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먼저 제시해볼게. 구름 먼지 희망

페인트칠이 벗겨져 마구잡이로 흐트러진 자국이 폐건물의 으스러져가는 피부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 피부 위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를 사귀고, 꿈을 꾸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학교에는 어린 아이들이 가득했다. 수업시간에 모두 각자 바라는 것들을 발표하고 웃고 떠들던 시간이 생각난다. 나는 특히 음악시간을 좋아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은 피아노를 친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선생님이 혼자서 피아노를 칠 때가 가장 좋았다. 조용한 시골마을의 조그마한 음악실 속에 울려퍼지는 맑은 소리들의 화합. 그것들은 나를 내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주는 것만 같았다. 집에가서도 음악실의 피아노 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 소리들은 내 머리 속에서 재조합 되어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그런 멜로디들이 가득 들어 앉아 버틸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표현해내고 싶었다. 그 소리들이 현실에 나타나 귀 속을 통해 들리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과후, 아이들이 모두 떠난 음악실에 나 혼자서 검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무거운 피아노 뚜껑을 천천히 열어서 사람의 이빨 같은 건반들을 손으로 흝었다. 어느 것이 내 머리 속의 소리를 나타내줄 건반인지는 잘 몰랐지만 나는 일단 건반의 제일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하나씩 처보았다. 수업시간 내내 피아노 소리를 듣기만 하다가 내가 직접 처보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건반 하나 하나를 칠 때마다 소리가 흡수되는 걸 느끼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것이 나의 피아노에 대한 첫 경험이다. 이곳은 내 꿈을 시작한 장소다. 학생수가 줄어 여기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동창한테 들었을 때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저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와서 폐교의 바닥을 이렇게 밟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속이 울렁거렸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씩 떨어진다. 떨어지는 물방울은 스타카토를 연주했다. 철골에 떨어지는 놈은 높은 시, 흙바닥에 떨어지는 놈은 가운데 도... 과거의 나의 기억들이 빗물에 쓸려 내려간다. 곡의 멜로디가 생각나지 않아 절망해 찢어버린 나의 악보들의 쓰라린 조각들도 젖은 채로 떠밀려간다. 폐교에서 나와 빗방울의 노래를 들으며 간다. 우산은 가져왔지만 쓰지않는다. 마음을 다 잡은 채로 나도 내 머리속으로 비를 내린다

자각몽이다. 무의식 속 내가 바란 건 진 몰라도 나는 무조건 이 큰 저택 속 금고를 찾아 돈을 가져가야 한다. 간단한 잠금장치를 풀고 레이저를 빠져나와 나온 것은 "미로?" 보통은 금고를 가진 밀실이나 함정이 있기 마련인데 미로는 새롭다. 일단 조심히 왼편으로만 걸어보자. 그렇게 크진 않을 테니 금방 도착하겠지 거의 다다를 즘, "어?" 전체가 흔들리고, 놀라 중심을 잃어 넘어졌다. "함정이군.." 고개를 떨구고 들린 소리에 살짝 들어보니 내방 천장이다. "..언제나 꿈은 결말이 없네"

오늘 길에서 널 봤어. 졸업 이후로 3년 만에 본 네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보조개가 눈에 띄는 그 웃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더라.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넌 참 발랄하고 상냥한 친구였어. 그런 널 정말 좋아했는데, 내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결국 이 마음은 전해지지 못한 체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네. 난 요즘도 그 벚꽃을 보면 그 때를 기억해. 그 날 벚꽃잎이 휘날리는 거리 속에서 날 향해 웃어보이던 너를 그리워해. 이 편지도 결국 전해지지 못한 채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할 걸 알지만, 오늘 다시 본 네가 너무도 반갑고 이뻤어서 진심을 다해 적어봐.

보수적인 집안에서 누나는 부모님과 많이 싸웠다. 누나는 주로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좋아했고, 부모님은 그런 누나의 취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누나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집에는 고성이 오갔다. 그날은 누나가 어머니의 엄중한 경고에도 은색 초커를 차고 왔던 날이었다. 부모님은 초커를 잡아당기시며 누나를 협박했고, 몸 싸움 끝에 누나의 졸린 목에는 초커의 뾰족한 모양이 긁혀 흉터로 남았다. 그 뒤로 누나는 집에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누나를 다시 본다면 돌아오라고 화낼 작정이었지만, 누나를 다시 만난 날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누나의 흉터 위엔 나비 모양의 문신이 그려져있었기 때문이다. 난 나비가 싫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만든 애벌레는 기어코 세상을 향해 날아갈 나비가 됨을 알고있다. 열심히 썼는데 애증의 감정이 안담긴거 같아서 슬퍼 ㅠㅠㅠ

"정말 예쁘고 바보같아." 뻐끔거리는 네 입이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너를 지칭하는 것인지, 나를 지칭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너는 응시하고 있던 것일까? 그래봐야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네 눈에는 흰 막이 뒤덮여 있고 입 안에는 치아 하나 남지 않았으니. 너는 퇴화하고 퇴화하여 마침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일부러 너를 깨지기 쉬운 싸구려 유리병에 넣었다. 너를 더 소중히 여기기 위해, 언제든지 미련없이 깨뜨려버리기 위해, 내 죄를 더 선명히 직시하기 위해. 코조차 남지 않아 아가미 호흡을 하는 너는 꽤나 귀여웠다. 네가 담긴 병을 손으로 건들이니 너는 병 한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래봐야 바닥에서는 네가 보이는데, 나는 한참이나 웃었다. 네가 우스운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이 너무나 초라해서 웃었다. "네가 웃는 게." 너는 다시금 그 작은 입을 뻐끔거렸다. 또 멋대로 판단하는 내 눈동자는 네 표정을 비추고 있었다. 그 표정은 뭐야? 두려움, 곤란, 불안, 그 따위의 것들. 얼굴 하나 찌푸릴 수 없는 네가 그런 걸 뱉을 리 없는데, 그런데 내 눈에 비친 너는. 난 네 앞에서 욕지기를 했다.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동안의 모든 감정을 토해냈다. 더러워진 바닥을 닦으려고 휴지를 꺼내는데, 네가 입을 열었다. "죽어." 나는 널 보지 않았건만, 너는 그렇게 말했다. 쏟아낸 것들이 너무 많은 탓에 너를 쥐었다. 오늘도 버리지 못한 너를 사랑하며. 1년만에 글 쓰는거라 어색하다

