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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3/02/20 10:20:39 ID : 1a8qqo43SFj
13살 후반~15살 초반까지 있었던 일임.
◆9y6mFbjupXs 2023/02/20 10:27:10 ID : 1a8qqo43SFj
시작은 13살 겨울이었다. 중학교 올라간다고 신난 나는 이제 완전히 다른 컨셉을 잡고 싶어서 이사 가자고 졸랐어.
◆9y6mFbjupXs 2023/02/20 10:30:47 ID : 1a8qqo43SFj
결국 엄마는 승낙하셨고 아빠만 허락하시면 됐을 때였어. 당시엔 아빠가 출장 나가셔서 돌아오시는 토요일에 물어보면 될 일인데, 나는 또 너무 성급하게 엄마 허락을 받자마자 전화를 했어. 아빠는 회의 중이니까 못 받으셨고. 계속 전화를 안 받으시니까 꽤 짜증나서 폰을 침대에 버려두고 있었던 것 같아. 무음인 채로.
◆9y6mFbjupXs 2023/02/20 10:52:44 ID : 1a8qqo43SFj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겁나 후회된다... 그러면 안됐음.
◆9y6mFbjupXs 2023/02/20 10:54:51 ID : 1a8qqo43SFj
그날이 금요일 밤이었고, 나는 그대로 폰을 안 만지고 엎드려 잤어. 기쁨과 짜증이 조금씩 섞인 채로.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빠가 와 계셨고, 이사를 가자고 조르는 동안 또 1시간이 지났고... 그렇게 오후까지 내 폰은 여전히 침대에 방치된 채 놓여 있었다.
◆9y6mFbjupXs 2023/02/20 10:56:23 ID : 1a8qqo43SFj
근데 그러는 동안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온줄 알아? 마흔 통임. 시1발 같은 번호로 마흔 통이나 와 있었다고. 그때 알아차려야 했음. 발신자는 단단히 미친놈이구나... 하고.
◆9y6mFbjupXs 2023/02/20 10:57:21 ID : 1a8qqo43SFj
하지만 진짜 뻔한 레파토리같이 나는 그냥 어지간히 급한가보다~ 해서 전화를 걸려고 했어. 근데 그 사람한테서 먼저 전화가 오데? 좀 소름이었는데 어쨌든 받았음.
◆9y6mFbjupXs 2023/02/20 10:59:37 ID : 1a8qqo43SFj
"어~ 00아! 너 이사 가...?" 내가 목소리 구별은 잘 해서 바로 알았다. 별로 안 친했던 친구였어. 왜 전화했지? 싶을 만큼. 근데 그때는 뭐 같은 반이기도 하고 하니까 그냥 들었음. 걔 하는 말이 대충 이사 가면 어디로 가는 거냐, 언제 가냐, 나도 같이 가고 싶다 이랬어.
◆9y6mFbjupXs 2023/02/20 11:01:07 ID : 1a8qqo43SFj
어릴 때는 분간이 잘 안되잖아? 근데 그때는 진짜 의식이 명확했음. 얘가 내가 이사간다는 거 어떻게 알았지? 하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어. 놀라면 말 더듬는다는 게 뭔지 알게 되더라. 그래서 말 더듬으면서 아, 아니?? 이럼.
◆9y6mFbjupXs 2023/02/20 11:03:43 ID : 1a8qqo43SFj
피융신ㅜㅜㅜ... 그때 내가 말수도 별로 없는 찐따였어서 그런 소문도 안 돌았고, 누구한테 그런 얘기 해준 적도 없었고 했어. 했는데... 그 말은 내가 이걸 인정하는 꼴이 되는거잖아. 그냥 뭐라는거야~ 하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9y6mFbjupXs 2023/02/20 11:04:32 ID : 1a8qqo43SFj
암튼 걔가 음... 그래? 알았어. 이러면서 툭 끊어버림. 나도 개도 정신이 없었던 거지.
◆9y6mFbjupXs 2023/02/20 11:05:00 ID : 1a8qqo43SFj
뭐 지금 생각하면 고작 13살이 포커페이스를 태연하게 할 줄 알았겠냐마는.
