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레스가 제시한 단어 세 개가 들어가게 소설이나 조각글을 쓰는 스레야! 글 쓴 뒤에 아래 레스에게 단어 세 개 지정해줘! ㅜ 실종, 동전, 전화

아내가 실종된지 한달이 지났다 아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 살아 있기는 한 것일까. 일에 집중을 할수가 없다. 하루종일 아내 생각에 진절머리가 난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걱정된다는 생각보다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위로하는 가식적인 말도 짜증이난다. 아내는 거짓말 처럼 사라졌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왔을때 집안의 공기는 그대로였고 침실에선 아내의 냄새가 아직까지 나고 있다. 이상한 점이라고 해봐야 동전 몇개가 바닥에 나뒹둘고 있는 것 뿐이었다. 동전에 이상한 점은 없었다. 1998,2002,2010,2013 각기 주조된 날짜가 다른 동전들 네개 였다. 동전들은 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만지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다.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동전을 꺼내 만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아무 의미없을 동전의 주조날짜가 오늘은 특별해 보인다. 010-9802-1013.... 전화를 해보기로 결심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가는 도중에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사람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와 닮았다. 아니다 내 목소리가 분명하다. ㅜ 자동차, 가로등, 가방

홀로 술 한잔 마시고 나니 새벽 1시. 이정도로는 취하지도 않으니까. 쿵 무슨소리지? 문을 열고 나가니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그래 내가 잘못본거지. 뒤돌아서니 작은 가방이 하나. 흩어진 화장품이 둘. 그리고 방금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그녀의.. 아니야 희미한 가로등에 비춰지는 모습이 너무 몽환적이라 고작 한잔의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것이라고. 언제 이렇게 빨리 취하게 되었는지. 이제 나도 늙었구나. 집에나 가야지. "박영진 기자입니다. 인기 아이돌 그룹 ㅇㅇ의 멤버 고유정 양이 길에서 자동차에 ..." ㅜ 핸드크림, 달력, 문제집

지쳐있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지쳐있었다. 너무 힘들고 서러워 눈물을 흘리다 보게 된건 복숭아 향 핸드크림이었다. 몇달 전 친구가 사준 핸드크림. 열어보니 달콤하면서도 조금 부담스러운 느낌의 복숭아향이 올라왔다. 뚜껑을 닫고 달력을 보았다. 방학이 언제더라.. 1주..2주.. 딱 2주 남았다. 조금 있으면 방학이었다. 다른 애들에겐 마냥 기대되는 방학이겠지만 내게는 그저 힘들고 지칠 한 달 엄마에게는 딸을 올바르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한 달. 천천히 문제집을 꺼냇다. ㅜ웃음 밤 핀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불과 며칠 전에도 한동안 바라봤던 그 풍경은 여전히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멀리 보이는 달과 별이 네 미소를 닮았다. 눈부신 태양은 아니지만, 그만큼 찬란한. 낮의 하늘은 눈이 부셔서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지만, 적당한 빛에 환히 피어난 네 모습은 누구든 바라보고 가히 아름답다 말할 만했다. 네가 있던 옆자리를 손으로 쓸었다. 하늘에 떠다니던 별이 차가운 온도로 내 손에 박히는 것 같다. 너와 나의 끝은 아름다웠던만큼, 빛났던만큼 아팠다. 그래서 나는 그 긴 밤을 별을 보며 지새웠다. 차가운 감촉에 잠이 들 수 없었다. ㅜ음료수, 햇볕, 돌담

그때였었을거야. 우리가 보지못하게된게. 그때 난 아마..고등학교 2학년이었어. 엄마한테 자해한 흔적을 들키고 1주일에 두번씩 병원으로 심리치료를 받으러 다녔지. 병원에선 두달정도 지인이없는곳에서 지내고오기를 권하더라 내 우울증의 원인이 지인들이었으니까. 난 그 저기 어디냐? 이름을대도 다 모를만한 조그마한 섬에서 시간을 보내게됬어 거기에 내 또래라곤 눈씻고 찾아보아도 없었어 어르신들이랑 유치원생 꼬맹이 네명뿐이었지 그날도 난 파도에 내 발등을 적셔가며 놀고있었어 근데 너가 멀리서 다가오더라 처음엔 사실 조금 놀랐어 이 마을에 내 또래가있었던가?하고 알고보니 할머니집에서 잠깐 쉬고있다던 너였지 근데 진짜 이상하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이었을까, 널 보니까 그 아무한테도 안알려줬던 내 이야기가 술술 나오더라 그 하소연이 끝나갈때 쯤 어느새 난 울고있었어 너는 그런 날 쳐다보더니 그새 어디서 빼왔는지 모를 차가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캔음료수를 내 손에 쥐어줬어 그때부터였지 우리가 눈에 띄게 가까워진게. 왜 우린 몰랐을까, 그 가까워짐이란게 언젠간 헤어져야한다는 말이고 언젠간 헤어진다는게 얼마나 슬픈건지를 그 날 너는 나보다도 더 슬피울며 날 큰 나무 밑의 돌담으로 데려갔어 거기에 너와 나의 이름을 적고 날짜도 적더라 넌 말했어 "여기 이 나무 말이야, 여기서 소원을빌면 꼭 이루어진대 나무님~~저희 다시 꼭 만나게해주세요 히히"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저기 저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날 빤히 바라보고있는 남자가 혹시, 너야? ㅜ꽃잎 저고리 옥색고무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딸을 데리고 우리의 차는 할아버지댁으로 머리를 돌렸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전하지 못한 편지. 그 편지와 함께 빛바랜 옥색고무신이 있었다. 무엇인가 가슴에 북받혀 올라오는 감정에 고무신을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대, 어디로 떠나갔나요. 어여뿐 그대 얼굴 보고파 매일 밤 꿈에서라도 만날까 눈을 감아요. 총대 맨 머리 검은 짐승들의 우악스런 손에 못이겨 끌려간 그대의 꽃잎은 저버렸나요. 내 그대를 위해, 그대 곱디 고운 발 다치지 않게. 평생을 함께하리라 약속하기 위해 준비한 이 고운 신, 주인을 잃었다오. 봄바람과 함께 너울거리던 그대의 저고리, 아직도 내 눈에 선연한데, 그대는 어디서 안녕하신가요. 내 그대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내 다른 여자와 혼인을 하더라도, 나 그대만은 내 가슴에 묻으리라 다짐하겠소. 미안하고 사랑하오. 그대를 지켜주지 못한 내 바보같은 실수를 용서해주오.” ㅜ지갑, 맨홀, 두려움

"미국인들은 영국에서 건너왔다는 티를 꼭 내려나봐." 걸어가는 길, 대화거리가 궁하던 처지에 교포가 꺼낸 말을 나는 즐겁게 받는다. "무엇을 보고 떠올렸어?" "저기, 맨홀." 교포가 말한다. 연기가 흘러나오는 맨홀이다. 나는 짐작해 보려 한다. 맨홀 근처 세워진 차의 유리창에 내 오묘한 얼굴이 비친다. "화학물질 아니었나? 난 근처가 대학이라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예끼. 폐기물을 잘도 하수도에 버리겠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런 상식이 부족하다. 교포가 설명자가 된다. "난방 떄문이야. 파이프가 새거든. 다시 말해 저건 단순한 증기지. 안개와 같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나는 얼떨떨해진다. 걸음을 멈춘다. 연기 옆에 서보려 한다. 하지만 두려움이 포복해온다. 난 멈추려 한 적 없는 사람처럼 지나간다. "발암물질이 아니라니까." 교포가 특유의 손짓으로 나를 두드린다. 나는 의아하다. "바꾸는 데에 돈이 많이 드나? 여기는 부촌이잖아. 지갑 사정이 나쁜 동네도 아닌걸." "두려워하지 말라니까. 물일 뿐이야. 다만 뜨겁지. 한국에서 못 봤다고 이상해하지 마." 어째서, 낡아버리고 구멍이 난 파이프에 난방을 맡길 수 있는 것일까. 그러고 겨우내 어찌 안심할까? 그 증거가 길거리마다 연기로 솟아오르는데, 어떻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일까. 내 천성이 지나치게 민감하기 때문에 이리 반응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 생각하련다. 첨언하자면 나는 이후로 지나가던 맨홀 역시 무의식중에 돌아 지나갔고, 그때마다 대화 소재가 궁하던 교포는 나를 웃으며 지적해보였다. 그리하여, 이 완벽해 보이던 땅에 연기가 솟아오를 때면 나는 조금씩 자신의 예민함을 책망하고 마는 것이다. ㅜ 합창, 조퇴, 우산

