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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18/01/22 16:48:03 ID : e42FdDzglvd
습한 공기가 코를 간질였다. 한바탕 쏟아지려는 전조일까 은은하게 먼지가 뒤섞인 비 냄새가 났다. 산산조각난 창가의 틈새로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방은 고요했다. 어렴풋이 들리는 쿠르릉 대는우레 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작은 소리 하나내지 않았다. 하긴, 당연하다. 이 폐허에 자신 말고 그 누가 남아있겠냐 그 말이다. 예외가 있다면 간혹 귀신의 휘파람같은 섬뜩한 바람 소리나 돌조각의 부서진 파편이 떨어지는 따위의 소리들만이 전부였다. 나엘은 짧은 신음을 흘리다 떨리는 손으로누더기 같은 모포를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까슬까슬한 느낌이 썩 좋지는 않다.오늘도 역시 편하게 잠드는 것은 무리일 성싶었다. 아니, 사실 그 때 이후로 편하게 잔 적이 있었나 싶다. "……추워."
이름없음 2018/01/22 17:01:36 ID : e42FdDzglvd
물에 젖은 새끼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몸은 점점 뜨거워지는데 반해 느끼는 추위는 점점 더 강해져만갔다. 감기 몸살이라도 걸린 것일까. 온몸에 힘 하나 들어가지 않는다. 목에 자잘한 생선 가시가 걸린 마냥 호흡이 아프고 힘겨웠다. 나엘은 삼키려던 침을 그대로 뱉어버리고 다시 좁은 공간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갈 때에 느껴지는 통증은 참기가 쉽지 않다. 처음으로 피가 뒤섞인 가래를 뱉었을 때는 적잖이 놀랐었다. 뱉어낸 피의 양도 상당했을 뿐더러 그 즉시 뱃속에서 찢어지는 듯 한 통증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나엘은 짐작했다. 이렇게라도 겨우 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이다. 그녀는 힘 없이 눈을 감았다. 그 다음으로는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몸을 꼼지락댔다. 대체 며칠이나 되는 시간 동안 이곳에 갇혀있던 걸까.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으니 균열의 작은 틈새로 보이는 빛을 보고 어림짐작 하여 일 수를 헤아렸다. 하지만 오늘 같이 먹구름이 끼는 날도 많았던 탓에 사실 그녀가 느끼는 것 보다 더욱 많은 날들이 지나갔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름없음 2018/01/22 18:07:37 ID : e42FdDzglvd
인간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들은 마왕을 타도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쳐들어왔다. 엄청난 수의 대군을 이끌고 온 인간들은 용사라는 작자를 앞세워 기어코 마왕을 없애버렸다. 마왕은 싸움에 앞서 성 안에 거주하는 이들을 대피시키려고 하였지만 결국엔 한 발 늦고야 말았다. 인간들은 자비가 없었다. 그들이 악마라고 부르짖는 마족들 보다도 더한 악행을 서슴치 않고 일삼았다. 젊은 아가씨와 어린 여자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갔고, 조금이라도 반항의 기미가 보이는 남성 마족들은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을 당했다. 무감정히 한 사람의 목을 잘라내는 끔찍한 모습을 목격한 나엘은 그 즉시 숨을 죽였다. 노예로 끌려가던 마족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강제로 범해지거나 폭행을 당하는 둥 끔찍한 광경이 연출 됐다. 호화롭던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 나엘은 놀람과 두려움을 뒤로하고 애써 입을 틀어막았다. 행여나 발각이라도 된다 싶으면 그 즉시 그녀도 같은 꼴을 면치 못 할 것은 자명했으니 말이다. 숨소리 마저 인간들에게 들릴까 봐 그녀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연회장의 윗 층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덕분에 그 누구도 그녀를 눈치 채는 이는 없었다. 나엘은 커다란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이 끔찍한 악몽에서 서둘러 깨어났으면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저 아래에서 고통에 겨운 신음을 흘리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이름없음 2018/01/22 18:45:30 ID : e42FdDzglvd
광란의 파티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한참이나 지속되던 소란스러움은 잦아들었다. 인간들은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며 쓸어담은 노획물과 노예들을 데리고는 사라졌다. 그 많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코를 자극하는 피 냄새만이 연회장에 남았다. 거센 소나기가 쏟아지는 소리 이외에는 그 어떤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랫층에 적막한 기운이 감돌자 나엘은 그제서야 입술을 틀어막은 손을 내렸다. 얼굴은 눈물 자국이 무성했다. 무릎을 감싸고 쪼그려앉은 그녀는 어깨를 떨었다. 고개를 돌려 연회장을 보기가 겁났다. 확인하지 않아도 어떤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질 지는 예상하고 있었다. 굳이 그것을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과 동료들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나엘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았다. 그녀가 숨은 기둥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마왕의 시녀들이 사용하던 숙소의 문이 있었다. 같은 시녀들 중 하나인 자신과 동료들이 같이 사용했던 공간이다. 숙소는 얼마 되지 않는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정말로 말하는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하지만 나엘은 그 약간의 발걸음을 떼는 것 조차 두려웠다. 몸을 일으키고 닫혀있는 숙소의 문을 열러 가는 도중에 죽임을 당할 것만 같았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인간 남성이 대뜸 튀어나와 목에 칼을 들이밀 지도 몰랐다. 예상치 못 했던 재앙으로 인해서 그녀는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밑도 끝도 없는 공포가 밀려들어 기절해버릴 것만 같았다.
이름없음 2018/01/22 20:27:03 ID : e42FdDzglvd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끝 없이 밀려드는 두려움에 딸꾹질이 나올 것만 같다. 두렵다. 미치도록 두렵다. 싫다. 죽는 것은 싫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숙소로 달려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떨리는 몸이 그것을 거부했다. 지금 움직이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힘이 점점 빠져나간다. 나엘은 차라리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는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만은 싫었다. 어떻게든 숙소로 들어가 숨어야만 한다. 나엘은 어금니를 앙 물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부릅 떴다. 살기 위해선 용기를 내야만 한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지탱하며 나엘은 몸을 일으켰다. 최소한의 소리도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녀는 조심스레걸음을 옮겼다. 숨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그녀는 옷소매를 들어 입을 막았다. 실로 얼마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건만 그녀에게는 마치 억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흔들리는 다리 때문에 넘어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며 걸었다. 느릿하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주변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고개를 들면 자신을 죽이려는 누군가가 서있을 것만 같아서 그녀는 오로지 땅 바닥만 바라보고 걸었다. 닦아냈던 눈가에는 어느새 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히기 시작했다.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 탓에 눈 앞이 뿌옇게 변했다. 그녀는 흐느끼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 다시 입술을 강하게 물었다.
이름없음 2018/01/22 21:19:14 ID : e42FdDzglvd
스토리 생각 안 하고 쓰는 거라 한 줄 한 줄 적기가 넘모 어렵당;;

레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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