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18/10/06 01:23:29 ID : pTWqi3A2E4J
나 먼저 제시해볼게. 구름 먼지 희망

602 이름없음 2022/03/25 23:53:45 ID : LfbxCi1jvvf
지금은 흘러가버린 과거.빌런 대 히어로,흑과 백처럼 대립할수밖에 없었던 관계. 너를 마침내 붙잡았다.희열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동시에 영웅 주제에 빌런과의 애인 비스무리했던 관계를 정리함을 증명하는 눈물이 흐른다. "축하해.큰 실적 올리겠어." 너는 빌런.나는 히어로.상부에서 일은 덮을테니,포획 즉시 사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그런데,내가 너를 어떻게 죽여.모두가 그때 그런 빌런이 있었지 하고 잊어갈때도 난 기억할텐데.눈을 감고,이내 방아쇠를 당긴다.비틀비틀 걸어가,뒷수습을 하는 척 의식을 잃어가는 네 손을 살짝 잡아본다.우리 이제서야 처음으로 손 잡았네. "나는 지옥에나 떨어지겠지.너는 그런 곳 가지 말고 천국에서나 살아." 그 말을 끝으로 너는 픽,쓰러진다.그렇게 목숨줄이 질긴 너였는데,내 손에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일까.너무나도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났다.천국에서 살아가라 했지?웃기지마.네가 없는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이야.

603 이름없음 2022/03/26 12:48:36 ID : DumleIMjeE5
바다 새벽 꿈

604 이름없음 2022/03/27 17:34:42 ID : oZbijeNvyFf
"아저씨! 아이스크림 하나요!" "스읍!" 나는 얕은 꿈을 꾸다가 흘린 침을 닦고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아이에게 건냈다. "그니깐... 700원이다." "왜요? 우리집 앞에선 500원이던데." 귀찮게시리... 애써 웃어보이며 아이에게 여기선 원래 그런거라고 답했다. 아이는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는 동전지갑에서 500원 하나, 100원 두 개를 꺼냈다. 사라지는 아이의 뒤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해수욕장이 있었다. 내리쬐는 햇빛에 모래가 하얗게 빛났고 푸른 물결이 사람들을 감쌌다. 아, 수염이 벌써 자랐네. 슬슬 깎아야 하는데. 저렇게 바닷가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곤 한다. 특히, 그 사람이 파란 리본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있으면 말이다. 급하게 담배가 땡긴다. 금연구역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대충 가리곤 담배를 태웠다. 어느덧 하늘이 붉게 물들고 사람들은 하나하나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해는 바다에 잠겼고, 어둡고 파란 밤이 일어났다. 공허한 바닷가에는 그 여자만이 앉아있었다. 그 때도, 오늘도. 22살의 쑥맥이었던 남자는 경직된 몸으로 그녀의 옆으로 가 왜 아직 집에 가지 않냐고 물었었다. 깊은 눈이 아름다웠던 그녀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왜 나는 여깄냐고 물었다. 어버버 거리며 말을 더듬는 내게 그녀는 얕게 웃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새벽 바다에서 나눈 젊은 남녀의 풋풋한 설렘은 여름 끝자락까지 이어졌다. 바닷공기가 차가워졌다. 이제 연인이 된 남녀는 그 날도 새벽 바다에 앉아있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바닷가로 놀러온 남자는 이 끝자락을 다음으로 가는 계단으로 보았다. 하지만 여자는 이 끝자락을 자신의 연애와 인생에 연장시켰다. 남자는 가을이 지나서야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는 한참을 자책했지만 그 끝자락이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조금씩 자란 수염을 어루만졌다. 시간과 후회가 손을 간지럽혔다. 남자는, 그 날처럼 경직된 몸으로 바닷가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밤 바다는 춥습니다. 집에 들어가셔야죠."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정말 깊고, 아름다웠다. "그쵸...? 바다가 예뻐서 추운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여자가 머뭇거렸다. "그, 근데 아직도 집에 안들어가셨네요... 게다가 바다까지 오시고." 남자의 경직된 몸이 조금씩 떨렸다. 그는 이것이 그녀의 기억 때문이 아니라 추운 바다 공기 때문이라 믿었다. "아, 네, 그, 뭐..." 다 큰 남자가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자 여자가 웃었다. 여자는 남자를 보고 싱긋 미소를 짓곤 말을 이으려 했다. 그 때, 조용히 불어온 바람이 내 눈에 그녀를 겹쳤다. "집에 가야죠 이제.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흘려보내고 나는 가게로 돌아왔다. 한참을 가게 안에서 심호흡을 한 나는 급하게 뛰쳐나와 바닷가로 달려갔다. 그곳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며 바닷가에 남은 도시 청년은 모래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605 이름없음 2022/03/27 23:17:31 ID : mMlvg1zRyE5
작은 키, 양복, 웃음