비가 오고 있었다.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를 하고 나온 길이였다.온 세상을 빗물로 뒤덮을 작정인듯 쏟아지는 빗줄기는 툭툭 무심히 발등을 때렸다.우산을 쓰고 있음에도 이미 흠뻑 젖어버린 교복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오히려 기분이 좋았다면 모를까.찔끔찔끔 내리는 여우비 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가 훨씬 나았다.적어도 소나기는 더러움을 씻어주니까. 비가 오는 날이면 늘 보이던 것이 다시 보인다.아스팔트 길 위 고인 물에 머리 하나가 떠있다.내려갔다,올라갔다.상하운동을 하는 머리는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쉬잇,괜찮아.자그맣게 속삭이며 그 옆을 지나갔다.전봇대에 무언가가 매달려 있는것도 같다.스멀스멀 바닥을 기어가는 기분 나쁜 무언가도 보인다.그만.모두 내가 만들어낸 환영이야.입속말로 중얼거리고 억지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스윽 옆을 지나쳐가는 키 큰 물체 때문에 그것도 힘들게 되었다. 나는 그만 주저앉았다.우산은 손에서 떨어져 나간지 오래였다.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렸다.아직 한낮이지만 어두웠다.손가락 틈새로 본 세상은 물에 젖은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무엇인지 모를 물체들이 꾸물댔다.흠뻑 젖어 갈라진 머리칼 사이 드러난 귀로는 그것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귀를 막아도 뇌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와 빗소리와 화음을 맞추었다.제발, 머리 위로는 여전히 비가 쏟아졌다. 2년 전 그 사고 이후로도 비가 오는 날은 여전히 내게 악몽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비오는 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ㅜ맥주,도서관,우울

뻐근한 목을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의 창문을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는 노을이 보였다. 오전중에 와서 도서관이 끝나는 때까지 몇시간이나 여기에 있었는지 온 몸이 쑤시는 듯 하다. 무엇때문에 이렇게도 오랬동안 여기에서 내 청춘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어 가끔씩 우울해진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문 옆의 사서에게 눈인사를 하고 밖을 빠져나왔다. 눅눅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며 전형적인 한국의 여름이 왔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만든다. 저벅거리며 집으로 향하는길, 수입맥주를 다섯 개에 만원에 판다는 광고에 홀려 계획에도 없던 맥주를 샀다. 맥주가 든 비닐봉투를 달랑거리며 걷는길. 어깨에는 우울감을 한 가득 담은 가방이, 한 손에는 봉투가. 다른 한 손에는 참지 못하고 열어버린 맥주 한 캔이 들려있다. 한 모금, 맥주를 마셨다. 시원하고 톡 쏘는 맥주의 향이 코와 혀를 괴롭히다 이내 사라지며 아쉬움만 남긴다. 그러면 다시 한 모금을 마시고, 탄산에 눈살을 찌푸리길 반복하다 집 앞에 도착하면, 탄산빠져 닝닝해진 맥주 한 캔이 손에 들려있고, 반대손에 미지근해진 맥주가 든 비닐 봉투가. 어깨엔 내일을 위한 한 걸음이 담긴 가방이 매어져 있다. ㅜ딴짓, 과제, 소설

과제를 완성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김을 다시 불러야 한다. 곧 옥탑방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윈도우 창을 끄고 문을 열었다. 창문 옆에 김이 양손에 소주 한 병씩을 들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왜 문을 두드리지 않고?" "빈 손으로도 창은 두드릴 수 있거든. 심지어 깨고 들어갈 수도 있지." 장난으로라도 그렇게는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김을 서둘러 안으로 들여 보냈다. 문을 연 사이에 찬 바람이 김보다 더 많이 들어와 버렸다. "또, 내 경험을 산다는 거구나." 김이 투덜거렸다. "네가 시작한 장사잖아." "목적이 문제야. 난 네가 소설을 써주리라 믿었단 말이야. 내 개인사를 내러티브 연구에나 쓰다니. 그 잘나신 카펫 아래의 자아. 카펫 하나도 못 까는 대학원생이." 김이 콧물을 훌쩍거렸다. 원래 눈물이 많은 성격이었으나 취기가 오르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질적 연구, 그 문학 연구, 문학 아닌 문학 연구라 조잘대며. 난 그가 취하지 않도록 술병에 물을 섞었다. 김이 희석되는 술을 보며 말 없이 더 울었다. 머리가 길어 잎자루가 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어댔다. 그 꼴이 남사스러워 무릎에 그가 벗은 외투를 덮어주었다. 술잔과 손을 외투 밑에 넣고 김은 쌕쌕거렸다. 사회과학적인 글쓰기도 소설이 아니겠냐고, 변혁이 없으면 개개인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라면, 더더욱, 소설은 사회과학적인 형태를 띄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었다. 세계를 바꾸지 못하는 소설보다 세계를 바꾸는 논문이 더 소설에 가깝다고, 진도 선도 빠져나간 동화보다는 오직 미만이 빠져나간 논문이 더 고귀하다고. "딴짓하지 말고, 빨리 술 깨고 상담하자. 응?" "너야말로 딴짓하지." "응. 맞아. 난 딴짓하고 있어. 널 위해서." 난 대강 대화의 배경지식을 쌓기로 했다. "추운 길거리에서 가장 필요한 건?" "나랑 나가려고? 별 보러?" "아니. 과거의 너만 내보내면 돼. 상상 속에서. 어떘니?" "쉼터에 날 따돌리는 애들이 없기를. 다른 쉼터로 가야 하거든." 김이 답했다. 나는 랩탑을 꺼냈다. 그는 코트에서 손을 꺼내 나를 가로막았다. 그를 어르고 달랬으나, 내가 달력을 찢으러 간 사이에 김은 술 한 병을 마시더니 그대로 폭삭 허물어졌다. 외투는 이미 내던져져 있었다. 오래 전에 허물어진 건물에서 귀금속을 찾는 사람처럼, 나는 한숨을 쉬다가 그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휴대전화를 찾아 갤러리를 열었다. 김의 어릴 적 사진을 하나씩 넘겼다. 내가 사진에 더해질 때까지. 배경이, 내가 질리도록 오래 살아온 이 옥탑방이 될 때까지. 도서관에서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했을 때까지. 김의 자서전 작가가 되겠다고. 그를 통쾌히 분석하겠다고. 그의 인생이 이리 된 잘못을 분석해 책임을 철저히 캐묻겠다고. 그게 그의 주정뱅이 아버지이든, 입만 살았던 선생이든, 구조 자체이든, 무엇이든 간에. 내가 함께하겠다고 말해버렸을 때까지. 점점 더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 더 못된 인간으로, 그의 상처를 해집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자서전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순간 엄청난 뒷감당을 치르게 되도록 몰아넣어지고 있다. 자서전이 완성되면 빈에 가자고, 김에게 했던 약속을 기억한다. 안나 O의 전시품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김이 물었다. 나는 답했다. 정신분석학의 첫 환자. 가명을 썼음에도 지인들에게 모든 상담 사례가 들통난 환자. 최면술사를 사랑해 상상임신까지 했던 환자. 일흔일곱까지 살았고 사회 운동을 한 부유층 자제였으나, 이십대 때의 정신병력만이 역사에 남은 여자. 그러나 그녀가 평생을 모았던 레이스가 빈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그 누구의 상담집에도 기록되지 않은 그녀의 취미가, 딴짓이 보존되어 있다고. 자서전을 더 이상 쓸 필요가 없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보러 갈 필요가 있다고. ㅜ 넥타이, 레이스, 자서전

