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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18/03/03 15:43:07 ID : g42Ns3CmNBy
[같은 말] 잡담스레만 덩그러니 하나 있으니 허전하고 무엇보다 외로워보여서 세워보는 스레
이름없음 2018/03/03 15:51:46 ID : g42Ns3CmNBy
일단 내가 찾아본 선에서 국내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났다고 보이는건 인천 굴포천 마대자루 안에서 시신이 발견된 일. 2016년 12월 8일에 마대자루 안의 신원불명 시체가 발견된 사건이라네. 피해자의 신원자체도 불명이고, 언제 죽었는지도 추측이 안 가는 사건이래.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시신이 발견된 인근에 설치된 CCTV 화면에 자전거를 타고 마스크를 한 채 나타난 남성이 발견됐지만, 신원 파악을 못 했다는거 같아.
이름없음 2018/03/03 16:00:32 ID : g42Ns3CmNBy
그리고 미제사건 하면 역시 잭 더 리퍼를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 없지. 근데 잭 더 리퍼는... 음... 조금만 검색해도 매우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네.
이름없음 2018/03/03 20:37:13 ID : 7arapVfcE3z
1585년도에 영국은 로어노크 섬에 식민지를 하나 꾸려놓았어. 남자 90명, 여자 17명, 어린이 11명 정도의 소규모 식민지였어. 이제 식민지를 차렸으니 본토와 식민지를 왕복하면서 보급을 했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겨서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었어. 그러다가 겨우겨우 사략함대를 통해 보급을 진행하려는데... 여기까진 그냥 불운한 식민지의 이야기지만, 개척자가 돌아왔을 때 식민지 내의 모든 사람들은 전부 사라져있었어. 그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흔적도, 그렇다고 전투가 일어났던 흔적도 전혀 없었어. 근데 딱 하나, 마을의 울타리에 새겨진 '크로아토안' 이라는 글자만 수상스럽게 남아있을 뿐이었어. 개척자는 식민지인들이 크로아토안 섬으로 이주했다는 뜻으로 이해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수색을 진행하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어. 결국 밝혀진 건 없었어. 식민지인들이 정말 사라져버린 건지, 크로아토안 섬으로 이주한 건지, 원주민에게 동화되었는지, 죽어버린 건지... 가설만 난무하고 있을 뿐이야.
이름없음 2018/03/03 23:10:33 ID : 9zgjbhbCo4Z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실종사건 지금이야 디시발 고인드립 등으로 인해 후임인 김재규가 유명하겠지만 그 전에 중앙정보부 통칭 '중정'은 일명 남산의 돈가스, 김형욱 부장이 이끌었지. 저 돈가스라는 별명도 워낙에 체구가 비대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나봐. 김형욱 부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가진 중앙정보부장을 무려 6년 8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맡아왔어. 그 6년 8개월 동안 김형욱 부장은 청와대의 '그분'을 위해 헌신적인 충성을 보였지. 그리고 '그분'은 헌신짝처럼 김형욱 부장을 버렸고 김형욱 부장은 김 의원이 잠시 되었다가 10월 유신으로 인해 얼마 못 있어 국회에서도 쫓겨나게 되었어. 1973년 김형욱은 대만으로, 그 때 말로는 '자유중국'으로 출국한 뒤 미국으로 망명을 했어. 1977년 미국에서 코리아게이트라고 한미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그분'과 그의 수하들의 치부가 낱낱이 밝히는 사건이 있었는데 당연히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형욱은 '그분'의 밑에 있었기에 미국 의회 하원의 프레이저 청문회로 나가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폭로하기 시작했어. 그뒤 1979년 김형욱은 고국의 중앙정보부 윤일균 차장과 접촉했어. 윤일균이야 당연히 조국을 배신하고(?) 치부를 낱낱이 폭로하는 전 중정부장 김형욱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았겠지. 윤일균은 김형욱에게 회고록 고료를 비싸게 쳐주겠다는 감언이설로 프랑스 파리로 가게 했어. 그리고 1979년 10월, 프랑스에 도착한 김형욱은 소리소문없이 실종하게 되었어. 이후에 1991년 법원에 의해 법적인 사망처리가 되었지만 항간에 떠도는 많은 소문에는 김형욱은 파리에 도착한 뒤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살해되었을 거란 의견이 많지. '그분'이 사는 청와대로 배달되어서 '그분'의 카빈 소총에 맞아서 죽었다는 설 폐차기나 양계장 믹서기에 갈려서 죽었다는 설 아니면 스위스 등지에서 살해된 뒤 시신이 한국으로 배달되었다는 설 등등이 있지만 명확히 밝혀진 게 없지
이름없음 2018/04/19 14:18:57 ID : Ap88pgo6lAZ
이런 거 좋아!
