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로판 왕비나 귀족 부인 정부와 사생아 (3)
2.사랑의외연은뭐라고정의해야하나요 (223)
3.딱봐도 어린애가 쓴 거 티나는 야설 특징이 뭐라고 생각해? (24)
4.주인공의 말버릇을 정하고 싶은데 (4)
5.짧고 굵게 소설 써보자 (5)
6.소설 소재 모아두는 곳 (15)
7.너가 한세충이냐? (2)
8.신수 이야기. (2)
9.종족 (1)
10.소설 쓰는데 설정 좀 봐줄 수 있어?? (5)
11.아크 소크티온 (1)
12.요즘 창소판에 생각하기 싫어하는 레더들 자주 보이네 (10)
13.솔직히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취향은 똑같은 거 같음 (1)
14.소설 연재하는데 sns 할거다 vs 안할거다 (6)
15.형사처벌 관련 지식 나눠줘 (2)
16.여기에 각자 설정이나 스토리라인 하나씩 적어주면 스레주가 다 묶어서 웹소설로 내놓을겡 (15)
17.가출청소년이 폐교에서 사는 설정은 에바라고 생각해? (5)
18.로판 여주 누구로 하는 게 좋을까? (5)
19.소설 제목 주인공 이름 끝 글자로 짓는 건 좀 개오바라고 봄? (6)
20.인간멸종1 (10)
1
이름없음
2023/10/02 02:22:12
ID : 5Qq2JXxPa09
5
심심할 때마다 쓰는 장편 청레
감상 및 난입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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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름없음
2023/10/02 02:22:24
ID : 5Qq2JXxPa09
0
만듦새가 단정해 잘 직조된 피륙 같던 사랑이 오늘 끝났다. 예컨대 그것에 생명은 없었다는 소리다. 메신저 몇 번에 끊긴 감정이 창밖에 툭툭 범람했다. 툭툭. 아 미친 날씨가 왜 이래. 일은 거슬리는 빗소리를 동력 삼아 자질구레한 기억들을 펼쳤다. 데이트 몇 번에 농도 얕은 스킨십. 그게 다였다. 썩 좋지도 않았다. 단지 거개 한다기에 한 번쯤 간수하고 싶던 경험이었다. 이제 와 적성에 맞지 않음을 절절히 체감했지만. 톡. 톡톡. 빗소리를 따라 무릎을 두드렸다. 샤프를 쥐고 싶었다. 손에 딱 맞던 몸체 단단한 샤프. 작금에야 쥐어도 비참함을 환기할 뿐이나 심상 한 켠에 눌러둔 버킷 리스트는 당최 수정되지 않았다.
3
이름없음
2023/10/02 02:22:43
ID : 5Qq2JXxPa09
0
도외시하던 계절이 지척이었다. 애초 의도는 아니었다만 사랑 그거 어설프게 흉내내던 것도 전부 이맘때여서니 싶었다. 아무리 궂은 나날을 보내도 순환 끝에 가을이라면 어김없이 한 낯이 떠올랐다. 애써 올리지 않아 발음이 생경하게 되어 버린 이름. 일은 혀를 끌면서 나오는 석 자를 느릿느릿 발음했다. 지수빈. 누구는 부르기 쉽게 이름도 두 글잔데 이 새낀 왜 이름부터 삐딱선을 타지.
4
이름없음
2023/10/02 02:22:52
ID : 5Qq2JXxPa09
0
그렇기 때문에 모교 방문은 기나긴 연휴 동안 팔자에도 없던 일정으로 잡혔다. 본래 우울에 깊게 파고들지 않는 성정은 명쾌하게 답을 내렸다. 사 년이 지나도 떠오르네. 그러면 아주 잊는 건 포기하자. 고교 졸업 후 2년, 스물둘의 유일도 명쾌하지 못한 것들이 무량했다. 이를테면 열여덟의 지수빈이라든가. 열여덟의 우리라든가. 때 아닌 잡념에 노란 우산 하나 달랑 들고 닿는 대로 걸으니 교문 앞이었다. 마침 익히 면을 텄던 호방한 경비원이 단박에 반겼다. 오랜만이야 유일이 이제 완전 아가씨가 다 됐네. 선생님 뵈러 왔구나? 보자 아직 퇴근 전이셔 얼른 가 봐. 무턱대고 발을 디딘 학교에서는 늦여름 심록의 향과 샤프 소리가 났다.