답답한 넥타이를 풀어헤친다. 그제야 숨이 트이는 느낌에,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넥타이가 밧줄이 되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다. 매일 그런 망상에 시달리면서도, 규정대로 넥타이를 하고야 마는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같은 사무실인 K가 화장실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왜, 무슨 일 있어? 그의 질문에 난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 답하곤 넥타이를 다시 똑바로 맸다. 뚦렸던 숨통이 다시 막히는 기분이다. K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럼 먼저 가보겠노라 말하곤 화장실을 나왔다. 과장이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별로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소리가 커서 다 들렸다. 레이스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아내의 부탁이거나 선물인 모양이었다. 아내의 선물이 아닐지도 모르지. 과장이 요즘 자주 찾는 여자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 앉으며 힐끔 옆을 보니 옆 자리에 앉은 동료가 표지가 하얀색인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터에서 책이라니. 혀를 차고 싶었지만 지금은 점심시간, 얼마 없는 자유 시간이니 지금 참견해봤자 싫은 눈빛만 보게 될 게 뻔했다. 무시하고 컴퓨터에 눈을 고정하고 있으려니 화장실에서 K가 돌아왔다. 그는 옆 동료에게, 무슨 책을 그리도 열심히 읽나, 하고 물었다. 아, 자서전이에요, 동료의 대답하는 소리가 금방 스러졌다. 한 달째 붙잡고 있네요, 하며 웃는 것은 진심일까 거짓일까. K는 독서 좋지, 하고 말을 받았다. 그렇게 좋으면 둘이서 사이좋게 나가서 책이나 읽으라지. 말로 내뱉을 순 없어 속으로 소리치면서, 나는 여전히 컴퓨터만 바라보았다. ㅜ 지갑, 필통, 사탕

“ 아—!! 내 지갑!! 내 지갑 어디갔냐 “ 급식시간에 친구들과 밥을 먹고 난 후 매점에서 츄파츕스나 빨러 가려던중 나는 내 지갑이 사라졌음을 알아챘다. 급식실에서 떨궜나. 아니면 교실? 아 모르겠다. “ 그니까 내가 너 물건 간수 좀 잘 하라고 했지ㅋㅋ” 옆에서 실실 쪼개며 지갑 잃어버린 나를 놀리는 친구. 하지만 반박 할수가 없었다. 왜냐면 난 평소에도 물건을 잘 잃어버리니까-. “ 하 내 지갑 주운년 있을까, 있으면 좋겠다 진짜 제발.” “ 니 지갑 주워봤자, 돈 없어서 다시 버릴 듯ㅋㅋㅋㅋ “ “ 뒤진다 니 진짜 “ 그렇게 친구랑 장난을 치면서 싸우는 도중 내 뒤를 지나가던 남자애랑 부딪쳤다. “ 아- 진짜 미ㅇ ㅏㄴ.., 아 뭐야 “ “ 뭐가 뭐야ㅋㅋ “ 나랑 부딪쳤던 남자애는 내 소꿉친구 최태영이었다. “ 아 됐고, 니 갈 길이나 빨리 가세요~~ “ “ 네~ 갈거에요~~ , 아 근데 왜 여기서 횡설수설하고있었냐 “ “ 아 몰라 지갑 잃어버림 츄파츕스 사 먹으려 했는데~~ 짜증난다 “ “ ㅋㅋㅋㅋ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나 간다 “ “ 저거 친구가 지갑 잃어버렸다니까 걱정도 안 해주네. 그래 잘 꺼져라|~!!! “ 최태영이 교실로 올라가고 나서 나는 한층 더 우울해졌다. 점심시간 다음 교시가 체육이여서 나는 친구들과 헤어진 후 교실로 들어가 체육복을 갈아입을 준비를 했다.내 자리로 가 체육복을 찾으러 가방을 뒤적이다가, 나는 열려있는 필통을 발견했다. 분명 필통을 닫고 나왔는데. 뭔가 수상해서 필통 안을 살피자 삐뚤빼뚤한 못난이 글씨로 ‘ 사탕 먹고싶다며’ 라고 적혀있는 메모지와 함께 왕사탕 3개가 들어있었다. 피식- “ 아 최태영 진짜ㅋㅋ, 사탕 고르는 센스하고는 완전 할아버지 취향이야 - “ 나는 사탕봉지를 까서 입 안 가득을 채우는 왕사탕을 먹으며 운동장으로 나갔다. 빨간줄, 밴드, 생수병

커피를 끓이던 폴은 율리아가 무엇을 들고 왔나, 더 낯설게 보기 위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유리병이다. 그걸 감싸고 있었을 종이는 사라져 있어, 이름을 알 수가 없다. "탄산수야? 빌어먹을. 빌어먹을 환타는 아니지?" "탄산수가 환타뿐이니. 이 정도는 민간업자도 만들어 팔아." 율리아가 가방을 이인용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 폴은 곧 영국으로 떠날 것이라며, 가구를 더 들이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폴이 결심만 하면 율리아는 호텔보다 난방이 더 잘 되는 카페를 전전하며, 남자들이 던지는 추파를 천 페이지 책으로 가로막거나 외국에 궁상스러운 편지나 쓰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웃기게도, 생수를 병에 담아 파는 작자들이 있더군." 율리아가 암시장 풍경에 대해 말한다. 폴이 코웃음을 친다. "물을 팔아? 돈에 미쳤어.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졌지." 처참하게, 하고 폴이 덧붙인다. 율리아는 들었던 말을 그대로 전한다. "나치가 수돗물에 이상한 것을 넣었을 거라더군." 폴이 커피 주전자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고 수긍한다. 율리아가 가방에서 하얀 중절모를 꺼낸다. 폴의 옷방으로 허락도 없이 들어간다. "파란 재킷을 걸칠까. 빨강은? 빨간 구두는 너무 요란한걸. 더 나은 빨간색이 없을까?" "벨트라도 하나 써봐. 빨간색이니까." "빨간 줄이라. 하얀 모자 위에 두르면 되겠군." 잠시 후 율리아가 튀어나온다. 삼색기를 달지 못하는 대신, 오늘 하루는 이 복장으로 다닐 심산이다. "국기도 맘대로 못 내거는 나라라니." 커피를 들며 폴이 불평을 하더니, 결심했다는 듯 말한다. "아마도 오늘 연락이 올 것 같아. 르네와 자크가 일행을 모아, 같이 스위스 쪽으로 가려나 보더군." 율리아는 침묵한다. 착잡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입은 재킷의 파란색을 의식했는지, 조용히 읊조린다.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 폴이 율리아의 흰 모자와, 모자를 둘러싼 빨간 줄을 보며 말한다. 몸을 움직인다. "최대한 챙겨야 해. 권총은 걸리면 큰일이니 가방 가장 깊숙이 넣어. 밴드도, 붕대도, 몸 한 군데 버리더라도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잘 챙기고." "알아." 폴이 말하며 캐리어를 닫는다. 그러더니 천장을 올려다본다. 이 집에서 자신이 들이지 않은 것은 저 천장의 전등밖에 없다. 남은 것은 집주인이 알아서 처분할 것이다.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 폴은 마지막으로 율리아를 껴안는다. 그리고 국경을 넘기 전, 아마도 마지막으로 들를 것일 카페와 광장에 가기 위해, 삼색기에 알맞을 옷을 찾아 방으로 들어간다. 율리아는 폴이 커피를 마시고 남긴 녹지 않은 커피 가루를 본다. 그러더니, 유리병을 열고는 탄산수를, 환타를 벌컥 마신다. 오늘 출발하든 그렇지 않든, 오늘은 폴의 마지막 외출이 되리라. 폴의 캐리어에 든 권총도 밴드도 붕대도, 한 번 쓰이지 못하고 군수품 창고에 더해지리라. 율리아는 망설이더니,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ㅜ 관람차, 탄산수, 국기

