 장은 그렇게 다시 상자 속으로 들어갑니다. 언젠가 힘들 때 나의 위로가 되어주겠죠... 다음은 <도서관>
이름없음 2019/08/25 07:54:38 ID : ZeIJO9wK6o2
휴일이면 엄마는 동거남과 싸우기 바빴다. 그 싸움이 너무 격렬하여 나는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집 앞 도서관으로 향했다. 동생과 함께 장서실에 들어가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책을 읽었다. 동생은 배고프다고 칭얼거렸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동거남 사이에 오가는 고성이.......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잠이 든 동생을 들쳐 업고 그렇게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 엄마!” 엄마는 두 눈을 부릅 뜬 채, 바닥에 엎드려 꼼짝도 하질 않았다. “엄마. 엄마!” 나는 엄마를 마구 흔들었다. “엄마! 일어나! 일어나라고!” 높아진 내 목소리에 동생이 잠에서 깼다. “오빠 무슨 일이야.......” “영미야.......” 나는 다리가 탁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동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엄마에게 향한다. “엄마? 엄마 추운데 왜 여기서 자?” 어린 동생의 순수한 모습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영미야.” 나는 영미를 끌어 안고 펑펑 울었다. 영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며 나를 밀쳤다. “오빠 왜그래.” 나는 엄마가 죽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미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영미가 엄마를 흔든다. 일어나라고. 배고프니까 밥 달라고. 하지만 엄마는 꼼짝하지 않았다. 잠시 패닉상태에 빠져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엄마가 살해 당했다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같이 살던 남자라고........ 잠시 후, 경찰들이 몰려와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락커로 엄마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표시하고 엄마를 어디론가 옮겼다.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한다고 했다. “오빠. 나 배고파.” 동생의 칭얼거림을 들은 한 경찰 누나가 우리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꼬마야.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그 누나는 영미에게 다가왔고, 영미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그런 영미을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우리는 집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돈까스. 돈까스. 돈까스 먹을래.” 우리는 몇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영미는 천진하게 잘 먹었지만,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시설에 맡겨지게 될까? “너도 배고프지? 좀 먹어봐.” 누나가 친절하게 이야기 했다. “네에.” 그래 그런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맛있는 음식을 보니 배가 고파져 한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그날 밤, 우리는 그 누나네 집에서 하루동인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의 언니라고 하는 사람, 그러니까 우리에겐 이모가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를 찾아 왔다. 하도 울어서 퉁퉁부은 얼굴로 우리를 보더니 또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어린 것들을 놔두고. 아이고.” 이모는 우리를 끌어 안은채 큰 소리로 울었다. 이모라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이제보니 생각났다. 엄마는 유일한 혈육이라면서 언니와 찍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이모는 또 소리내어 울었다. 엄마의 사인이 나왔다.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목이 눌릴때의 괴로움으로 저항하던 엄마의 손톱밑에서 검출된 피부조각의 디엔에이를 검사한 결과 범인은 역시 동거남이 맞았다. 경찰은 지명수배릉 내리고 최선을 다해 범인을 검거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엄마의 시신을 넘겨 받아 장례를 치루었다. 이모는 끝까지 함께 해주었고, 우리는 이모집으로 들어 갔다. “이모. 죄송하지만 학교는 다니고 싶지 않아요.” 이모의 어머어마한 저택의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이모부의 어마어마한 서재에 압도당한 나는 이모부의 허락을 받고 그 곳에 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만의 작은 도서관. 나는 그곳에 처박혀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우리는 이모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릴적의 독서는 나를 지혜롭게 하였고, 지금은 명문대 정치학부에서 공부하며 올바른 정치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날 도서관에 가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결국 엄마를 죽인 것은 나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동거남과 싸우던 엄마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독서....... 독서는 내 인생의 8할을 키웠다. The end. 주재 : 레드 드래곤 「아르타니스」
이름없음 2019/09/04 23:04:38 ID : yY1a3wso7zg
비는 그의 눈물이요, 천둥은 그의 울부짖음, 땅의 울림은 그의 목소리이며, 화산은 뜨거운 그의 성정이다. 온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니, 바로 적색거룡 아르타니스이다. 그, 아르타니스가 개입하기 전의 대륙은 삭막했다. 있는 거라곤 흙과 모래, 그리고 돌뿐이었다. 가끔 초목이 자라긴 했으나 척박한 환경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시들었다. 그런 대륙에서 거룡의 유일한 낙은 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대륙은 늘 변함없음을 유지했으나, 하늘은 시시각각 다양한 색으로 변했다. 오랫동안 주위를 밝히는 커다란 광원이 사라지면 수없이 많은 작은 광원들이 하늘을 메웠다. 마침내 그것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게 되면 그는 그 아름다운 것들을 배경으로 잠자리에 들곤 했다. 어느 날, 눈 한 번 깜빡이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로 하늘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는 자는 것도 잊고 큰 광원이 떠오를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았다. 작은 광원들이 점차 사라지고 주위가 밝아지자 거룡은 울기 시작했다. 그는 오랫동안 울었고, 흐른 눈물은 대륙을 적셨다. 신음하는 대륙을 뒤로,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가 울음을 그쳤을 땐, 대륙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후였다. 며칠밖에 살지 못했던 시한부 생의 초목들이 생명력 짙은 그의 눈물로 긴 생을 얻게 되어, 벌건 흙과 모래를 비집고 그를 향하여 자라난 것이다. 또, 초목이 번성하자 그를 닮은 작은 생명들이 생겨났다. 그 생명들은 저마다 다른 행동을 보여주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하는 모습은 매일 거룡을 놀라게 했다. 하늘을 보는 것만이 낙이었던 그에게, 그 작은 생명들은 매일 즐거움과 기쁨을 가져다주었지만, 거룡의 나이만큼의 시간이 흐르자 그 작은 것들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생명력이 다 해 가는 것을 매일 지켜보던 그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가 작은 것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작은 광원들이 수백 번 하늘을 메우고 난 뒤, 거룡은 울다 지쳐 잠시 눈물을 거두었다. 겨우 생을 부지하던 작은 생명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빠르게 번성했다. 거룡이 다시 기운을 차렸을 때는 그들이 장대한 문명을 이룩한 뒤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거룡으로부터 탄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 작은 생명체들이 거룡을 찾아왔다. 그는 신기하게도 그들이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거룡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다. 개 중에는 그들의 기원과 그들이 쓰는 힘의 원천에 대한 것도 있었다. 거룡은 무엇 하나 빠짐없이 답해주었다. 그들은 그의 답에 만족해하며 큰 감사를 표하고 돌아갔다. 거룡은 그들에게 도움이 된 게 기뻤다. 그리고 막연하게 알아챈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가 울고 난 뒤면, 생명이 자라났다는 것이다. 그의 도움을 받아서였던지, 그들 스스로 일궈낸 것이었던지,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거룡은, 그에게 있어서 아주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 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작은 생명체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알게 되었다. 그의 눈물은 생명체들에게 번성을, 울음소리는 반성을, 뒤척임은 공포를 주었다. 거룡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적절히 이용하여 그들, 생명체들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홀로 보낸 시간이 무색하게, 그는 다음에 오게 될 생명체들에게 그리움을 품었다. 다음 주제: 비틀린 애정
이름없음 2019/10/13 12:35:06 ID : eJPbeE67zfa
갱신!
