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3/10/02 02:22:12 ID : 5Qq2JXxPa09 5
심심할 때마다 쓰는 장편 청레 감상 및 난입 환영
102 이름없음 2023/11/01 23:43:54 ID : 5Qq2JXxPa09 0
“아… 나는 이딴 델 왜 왔지. 하필 오늘 왜 비가 와서.”
103 이름없음 2023/11/01 23:44:02 ID : 5Qq2JXxPa09 0
고행의 끝은 기어이 낙루였다.
104 이름없음 2023/11/01 23:44:13 ID : 5Qq2JXxPa09 0
“하필 오늘 왜 가을이어서.” “… 일아.” “하필 오늘 왜 마주쳐서…….”
105 이름없음 2023/11/01 23:45:06 ID : 5Qq2JXxPa09 0
보통의 거리에서 호명만 이어졌다. 고해하자면 사 년 간의 몽중은 꼭 그랬다. 한 번을 다가오지 않고 멀어지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눈만 맞대는 장면이 예사였다. 오롯한 두 사람의 영화관. 한 필름을 아주 길게 늘여 맞댄 그 영화는 여전히 상영 중이었다.
106 이름없음 2023/11/01 23:45:29 ID : 5Qq2JXxPa09 0
“수빈아.”
107 이름없음 2023/11/01 23:45:53 ID : 5Qq2JXxPa09 0
그건 어떠한 결심이었다. 고동 없던 사랑을 쓸어 보낸 날. 하필 거세진 빗소리와 지나간 청춘의 메인 테마.
108 이름없음 2023/11/01 23:46:00 ID : 5Qq2JXxPa09 0
“묵비권은 죄를 지었을 때나 행사하는 거고.”
109 이름없음 2023/11/01 23:46:08 ID : 5Qq2JXxPa09 0
그러니 내 청춘의 시련은 네 몫이 온당함을 똑똑히 보이기 위해서.
110 이름없음 2023/11/01 23:46:16 ID : 5Qq2JXxPa09 0
“너 나한테 죄 지은 적 없잖아.”
111 이름없음 2023/11/01 23:47:07 ID : 5Qq2JXxPa09 0
망설이지 않고 거리를 좁혔다. 내도록 정지한 꼴이 우스웠다. 한 손을 들어 뒷목을 감쌌다. 고개를 당겨 맞춘 시선에 담긴 것은 단단히 비틀린 자신이었다.
112 이름없음 2023/11/01 23:47:24 ID : 5Qq2JXxPa09 0
“아니야?”
113 이름없음 2023/11/01 23:47:31 ID : 5Qq2JXxPa09 0
목을 끄는 손에 저항은 없었다. 가벼운 동작으로 입술을 물었다.
114 이름없음 2023/11/02 01:53:36 ID : U7wIKY4FeE9 0
(주접에 분위기 망칠 거 같아서 꾹 눌러담고 있는 레스)
115 이름없음 2023/11/02 11:16:50 ID : RDxSGtAnXte 0
주접은 가장 큰 원동력... 이 레스 하나가 오늘 한 여성을 살게 합니다 🥺
116 이름없음 2023/11/02 15:00:56 ID : RDxSGtAnXte 0
체감은 숫제 프레임 끊긴 미디어였다. 깨문 입술이 망설이듯 개문하고 무른 혀를 쑤셔넣을 때까지. 사용자 심정대로 사나운 기색에 수빈이 움찔했다. 달래듯 얽어 오는 혀가 내처 물렀다. 유능제강이라는 성어가 지금 왜 떠오르는지. 불온한 생각이 잇따랐다. 나는 네가 어떻게든 아팠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그게 외부든 내부든 다를 건 없잖아. 내가 지금 너랑 좋아서 애인 놀음 부리는 줄 아니. 그렇다면 완전히 틀렸다. 일의 번잡한 머리는 노상 수빈을 다치게 하고자 골몰했다.
117 이름없음 2023/11/02 15:01:05 ID : RDxSGtAnXte 0
“… 아.”
118 이름없음 2023/11/02 15:01:11 ID : RDxSGtAnXte 0
그래서 힘껏 깨물었다. 비칠 피가 분수 같길 바라며.