5
이름없음
2023/10/02 02:23:00
ID : 5Qq2JXxPa09
0
유일아. 유일아아. 수빈의 일상에는 생활형 애교가 즐비했다. 일 학년을 반추하면 차분하고 삭풍처럼 냉랭하던 모습이 허상이듯이 그냥 배 잘 까는 고양이였다. 가만히 있으면 참 정가한 낯으로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이목구비 선이 짙어 절로 진중해 보이는 손끝에서 나오는 건 개발새발의 난필. 사 년 전을 복기하던 일이 잇새로 웃으며 책상 위 글씨를 아닌 척 쓸었다. 2학년 3반. 1분단 첫 번째 자리에는 사 년 전의 네임펜 흔적이 여실했다.
6
이름없음
2023/10/02 02:23:08
ID : 5Qq2JXxPa09
0
김유일 수업 듣지 말고 나랑 놀아라
7
이름없음
2023/10/02 02:23:16
ID : 5Qq2JXxPa09
0
이게 누구 멋대로 아버지를 갈아치워 하고 싸웠던 기억. 주관 확고하게 생겨서는 응 그래 알았어 설설 맞춰 주던 수빈도 엄한 데에서 고집을 부렸다. 그게 호칭이었다. 멀쩡한 두 자 이름을 석 자로 늘리질 않나 사자성어로 부르질 않나. 근데 니가 일이면 내가 월이어야 맞지 않아? 또 별 이상한 타령을 시작하길래 씹었더니 뒤에 붙은 말이 더 충격이었다.
8
이름없음
2023/10/02 02:23:26
ID : 5Qq2JXxPa09
0
“지월이, 어때. 지월이.”
“이제는 멀쩡한 네 이름까지 바꿔?”
“아니, 어떠냐고. 응?”
“기생 이름 같아.”
9
이름없음
2023/10/02 02:23:33
ID : 5Qq2JXxPa09
0
마침 훑던 게 한국사 교과서였다. 별 의미 없이 대꾸했더니 이제는 내 미적 센스 품평회가 개최됐다. 그렇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게 결국 내 관심 한 가닥 붙잡으려는 항의인 걸 알아 책을 덮고 말았다. 내 성적 하향 곡선 그리면 평생 너 저주할 거야. 그랬더니 수빈은 한 술 더 떠 화답했다. 평생 내가 책임지면 되지.
10
이름없음
2023/10/02 02:23:43
ID : 5Qq2JXxPa09
0
그러던 새끼가…. 문득 빠작 열이 받았다. 첨예한 손끝이 낙서를 지울 듯 힘주어 문질렀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울리는 구두 소리. 어머! 교실 미닫이문이 열리며 노래 같은 탄성이 뒤를 이었다. 일은 뒤를 돌았다. 아, 선생님! 안녕하셨죠 보고 싶었어요…. 2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음악 전공은 말도 음악하듯 한다는 편견을 심어 준 사람이기도 했다.
11
이름없음
2023/10/02 02:23:52
ID : 5Qq2JXxPa09
0
“웬일이야, 일아. 어쩌다 왔어? 졸업하고 죽은 줄 알았잖아!”
“바빴어요. 완전요. 지금은 휴학한 지 얼마 안 돼서 한가해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애들 가르치는 맛에 살지. 근데 무슨 일이야. 너무 말랐다. 공부 많이 힘들어?”
“간호학과가 다 그렇죠…. 아하하, 그래도 열심히 살아서 뿌듯해요.”
12
이름없음
2023/10/02 02:24:00
ID : 5Qq2JXxPa09
0
근황을 묻는 인사가 섬세하고 길었다. 물을 안부가 동이 나서야 선생님은 떠오른 듯이 작게 꺼냈다.
13
이름없음
2023/10/02 02:24:08
ID : 5Qq2JXxPa09
0
“일아, 수빈이는….”
“…….”
“여전히 소식 없어?”
14
이름없음
2023/10/02 02:24:15
ID : 5Qq2JXxPa09
0
하마터면 그래서 온 건데요 대답할 뻔했다. 영롱한 눈망울에 어린 건 순수한 걱정 태반에 의문이라 일은 말을 삼켰다. 이 작은 나라에 더 작은 도시에 배는 좁은 학교에 너를 걱정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이 철없는 새끼야. 내 안의 너를 조립할 게 이 심록 찬 콘크리트 건물 속 시간뿐이라 사 년간 모교 등진 내가 여기 있다고.