이름없음 2019/10/13 23:55:14 ID : p87htbeE8lw
사랑해ㅡ라 말했던가. 지x도 심하면 병이다.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 같은 동아리도 아니었고 같은 반도 아니었다. 다니는 수학학원이 같았을 쁜이고 그마저도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어쩌다 자리를 비켜줘야한다는 용무가 생긴다면 모를까, 그녀와 나에게 있어서 대화란 요원했고 아는 사람으로의 관계개선은 이뤄지지 않을 것같았다. 실제로도 이뤄지지 않았지ㅡ 당연하다. 인생이 만화도 아니고 갑자기 찾아와 이러쿵 저러쿵 말해댈 명분이 없잖은가. 그녀가 없어지기 전까지 나눈 대화라곤 단답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전혀 몰랐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5월 21일, 그녀가 땅으로 올라가기 하루 전, 사랑해란 말을 들었던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 속하는 이의 고백은 참 황당하기만 하다. 언제 나에게 관심을 표출하였으며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혹시 티가 팍팍 나는데 나만 몰랐던 건가? 신이 나서 얘기하는 그녀를 잠시 멈춰세우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나냐고. 이런 볼품없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 외에도 왜 이렇게 고백을 하는지등등 물어볼 것은 많았으나 생각의 가위에 잘려버렸다. 가관이었다. 그냥. 그냥 좋댄다. 그래, 인간관계 참 알다가도 모츠니 그냥 좋을 수 있지. 거기까진 이해해. 왜 좋은데? 물어보니 그것도 그냥이랜다. 어쩌라는것인지. 내게 있어서 그냥을 연발하는 그녀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문제를 푸는게 낫지ㅡ라 생각한 나는 고백은 감사하나 아무래도 난 당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같다라고 돌려보냈다. 아련하게 눈물 한 방울 휘날린 것 같았으나 그 정도는 혼자 인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실연에 옥상에서 몸을 날릴 거라곤 상상의 상상에서조차 상상못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녀에게 무리한 애정행각을 요구했기 때문에 아직 사랑하지만 감당하기 힘들어 떨어졌다는 그녀의 유서는 거짓이다. 정 못 믿겠다고? CCTV라도 돌려봐라. 난 절대 그녀에게 달콤한 세레나데를 속삭인적이 없고 은밀한 만남을 가지자 한 적도 없으며 달콤한 마음을 품고 았던 적도 없다. 나는 완전히 결백하다. 십수년 짧은 인생 모두를 걸어서라도 자신할 수 있다. 그녀의 유서는 날 옭아매기 위한 밧줄일 뿐이다. 난 1년전 예리말곤 좋아해본 사람이 없다. 진짜다. 내가 뭣하러 그런 여자아이를 좋아했겠는가? 슬프게도 학교 sns에서 이와 관련된 소문이 돌고 있음을 들었다. 그건 죽은 그 X 기분만 좋게 해주는거다. 제길, 피해자는 난데 왜 걔가 동정을 받는거냐고. 지금 솔직히 말해보자면, 억울해 죽엤다. 미쳐서 팔짝 뛰고만 싶다. 지금 이걸 보고 있는 당신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자면,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내가 암만 말해도 나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믿어주질 않는다. 이미 여론은 기울어졌고 다들 나를 쓰레기 취급하고 있다. 난 사랑에 대해서도 범죄에 대해서도 결백하다. 미안하다, 계속 말이 반복되는데 흥분해서 그렇다. 이 모든것은 그녀가 날 죽어서까지 자기걸로 만들기 위해 벌인 일이다. 알겠는가? 이 모든 것은, 그녀의 비틀린 애정탓이다. ㅡ다음 주제:바보
이름없음 2019/10/14 10:08:22 ID : fU1CqjbfRCi
갇혔다. 갑자기 창궐한 전염병 바이러스로 인해, 자그마한 시골 복지소 건물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복지소 건물은 전부 3층. 각 층에는 복도와 고작 4개의 작은 방이 있을 뿐이다. 갇힌 사람은 8명. 그 중 대부분인 넷은 50대의 남성이다. 때를 맞춰 동네친구들끼리 모여 혈압약을 받으러 왔다 시기를 놓쳐버리고 만것이다. 나머지 4명 중 두 명은 각각 의사와 간호사로 대체복무로 공중보건의로 와있는 어린 남자의사, 30대 후반의 남자간호사였다. 그리고 남은 두 명 중 한 명은 보건소에 봉사활동을 하러 온 날 따라온 동네 바보. 굳이 성별을 표기하자면 남자다. 나와 동갑. 그러니까 절망적이게도 식수와 식량이 제한된 좁은 건물안에 갇힌 이들이 20대 여자인 날 제외하면 모두 사지 멀쩡한 남자라는 이야기였다. 성별을 떠나 모두 생존을 향해 인간성이 돌변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시점에서 홀로 여성이라는 점은 내게 너무나 불리한 요소였다. 게다가 보건소 내의 인물들은 내게 전부 초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색한 사이. 수도권 대학을 다니다 방학 때 봉사활동 명목으로 오늘 막 보건소에 방문한 날 알아보는 사람 같은건 아무도 없는게 당연했다. 동네 친구인 아저씨 넷은 당연히 협심해서 행동할 것이고 의료진 두 명도 서로 의지하겠지. 그나마 내게 남은 선택지라곤 동네 바보가 있을 뿐이지만 바보는 바보일 뿐. 어렸을 때부터 내게 호감인지를 귀찮게 보내며 놀자고 들러붙던 녀석이지만 한번도 녀석과 어울려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그는 이상한 냄새가 났고 기분나쁜 장난을 쳤고 대화가 통하질 않았고 모두가 멸시하는 대상이었다. 그는 내게 어떤 도움을 주기는 커녕 나와 관계된다면 내가 먹여 살려야할 입을 하나 떠맡게 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할 것이었다. 큰일 났다. 바깥은 오염된 흙과 수증기로 인하여 통행이 불가능한 상황. 전파는 터지지만 굶주림에 이성을 잃은 인간이 어떤 짓을 저지른다 할지라도 그것을 막아줄 공권력이 찾아오길 기대할 수가 없는 상태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 하나를 차지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다행이 안에는 생수통을 끼워쓰는 정수기 한대와 커피와 녹차티백, 둥굴레차 티백같은 것이 있었다. 거기다 캐비닛을 뒤지니 커피믹스는 100개짜리 한박스가 나오더라. 커피원두는 모르겠지만 설탕과 크림가루는 귀중한 식량이었다. 당황하여 쫓기듯 아무 방이나 골라 스스로를 가둬버린 상황에 이 정도로도 충분히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바깥의 그들은 처음 하루는 상냥하게 잠긴 문을 두드리고 불안해하는 나를 이해못하겠다는 듯, 그러나 달래려는 듯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안에서 대답이 없자 다음 날 부터 욕설과 협박이 날아들었다. 안에 있을 식량을 나눠가지기가 싫어 모두를 기어코 굶어죽게 만들 년이라고 부서질 듯 문을 두드리는 쾅쾅 두드리는 굉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젊은 의사는 안에는 커피와 물뿐이다. 