119 이름없음 2023/11/02 15:01:33 ID : RDxSGtAnXte 0
참 앞뒤 안 맞는 상황이었다. 먼저 입술 박을 땐 언제고 혀를 깨물어. 물론 이건 일이 생각한 수빈의 입장이었으니 다르다 한들 아쉽진 않았다. 더 나아가자면 어쩌라고. 넌 네가 가엾어? 나는 내가 가엾어. 이딴 새끼 하나 못 잊어서 허비한 사 년이 서러워.
120 이름없음 2023/11/02 15:15:36 ID : f9jzhwK3O5X 0
허어어억 선생님 너무 좋아요..
121 이름없음 2023/11/03 16:18:16 ID : mGtunCnPdwp 0
감사합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놓지 않고 쓰겠습니다...
122 이름없음 2023/11/03 16:18:38 ID : mGtunCnPdwp 0
“해 봤는데, 적성은 아니더라. 연애질 하는 거.”
123 이름없음 2023/11/03 16:18:56 ID : mGtunCnPdwp 0
한 발짝 물러선 일이 입을 문질렀다. 수빈의 잇새로 선혈이 언뜻 발로됐다. 새붉은 입술을 어쩔 마음도 없는 듯 수빈의 먹먹한 시선은 시종 일을 향했다.
124 이름없음 2023/11/03 16:19:03 ID : mGtunCnPdwp 0
“너 왜 돌아왔는지 알 바 없어. 아니, 이젠 알고 싶지도 않다. 지쳤어. 4년 내내 너만 신경 쓰며 사느라. 몰랐는데 안 보일 때가 나았네 너는. 앞에 있으니까 체한 것 같고.”
125 이름없음 2023/11/03 16:19:14 ID : mGtunCnPdwp 0
생득적인 기질이었다. 느꼈다면 반드시 뱉어야 하는 것. 어리숙한 시절에야 삼켰다 앓았지만 성년은 그러한 과도기보다 단단했다. 난사되던 물길이 기어코 자리를 찾았다. 스물둘의 우리는 해연이었다. 네 번의 계절은 불가해를 키웠으므로.
126 이름없음 2023/11/03 16:19:39 ID : mGtunCnPdwp 0
“내 손으로 매듭도 못 지어서 내내 헤맸어. 너는 네 말만 전하면 다냐? 그러면 차라리 꺼내지 말지 왜. 평생 숨기고 사는 건 또 싫었어? 그래서 몰래 꺼내고 들키니까 튀고. 너만큼 회피형이 또 없어, 등신아. 남겨진 사람은 알 바도 아니라는 거지.” “… 그때는, 내가.” “변명 듣고 싶어서 하는 말 아니거든? 나는 너랑 다르게 떳떳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냥 씹으면 되는 너랑 굳이 이렇게 얼굴 보는 건 화풀이 겸 매듭이라고.”
127 이름없음 2023/11/03 16:19:56 ID : mGtunCnPdwp 0
말마따나 씹으면 되는 새끼랑 말도 섞고 입도 섞은 건 어떠한 확신. 맞물릴 때 허공에서 얽혔던 투명한 홍채에 깃든 애정의 반증.
128 이름없음 2023/11/03 16:20:04 ID : mGtunCnPdwp 0
“그딴 식으로 살지 마, 수빈아.”
129 이름없음 2023/11/03 16:20:12 ID : mGtunCnPdwp 0
향수는 향수로만 남기고자 했다. 사 년의 공백에도 여전한 감정을 확신한 순간. 그러니 이번에는 네가 앓을 차례라고.
130 이름없음 2023/11/05 10:31:08 ID : s1a1jBBBBun 0
문장 진짜....개이쁘다........사랑해
131 이름없음 2023/11/05 15:39:03 ID : 62L866mK5e1 0
이번엔!!!! 네가!!! 앓을 차례라고...! 문장 개 고자극 미쳤나봐
132 이름없음 2023/11/06 17:36:45 ID : s1a1jBBBBun 0
학창시절 일이 볼수록 유죄다 맛나맛나아맛나
133 이름없음 2023/11/06 21:29:26 ID : 5Qq2JXxPa09 0
이렇게 무수한 감상이 쏟아질 줄 몰랐는데... 내내 글 쓰면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날이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오늘도 내일도 재미있게 읽어 줘야 돼
134 이름없음 2023/11/06 21:29:42 ID : 5Qq2JXxPa09 0
“다시는.”