15
이름없음
2023/10/02 02:24:26
ID : 5Qq2JXxPa09
0
“걔야 어디서든 잘 살겠죠. 사진 찍고 싶다고 외국 나간 애니까.”
“그래도, 어떻게 매정하게 연락 한 번…. 너희가 학교 다닐 때 좀 친했니. 부부보다 더 붙어 지내던 애들이 갑자기 떨어지니 신경이 어떻게 안 쓰여. 심지어 너는 아닌 척해도 얼굴이 어두워서는 수척했잖아.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선생님 그때 걱정 많이 했어.”
16
이름없음
2023/10/02 02:24:46
ID : 5Qq2JXxPa09
0
매정하게 연락 한 번 없이 고국을 뜬 지수빈. 실은 무언가에서 도망치듯 떠난 지수빈. 행선지도 출국일도 알리지 않고 사라진 지수빈. 그렇다면 왜 지수빈은 시기도 애매한 고 2의 10월에 항공을 감행했는가. 그 모든 의문의 근간에는 내가 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미래에 관한 몇 마디를 나눈 선생님은 이윽고 회의가 있다며 아쉬운 듯이 자리를 떴다. 다시 고요한 교실에 혼자였다. 일은 책상에 걸터앉아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비가 초입보다 거셌다.
17
이름없음
2023/10/02 02:25:00
ID : 5Qq2JXxPa09
0
지수빈은 어떤 사람이었냐. 등신이라는 단어로 간추릴 수 있다. 포장지 예쁜 등신이었다. 나붓거리는 새카만 담흑색 머리에 투명한 홍채. 이목구비 짙은 유백색 살갗. 양지옥 같은 모양에 시초는 괄목할 정도였다. 쟤는 뭐 저렇게 예뻐. 여고인데 남자보다 인기가 많았다. 문제는 성격이었다. 열 마디 이상 꺼내면 돌연사하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입을 안 열었다. 붙임성 좋게 대화를 시도해도 돌아오는 건 어 아니 그래 별로. 웃기게 더러는 거기에 미쳤다. 분위기 있다나. 반면 도처에 사람 끌어모으는 병 걸린 일은 그런 수빈을 일별한 게 다였다. 생득적인 언변과 성품으로 이미 피곤할 정도로 인맥이 넓었다. 인세에 척진 것 같은 애랑도 굳이. 1학년은 별다른 접점 없이 흘러갔다. 일은 말이 많았고 수빈은 말이 없었다. 2학년 반 편성이 뜨기 전까지는.
18
이름없음
2023/10/02 02:25:18
ID : 5Qq2JXxPa09
0
“어? 같은 반이네.”
19
이름없음
2023/10/02 02:25:26
ID : 5Qq2JXxPa09
0
봄 방학 전날, 수빈은 2학년 3반 앞에 붙은 명렬표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미 1반부터 샅샅이 살피던 일의 걸음이 멈췄다. 낯익은 이름들을 예사롭게 죽 훑던 눈길이 한 곳에 머물렀다. 여기 있네, 내 이름. 기척을 느낀 수빈이 고개를 돌렸다. 1학년 내내 말 한 번 섞지 않은 사이에도 마주친 시선이 예사로웠다.
20
이름없음
2023/10/02 02:25:35
ID : 5Qq2JXxPa09
0
“하이. 2년 내내 얼굴 보겠다. 반갑고.”
“… 어.”
“그으, 수빈아. 그리고 너 말 너무 없어서 다들 좀 무서워해.”
21
이름없음
2023/10/02 02:25:42
ID : 5Qq2JXxPa09
0
수빈이 물끄러미 일을 바라봤다. 그때 든 생각은 딱 하나.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장신이래. 유전인가 생활 습관의 영향인가.
22
이름없음
2023/10/02 02:25:49
ID : 5Qq2JXxPa09
0
“너도 그래?”
“음? 아, 나는 별로. 근데 가끔 그래. 예를 들어 지금?”
23
이름없음
2023/10/02 02:26:14
ID : 5Qq2JXxPa09
0
기분 탓인지 지수빈 정가한 낯이 불쑥 어두워 보였다. 장난이었는데 상처받은 건 아니겠지?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실에서 틈틈이 보던 모습을 생각하면, 은근히 떠도는 항간의 말처럼 싸가지 말아먹지 않아서. 오히려 겉은 버석한데 속이 시끄러운 축이었다. 말이 없는 건 그냥 성격이고.