바깥에도 그건 많지 않느냐, 또 내게는 바깥에 정수기 물통이 많은데 그 한통으로 버틸수 있겠냐는 둥 나와 동네 아저씨들 사이를 중재하고 내가 문을 열도록 설득하려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그러나 나는 미친소처럼 흥분하기 시작한 아저씨들의 횡포에 말문이 닫혀버렸고 그도 그런 아저씨들의 태도에 질렸는지 간호사와 같이 입을 다물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 결국 내가 마실 물은 동이 나고 말았다. 충전기가 없어 방전되버린 스마트폰은 내가 얼마나 더 이 굶주림과 갈증을 참아야 하는지 알려줄 수도 없었다. 한발짝 한발짝 뛰어 다가오던 지옥이란 놈이 결국 코앞에 머리를 디민거였다. 난 어떻게도 저항할 수 없었다. 그저 절망. 죽음과 폭력과 갈증으로 말라비틀어지는 고통속에 죽어가는 미래 예지만이 내 머릿속을 깜박깜박 밝혔다. 하루는 그저 참았다.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배뇨활동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기적적으로 나에게 한계가 찾아오기 직전에 날 구원해주러 올 외부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형편좋을 일이 마침 생겨날 리가 없었다. 환기를 전혀 하지 못해 쿱쿱하고 더럽게 느껴지는 공기를 섧게 마시며 나는 흐르는 눈물을 받아다 다시 입속에 넣었다. 미련하게 자꾸,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귀찮게... 손가락으로 눈가를 조심스럽게 훔치며 나는 계속 조심스럽게 받아마셔야만 했다. 한방울이라도 바닥에 떨어질까.. 그러나 정말 미련하게도 제 살을 깎아먹는 그 진물 마저도 혀를 적시니 한동안은 기분이 좋아서 우는데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람. 더 기다릴 순 없었다. 죽기전에 행동하려고 해봤자 힘이 없어서 실패할 것이다. 그러니 뭔가 하려면 지금, 아니 지금도 좀 늦은 감이 있었다. 나는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빨리 내가 마실 수 있는 물을 찾아 안전한 공간을 확보해야만 했다. 문으로 나가는 것은 위험했다. 문 앞에 아마 뭔가를 쌓아놓았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소리로 추측해보면 문을 깨부수기 위해서 던지고 내리치던 의자나 기타 잡기들이 또 며칠 후에는 날 가둬놓기 위한 소품으로 쓰인것 같았다. 어차피 날 끄집어낼 수 없다면, 내가 저들의 식량을 몰래 훔치지 않을까가 뒤늦게 걱정이 된 거겠지. 그러므로 문은 포기했다. 사실 그보다도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소음, 내가 문밖으로 나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을 미지의 무언가가 너무도 두려워 그들의 예상 범위 안으로 감히 뛰어들 수가 없었다. 사무실의 커다란 창문에는 두껍고 긴 커튼이 달려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찢고 묶어 긴 천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커튼 고리를 휘어 갈고리 모양으로 만든 뒤 창틀에 걸고 밤을 틈타 아래층 창문으로 내려갔다. 손으로 밀어보니 창문은 잠겨있었다. 기분탓인가 오랜만의 바깥공기가 너무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먹은 것도 없는데 갑자기 활력이 생긴것 같기도 햭다. 갇히기 전 뉴스로는 땅과 땅 위를 흐르는 강 일부가 오염되어 수증기조차 위험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니 그런 위기 의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당장 눈앞에 닥친 또하나의 죽음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일까, 나는 전염병 바이러스가 크게 두렵지 않았다. 갈증이 너무 심해진 나머지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확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잘 될것이다. 난 살아남을 것이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운동화가 유리 창에 부딪히자 먹먹한 빗소리 같은 것을 부르짖다 잦아들았다. 벽을 타고 올라 다시 원래 방으로 돌아간 뒤 갈고리를 풀어 옆방 창문 가에 던진 커튼 줄을 잡아당기자 팽팽하게 늘어졌다. 죽음의 공포를 또다른 죽음의 공포로 극복하면서 나는 마치 벽타기 선수라도 된것마냥 벽을 밟으며 옆 방 창문 아래로 진자운동 하듯이 순식간에 이동했다. 소음이 좀 거슬릴정도로 나고, 숨이 헐떡이는걸 참을 수 없었다. 몸무게를 지탱하는 팔이 겁을 먹은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고양감에 휩싸여 부들부들 떨리다 뜯겨져나갈 듯 했다. 잠시 귀를 기울여 무슨 소리가 나지 않는지 살폈다. 시끄러운 나의 심장소리뿐 딱히 인기척은 없는 듯 했다.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곧장 창턱으로 기어올라 창문을 밀었다. 그 기이한 예감 덕분일까, 거짓말처람 창문이 드르륵 밀렸다. 아쉽게도 이 방은 마실것과 먹을 것이 없는 방이었다. 만약 있었다면 몸싸움이 벌어졌을 테니 뒷일을 알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최후를 빨리 재촉할 필요는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고 다시 이번엔 이 아래 방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조심이 기어 내려가 손으로 밀자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덥고 텁텁한 공기가 확 풍겨져 나오며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안 들키고 물을 훔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곧장 창문을 더 밀어젖히고 물을 찾았다. "뭐야...."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순간 나는 생수통을 막 품에 안고 있었다. 악 소리나게 무거운게 무서우면서도 설렜다. "야.. 누가 창문 열었어...?" "뭐라고..?" 슬슬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쯤에 나는 막 창문가에서 매달린 줄을 잡고 있었다. "저 미친!" 달빛은 내 등을 비췄고 홉뜨여진 그들의 눈동자도 비췄다. 그들은 내 존재와 활짝 열린 창문에 기겁했다. "야! 창문 닫아! 죽고 싶어?!" 고맙게도 그들은 도둑을 눈 앞에 두고도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물러나려 하고 있었다. 순간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계획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바이러스의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결코 식량을 빼내 올 수 없었을 것이었다. 