5년 전 쯤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시작한 이유는 어이없게도 실수 때문이었다. 등교할 때 기차를 잘못 타고 강원도까지 와버린 탓이었다. 이미 지각인지라 더 늦어봤자 소용 없겠다는 생각 때문에 좌석에 몸을 편히 누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강원도의 수많은 산들이 바깥을 장식했지만 어느 산도 똑같지는 않았다. 제각각 다른 산들이 내게 포근함을 선물해 주었다. 몇 십 분 쯤 지났을까, 어느 여자가 내 옆좌석에 앉았다. 필시 여기가 원래 자리는 아닐 터, 나는 창문에 몸을 더 기댔다. "바깥 진짜 예쁘죠?" 갑자기 말을 걸어오자 나는 당황해서 그렇다고 답했다. 내 표정이 잘 보였는지 그녀는 키킥거리며 웃었다. "이거 영월로 가는 찬데, 학생이 어쩌다가 탔어요?" "아, 그, 열차를 잘못 타서... 학교도 이미 늦었겠다 계속 타고 있어요." 그녀는 또 웃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상황이 웃기길래 같이 한참을 웃어버렸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러가지를 알게 됐다. 그녀는 사진 작가이고, 여기저기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조금 커다란 카메라를 꺼내 내게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사진에는 수많은 멋진 풍경들이 담겨있었다. "내가 풍경 하나는 진짜 잘 찍는단 말이죠." "여긴 어디에요?" "단풍산이에요. 노을이 진짜 예뻐요." "네, 진짜 그렇네요." 고등학생 때의 작은 일탈은 꿈 없던 내게 새로운 꿈을 찾아주었다. 가방에서 내 카메라를 꺼냈다. 그녀의 것처럼 조금 커다랬다. "벌써 도착했네요." "그러게요. 그럼 저는 이제 돌아가볼께요." "영월 오자마자 집으로 돌아간다니, 이것 참" 그녀가 큭큭거렸다. "이런 인연은 흔치 않으니깐 나중에 멋진 어른 되면 누나 다시 찾아와라?" "네, 담에 뵐께요." 기약 없는 약속을 두고 5년 전 첫 여행은 끝이 났다. 그 이후 2~3개월 마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곤 한다. 그리고 풍경이라는 이름의 인연을 사진 속에 담는다. 사진 속에 담긴 인연은 평생의 추억이 되어 5년 전의 찍은 나와 그녀의 사진처럼 여운을 남겨준다. 오늘, 이번 역은 영월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랄때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터무니 없는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나 악마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그녀는 그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그리도 밉살스러워 보이긴 또 처음이었다. 마을에 소동이 일어났었다. 마녀를 잡아들인 날이었다. 꿀 흐르는 길고 부드러운 금발에, 금방이라도 물이 넘쳐흐를것 같은, 하지만 어째서인지 얼음장보다 차가운 파란 눈망울을 가진 소녀였다. 이유라... 무슨 이유였더라. 마을의 은식기와 은촛대가 모두 사라져서였을까. 메리네 사냥개가 나무에 걸린채 발견되어서였을까. 마을 축제 음식을 위한 가축들이 모두 처참하게 죽어있어서였을까. 모두 소녀가 한 짓이었다.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소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어쩜, 불쌍하기도 해라. 틀림없이 모두 누명이리라,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소녀를 마녀로 몰아간 이상, 소녀는 마녀가 아닐리가 없었다. 어설픈 손길로 묶은 밧줄을 소녀의 목에 걸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마을. 소녀의 가녀리고 흰 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색이었다. 지긋지긋한 개돼지들. 소녀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목을 장식한 밧줄은 여전히 그 목을 옥죄어오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세상? 소녀의 밑에서 의자를 빼내었다. 작은 두 발이 버둥거렸다.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아하.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저 귀를 찢을듯 비참한 소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목소리는 모두 내 목에서 나오는것이었구나. 그럼 마지막으로 한번 기적을 바래야겠어. 진짜 마녀가 될 기회를 줘, 아무나, 내 저주를 들어줘, 하늘이 맑았고 쥐 죽은듯이 고요해진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아직 너를 기억한다. 같으면서도 다르던 너와 나는 유독 우리의 미래를 꿈꿀 때 죽이 잘 맞았다. 나는 작가를, 너는 배우를 꿈꾸며 서로가 서로의 뮤즈가 되어주었다. 내 글 속에 담긴 우울을 표현할 수 있는 건 네가 유일하고, 항상 밝고 해맑던 너의 이면을 들출 수 있는 건 내가 유일하다 생각했다. 나는 빛 다한 나의 꿈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내 피가 보라색일 줄 알았어." 검붉은 색으로 이리저리 그어진 낙서를 너에게 보이며 담담하게 얘기하던 그 날을 기억한다. 나는 내 피가 반 쯤 파란 눈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 파란 눈물이 머리에, 심장에, 손 끝에 흘러 글에 스며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글은 파란 우울이 담겨 아름답다 생각했다. 푸르게 일렁이는 글이 특별하다 생각했다. "근데 아니더라. 빨간색이었어." 하지만 야속하게도 내 글은 푸르게 일렁이지 않았다. 빨갛게 타오르지도 못했다. 투명하고 맑지도, 아득하게 까맣지도 못했다. 내 글은 흰 종이에 검은 글자가 섞인 그저 그런 회색이었고, 화려한 글들 속에 묻혀 그림자가 되었다. 미련한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피를 냈다. 보라색이 베어 나오길 바라며 피를 냈다. 하지만 흐른 피는 함께 흐른 눈물과 섞여도 여전히 빨간색이었다. 일부로 붉은 낙서 위로 눈물을 흘려도 낙서는 보라색이 되지 못했다. 그때 내 낙서를 보고 눈물을 흘리던 너를 기억한다. 너는 파랗게 울었다. 내가 그토록 원한 파란 눈물을 흘렸다. 그런 네 눈물이 닿자 낙서가 거짓말처럼 보라색을 띠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나는 인정했다. 내 글이 푸르게 일렁인 건 네 덕분이라는 것을, 파란 눈물을 흘리면서 빛나는 건 내 글이 아닌 너라는 것을. 우습게도 파란 너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내가 회색이라는 걸 인정했다. 지금의 나는 회색 정장을 입고 회색 건물에 들어가 그림자가 되어 매일을 살아간다. 평범한 회색의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아직 종종 너를 기억한다. 눈부시게 푸르던 너의 눈물을 기억한다. 내 글을, 나를 잠시나마 파랗게 빛나게 한 너를 아직도 기억한다. 나의 배우, 나의 뮤즈, 나의 꿈, 나의 파랑. 아이고 쓰다 보니 어째 작가, 파랑, 눈물 쪽으로 많이 엇나간 것 같네... 미안해라...