606 이름없음 2022/04/02 00:11:20 ID : o5863QpWnRv
그는 키가 작았다. 작지만 다부졌다.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께, 술에 절어 비틀비틀 꿍얼꿍얼. 어렸을 적 놓쳐버린 동생 손 끝의 서늘함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단다. 실종 전날, 어제는 무슨 이유에서 양복을 한 벌 꺼내 입었다. 참으로 멋드러진 양복이었다. 어느 귀하신 분을 만나려나 물으니, 말도 않고 눈웃음을 지었다. 어쩌다 낡은 아파트의 낡은 놀이터 옆을 지날 때엔 슬며시 입으로 웃곤했다. 괜히 그런 때에는 그가 작고 초라해 보여 어서 가자, 채근하였다. 실종되었지만 그리 놀랍지는 않다. 예견된 일이어서라기 보다는, 그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추억으로의 여행은 언젠가 반드시 끝나기 마련이다.

607 이름없음 2022/04/02 02:41:58 ID : 1bjxO3Ds641
달빛, 사랑, 약속

608 이름없음 2022/04/04 02:29:57 ID : Buk2q2Fii1a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의 은발이 어지러이 휘날렸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정리해주며 생각했다. '정말 예쁜 색이다.' 그러자 그가 살짝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뭐가 그리 예쁜데? 이거?"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그가 힘없이 웃는다. 그것마저 아름다워 나는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던 중 그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있잖아, 우리 약속 하나 할래?" "무슨 약속?" "아무리 터무니 없는 말을 해도 믿어주기로." "뭐야, 그게." 나는 퉁명스럽게 받아쳤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의 말이라면 뭐든 믿을 것이다. 그가 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그냥 한번만 해줘. 속는셈 치고." "아... 알았어. 딱 한번이야?" "응. 고마워. 사실 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냐?" "치사하네. 아까는 다 믿어준다며!" 순간, 몸이 굳었다. 분명 말로 꺼낸 적이 없을텐데. 그러고보니 아까 머리 정리해줬을 때도... "진짜야...?" "못 믿겠으면 뭐 하나 생각해봐. 내가 맞춰볼게." 그의 능글맞은 웃음에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나의 애절한 사랑을. 이 마음이 부디 닿기를. 그렇게 바라며 눈을 떴을 때 그는 여전히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도, 사랑해."

609 이름없음 2022/04/04 15:32:36 ID : nPh86Zii4JV
화재,갈등,원망

610 이름없음 2022/04/19 01:28:33 ID : mMlvg1zRyE5
갱신!

611 이름없음 2022/04/25 23:58:12 ID : mMlvg1zRyE5
봄비, 우산, 계단

612 이름없음 2022/04/30 07:45:16 ID : DxRCqi04Glh
날씨가 따듯해지나 싶더니만 그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봄비인건가. 이런,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비가 그칠 때 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바닥을 조금씩 적셔가는 빗방울들을 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익숙한 돌계단. 여기서 네가 죽었다, 오늘과 같이 선선한 봄비가 내리는 날에. 사인은 투신 자살에 의한 과다출혈, 6층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돌계단에 머리가 부딛혀 깨졌다고 했었나. 아마 그랬던것 같다. 그게 벌써 1년 전인데도 아직도 선명하기 짝이 없다. 떨어지는 너의 모습이. 3층에서 약 0.5초간 마주친 네 얼굴의 표정이, 너무나도 밝아서. 죽음의 두려움 보다는 후련하고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떨어지던 네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째서? 왜 너는 그 길을 택했을까? 삶이 고되서, 의미가 없어서, 그런 흔해빠진 이유는 널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너는, 그딴 시시한 이유로 죽을 아이는 아니었다. 끝까지 희망을 갖고 의미를 찾아냈을 것이다. 당당하게 웃으면서. 그러니까 나도 살린거겠지. 그런데 왜 2년전의 내가 선택하려 했던 방식으로 죽었지? 도대체 왜? 여전히 궁금한 의문을 답해줄 사람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왜 죽었나? 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죽었나? 모든것을 놔버린게 아니라, 무슨 목표가 있었다면? 넌 무엇을 증명해내려 한걸까? 네가 없는 세상? 네가 사라져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엿같이 돌아갔지. 그것을 내게 알려주고 싶었나? 죽음은 의미가 없다고? 어느덧 비가 그쳤다. 원래도 화창한 하늘은 비가 그치니 더욱 맑아보였다. 비가 그친 후 나는 상쾌한 흙냄새와 가라앉은 공기를 들이쉬며 축축한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한발, 또 한발.