이름없음 2018/05/07 04:34:31 ID : g42Ns3CmNBy
미스터리판인데 괴담판감과 오컬트판감 글만 올라와서 갱신하는 세계의 미제사건 이야기
이름없음 2018/11/22 18:00:30 ID : oFctuoHvjs1
우리나라는 문경십자가살인사건도 유명하지
이름없음 2018/11/24 23:21:56 ID : o3RDzhAmJV8
인정이거 진짜 소오오오름...
이름없음 2019/02/15 10:56:54 ID : 2r9a4Nuq0mm
김포공항 루이비통 가방이야기는 흔한가
이름없음 2019/02/15 10:58:04 ID : 2r9a4Nuq0mm
1985년 김포 공항 정체불명 가방 사건 지금으로부터 27년전인, 1985년 여름. 그 때는 30도를 넘는 뜨거운 날씨가 보름이 넘도록 이어지던 그야말로 한여름 중의 한 여름, 가장 더운 날씨가 끝도 없이 계속되던 무렵이었습니다. 8월 10일.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정오 무렵. 김포세관 감시과의 허반장은 김포공항의 탑승구 앞 대기실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복을 입고 걷고 있는, 허반장에게, 항공기를 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40대 아주머니가 다가왔습니다. 아주머니가 허반장에게 말했습니다. "타이항공 비행기를 타러가던 사람이 가방을 놔두고 비행기를 타 버린 것 같아요." 허반장이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공중전화 박스 앞에 갈색 가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허반장은 가방 주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다가, 항공기의 이착륙 시간을 보았습니다. 시각표를 보니 타이항공 627편이 11시 40분 이륙으로 대만으로 떠난 것이 보였습니다. 허반장은, 가방의 주인이 가방을 깜빡 잊고 놓아두고, 대만으로 가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방을 열어 보니, 옷가지와 화장품 따위가 들어 있을 뿐이어서, 분실물로 생각하고 잠시, 사무실에 보관하였습니다. 그리고, 덥디 더운 정오가 바쁜 공항 업무속에서 지나갔습니다. 더워서 지치고, 사람이 많아 바쁜 와중에, 시간은 흘러흘러갔습니다. 그리하여,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공항을 내려 쪼일 무렵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더위가 가시는 듯도 하여,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나던, 4시 30분. 김포공항 치안본부 분실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여기는 대만이오. 갈색 가방 속에 10만 달러가 들어 있소. 누가 돈을 몰래 들고 나가려다가 출국대합실 4번 출구 앞에 놓아 둔 것이 있을 것이오. 확인해 보시오."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전화 였는데, 치안본부에서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장난인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전화의 목소리가 답하기를, "나는 왕이오." 라고 했습니다. 아마, 성이 왕(王)씨 라는 뜻으로 한 말인 듯 합니다. 그리고 계속 말하기를, "내가 원한이 있어서 알리는 것이오. 더이상 묻지 마시오." 그리고는 전화가 갑자기 끊어졌습니다. 치안본부에서 이러한 연락이 오자, 경찰은 곧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허반장이 사무실에 분실물로 맡아 놓은 가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경찰은 문제의 가방을 열어서, 내부를 뒤졌는데, 거기서 선물꾸러미 같은 것을 하나 발견합니다. 포장지는 색동포장지였고, 포장지를 뜯자, 은박지로 감싸놓은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은박지를 뜯어 보니, 은박지 안에는 도화지로 감싸져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이 도화지는 검은 절연테이프를 붙여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테이프와 도화지를 찢어 내자, 드디어 내용물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1백달러 짜리 지폐 다발들이었습니다. 