24
이름없음
2023/10/02 02:26:26
ID : 5Qq2JXxPa09
0
“장난이야. 얼굴 펴라. 응?”
25
이름없음
2023/10/02 02:26:33
ID : 5Qq2JXxPa09
0
검지 손가락으로 볼을 쿡 찔렀다. 말랑하고 따뜻해서 귀엽다는 감상이 앞섰다. 얘 이런 낯도 할 줄 알았네. 얼빵하기보다 정지한 듯한 꼴에서 약간의 모자람을 읽었다. 얼추 170 훌쩍 상회하는 체구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건 제법 즐거운 볼거리였다.
26
이름없음
2023/10/02 02:26:40
ID : 5Qq2JXxPa09
0
유일아! 뭐 하냐!
아, 간다고! 기다려!
27
이름없음
2023/10/02 02:26:48
ID : 5Qq2JXxPa09
0
복도 끄트머리에서 고동 같은 채근이 이어졌다. 자연히 시선을 거두고 이어 몸이 떠났다. 발 떼기 전 관성처럼 손 몇 번 팔랑거린 게 다였다. 그마저도 곧장 멀어져 되돌아온 반응은 안중에 없었다.
28
이름없음
2023/10/02 02:26:55
ID : 5Qq2JXxPa09
0
"일아. … 안녕."
29
이름없음
2023/10/02 02:27:02
ID : 5Qq2JXxPa09
0
그러나 신명께 맹세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그 귀엽고 모자란 낯을 똑똑히 봤을 거라고.
30
이름없음
2023/10/02 02:27:12
ID : 5Qq2JXxPa09
0
"아, 어? 하이. 방학 잘 지냈어? 머리 다듬었네?"
"어, 응…. 어울려?"
"네 얼굴에 안 어울리는 머리가 어디 있냐. 쥐 파먹은 머리로 살아도 곱다 그러지."
"뭐야, 그게."
31
이름없음
2023/10/02 02:27:18
ID : 5Qq2JXxPa09
0
개학 초일, 요란한 교실에서 수빈이 툭 웃었다. 물방울처럼.
32
이름없음
2023/10/02 02:27:28
ID : 5Qq2JXxPa09
0
예컨대 실바람에도 굴려질 듯 미약하고 사랑스러웠다는 소리다. 앞 옆 뒤가 사이좋게 아연한 낯을 하는 건 신경 밖이었다. 그저 탐미적인 태도로 조목조목 감상할 따름이었다. 웃는 걸 한 번도 못 봤는데 그간 관심이 없어서 그랬나. 반원 그리는 눈가가 국가 제일 미색으로 내보내기에 손색이 없어 수빈이 첫 입실 직후 곧장 내게로 왔다든가 그간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든가 지엽적인 문제 또한 신경 밖이었다.
33
이름없음
2023/10/02 12:36:04
ID : txVfgi8lxA3
0
세상에 작가님 왜 여기 계세요 어서 어디든 가서 연재해
34
이름없음
2023/10/02 12:39:34
ID : txVfgi8lxA3
0
글고 문체 진짜 취저임 이런 문체 진짜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건 항상 내가 못쓰더라 이런 문체가 처음부터 나왔어? 아니면 이런 문체를 만들기 위해 어떤 걸 했는지! 궁금하다!
35
이름없음
2023/10/02 13:08:07
ID : yK1zQmtyY9A
0
워 완전 외국문체....번역체.....문체 개쩐다
36
이름없음
2023/10/02 19:15:42
ID : 5Qq2JXxPa09
0
나도 문체 여러 번 바뀌었지~ 근래 들어 뭐든 많이 읽으니까 영향이 누적되어서 이렇게 굳어진 것 같아 많은 건 없고 그냥 순문학이든 웹소설이든 고전이든 가리지 않고 읽으면 장점만 흡수할 수 있어 그러니 활자 중독 완전 추천 문체가 취향이라고 해 줘서 고마워 거짓 안 보태고 처음 듣는다
37
이름없음
2023/10/02 19:16:34
ID : 5Qq2JXxPa09
0
감사합니다아 남은 연휴 다복하게 보내세요
38
이름없음
2023/10/02 19:17:09
ID : 5Qq2JXxPa09
0
“자주 웃고 다녀라, 너. 되게 예쁘네.”