나는 지금 잠깐 짬을 내서 휴대폰을 보고있다. 인터넷에 널려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를 보며 상상한다. 나는 언제쯤 저런곳을... 오늘도 상상만 할 뿐 여전히 현실은 관람차 알바일 뿐이다. 더운 날에 관람차라니 나같으면 안타고 말지 하면서 주의사항과 함께 그들을 보낸다. 다 타고 내려온 사람이 나보고 하는 말이 " 더우신데 고생 많으셨어요. 이거라도 드시면서 하세요. " 나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며 웃었지만 그 여자는 끝내 나에게 탄산수를 쥐어주며 떠났다. 잠깐의 설레임이였지만, 오늘도 나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일을 계속 하나보다. ㅜ 증오, 가식, 우울

모든 걸 집어삼킬 듯 거대하고 새까만 밤하늘과 머리가 멍할 정도로 열기가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그 사이를 가르는 우리. 나는 적막이 가득 찬 공기를 머뭇거리며 두들기다 겨우 베어냈다. "나 우울증을 앓고 있어." 라고. 힘겹게 말을 꺼낸 나는, 네 눈에 스쳐지나간 당황을 보았다. 너는 어색하게 꼼지락거리다 이내 "그렇구나."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너를 빤히 바라보다 실소를 흘리자, 네가 물었다. "왜?" "아냐." 아아. 내 시간에 박혀있던 사람아, 내 삶의 일부였던 사람아, 내 소중했던 사람아. 내 특별했던 사람아. 너는 다를 줄 알았지. 너에게도 내가 다를 줄 알았지. 내 멋대로 기대한 것이 실수였나, 너와 같은 학교를 지명한 것이 실수였나, 아니면... 너를 만난 것 자체가 실수였나. 너는 내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오늘 내 말로 인해 확신이 섰을거다. 그리고 오늘로 인해 나도 확신이 섰다. 그동안 내게 보였던 모든 것이 가식이라는 것을. 그동안 내게 말했던 모든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사탕발린 말에 속아넘어 달콤함을 맛 본 나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네게 보답이랍시고 달디 단 내 애정을 퍼부었지. 그동안 가식은 점차 벗겨져 나는 너를 애증했다. 그럼에도 네게 미안해서 죄책감을 가졌다. 전부 부질없는 짓이었지. 나는 오늘부로, 너를 증오한다. ㅜ 에어컨, 노을, 마룻바닥

"여름이므로 자물쇠를 사야 했어." -어디를 지켜야 했니? "숨겨야 했어." 노을이 진다. 곧 문이 폐쇄될 것이다. 나는 책가방을 짊어진다. 도망가는 책들로 가득 차있다. 소나무 옆에 썩은 꽃이 진다. 하얀색이 종이 같으나 내년에도 필 이름을 알 이유 없다. 허기지다. 앞으로 반 시간은 더 이 일에 써야 한다. 나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나는 책임이 있다. 나는 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책들은 패배하지 않는다. -이렇게 부려먹는다면 입부 시험은 통과겠지. "그럴 리가. 가방은 내 등에 걸려 있어." -말은 내가 걸어주고 있어. "이건 비밀이야. 네가 알면 가치가 떨어져." -숨길 사람에게만 숨겨진다면 공공연할수록 좋지. 마루가 삐걱거린다. 달리기라도 하면 활주하는 구급차 소리를 내지를 태세다. 거슬린다. "습기를 머금어서 이러는구나." 내가 바닥을 보며 말한다. -소리는 다른 소리로 덮는 것이 원칙이야. 도와줄까? "어떤 소리? 에어컨이라면 작동하지 않아." -에어컨으로 빠질 습기도 아닌걸. 다른 소리. "대화는 질려. 어라, 너 어디로 앞서가니?" -화재경보기를 울려줄게. "내가 졸업할 때나 해달라고." 계속 앞서가더니 기어코 교실 창문을 앞서 열어준다. 열리는 문은 없다. 나는 청소용구함 앞에 책가방을 팡 내려두고 숨을 고른다. 엄선한 책들이 가방에 들어있다. 눈을 든다. "넘어갔구나. 가방을 받아줘. 이게 입부시험이야. 네 사물함에 방학 동안만 보관하면 돼." 가방이 넘어간다. 창문이 닫히더니 잠긴다. 요란한 소리가 난다. 사물함에 넣고 있는 것이 맞을까. 난 묻는다. "왜 우리 부에 들어오려고? 정식 동아리도 아닌걸." -글을 쓰려고. "남에게 글을 보여주지 마. 나누기 위한 글이 아니라면. 너를, 네 글을 점차 하찮게 만들어갈 거야. 글을 적는데도 아프지 않게 될 거야. 쉬운 글을 적으려 하다보면 어느새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적지. 내 선배가 그랬어. 하찮은 실력으로 합평 때 칭찬만 받으려 들더니, 기어코 표절을 하고 매주 말다툼만 했지." -그러면 부에서 무슨 활동을 해? "글을 보여주지 않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해. 남의 눈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에 대해 적는 연습을 해. 그러면 세계에 대해 적을 수 있어. 자물쇠 번호는 내 생일이야. 그렇게 봉해줘." 창문 앞에서 나는 기다린다. 열리는 것은 뒷문이다. 우리는 창문은 잠그고 문은 연 채로 복도를 걸어간다. 마루가 다시 삐걱댄다. 가방이 비었는데도 바닥에게 나는 무겁다.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이 붉다. 하늘을 닮은 마루가 붉다. 붉은 여름, 주하, 청춘의 다음 계절을 걷는다. 지나가는 길에 부실을 본다. 여름방학 동안 공사를 위해 모든 책을 빼야 했다. 집에 둘 수는 없다. 나는 내 책이 버려지지 않는 편을 선호한다. 내 사물함은 숨긴 책으로 이미 가득 차있었으므로 다른 사물함을 구해야 했다. 나는 다시 중얼댄다. 보이지 않는 책들은 패배하지 않는다. 쓸모없음은 긍지가 될 것이다. 운동장 한복판에서 삼촌을 만나고 말았다. 술에 취했다. 골목에서부터 따라왔나 보다. 나는 얼어붙는다. 뒷목이 아프도록 힘을 준다. 어릴 때부터의 습관이다. 어디 갔다오니 "죽은 까마귀를 찾았어요. 화단에 묻어주고 오는 길이에요." 나는 답한다. 모두 들켰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가방처럼 머리가 빈다. 이 글이 처음부터 읽힌다. 둘은 무력한 숫자다. 나는 울먹인다. "잘못했어요." -그러지 마. "귀중한 것들이에요. 버리지 말아주세요. 살려주세요." -나는 먼저 갈게. "어디로." 평생 이러리라. ㅜ 입부, 자물쇠, 고양이