기아와 갈증에 평소처럼 사고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 이런 구멍을 만들었던 거였다. 뜻밖의 원인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난 또다시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가 있었다. 기껏 물통을 훔쳐서 무사히 방을 탈출했건만 무거운 물통을 들고 매달려 있는 온몸이 너무 무거웠다. 나는 물통과 함께 떨어져 죽을 것이냐 물통을 버릴 것이냐 두 선택지가 남아버린 상황에 미칠것 같았고 웃음이 나왔다. 이럴 수는 없다. 내 팔이 이 줄을 잡지 못할 수는 없어. 그럴 순 없는 거야. 아니 여기서 이게 이렇게 된다는게.. 말이 되냐고? 소리를 질렀다. 이대로는 죽는다. 죽기 싫으면 여기서 물통을 포기해야한다. 더 매달려 있을 수도 없었다. 팔꿈치 관절이 뜯기듯 늘어나는 것 처럼 느껴졌다. 너무 아프고 온몸이 욱신 저렸다. 그 때였다. 커튼 줄이 매달린 윗 방의 창턱 아래로 한 사람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 숨도 쉴 수가 없었다. 희끄무레하게 흐린 눈앞을 달빛이 빛과 어둠으로 나누었다. 공포가 서서히 그 얼굴 위에서 한 거풀을 벗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왠지 낯설게 느꺼지는 우리 동네 바보의 웃는 얼굴. "....."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나진 않았겠지만 나에겐 그 위치의 인물이라면 지금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그는 타인에게 악의를 가질만한 지능이 허락되지가 않았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바보는 내가 걸어놓은 갈고리를 들어 창틀에서 빼내는 듯 하더니 갈고리가 옷과 엉켜 나와 함께 아래로 상체가 훅 딸려갔다. 나는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물통과 줄만을 붙잡고 있었다. 뭐라고 말할 여유가 없없다. 아픈 짐승처럼 숨을 짧게 씩씩거리고 몸을 떨며 매달려 있는 나를, 그는 줄을 당겨 방 안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마침내 창틀에 내 발이 닿고, 내 몸이 안전한 곳에 착지했을 때 그는 날 보는게 아니라 팔에 엉킨 커튼줄을 보고 있었다. 갈고리가 걸린걸 빼내려다 되려 더 엉켜버린 모양이었다. 그가 힘주어 잡아당긴 덕분에 나는 방 안으로 올라올 수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당연스레 내게 줄이 묶인 오른팔을 내밀며 뭔가 소리를 냈다. 풀어달라는 뜻이겠지. 나는 그의 오른팔을 잡고 그가 창틀에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그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그는 어어- 하는 소리를 내더니, 아래로- 추락했다. 떨어지는 소리는 났는데, 몸이 튼튼한 그는 정신을 잃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생생히 독기가 맺혀 듣는 내 몸의 온몸에 털을 세웠다. 끔찍한 울음소리였다. 난생처음 감정을 깨우친 짐승이 있다면 이런 소리를 낼까. 나는 문을 잠그고,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그도 그럴게, 너도 나 죽이려고 했잖아? 아까 그는 날 죽이기 위해 갈고리를 빼내려던 거였다. 그러다 엉켜버리지 않았다면 저 곳에 떨어진 것은 내가 되었겠지. 그 며칠간의 굶주림이 짐승에 가까운 바보에게도 먹는 입이 줄면 자기 몫이 늘어난다는 걸 깨우치도록 한 걸까. 바이러스가 천지라더니 바보는 빨리 죽지도 않고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목이 찢어져라 울어도 아무도 와주지 않자 제풀에 지친 바보는 점차 씨끈대더니 절뚝거리면서 멀리로, 안개 저 편으로 발걸음 소리는 그렇게 점점 사라져갔다. ---다음 주제:캔디
이름없음 2019/10/25 09:29:17 ID : k1fQsrxO8i2
ㄱㅅ
이름없음 2020/02/06 12:00:04 ID : yGreY1cny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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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0/02/06 15:41:48 ID : imNumljy6i5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커피맛사탕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알러지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죽은 절친이 가장 좋아하던 게 바로 그 커피맛사탕이었기 때문이다. 걔는 항상 주머니에 사탕을 가득 넣고 다녔다. 자기도 하나 먹고, 다른 사람도 하나씩 나눠주고는 했다. 하도 익숙해져서 나는 왜 하필 커피맛사탕이냐고 툴툴대기도 하고, 이제 그만 줘도 된다고 거절한 적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녀석은 가만히 웃으며 커피맛사탕을 또 한 개 까서 자기 입에 넣고는 했다. 녀석은 말했다. "인생이 쓰니까 사탕 하나로 기운을 낼 수 있는거야." "그럴 수도 있겠네." "너도 네가 좋아하는 사탕을 찾아 봐. 분명히 더 기분이 좋아질거야." 지금은 알고 있다. 그 커피맛사탕은 단순한 사탕이 아니었고, 이제 두번다시 녀석이 줬던 것 같은 사탕은 먹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녀석의 영정 앞에 커피맛사탕을 올려놓고 나는 울었다. 그러자 묘한 일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사탕을 가져와서 영정 앞에 올려놓는 것이다. 시작은 그 애의 부모님부터였다. 아버님이 가져오신 인삼캔디와, 어머님이 가져오신 박하사탕이 녀석의 영정 앞에 놓이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탕이 수북히 쌓여갈수록 나는 오열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사탕이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그날 밤, 조문객들은 모두 그 사탕들을 나누어 먹었다. 녀석이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했으리라. 빈소를 지키는 동안에도 사탕은 지친 육신을 달래주는 것처럼 마냥 달았다. 나는 여전히 커피맛사탕이 입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탕은 누룽지맛 사탕이라고 말할 정도는 되었다. 때때로 사탕처럼 녹아내리던 녀석의 미소를 떠올린다. 그러면 조금 더 살만해진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제: 치유