백장 묶음 9개, 70장 묶음 한 뭉치. 도합 10만 달러 가량의 거액이었습니다. 백주대낮의 김포공항에서, 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돈 10만 달러가 든 가방이 난데 없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돈을 담아 두었던 가방은 루이뷔통 가방으로 크기는 가로 60센티미, 세로 40센티미터, 두께 25센티미터로, 통상적인 여행가방 크기였습니다. 이 가방은 경찰 조사 결과, 한국제 가짜 모조품으로 드러났습니다. 한편, 가방에는 중국식 남자 바지 4벌, 화장품 4 종류, 구두, 세면도구, 휴대용 손수레, 고려인삼 1병이 있었습니다. 돈이 가장 아래에 놓여 있고, 이런 물건들이 그 위에 쌓여 있는 형태로 가방을 쌌던 것입니다. 그리고, 5시 50분쯤. 다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앞서 전화 했던 "왕"이었습니다. "가방을 찾았소?" "누구신지 알려 주십시오."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신문사에 알리겠소." "10만달러나 되는 분실된 돈을 알려 주셨으니, 신고보상금을 드리겠습니다.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알려 주십시오." "......." 그러자 답이 없이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경찰은 대체 누가, 왜, 어디서 전화를 걸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이 가방이 X레이 보안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경찰은 철저히 돈과 가방을 조사했습니다. 돈은 모두 위조지폐가 아닌 진짜 100달러 짜리 돈이었습니다. 돈 중에서 70장짜리 묶음에, 일본의 연호인 "쇼와(昭和)" 를 사용해서, "쇼와 59년 7월 23일" 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카시마(高島)" 라는 도장도 찍혀 있었습니다. 경찰은 일본과도 연결되어 있는 무슨 범죄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는 추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운 한 여름,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공항에서 벌어진 이 알 수 없는 사건은, 미궁에 빠졌습니다. 경찰은 수사를 계속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 10만 달러가 든 가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1985년 8월 10일. 수수께끼의 김포 공항 10만 달러 가방 사건은, 이것이 사건 기록의 전부 입니다. 여름낮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공항에 나타난, 이 영문모를 돈가방. 이 돈가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왜? 무엇 때문에?
이름없음 2019/02/15 10:58:32 ID : 2r9a4Nuq0mm
미안해 찾기 귀찮아서 지식인에서 가져왔어
이름없음 2019/02/15 11:04:05 ID : 2r9a4Nuq0mm
전 이승만 대통령 살인사건 왜 미제사건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대통령 한짓만 알지 최후는 살해당한지는 몰랐었어 1932년 8월 9일, 서울 한강리(현재의 용산구 한남동) 사는 이승만(李承萬,44)은 친구들과 장충단 공원에서 만나 술집으로 향했다. 술을 마시다가 친구 중 하나인 이수복(35)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싸움은 점점 격화되어, 종내 이수복이 이승만의 가슴을 마구 때려 기절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승만은 자택에서 치료를 받다가 19일에 끝내 숨졌고, 이수복은 자취를 감췄다.