613 이름없음 2022/04/30 22:30:15 ID : vu1eK2NtcoL
강,시한부,죽음

614 이름없음 2022/04/30 22:50:48 ID : ummtta1fPeM
>>613 단어 세 개 제시하는 거 아님? 왜 네 개

615 이름없음 2022/04/30 23:04:02 ID : vu1eK2NtcoL
>>614 ㅇㅇ 잘못봐서 수정했어!미안!

616 이름없음 2022/05/03 22:40:47 ID : LcGk1a4IK3U
시한부는 왜 시한부일까. 너는 일년 내에 10%의 확률로 차에 치여 죽는다. 백년 내에는 100%의 확률로 죽는다. 그렇다면 너는 시한부인가? 나는 오 년 내 100%의 확률로 죽는다. 나는 왜 시한부인가. 죽음은 불공평한다. 그건 정해진 죽음이나 정해지지 않은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구태여 그 얕은 인간의 지식을 자랑하듯 당신은 오년 내에 죽소, 할 필요는 없단 말이다. 그럼 나는 당신은 오십년 내에 죽소, 하고 웃어줄 것이다. 넌 나보다 늦게 죽을 것 같지? 왜 모든 인간은 자신이 백살은 먹고 죽으리라 생각하는걸까. 아빠가 떨어진 한강 운치는 아주 좋았다. 매년 이곳에서 수십이 떨어진댄다. 우리 아빠도 그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겠지. 아마 조사를 나온 경찰관들은 오늘 재수가 없다며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펜스를 치면서 이 사람은 주식이네, 사업이네 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을 수도 있겠지. 미안하게 되었소, 경찰관 나리들. 저는 안타깝게도 시한부라.

617 이름없음 2022/05/04 00:32:53 ID : mnzTRzO2mli
도망, 현실, 꿈

618 이름없음 2022/05/04 10:50:47 ID : DxRCqi04Glh
현실로 도망치고 싶었다, 이 모든 것들이 마치 꿈만 같아서. 전부 끔찍해서 차라리 이 꿈에서 벗어나 현실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수 없었다.

619 이름없음 2022/05/05 00:59:16 ID : mMlvg1zRyE5
눈맞춤, 담요, 붉음

620 이름없음 2022/05/15 13:30:53 ID : LcGk1a4IK3U
ㄱㅅ!!

621 이름없음 2022/06/16 16:30:00 ID : jxPa7bu9vwr
사방이 온통 붉었다. 비릿하고 불쾌한 냄새도 퍼지고 있었다. 담요에 싸여있던 꼬마는 숨을 죽였다. 무언가 질질 끌리는 듯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꼬마의 손이 담요를 물고 오므라들었다. 눈을 맞추어선 안 된다. 꼬마의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철문처럼 두 눈을 질끈 내려닫고서 꼬마는 근처에 있던 인형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 인형은 기이하게도 붉은 색 일색이 된 방 한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젖지 않은 채였다. 무언가를 끌던 소리가 꼬마의 머리맡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숨 막히는 정적이 방 안을 잠식했다. 꼬마가 견디다 못해 살그머니 눈을 떴을 때, 무언가가 꼬마와 눈을 맞추었다. 그것은 귀신도 괴물도 아니었다. 인형의 눈가에 매달린 싸구려 검은색 단추가 붉은 빛을 띄고 번쩍이고 있었다. 청록, 구두, 사진

622 이름없음 2022/06/21 16:49:29 ID : e0mk2rardXA
빛 바래고 오래된 폴라로이드 사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쌓인 먼지들이 얇은 막을 치고 사진을 가리고 있었다. 사진을 쥐고 있던 엄지손가락으로 대강 문지르자 청록빛 필터를 씌운 듯 칙칙한 색의 사진이 드러났다. 웃고 있는 긴 머리의 젊은 여자. 배경에 구두가 한가득인 것을 봐서는 구둣방인 듯 싶었다. 이 집에서 찾을 수 있는 사진은 이게 전부였다. 나는 사진을 조심조심히 잡고는 반으로 찢었다.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의외로 두꺼운 폴라로이드가 두동강났다. 그리고 그 즉시 흘러 들어오는 여자의 기억. 그녀는 죽었다. 아니, 죽었었다. 나에게.