이름없음 2020/04/03 21:19:54 ID : WnTSMmGpT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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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0/04/23 11:53:12 ID : u3yIGtzak8i
내가 바라는 건 치유가 아니다. 이 상처의 피가 멎고 딱지가 생기고 그것마저 떼어져 종내엔 말끔하게 되더라도, 그건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 다시 되돌아가는 것. 진정한 의미로서의 회복.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 아니면 하다못해 상처가 치유된 후에 내 기억을 없애 나 자신은 이게 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하지만 네가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서뿐이다. 너는 절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고 그걸 알기에 나는 네게 그걸 요구하지 않는다. 너에게 화내지도 않는다. 화낸다고 없었던 일이 되겠는가. 다만 같은 일이 반복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자 냉정히 널 밀어내는 것이다. 용서야 해줄 수 있다. 나는 이미 널 용서했다. 널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 다음 주제: 명왕성
이름없음 2021/10/16 21:06:13 ID : A45hBta08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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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1/10/16 21:20:14 ID : A45hBta08mE
어릴적 나는 우주나 행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밤에 밖에서 돗자리를 깔아주셨고, 나는 그 돗자리에서 별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빠에게 태양계에 대해 배우고, 별자리에 대해 배우고, 우주에 대해 배웠다. 아빠는 명왕성을 유독 자세히 설명해주었고, 나는 졸린 눈을 깜빡이며 명왕성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갔다. 하나 하나 나이를 먹고, 내가 중학교에 갈 시절이 되었을 때. 나는 그때도 우주를 보는 걸 좋아했고, 그 때문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우주나 명왕성을 포기할 수 없었고,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절정은 중학생이 되었을때였다. 이제 애들은 날 안친한 아이가 아니라, 기피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2006년 8월 24일. 따돌림 속에 괴로워하던 그때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으로 박탈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행성으로 분류되었고, 134340이라는 답답한 분류번호를 가지게 되었다고. 나는 아빠의 품에 안겨 울었다. 사실 내가 운게 정말 명왕성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명왕성 핑계를 대며 따돌림에 대한 괴로움을 쏟아낸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8월 24일은 그렇게 통곡의 날이 되었고, 나는 그 후로부터 우주에 대해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말고, 다른 곳에서 점점 사람을 만났다. 친해지고, 믿고, 의지하고. 처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쌓이자, 명왕성은 한참 뒷전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는 과거에 내가 우주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조차 흐릿해졌다. 그리고 부모님께 중학교때 따돌림에 대한 설움을 풀었다. 나는 울지 않았지만 울 지경까지 갔었고,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명왕성이 널 사랑했나 봐. 널 위해서 왜행성으로 태어난 거야. 네가 자신에게 너무 빠져있으면, 네가 힘드니까. 아빠는 감정적인 위로는 못했지만, 그 말은 충분히 감동을 주었다. 실제로 명왕성엔 하트 무늬가 있지 않는가? 나는 실제로, 명왕성에게 사랑받는지고 모른다. 주제: 인어
이름없음 2021/10/18 21:52:31 ID : g4Y08qlxyIJ
" 저거 봐, 호수에 인어가 있어. " 침묵을 깬 것은 그 아이의 탄성이었다. 철망 너머, 호수는 그때까지도 조용히 물결치며 스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노란 두 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옛 이야기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해양 생물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 인어를 믿으면 잡아먹히고 말아. "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꽉 잡고는 뒤돌아 성큼성큼 걸었다. " 인어는 외롭지 않을까? " 어린아이다운 상상이다. 자신이 인어와 친구가 되어 주고 싶을 법도 하다. 그러나 물가는 안 된다. 괴물이 산다. " 인어도 친구들이 있을 거야. 외롭지 않을걸. "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려 머리를 쓰다듬는다. " 네가 인어에게 가 버리면, 내가 더 외로울 거야. " 그 아이는 인어에게 간 것 같다. 인어는 그 아이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부드러운 머리카락부터 하얀 손, 작은 발까지 모두 말이야. 아마 인어는 너와 친구가 되기 싫었나 보다. 주제: 우주선
이름없음 2022/03/06 19:16:54 ID : A45hBta08mE
나는 보았다. 우주선이 나와 멀어지는 걸. 길게 이어진 줄이 나를 잡아채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보았다. 나를 포기하고 떠나는 그 우주선을. 내것이라 생각했던 우주는 내것이 아니였다. 나는 우주에 홀로 떠다닌다. 우주에는 발 딛을 것이 없다. 나는 누워있는지, 서있는지도 모를 그 암흑에 있다. 보이는 건 반짝이는 별들 뿐. 나도 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너무 어두우니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며 바뀌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이 우주복은 얼마 버티지 못한다. 내 죽음을 시간으로 매기고 싶지 않다. 영겁인지, 찰나인지. 세지도 못할 그 시간을 그저 즐기고 싶다. 암흑이 날 잡아먹는 기분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내 꿈을 달성했던 그 환희가 어제같았는데. 어느새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시야가 뿌옇지만 닦지 못했다. 외롭다. 춥다. 실제로 춥지 않겠지만, 마음이 얼어버릴 듯 춥다. 나는 혼자다. - 카네이션