일반 보편으로서 성립하는 성향이 사람에게 있다면, 나는 주장하겠다.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사랑에 빠지면 열정적인 구애를 할 수 있음을! 내면에서 솟구쳐 어딘가로 발산하지 않으면, 이 불길이 이곳에 있노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오직 타죽을 뿐. 가치에로의 동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음이라. 한 개인의 시간적 흐름 상에서 명백히 뒷전임에도 그것이 끝끝내 지금에 임한다. 아무리 헤치려해도 그것이라 부르는 건, 너무나도 명백히 일련의 감정으로서 우리의 내관을 뒤흔든다! 가치에로의 동경. 그는 그 잣대에서 후회와 회한 등을 뒤집어 쓰면 오늘도 태양을 피해 숨을 들이마쉬고 내쉴 것이다! 빛은 그에게 있어서 뜨거움이다. 내면에서 타오르지 않는 그것은 그의 몸에 해롭다. 빛이기에! 그의 경험적 흐름에 근거함에도 그가 쌓아올리지 못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함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빛을 보면 갈구하는 것이다... 그의 열정이 빛을 동경함으로써 타올랐듯이...

신사(紳士), 비밀, 미소

최근 어떤 인물과 편지로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상대는 언제나 항상 점잖은 태도와 아름다운 외모,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와 동시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마저 갖춘 신사분으로, 독특한 필체에 외견뿐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에도 그 특유의 신비롭고도 중후한 분위기가 어려 있었기에 그와 편지를 주고받는 나날은 매번 나에게 두근거림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그때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런 기분은 영영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수 개월 전 희귀한 보물이 수없이 잠들어 있는 조용한 박물관에서 처음 만난 날이 교류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넋을 놓은 채 진귀한 보물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고 우리 둘 사이에 오간 이야기라곤 보석이나 명화에 대한 감상과, 가끔 서로 생각하는 바가 일치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웃음이 전부였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만큼 정중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신사와는 만나본 적이 없던 탓일까. 딱히 자주 찾던 곳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로움을 쫓아 거의 매일 박물관에 가곤 했다. 그도 나처럼 박물관에 자주 방문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있는 날도 없는 날도 있었지만 없던 날이 더 많았으니까. 몇번인가 다시 만났을 때 난 그와의 인연을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어 평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꿔왔던 편지 교환을 제시했다. 그는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흔쾌히 수락했고, 그렇게 우리의 교류는 시작되었다. 물론 편지 교환을 시작했다고 해서 그동안 이어졌던 외부에서의 만남을 끊어버린 건 아니었다. 때때로 그 쪽에서 먼저 박물관에서 만날 것을 제안해왔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 그를 만나러 박물관으로 향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와의 교류 속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편지 교환을 시작한 뒤, 꼭 그와 만난 당일날 밤에만 박물관에서 보물이 누군가에 의해 도둑맞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점점 의문이 커진 탓에 결국 나는 그에게서 받은 편지의 내용들과 인터넷 기사들을 자세히 대조해가며 살펴보았다. 어떤 날에는 보석이 사라졌다. 또 다른 날에는 명화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물들이 사라진 날들은, 전부 그가 편지로 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한 날짜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몇가지 더 알게 된 정보는 오직 밤 시간대에만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한 가지 특이사항으론 범인은 마치 어느 창작물에 등장하는 괴도처럼 행동을 개시하기 전, 꼭 이 시각에 이러이러한 보물을 가져가겠다는 식의 예고장을 보낸다는 점. 그가 노리는 보물은 보석이나 명화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하다는 점. 또 앞서 벌어진 일들이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외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기사에 공개된 예고장의 필체는, 그 특유의 독특한 필체와 거의 흡사하다는 점.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난 결국 그를 만나 도난 사건에 대한 의문점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혹시 최근 벌어지는 박물관 도난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 지금까지 사전에 따로 예고장을 보낸 뒤 범행을 저질렀던 사람이 있었는지. 또 범인이 계속 이곳을 노리고 있는 것 같으니 우리도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지. 점점 격앙되는 내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그에게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오하고 수수께끼와 비밀로 가득 차 있다,고. 그러면서 내게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차가운 웃음을 지어 보였기에, 이 이상 더 말을 꺼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예고장의 필체에 대해선 도무지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그에게도 차마 말 못할 사정이나 비밀이 있겠지 하며 너무 깊게 캐묻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에 대한 의구심을 애써 억눌렀다. 그는 아닐 거야, 절대 그가 저지른 짓이 아닐 거야... 하지만 꾹 눌러왔던 의구심은 머지않아 폭발해버렸고, 나는 급하게 작전을 세운 뒤 실행에 옮겼다. 오늘 박물관에서 그와 만나 대화를 나눴으니, 몇시간 뒤 밤이 되면 그가 다시 박물관에 찾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건물 안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기다렸다가 그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한다. 나는 다시 한번 그 박물관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래도 사전에 예고장을 보낸다던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 박물관 쪽 직원들과 경찰들도 미리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해가 저물고, 하늘이 완전히 까맣게 변했을 때. 갑자기 건물 전체에 불이 꺼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동이 펼쳐진 후 다시 불이 켜지자, 경찰들이 지키고 있던 보석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그대로 건물 밖을 뛰쳐나갔다. '범인'을 쫓아 근처 거리를 한없이 달렸고, 마침내 수상한 차림을 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게 새카맣다.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망토, 검은색 실크 햇과 모노클. 그리고... "결국 비밀을 알아내려 오셨군요." 귀에 익은 나긋나긋한 목소리. 하나도 틀림없는 그의 목소리였다. 머릿속이 극도로 혼란해졌다. 지금까지 인연을 쌓아온 상대가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범죄자였다니. 보석을 한 손에 든채 여느 때와 똑같이 미소짓는 그 모습에 자동으로 뒷걸음질 쳤고, 그에게서 감돌던 신비로움은 어느새 무거운 압박감과 공포감으로 변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범인'은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다음에 노릴 사냥감은 과연 무엇이 될지 세상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보석이 될지, 명화가 될지, 오랜 역사가 담긴 액세서리가 될지, 유명한 가문에 전해지는 가보가 될지. 혹은... 사람이 될지. 비밀에 둘러싸인 미지의 영역은 다음 예고장이 도착하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여기 글 쓰는건 처음인데... 나 진짜 가면 갈수록 개못쓴다

그는 다크 초콜릿의 쌉싸름한 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커피도 잘 마시지 못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달고 살던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달콤한 것을 좋아했고, 달콤한 사람이었다. 그와의 사랑은 참 달콤했다. 낮에 보면 밤에 또 보고 싶었고, 손을 잡으면 안고 싶었다. 과거를 나누고, 지금을 보내며 함꼐할 미래를 그렸다. 그와 나는 서로를 애틋하게 사랑했다. 한없이 달콤하고 애타는 나날들이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건 내게 너무 과분한 것들이었다. 그는 햇살이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이었다. 내가 그림자였을 뿐이다. 난 그가 있기에 존재했지만, 결코 그를 닮을 수는 없었다. 그는 나를 존재하게 했지만, 나를 품어줄 수는 없었다. 한없이 따스한 그라고 그늘까지 품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그가 화이트 초콜릿을 좋아하던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 사이는 평생 좁혀지지 않을 것이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결국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는 참 애달프게 울었다. 왜, 왜냐고 몯는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저 우리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식상한 말로 둘러대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내게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난 그와 어울리지 않았고, 그는 내게 과분했고, 그리고... 2년 전 화이트데이, 조그마한 손으로 사탕을 건네며 좋아한다고 고백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탕은 참 달았다. 입이 얼얼하게 달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네가 내게 건네준 사탕이 정말 달아서, 그래서 나는 너와 이별했다.

