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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허물을 벗고🐜비로소🦋 (404)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 위에 얹었다. 다행히 차갑지는 않았다. 미약하게나마 피부 아래의 살아 있는 사람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나를 안심시키는지, 아니면 더 불안하게 만드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병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빌헬름 씨?"
낯설지 않은 목소리다. 웨이스의 언니, 그뤼니에 발데크였다. 토끼를 연상시키는 동그란 눈매는 웨이스와 똑닮아 있었다. 그녀와는 알면식이 몇 번 있었다. 데이트 후 웨이스를 몇 번 데려다주건 날에 짧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필요 이상의 말을 꺼내는 일은 없었지만, 그뤼니에는 웨이스처럼 상냥한 성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아마도 여동생의 소식에 마음 고생을 한 건지, 그뤼니에의 눈가에 그늘이 졌다.
"... 아직도 계셨군요."
""
1. 네.
2. 걱정이 되어서요.
3. 기타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요, 그러다 쓰러지니까."
따뜻하다고 느껴질 만큼 상식적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그뤼니에도,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뤼니에는 잠시 시간을 내었던 모양인지 냉장고에 음료수를 넣어두고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아 병실 문 앞에서 잠시 멈추더니 날 향해 돌아보며 덧붙였다.
"웨이스가 당신 얘기를 자주 했었어요, 좋은 사람이라고..."
문이 닫히고, 다시 병실에는 빛만 남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웨이스를 바라보았다. 내가 보지 않는 사이에 눈을 뜨지는 않을까 해서.
시간은 흘렀다.
그러나 밤은 계속되고 있었다.
밝은 밤이, 끝없이.
... 소개가 늦었다, 누구에 대해서 소개를 해볼까?
1. 나에 대해서
2. 웨이스에 대해서
3. 그뤼니에에 대해서
... 나?
나에 대해 궁금해 할 줄은 몰랐는데....
내 인생을 쥐어짜내봐도 침전물이 몇 남지 않는 변변찮은 생을 살았는지라 무엇을 병기해야 나에 대해서 가장 쉽게 설명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되었다.
우선... 내 이름은 빌헬름 노르베르토 쾨니히이다. 주변 사람들은 빌로 부르니 그리 불러주면 고마울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을 생업으로 삼지만, 베스트셀러는 낸 적 없고, 책을 사랑하지만 좋아하는 장르는 한정되어 있다. ... 외모? 외모도 그리 특색 있는 편은 아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추하지는 않지만, 걸어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을 만큼 대단한 미남도 아니다. 다만 눈매가 날카로워 입을 다물 때엔 화났냐는 물음을 심심찮게 받곤 한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즐기지는 않아 피부는 하얀 편에 속하고, 글을 쓰느라 자세는 구부정하지만, 허리를 펴면 키는 봐줄 만 하다.
나머지는 차차 알아가는 것으로 하자, 다음은 누구에 대해 설명할까?
1. 웨이스에 대해서
2. 그뤼니에에 대해서
사랑은 결핍의 이면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무의식에 내제된 결핍을 복원하고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이며, 그것을 타인에게 덧씌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람의 뇌는 타인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을 확장할 뿐이다. 상대를 이해한다고 믿는 순간조차 우리는 자기 자신을 더 넓은 형태로 확장하여 껴안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웨이스와 나는 무척이나 닮은 존재이다.
웨이스 아멜리아 슈네.
사랑하는 내 약혼녀.
웨이스는 아이들과 있을 때에 비로소 웨이스다워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없을 때의 웨이스는 조용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면, 아이들과 있을 때는 말괄량이 소녀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광원이 없어도 스스로 빛나는 태양처럼 환하고 찬란하게 웃었다.
외모는 마치 동화 같았다.
새하얗고 투명한 피부, 산사나무의 열매처럼 붉은 입술, 흑단 나무를 깎아 만든 머리카락. 신이 공들여 빚은 절대적인 미의 현신까지는 아니었지만, 내 눈에는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특히 티 없이 맑은 푸른 눈동자를 처음 마주했을 땐 숨이 막힐 정도였다. 곁에 있던 친구도 괜히 쭈뼛거리며 괜히 말을 걸어볼 정도였으니, 내 눈에만 예쁜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사랑한 것은 비단 웨이스의 아름다운 외형만은 아니었다.
웨이스는 언제나 자신을 뒷순위에 두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먼저 챙기고, 자신의 감정은 나중에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 깊이 상처받았다.
그 모순이 나를 끌어당겼다.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았고, 그 결핍은 서로의 것과 비슷한 색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웨이스를 사랑했다. 혹은, 웨이스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나 자신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은 같은 맥락으로 귀결된다. 나는 그녀에게서 나 자신을 투사하고 있기 때문에.
웨이스는 지금 잠들어 있다. 먼 옛날 독사과를 한 입 베어물은 공주처럼,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동화에선 왕자의 키스로 일어나던데, 여즉 잠들어 있는 것을 보니 애석하게도 난 그녀의 왕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경찰은 누군가 계단에서 밀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필 마감에 허덕이며 데이트를 미루자고 부탁했던 날에, 그럴 줄 알았다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너에게 달려갔을 텐데.
... 후회는 그만, 이제 누구에 대해 설명해볼까?
1. 그뤼니에에 대해서.
그뤼니에 발데크, 웨이스의 언니이다.
웨이스처럼 흑단처럼 새까만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을 하늘 같은 웨이스의 푸른 눈과는 달리 그뤼니에의 눈은 여름날 햇볕을 듬뿍 받은 잎사귀처럼 진녹색이었다. 구부정하고 자세가 좋지 않은 나와는 달리 허리도 꼿꼿하고, 어깨도 말리지 않았는데 그게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이스와는 무려 17살 차이로, 언니보다는 엄마에 더 가까운 사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가끔 둘의 대화는 통상의 형제보단 모녀에 더 가까울 때가 많았다.
... 그 외에는 아는 게 없어서 기술할 것이 없다. 마른 걸레를 짜내는 것도 생각보단 힘든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지만 아직 나도 먼 것만 같다.
밤새 웨이스의 곁을 지키다가 해가 새로이 뜰 때 쯤에서야 집으로 왔다.
그 사이 비가 왔는지 젖은 풀 냄새가 밤을 깨웠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상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사실은 지금이 아침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평소라면 잘 써졌을 글도 써지지 않았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지금 전화를 걸면 평소처럼 네가 오늘 할 수업에 대해 재잘거릴 것 같은데 애꿎은 음성 사서함 소리만 반복되는 게 참 야속했다.
...
안되겠다, 가만히 있으니 더 미쳐버릴 것 같다. 어디로 가볼까?
1. 병실
2. 웨이스의 집
3. 자주 가던 카페

밖에 다녀오니 확실히 머리가 한 김 식혀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 평온은 현실을 도피함에 있어 수용되는 종류의 안온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확히는 집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자마자 다시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밤은 이미 그늘이 드리웠건만, 나는 불을 켰다. 켜야만 했다. 어둠을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이 턱 막히는 적막이 내 심장을 조여들고 있었다.
오늘도 밤은 밝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샜더니 눈가가 뻑뻑하다. 지금은 뭘 할까?
1. 웨이스의 병실로 향한다.
2. 도서관으로 간다.
3. 웨이스의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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