135 이름없음 2023/11/06 21:29:51 ID : 5Qq2JXxPa09 0
그리고 불현듯 자문했다. 여기서 종점인가.
136 이름없음 2023/11/06 21:30:07 ID : 5Qq2JXxPa09 0
고별은 응당 무 자르듯 단칼이어야 옳다. 적어도 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도 발신자의 측면에서는 더더욱. 함축된 첨예한 비수들을 지수빈이라면 필히 이해했을 터였다. 종내 어떠한 필연마저 느껴졌다. 오늘은 묵은 유물을 청산하는 날. 그리하여 내일로의 걸음을 시원하게 뗄 수 있도록.
137 이름없음 2023/11/06 21:30:16 ID : 5Qq2JXxPa09 0
그렇게 제1보를 딛은 순간, 팔이 휘청하는 것은 누구의 악력인가.
138 이름없음 2023/11/06 21:30:22 ID : 5Qq2JXxPa09 0
“…… 제발.”
139 이름없음 2023/11/06 21:30:36 ID : 5Qq2JXxPa09 0
잡힌 곳이 뜨끈했다. 문자 그대로 불쾌한 온습도였다. 몰랐는데 너 다한증 있었니. 의문할 새 없이 신체가 돌려세워지고 묶였다. 수빈이었다. 끌어안다는 표현이 어긋나리만치 절박했다.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 자조는 그 섬세하지 않은 동작에 궐기한 풍랑이 기여했다. 일은 덴 듯이 움칠대다 화급히 다른 마음을 먹었다. 첫 생각은 악력이 무슨 사진 찍다 셔터 부수는 거 아닌가. 잇따른 건 얘 키가 더 컸나. 그리고 최후는….
140 이름없음 2023/11/06 21:30:45 ID : 5Qq2JXxPa09 0
“조금만 더 있다 가….”
141 이름없음 2023/11/06 21:30:55 ID : 5Qq2JXxPa09 0
아, 우는구나.
142 이름없음 2023/11/06 21:31:04 ID : 5Qq2JXxPa09 0
이건 나 때문이야? 내 어디가 널 아프게 했어? 애보다 광대한 증? 함축된 고별사? 그렇다면 급소를 찔린 거지. 네 급소는 4년 후에도 여전히 거기구나. 비로소 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혹은,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143 이름없음 2023/11/06 21:31:12 ID : 5Qq2JXxPa09 0
후자라면 넌 진짜 개새끼시발새끼좆같은십새끼, 전자라면 직선인 마음이 둘.
144 이름없음 2023/11/06 21:31:24 ID : 5Qq2JXxPa09 0
수빈은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채 얕게 호흡했다. 역시 버릇은 수정되지 않는다는 명제가 정립됐다. 잡힌 팔목보다 더한 습도가 왼쪽 어깨에 내려앉았다. 한 뼘은 더 큰 체구가 간헐적으로 들썩였다. 사실을 내자면 조금 측은하고 많이 통쾌했다. 와중에도 가지 말란 소리를 비트는 심산이 미웠다. 조금만 더 있다 가라니. 그럼 내가 감긴 팔을 풀고 문간을 딛는 순간 영원히 작별이야. 넌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145 이름없음 2023/11/06 21:32:28 ID : 5Qq2JXxPa09 0
수동 측정 펄스 100. 아직도 이렇게나 좋아하면서.
146 이름없음 2023/11/06 22:36:49 ID : 5Qq2JXxPa09 0
“지수빈.” “…….” “똑바로 말해. 가지 말라는 건지, 조금만 있다 가라는 건지.”
147 이름없음 2023/11/06 22:36:58 ID : 5Qq2JXxPa09 0
수빈이 고개를 들었다. 마침내 헤아릴 수 없이 얽히곤 했던 시선을 마주했다. 수빈은 저 눈을 알았다. 색소 옅은 담갈색 홍채. 깃든 기의가 투명히 읽히는 강직하고 곧은 사람의 눈을.