39
이름없음
2023/10/02 19:17:20
ID : 5Qq2JXxPa09
0
그 말에 삐딱선 타듯 입꼬리가 뚝 하향했다. 다시 내처 짓던 무상한 표정이었다. 몰랐는데 이게 수빈의 디폴트 값이자 당황의 내색이었다. 3월 초순의 관계에서야 알 도리가 없으니 장난의 메타포인 줄 알았다.
40
이름없음
2023/10/02 19:17:31
ID : 5Qq2JXxPa09
0
“좀 웃으라니까 우리 수빈이는 말도 더럽게 안 듣지?”
“……!”
41
이름없음
2023/10/02 19:17:39
ID : 5Qq2JXxPa09
0
그렇다면 호응해 주는 게 인지상정. 검지 손가락으로 수빈의 양 입꼬리를 꾹 올렸다. 반응이 제법 웃겼다. 흠칫대면서 굳어 버리는 게 영락없는 고양잇과였다. 그게 또 신선해 친구끼리 점잖게 놀았던가 일말의 의아가 스쳤다.
42
이름없음
2023/10/02 19:17:54
ID : 5Qq2JXxPa09
0
“웃… 웃는다고…. 손 떼….”
43
이름없음
2023/10/02 19:18:04
ID : 5Qq2JXxPa09
0
파고든 손가락에 이라도 닿을까 복화술처럼 속삭이는 게 재미였다. 내친김에 더 할까 싶다가 순진한 양 놀려 먹는 늑대 꼴이라 관두었다. 좌우간에 그게 기점이었다. 무구하던 수빈이 점차 대담해져 구름 같던 면면들을 헤치고 일의 옆을 꿰찬 건.
44
이름없음
2023/10/02 19:18:12
ID : 5Qq2JXxPa09
0
“너희 사귀어?”
45
이름없음
2023/10/02 19:19:29
ID : 5Qq2JXxPa09
0
긴 우기였다. 장마에 기껏 만 앞머리 뭉그러졌다며 양냥거리던 친구가 대뜸 물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여하튼 부단한 호사가였다. 작은 입에서 반개한 항설이 지상 5층을 휘돈 게 수어 번쯤 됐다. 그렇다고 곧장 부정하기도 애매했다. 장신 구겨다가 제 어깨에 턱 얹어 놓은 수빈이 무료하게 눈을 굴렸다. 이 모양으로 역정이어야 의혹만 반증하는 꼴이었다.
46
이름없음
2023/10/02 19:19:50
ID : 5Qq2JXxPa09
0
“그렇냐는데?”
“? 뭐가.”
“자기야, 해 봐. 자기야.”
“자기야.”
“봤지? 우리가 이런 사이다.”
47
이름없음
2023/10/02 19:20:26
ID : 5Qq2JXxPa09
0
흥이 죽은 친구가 고갤 모로 돌렸다. 일이 키득거리며 문학 교과서를 넘겼다. 정철의 속미인곡이 컬러 인쇄 된 양면을 어지럽게 활보했다.
48
이름없음
2023/10/02 19:20:46
ID : 5Qq2JXxPa09
0
“우리 수빈이 참 잘했어요~”
“… 죽고 싶어?”
“아이고, 너무 무섭다.”
49
이름없음
2023/10/02 19:20:58
ID : 5Qq2JXxPa09
0
애견 다루듯 낫낫하게 턱 두어 번 긁어 준 일이 묵묵히 고전을 훑었다.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한가마는.
50
이름없음
2023/10/02 19:21:17
ID : 5Qq2JXxPa09
0
“괴얌즉이 뭐였더라.”
“관심 없는 척하고 보고 있었네?”
“내가 언제에. 그런데 진짜 기억 안 나. 너 공부 잘하잖아. 뭐였어?”
“괴다가 고언으로 사랑하다야. 괴얌즉 한가마는 이건 사랑함직 한가마는 그런 뜻.”
51
이름없음
2023/10/02 19:21:29
ID : 5Qq2JXxPa09
0
수빈이 누구냐. 속골까지 T인 인간. 사실 엠비티아이 문제로 이월하기보다 자체의 사회성인지 꼭 이상한 데에서 태클을 걸었다.
52
이름없음
2023/10/02 19:21:38
ID : 5Qq2JXxPa09
0
“왜 괴다가 사랑하다야. 말이 너무 안 맞는데?”
53
이름없음
2023/10/02 19:21:52
ID : 5Qq2JXxPa09
0
이러면 어쩔 도리 없이 대거리의 타이밍이었다. 기실 먼저 웃기지도 않는 반론을 제기한 게 저쪽이니 항변은 정당했다.