이름없음 2023/02/20 14:52:09 ID : Bta2nzSHDxW
와 보고잇어
◆9y6mFbjupXs 2023/02/20 15:10:13 ID : 1a8qqo43SFj
문제는 다음날이었어. 그러니까 일요일. 엄마는 친구분들이랑 만나러 나가시고, 아빠도 갑자기 일이 잡혀서 일하러 가셨음. 집에 혼자 있는 상태인 거야.
◆9y6mFbjupXs 2023/02/20 15:11:34 ID : 1a8qqo43SFj
평화롭게 본진 영상 시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앞에서 쾅 소리가 났음. 옛날 집이 빌라였거든? 우리 앞집인가 싶어서 그냥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쾅. 하고 뭐 떨구는 소리가 남.
이름없음 2023/02/20 15:13:06 ID : U2Fii7apU1y
ㅂㄱㅇㅇ
◆9y6mFbjupXs 2023/02/20 15:59:51 ID : 1a8qqo43SFj
개무서워서 학교에서 배운대로 아무도 없는 척 하고 가만히 있었어. 그러니까 그 뒤로 잠잠해지더라. 그러고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그 유리구멍 알지? 그걸로 밖을 쳐다봤는데
◆9y6mFbjupXs 2023/02/20 16:03:01 ID : 1a8qqo43SFj
누가 계단을 파바바박 하면서 내려가고 있더라.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있겠는데 왜 이렇게까지 달리지? 싶을 수준이었어. 진짜 어디 늦는게 아니면 굳이? 할 정도로.
◆9y6mFbjupXs 2023/02/20 16:03:57 ID : 1a8qqo43SFj
근데 우리 빌라에는 아이라고는 거의 나밖에 없었고... 살짝 작은 체구였음. 그래서 이사라도 왔나? 했지. 아 왜이렇게 멍청했냐 나자신.
◆9y6mFbjupXs 2023/02/20 16:10:33 ID : 1a8qqo43SFj
그 뒤로 이사할 때까지 집에서는 아무 일 안 일어나더라고. 대신 꼭 하루에 한 번씩 걔한테서 전화가 왔었음. 뭐 하냐, 무슨 일 없냐, 가족은 괜찮냐 하고. 나는 걔랑 내가 베프가 되어가는 줄 알았다. 말했잖아, 내가 찐따였다고.
◆9y6mFbjupXs 2023/02/20 16:12:08 ID : 1a8qqo43SFj
지금 생각하면 진짜 이상하다. 내가 미쳤다고 걔 전화를 받을까 지금이면...
◆9y6mFbjupXs 2023/02/20 16:14:59 ID : 1a8qqo43SFj
암튼 그러고 한 달이 흘러서 방학이 됐음. 우리 가족은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애들이랑 작별인사 하려고 편지를 쓰고 있었어. 사실 친구들이라고 해봤자 저학년부터 쭉 올라온 한두 명이 전부긴 했지만. 다 편지를 쓰고 마지막으로 걔(불편하다. A라고 할게.)한테도 편지 쓰기를 마쳤어.
◆9y6mFbjupXs 2023/02/20 16:16:59 ID : 1a8qqo43SFj
그렇게 약속을 잡고 편지를 하나하나 돌렸고, 마지막으로 A랑 만나는 날이 됐어. A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나한테 인형을 줬고, 진짜 기뻐서(어쨌든 선물이니까) 고맙다고 100번은 말했던 것 같아. 말수도 별로 없는 애가 그랬던 거 생각하니까 A가 사교성이 좋긴 했나보네.
◆9y6mFbjupXs 2023/02/20 16:30:37 ID : 1a8qqo43SFj
A가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니까 방에 놓고 절대 버리지 말라고 했었다. 순진한 나는 그걸 또 믿고 절대 안버린다고 결심함. 근데 중요한건 내가 집에와서 포장을 안뜯어버렸고, 그래서 엄마가 쓰레긴줄 알고 그냥 버린 거야. 내가 그날 펑펑 울면서 새로 사달라고 몇 번을 떼썼어. A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걸 말도 못하고... 진짜 다행이었지. 거기 카메라 들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나중에 A가 너 이거 뭐야? 하면서 녹화본 안보내줬으면 손절 못칠뻔했다.
◆9y6mFbjupXs 2023/02/20 16:30:48 ID : 1a8qqo43SFj
얘들아 나 학원갔다올게. 잠시만.