148 이름없음 2023/11/06 22:37:07 ID : 5Qq2JXxPa09 0
이윽고 반추했다. 이미 열일곱에 만개한 애정에 관하여.
149 이름없음 2023/11/06 22:40:47 ID : 5Qq2JXxPa09 0
명도 높은 기억이었다. 여름의 색채는 매양 엇비슷해 보는 눈을 피곤하게 했다. 교시는 아마도 이동 수업. 칠판에 비뚜름히 쓰인 행선지를 읽다 문간을 나섰다. 교실 소식도 모를 만큼 형성되지 못한 관계는 익숙했다. 딱히 그 사실이 수빈을 죽이진 않았다. 인류와 내가 상충하는 기질이 있나 보지. 날 적부터 기민하여 탐나지 않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다만 차분하고 정가한 것에 이끌렸다. 예시로는 무생물. 카메라. 필름에 박제된 적막 그런 것 따위.
150 이름없음 2023/11/06 22:42:27 ID : 5Qq2JXxPa09 0
진보적 시대에 앤티크를 추구하는 생명은 도태될까. 아니라고 확답할 수 있겠다. 까닭은 진보적 갈애를 머금었기에.
151 이름없음 2023/11/06 22:46:04 ID : 5Qq2JXxPa09 0
이동 중에 같은 반 애를 봤다. 일방적 시선이었다. 수빈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걘 반대로 갔다. 신경 끄려고 했다. 5층에 머무른 20인승 기계를 기다리는 데에 지치기 전까지는. 진작 반에 처박힌 걔는 뭘 하는지 도통 나오지 않았다. 맞다 나오면서 뒷문 안 잠갔을 텐데. 외치기도 귀찮았고 미약한 호기심이 대가리를 치들었으므로 직접 거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다르자 창 너머로 걔가 보였다. 텅 빈 교실에서 눈길에 운동장을 적막하게 담는 걔가.
152 이름없음 2023/11/06 22:51:16 ID : 5Qq2JXxPa09 0
익몰한 시체를 발견한 기분. 하필 최초 신고자가 나일 수밖에 없는 부조리하고 귀찮은 일에 휘말린 듯한 불안. 찝찝한 기의를 해소하려 재게 걸음을 놀렸다. 기다리기도 귀찮아서 두 계단씩 뛰어 이동 수업으로 들어갔다. 종 치기 전에 돌아온 걔는 언제 죽었냐는 듯 시종 웃고 웃겼다. 난사되는 대화에서 이름을 건져 냈다. 유일. 드물게 거개에서 걔 좋은 애지 호평받았다. 지척에야 사람이 무수했고 일관되게 시끄러웠다. 활발하게 잘린 머리칼과 웃음기 가득한 눈망울. 진작 다른 영역으로 에둘러 선 그었다. 다만 이따금 의문할 뿐이었다. 너 그날 뭐에 숨이 막혔어? 왜 익사한 건데?
153 이름없음 2023/11/06 22:52:27 ID : 5Qq2JXxPa09 0
여름의 끝, 우연에 의거해 시선이 맞물리고야 직감했다.
154 이름없음 2023/11/06 22:52:36 ID : 5Qq2JXxPa09 0
그때의 너를 필름에 박제하고 싶다.
155 이름없음 2023/11/08 12:31:56 ID : RDxSGtAnXte 0
그게 여타의 애정임은 계절이 순환하고야 깨달았다. 가치를 부여하니 전보다 곱절은 눈에 걸렸다. 잦지 않아도 이따금 일은 사라졌고 수빈은 공석을 보며 어렴풋이 동향을 추측했다. 그렇게 해가 돌았다. 봄의 초입에 내걸린 새 학년 명렬표엔 이름이 나란했다. 일방적 시선이 한 학년을 웃도는가 싶었다. 외사랑의 입장이라면 과연 호사인가. 의문하며 낯선 기의를 감각했다. 일이 불쑥 말을 붙이기 전까지는.