들판의 꽃들이 어여쁘게 피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모습을 보고 있자니 평온함이 몸 속 깊이 잦아드는 것만 같았다. 선선한 바람, 그럼에도 햇빛은 어찌나 따뜻한지. 날씨마저 완벽한 날이다. 그저 이런 날만이 반복되기를 바람에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이기적인 나는 그런 헛된 희망을 바라본다. 그렇게 가만히 풀밭에 앉아 고요함을 즐길 때 그 고요를 깨는 폰에서 진동소리가 들린다. 뭐, 기분 나쁠 것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평화롭던 시간을 방해한 것에 살짝 뾰로통해서는 폰을 든다. 내 잘못이지 뭐. 무음으로도 안 해놓고. 괜한 질책을 한 뒤 메세지를 확인한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죽어? 누가 누가 죽어? 왜? 의문은 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코 끝은 나도 모르게 시큰해진다. 눈 앞은 흐려졌다 맑아지기를 반복하며 신음소리는 잇새로 흘러나온다. 아, 아.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버팀목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ᆞ ᆞ ᆞ 오랜만이다. 계절이 지나 꽃이 져버리고 들판은 새하얗게 물들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칼바람은 어느새 길어진 머리칼 사이로 파고들어 헝클어트린다. 머리는 금방 엉망이 되겠지만 상관없다. 멍하니 져버린 흔적조차 남지 않은 꽃들의 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눈물이 흐른다. 손으로 얼른 눈물을 닦아낸다. 괜찮아졌는데, 왜 이러지-? 분명 괜찮아졌다. 그런데 괜찮지 않는건지 눈물이 홀로 흘러내린다. 긴 시간이었다. 핀 꽃이 져버리기까지. 그 사이는 절망 속의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을 홀로 위태롭더라도 인내하며 기다렸고 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아니었다? 그런가. 아니었나? 궁금하다. 괜찮아진 건지 아닌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애써 괜찮은 척 하며 주위를 느릿느릿 걸어다녔다. 그러다보니 하얀 들판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노란색. 뭐지 싶어 다가보니 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복수초 같은 꽃인데 이 작은 꽃이 어찌 눈서리를 뚫고 피어났는지 신기할 뿐이다. 생각해보니 벌써 2월이다. 슬슬 꽃이 피어날 시기. 복수초는 겨울 끝자락에 피어난다. 그리고 곧 다른 꽃들도 만개하니 복수초는 봄의 시작을 조금 일찍 알리는 꽃일터이다. 꽃이 핀다. 언젠가는 질 것이고 일 년 후에는 다시 피어난다. 그 시기가 조금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진다. 그리고 언젠가는 핀다. 그것이 꽃이다. 참 재밌다. 나도 꽃이었으면 좋겠다. 절망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겨울을 이겨내고 긴 인내를 통하여 따스한 봄을 언젠가는 맞이하는 꽃. 나는 언젠가는 꼭 만개할 것이다. 나는 괜찮지 않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틴다. 버틴다. 버티고, 또 버틴다. 언젠가는 봄을 맞이할테니, 그 기간이 길더라도 버틴다. 나는 그럴 것이다. 부디 하루하루 피어나 어느샌가 화사한 꽃 밭이 되어있기를.

유난히 달이 어둡다. 무언가에 가려진 것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계속 달을 바라본다. 달과 달리 선명한 별이 먼저 시야에 들어와서, 나는 한 눈을 팔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언가가 사라지며 그믐달이 눈에 들어온다. 달이 얇은 게 꼭 잘려나간 손톱 같았다. 아니면 어둠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빛이나. 어둡지만 그레도 빛이라는 건지 달빛이 조각상의 형상을 만든다. 어스푸름하게 형태를 내미는 조각상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곧 망토를 두르는 것처럼, 다시 달이 가려졌다. 나는 그제서야 달을 가린 것이 하얀 구름이란 것을 깨달았다.

불빛이 반짝이는 공간속, 그는 항상 잔디만을 그렸다. 무엇을 바라보는지 항상 허공에 시선이 맴돌았다. 아무말없이 그저 사각사각 연필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반딧불이, 노래, 달빛

>>429 욕망 타락 지옥 먼저.. 솜사탕 뭉치의 하늘은 어릴적 동심과 같지만 뭉게구름 자욱히 깔린 잿빛에 머무른 나는 타락해버린 사람일 뿐이다. 끝 없이 타오르는 어두운 맘이 있다. 그래서 이것을, 형체가 없는 낡은 비디오테이프 같은 이 맘을 욕망이라 부르기로 마음 먹었다. 잿빛의 먼지구덩이로 빠져버린 이유인 거다. 지옥과 같이 헤집어 놓는 욕망은 성립되지 않아야 하는 식이었다.