...어쩌지. 소녀는 입을 오물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툭 떨구어진 손에 쥐어진 것은, 입부서. 혼자 동떨어진 학교에 입학해버려서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붙임성있게 이야기를 건네지도 못 해서 지금 이 상황. 들어가고 싶은 동아리도, 같이 할 친구가 있는 동아리도 없어서 해가 뉘엿뉘엿,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어갈 때까지도 교정을 배회하고 있다. 야옹. 다리가 저려와서 운동장의 스탠드로 자리를 옮겨 쭈구려 앉아있을 때였다. 고양이 한 마리. 너는 왜 혼자 있어, 라고 고양이에게 물어보려다 그게 무슨 미친 짓인가 싶어 시선을 돌렸다. 입부할 동아리나 생각하자며 입부서를 쳐다보는 소녀의 눈에, 입부서 뒤의 운동장, 그 곳에서 점점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고양이가 보였다. 어.. 어? 어?!! 앙칼지게 낚아채고 달려갔다. 고양이의 입에 물린 입부서를 보고 소녀는 생각했다. 아, 안 돼. 입학하자마자 담임선생님에게 밉보이기는 싫어. 소녀도 달렸다. 소녀 앞의 고양이는 달리고 달려서, 1층 어느 교실의 창문가에 올라갔다. 유유히 소녀를 갖고 노는 듯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화단이 있어 함부로 고양이를 잡으러 다가가지도 못 하고, 안절부절하며 고양이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고양이가 마냥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소녀는 입부서만 보느라, 고양이만 보느라, 창문 건너편의 사람들을 보지 못 했다. 아마도 어느 동아리가 진행되는 부실인 듯 했다. 부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자신이 부장이니까 가보겠다는 느낌으로 창문으로 다가가 저 소녀는 왜 우릴 지켜보는 지 물어보려 했다. 앗?! ..? 어이쿠. 소녀의 입부서는, 고양이의 입에서 어느 남학생의 손으로 들어갔다. 창문이 열림으로 고양이가 내빼버린 것이였다. 입부서는 버리고, 소녀만 남기고 사라졌다. 어떻게 변명해야할 지, 소녀의 눈이 바쁘게 굴러갔다. ..입부서네? 혹시 네- 네!! 이, 입부하러 왔습니다!!! 남학생은 소녀의 입부서인지 확인하려했을 뿐인데, 신입부원이 생겨버렸다. 소녀는 얼떨결에 입부를 외쳐버렸다. 아, 모르겠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ㅜ해바라기, 하늘, USB

맹인이 맹인에게 조용히 웃는다. 소리 없이. 그 부조리한 광경을 나는 못 본 척한다. 아저씨께 말을 건다. 그의 맹견은 시설 입구 카펫에 자리를 잡아, 자동문이 닫히지 않게 하고 있다. -이 중에 무엇을 옮기면 된다고요? -해바라기 든 애들이 있는 것만. 아저씨는 가방을 건네더니, 거기에 USB가 들어있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물통을 넣는 자리에서야 겨우 발견했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길이였다. 16GB 밖에 안 되는 적은 용량이었으나, 사진을 분류한 폴더가 어림 잡아 80개는 되는 성싶었다. -어디를 그렇게 붙잡으려 다니셨나요? -열기구 띄우는 일을 했어. -아, 열기구. 해바라기 사진과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다. 사진사와는 아예 다른 시야를 갖고 있으니. 그의 지시대로 사진을 프린터 폴더로 옮긴다. 시간대도, 아이도, 사진을 찍는 눈높이도 모두가 제각각이다. 한국이라는 것 외에는 무엇도 종잡을 수 없다. -사진 잘 찍으셨네요. -내가 찍지 않았어. 난 하늘만 보고 살았는걸.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연히 그의 사진인 줄로만 알았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카메라를 집어들던 평소의 습관 떄문인지, 악운이 그에게서 사진마저 빼앗아갔음이 틀림없다고 과신하고 있던 터였다. 아, 그러면 물어야 할까. -그러면 누구 사진이신지. -우리 딸. 사진가가 꿈이었거든. 그는 평범하게 말한다. 눈 주위가 일그러질 뿐이다. -처음으로 하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어. 특이했지. 해바라기를 주제로 전시전을 꿈꾸고 있었거든. 장소 하나를 정해두고, 친구들을 불러 사진을 찍고는 했어. 해바라기 밭이 밀릴 뻔한걸 발 벗고 나서서 막았지. 나는 폴더를 본다. 날짜만이 적혀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바로 하늘 사진은 없었다. -해를 향해 뻗어나가는 사람을 찍고 싶다고 하더라고. 사람과 해바라기라는 주제에서, 두 소재를 분리시켜만 왔다더라. 경계를 허무는, 이카루스 같은 사람을 하나 찍어보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이카루스. 숨이 갑자기 막힌다. 시선을 내린다. 그의 팔에 감긴 붕대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딸깍, 나는 더 소리를 내어 사진을 옮긴다.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맹인이 맹인에게 운다. 웃는 것과 달리, 울음은 소리를 숨기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더 크게 마우스 소리를 낸다. 사진을 뽑는다. 가방에 담는다. 그는 보지 못할 사진을.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향해 올라가다 이카루스처럼 떨어진 한 예술가의 유작을.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맹견은 서둘러 그를 맞이한다. 그제야 자동문이 닫힌다. 열리더니, 닫힌다. 나는 침묵한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의 표정을 보고 내 표정을 볼 수 있었으니, 그에게 부탁받은 것보다 무엇이라도 더 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대로라면 낑낑거리며 그의 주위를 걱정스럽게 맴돌던 개보다도, 나는 더 개 같은 인종이 아닌가. ㅜ 맹인, 열기구, 사진

한 소년이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 미안하고, 고마웠고, 또 ....... 행복했어. " 소년은 넓고 푸른 초원 한가운데에서 열기구에 탑승했다. 열기구는 하늘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보이지 않는 눈을 뜨며 사진을 더듬었다. 우리의 추억이, 행복이 담겨 있는 그런 사진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너의 얼굴과 우리의 추억. 내가 맹인이란 사실에, 그렇기에 너를 볼 수 없다는게 너무 슬펐다. 열기구가 올라가는 것이 보이진 않았지만 소리를 들을 순 있었다. 앞으론 널 볼 수 없다는 것에, 널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난 울부짖었다. 그 때 저 멀리서 누군가의 희망찬 외침이 들려왔고, 난 눈물이 멈췄다. 맹인인 나도 그 고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알 수 있었다, 그게 너란 걸. " 잊지 않을게, 사랑해 ! " 너의 그 외침을 듣자마자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눈물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난 너의 외침에 대답했다. " 나도 사랑해,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땐 내가 널 알아봐줄게. " 난 네가 지나간 자리에 조용히 누워 눈을 감았다. 내 곁엔 조용하고 아름다운 적막이 흘렀다. 다음 단어는 (하늘, 구름, 노을) 입니다 !

".. 왜 하늘은 저렇게도 예쁠까? 병에 담아 다니고 싶을 정도야." 옥상에 누워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던 너는 뜬금 없이 말을 시작했다. "갑자기? 뭐.. 글쎄, 일어나서 밥이나 먹지 빨리." 나는 저녁 시간 끝나겠다, 라며 시간을 확인했다. 20분 남짓 남았네. "저기 구름 좀 봐. 꼭 하트 같이 생겼다 그치." 잇차, 누워있던 너는 일어나 나와 마주 앉았다. ".. 있지, 나 더 이상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아. 우리 도망갈까?" 장난스레 웃는 네 얼굴에 비친 예쁜 노을 빛. 그 뒤엔 슬픔이 숨겨져 있는 듯 했다. "결국 정말 가 버렸네." 나는 네 말에 거절했다. 그리고 넌, 정말 도망가버렸다. 나를 두고. 다음 생에는 네가 새가 되면 좋겠다. 그 예쁜 하늘, 마음껏 헤엄쳐 다닐 수 있도록. ㅜ 금화, 소나무, 홍수

그가 소년이었을 적이었다. 그때의 아름다웠던 추억처럼 반짝이며 빛나는 동전이 황금 물결을 만들고는 툭, 떨어졌다. 변치 않는 기상을 의미하는 소나무같이 우리도 그 마음을 잃지 않길 바라자. 그렇게 말하며 조잘대던 네 얼굴을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었으니까. 너는 지금 왜 그곳에 있는가. 왜 혼자 그 머나먼 길을 떠나버린 것인가. 그는 결국 다짐했다. 추억을 찾아서 소녀를 기리자. 그렇게 찾아간 그 때 그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빛바랜 추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무엇보다 빛나던 황금색 기억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도대체 굵은 줄기를 뽐내던 소나무는 어디로 사라졌기에 찾을 수 없는 것인가. 맞다, 그랬었다. 몇 년 전에 홍수가 났었다. 그녀의 그 소식을 듣기 몇 달 전이었더랬다. 그 비는 사실 모든것을 예상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그곳에서 애달피 울부짖었다. 자신의 사랑을 빼앗은 비에게, 자신의 추억을 짓밟은 비에게, 그 미래를 알리고자 했던 자에게, 그때 내가 눈치챘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하는 닿지 않을 소리만 보낼 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저녁 내내 하늘에 물었다. ㅜ 별, 호수, 나비로 부탁해!