156 이름없음 2023/11/08 12:32:13 ID : RDxSGtAnXte 0
걔의 화법은 능숙하고 비약적이다. 일견으로 면식 없던 관계도에 선을 그을 정도였다. 애정이 가시적이라면 저 애는 필시 선천이겠구나. 짧은 대화를 매듭짓고 팔랑이며 떠난 일을 복도 끝의 친구가 채근했다. 일방 통행을 단숨에 쌍방으로 돌릴 희망을 엿본 찰나. 장벽 없어 사랑스럽던 일은 만민에게 평등했다. 그리하여 거슬렸다. 채근하던 소음도, 그 소음의 근원도.
157 이름없음 2023/11/08 12:32:32 ID : RDxSGtAnXte 0
네가 나한테 유일하면 좋겠어. 너는 나에게만 유일하면 좋겠어.
158 이름없음 2023/11/08 12:32:40 ID : RDxSGtAnXte 0
문제는 그 애의 사랑이 광막하다는 거였다. 그 작은 몸에 얼마의 애정이 휘도는지 가늠도 어려웠다. 자각하면 불유쾌가 단전에서 치솟았다. 곁을 차지하고도 그랬다. 팔랑이는 손, 시혜적인 웃음, 그런 것들이 무상하리만치 창생에게 동등해서. 이쪽이 제일임을 익히 알아도 걔를 이루는 모든 것을 탐내지 않을 수 없어서. 가장 내세울 수 있는 반반한 무기로 재차 마음을 확인하곤 했다. 어쩔 수 없잖아. 날 적부터 원한다면 독식하는 성미였으므로.
159 이름없음 2023/11/08 12:32:57 ID : RDxSGtAnXte 0
“난 너만 있으면 돼.” “…….” “왜 넌 나만 있으면 안 돼?”
160 이름없음 2023/11/08 12:33:04 ID : RDxSGtAnXte 0
잠든 뺨을 찌르며 의문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161 이름없음 2023/11/08 12:33:13 ID : RDxSGtAnXte 0
분명 비틀린 감정이다. 수빈은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꺼낼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는 말이다. 만듦새가 조악했고 형상이 저속했다. 정가한 네가 사랑스럽되 내 사랑은 사랑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러한 낭만의 틀에 붓기에 죄책감이 따랐다. 다만 렌즈 너머의 일을 볼 때면 함께 출사하는 상상을 했다. 분명 박제된 걔는 어느 명소보다 찬란할 테니 그 말만은 언젠가 건넬 심산이었다.
162 이름없음 2023/11/08 12:34:14 ID : RDxSGtAnXte 0
그리고 삼키지 못해 고해하던 10월의 아침. 잠들지 않은 일을 두고 수빈은 도망쳤다.
163 이름없음 2023/11/09 15:47:21 ID : RDxSGtAnXte 0
날조한 명목에 본의는 가려지는가. 적어도 그 눈이라면 그렇지 않을 테다. 끝을 상정한 언어들에 내처 이해가 따르길 기도했다. 의도는 불순하나 그 눈에는 불결로 비치지 않길 바라며. 제발. 수빈은 거듭 되뇌었다. 타국에선 여명이 요원했다.
164 이름없음 2023/11/09 15:47:41 ID : RDxSGtAnXte 0
캐나다 영주권자는 부모 중 모였다. 고국을 등지고도 하나뿐인 피붙이를 익애하여 건너오라 종용했다. 마침 도피처를 요하던 수빈에겐 기회였다. 세상 사람 다 죽고 둘만 남아 사랑하면 좋겠다는 뭔 미친 개싸이코 같은 말을 어물쩍 넘기기 적합한. 애당초 개싸이코 같은 걸 아니까 도망친 거였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야. 언어가 감퇴한 것처럼 반복했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야 걔가 남한테 주는 애정 한 자락 못 견뎌서 저주나 뱉어 놓은 주제에….
165 이름없음 2023/11/09 15:48:12 ID : RDxSGtAnXte 0
그런데도 내가 너한테 지은 죄가 없어?