>>430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에 홀린 듯이 발걸음을 떼었다. 숲길은 점점 좁아졌고, 달빛은 구름에 가려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도 모른 채 이 기묘한 곳을 걷고 있었다. 어느 순간 노랫소리가 끊겼다. 그 순간, 내 눈앞에는 수많은 반딧불이들이 나타났다. 여름밤의 더위와 이곳까지 걸어온 나의 수고를 전부 보상하는 듯한 반딧불이가. 나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너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가슴에 칼을 박았다. 긴 칼은 내 손을 타고 네 옷자락과 살가죽, 심장을 뚫고서 다시 내게로 돌아와 폐에 박혔다. 까만 동공 안에 비치는 경악과 배신감,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핥아대는 내 눈의 형태가 조금 우스웠다. 뭐가 그렇게 놀랍고 억울할까, 모든 것은 네가 원했을 터인데. 10년 전, 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공멸을 예감했다. 네가 썩 착한 녀석이 아닌 것 쯤 처음부터 알았으니까. 알면서도 네게 넘어가준 나에게 우리의 결말은 네가 눈이 돌아가 나를 목죄어 죽이는 것이 먼저인지, 내가 말라 죽는 것이 먼저일지의 치킨게임 이었다. 차라리 네가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면 나는 끝까지 네게 이용당해 주려했다. 어느 날 내가 여느때와 같이 가장 사경을 헤맬 때 네가 한 말이 아니었다면. 그 때 너는 대체 뭐라고 했던가. 이제 그만해도 돼? 아니, 그럴 순 없다. 너는 나를 쓰고 버리고 다시 주워오며 내가 언제라도 네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 하진 않는지 감시하고 불안해하고 견제해야했다. 그토록 불완전한 개 임에도 너에게 이만큼이나 헌신하는 자는 나밖에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고 집착하며 날 막 대하면서도 내가 떠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해야했다. 네가 그 말만을 남기고 모든것을 포기하며 도망쳤을 때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이것 뿐이었다. 너는 심장을 찔렸고 나는 폐를 찔렸으니 네가 먼저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게 나의 마지막 위안이었다. 나는 너의 모든것을 보고싶었으니,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네가 체념한듯 눈을 감고 팔을 늘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네 슴이 희미해지고 옅어지다가 이내 끊기는 것을 보았다. 미약하게 오르내리던 흉부가 멈추고 이 고요한 곳에 흐르는 것은 바람뿐임을 알아챘을 때, 나도 눈을 감았다. 희망이란 건 처음부터 없었다. 그 비스무리한 거라도 있다면 아마 나에게 있어 너의 존재. 그리고 너에게 있어 나의 존재. 뭐, 둘 다 이젠 없겠지만.

추락하며 본 너의 표정에 담긴 감정은 내가 본 것 중에도 가장 화려한 기쁨이었다. 절망한 나는 네가 무서워한다고 말했던 까마귀가 되게 해달라 빌었고,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이제 남은 건 너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며 내 몸짓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너를 보고 작은 위안을 얻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네가 했던 말 중 진실은 없는지 지금 내 날개를 잡은 너는 끔찍이도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다.

조금은 우울했으면 좋겠어. 너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이기적이란 거 알아. 내 기분에 세상이 맞춰줄 순 없지. 나는 평소에도 늘 그러니까 내가 맞추는 편이...맞춘다는 표현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 같아. 있잖아. 네가 그랬잖아. 별과 별 사이는 멀어서 너무 멀어서. 별은 어쩌면 자기 자신만 덩그러니 놓여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누구를 얘기하는지 싶었는데. 가끔은 그랬던 네가 생각나네. 괜찮아. 지금은 잊어버리려고 하고 있으니까.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시간이란 바람에 풍화되면, 빛바래면 괜찮아지겠지. 상투적일지도 몰라. 그래도 좋아. 그래도. 우울했으면 좋겠어. 하루 종일.

하늘에 진 노을을 바라보며 하나씩,하나씩, 너를 추억해 나갔다. 태양처럼 강렬하게 빛나기 보다는 달처럼 은은하게 빛났던 너를, 울창한 숲보다는 시원한 바다가 더 어울렸던 너를,한창 찬란했었던 너를 ​하나씩 떠올렸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너를 떠나보내기가 힘들어져서 그만 해보려했으나, 어찌 그럴수 있겠는가. 네가 나를 사랑한 만큼 나 또한 너를 사랑하였는데 어찌 너를 추억하지 않겠는가. 그리도 청아하게 빛나던 너를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허나 이리 수려하던 너도 보내줄 때가 되었기에 너의 잔재를 쥐어 넓은 바다위에 뿌렸다.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가 바다위로 흩날리는 하얀 것을 나의 눈물과 같이 보냈다. 그리고 빌었다 제발 다음번에 만날때는 행복해지라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워지라고, 애타게 빌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너를 향해 말했다 고맙고 많이 사랑한다고. 너와 함께해서 즐거웠다고 소리쳤다. 나의 말을 들었던것일까,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고 있던 내앞에 고래가 튀어나와 그 커다란 몸둥이를 뒤집으며 대답하는것 마냥 울음소리를 내었다. 다행이구나, 이번에는 자유롭게 바다를 누빌수 있어서.

그립다 . 학교가 끝나고 학원으로 가면서 음악 어플을 눌러 노래를 듣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도 그립다. 지금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노래요, 그들을 괴롭게 만드는 기계가 어플이니 평범하지는 않은 내 나름의 일상이다.