이름없음 2022/03/06 20:28:06 ID : WjfWjjwGty7
흔히 카네이션은 어버이날 부모님에게 드리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꽃말에 자신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으면 어떤 꽃이든 상대방에게 선물해도 괜찮지 않을까. 처음 그 사람을 만난 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려움에 처한 나를 몇번이고 구해주었고, 꽃을 좋아한다며 나를 넓고 화려한 화원에 데리고 가 이런저런 꽃들을 구경시켜 주곤 했다. 그의 집에 초대받아 꽃 이야기로 그칠 줄 모르는 환담을 나누곤 했다. 그 이후로도 많은 교류가 있었고 점점 시간이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그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걸 자각했을 때, 남들과는 조금 색다른 고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내 손에 들린 카네이션 다발을 슬그머니 내려다 보았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같이 전달하고 싶어 고른 꽃. 항상 나를 정성껏 신경써 주는 그에게 열렬한 사랑과 감사하고 있다는 두 메시지를 동시에 담은 분홍색 카네이션. 나는 들뜬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로 향했다. 분홍색 카네이션 꽃말 검색해봤는데 여기저기 전부 다 제각각이라 저게 맞을지 모르겠다ㅠㅠ 다음 주제: 괴도
이름없음 2022/03/08 22:30:50 ID : kpPjvwtvzUZ
나에게 괴도는 어렸을 적 티비에서 봤던 애니, <괴도 키드>의 주인공이다. 흰 정장에 푸른 띄가 둘린 실크 햇(탑햇)을 쓴 청안의 소년. 그러나 그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하나의 꿈일 뿐이다. 나는 자랐고 그건 몸뿐만이 아니다. 그저 내 어린 시절을 더불어 산 하나의 추억일 뿐이다. 아, 이런 생각을 할때면 꼭 과거형이던데. 그리고 내 눈앞에 진짜 괴도가 나타나다던가? 하하... 그러면 진짜로 좋겠다만. 난 현실을 산다. 그리고 난 이 추억이 당황 섞인 회상이 되길 바란다. 안녕, 나의 어릴 적 영웅이여. -손
이름없음 2022/03/12 17:35:49 ID : koKY9yY2smN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작은 나뭇잎 하나가 손 위로 떨어졌다. 아직 푸르른 은행잎 하나. 가을인데도 노랗게 변하지 않은 잎. 너는 무슨 꿈을 꾸었기에 노란 빛을 버리고 이리로 떨어졌나. 푸른 빛을 꿈꾸었기에 그대로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노란 꿈을 꾸었지만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붉은 꿈을 꾸었기에 슬퍼하며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너는 어땠는가. 너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아마 내가 그 손을 잡아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 손이 네가 마지막으로 뻗은 손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손을 잡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너는 그대로 떨어졌을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했을까? 그렇다면 너는 떨어지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물어봐도 답은 없다. 이제 내가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네 손에는 닿지 못한다. 나는 그저 떨어지는 나뭇잎을 손 안에 고이 잡아서 놓는다. 그게 네 손이라도 되는 것 마냥 다음 주제는 비밀
이름없음 2022/04/09 02:32:04 ID : Bgrs1cq2JWn
졸업사진을 보니 몇 년 전 일이 떠오른다. 청소 당번이었던 나는 쓰레기통만 비우고 얼른 집에 가 놀 궁리를 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자루에 대고 탈탈 털으며 게임을 할지, 그냥 잘지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반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청소 당번이냔다. 내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겠냐고 대답하자, 그 애는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뒤로도 그 애는 별 쓸데없는 질문들을 몇개 더 던졌고, 착한 나는 일일이 다 대답해주었다. 조금 대화를 나눠보니 어색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웃을 때마다 그 애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에는 딸기맛 사탕도 받았다. "수고해. 내일 봐." 그 말을 끝으로 아이는 쓰레기장 밖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길게 대화를 나눠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애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것도 처음 보았었다.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좋은 일이 있었나? 내 작은 농담에도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웃던 그 아이의 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나는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그 애에게 돌직구로 물었다. "어제 너 뭐 좋은 일 있었어?" 내가 묻자, 그 애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은 것처럼 보였다. 필요 이상으로 당황해서 오히려 내가 더 놀랐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 어? 왜?" "아니, 어제 너 기분 좋아 보이길래." 그 애는 나와 눈조차도 맞추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단어 하나를 툭 내뱉었다. “비밀이야.” 그랬었지,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싶다. 무슨 비밀이었길래 그렇게 신이 나 거의 남남이었던 내게 말을 걸었을까? 그 친구는 졸업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다. 졸업앨범 뒤편에 써져 있는 전화번호부에서 그 아이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어본다. 다음 주제: 눈물
