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4/09/20 15:54:04 ID : anxCmHDxVat 0
오늘은 원래 과에서 조를 나눠 현장 조사를 가는 날이였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를 보며 일찍 나갈 준비를 했고 씻고 아침을 먹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지만.. 난 여전히 현관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2 이름없음 2024/09/20 16:00:20 ID : anxCmHDxVat 0
이유는 간단하다. 대인기피증 때문이다. 난 사람을 만나는게 너무나 무섭다. (이유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대학을 다닌다는 핑계로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사실 학교에 간 날은 손에 꼽는다. 실제로 1학기 때 출석 미달로 학사경고를 먹기도 했다. 내가 밖에 나갈 수 있는 날은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게 낀 날의 새벽 뿐이다. 그마저도 누군가와 마주칠 때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머릿 속은 어지럽고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리는게 느껴진다. 고작 거리를 다니는 것 만으로도 이러니 대학에선 어떨까? 오히려 멀쩡하다. 아니 이상할 정도로 침착해진다.
3 이름없음 2024/09/20 16:16:45 ID : anxCmHDxVat 0
사람이 많은 곳으로 들어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려 노력했다. 마음 속으로 계속해서 내가 아닌 가상의 인물을 되새김질해가며 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상상하는 인물은 다양하다. 때로는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 또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와 같은 감정적인 요소가 결여된 존재를 상상하고 어떨 때는 사교적이고 다정하며 항상 웃는 인물부터 때론 무생물인 돌과 같은 것까지 상상하는 존재는 다양하다. 계속해서 자기암시를 하며 내가 그들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필연적으로 사람을 마주쳐야 되는 상황이 생기면 항상 이런 식으로 모면해왔다. 이런 해결책은 내 감정적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지만 3가지의 문제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깊은 교류를 할 수 없다는 것이였다. 항상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내세우니 그들은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론 진정한 친구는 물론 연인 또한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친구와 연인이 없던 것은 아니다. 난 스스로 인연을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인연을 매몰차게 거절하지도 못한다. 이런 방식으로 난 연인과 친구가 생겼었다. 아마 인복은 타고난 모양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감정의 교류를 견디지 못한 그들은 조금씩 떠나갔고 결국 난 그들에게 상처만 남겼다. 그리고 이젠 밖에 나가질 못하니 작은 접점조차 생기지 않아 외톨이가 된 것이다.
4 이름없음 2024/09/20 16:21:26 ID : anxCmHDxVat 0
두번째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밖에 나갈때 마다 연기를 할려 하니 이젠 뭐가 내 진짜 모습인지 모르겠다. 평소처럼 지낼려 해도 다른 모습이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도 생겼다. 심하게 과감해지거나 갑자기 냉소적이게 변하는 등 감정의 기복 또한 심해졌다. 난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이 다음 단계로 가면 정신분열증이나 다중인격이 아닐까 싶다. 병원도 가봤지만 모순적이게도 병원 또한 나에겐 '밖'이다. 그곳에 가면 또다른 내가 튀어나왔고 정작 나는 상담을 받을 수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래의 나를 꺼내볼려 해도 남들 앞에선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아니, 거의 불가능했다.
5 이름없음 2024/09/20 16:27:08 ID : anxCmHDxVat 0
세번째는 상황이 전혀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내 상처를 곪게 놔두는 것과 같다. 오히려 썩히는 행위에 가까운 수준이다. 매 끼니를 챙기고 운동을 하고 밖에 나가 뭔가를 해봐도 정작 나는 바뀌는 것이 없다. 그저 또다른 내가 생겨날 뿐이다. 내가 많아질 수록 나는 정신적으로 견디기 버거워진다. 요즘 들어 과거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순간도 많아졌다. 잠깐 멍을 때렸을 뿐인데 꿈을 꾼 것 처럼 그 시절에 직접 다녀온 기분을 느낀다. 실제로 눈 앞에 그 장면이 보이는 듯 아른 거리기도 하고 말이다. 상상은 나에게 제일 행복했던 시절과 제일 불행했던 시절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그건 날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인데도 난 그것에 전부 반응하며 침울해한다. 그냥 미쳐버리는 것이 더 편할 지경이다.
6 이름없음 2024/09/20 16:30:24 ID : anxCmHDxVat 0
딱 한 걸음만 딱 한 박자만 밀리면 좀 편해질 것도 같다. 차라리 가족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이 전부 가족들 때문이니 말이다. 몹쓸 생각이긴 하지만 가족만 없다면 난 해방된다. 도덕적 관념과 같은 것은 이젠 내 안엔 없다. 혼자가 된다면 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 뛸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폭행할지도 모르며 혹은 자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인격이 내 자리를 대신해줬음 좋겠다.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나는 상관치 않을 것이다. 더 나빠질 것도 없다.
7 이름없음 2024/09/20 16:36:17 ID : anxCmHDxVat 0
내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건 나 뿐이다. 어쩌면 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 도 있다. 머리가 아프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주변이 시끄럽다. 내 존재 자체가 의심스럽고 의구심이 든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어릴 땐 사람마다 각자 정해진 역할이 있을거라 믿었다. 그게 운명이라는걸 나이를 먹은 후에야 알았고 나 또한 언젠가 운명을 찾게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딴건 없었다. 이런게 내 운명이면 죽는게 나을 듯 싶었다. 그래서 믿지 않기로 했고 아마 그때 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뭘 해야할지 모르고 길을 잃어버린게.. 극복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이젠 영영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끝장난거야
8 이름없음 2024/09/20 16:38:04 ID : anxCmHDxVat 0
잠이 온다.. 자고 일어난 후에 글을 이어 쓰겠다. 아마 3~4시간 쓰러져있지 않을까 싶다. 안좋은 생각을 할때면 항상 졸리고 그 정도 자고 일어나야 개운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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