623 이름없음 2022/06/22 01:01:12 ID : GnyMo40twMo
공허, 철학, 미움

624 이름없음 2022/07/03 04:44:26 ID : 5WlCjdvjs2o
너의 철학은, 지독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나도 모르지.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나는 그저 듣는 데 익숙할 뿐이다. 듣고 보니, 너라는 사람이 보였을 뿐이다. 마음이 공허했을 것이다. 빈 틈새로 조금씩 차오른 그것은 천천히 목을 죄인다. 몰랐을 테지. 가끔 그러거든. 일상토록, 줄곧 그랬다면 그건 공허가 아니다. 죽어버린 시체지. 그런 네가 뭔가를 채워야 한다면, 채워질 수 있다면. 하고 바란 게 미움이었다. 내게는 그렇게 밖에 보이질 않는다. 원래 그런 것인가? 나는 그저 들었을 뿐이고 들은 대로 말했을 뿐이다. 왜 뻔히 보이는 거짓말들에 일일이 넘어가줘야 하는 걸까. 보면서 질려버린 내 마음도 이해해줬으면 한다. 뭐, 지금 보니 이해는 물 건너갔다.

625 이름없음 2022/07/03 11:51:08 ID : 62HBbwq5cE5
회귀 빙의 환생

626 이름없음 2022/07/10 15:50:34 ID : NxWqryZeHvg
ㄱㅅ

627 이름없음 2022/07/12 20:04:19 ID : 3yGso2K1xBd
TV 과거 추억

628 이름없음 2022/07/14 13:56:55 ID : mpXBvveHAZa
고개를 들어 본 창 밖은 어느새 푸른 빛이 감도는 검은 하늘로 가득찼다. 어두운 하늘은 얼마 되지 않는 별들과, 태양을 대신하는 흐린 달 뿐만이 장식되어 남아있다. 하늘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별들은 너무 작고 수가 적어 환하게 어둠을 비추기에는 쉽지 않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은 거리에 수놓아져 있는 전광판과 가로등이 밝게 빛나고 있다. 인조적으로 과하게 밝아진 빛은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불이 꺼진 방의 조명이 되고 있었으며, 좋지 않은 음질의 TV의 즐거운 소란이 적막한 방의 소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노이즈가 낀 듯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흘려 들으며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니 쨍한 색이 눈을 강타하고 지나간다. 눈살을 미묘하게 찌푸리면서도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쥐고 있는 맥주캔을 입가에 기울였다. 어째서일까,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의 웃음은 그저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으며, 시끄러운 소음은 그저 흘려듣게 되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익숙한 프로그램의 이름의 손을 멈췄다. 채널의 숫자는 005. 어릴때 자주 보았던 채널이었다. 만화영화를 재방하기도 하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도 보여주었던 이 채널은 추억의 파편이었다. 항상 행복하지는 않아도 즐거운 기억이 몇 남아있는 과거의 한 부분. 멍하게 화면을 바라보며 기억을 거슬러 과거에 잠겼다. 나는 그때 무엇을 바랬지? 이 TV 앞에 앉아서 무엇을 꿈 꾸었지? 희망을 꿈꾸었던가, 불가능을 꿈꾸었던가. 나는 이 앞에서 파워레인저가 되기도 했으며, 사육사가 되기도 했고, 어느날은 드라마에 나오는 착한 주인공이 되기도 했으며,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을까. 똑같은 자세로 TV 앞에 앉아 화면을 보고 있는 내 모습과 과거의 모습이 겹쳐진다. 다른 점은 지금의 내 얼굴에는 어떠한 감흥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무엇이든 될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순수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추억 속에 남겨두고, 그것을 다시 꺼내올 수 있을 때까지 도전해보기로 했다. 비록 그것을 영원히 꺼낼 수 없게 될지라 한더라도, 추억 속에 남아있는 것 만으로도 원동력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629 이름없음 2022/07/14 19:02:27 ID : 07fcNze3VcG
약속,비밀,내일

630 이름없음 2022/07/18 20:21:55 ID : o6kk8i08i1h
"우리 약속 하나 하자, 내일 날 찾지 말아줘." 아, 또 꿈이구나 그것도 지독한 꿈, 왜 그 아이가 나왔는지 이유를 찾는 것도 지친다. 나와 그 아이는 비밀스러운 관계였다. 우리들은 비밀스럽게 만났고 비밀스럽게 빠져 들었고 비밀스럽게 헤어졌다. 여름날의 꿈처럼 온 그 아이는 여름날의 꿈처럼 날 떠났다. 아직도 그날의 향기가 내 코 끝을 찌른다, 마치 그 아이의 중성적인 우디향 같은.. "000?"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았다. 그 아이였다, 여름날의 꿈 처럼 나를 찾아오고 여름 날의 꿈 처럼 날 떠난 그 아이였다.그 아이는 비밀스럽게 날 떠난 것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내 주위를 맴 돌았던 것이다.