166 이름없음 2023/11/09 15:48:52 ID : RDxSGtAnXte 0
“가지 말라고 하면 안 되잖아.” “야.” “그래도 돼? 내가? 그때, 그렇게 버리고 갔으면서. 사람이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167 이름없음 2023/11/09 15:49:02 ID : RDxSGtAnXte 0
귀국은 너 이제 슬슬 보고 싶지 않겠니 하던 모친의 영문 모를 권유. 지레 찔려 의중을 되물었다. 가벼운 어조로 답이 따랐다. 한국 보고 싶지 않겠냐구. 다들 그래 와서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고선 앓지. 게다가 넌 사 년째 안 갔잖아. 다들 이맘때쯤이면 보고 싶어 못 견디던데.
168 이름없음 2023/11/09 15:49:15 ID : RDxSGtAnXte 0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발을 못 떼나, 내 사랑은.
169 이름없음 2023/11/09 15:49:28 ID : RDxSGtAnXte 0
“근데 가지 말라고 하고 싶어.” “…….” “말하면… 안 갈 거야? 이번엔 내가 기다리면 되는 거야?”
170 이름없음 2023/11/09 15:49:41 ID : RDxSGtAnXte 0
만나길 바랐다. 반면 얼굴 맞댈 자신도 없었다. 공항에서 잡은 택시에 거처 대신 학교 주소를 댄 건 해묵은 충동. 4년 전 뜰 때부터 실은 이러고 싶었다는 미약한 본의. 계절이 네 번 돌았고, 나 없는 졸업식에 네가 갔을 테지만, 그럼에도 오늘 네가 여기 있길 바란다고. 이것 또한 날 적부터 불온했던 욕심이라고.
171 이름없음 2023/11/09 15:49:51 ID : RDxSGtAnXte 0
“4년 동안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172 이름없음 2023/11/09 15:49:58 ID : RDxSGtAnXte 0
일이 가는 한숨을 냈다. 수빈의 눈가에 쉴 틈 없이 매단 방울을 쓸었다.
173 이름없음 2023/11/09 15:50:07 ID : RDxSGtAnXte 0
“넌 뭐가 그렇게 어려워.” “…….” “따라해 봐. 가지 마.” “가지 마.” “좋아해.” “좋아해….”
174 이름없음 2023/11/09 15:50:49 ID : RDxSGtAnXte 0
반복하는 사이로 일의 팔을 쥔 악력이 느슨해졌다.
175 이름없음 2023/11/09 15:51:01 ID : RDxSGtAnXte 0
“너는 이 두 마디를 못 해서 나 없이 살았던 거고, 나한테는 말할 기회도 안 줬던 거고. 그래서 내가 가을이면 거지 같은 기분 누르며 살게 했지. 네가.”
176 이름없음 2023/11/09 20:47:11 ID : 645hs01clbe 0
(너 무 좋 아 요......)
177 이름없음 2023/11/09 21:57:23 ID : 5Qq2JXxPa09 0
내 취향만 담은 글이라 혼자 재미있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잦았는데 고마워 힘이 된다 그것도 엄청
178 이름없음 2023/11/10 08:19:14 ID : Y8kr9a8rtbc 0
볼 때 마다 웃어서 잇몸 말라버렸어! 연참으로 책임져!
179 이름없음 2023/11/10 09:25:18 ID : vba9AparapP 0
화려한 수식어로 범벅된...감정이 휘몰아치는...하나의 시 같은.....손대면 바스라질 거 같은 물기 가득한.......이런 글 너무 좋음...
180 이름없음 2023/11/12 15:01:21 ID : 5Qq2JXxPa09 0
나도 이 레스 볼 때마다 웃어서 잇몸 말랐어 어떡하지 책임져 줘야겠다 네가...
181 이름없음 2023/11/12 15:04:47 ID : 5Qq2JXxPa09 0
소중하게 읽어 준 것 같아서 내내 적어 준 레스가 기억에 남았어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드물고 특별한 일이지 사랑스러운 감상 달아 줘서 고마워 쓸 때마다 떠올라서 더 행복하게 썼어
182 이름없음 2023/11/12 15:05:22 ID : 5Qq2JXxPa09 0
문득 지척이 숨을 죽였다. 해가 나고 있었다.