이름없음 2019/02/15 11:08:21 ID : 2r9a4Nuq0mm
일본의 심령스폿 행방불명 사건 1996년 5월 5일, 일본 토야마현 히미시에 사는 두 여성이 실종되었다. 이들은 히미시의 현립 여고 동창생으로, 나이는 19살 동갑내기였다.[1] 가족들의 진술에 의하면 느닷없이 밤 9시, 이 두 여성이 우오즈에서 담력훈련을 하고 오겠다 라면서 집을 나섰다고 한다. 이들은 실종자 중 B가 보유한 승용차로 히미시를 출발해, 담력시험을 하기 위해 문제의 우오즈시 츠보노 온천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중간에 신미나토에서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명소인 해양 파크에 들러서 친구를 만난 것이 확인되었고, 밤 10시 이후, B의 승용차가 토야마현의 중심지인 토야마시와 나메리카와시를 거쳐, 8번 국도를 타고 우오즈시로 들어가는 것도 확인되었다. 이들은 친구에게 '지금 우오즈시에 있다'라고 삐삐로 메시지를 남긴 후 그대로 행방이 묘연해진다. 가족들은 두 여성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했고, 토야마현 경찰이 나서서 두 여성의 행방을 추적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5월 5일 이전에도 이 츠보노 온천장을 찾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이미 이들이 한번 이곳을 방문했고, 5월 5일에 본격적으로 이곳을 탐사해보려고 했다가 실종된 게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했다. 이곳의 탐사를 주도한 것은 B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의 조사에 의하면, B는 A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일하던 슈퍼마켓에서 손전등을 구매했고,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동료에게 이곳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동료는 거절해 친구인 A에게 말해서 가게 되었다는 것. 만약 이 동료가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A 대신 실종되었을 것이란 점에서 그 동료는 소름이 돋았을 듯하다. 경찰은 열심히 일대를 수색했으나, 두 여성의 흔적을 찾는 데 실패했다. 심지어는 두 여성이 타고 간 차량조차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이 츠보노 온천장에 도착해서 담력시험 겸 탐색을 했던 것인지, 이곳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을 당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은, 차량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어딘가 호수나 절벽에서 차가 굴러떨어져 죽은 것이 아닌가 추정했으나, 그마저도 그렇게 단정 지을 만한 단서가 전혀 없어서 추정의 영역으로만 남고 말았다. 이들이 담력시험 겸 탐사를 위해 한밤중에 찾은 것으로 보이는 츠보노 온천장은 본래 온천 옆에 지어진 호텔이었다. 인근에 토야마현의 명소인 츠보노 성이 있어서 나름대로 관광지였다. 한때 이곳을 기반으로 스키장 리조트 건설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1982년 경영난으로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고, 그 이후로 폐허로 방치된 상태였다. 그래서 이곳을 심령 스폿이라고 하여 찾는 폐허덕후들이 있었고, 인근 현들[2]의 폭주족들의 집합처라는 말까지 나돌아서, 인근 주민들은 치안 문제 때문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2003년 발간된 "최신 일본 공포명소 100"이란 책에 이곳이 등재되었고, 2007년에 발간된 "일본의 폐허"라는 책에서는, 호쿠리쿠 최고의 담력시험 장소로 강추하기까지 했다. 이런 폐허 덕후들과 폭주족들이 몰려들어서인지, 이곳에서는 방치된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사건이 잇따랐다. 1997년에는 츠보노 온천장 안에 불상이 모셔진 약사전에서 불이 났고, 그 전에도 온천장 건물에 불이 나기도 해서 심령 스폿이란 소문이 나돌았던 걸로 보인다. 이런 탓에 골칫거리가 된 이 건물을 철거하든지 하라고 주민들의 원성이 드높아지자, 1997년에 일대에 철조망을 치는 등의 작업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폭주족들이나 폐허 덕후들이 철조망을 뜯고 안으로 들어가서 노는 탓에 별 실효는 없었다. 이 일대는 소유주가 버젓이 있으나 지금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의 오랜 장기 경제침체 탓에 어떻게 손써 볼 방법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의혹은 '과연 이들이 타고 온 차량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라는 점이다. 한때 2ch 등에서, 두 여성이 타고 갔던 문제의 차량이 신미나토시 인근 해변에서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떠돌았으나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아무리 수색해도 차량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 게다가 아무리 츠보노 온천장 인근을 수색해도 이들이 탄 차량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런 탓에 과연 이들이 츠보노 온천장에 간 게 맞긴 한 거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일본 네티즌들도 있다. 이들의 차량이 토야마시와 나메리카와시의 경계 사이에서 목격된 시각이 밤 10시가 넘어서인데, 친구에게 보내진 삐삐 메시지는 정확한 발신 시간을 알 순 없어도, 한밤중에 우오즈시다, 라고 보낸 걸로 미뤄보면, 이들이 자정쯤에 우오즈시 경계에 도달한 게 아니냐는 추정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과연 나메리카와시에서 우오즈시의 츠보노 온천장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리겠느냐, 라는 것. 이런 탓에 일각에선 납북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즉, 이들이 츠보노 온천장을 찾았거나 혹은 인근을 가다가, 츠보노 온천장에 숨어있던 북한 공작원(…)에게 붙들려서 북한으로 끌려간 게 아니냐는 것. (북한 공작원이 왜 거기에서 나와...?) 하지만 츠보노 온천장의 위치나 주변 환경을 보면, 북한 공작원이 숨을 만한 곳이 아니라서 말도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주장이 나온 이유는 토야마 인근 니가타에서 요코다 메구미가 납북되었고, 호쿠리쿠 일대가 지리상 북한과 가까운 탓이 크지만, 북한으로 납치되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전혀 없다.