이름없음 2022/04/24 03:40:07 ID : i5O4JXxO03u
눈물을 맛본 적 있어? 혀 끝을 톡 쏘고 지나가는 짭짤한 감각, 그 뒤에 퍼지는 비릿한 단맛. 너무 울어버리면 코가 막혀서 제대로 맛볼 수 없어. 자주 우는 것도 그 맛을 퇴색시키지. 아주 가끔, 눈물이 고여 흐르는 감각조차 흐릿해질때쯤 한 번씩만 울어야 달콤한 눈물을 맛볼 수 있어. 그러니까 그만 울지 그래? 다음 주제 : 커피
이름없음 2023/08/14 21:34:47 ID : 1fXBzfhAp9b
나는 쓰디쓴 커피를 마시다 말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내 맞은편 그녀는 나를 못마땅한 듯 쳐다보더니 이내 가방을 들고 매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와 그녀는 더 이상 운명도 뭣도 아니라는 것을 커피에 비친 내 얼굴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녀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커피를 마셨다. 테이블 위엔 커피, 그리고 몇 번의 눈물자국만이 남았다 다음 주제: 여명과 바다
이름없음 2023/08/15 19:13:18 ID : lu3vg1A0lbb
남극의 빙하가 녹았다. 어떻게 녹았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하루아침만에 그 큰 빙하가 다 녹아서, 영문도 모르고 녹아버렸다. 우리가 사는 지구. 바다의 수심이 늘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 큰 지구의 대륙들이 대부분 잠겨버렸다. 역설적이게도 그 풍경은 너무나도 청아하고 푸르르고 파란 아쿠아마린 색 바다와 하늘로 칠해져 있었다 수평선의 경계가 모호한, 마치 하늘과 땅이 이어진듯한 광경이였다. 남극의 빙하엔 인류가 모르는 바이러스가 많다고 했었다. 그 카더라는 곧 사실이 되었다. 그 바닷물이 인체에 닿으면 그 부분이 굳어버린다. 그 바닷물을 뒤집어 쓴 사람은 움직이질 못해서 살아있는 산 송장 느낌이였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살았다. 해가 뜨는 여명의 시간까지 모두가 죽었지만 나는 살아있다. 바다를 걷는다. 걸을 수 있었다. 바이러스의 또다른 작용인가 싶다가도 이내 생각을 그만두었다. 모든 생명체가 죽은듯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를 걷는다. 작게 찰팍 찰팍 소리가 났다. 비가 온 뒤 웅덩이 위를 걷는것처럼, 고요한 평면을 누르는 소리가 무소음의 세계에 울려퍼졌다. 무릎을 꿇고 아래를 보았다. 해가 뜨는것 같이 표면에 비쳤다. 그대로 나는 표면속으로 가라앉았다. 여명에 잠긴 바다였다. 다음주제는 허수와 허공
이름없음 2023/08/17 00:14:05 ID : dO7bwspcJQm
허수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수학시간이었다. 허수 虛數 는 비어있다의 허를 쓰는데, 막상 그 존재 자체는 다른 수를 부정함으로써 파생되는 것이다. 실수가 아닌 수, 그게 허수의 첫번째 뜻이다. 두번째 역시 학교나 학원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의미인데 조금 웃긴 것이 수라는 한자가 들어가있음에도 이 뜻은 사람을 향한다는거다. 쉬운 문제를 잘 틀리는 애, 빼야할 것을 모르고 더해 사칙연산도 못하냐며 가벼운 비웃음 사는 애, 한 문제 차이로 문을 열었을 때 등등... 이또한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본질적인 것은 하나로 통한다. 제 분수를 모르고 허황을 바라는 애. 세번째는 무언가를 정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허수, 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므로 뜻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야 얘 진짜 허수라니까." "어떻게 3번을 틀려?" 성적표를 받아들고 집으로 향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말장난들이다. 그럼에도 뒤를 돌아본건 빈말으로라도 성을내며 아니라고 우기기보다, 짧고 나지막하게 울리고 마는 웃음소리가 발걸음을 멈춰세워서다. 본래 의미로 쓰이질 못할 단어를 사람에게 갖다붙이는 것이 조금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뒤를 돌아보니 이름 모를 애들이 왜 그 애더러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가 갔다. 굳이 실수와 허수, 두 수 중에 갖다대어보자면 후자가 어울리는 애였다. 손에 들려있는 시험지에는 빨간 색연필로 성의 없이 선들이 항방향으로 그려져있었는데, 어째 곡선보다 직선이 더 많은 듯 보였는데도 그 애는 해맑게 웃어넘기기만 했다. 얼굴 한 번,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애였지만 그 웃음만큼은 깊숙하게 남아 한동안 종종 그 앨 생각했다. 어쩌다 쉬운 문제를 실수하면, 손에 힘을 주어 빨간 선을 긋기 급급하던 나였는데 자취 없이 따라온 기억덕에 전보다 부드러운 직선을 그을 수 있었다. 말을 걸어볼까, 이름을 물어볼까하는 용기는 없었다. 그냥 열아홉살에는 별것도 아닌 것에 위로를 다 받을 수도 있구나, 하고 신기해하기만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 학원가 근처를 걸을 때에도 가끔, 아니 사실 자주 그 애를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는 얼굴 대신, 더욱이 또렷해진 웃음소리만을 이따금 다시 떠올렸다. 의미도 없고,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때로는 하루를 마무리할 힘을 줬고 어떤 날은 마음을 다잡을 용기를 주었으며, 고등학생 때의 추억을 환기시켜주기도 했다. 그 애가 공부하기를 싫어했는지, 못 했는지, 그저 그 달의 시험만을 망쳤던 것인지는 난 모른다. 하지만 그 날의 웃음 하나로 일면식 없는 사람의 머릿속에 몇년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네 가까이에서 그 미소를 온전히 누릴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머릿속은 허공과 마찬가지랬나,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많이 떠올려도 과한것 같지는 않았다. 부유하던 생각들이 침전되기라도 한 것일까. 어쨌거나 비어있음이 더 잘 느껴질 뿐이었다. "졸업식날은 말이라도 걸어볼걸 그랬나..." 한 번만 다시 하루의 모서리에 불쑥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꽤 오랜만에 혼잣말로 허황을 바라봤다. 그 날로부터 봄이 세 번이나 지나고 난 후였다. 그 순간, 기적처럼 익숙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뒤를 돌아보자 이제껏 떠다니던 생각과 감정들은 가라앉아있었던 것인지 순식간에 머릿속을 떠올라 채우기 시작했다. 조금 음침하게도, 네가 만들어낸 허공이니 이를 채우는 것도 너여야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발걸음을 떼었다. 다음 주제는 궤도
