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의 첫 만남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물티슈로 닦아주던 네 얼룩, 언제까지나 계속 갈 것 같았던 관계,
여전히 나만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끝임없이 사랑하고, 좋아했던, 눈바랜 너를,
이제는 그 물티슈로 네 흔적을 지우려 한 것이 후회될 정도로,
허우룩한 마음으로 너만을 바라보다 사라졌다.
◆u4Gre6nSIK32022/01/27 09:09:00ID : xDxWnXBwHxB
무더위가 일상인 8월의 오후, 그 아이를 만났다.
금발의 머리카락은 새하얀 피부와 불그스레한 홍조, 파란색 눈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새하얀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내 또래의 여자아이는 참 예뻐 보였다.
사실, 첫 만남에서 그 아이는 나에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냅다 나에게 사이다캔을 던지더니 황급히 달려오며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다행이 빈 캔이었고 팔에 스쳐서 다치지는 않았다.
" 미, 미안해.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했는데, 조준을 잘못해서 그만.. "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영 기분이 찜찜했다.
가까이서 보니 비싸 보이는 이어폰과 스마트폰을 들고 있어서,
내가 뭐라고 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그 아이는 캔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 그런데, 혹시 이사 왔어? 이 동네에서 못 본 것 같아서. "
" 응! 얼마 전에. 한국이 더 좋거든. "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끼고 있던 이어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한국이 더 좋다고? 그럼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온 거야? "
" 응. 원래는 영국에서 태어났는데, 아빠가 한국 사람이셔. "
" 오, 그렇구나.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수 뚜껑을 닫았다.
" 사실, 우리 부모님 이혼하셨다? "
" 어, 어? "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머금고 있던 이온음료를 뿜을 뻔했다.
아이는 싱그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 나는 엄마랑 아빠 중 그 어느 쪽도 선택하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은 자꾸 나를 데려가려 하시더라. 그래서 지난 주에 새로운 한국을 선택했어. 곧 중학교에 전학도 갈 거고. "
" 아... 응. "
나는 멋쩍게 억지웃음을 지었다.
" 그래도,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 같아서 좋아. 새로운 친구도 있고! "
" 벌써 사귀었어? 빠르네. "
아이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킥킥 웃었다.
" 바로 여기. 너, 내 친구 해줄래? "
해질녘 노을이 따스하게 우리를 감싸 주었다.
그리고, 한여름의 무더위와 함께 소중한 인연이 비추었다.
이름없음2022/01/27 10:49:49ID : vfU5bu8rAoZ
동경
이름없음2022/01/27 11:52:00ID : CnXz9h89vxA
화장실
담배꽁초
◆u4Gre6nSIK32022/01/27 12:32:13ID : xDxWnXBwHxB
당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로 하여금 자살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선인장의 잎은 뾰족한 가시가 되어 나의 심장을 푹 뚫었습니다.
뻥 뚫린 심장에서는 각종 암울하고 참담한 말들이 흘러 나왔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선인장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u4Gre6nSIK32022/01/27 12:37:09ID : xDxWnXBwHxB
밤하늘을 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그 이를 불러도,
아무리 마음속으로 외쳐도 그 이는 오지 않았다.
찬바람을 맞으며 어둠 속으로 파묻힌 다음에야 생각했다.
이 괴물은 나를 파먹으려 하는구나.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고 목청껏 불러도 오지 않는구나.
외로움이 나를 집어삼켜 녹녹히 적셨다.
◆u4Gre6nSIK32022/01/27 12:47:46ID : xDxWnXBwHxB
간만에 한파가 덮쳐왔다.
추위에 몸을 덜덜 떨며 화장실 칸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추웠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던 순간,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야옹아! 이거 먹어! "
화장실 밖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모양이었다.
헛웃음을 자아내는 아이의 맑은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리고, 변기 뚜껑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숨을 내뱉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러워져 버렸다.
라이터가 탁 소리를 내며 화장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름없음2022/01/27 18:01:29ID : IMoZg4Y3Bbw
약통
◆u4Gre6nSIK32022/01/28 20:36:06ID : xDxWnXBwHxB
또 두통이 시작되었다.
머리만 아프면 좋겠건만, 내 몸은 나를 따라주지 않았다.
갑자기 손목이 간지럽고 마구 긁고 싶은 충동이 잇따랐다.
금세 시뻘개진 손등과 팔목이 따끔거렸다.
커터칼과 가위는 방에서 치운지 오래였다.
팔을 축축히 적시는 선혈이 흐르는 것 같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움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제는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두통 때문에 일상 생활도 힘들었다.
졸음이 쏟아졌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실까지 느릿느릿 걸어갔다.
약통을 꺼내, 기간 지난 알약을 물 없이 입에 탈탈 털어 넣자 토기가 좀 가시는 듯 했다.
새하얗고 손톱만한 알약들은 나를 도와주었지만,
이제는 그 구세주 같던 약마저 떨어져 가고 있다.
참을성도 점점 떨어져 가고 있다.
오늘도, 병든 몸을 원망하며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