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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늘 똑같았다.
햇빛도, 어둠도, 계절도 없는 곳.
고요하고, 숨 막히도록 정적이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율은 작은 방 한가운데,
나무 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등받이도 없는 자리.
의자도, 담요도, 사람도 없이.
가끔은 자신이 아직 ‘사람’인지조차 확신이 들지않았다.
처음엔 울기도 했었다.
누군가 불러주기를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모든 소리, 냄새, 감촉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젠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전부였다.
멍하니, 문을 바라본다.
굳게 닫혀, 누구도 들어오지 않는 문.
그 문이 열리는 꿈을 백 번도 넘게 꿨다.
그리고 그날,
꿈처럼, 정말로 문이 열렸다.
삐걱.
낯선 발소리.
짐을 끌고 들어온 남자.
하율은 그를 바라보았다.
말도, 움직임도 없이, 그저 조용히.
심장이 없는데,
심장이 뛰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을…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지도 몰랐다.
“왔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말했다.
“이제… 나 혼자 아니야.”
그녀는 미소 지으려다 멈췄다.
웃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그 남자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커튼을 열고, 짐을 정리하고, 물을 마셨다.
평범한 하루의 시작.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는 일상.
하지만 하율에겐—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짐을 전부 옮기고 나니, 조용한 방 안이 낯설게 느껴졌다.
단단히 닫힌 창문, 벽 한쪽으로 기대놓은 커튼,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
진우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원룸치고는 조금 넓은 편이었다.
가구가 하나도 없는 탓일까.
아니면—
어딘가…
누군가 방 안 어딘가에 있는 기분 때문일까.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피곤해서 그래,
혼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낯설어서 그럴 거야.
그렇게 말해도,
가끔 느껴지는 시선은
점점 무시하기 힘들어졌다.
처음엔 어깨 너머.
그다음엔 방구석 어딘가.
이제는 바로 등 뒤에서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느 날 밤,
진우는 물을 마시려고 일어나며 불을 켰다.
탁.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멈췄다.
그 순간,
방 한구석에 뭔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그림자.
진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도 줄였다.
그러자 그것도 가만히 있었다.
그림자.
움직이지 않지만, 존재감은 점점 커져갔다.
몇 초쯤 그렇게 서 있었을까.
진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숨을 내쉬고, 다시 떴을 때—
아무도 없었다.
그는 괜히 쿡쿡 웃었다.
“피곤했나 보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다시 불을 끄기 전,
진우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오늘은 달이 없었다.
흐리고, 어두운 밤이었다.
그는 무심히 커튼을 닫았다.
하지만 문득,
닫히는 틈 사이로—
창백한 무언가가 그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진우는 커튼을 천천히 치고,
고개를 숙인 채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희미한 숨소리가 아주 작게— 들린 듯했다.
진우는 며칠째 밤마다 깨고 있었다.
누군가 발밑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
자꾸만 커튼이 절반쯤 열려 있는 창문.
늘 닫아두고 자는데.
물도 자주 줄어들었다.
분명 어젯밤에 냉장고에 있던 생수병,
내용물이 절반쯤 사라져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귀신이면 어때.
해를 끼치진 않잖아.
“차라리 룸메이트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진우는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는 감각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느 주말, 친구 성훈이 놀러 왔다.
라면을 끓이며, 둘은 늘 그렇듯 시시한 얘기를 나눴다.
“야, 근데 너 혼자 사는 거 맞냐?”
진우는 젓가락을 휘저으며 웃었다.
“왜, 갑자기 무서운 소리 하냐.”
“아니 진짜로. 뭔가 있어. 기분이 이상해.”
성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둘러봤다.
창가, 책상 위, 그리고 싱크대 쪽.
“라면은 누가 끓였냐?”
“내가. 왜.”
“그럼 물은 누가 올렸는데?”
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냄비에 물을 채운 기억이 없었다.
생수통.
아까는 분명 바닥에 었는데,
지금은 반쯤 비워진채 싱크대 위에 있었다.
