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2/02/19 01:51:26 ID : gkpQleLgpdV 3
[기록 1] 21XX년 지구 기준 5월. 기록 탐사가 시작되었다. 사람만 없을 뿐. 이 낡은 행성은 교재의 이미지와 비슷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역사 속의 전쟁과 싸움의 흔적이 조금씩 보이지만 내 눈에는 그저 평화로워보일 뿐이다. 오늘은 탐사팀과 함께 근처를 조금 둘러보고 내일부터 개인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새로운 자원을 발견한다면 좋을텐데.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어색하게 미소짓고 있는 이미지)
2 이름없음 2022/02/19 02:00:07 ID : gkpQleLgpdV 0
[기록2] 21XX년 지구 기준 5월 어제의 탐사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탐사팀에게서는 지구에 관한 눈꼽만큼의 호기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우주선에서 멀어지는 것을 꺼려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식물자원학과를 지원한건지... 새로운 자원을 발견해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게 우리 일이 아닌가? 아무튼 개인탐사는 시작됐다. 저들이 지구를 그저 휴양지로 생각하는 건지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학자로써 지구를 바라본다. 우주선 뒤의 언덕 너머로 보이는 대도시의 흔적들을 파헤쳐볼 예정이다. 부지런히 걸어야겠지. (두둑해보이는 배낭 옆에 여성이 서 있는 이미지)
3 이름없음 2022/02/19 02:10:30 ID : gkpQleLgpdV 0
[기록3] 21XX년 지구 기준 5월 보이는 것과는 달리 도시는 훨씬 먼 곳에 있었다. 지급 받은 부유기를 가져올 것을... 지구의 면적을 너무 우습게 봤다. 무려 하루를 꼬박 걸어 도시의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도시는 건물 외벽이 조금 낡은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금이 간 건물의 이미지) (이곳저곳 식물이 자라난 이차선도로의 이미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인류는 이곳에서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는 없었던 걸까. 이전 문명의 흔적을 바라보니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는 모행성세대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정말 멋진 행성에서 살았구나.
4 이름없음 2022/02/19 02:19:29 ID : gkpQleLgpdV 0
[기록4] 21XX년 지구 기준 5월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모닥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을린 바닥의 이미지) 이곳에 생존자가 있었던 게 분명해!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지구에 남겨진 모행성세대들은 생식능력을 전부 상실했으니 오래 전에 전멸했을텐데. 이곳에서 무언가를 데워 섭취했음이 분명하다. 모닥불의 온기는 오래전에 날아간 것 같지만. 그들을 만나고 싶다. 혹시 모르지. 우리가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5 이름없음 2022/02/19 02:29:14 ID : gkpQleLgpdV 0
[기록5] 21XX년 지구 기준 5월 걸음을 서두르다 할머니가 예전에 이야기해주신 대형 백화점을 발견했다. 과연 풍족한 세대의 대표격인 건물이로군. (살짝 금이 간 백화점 회전문) 센서로 열리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문은 열리지 않지만 그 옆의 회전문은 매끄럽게 돌아간다. 천장 전체를 유리로 처리한 이 호화로운 건물이 지닌 역사적 가치가 얼마나 될지 나로써는 추정조차 할 수 없다. 아쉽게도 판매했을 물품들은 대부분 소실된 것 같다. (대부분이 비어진 식료품 진열장) 그들은 무엇을 사고 팔았을까. 달고 짠 음식들? 할머니는 그런 음식들을 좋아하셨지. 정말. 이제는 예전만큼 자주 접하기 어려운 맛인데도.
6 이름없음 2022/02/19 02:40:07 ID : gkpQleLgpdV 0
[기록6] 21XX년 지구 기준 5월 (백화점 옥상에서 여성이 하늘을 배경으로 미소짓고 있다) 이렇게 반쯤 거짓말 같았던 할머니의 이야기 속 일부를 마주하니 감회가 새롭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자기가 죽어서 지구로 가게 될 거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죽으면 그저 곱게 태워진 잿가루가 되어 사라질 뿐인데. 영혼이 어쩌구 별이 어쩌구 하는 할머니의 허황된 얘기들을, 우습게도 나는 별로 싫어하지 않았다. (성탄절 특별 할인 이벤트라고 적혀있는 백화점 포스터) 할머니는 죽어서 정말 지구에 오셨을까. 그렇다면 정식 학자가 되어 이곳 지구에 찾아온 손녀를 한번쯤 보러 오셨으면 좋겠다.