631 이름없음 2022/07/19 01:17:12 ID : mnzTRzO2mli
소나무, 연, 실타래

632 이름없음 2022/07/22 15:28:24 ID : HClDBtjAoY8
내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 기억 하나가 있다. 그때의 나는 한창 연에 빠져 있었다. 어머니의 방에서 찾은 실타래와, 옛날에 누나가 쓰던 연에서 나온 플라스틱 손잡이. 근처 문구점에서 산 한지와, 누나의 방에 굴러다니던 리본들. 그런 재료들을 구해서 엮어서 연을 만드는 것이 취미였다. 나에게는 그런 연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고, 동네의 아이들은 가장 반짝이고 커다란 내 연을 늘 부러워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던 연은, 언젠가 생일 선물로 받은 반짝이 가루를 잔뜩 뿌려 만든 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평소대로 친구들과 함께 연을 날리러 갔다.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불규칙하게 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반짝이 연을 들고 나갔다. 그러다가 몇십 분 후, 갑자기 바뀐 바람 때문에 내 연은 다른 쪽으로 휙 날았다. 그리고는 그 근처에 있던 큰 소나무 가지 사이에 엉켰다. 그 연을 구하려고 온갖 일을 해 보았지만, 결국 가지 사이에서 꺼낸 연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망가져 버렸다. 나는 아직도 그 연을, 그 반짝임을,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633 이름없음 2022/07/22 16:17:40 ID : oIK6lBfgnTT
화재,우정,원망

634 이름없음 2022/07/29 14:36:59 ID : jdyMrwKY3A0
그건.. 그래 초등학생 때 일이었어 부모님이 맞벌이 하느라 바쁘셨고 나는 여름방학이어서 할머니 댁에 머무르고 있었지 우리 가족은 원래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에 있었는데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도시로 이사를 했어 내가 시골에 살 때 내 또래인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우리는 곧잘 같이 만나 이곳저곳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었어 그 아이는 나처럼 도시로 가지 않고 왜 인지 시골에 계속 머무르고 있어 방학 때마다 할머니 댁을 가게 되면 항상 그 아이와 함께였었지 언제나 그랬듯 나는 그 아이와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마을 뒷 편에 있는 산에 올라가고 싶어졌어 산은 어린아이가 오르기에는 살짝 높이가 있어 자주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한번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그 경치가 꽤나 멋있었기에 할머니 댁에 있을 때 한번 씩은 올라갔었어 그 날도 그렇게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나에게 어떤 물건을 하나 줬어 "이게 뭐야?" "그냥 우정의 증표 랄까.. 이제 방학이 끝나가는데 방학이 끝나면 또 한동안 못 볼 테니까" 아이가 준건 아주 이쁘게 생긴 돌이었어, 하얀 조약돌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엄마랑 아빠랑 바다에 갔었는데 그 때 주워 온 거야 나도 있어" 아이가 들고 있는 것도 나한테 준 것처럼 아주 하얀 조약돌 이었어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조금 더 마을을 구경하다가 이제 슬슬 내려가자고 했지 그 후로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나의 여름방학은 끝이 났어 그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지 그게 마지막이었어 내가 그 아이를 본 건 내가 조약돌을 받은 그 해 가을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던 날이었대 그 아이의 옆집에서 시작된 불이 바람을 타고 아이의 집까지 화재가 나버린거야 하필 그 때 아이의 부모님은 아이를 두고 외출했었나봐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어 라는 생각이었을까? 여느 날처럼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엄마가 데리러 왔었어 영문도 모른채로 나는 엄마를 따라 나섰고 내가 도착한 곳은 그 아이의 마지막 가는길이었지 처음 겪는 내 주변 사람 그래 친구의 죽음에 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그럴 리가 없다고 아니라고 악을 쓰다가 결국 쓰러졌어 내가 일어났을 때 이미 나의 친구는 가루가 되어 있었고 나는 엉엉 울면서 그 아이의 부모님을 원망했지 왜 그랬냐고 왜 내 친구만 두고 갔냐고 딸을 잃은 슬픔을 내가 헤아릴 수는 없었어 그냥 내 친구가 나의 소중한 친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거든 그 아이가 떠난지도 벌써 24년이 지났네 거기서는 오래오래 행복해야 할텐데