10여년 전. 나는 홀로 놀러를갔다. 그 당시 삶이 힘들어 발이 가는대로 무작정 걸었다. 정말 계획도 없이 걸었다. 나무냄새와 벌레들의 찌르르 소리가 무성해질때 까지 걸었다. 계속 걸으니 호수가 나왔다. 그때의 계절은 겨울. 6시만 돼도 하늘엔 달과 별이 보이던 겨울이었다. 인연인지 우연인지 사람의 기척이 몇시간째 들리지도 보이지도않는 그 곳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나와 또래로 보이던 여자아이. 피부는 정말 복숭아같았고 머리카락은 헤어나올수 없는 까만색이었다. 그러나 그 추운 겨울에 그 여자아이는 흰티 하나만 입고있었다. 심지어 맨발이었다. 그때 내 시야에 보이는것은 호수와 그 여자아이가 전부였다. 호수에는 많은것이 비추어보였다. 보름달과 수많은 별, 그리고 나무. 난 무언가에 홀린듯 그 여자아이에게 갔다. 그 여자아이는 나를 피해 달아났다. 나는 그 여자아이를 계속 쫓았다. 나무가 옷에 걸려 옷을 풀고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 앞이 환해지며 푸른나비가 나왔다. 그리고 나무에 걸린 옷이 어느새 풀려있었다. 나는 그 나비를 계속 보고있었다. 내 어깨를 누군가가 만졌다. 그 여자아이였다. 여자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 " 그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그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그 말을 듣자마자 도망치듯 뛰었다. 그 숲에서는 몇시간이 지난거같았지만 정작 시계를 보니 7분이 지났다. 그때의 사건은 나와 그 여자아이만 알고있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한 말은 그 여자아이만 알고있다. ㅜ겨울 고양이 코트

낡은 집과 지붕 담벼락 마저 낡디 낡아 군데군데 시멘트 자국들이 흉하게 보여 보기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오늘은 왜인지 담벼락 위 얌전히 앉아있는 저 놈덕에 조금은 보기 좋아 보이는 듯 하다. 우리집 옷장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벼락. 너와의 만남이 좋은만남이 될까 아님 내 가슴에 오래 남을 아픈 기억이 될까 조금은 두려워. 춥고도 추운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이 겨울에 너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일 수 있을까 싶다가도 고작 나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따뜻함을 선택하려 하는 순간 담벼락에 고대로 앉아 날 빤히 바라보던 고양이가 와----앙 하고 운다. 날 보는 고양이의 표정이 순간 내가 만나러 가는 널 떠올리게 해서 헤진 겉옷을 내려놓고 단정한 코트를 꺼내 거울앞에서서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고 나오니 담벼락 위에 너도 사라졌다. 고양이 덕분일까 너와의 만남으로 올해의 겨울이 헤진 겉옷이 아니여도 너로인해 내품이 따스할 수 있겠다. ㅜ눈, 젤리, 노래

나는 유령을 믿는 소녀를 안다. 의사는 이틀이라도 별거하라고 권고했다. 내가 그녀에게 전염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 앞길이 창창하다고 했다. "저마저 없으면 증세는 어떻게 될까요?" "최악이 되겠죠." 이사하지 않기로 했다. 옷에 눈을 담아 돌아왔다. 폭설이었다. 도서관에서 편의점까지 거리보다 집까지의 거리가 더 가까웠다. 우산도 없이 눈을 맞았고, 햇빛을 내듯 눈을 털었다. 겨울이니 이 정도는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주방에서 불렀다. 주방에는 칼이 없다. 그릇도 컵도 없다. 냉장고에는 식빵과 우유가 있다. 출출했는지 그녀가 토스트를 만들려 한다. 손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아침을 만들어줄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제야 일어났나 보다. 난 파카를 벗은 뒤 머리끈으로 두어 번 묶었던 머리를 푼다. 손등이 스치는 얇은 줄들이 매섭기 그지없다. 나는 손을 본다. 물에 젖었다가 마른 탓에 완전히 갈라져 버렸다. 햄처럼 빨갛다. 겨울마다의 일상이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간다. 화장품 맨 뒷편에 숨겨두었던 바셀린을 꺼낸다. 좋지 않다. 오늘은 비닐장갑을 낀 채 세면한 후 곧장 자버리고 말아야겠다. 방문을 열고 나온다. 그녀가 주방의 벽에 공을 던지고 있다. 동그랗게 만 식빵이다. 벽에 부딪힌 빵은 바닥으로 내려와 원래 상태대로 펴진다. 그런 빵이 벌써 10개다. 나는 그녀를 말린다. "그러지 마." 왜 그러냐고 하지는 않는다. 이유를 알고 있으므로. 그녀는 내 손을 벗어나려 든다. 한때 야구를 했던데다가 나보다 키도 큰지라, 내가 힘이 약하다. 나는 식빵 봉지를 잡아챈다. "나 토스트 먹고 싶어." 나를 노려보던 그녀가 천천히 잠잠해진다. 빙하가 바다속으로 가라앉듯이. 안심하기는 이르다. 줄어든 빙하에 안심하였다가는 난파하는 배 꼴을 면치 못하게 된다. 난 조심스럽게 식빵 봉지를 내민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도마 위에 식빵 두 개를 펼친다. 그리고 파도처럼 단조롭게 그저 눈만을 깜빡이고 있다. "토스트라며?" 내가 묻는다. 여기에는 버터도, 치즈도 없다. 그녀가 풀이 죽는다. 식빵 두 개를 집어들더니 내 쪽으로 성큼 걸어온다. 밑도 끝도 없이, 내게 식빵 두 쪽을 밀어붙인다. 그녀에게서 신음이 터져나온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치고, 그저 빵만을 잡은 채 뒤로 물러선다. 그제야 내 손등에 발랐던 바셀린이 식빵에 묻었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바셀린을 느끼지 못하기를, 오직 나만을 느끼기를. 그녀가 의욕을 잃고 냉장고에 든 우유만을 벌컥 마신 뒤, 자신의 상시 어둡던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나는 벽면에 그대로 몰려있었다. 그녀가 사라지자 나는 조금 울었다. 이틀 뒤 필요한 절차가 모두 완료되었다. 대학병원에 그녀를 데리고 갔다. 이번에는 어머니도 함께였다. "언니와 어머니 되시죠?" 동생을 그대로 입원시켰다. 병원은 건조했다. 나는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바셀린을 바른 손등이 아직도 쿡쿡 쑤신다. 물론 바셀린에 약효는 없다. 병균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줄 뿐이다. 상처를 상처로 지켜줄 뿐이다. 간호사가 어머니께 묻는다. "조심해야 할 단어는요?" "야구와 바셀린, 그리고 부정행위요. 구타당한 전적이 있으니 체벌은 하시면 안 돼요." 나는 조용히 창밖을 본다. 바셀린 같은 창문 너머로 눈이 내린다. 억울해진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안방을 부모님께 돌려드리고 동생과 내가 쓰던 방을 나 혼자 쓰면 된다. 이사하지 않고, 동생이 두 달 후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다시 그녀와 방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대학병원 주차장을 걸어가던 중에 이어폰을 꺼내든다. 플레이밍 립스의 노래, 'She don't use jelly'다. https://www.youtube.com/watch?v=cvfxKbpoxRE I know a girl who thinks of a ghost. She'll make you breakfast She don't use jelly Or any of these She uses Vaseline. Vaseline Vaseline 젤리는 쓰지 않아, 바셀린, 바셀린, 나는 눈 한 가운데에서 우산과 손등에 발린 바셀린만을 믿고, 하얗지 않은 보도블럭을 골라 밟는다. 부모님은 차에서 나를 기다린다. ㅜ 아침, 바셀린, 병원