7 이름없음 2022/02/19 02:52:31 ID : gkpQleLgpdV 0
[기록7] 21XX년 지구 기준 5월 완전한 신세대라고 불리우는 우리 세대 치고, 나는 좀 감성적인 편이다. 아버지는 어릴적 할머니와 같이 지낸 것 때문이라며 떨어져 살다보면 금방 괜찮아질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한 번 만들어진 성격은 잘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별과 영혼을 믿는 아이로 자랐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유달리 아끼셨다. (비가 내리고 있는 어두컴컴한 하늘) 아직 5월이니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는 아니다. 그래도 축축한 바닥에서 노숙하는 것보다는 잠시 백화점에서 비를 피하는 편이 좋겠다.
8 이름없음 2022/02/19 03:19:28 ID : gkpQleLgpdV 0
[기록8] 21XX년 지구 기준 5월 꽤나 오래 잔 것 같은데... 비가 그치질 않는다. 어쩐지 통신기도 먹통이다. 비가 좀 잠잠해지면 신호탄을 쏴야겠다.
9 이름없음 2022/02/20 02:55:02 ID : gkpQleLgpdV 0
[기록9] 21XX년 지구 기준 5월 비가 그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이 폭우 속에서 신호탄을 쏜다 해도 과연 보이기나 할지... 그래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로로 빗물이 흐르는 모습은 장관이다. (하수구로 빗물이 세차게 흘러들어가고 있다) 식량도 아직 넉넉하고 언제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비는 그칠 것이다. 벌써부터 최악을 상상하기엔 이르다. 빛바랜 백화점 안내판을 더듬더듬 읽어보니 의류매장을 쭉 가로질러 가다보면 영화관이 있다고 한다. 영화라니. 그것 역시 소실된지 오래된 과거의 산물이다. 기록이 남아있다면 하나쯤은 볼 수 있지 않을까.
10 이름없음 2022/02/20 03:09:55 ID : gkpQleLgpdV 0
[기록10] 21XX년 지구 기준 5월 (먼지가 잔뜩 쌓인 텅 빈 영화관) (다양한 팝콘이 그려진 영화관 메뉴판) (4DX라고 적혀진 3번 영화관의 입구에 여성이 서 있다) 아쉽게도 남겨진 영화를 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딱딱한 목소리로 필요한 정보만을 전달하는 영상매체만이 남은 우리들과는 달리 그들의 무한한 상상력이 느껴지는 포스터에서 할머니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그 말도 안되는 여러 이야기들이 이런 매체들에게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조금 의아한 점이 있는데, 지금까지 도시 이곳저곳에서 종이가 발견된 것이다. 아무리 옛날이라고 해도 영상과 기록을 담을 매체는 그 이전 세대에도 보급화된 것인데 어째서 계속해서 종이를 이용한 것일까?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여진 작은 수첩) 유한한 자원을 이렇게 낭비하다니... 그저 허영심 때문인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 이 수첩에 그렇게 가치 있는 내용이 담겨있진 않은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조잡한 그림들 뿐이다.
11 이름없음 2022/02/20 03:15:59 ID : gkpQleLgpdV 0
[기록11] 21XX년 지구 기준 5월 비가 내리니 실내가 습해진다. 끈적한 몸을 어떻게든 해보려 백화점을 돌아다니다가 아직 작동하는 기기를 발견했다. (파란색 선풍기가 달달 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이미지의 한구석에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이 보인다) 이 기기의 원래 목적이 무엇이든지, 정말 시원하다. 정말. 비는 언제 그치는 건지. 지구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변덕스러운 날씨들을 감내하고 살았던 걸까?
12 이름없음 2022/02/20 03:24:49 ID : gkpQleLgpdV 0
[기록12] 21XX년 지구 기준 5월 몸에 문제가 생겼다. 문제라면 문제인 게 부상을 위한 키트는 준비해뒀지만... 설마 신체 내부에 이상이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결국 제대로 된 키트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질 못했다. 애초에 이렇게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공간에 고립된 것부터가 좋지 못했다. 우리의 새 터전은 언제나 위생적이고 안전했으니까. 그래서 모두 지구로부터 도망쳐온 것일까.
13 이름없음 2022/02/20 03:41:29 ID : gkpQleLgpdV 0
[기록13] 21XX년 지구 기준 5월 비가 그쳤는지 확인해봐야 하는데... 몸이 과할 정도로 무겁다. 마치 녹슨 부품처럼 삐걱거린다. 모든 소리가 귓가에서 시끄럽게 변해 울린다. 심장소리가 이렇게 크다니. 아직 내가 죽지 않았다는 뜻이니 오히려 다행일까. 이렇게 몸이 아팠던 경험은... 지식주입을 처음 접하고 난 뒤로 처음이다. 막 여덟살이 됐을 무렵 저학년용 초등교육을 주입하고 꼬박 닷새를 앓았었다. 머릿속에 덧셈과 뺄셈, 국어와 도덕이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그 뒤로 울며불며 다시는 지식주입을 하지 않을거라고 했었지. 아버지는 모두가 그렇게 지식을 배운다며 나를 달랬었지만... (반쯤 찢어진 초등학교 5학년 과정의 수학 문제집) 지구인들은 종이를 지식을 전승하는 데에도 썼던 모양이다. 이 볼품없는 반복학습이 적힌 종이로 과연 지식을 제대로 머리에 새길 수 있었을까. 비는 그친 것 같다.