635 이름없음 2022/07/30 11:47:48 ID : fhs60k04K6p
머리끈 불빛 핸드폰

636 이름없음 2022/08/01 20:24:42 ID : cGnu5TO9wGm
사실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은 일이었고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쉬는 시간 도중 머리끈이 팅 하는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손목에 무언가를 감고 있는 애들에게 다가가볼까 했지만, 머리끈이 아니라 팔찌라는 대답만 얻을 게 분명했으므로 그냥 1반을 찾아간 것이다. 창문 너머로 끈을 잡고 흔들어 보이자, 고무줄 총을 쏘는 마냥 머리끈을 날려주는 아이가 있었다. 가슴팍에 맞았다. 아팠다.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이에 짖궃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왜 지금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밤에 학교 자습실이 지겨워서 슬쩍 빠져나와 옥상에 간다. 그 애 입가에서 붉은 불빛이 보인다. "너 담배 피우는 거 아니지?" "당연하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된다. 다시 보니 불빛은 사라져 있다. 내가 잘못 봤나. "그나저나 너, 번호는 언제 줄 거야?" "핸드폰이 없어." 거짓말이다. 맨날 전화가 왔다고 말하니까. 누구야? 물어봤는데. "그럼 왜 B하고는 통화하는데? 나한테 전화번호 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해." "B? B는... 그리고 전화하는 거 아니야. 텍스트만 보내는 거라." 그러면 문자잖아. 문자 해주면 안 돼? 나는 안 되는 거야? 말하기 바로 직전, 이번엔 눈가에서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조용한 침묵.

637 이름없음 2022/08/01 23:48:47 ID : 7vu7cFhe7za
미적분 물리 화학

638 이름없음 2022/10/17 20:43:25 ID : GmpTWmIJUY4
"역시 이건 너에게 너무 어려운 거 아냐?" "상관없어. 어쨌든 난 너랑 꼭 같은 대학에 갈꺼야." 나는 지금 그 애에게 이과 과목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 애는 나랑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이자, 날 짝사랑하는 여자애이기도 하다. 지금 이렇게 어려운 물리나 화학을 배우는 이유는 바로 나랑 같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다. 그것도 내가 가려고 한 대학은 과학 관련 대학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나는 머리가 꽤나 좋아서 대학에 쉽게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걔는 낙제점을 아슬아슬하게 넘을 정도로 머리가 안 좋다. 심지어 미적분도 제대로 못 풀고 있는 걸 보면 공부와는 영 거리에 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겨우 나 한 명 때문에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 걸 보면 의지는 나름 있을지도? 비록 머리는 안 좋아서 대학에 갈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애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가능성만 있으면, 몇 번이고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사실은 그 애가 자꾸 졸라서 어쩔 수 없이 도와준 거지만...

639 이름없음 2022/10/17 20:43:53 ID : GmpTWmIJUY4
인형 상처 자살

640 이름없음 2022/10/19 16:32:51 ID : TQla8i1eIIL
어렸을때 부터 인형에 상처를 줘서 그런가 커서는 너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모자라 너 자신을 죽이는 자살 시도 까지 했어 만약, 그때 내가 무언가를 했다면 지금 이 상황이 나아질까

641 이름없음 2022/10/19 21:03:19 ID : 586Y8rBBwNu
별 소녀 환상

642 이름없음 2022/10/19 21:15:59 ID : dWqoZba1bhc
별을 박은 눈을 가진 소녀는 제눈의 가치를 모르는듯 했다. 우물쭈물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는게, 복도에서 마주칠때마다 빠른걸음으로 돌아가는게, 때론 계단 벽 사이에서 내가 지나갈때까지 숨어있는게, 짜증스럽게도 퍽이나 귀여웠다. 마티어스 공작은 소녀에 대한 생각을 좀처럼 지워내지 못했다. 서류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또래와 술한잔, 담배 한모금 할때도 소녀가 생각났다. 신발없이 산발로 들어오던 여자애. 그때의 기억이, 저택에서의 뒷통수가, 종종거리는 걸음이, 집무실 창 사이로 들려오던 작은 울음소리가 수도에 올라온 지금도 생생한듯 했다. 그는 미친 파티가 벌어지는 한가운데서 샹들리에를 올려다봤다. 그 순간만큼은 빛나는 샹들리에와 그, 둘뿐인것 같았다. 샹들리에 사이로 그녀의 뒷통수가 겹쳐보이는듯도 했다. 한참 올려다보니 알것같았다. 이 샹들리에가 그녀의 환상적인 눈을 닮았음을. 그는 이만 인정하기로 했다.