이름없음 2019/07/02 13:52:52 ID : g42Ns3CmNBy
미스터리판 초기스레 갱신 !! 갑자기 다른 레더들이 미제사건 설명해주는 게 보고싶어졌네 갱신하는 김에 말하자면, 남양주 밀실 살인사건은 전대미문의 밀실 살인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
이름없음 2019/07/02 14:14:21 ID : vwoHCkk2smH
이름부터가 다른걸. 음은 같지만 저 사건의 이승만은 李承萬이고 대한민국 제1공화국 대통령 이승만은 李承晩임. 사망일자도 그래. 저 사건에서의 이승만은 1932년 8월 말에 결국 죽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1965년 7월 중순, 망명지였던 하와이에서 죽음.
이름없음 2019/07/03 06:39:49 ID : 82pXula1a4M
그레이엄 영(1947.9.7~1990.8.1)의 죽음 그레이엄 영은 영국의 독살자인데 14살에 새엄마를 독살하고 8년간은 정신병원에 있다가 다시 사회로 나와서 직장동료 2명을 독살했고 감옥에서 18년간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심근경색으로 죽었어. 근데 타살인지 자살인지 아직도 분명이 밝혀지지가 않았음
이름없음 2019/07/31 09:59:09 ID : z89xTQrdO1a
어떤 사건이야?
이름없음 2019/07/31 12:48:45 ID : qnSFeLhy1vh
엘리사 램사건도 있으니까 찾아봐! 아직도 못풀은 미제사건이야ㅔ
이름없음 2019/08/11 04:30:51 ID : cmoFfRu5WnV
인주 여고생 사건
이름없음 2020/05/01 16:59:10 ID : Cqrta3u2nB9
이거 갱신해도 되는 거겠지...???????????????
이름없음 2020/05/01 17:44:01 ID : oJQnvfU5bzX
2013년 1월 31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세실 호텔에 투숙 중이던 중국계 캐나다인 엘리사 램(Elisa Lam, 중국명 藍可兒)이 돌연 실종되었다. 엘리사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26일 혼자 캘리포니아를 여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2월 19일 호텔에서 물 수압이 낮고 색깔과 맛이 이상하다는 투숙객의 클레임이 들어왔다. 호텔 측은 옥상의 물탱크를 조사했는데, 그 안에서 엘리사 램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실 실종 신고가 들어왔을 때 이미 옥상을 한 번 조사했지만 물탱크까지 열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발견이 늦어진 것이다. 그녀는 발견되었을 때 알몸 상태였는데 그녀의 옆에 입고 있던 옷이 떠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엘리사 램이 실종되던 때 엘리베이터 안의 CCTV에 찍힌 영상이 경찰에 의해 공개되며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을 비롯한 각종 세간과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의 CCTV에 찍힌 그녀의 모습이 상당히 기이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혼자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오더니 여러 층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문이 닫히지 않자, 머리만 내밀고 밖을 살펴본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구석에 몸을 붙이고 있다거나,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하는 행동을 보인다. 그러다 다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서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내젓는 행동을 보인다.그러면서도 돌연 여유롭고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더니 미소도 짓는다. 그러고는 CCTV의 앵글 밖으로 사라지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곧이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열리지만 아무도 타지 않고 다시 닫힌다.[4] 이런 모습이 한번 더 반복되고 영상은 끝난다. 이후 부검 결과 약물이나 알콜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엘리사 램은 생전 텀블러와 같은 SNS에서 코멘트에 자살/죽음에 대한 코멘트를 많이 작성한 전적이 있었고 조울증 증세 또한 있었다고 친구들이 증언했다. 엘리베이터 영상을 본 지인들 또한 내가 아는 엘리사와 다른 행동을 한다고 증언했다. 출처:킹무위키
이름없음 2020/05/01 17:46:51 ID : oJQnvfU5bzX