갱신... >>26이야. 단어가 난감하면 바꿀게ㅠ ㅜ 아침, 토스트, 주차장

>>2 글 정말 내취향이다

ㅗ 아침에 눈을 뜨자 분명 어젯밤 같이 잠들었던 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침구와 따뜻한 온기만이 남아있다. 비교적 늦게 일어나는 나를 배려한 것인지 커튼도 어젯밤 그대로 쳐져있는 상태다. 그 사람이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느긋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주말이라 알람의 방해없이 여유롭게 일어날 수 있다. 덕분에 하루의 시작부터 기분을 잡치지 않고 개운한 몸으로 일어날 수 있어 기분이 좋다. 반복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눈을 떴을 때 당신이 눈 앞에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기지개부터 켰다. 창밖으로 바삐 떠드는 새소리와 간간히 차소리가 들린다. 방문 밖에서는 희미한 콧노래가 들린다. 방문을 열자 매일 봐도 보고싶은 당신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조심히 껴안으며 무얼 만드느냐 물었다. 오늘은 간단히 토스트를 할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부지런하지만 게으름 많은 것도, 샌드위치를 좋아하지만 귀찮아서 안 하고 있단 것도 알고 있기에 재료를 꺼내며 샌드위치를 제안한다. 예상대로 좋아한다. 물론 빵을 굽는 건 당신일지 몰라도 샌드위치로 완성시키는 건 내 담당이었다. 불만은 없다. 당신과 함께 먹는 아침인데 겨우 만드는 것 정도로 불만일리가.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만든 샌드위치를 마주보고 먹으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매일 대화를 하는대도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우리는 행복하게 떠들어댔다.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하릴없이 TV나 보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열심히 비즈공예로 팔찌를 만들던 당신은 번뜩 생각이 났는지 나가지 않겠느냐 제안을 한다. 나는 좋다며 어디를 가고 싶느냐 물었다. 그냥 오늘 날이 좋으니 드라이브나 하자고 하는 당신마저 사랑스럽다. 내가 제안에 응하자 당신은 재빨리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웃으며 뒤따라 준비했다. 주차장에 와서 우리의 차를 찾았다. 저 작은 차가 우리의 차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기쁨에 젖는다. 차에 시동을 걸고 벨트를 멜 때였다. 당신은 언제 가져온 건지 집에서 만들던, 아니 완성한 팔찌를 보여준다. "짜잔! 어때 우리 커플 팔찌야." 당신의 효과음과 얼굴을 가득 채운 뿌듯함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자꾸 새어나왔다. 나는 고맙다 말하며 팔찌를 받았다. 당신이 열심히 만든 이 사랑스러운 팔찌를 차며 귀엽다고 잘 만들었다고 진심이 담긴 감상평을 내놓았다. 내 얼굴에도 기쁘단게 써져 있었는지 미소 짓는 나를 보고 당신은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 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터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 겨울에 봄같은 기운을 뿜어대며 드라이브를 갔다. 즐겁게 드라이브를 하고 밥도 먹고 경치도 구경했다. 다정히 셀카도 찍고 팔찌를 자랑하듯이 팔을 쭉 내밀어 사진 찍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반대로 당신이 사랑하는 나를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를 찍으며 이 순간을 간직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우리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때이다. 신혼이 다 그렇지 않은가? 일단 우리는 그랬다. 그래, 우리는 불과 몇 분 전까지 행복에 젖어있었다. 그랬는데. 분명 우린 웃고 있었는데. 꽃같이 화사한 미소를 짓고 콧노래를 부르던 당신은 온데간데 없고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까. 어째서 그 고운 얼굴에 피가 흐르고 있는 걸까.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건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드라이브를 오자고 한 것 또한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운이 나빴던 것이다. 그저 내가 조금만 더 운전을 잘 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만은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도 내가 살기를 바라고 있겠지. 그저 우리는 우리 앞에 갑자기 튀어나온 저 생명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핸들을 꺾었을 뿐이다. 핸들을 꺾어 간 곳이 하필 가드레일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떨어졌다. 우리가 살린 저 생명에게는 기적이었겠지만, 우리에게는 비극이었다. 당신 혹은 내가 이 자리에서 숨을 거둘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지금처럼 사이좋게 저승길에 오를지도 모른다. 힘겹게 손을 뻗어 본다. 내 시야처럼, 당신 얼굴처럼 피로 물든 팔찌가 보인다. 마찬가지로 붉은 피가 묻은 손이 부들부들 떨며 당신에게 간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당신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팔은 그만큼의 힘이 없는지 툭 볼을 찍고 그대로 떨어졌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아래에 놓여있던 당신의 손을 붙잡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은 아마 피일 것이다. 그것이 내 것인지 당신의 것인지 모르겠으나 당신의 손도 내 손처럼 피가 가득 묻어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비록 당분간은 힘들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서 나를 잊든 그리워하든 일단은 살아서 당신의 내일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당신은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당신은 부정하겠지만 당신에게는 당신도 깨닫지 못한 재능이 많이 있다. 가령 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그런 사소하고도 큰 재능들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 당신은 남의 행복을 먹고 사니까. 그리고 나는 당신의 행복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당신이 행복하다면 나도 살아있는 것이다. 당신의 곁에서 당신이 행복할 때 나도 같이 웃어주겠다. 설령 당신이 내가 살아 행복하기를 원한대도 나는 당신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다. 나는 당신이 내게 했던 것처럼 우울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을 구해낼 수 없다. 그런 이에게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살아 나 대신, 내게 했던 것처럼 다른 이들을 구원해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나를 잊어도 좋고, 나 말고 다른 이에게 마음을 내어 주어도 좋다. 비록 상상만으로 울컥하지만 그렇게 해서 당신이 행복해진다면 나는 괜찮다. 더이상 누군가를 구하고 싶지 않다면 구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일은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며 당신이 짊어져야 할 것도 아니다. 그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점점 눈이 감긴다. 아마도 이렇게 당신을 보는 것도 마지막일 것이다. 느낌이 그렇다. 평소 신을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왠지 신께서 내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당신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신이라고 하니 생각난 건데, 평소 나의 신은 당신이었다. 당신이라는 신이 나를 구원해주고 살게 해 주었다. 당신 덕분에 산 목숨이니 둘 중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 말고 내가 죽었으면 한다. 정 당신이 죽기를 원한다면 그냥 여기서 함께 숨을 거두고 싶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당신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결과이길 바란다. 나 혼자 죽든, 같이 죽든 간에 당신이 살지 못한다면 나는 살고싶지 않다. 혼자 살아가는게 걱정이라면, 내가 죽어서 당신 곁에 있을테니 당신은 걱정 말고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곁을 떠날 일은 없으니 당신은 그저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싶다. 다음은 없을 키스를 하고 싶다. 눈이 무겁다. 더이상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 아득히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제 당신은 살겠지. 마지막으로 그 고운 미소를 한 번만 보여달라고 하고 싶지만 이 이상으로 정신을 붙잡고 있기 힘들다. 당신의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지만 당신은 이곳 말고 병원에서 눈 떴으면 하기에 지금은 듣고 싶지 않다. 곧 있으면 꾸게 될 길고 깊은 꿈 속에서 듣고 싶다. 당신의 티없이 맑은 미소도 그곳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실은 귀신이 되어 당신 곁에 머무르고 싶다. 허상이 아닌 실제 당신의 미소를 보고 싶다. 혹시 몰라 마지막으로 빌어 본다.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ㅜ 주홍색, 눈물, 미소