“야, 나 지릴것 같으니까 잠깐 편의점 좀 갔다올게.”
성훈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일어났다.
진우는 따라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혼자 남은 방 안을 바라봤다.
정적.
그런데 그 안에—
기묘한 배려가 있었다.
라면이 다 끓기도 전에,
불이 살짝 줄어 있었다.
싱크대 위, 물컵이 알아서 준비돼 있었다.
전기장판은 진우가 앉기 전부터 미지근하게 따뜻해져 있었다.
“……누구냐.”
진우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대답은 없었지만
방 안이 순간 살짝 기뻐하는 느낌을 풍겼다.
그건 기분 탓이었을까.
진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등 뒤의 공기가 조용히 움직였다.
누군가,
아주 가까이에 있는 듯한 기척.
진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물올려줘서 고마워. 잘 먹을게.”
그러자,
살짝, 아주 살짝.
바람처럼 스치는 기운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는 듯했다.
그날 밤,
성훈은 진우의 집에서 묵기로 했다.
정말 무서운 게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럼 같이 자자. 이상한 일 있으면 바로 말하고.”
진우는 웃으며 끄덕였고,
둘은 나란히 거실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새벽 세 시.
성훈은 갑작스런 움직임에 잠에서 깼다.
무언가,
분명히 방 안을 걷고 있었다.
눈을 떴다.
방 안은 어두웠다.
달빛조차 들지 않는 방.
그곳에—
흐릿한 형체가 있었다.
한 여자.
긴 머리.
고개를 숙인 채,
거실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조금씩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눈이 없었다.
아니, 너무 어두워 보이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성훈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 형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진우야.”
그는 속삭이듯 불렀다.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만 옆으로 떨어져 있었다.
성훈은 진우를 흔들며 일으키려 했지만—
진우는 꿈도 안꾸는 사람처럼 깊게 잠들어 있었다.
그 사이에.
그 형체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발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느껴졌다.
바닥이 눌리는 기척.
눈앞까지 다가온 형체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성훈은 비명을 삼킨 채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현관을 나올때,
무언가 옷자락 같은 것이 문틈에 스쳤다.
그리고 문 너머에서,
가볍고 높은, 여자아이 같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그 소리에 깼다.
“성훈아…?”
아무도 없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이불은 뒤엉켜 있었다.
진우는 방 안을 둘러봤다.
느껴졌다.
그 감각.
누군가가 여전히 방 안에 있는 기척.
“…거기 있지?”
진우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공기만 조용히 흔들렸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무섭게만 하진 마.”
다음날 아침.
진우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세면대 위 거울을 본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내 꺼야’
선혈처럼 붉은 글자가,
거울 위에 적혀 있었다.
진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위에 물을 붓고,
수건으로 문질렀다.
붉은 글씨는 뭉개지며 사라졌다.
그 순간—
허공에서 ‘키득’ 하고 웃는 소리.
진우는 몸을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분명히 귀 가까이에서 들렸다.
진우는 오늘도 나를 보고 웃지 않았다.
조금 속상했다.
어젯밤엔 이불을 차내지도 않았고,
이제는 화장실 문도 닫아두고 자고,
가끔은—
내가 바로 옆에 있어도 모른 척 한다.
“알면서 그러는 거지?”
“진우야, 나 다 보여.”
나는 오늘도 그를 바라본다.
침대위에 올라가 무릎을 끌어안고,
진우가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는 얼굴을 조용히 따라한다.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
진우보다 말이 많고,
진우보다 눈치가 빨랐다.
나는 가만히,
그 사람을 관찰했다.
그가 잠들었을 때
나는 조심스레, 아주 천천히—
이불 끝자락을 들어올렸다.
“누구야?”
그가 속삭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우랑은 다르다.
이 사람은 너무 예민했다.
재밌게 반응한다.
그래서—
조금 장난을 쳤다.
천천히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눈을 맞췄다.
그리고—
웃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뛰쳐나갔다.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폭신한 걸 안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아, 재밌어.”