아우디, 선생님, 아메리카노

훈남 교생쌤이 어디서 돈이 났는지 아우디를 끌고 아메리카노를 든 채 학교에 오는 것을 목격했다. ...미안

매년 찾아오는 똑같은 겨울임에도 눈이 내리는 순간마다 깊은 상념에 빠지기를 반복한다. 사실 상념이랄 것도 없이, 시간에 빛바래 산화된 추억일 뿐이었지만. 많고 많은 추억들 중에서 기억을 돌이켜볼 때마다 덜컹, 하고 멈추는 부분이 이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찾아오는 숨막히는 젖은 공허함, 적막함, 약간의 슬픔의 출처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그 찰나의 추억에는 내 그리운 누군가가 머물곤 하는데, 얼굴조차 흐릿하게 번져 가물가물한 형태만 보임에도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지독한 슬픔에 나도 같이 울었던 것 같다. 음, 다시 생각해보면 눈물이 흘러 그 사람의 얼굴이 흐리게 보였을 지도 모른다. 내 좋을대로 미화된 기억을 잠깐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를 영영 잊어버리고 말 것이라며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으니, 나의 온전한 것으로만 남게 하고 싶었던 기억의 편린을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때는 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학생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서울의 학원가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녔던 예비 수험생의 나.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갈 무렵, 지금처럼 눈 깜박하면 지나가는 가을이 보다 조금 길었을 당시. 겨울 초까지 나겠다며 바락바락 엄마와 약속하고 새로 산 떡볶이 코트를 입은 채, 새롭게 등록한 학원을 향했다. 크게 이상한 것도 없는 것이, 요맘때 즈음의 학부모는 자녀의 무참히 짓밟힌 모의고사 성적표에 발등에 불떨어져 학원을 주구장창 바꾸곤 했으니까. 사설이 조금 길었으려나? 하지만 내가 앞으로 이야기 할 '그 애'도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학원으로 모여들었으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 애'는 학원 수업이 개강한 지 한 달이 내도록 학원 수업을 빠졌다. 학원에 나오질 않으니 접점이 없었다. 다만, 빈 옆자리를 볼 때마다, 출석 체크를 할 때 꼬박꼬박 불리는 그 애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디 돈이 똥구멍에서 솟냐며 학원비가 아깝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부모님이 부자인가?' 에서 시작한 궁금증은 사소하게 알게된 그의 작은 정보들을 양분삼아 무한정 자라나더라. 결국 '사정이 있는 친구'에서 '부모님 돈 믿고 수업 빠지는 양아치, 꼴통'로 이미지가 전락한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고 어느날. 나는 유난히 그날따라 극심한 생리통으로 인해 2교시도 마치지 않고 급하게 학원을 벗어났다. 1층의 학원 문 근처에는 수업이 시작한 지도 한참인데다가 수업 끝나기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기에 유난히 '그 애'가 눈에 띄었을 지도 모른다. 또래의 남자애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던. 하얀 볼캡 모자를 쓰고 있던 그 남자애는 사복 차림이었다. 평소였다면 그저 지나쳤을 테지만, 엄청난 생리통에 머리가 맛이라도 간 건지••• '그 애' 같았다. 그 흔한 교복을 입고 있던 것도 아니고, 명찰이 보이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유령같은 존재였던 내 빈 옆자리의 주인인 '그 애'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서 그 남자애와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을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애'의 이름이 그 남자애에게 들렸던 것 같다. 음, 아마 들렸던 게 분명했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향해 뒤돌은 그 남자애의 표정엔 물음표가 가득했으니까. 나조차도 놀라 잠시 숨쉬는 것을 잊었다. 그렇게 몇 초 동안 시선이 오고갔다. 조금 정정하자면, '그 애'는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들어맞으면서도 틀렸다. 수업에 안 들어가고 마음대로 쨌으니 분명 꼴통은 맞았지만, 가지런히 숱많은 눈썹에 강단 있는 눈매, 무엇보다 나를 꿰뚫어볼 듯한 맑은 눈을 가진 외양은 양아치와 거리가 멀었다. 소위 말하는 엄친아? 전교 회장을 맡을 것 같고, 뭔가 향기도 섬유유연제 냄새만 날 것 같은 그런 사람. 그 애는 나를 아냐는 물음을 던졌고, 당황한 나는 대답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면전에 던졌다. 동문서답이 따로 없다는 걸 깨닫자 마자 온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던 건 어린 나로서 당연했다. 그 과정을 멀거니 바라만 보던 '그 애'는 가볍게 웃었다. 미안하다고 계속해서 사과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던 나는 그 웃음을 보고 덜컥 숨이 막혔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와 웃을 때 동그랗게 만들어지는 입동굴이 예뻐서. 나오려던 말이 쏙 들어가고 어버버하며 다시 얼굴이 빨갛게 익어가려던 찰나에, 그 애는 내 코트 소매자락을 약하게 잡아 당겼다.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눈 떠보니 붕어빵 가게 앞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떴더니, 내 손에는 붕어빵이 봉투 째로 쥐어져 있었고, 또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니 '그 애'가 손을 붕붕 흔들며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한참을 그 애가 사라진 곳만을 바라봤다. 톡, 하며 볼에 내려앉은 차가운 눈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언가에 홀린 건가,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간 짧은 너와 나의 첫만남이었다. 그리고 오늘. 기상청도 예상하지 못했던, 난데없는 첫눈이 내렸다. 이루어지지 못할 첫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듯, 펑펑. 그 날이 나의 우연이 너와의 인연이 되던 나의 소중한 추억의 시작이었다.

잰걸음, 발자국, 사막

여러 지역을 여행하던 중, 이번에은 사막을 갔다. 한국의 기온에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만큼 뜨거운 공기,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 발가락 사이에 흘러들어오는 모래를 만끽하며 먼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뒤쫓는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하고, 조금 뜨겁지만, 이보다 값진 경험은 없으리. 그렇게 맨발로 하염없이 걷다 물보다 고운 모래에 넘어질까 두려워 잰걸음으로 내리막길을 걸어나간다.

빈 박스, 토끼 인형, 엄마의 립스틱

" .. 아. 박스 하나가 비네. " 이삿짐을 준비하다보니 빈 박스 하나가 덩그러니 놓였다. 아마 저 빈자리는 원래 ' 살아계셨다면 ' 엄마의 물건이 들어갈 자리였을것이다. 너울처럼 아른거리는 엄마와의 기억은 잠시 집어치우고 물건들을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저통, 악보집, 토끼 인형.. 다 정리하다보니 남은건 엄마의 냄새, 엄마의 칫솔, 엄마의 립스틱... 이 집도 곧 비워지겠지.. 생각하며 박스들을 정리하고 아늑한 집 풍경을 바라본다. 엄마는 분명 이곳에 있는데.. " 엄마, 나 이만 가볼게. "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오는데, 입에선 웃음을 지었다. 나도 참 이상하지.

거울에 손이 닿았다. 거울은 물처럼 일렁였다. 금방이라도 흐를것 같았다. 베개에 투둑, 일렁이는 거울의 일부가 떨어져나갔다. 정신을 차리곤 흘러내리는 거울을 붙잡고 싶어선 무작정 흐르는 거울을 손으로 담았다. 손에서 바닥으로. 담았던 거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거울엔 내가 비췄다. 깨달았다. 거울을 손으로 담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흘러가게 두면 된다. 바닥이 더러워지겠지만 상관없다. 더러워진 손을 씻고 인생을 살아간다. 단어) 노래, 비, 창문

창 밖에 후두기는 빗소리는 누구의 노랜가. 내리다가 멎는 것. 방울지며 창문을 덮는다. 창 밖에 후두기는 빗소리는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가. 내 창가에도, 이웃의 창가에도, 땅에도 바다에도, 함뿍 젖어드는데. 창 밖에 후두기는 빗소리는 어디로 날아가나.

유산균, 보라색, 체리맛 풍선껌

엄마가 몇번이곤 강조했던 유산균은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맛은 없었지만 이게 다 건강이고 걱정이겠지, 하는 생각에 얼른 입 안에서 녹인다. 유산균을 먹고 나면 늘 그렇듯 입이 텁텁했다. 나는 거실에 누워 이 텁텁함을 가시게 해줄 게 무엇인지 찾아보았는데, 역시 이런 걸 좋아해서인지 집안 곳곳 껌이 나왔다. 나는 여러 껌 중 체리맛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릴 적은 이런 걸 먹지도 못 하게 했었는데. 먹었다고 한참을 때렸었나. 풍선껌을 꺼내 입에 넣는다.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고 사소한 게 그때는 그렇게 커보이고 진귀해 보였다. 나이가 먹으니 이런 점이 달라지는구나. 천천히 껌을 씹으니 인공적인 체리맛이 톡톡, 터진다. 입 안에서 달큰하게 녹아 텁텁한 맛을 중화시켜준다. 어라. 그런데, 날 때렸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누가 날 때렸지? 설마. 그랬을리가. 내가 맞았을리가. 무슨 영화라도 봤었나. 그렇지 않으면 이 기묘한 기억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곧 고개를 돌려 시선을 텔레비전에 집중했는데, 이상하게도 내 팔이 보라색인 것 같았다. 그럴 리 없는데 말야.