14 이름없음 2022/02/21 23:33:17 ID : gkpQleLgpdV 0
우리 집은 컨트롤 타워의 바로 옆에 위치하는 바람에 인공태양의 빛이 전혀 스며들지 않는다. 인공태양은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하루에 1시간 이상은 그 빛을 받아야 하기에 컨트롤 타워 위에 만들어졌는데 이상하게도 태양에 가까이 사는 사람일수록 그 빛을 받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어릴수록 빛을 많이 보고 많이 돌아다니는 게 성장에 좋기 때문에 나는 도시 외곽에 있는 할머니의 집에 자주 찾아갔다. 할머니의 집은 우리 집보다는 작았지만 낮시간 내내 들어오는 태양빛이 아주 충만해서 어렸던 내가 성장하기에는 안성맞춤의 공간이었다. 내가 어릴때는 아직 성장촉진제가 완전하지 않아서 자라기 위해서는 운동을 하고 햇빛을 봐야만 했다. 듣기로는 지금부터 태어나는 애들에게는 그런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 없을거라고. 그리고 그 작고 밝은 집에서도 가장 밝은 곳. 햇빛이 네모난 모양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창가가 할머니의 지정석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앞에 할머니가 그렇게 계셨고, 완전한 신세대답지 않게 나는 여즉 그 모습을 그리워한다.
15 이름없음 2022/02/21 23:33:42 ID : gkpQleLgpdV 0
[기록14] 21XX년 지구 기준 5월 꿈을 꿨다.
16 이름없음 2022/02/21 23:45:36 ID : gkpQleLgpdV 0
[기록15] 21XX년 지구 기준 6월 내가 잠시 몸을 회복하는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두터운 이불과 따뜻한 물이 담긴 병이 내 옆에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나? 설마 내가 백화점에 들어온 순간부터 관찰하고 있었을까? 수많은 의문점이 있지만 확실한 건 십수년전의 대거 이주 이후에도 생존하고 있는 지구인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살아남은 지구의 원숭이나 고양이가 이 솜이불과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진 않았을 것 아닌가. 37.5도. 지구인 기준으로는 열이 있는 거겠지만 우리들 기준으로는 아주 정상이다. 몸이 호전됐으니 탐사를 계속해도 좋겠다. (인도 가장자리에 물이 고여 세차게 흐르는 모습) 음... 인도로만 다닌다면 괜찮겠지.
17 이름없음 2022/02/21 23:54:42 ID : gkpQleLgpdV 0
[기록16] 21XX년 지구 기준 6월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탐사는 순조롭다. 인도에 고여진 물들은 이곳저곳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여러 수로로 흘러들어갔고, 비록 그 물들이 다시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도시의 더욱 깊은 곳까지 갈 수 있게 됐다. 아마 꽤나 높은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한 터와 무질서하게 자란 식물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 무얼 상징하는 건축물이었을지 예측해볼 수 있는 커다란 돌도 있다. (<인류의 고향. 이곳에 잠들다.> 라고 적혀있는 넓적한 돌) 건물과는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적혀진 글을 보니 이주 이후에 만들어진 돌일수도 있겠군.
18 이름없음 2022/02/22 00:11:00 ID : gkpQleLgpdV 0
[기록17] 21XX년 지구 기준 6월 오늘은 토지 샘플을 수집하거나 처음보는 식물의 이미지를 기록했다. 회색 도로만이 이어진 집보다는 확실히 식물의 모습이 다양하고 어떻게 보면 거칠었다. 하지만 집에서 본 식물과는 비교도 안되게 상태가 건강하기도 했다. 잎은 더 푸르르고 줄기는 더더욱 옹골지다. 할머니의 말대로 지구는 정말 생명의 천국과 다름없다. (철골을 휘감으며 자라난 나팔꽃이 새벽 햇빛을 받고 있다) 이런 지구도 우리 인류를 감당할 수 없었다니... 이런 완벽한 터전을 떠나야 했다니... 후손으로써도 식물학자로써도 아쉬운 일이다.