개구리소년사건 1991년 3월 26일 당시 대구성서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우철원(당시 13세) 군을 비롯한 조호연(당시 12세)·김영규(당시 11세)·박찬인(당시 10세)·김종식(당시 9세) 등 다섯 어린이가 집 뒷편인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실종된 날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해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투표가 있던 날이다. 임시공휴일인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았던 어린이들은 와룡산에 오르기 전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 친구와 마을주민들에게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헤맸고, 개구리소년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가 제작되기도 했으며, 전국 초등학생들은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 운동’을 펼치는 등 전 국가적인 사건으로 떠올랐다. 1995년 대구지방경찰청이 4년전(1991년) 실종된 개구리소년들의 성장한 모습을 컴퓨터로 작성해 배포한 사진(1995.8.1, 연합뉴스) 경찰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한 수사본부를 구성, 와룡산 일대는 물론 전국을 수색했다. 전국 새마을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은 700여 만 장의 전단을 전국에 뿌렸고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기업체들도 담배갑과 상품에 실종 어린이들 사진을 인쇄, 수색 작업에 동참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특별지시와 현상금 4200만 원,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5만 명의 수사인력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적은 찾지 못했다. 실종 5년째인 1996년 1월에는 다섯 어린이 중 한 명이 자신의 집에 암매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굴착기와 곡괭이 등으로 집안 화장실과 부엌 바닥을 파는 소동이 벌어졌으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처럼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사건이 장기화되자 한때 '외계인 납치설', '북한공작원 유괴설', '불치병 치료용 희생설' 등 갖가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실종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4구의 유골과 신발 5켤레가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뒷편 500m 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반면, 부검을 맡았던 법의학팀은 감정 결과 명백한 타살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후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범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이름없음 2020/05/01 17:52:32 ID : oJQnvfU5bzX
엽기토끼 사건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에서 발생한 미제 사건. 2005년 6월 6일, 2005년 11월 20일, 2006년 5월 31일에 여성을 납치, 성추행, 살해 후 유기한 사건이다. 피살자 2명. 피해자(생존자) 1명. 범인은 2인 1조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피해자(생존자) 박 씨를 납치한 용의자와 2명의 피해자를 살해한 용의자가 동일한 범인이라면 2인 1조로 추정할 수 있겠지만 동일범으로 추정하기에는 물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온보현 사건, 용인 연쇄살인 사건처럼 택시를 이용한 범행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첫 번째 사건은 2005년 6월 6일에 벌어졌다. 피해자는 당시 20대 후반의 회사원으로, 오후에 감기 증세가 있어 병원을 가던 도중 납치당하여 살해당했다. 부검 결과 아침(오전 8시~9시 사이로 추정)에 먹은 음식이 아직 위산에 녹지 않은 채로 있었던 걸로 보아 납치 후 살해 추정시간까지는 길게 봐야 8시간 이내로 그렇게 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살해당한 시신은 어느 골목의 쓰레기 무단 투기 현장에서 발견되었는데 상반신과 하반신이 각각 쌀포대에 씌인 채 끈으로 묶인 상태로 발견되었다. 첫 시신 발견자는 쓰레기 무단 투기 단속 공무원으로 여느 때와 같이 불법 쓰레기 투기 현장을 모니터링하다가 시신을 처음 발견했는데, 처음에는 손이 삐져나온 걸로 봐서 마네킹이 버려진 줄 알고 만졌다가 물컹해서 이상함을 느껴 쌀 포대를 벗겨 보니 사람이 죽은 것이었다고 한다. 