643 이름없음 2022/10/19 21:41:19 ID : wpPbfSIIK41
숙명 언약 경의

644 이름없음 2022/10/19 22:03:27 ID : 3yGso2K1xBd
네 말 한마디에 내 숙명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은 언약이 되어 내 인생에 깊게 달라붙은 것이다. 너도 같이. 우리는 땔래야 땔 수 없게, 그렇게... 어쩌면 내 영원을 모조리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니까. 너는 생각보다 일찍 죽었다. 너는 살아, 살아서 좋은 일들 많이하고, 좋은 사람 만나고, 행복하게 살아. 나도 잊지 말아줘. 장난기 섞인 그 말은 내게는 전혀 장난스럽지 않게 들렸다. 다신 나를 보지 못할텐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평생 너를 그리워하며 살 내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건가? 영원이 참 가벼워서 그새 너를 잃고 내 삶을 살 것 같이? 그렇다면 틀렸다. 그것도 완전한 오답이다. 너는 날 몰라. 나는 살아서 좋은 일을 많이할 것이다. 또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날 것이다. 행복하게는 살 수 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행복이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널 잊지 않는 것은 이 중에서 제일 쉽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내 숙명을 이루고 죽을 수 있겠지. 언젠가는 나도 죽을 수 있겠지. 너는 날 보고 살라고, 그것도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지만, 너는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 평생 널 잊지 못하고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나았다. 하나쯤은 못 이뤄도 될 거야. 그래도 너는 나에게 잘했다고 해주겠지. 나는 그날부로 새 신분을 만들었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좋은 일도 많이 했다.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 또한 했으며, 잠시도 널 절대 잊지 않았다. 그렇게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고... 그렇게 되니까. 나는 네가 기억나지 않는다. 네가 한 말 중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들과 만나고 몇십년 뒤면 그들은 나를 멀리했다. 내가 사악하다고 했다. 좋은 일은 많이 했으나 그들은 나를 원망했다. 내가 한 일이 결국 그들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다줬다고 했다. 나는 행복하지도 못하고 너도 잊었으며... 죽을 것이다. 나는 드디어 죽는 방법을 찾았으니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 너에게 미안하고, 이제는 다 잊었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나도 그만 쉬고싶다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징그러운 나도 사랑해준 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645 이름없음 2022/10/19 23:52:12 ID : GmpTWmIJUY4
토끼 정신병 쿠키

646 이름없음 2022/10/20 13:29:03 ID : XAmGmsnVfht
오랜만입니다 K. 너무 오래되서 제 얼굴도 까먹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죠. 토끼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참 허약했었는데,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여전히 투닥거리면서 지내고 있나요? 남들에게 소음공해는 끼치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여러면으로 곤란해지니까요....그나저나, 모든 것을 알면서도 당신을 따라온 그것이나, 그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기어코 살려낸 당신이나. 비교해보자니 참 끼리끼리 논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하튼, 본론으로 넘어가죠. K,우리는 당신의 특별 쿠키가 필요합니다. 쿠키가 언급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죠? 정신병 환자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쿠키가 꼭 필요한 상태입니다. 은퇴한 이에게 이런 말 하기가 심하 부끄럽지만 저희는 저희의 한계치에 도달해 버렸어요. 환자들의 상태가 나날이 심각해지는 데다가 수도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신속히 쿠키를 배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쿠키의 레시피를 알려주셨다면 이렇게 일일히 편지를 보낼 이유도 없을텐데 말입니다..하지만 특별 레시피를 굳이 독점하고 싶다는 것이 K 당신의 뜻이니 어쩔수 없는 걸까요. 쿠키를 핑계로 이렇게 편지를 보내지만, 토끼 뿐만 아니라 당신도 잘 지내고 있길 바랍니다. 듣는다면 갑자기 무슨 개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기겁하시겠죠. 그래도 그래도 같이 일했던 동료인데 이정도 안부 인사는 괜찮지 않습니까? 뭐 아무튼, 다시 일하러 가봐야겠군요. 정신병 환자들은 한시라도 눈을 떼면 무슨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당신의 쿠키를 기다리며, B가.