“진우는 왜 저렇게 안 해?”
그가 뛰쳐나간 후
진우가 일어났다.
그는 내 쪽을 향해 말했다.
“거기 있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우는 원래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무섭게만 하진 마.”
조금 서운했지만,
그래도 귀엽다.
아침.
진우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그보다 먼저,
거울에 선물 하나 남겨뒀다.
‘내 꺼야’
예쁘게 썼다.
조금 삐뚤빼뚤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담았다.
진우가 그걸 봤다.
숨이 멎는 듯한 얼굴.
눈이 커졌다.
나는 문 틈 사이로
몸을 반쯤 들이밀고,
그 반응을 바라봤다.
진우는 물을 틀고,
수건으로 글씨를 지웠다.
그래서—
나는 웃었다.
입을 틀어막고,
콧등까지 주름지게 웃었다.
그가 그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재빨리 벽 안으로 몸을 숨겼다.
“후후… 들렸지?”
진우야,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혼자가 아니니까.
이 집에
누가 같이 살아주고 있으니까.
진우는 평소처럼 일어났다.
기지개를 켰다.
세수하고, 밥을 먹고, 양말을 찾았다.
“…또 어디 갔지.”
나는 그가 찾기 전에 양말을 꺼내놓았다.
늘 놓는 책상 모서리에, 가지런히.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말없이 양말을 신었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가 커튼을 열면,
나는 햇살에 번진 그의 그림자 곁에 앉는다.
그가 라면을 끓이면,
나는 뚜껑 안쪽에 서려있는 김을 쐰다.
따뜻한 냄새.
사람 사는 냄새.
진우는 몰랐지만,
그는 내게 하루를 준다.
“고마워.”
나는 중얼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사를,
조금씩,
조금씩 되돌려주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밤이 달을 불러왔다.
작은 창으로
흐릿한 달빛이 흘렀다.
진우는 잠에서 깨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습관처럼 깬 건지.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무언가가 보였다.
커튼이 반쯤 열린 창문,
그 틈 사이로 은은하게 내려오는 달빛 속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창백한 얼굴.
긴 머리.
무릎을 끌어안은 채,
낮게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진우는 숨을 참았다.
그 형체는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자신이 잠들기 전에도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먼저,
낯익음이 스쳤다.
이 감각은
분명 처음이 아닌 듯했다.
진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지도 않았다.
그저 달빛 속의 형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또다시 달이 떴다.
진우는 그 날처럼 커튼을 일부러 열어두었다.
달이 드는 방향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방 안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창가가 아닌,
그의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팔을 무릎에 감고,
천천히 몸을 흔들며 노래 같은 소리를 중얼이고 있었다.
진우는 조용히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녀는 놀라지도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우의 손끝이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스쳤다.
공기처럼 가벼운 감촉.
하지만 분명히 닿았다.
“…넌 누구야?”
진우는 조용히 물었다.
그녀는 조용히 진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등을 바라보며,
입술을 살짝 열었다.
“하율.”
그녀의 목소리는
달빛보다 더 희미하고,
더 정확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율.”
그리고 그녀는,
그의 책상 위에서
조용히 발을 흔들었다.
그모습이,
너무나 쓸쓸해보였다.
“지갑이… 어디 갔지…”
진우는 조용히 혼잣말을 뱉으며 방 안을 뒤졌다.
이틀 전부터 이상하게 뭔가 자꾸 자리를 옮겨 다녔다.
분명 어제는 현관 신발장 위에 뒀는데,
오늘 아침엔 옷장 위에 얌전히 올라가 있었다.
이번엔 서랍장 속,
거기에도 없으면 커튼 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탁.
작은 소리와 함께 지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책상 끝에, 살짝 걸쳐져 있던 모양이었다.
“…여기 있었어?”
진우는 고개를 갸웃하다 말고,
지갑을 들었다.
그 안엔 카드며 신분증이며,
정리되지 않았던 것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언제부터 정리가 이렇게 깔끔했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중얼였다.
“…고마워.”
창가에선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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