183 이름없음 2023/11/12 15:05:30 ID : 5Qq2JXxPa09 0
“동갑이면 동갑답게 굴어. 연하랑 대화하는 기분 들게 하지 말고.” “응….” “여전히 좋아해?”
184 이름없음 2023/11/12 15:05:38 ID : 5Qq2JXxPa09 0
맞댄 시선에 열기가 번졌다. 풍랑이 그쳤다. 곱게 여기던 눈매가 습한 확신으로 휘었다.
185 이름없음 2023/11/12 15:05:45 ID : 5Qq2JXxPa09 0
“여전히 사랑해.”
186 이름없음 2023/11/12 15:05:51 ID : 5Qq2JXxPa09 0
126144000의 별리였다.
187 이름없음 2023/11/12 15:05:59 ID : 5Qq2JXxPa09 0
네가 기꺼워한 감정이 명명됐다. 그러므로 더는 의문하지 않았다. 수없는 기의가 범람하고 빚어진 형상을 사랑이라고 정의해 준다면.
188 이름없음 2023/11/12 15:06:07 ID : 5Qq2JXxPa09 0
“그럼 됐다. 4년 떨어져 있었다고 장난 아니게 어색하네.”
189 이름없음 2023/11/12 15:07:18 ID : 5Qq2JXxPa09 0
부드럽게 팔을 떼어 낸 일이 우산을 접었다. 일견 예사로워도 귀 끝이 온통 새붉었다.
190 이름없음 2023/11/12 15:07:27 ID : 5Qq2JXxPa09 0
“완전히 귀국이야, 아니면 기착이야?” “귀국이야. 이젠 안 나가.” “다 정리하고 왔어?” “지금 정한 건데.” “뭐?”
191 이름없음 2023/11/12 15:07:36 ID : 5Qq2JXxPa09 0
일이 황당하게 수빈을 돌아봤다. 눌러앉을 계획치곤 부피 적은 캐리어가 참을 방증했다.
192 이름없음 2023/11/12 15:07:49 ID : 5Qq2JXxPa09 0
“수빈아, 내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다짜고짜 결혼부터 꺼내면 어떡하냐? 외국은 무드 중시하지 않아? 너 사실 한국 어디 박혀 있다 온 거지?” “겠어? 씹…. 네가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딜 나가.”
193 이름없음 2023/11/12 15:08:17 ID : 5Qq2JXxPa09 0
일순 손끝이 찌릿했다. 말단에서 피어난 전류는 이윽고 전신을 휘돌았다.
194 이름없음 2023/11/12 15:08:33 ID : 5Qq2JXxPa09 0
“야, 네가 그러니까, 좀….” “좀?” “… 됐다. 외국 물 헛으로 먹고 온 건 아닌가 보네.”
195 이름없음 2023/11/12 15:09:29 ID : 5Qq2JXxPa09 0
격조한 기간이 길었다. 사 년의 틈은 우리가 모를 서로를 키우기 적절했다. 감정이 상통한들 분명 어긋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저것 보라지 지금도 낯간지러운 멘트 치는 모습하며 한 뼘은 더 자란 키하며 허리를 언뜻 스치는 머리칼까지. 눈에 설익었고 나아가 심란했다.
196 이름없음 2023/11/12 15:09:36 ID : 5Qq2JXxPa09 0
“물어볼 거 있는데.” “응, 뭐?”
197 이름없음 2023/11/12 15:09:42 ID : 5Qq2JXxPa09 0
잇따라 좁혀진 거리는 온전한 수빈의 의지였다.
198 이름없음 2023/11/12 15:09:49 ID : 5Qq2JXxPa09 0
“몇 명 만났어?”
199 이름없음 2023/11/12 15:09:57 ID : 5Qq2JXxPa09 0
다시 시선이 맞물린 순간, 그 눈에 빼곡히 들어찬 건 익히 아는 기의라.
200 이름없음 2023/11/12 15:10:14 ID : 5Qq2JXxPa09 0
“…… 어?” “나보다 예뻤어?”
201 이름없음 2023/11/12 15:10:22 ID : 5Qq2JXxPa09 0
찰나에 격세감 대신 오롯한 고양감이 범람했다.
레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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