이름없음 2023/08/20 00:19:49 ID : A45hBta08mE
나는 사람에게 모두 정상적인 궤도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제일 큰 폭의 변화이며 하나의 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비슷한 각도와 비슷한 속도로 공전을 한다. 나는 그 중에서 더없이 평범한 하나의 사람이다. 지구는 무척 넓고 다양하나 사실 사람들은 비슷하게 살아간다. 두려워하고, 주저하고, 때로는 용기내지만 후회하길 반복. 나아가기보다 머물고 현실을 부정하며, 그렇게 살다 살고 죽는다고. 자전이란 결국 자신의 지축을 중심삼아 돈다는 것이 그렇다. 각자 자신이 규정한 한계에 특어박힌다던지. 그리고 뻔하게도 나는 그런 삶에서 편안함을 얻는다. 그것은 평범한 관성이다. 우리가 늘 수백번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는 것처럼. 너는 조금 특별하긴 했다. 그 흔한 사람들 중 너만 특이한 궤도로 돈다는 것이 그랬다. 마치 너를 억업하는 것들은 없는 것처럼, 괴상하고 또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살아갔다. 가끔은 무모한 도전을 하고 끝까지 그에 굴하지 않는다던가, 갑자기 든 확신에 온몸을 던진다던가. 그래프로 따지면 너는 정해진 수치를 훌쩍 넘은 괴상한 관측물이다. 너는 엉망이었고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다. 3차원에 세상에서 사는 나에게 4차원의 너는 아득하게만 보였다. 그러니 그런 너에게 관심이 가는 것도 딱히 이상한 게 아니겠지. 늘 돌던 궤도, 늘 하던 일, 늘 하던 말. 그런것들이 조금 식상하게 보이고 너만 새로워 보이고. 내가 일궈왔던 것들이 사실은 더없이 지루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조금 염증이 났다. 너의 세상에는 중력도 공기도 세상에 모든 당연한 것이 없는데 행복해한다. 나는 중력도 공기도 흔해빠진 그 무언가도 가득 가지고 있는데 왜 삶이 초라한거지? 그러니까 이건 궤도의 문제인가? 너는 궤도도 속도도 방향도 큰폭으로 널뛴다. 하지만 네가 지나간 그 자리에 늘 아름다운 것을 남긴다. 너를 처음 본 나처럼, 그것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 땔수가 없는 것. 그러니 이건 사랑이겠지? 주제: 아름다움
이름없음 2023/08/20 15:44:21 ID : r82pU5fff89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외모?,마음?,양심?,재산? 이모든 것이 합쳐져야 아름다움이 되는것일까? <주제> 치킨
이름없음 2023/09/13 22:57:46 ID : k02q3U1vhgp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너를 만났다. 네가 나를 바라보듯 나도 너를 바라본다. 너는 내게 향기를, 나는 네게 손길을 전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바삭! 신경이 찌릿하다. 불 꺼진 몸 구석구석에 전기가 들어온다. 아, 황홀한 이 감각. 살아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주제> 라이벌
이름없음 2023/09/16 03:41:35 ID : y7Akq0rdXBu
흔히들 완벽한 인생이라고 하던가. 전교 1등, 학생회장, 근면성실 부유한 집안, 그야말로 그린 듯이 완벽한 생활. 남부러울 것 없는 이정아의 삶은 흔히들 이렇게 평가되어 왔다. "정아야, 좋은아침." 정말, 남 부러울 게 없는 인생.... 이라니! 웃기는 소리하고 앉아있네, 남부러울게 없긴! 완벽해? 평화로워?? 열불 나는 소리가 머리 끝까지 뻗혀나가는 게 홧홧하니 아주 홧병 걸리기 딱 좋은 날이다, 라고 정아는 생각했다. "응, 좋은아침! 근데.. 아침부터 너네 너무 닭살인 거 아냐? 팔짱 못 끼면 죽는 귀신이라도 붙었니? 한 번도 떨어지는 걸 못 봤어." "부러우면 너무 남친을 만들렴, 그치-?" "어휴..." 허참, 나참, 거참. 마음 속에서야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선 꼬맹이 정아가 퉷 침을 뱉었지만 현실의 이정아는 그럴 수 없기에, 장난스럽게 수현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지금 나 놀려? 흥이다, 너. 자습시간에 떠들기만해봐!" "앗, 너무해!!! 이거 권력남용이야!" "내가 널 평소에 봐주던게 권력남용이지! 안 그래, 박진혁?" "아이참, 너넨 어떻게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근면성실한 학생회장, 부유한 가정? 겨우 이게 완벽한 삶이라면 다 집어치우라고 이정아는 당장에라도 항의하고 싶었다. 최소한 제가 생각하는 완벽한, 이라는 수식어에는... "쌍둥이끼리 좀 싸우지 말아." 망나니 같은 쌍둥이 여동생과 사랑의 라이벌이란 요상한 관계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것도 이미 제가 패배자로 낙인 찍힌! // 다음 키워드; 용포
이름없음 2023/09/16 22:59:18 ID : Y63XxQsqrs6
비단은 차갑고 부드러웠다. 솜과 면을 덧대고 몇번을 꿰매어도 결국 내 손에 닿은건 얇은 소맷단이었다. 비단이야 벗어던지면 그만, 그 안에 누가 들었든 사람들은 금실자수만 바라보며 고개를 조아릴터였고 그럴바에야 너와 도망치겠다 다짐하곤했다. 흙바닥에 쌓인 눈은 녹을줄을 모르고, 난 그 위를 더럽힐 너의 발자국만 기다렸다. 눈이 녹고,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눈이 오고. 눈길에 더럽혀진 용포의 끝자락을 보며 깨달았다. 너는 내 비단옷을 참 좋아했다. 차갑고, 부드럽고, 깨끗한. 비단결을 입은 나를 참 좋아했다. 다음 주제: 자전거
이름없음 2023/09/17 03:09:41 ID : 2mrbu03yL9i
자전거를 처음 배웠던 기억이 점차 흐려져간다. 아담한 사이즈의 물방울 무늬 자전거를 끌고 아빠와 공원에 나와 처음 패달을 밟았던 기억. 아니 하트 무늬였나? 그런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 빠르게 쌓여가는 새로운 나날들 아래로 묻혀 색을 잃어간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돌아보면 아주아주 작아져 복잡한 감정 저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겠지. 중심을 잡고 페달을 굴리는 것은 이제 무의식적으로도 할 수 있다. 자전거를 처음 탔던 기억이 사라져도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내가 자전거를 배웠다는 사실. 그 날 자전거를 배웠기에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다. 페달을 힘차게 밟자 지나온 풍경이 등 뒤로 빠르게 작아짐이 느껴진다. 단풍나무 길은 아직 멀었나, 아니면 지나쳐 왔던가? 다음 주제: 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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