니나는 스웨터를 정말 좋아했다. 나비가 그려진 스웨터는 붉은 색이었고, 니나는 붉은 색이 참 좋았다. 그래서 흰 우유를 쏟았을 때는 참 많이 울었더랜다. 그렇지만 니나의 엄마가 스웨터를 새로 빨아주자 니나는 방실방실 웃기 시작했다. 흰 우유를 쏟든, 물감이 묻든 그 스웨터는 언제나 붉을터였다.

우리는 서로를 친구라 칭했다 서로 사랑하기보다는 동경했고 존경하기보다는 믿어왔다. 너는 내 삶의 희망이었고 악몽 같던 나날들의 출구를 찾아줄 열쇠였다 곧이어 나는 네게 점점 스며들어가 나의 백지를 너라는 존재로 채워나간다

그는 도통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당초에 우리는 결핍을 알지 못한다는 둥, 하늘의 군세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둥. 나는 그 세간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가만 들어줄 수 없었다. 하늘의 군세가 나에게 주어졌다면 왜 우리는 결핍을 느껴야 하는가! 괴설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라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없어요. 당신이 스스로 지어낸 걸 당신이라고 착각할 뿐이에요. 당신의 육체는 당신이 아니고, 육체가 자아낸 생각은 당신이 아니에요. 육체를 당신과 동일시하고, 그 생각마저 당신이라 여긴다면, 그건 지어낸 것일 뿐이에요." 가슴 한구석에서 극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이 작자는 도대체 뭐라는 것인가. 현대의 지성인이 내게, 과학을 믿는 내게. 영 비합리적인 걸, 증명되지 않은 걸 들이민다고 해서 내가 믿을 손가? 그 대표격인 사후세계, 즉 천국과 지옥의 이항대립구도를 아무리 끌어서 우기려 해봤자, 신비가 죽어버린 이 현대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왜 모를까! 불협화음이다. 너무나도 맞지 않는 불협화음! 그 어떤 애를 써도 시간 낭비라는 걸 그는 알지 못하는 듯 했다. 그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고, 아무렴 하면서 듣고 싶지 않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된다고 점잖게 타이를 뿐이었다. 마치 내가 치기어린 아이라도 된 것 마냥 말이다! 맙소사...언제고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단 말인가. (중략)....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다. 추상적인 관념은 나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사랑은 준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게 준 그의 신뢰는 그 원체를 잘라내 내 안에 심는 게 아니라 내게 공유되면서 그의 관념마저 강화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이었다. "주라, 그러면 받을지니..." 그런 말을 나도 모르게 읊조린 듯 했다. 그새 그의 사상에 힘껏 잠식된 것이다. 섬칫 놀라서는 나를 보며 꼬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나는 그저 멍하니 괜찮다고 둘러대고 성급히 자리를 뜨려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소년의 얼굴이 겹쳐보였던 탓이다. 마치 반투명한 무언가를 겹친 것 마냥, 환한 웃음섞인, 그래서 티끌없이 선한 얼굴과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도 싱긋 웃으며 나를 배웅하는 소년의 얼굴. 나는 어쩐지 그가 말했던 관념의 증대를 알것만 같았다. 그리고, 보았다. 내 안의 불확실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로 환한 빛이 들어차는 것을, 똑똑히 보고 만 것이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복도를 한 발자국씩 내딛으며 창밖을 내다 보았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구름 한점 보이지 않는 맑은 하늘 아래에 온갖색을 품고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에 의해 떨어진 나뭇잎들은 금새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 이리저리 하늘을 날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 저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썩어가며 땅의 거름이 될것이다. 누가 알았을까,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던 샛노랗고 불그스름한 잎들이 아주 잠시간의 희망을 맛보고 죽어갈줄은.

침대에서 금붕어를 바라보면 그아이는 어디가 아프지 않을까 궁금해져 아픈걸 말할 수가 없으니까. 그애가 물 위로 올라오는 순간이면 느낄까? 손으로 그애를 움겨잡아봤어 필사적 파닥임. 튀어오르는 물방울 그애의 아픔의 방식이었어.

자두사탕(빨간색 줄 있는 그 사탕) 피 설탕

저녁을 다 먹고 나면 엄마는 항상 자두 사탕을 입에 넣어주셨어. 유리구슬 처럼 맑지만 중앙에 빨간 선이 그어져있는 작은 알사탕. 엄마는 그 자두 사탕을 아주 좋아했었던것 같아. 충치가 생길수도 있는데도 사탕을 먹는걸 말리기는 커녕 하루도 빠짐없이 유리병안에 있는 사탕을 내입에 물려주셨으니 말이야. 입안에 굴리고 굴리면 조금씩 새어 나오는 자두향과 녹는 설탕의 달달함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입꼬리가 올라갔는데 신기하게도 그걸 먹고 나면 아주 굉장한 꿈을 꾸곤 했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것 처럼 여러 동물들과 말을 하고 멋진 모험을 하는 꿈을 꾸었지. 잠에서 깨고 나면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어.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요한 일상으로. 나는 꿈속에서의 모험을 계속하고 싶어서 항상 저녁시간만을 기다렸어. 엄마가 내 입속으로 사탕을 넣어주는 그 순간만을 하루종일 기다렸어. 그러던 어느날, 정말 갑작스럽게 그 사탕이 미친듯이 먹고 싶은거야. 당장 그 달달함이 내 혀에 느껴지지 않으면 죽어버릴것 같은 기분이었어. 참을래야 참을수가 없어서 사탕이 담겨 있는 유리병을 꺼내서 사탕 한줌을 쥐고 몽땅 내 입으로 털어 넣었어.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짐과 동시에 내 눈에 감겨 왔어. 멋진 꿈을 꿀거라는 신호였지. 꿈이 끝나고 일어나 보니 주위가 평소와는 달랐어. 분명 평범한 아침이었어야만 했던 주변은 피로 뒤덮여 있었어. 썩어가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눈을 찌푸리고 코를 막으니, 코에 무언가 새빨간것이 묻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오늘 만진것은 항상 먹던 자두사탕 밖에 없었는데 말이지. 아 그렇다면 사탕이 녹아서 내 손에 묻어 있는 걸까? 입이 또 말라가. 단게 필요해.