19 이름없음 2022/02/22 00:19:55 ID : gkpQleLgpdV 0
[기록18] 21XX년 지구 기준 6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날씨가 정말 환상적이다. 할머니가 말씀해주신 것처럼 아름답기 그지 없다. '태양을 머리에 이고 보살피며 사는 지금과는 다르게 예전에는 태양이 하늘에서 우리를 보살피고 있었단다. 그 누구도 햇빛을 못 받을까봐 두려워하지 않았어.'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에는 항상 날씨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맑다가 비가 오다가 구름이 끼다가 안개가 앞을 가리다가 추워지고 더워지고 건조해지고 습해지는... 그 모든 변화는 지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지구만이 가진 기적임을 왜 우리는 몰랐을까.
20 이름없음 2022/02/22 00:36:49 ID : gkpQleLgpdV 0
[기록19] 21XX년 지구 기준 6월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인류가 지구를 버림으로써 한층 더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떠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구를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소리다. 온통 회색과 흰색, 검은색 뿐인 고향의 이미지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전 세대가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다만... 탐사를 지속하고 샘플을 채취하고 기록을 이어나갈수록 어쩐지 비참해진다. 선배들이 탐사를 하려 들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당연히 지구가 더 우월하고 생기 넘칠테니까. 인공 태양보다 진짜 태양이 더 따스하고 인공 식물보다 이곳 지구에서 자란 식물이 더더욱 건강하다. 그 간극을 좁힐 수가 없다. ...생각이 너무 많아진 것 같네. 오늘을 일찍 자야겠다.
21 이름없음 2022/02/22 00:41:00 ID : gkpQleLgpdV 0
꽃...?
22 이름없음 2022/02/22 00:50:47 ID : gkpQleLgpdV 0
[기록20] 21XX년 지구 기준 6월 노랗고 잎이 자잘하게 잔뜩 달린 꽃이 있다. 멸종식물사전에서 본 적 있는 식물이다. 뭐였더라. 그것보다 이게 왜 내 가방에...? 아침에는 없었는데. (민들레로 이루어진 소박한 꽃다발) 와... 예쁘다. 지구인들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꽃을 엮어 선물했다고들 했는데 이렇게 생겼을 수도 있겠구나. 식물들의 집합체일 뿐이라고 여겼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오밀조밀하고 귀엽다. 다만 출처를 알 수 없다는 게 문젠데... (꽃들을 묶고 있는 끈에 은비라는 글자가 프린트되어 있다) 어쩌면 출처를 밝혀낼 수도 있겠다.
23 이름없음 2022/02/22 01:30:06 ID : gkpQleLgpdV 0
우리 구역은 그나마 괜찮은 곳이었다. 지구에 와보니 볼품없이 느껴지긴 해도... 할머니가 젊었을 적 최초 이주를 마쳤을 때 좋은 자리를 잘 잡으셨기에 어렸던 아버지나 그 이후에 태어난 나도 모자람 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귀한 인재였다. 아이를 낳을 수 있던 몇 안되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원시적인 이야기일 수는 있어도 대를 잇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은 더 많아지고 더 오래 살고 더 깐깐해졌다. 할머니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던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더더욱 적어졌다. 지구는 그런 깐깐한 인간들이 싫었던 것인지 그 많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 인류는, 아니 지구인들은 그런 변화를 몹시도 뒤늦게 눈치채고 말았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 시절. 낳는다면 언제든 낳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그저 그렇게 오만했던 걸까. 그냥 두다보면 젊은이들이 알아서들 낳겠거니- 하며 방관했던 그 찰나의 나태한 시간이 지나고 위기는 조용히 도래했다. 지구는 순식간에 충격에 빠졌다. 서서히 줄어들고 있던 신생아의 숫자가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수천명대로 내려갔다. 많지 않냐고? 아니다. 단 1년 사이에 전 세계의 아이들을 모으고 모아도 만명을 넘지 못하게 되었다. 온 지구의 아기들이 만명이 채 안 됐다. 모두가 종말을 외치고 미래는 없다며 울부짖었다. 그렇게 찬란한 문명의 끝이 오는 듯 싶었다. 그런데 그 후로 딱 1년이 지나고 우주정거장의 어느 과학자에게서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것은 기적이었을까. 발악이었을까.
24 이름없음 2022/02/22 01:57:37 ID : gkpQleLgpdV 0
[기록21] 21XX년 지구 기준 6월 이상해. 이렇게 밝을 수 있나. 지금은 어두운 밤인데.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는 밤하늘) 밤에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라. 밤하늘의 매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향의 하늘은 낮이니 밤이니 했어도 인공 태양을 끄는가 끄지 않는가의 차이일 뿐이었으니까. 하얗거나 까맣거나. 이렇게 올려다볼만큼 아름답지도 않았지. 할머니는 하늘을 볼 때면 지구 생각이 난다고 했다. 평생 향수병에 시달리셨다. 지구는 이렇지 않았는데. 지구는 저렇지 않았는데.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풍경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불이 켜져있는 작은 가게 은비 세탁소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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