54
이름없음
2023/10/02 19:22:14
ID : 5Qq2JXxPa09
0
“너도 나 좋아해서 턱 괴고 있잖아.”
“뭐?”
“대충 그런 거라고 쳐. 원래 이런 건 따지고 들다가 골로 간다.”
55
이름없음
2023/10/02 19:22:38
ID : 5Qq2JXxPa09
0
고개를 치들어야 할 수빈이 잠잠했다. 영문 모르게 눈길을 내리다 알았다. 2학년부터 급격하게 변화한 지수빈. 어디 있든 곧장 바투 다가붙던 지수빈. 막내 같은 애교에 외동이라는 의외성을 보이던 지수빈.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하면서 정작 제가 안기는 게 더 많던 지수빈. 은창한 집 내버리고 하교 후 나 따라 좁은 열람실에 몸 구기던 지수빈.
56
이름없음
2023/10/02 19:22:52
ID : 5Qq2JXxPa09
0
“야.”
“…….”
“너 진짜 나 좋아하지.”
57
이름없음
2023/10/02 22:06:13
ID : txVfgi8lxA3
0
허어어업.....도랏다 미래의 레전드 스레가 여기있어요... 이 청춘 이 감성 어쩔거임 대박이다
58
INTP
2023/10/03 04:22:10
ID : a6ZeHzSHCkn
0
GPT챗 알려주세요
59
이름없음
2023/10/03 16:17:09
ID : IE061A3QrbB
0
작가님 미리 사란합니다
60
이름없음
2023/10/23 14:20:34
ID : RDxSGtAnXte
0
얼굴을 묻은 수빈의 귀에 이른 단풍이 만개했다.
61
이름없음
2023/10/23 14:20:43
ID : RDxSGtAnXte
0
“뭐래.”
62
이름없음
2023/10/23 14:21:11
ID : RDxSGtAnXte
0
이 기묘한 조합에 거개는 흥미로 호응했다. 사철의 동태 눈이 2인분의 생기와 붙으니 그게 관전 포인트였다. 유일이는 정말 얼굴 값 하지. 본인이 예쁘더니 예쁜 수빈이랑 절친이구나. 미지수 계산에 돌입한 면면들을 지루하게 보던 수학 선생님이 툭 말을 굴렸다. 에이 제가요? 저 얼굴 안 봐요. 항변은 분위기를 타 어물쩍 이월됐다. 한 예외를 공란에 넣고.
63
이름없음
2023/10/23 14:21:18
ID : RDxSGtAnXte
0
“지랄. 너 얼굴 존나 봐.”
64
이름없음
2023/10/23 14:21:25
ID : RDxSGtAnXte
0
넌 무슨 그런 말을 나 급식 먹을 때 하니.
대중없는 직구에 숟가락 들고 정지한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떴다.
65
이름없음
2023/10/23 14:21:32
ID : RDxSGtAnXte
0
“뭐…. 야, 갑자기 무슨?”
“거짓말했잖아. 얼굴 안 본다고.”
66
이름없음
2023/10/23 14:21:41
ID : RDxSGtAnXte
0
수빈이 가지런히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가붓한 농담은 1교시였고 현재는 4교시 직후인데도. 설마 내도록 묵묵하던 게 저 생각 때문이었나. 얼굴 값 깜찍하게 못 하는 지수빈은 말만큼 허튼 생각도 많았다. 매번 색다르게 핀트가 어긋난 게 문제였지만.
67
이름없음
2023/10/23 14:21:50
ID : RDxSGtAnXte
0
“말로 안 하더니만 머리로 허튼 생각 중이었네.”
“죽고 싶어?”
“아이고, 우리 수빈이 말하는 싸가지 보게.”
“사실이잖아. 너 내 얼굴 아니었으면 인사도 안 했을걸.”
“이제 점점 나를 나쁜 새끼로 몬다?”
68
이름없음
2023/10/23 14:22:10
ID : RDxSGtAnXte
0
후식은 감튀였고 슬슬 동이 나던 차였다. 별 웃기지도 않은 삽질 하는 꼴이 어이가 없어서 마지막 조각을 지수빈 입에 물렸다.
69
이름없음
2023/10/23 14:22:19
ID : RDxSGtAnXte
0
“얼굴은 삼 일이야. 몰라?”