그런 전설이 있다. '어린 아이는 죽어서 천사가 된다' 그것이 진실일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전설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실이라면 너는 분명히 천사가 되었을 것이다. ---- 아홉. 그것은 이도저도 아닌 숫자다. 큰수인 10이 되기에는 모자라고 그렇다고 작은 수인 1이 되기에는 너무 커다란 숫자이니. 그런 이도저도 아닌 숫자를 나이로 맞은 너는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너와 함께 있었기에 그 행복이 나에게도 전파 되는 것 같았다. 9이라는 숫자가 10으로 바뀔 그 얼마 안남은 순간, 너의 시간은 멈추었다. 성장하는 것도, 숨쉬는 것도 전부 멈춰버린 너는 널 사랑하는 모두를 두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필시 네가 천사가 되었으리라고 믿는것 밖에는 할수 있는것이 없었다. ----- 죽기 직전이어서 그런걸까. 별의 별 생각이 든다. 전설과 옛날의 네 생각을 동시에 한다니 정말 어떻게된 의식의 흐름인걸까. 피곤하다고 느끼며 눈을 감자, 식어가던 몸에 태양이 내리쬐는 것 처럼 따스함이 내 몸을 감쌌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이 기분좋은 이질감에 감았던 눈을 다시 뜨니 네가 보였다. 첫 눈처럼 새하얀 날개를 달고서 전과 같이 날 보며 웃어 주었다. 아 전설은 사실이었구나

공은 둥글다. 그래서 굴러가기에 용이하다. 물론 가만히 서있기도 하겠지, 이른바 정지해 있기도 하겠지. 그러나 조금의 힘만 있다면 그 힘의 진행방향으로 공은 굴러가기 마련이다. 예컨대,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나도 요령껏 훨체어를 움직이면 공을 굴릴 수 있을 정도로, 공은 굴러가는 데 용이한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축구공을 많이 굴렸다. 농구공은 축구공보다 무겁고, 그렇다고 야구공은 너무 작다. 잘못하다간 휠체어 바퀴에 끼어, 내가 넘어지거나 공이 짜부러지기 십상이다. 혹자는 그런 내게 손으로 공을 쥐어 던지면 안 되겠느냐고 묻지만, 모르는 소리다. 그런 일로 풀릴 마음이 아니다.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것이란 내게 종종 그런 씩으로 매듭진 끈을 풀게 만드는 기묘한 욕구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유독 그 날이 그랬다. 바람이 속된 말로 오지게 처부는 날. 그때만큼 심장 벌렁이게 밖으로 휠체어를 끌고 나가...아무도 내 휠체어를 대신 끌어주지 않고, 이 두 손으로 바퀴를 끌어 밖으로 나가. 시원한 바람이 광풍이 되어 휘몰아치는 걸 느끼며, 나 또한 어딘가에 매몰되어 두 손이 두 발처럼 느껴지게 휠체어를 끌고 싶은 느낌이 강하게 든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처럼 부끄러울 정도로 추잡한 욕망을 드러낸 적은 없었던 듯 했다. 유리창 너머에 불어닥치는 광풍을 뚫고 어떤 소년을 본 탓일까? 달리는 소년과 광풍. 이동....열정....바람....다리....온전한... 정신을 차리고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쾌속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말그대로의 질주! 쾌청한 하늘에 이모저모 구름이랑 하늘하늘 거리고, 또 미친 듯이 저편에서 이편으로 사라지고! 그 청명에 취해 손에는 오래된 축구공을 쥐고, 나는 손을 다리마냥 써 달리고 있었다! 공을 내려두고, 여태껏 느꼈던 바람일랑 눈곱만큼도 신경쓰지 않은 채, 나는 공기를 느끼며 언젠가 몇 번이고,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위안하던 그 바람을 마치 이루어진 것 마냥 다시금 공을 뻥뻥 찼다. 공은 저멀리 날아가 바람과 어울려 본래의 궤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공을 찬 원주인도 모를 정도로.

방귀 아련 스터디플래너

문득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었다. 교실에서는 공기대회를 열어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시합하는 걸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 결국 꾹 참고 있던 방귀를 뀌고 말았다. 소리없는 방귀가 더 고약하다더니. 냄새는 순식간에 퍼졌고 아이들은 '아- 냄새-! 선생님, 누가 방구꼈어요!'하고 누가 뀌었는지 서로를 돌아봤다. 난 너무 부끄러워 눈만 꼭 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내 근처로 눈이 돌려졌을때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뀌었어, 미안ㅎㅎ'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후다닥 창문을 열며 오버하며 말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놀리며 금방 다시 공기놀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자라 고2, 선생님이 될거라는 꿈을 가지고 스터디플래너를 작성하며 그때의 그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서현은 이틀을 내리 굶었다. 3년간 잘 지내며, 사랑하던 애인에게 차여서라기 보다는, 그동안 그를 위해 날린 돈과 시간을 매꿀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흘러내리지 않게 뒤로 넘기고 다녔다. 그렇게 체면치례를 하고 다니는 그는 소위 말하는 '능력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든 돈과 시간은 모두 서현에게서 나와 그에게 흘러갔다. 주문제작을 맡기진 못해도, 비싸고 질 좋은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양파껍질을 까는것이 취미였다. 천천히 껍찔을 까, 희고 반투명한 양파를 짓이겨 나는 즙을, 그는 항상 눈꺼풀에 발랐다. 눈꺼풀에 발린 양파즙은 가끔 눈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는 소리를 지르곤 했다. "오늘 저녁은!!!!!!!! 양파스프다아아악!!!!!!!!". 그러곤 한참을 쌈바춤을 추며 양파송을 불렀다."양파~양파~싸랑해요~양파양파~". 음... 서현은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생각해 보니 잘 헤어진것 같았다. 먄... 한번 해보고 싶었엉...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날, 구름이와 내가 처음 만났다. 구름이를 만난 날은 시험을 망치고 한참을 야단맞은 날 이었다. 노력에 비해 나오지 않는 점수에 슬퍼하다 우산을 전봇대에 박아 큰 소리와 함께 부러뜨리고야 말았는데,이때 물이 한번 첨벙 하고 튀기는 소리가 나더니 쫄딱 젖은 햐얀 털뭉치가 튕겨 나왔다. 흰 털뭉치같은 고양이가 덥수룩한 털을 한번 털더니, 여름 하늘을 닮은 푸른 눈을 빛내며, "어이 닝겐, 어디... 가는거지?(찡긋)" 하고 말했다. 그녀는 기함했다. 고양이가... 일본어를? 그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가 망친 시험중 하나가 일본어였기 때문이다. "방금! 방금 너가 말한거야...?" "하이" "오...오하이요" "...? 인간은 원래 멍청한가보군." "코로시챠우!★" 여름이었다. -fin- 시험 좆같아... 고3은 수능이가 미워... 왜난이... 왜 난 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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