ㅗ 오늘도 평소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나 몸을 씻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첫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공장에 도착해서는 오전 11시까지 형형색색의 수상한 액체들을 서로 분류하고 섞거나, 고온을 쬐어 증발시켰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난 꽤 규모가 있는 공장에서 여러 약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약품들은 주로 학교 과학 시간에 사용된다고 들었다. 막 들어왔을 때는 화학약품들을 제작하는 곳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계속 일하다 보니 내가 땀을 흘려 열심히 만든 것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위해 쓰인다니 자랑스럽고 기쁜 마음이 더 커져갔다. 그렇게 오늘도 높은 온도 속에서 부지런히 일하다 보니 요란히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벨소리 치고는 아름다우면서도 약간 슬픈 멜로디 탓에 제목이 궁금해져 동료에게 물어보니, 영국의 전통 민요인 '그린슬리브스' 라고 했다. 영국의 민요라니, 역시 공장의 벨소리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감상에 젖어 있다가 나도 서둘러 발걸음을 떼었다.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시간인데 이렇게 멍하니 있을 시간은 없다. 지금 안 쉬면 앞으로 4시간이나 이 푹푹 찌는 곳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탓에 살짝 몽롱해진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서려는 그때, 미세한 두통이 느껴져 나는 살짝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오늘 아침부터 너무 무리한 걸까? 아니면 혹시 아까 유난히 냄새가 역하던 그 보라색 액체 때문에? 그것 때문에 잠시 눈물을 흘리긴 했다... 하지만 약품들은 전부 검증이 된 것들이고 오늘은 딱히 무리도 하지 않았는데.. 머리의 통증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 바람을 쐬기 전, 찬물로 세수부터 하려고 화장실로 가던 도중 문득 머릿속에 중요한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 아침에 서두르느라 알약을 먹는 걸 까먹었구나 공장에서는 꼭 출근하기 전 아침마다 A13 알약을 먹으라며 강조했지만, 지금까지 그 알약을 먹지 않아 어떤 일이 생겼다는 얘기는 들은 기억이 없었다. 게다가 딱 오늘 하루만 빠뜨린 거잖아. 이거 하나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 리는 없다. 그럴듯하게 이름을 지었지만 솔직히 이건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 같고. 알약을 먹기 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알약 떄문은 아니다. 그저 3일 전에 연속으로 당직을 선 후유증이 지금에서야 나타나는 것일 터이다. 불안한 마음은 가슴 깊숙이 넣어버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으니 어느새 화장실 앞에 다다랐다. 나는 문을 열기 위해 문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그때, 갑자기 머리가 빙글 돌더니 그와 동시에 내 시야도 일그러졌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에 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나무토막처럼 힘없이 몸이 꺾여 쓰러졌다. 멍한 의식 사이로 머리가 깨질듯한 날카로운 아픔이 스쳤다. 눈이 감기기 전에 눈 앞에 희미하게 한 장면이 펼쳐졌다. 낮 동안 뜨겁게 내리쬐던 햇빛이 아름다운 주홍색으로 녹아가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 풍경. 마치 어릴적에 자신이 살았던 그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고 집에 돌아갈 때의 그 하늘 같았다. 그래. 그러고 보면 난 그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공장에서 일만 하느라 하늘은 미쳐 볼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나 하늘이 아름답다는 걸 왜 지금까지 잊고 있었을까. 그래도 기쁘다. 적어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생을 마감할 수 있다니.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신에게 감사드렸다.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내 뺨 위로 두 줄기의 액체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 오전 11시쯤에 화학약품 공장에서 근무하던 김모씨가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을 먹지 않아 가스 중독으로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 . ㅜ 희망, 학업, 스트레스

ㅗ희망0 학업 스트레스0 내겐 희망이 있다. 내 하루는 그저 정해진 루트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편한 일상 뿐이다. 스트레스는 그 어느곳에도 끼어들 틈도 없다. 그저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 그것만이 나의 목표, 나의 가치, 나의 존재 이유다. 그저 의미없이 무계획적으로 시간만 보내는 남들과 나는 다르다. 나에겐 그들과는 다르게 희망이 있다. 내게 주어진 길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확신한다. 그래, 나는 내게 희망이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아무리 부모님께 좀 더 학업에 정진하지 못하겠냐는 말을 들어도, 어디 놀러갔다는 반 아이들의 말을 듣고 아주 약간의 부러움을 느껴도 남들이 나태하게 늘어져 있을 시간에 전날 채점한 문제지의 17번 항목의 풀이과정이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20분이나 매달려서 겨우 풀어도 괜찮다. 나는 정말 괜찮다. 내겐 잘 포장된 길과 목적지가 있다. 이런 내가 절대 길을 잃을 리 없다. 나에겐 희망이 있다. 그러니 나는 행복하다. 내 어머니는, 아버지는 항상 좋은 것을 알아보고 좋은 것만을 택하신다. 모두들 이런 나를 부러워 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선택받은 인간이다. 부럽다면 너희가 우리집 자식으로 태어났어야지. ㅜ 일상, 광기, 자유

ㅗ 집으로부터 미쳤냐는 소리를 들은지 어느덧 3년째가 되어간다. 언젠가부터 익숙해져서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보내는 법을 배운지 오래다. 오늘도 아침 댓바람부터 귀에 꽃히는 미친년 소리를 알람 소리로 삼았다. 개운한 정신과 달리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탓에 축축 늘어지는 몸을 힘겹게 일으켜 외출 준비를 한다. 신발을 신으려 쭈그려 앉으니 다시 뒤에서 욕지거리를 해댄다. 미친년, 미친년. 내가 못 살아. 살려줘. 대강 이런 뉘앙스인 것 같았다.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중얼거리는 내 뒤통수에 피날레로 또 한 번의 욕설을 던진다. 온갖 미움과 경멸을 달고있는 듯한 어깨를 괜히 한 번 털어보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쉰다.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겨 떠난다. 아주 작은 숨구멍 몇 개만 뚫어놓은 것 같아 한 없이 답답해져 있던 마음이 차가운 공기와 섞여 상쾌해진다. 하루 중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녀 사이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같은 공간에 살지만 앞서 말했듯이 어쩔 수 없었다. 돈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지라 장장 20년을 넘게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매일같이 나를 닦달하는 모친에게 싫증이 났다. 다툼의 텀이 짧아지고, 눈물은 물론 피 마를 날 없이 살아오다가 종래엔 결국 질질 끌어오던 결정을 그제야 내렸다. 그렇게 나아진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매일같이 귀에 유리 조각처럼 박히는 말들이 심장만 피해 꿰뚫지 않을리 없었다. 그럼에도 애증보다 못한 애정이 남아있었기 떄문에 묶어두고만 있었다. 화가 날 때면 그녀가 내게 자주 했던 것 처럼 때려도 보았다. 분풀이 할 곳이 없는 날에는 죽기 직전까지만 패 놓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매번 꼬박꼬박 밥도 챙겨주고 안아주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좋아지지 않더라. 몇 시간의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워지는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하는 지금. 그녀가 드디어 나에게 왔다. 오늘은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눈물에 젖은 얼굴로 기어와 내 발 밑에 엎드렸다. 살려줘, 살려줘. 아아. 이젠 정말 자유다. ㅜ 물방울, 펜, 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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