이름없음 2023/02/20 21:33:59 ID : Bta2nzSHDxW
ㅂㄱㅇㅇ소름이다
이름없음 2023/02/22 01:48:20 ID : hy1AZfV88ph
혹시 아직도 학원이야?
이름없음 2023/02/22 01:50:46 ID : tcr88mLbxxx
미쳤네…
이름없음 2023/02/22 02:59:04 ID : O04E9xWlA2N
소름이다
◆9y6mFbjupXs 2023/02/22 15:06:25 ID : 1a8qqo43SFj
아 얘들아 미안해... 현생이 바쁘기도 하고 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네. 다시 이어갈게.
◆9y6mFbjupXs 2023/02/22 15:09:07 ID : 1a8qqo43SFj
A의 행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 그 어린애가 친구 따라가고 싶댔는지, 어떻게 졸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를 같은 곳으로 배정받았어. 거기서 A와 나는 끝과 끝 반이었지. 유독 친구를 못 사귀던 나는 쉬는시간마다 A랑만 놀게 되었고, 그 때문에 중1은 아예 친구 사귀는 걸 포기했다.
◆9y6mFbjupXs 2023/02/22 15:14:33 ID : 1a8qqo43SFj
그때 나한테 소문이 하나 돌았었는데, 아니 시1발 내가 정신이상자라는 거야. 허공에 대고 소리지른 적도 있었고 뭐 헛소리하고 그랬다고 하데. 뭔...ㅋㅋ 나는 그런 짓 한 적도 없었고 학교나 학원에서는 쉬는 시간 틈틈이 A랑 연락하거나 놀기만 했었는데.
◆9y6mFbjupXs 2023/02/22 15:17:33 ID : 1a8qqo43SFj
그때 거의 모든 애들이 나를 꺼려하고 내 자리에 안 오려고 했음.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고. 내가 겨우 용기내서 아니라고 하니까 증거를 보여달래. 영악한 것들이. 심지어 그냥 걷다가도 나랑 부딪히면 몸을 털었음. 소문 하나때문에 그럴 수 있나 할 정도로 진짜 너무 소름끼쳤다. 반에서도 잘 안 나가려고 했고.
◆9y6mFbjupXs 2023/02/22 15:20:09 ID : 1a8qqo43SFj
대신 A가 우리 교실로 찾아오기 시작했어. 그때 위안이 된 게 A밖에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A가 저런 애들 신경쓰지 말라고 해줬는데 그 말 하면서 머리 쓰다듬던 촉감이 아직도 생생해. 너무 고마워서 기억해두고 있었는데 그게 제일 기분나쁜 기억이 될 줄은 나도 몰랐어. A한테도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지만 A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음. 지금 보면 사람 하나를 망치려고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어.
◆9y6mFbjupXs 2023/02/22 15:24:49 ID : 1a8qqo43SFj
어쨌거나 A는 그럴수록 나랑만 있게 됐고, 나도 A에 대한 집착? 우정? 이 좀 더 강해져서 내가 A를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 참고로 나랑 A는 둘 다 여자고. A가 커밍아웃을 하면서 나랑 사귀고 싶다고 고백을 했고... 나는 얼떨결에 받았음. 오히려 사귀니까 좀 더 당당해지더라. 난 레즈인 것 같다, 근데 뭐 어쩌라고. 이렇게.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소문+레즈 이 상태가 합쳐져서 아예 돌이킬 수가 없어졌음.
◆9y6mFbjupXs 2023/02/22 15:25:49 ID : 1a8qqo43SFj
지금은 나 이성애자인 거 다 알고 있고 A랑은 연 끊었다. 뻐킹 ㅇㅅㅇ!!!!!!!
◆9y6mFbjupXs 2023/02/22 15:31:24 ID : 1a8qqo43SFj
아무튼 그해 가을에 우리는 드디어 100일을 맞았어. 그러고 보니 그동안 A를 한 번도 집에 안 데려간 게 생각나서 100일에는 우리 집에서 놀기로 했음.
이름없음 2023/02/22 17:35:43 ID : f89Bunxva5Q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3/02/25 01:48:26 ID : 7wJU2IGoIMl
ㅂㄱ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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