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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s2rf9dwsr 2020/04/01 17:03:24 ID : JPjxRzO1crd
[1화] [내가 그리워하는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당신과 눈빛과 목소리 하나하나에 온 우주를 다 얻은 것처럼 순수하게 기뻐하고 가슴 설렐 수 있었던 그 시절. 전력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아무런 계산도 없는, 그저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던 그 때.......] “넌 또 책이냐?” “뭐 어때서.” “이번에는 뭐야? 연애소설이야?....... 그래, 그럴 리가 없지.” “그 비슷하거든.” 파스텔 톤의 표지에 일러스트가 그려진 제법 아기자기한 책이었다. 마지막 교시가 조금 일찍 끝난 덕분에 책을 읽을 여유가 생겼다. 책을 집어 페이지를 대충 훑던 다희는 이내 책을 내려놓더니 제 자리로 빠르게 뛰어가 앉았다. 서현은 무언가를 직감하곤 앞문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이내 미끄러뜨렸다. 다희의 뒤통수에서부터 그녀가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들 자리에 앉고ㅡ” 담임의 목소리에 어수선하게 떠들던 아이들은 허둥거리며 자리를 정돈했다. 몇 번을 보았는데도 이질적인 풍경에 서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 선생님은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단 말이지. 불편함과 비슷한 감정이 치밀었다. 종례가 끝날 때까지, 내내. 청소당번은 청소를 하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 서현은 청소 도구함에서 대걸레를 꺼냈다. 청소가 끝날 때까지 적당한 곳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신경을 살살 긁어왔다. 완벽한 대칭 속 단 하나의 자그마한 균열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대걸레로 바닥을 닦으면서 서현은 고민했다. 이 거슬리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고민한들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제 몸의 일부처럼 자리잡은 이물감은 새 학기가 시작되고 2주가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낯가림이라고 생각했으나 점점 크기를 키워가는 불편함이 낯가림과는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서현은 이 느낌이 낯가림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주 확신하고 있었다. “서현아.” 낮은 목소리가 상념을 깨고 들어왔다. 대걸레를 놓칠 뻔한 서현은 다급하게 자세를 수습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예상도 못한 순간에 담임이 저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심장이 선득해졌다. 행동이 흐트러지고,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말문이 엉망으로 얽혔다. “네?” “다 했으면 얼른 정리해야지.” “아........” 저 혼자의 생각에 빠져 있느라 청소구역을 다 닦은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묘한 반발심과 거슬리는 이물감이 동시에 치솟았다. 고개를 끄덕인 서현은 화장실에서 대걸레를 빨았다. 물을 짜는 기계 속에 대걸레를 넣고 발로 밟을 때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거슬리고, 짜증나고, 답답하고....... 아무튼 무엇 하나 좋을 것 없는 사람이었다. 세뇌시키듯 그 사실을 곱씹은 서현은 교실로 돌아가 대걸레를 원래 위치에 돌려놓고 교실 문을 나섰다. 다희가 담임과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돌렸다. “오늘은 내가 출석부 들고 갈게.” “왜요?” “오늘 회의가 있어서 어차피 교무실에 들러야 해. 먼저 집에 가.” “어, 진짜요?” “그래.” “그럼....... 안녕히 계세요!” “조심히 가고.” 해맑기도 하지. 서현은 밝게 인사하는 다희와 제법 다정하게 대꾸해주는 담임을 보며 한숨을 꾹꾹 눌러 담았다. 알 수 없는 짜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 도대체 이 빌어먹을 것들은 다 뭐야? “........ 인마, 얼굴 좀 펴라. 청소 한 번 했다고 그런 표정을 지을 것까지는 없잖아.” “몰라. 짜증나 죽겠어.” “청소가?” “아니....... 아, 그런 게 있어. 그냥.” 나란히 걷던 다희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운동장의 거의 끝에 와서야 결론을 얻은 듯 아! 하고 박수를 쳤다. 이번엔 또 뭘까 싶은 마음에 서현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 내일 상담이라서 그렇지?!” “내일 나 상담이야?” “내가 내일이니까 너도 내일이겠지. 너 내 바로 뒷번호잖아.” “아.” “야, 아무리 네가 관심 없는 건 신경도 안 쓴다지만 양심적으로 채현쌤이랑 상담하는 날 정도는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니야?” 도대체 포인트가 ‘채현쌤이랑’ 상담하는 날인 걸까, 아니면 채현쌤이랑 ‘상담하는 날’ 일까. 아마 전자이리라 짐작하며 서현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이제 알았으면 됐잖아.” “아이고.......” “그리고 어차피 선생님 조례시간에 상담인 애들 알려주던데, 뭘. 그럼 넌 상담이라 아까부터 그렇게 기분이 좋았어?” “....... 기분 많이 좋아 보여?” “적어도 나보다는.” 서현의 말에 다희는 다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뭐라도 읽힐 것 같은 느낌에 서현은 고개를 돌렸다. 저 자신도 모르는 이 감정의 정체를 남의 입에서 확인받는 것은 정말로 피하고 싶었다. “너 담임쌤 싫어하지?” “....... 별 생각은 없는데, 일단 너가 좋아하는 건 정말 확실해 보여.” “별 생각이 없다고?” “진짜 아무 생각도 없는데....... 그럼 넌 도대체 왜 좋아해?” 잠시 생각하던 다희는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방금 읽었던 소설 속의 한 구절이 떠오를 만큼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같은 맥락의 감정은 아니겠지. 어둑어둑한 골목의 그림자처럼 검은 불길함이 서현의 심장을 슬그머니 뒤덮었다. “그러니까 일단 웃는 것도 예쁘고―” ....... 아니네. 다희의 말을 듣자마자 서현은 몰려오는 허탈함에 피식 웃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맥락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ㅡ “또 헛소리 하고 앉아 있네. 수업 시간 내내 수업은 안 듣고 선생님만 쳐다봤구나?” “아니거든!!” “내일 상담이니까 예쁘게 하고 오던가, 그럼.” “미쳤어?!” 기분이 아주 조금 좋아졌다. 소리를 지르면서도 저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다희를 뒤로 하고 서현은 걸음을 옮겼다. 들킬 뻔했지ㅡ 라고 생각하자마자 물음이 따라붙었다. 들키긴 뭘 들켜?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고 가슴께에 이물감이 느껴지며, 이유모를 짜증이 느껴지고 한숨이 여과 없이 새어나오게 만드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찜찜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해봐도 영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싫다, 좋다를 결론지을 정도로 그 사람을 자세히 관찰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서현이 바라보는 서채현이라는 사람은, 오래 보아야 본모습이 드러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보이는 모습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무표정이 전혀 상상되지 않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진지한 모습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그러니까, 내가 서채현이라는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는 거지만ㅡ “아 진짜 짜증나........” 애꿎은 돌멩이를 걷어찬 서현은 머리를 헤집었다. 하필이면 내일은 또 상담이야....... 나란히 교무실에 앉은 채현과 저를 상상한 서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색함이 흘러넘칠 것이 뻔했다. 모의고사 성적은 높은 편이니 성적에 관련된 잔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제발 쓸데없는 수다나 떨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짜증나!!!!”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졌고, 그 상태가 2주일 동안 지속되고 있었으며 해결책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분명 나는 상담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왜 머릿속으로는 자꾸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거지? 이제는 분신처럼 제 입에 달라붙은 ‘짜증나’를 외친 서현은 아득히 멀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푸르디 푸른 하늘 위로 흰 구름이 제 발자취를 제멋대로 늘어놓고 있었다.
이름없음 2020/09/05 01:37:59 ID : MlDteLak63U
다음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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