“……”
“네가 아무리 천하제일 미색이라도 그거 빼고 볼 거 없으면 일주일 안에 유기했다는 뜻. 그러니까 다물고 감튀나 먹자.”
70
이름없음
2023/10/23 14:22:26
ID : RDxSGtAnXte
0
수빈이 얌전하게 턱을 움직였다. 확언하건대 지수빈은 한 번 땅을 파면 끝도 없었다. 화재도 아니고 초기 진압이 중요하다니. 내처 짓던 표정이 풀어진 게 자명해서 그제야 좀 웃겼다.
71
이름없음
2023/10/23 14:22:36
ID : RDxSGtAnXte
0
“야, 근데.”
“응?”
“예쁘다는 건 부정 안 하네.”
72
이름없음
2023/10/23 14:22:45
ID : RDxSGtAnXte
0
아까의 지수빈과 지금의 지수빈. 누가 더 골치인가.
73
이름없음
2023/10/23 14:22:52
ID : RDxSGtAnXte
0
“나 예뻐?”
74
이름없음
2023/10/23 14:22:59
ID : RDxSGtAnXte
0
유비하던 일이 가는 한숨을 냈다. 입매가 속 나쁜 웃음을 그렸다. 답이 정해진 질문. 이걸 문학에서는 설의법이라고 하던데. 좌우간에 의문은 미명일 뿐이다. 일이 대강 명답을 냈다.
75
이름없음
2023/10/23 14:23:06
ID : RDxSGtAnXte
0
“어, 당연하지. 예쁜 것도 모자라 내 취향으로 생겼지. 경국지색이지. 내가 황제였으면 울 수빈이가 황후 감이지.”
76
이름없음
2023/10/23 14:23:12
ID : RDxSGtAnXte
0
좋단다. 진 빠진 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77
이름없음
2023/10/23 14:23:18
ID : RDxSGtAnXte
0
“맞아… 그런 적도 있었는데.”
78
이름없음
2023/10/23 14:23:41
ID : RDxSGtAnXte
0
이어서 희끗한 시간을 채우는 기억. 광막한 일생 속에 기껏 일 년이 고작임에도 여과는 요원했다. 이건 상대가 지수빈인 탓인가, 내가 나인 탓인가. 가늠하던 눈이 달 아래 호수처럼 깊어졌다.
79
이름없음
2023/10/23 14:23:49
ID : RDxSGtAnXte
0
세상 사람들이 다 죽어 버리면 좋겠어
80
이름없음
2023/10/23 14:23:56
ID : RDxSGtAnXte
0
일견 저주처럼 보이던 음절의 나열.
81
이름없음
2023/10/23 14:24:03
ID : RDxSGtAnXte
0
그래서 너랑 나밖에 남지 않으면 좋겠어
그래서 네가 나밖에 사랑할 수 없었으면 좋겠어
네가 사랑할 거라곤 오직 나뿐이면 좋겠어
82
이름없음
2023/10/23 14:24:13
ID : RDxSGtAnXte
0
다만 속에 든 것은 출처 모를 절절함이라 돌이키면 목만 멨다. 아니지 걔가 나한테 목을 맸지. 그렇다면 지수빈은 어떤 사람이었냐. 정말 등신인가? 사랑에 최후까지 묵비를 행사하려 드는 멍청이인가? 그럼에도 간추릴 줄 몰라 어설프게 고해하던 풋내기인가?
83
이름없음
2023/10/23 14:24:24
ID : RDxSGtAnXte
0
잠든 줄 알았던 사람과 잠들지 않았던 사람.
84
이름없음
2023/10/23 14:24:32
ID : RDxSGtAnXte
0
늦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아침 자습, 고작 둘인 교실에서 자백하던 음성은 첫 울음보다 연약했다.
85
이름없음
2023/10/23 14:24:47
ID : RDxSGtAnXte
0
그래서 눈을 떴다. 그러나 지수빈의 겁이 그렇게 무거운 줄 알았더라면. 불안정한 시선이 맞물리고, 머리칼을 넘겨 주던 손이 멎고, 그 애가 진동하는 손으로 가방을 단말마처럼 끌며 나갈 줄 알았더라면. 지난 미래에 대한 가정은 곧 망향이다. 작금의 심정은 노스탤지어와 이음동의어였다.
86
이름없음
2023/10/23 14:25:09
ID : RDxSGtAnXte
0
우선 달래 주고.
달래 주고?
겁이 눌린 다음에는.
다음에는?