647 이름없음 2022/10/20 20:28:14 ID : 04E1ijinQsp
노이로제 사랑 가정폭력

648 이름없음 2022/10/21 15:30:47 ID : Apbvh9irBs8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 되어서야, S는 인정했다. 자신이 했던 건 사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나이 될 때까지 결혼도 안하고 뭐했냐' '불쌍한 새끼' 그 말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노이로제. 그 노이로제가 자신에게 결혼에 대한 잘못된 욕구를 불러 일으켰음을. 그 욕구 때문에 생겨난 결과물이 주변에서 내뱉던 말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 자신이 망가졌음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한 행동이 세간에서는 '가정폭력'이라 인식할만한 행동이었다는 걸, S는 모든 것이 망가지고 난 이후에나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앞에는 이제 참회의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649 이름없음 2022/10/21 17:43:40 ID : a7hBzcE7go5
화재 갈등 원망

650 이름없음 2022/10/28 02:32:23 ID : mIK2E7dQlhh
20XX년. 나는 고작 중3이란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다. 그냥 사고였다, 뉴스에 1분 보도되고 마는 그런 일반적인 사고. 나또한 뉴스를 볼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 안타깝다, 이게 뉴스를 본 나의 감상이었다. 그 생각도 잠시, 나는 금새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집에 오는 동안, 웬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아까 대수롭지 않게 넘긴 화재사건이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됐다. 그러자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어째서 남의 불행과 나의 불행은 크기부터가 다른걸까. 바보같았다, 짧은 생의 연을 쉽게 끊지 못해 이렇게 불안한 것이. 눈 앞이 새카매지고선 미친듯이 뛰었다. 눈이 흐릿해져서는 미친사람처럼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집, 우리집이 보였다. 반쯤 타버린 집에서는 오늘 아침에도 손이 따스했던 엄마가 보이지 않음에 안심하고 있을 때였나, 어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천에 가린 사람 형상를 싣고 가고있었디. 애써 부정했다. 근데 사실 알고있잖아. 우리 집에서 나올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아냐, 아냐..아냐...! 우리 엄마는 이렇게 손이 차갑지 않아..미친듯이 허둥지둥 소리치며 엄마를 찾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어지러운 침묵 뿐. 미칠듯한 정신을 붙잡고자 입안 살을 잘근잘근 씹었지만 늦었다. 나는 이미 구조대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잡고 소리치고있었다. 우리 엄마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당신이냐며 원망하고 있었다. 사실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탓하고싶었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것 같아서, 그래서 애꿏은 사람을 잡았다. 어떤 감정을 가진 이에게 화내고 싶었다. 그래도 날 너무 싫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저 내 어리석은 분노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바치는 것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나와 싸우지 않았으면 한다. 갈등의 원인은 나지만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음 한다.

651 이름없음 2022/10/28 05:41:47 ID : AqlDzhxWknw
허상 유리 발레

652 이름없음 2022/10/29 01:17:26 ID : h82pTTQk1cn
아버지는 해외에 출장을 갔다 오시면 항상 오르골을 사왔다. 어린 나는 질릴 법도 했지만, 그저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가 건넨 선물이기에 항상 아무말 없이 받아 기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내 방에는 언제나 기본 하나의 오르골이 탁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런 오르골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유리로 만들어진 발레리나 오르골, 투명한 그 발레리나는 발끝의 그 곡선, 손끝의 손톱까지도 섬세하게 표현되어 햇빛이 들면 반짝반짝 빛나는 피루엣을 보여주었다. 그 탓일까 내가 발레를 시작해버린 건. 발레는 나를 그 유리 발레리나처럼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근데 이게 뭐지? 나는 그 오르골을 집었다. 아버지가 날 위해 사왔다고 생각한 오르골, 그래서 이와 비슷하게 되고자 시작한 발레까지,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나의 망상이었고, 착각이자 허상이었다. 아버지는 바람이 났다고 한다. 발레리나 무용수와. 어머니는 그 사실에 앓다 못해 나의 매달림에도 결국 집을 나갔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대놓고 그 발레리나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를 그 사람에게 맞추려고 했다. 너와 같은 발레를 하는 사람이라며 이쁘지 않냐고. 어리석은 아버지. 짚었던 발레리나 오르골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우아하고 곧게 서있던 겉모습은 그 충격에 산산조각이나 그 속의 날카로운 조각들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그때도 그랬을까? 내가 기쁘게 받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에 남겨진 우리를 내버리고 속으론 그 발레리나를 생각했을까? 발레는 아버지의 허상이다. 본인과 그녀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예쁜 모양으로 감싸고 싶어하는 역겨운 허상. 나는 바닥에 산산조각난 그 조각 중 하나를 쥐었다. 주변에 널부러진 조각에 나 또한 생채기를 입었지만, 또 이 조각으로 상처를 입겠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내 안에 유리 발레리나는 산산조각나 사라져버렸다. 그의 허상 또한 내버려 둘 수야 없지. 발레는 나의 것이다. 그의 더럽고 추잡한 허상따위가 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손에 생긴 상처를 무시하고 방을 나섰다.

653 이름없음 2022/10/29 15:54:52 ID : K3O5WqrumoN
격리, 나무,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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