차차 생각을 해 보자고, 그렇게 말할 심산이었는데.
87
이름없음
2023/10/23 14:25:19
ID : RDxSGtAnXte
0
네가 내게 이끌린 것이 필연인지, 우연인지. 오롯한 둘의 공간에서 휘돌던 대기는 우정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88
이름없음
2023/10/23 14:25:49
ID : RDxSGtAnXte
0
너 그거 사랑 아니야, 어쩌면 그런 대답을 예비라도 했던가. 문간을 박차고 떠난 지수빈은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맞춘 몸체 단단한 샤프만이 할당량을 채웠다. 셔터 누르는 걸 좋아하던 지수빈의 사진첩은 절반이 내 차지일 텐데. 사진 전공하겠다던 걔의 뮤즈는 나였을 텐데. 이날 처음으로 양손잡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곯았다. 세간에 둘뿐이라던 샤프는 이제 한 사람 몫이 됐다. 그럼에도 두 개로 쓰고자 했다.
89
이름없음
2023/10/23 14:25:59
ID : RDxSGtAnXte
0
< 사랑 아닌 거 ) 3:01am
< 나도 알아 미안 ) 3:01am
90
이름없음
2023/10/23 14:28:32
ID : RDxSGtAnXte
0
쾌청하던 10월. 지수빈은 떠났고 샤프는 버려졌다. 도무지 병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91
이름없음
2023/10/23 14:28:40
ID : RDxSGtAnXte
0
그럼 사랑이 뭔데?
92
이름없음
2023/10/23 14:49:44
ID : RDxSGtAnXte
0
타의로 남겨진 사람은 답을 찾고자 했다. 여러 형태의 사랑을 담았다. 다만 농도 짙은 애정만은 도저히 생기지 않아서. 회백색 콘크리트 건물 2층에 두고 온 향수도 다정도 무엇 하나 발치만큼 뒤쫓는 감정이 없었다. 풍랑에 헤메이다 연애도 시도했다. 그것도 오늘 멎었지만. 진짜 거지같이 살았네 나. 고개를 올린 일이 열없이 웃었다.
93
이름없음
2023/10/23 14:50:03
ID : RDxSGtAnXte
0
그때, 짧은 마찰음이 빈 교실을 메웠다.
94
이름없음
2023/10/23 14:50:16
ID : RDxSGtAnXte
0
“…….”
95
이름없음
2023/10/23 14:50:28
ID : RDxSGtAnXte
0
단언하건대 그때 네가 한 게 사랑이었다면 우리는 반드시 운명일 거라고.
96
이름없음
2023/10/23 14:50:43
ID : RDxSGtAnXte
0
“… 이, 씹새끼야.”
97
이름없음
2023/10/23 14:50:54
ID : RDxSGtAnXte
0
열린 틈으로 보인 낯짝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었다.
98
이름없음
2023/11/01 23:42:03
ID : 5Qq2JXxPa09
0
“…… 일아.”
“너, 지금, 왜, 아니, 아니…. 내 이름 부르지 마.”
99
이름없음
2023/11/01 23:42:16
ID : 5Qq2JXxPa09
0
예비하지 않은 대면임은 자명했다. 마주한 낯이 처참했으므로. 현기에 목전이 핑 돌았다. 악력 주어 지탱한 책상에서 요란한 소음이 울렸다. 그 모자란 낯이 참담한 낯이 예사처럼 손 뻗다가 우뚝 멎은 동작처럼 짜증이 나서. 회상의 어느 시간처럼 축을 잃은 몸을 받쳐 주겠답시고 흔들린 것도 닿지 못한 손도 서러웠다. 그럴 거면 움직이지나 말지 개새끼가. 앞에서 기절하든 쓰러지든 마저 튀기나 하지 왜.
100
이름없음
2023/11/01 23:42:47
ID : 5Qq2JXxPa09
0
“너 진짜 내가 우스워?”
“…….”
“꼴 받으라고 이러는 건가? 목표 달성, 짝짝짝. 얼굴 좋아 보이네. 누구는 따라갈 수도 없는 외국에서 마음 놓고 행복하게 살았나 봐. 튀었으면 내도록 거기 붙어 살지 그랬어. 이왕이면 평생 안 보이게.”
101
이름없음
2023/11/01 23:43:12
ID : 5Qq2JXxPa09
0
해묵은 감정과 언어가 난반사했다. 누수도 아닌 범람이다. 틀어막을 수도 틀어막힐 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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