부검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속옷이 반 벗겨진 상태로 걸쳐져 있었고 피해자의 음부에 종류가 다른 생리대 두 개와 휴지 말린 것이 삽입되어 있었고 그 외에도 가슴이 치아에 물리거나 복부의 과다한 출혈 등 여러 가지 폭행당한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액 반응이 음성으로 나와서 범인을 유추해 낼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장례식장에서 피해자 오빠의 태도가 이상해 보였다는 주변의 증언으로 인해 경찰이 피해자의 오빠를 의심했으나 추후 용의선상에서는 제외된다. 피해자는 친정집에 간다며 집을 나간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었고 두 번째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모습은 신정역 에스컬레이터 CCTV였다. 남편은 아내가 친정집에 갔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익일 아침이 되어도 아내가 돌아오지 않자 점점 불안해하다가 아내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비보를 접하였다. 두 번째 피해자는 마대자루로 시신을 씌운 형태는 동일하나, 첫 번째피해자와는 달리 매듭이 더 섬세하고 빈틈없이 묶여 있었고 첫 번째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시신이 쓰레기 무단 투기장에서 발견되었으며사인 또한 경부 압박 질식사이고 복부의 출혈 등으로 폭행의 흔적이있었기에 전문가들은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측했다. 시신이 유기된 장소는 언뜻 보면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골목처럼 보이나, 알고 보면 사각지대가 있는 곳으로 특히 밤 같은 야심한 시간대가 되면 야음을 틈타 뭔가 유기하기 좋은 구조였다. 언제나 그렇듯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CCTV가 확보되었다는 주변 주민들의 증언은 덤. 특히 이 다세대 주택 골목은 담벼락이 쳐져 있었으며, 복잡한 구조와 비슷한 외견으로 인해 쉽게 구별하기 어려웠다. 한편 두 번째 피해자 상의에서 발견된 곰팡이는 옷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 외부에서 묻어온 것임이 확인되었고, 이 곰팡이는 주로 실내 반지하 환경에서 생기는 종류임이 밝혀졌다. 이는 두 번째 피해자가 반지하에서 당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세 번째 납치미수 사건과 앞의 두 살인 사건 간에 연관성이 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한편 사건 수사에 진전 없이 장기미제사건으로 남나 싶었지만, 이 일대에서 납치당했다가 도망친 피해자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풀 열쇠가 나오게 된다. 해당 사건의 납치 피해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도 불구하고 고심하다가 이전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인터뷰에 응하여 당시 경찰 수사에서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추가적으로 증언했다. 이 세 번째 납치미수 사건은 2006년 동시 지방선거일이었던 5월 31일(임시 공휴일)에 발생했다. 당일 세 번째 피해자는 목동오거리에서 남자친구를 만날 목적으로 택시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휴대폰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목적지인 목동오거리를 지나쳐 버렸고 결국 신정역까지 와버린 다음에야 뒤늦게 택시에서 내렸다고 한다. 피해자가 택시에서 내린 후 다시 목동오거리로 걸어가려는 찰나 범인이 잠깐 와보라고 하여 피해자가 무시했지만 갑자기 범인이 피해자의 옆구리에 커터칼을 들이대면서 따라오라고 했고, 피해자는 속수무책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피해자는 가는 동안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고 지나가던 행인이 물어보기까지 했으나 범인은 태연하게 "여자친구가 낮술에 취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둘러댔고 안타깝게도 행인은 별로 관심 없었는지 범인의 말에 속아 넘어갔다. 결국 피해자는 속수무책으로 신정동 주택가의 어느 반지하방으로 끌려갔는데 끌려가자마자 틀고 있었던 TV와 라디오 소리가 커졌고, 반지하방에 딸린 또 다른 방 한편에서 공범으로 추정되는 자가 또 다른 범인에게 "왔어?"라고 말하며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톱과 바닥에 놓인 수많은 끈들을 목격했다고 하는데 이는 첫 번째, 두 번째 사건과 연계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잠시 후 범인이 바지를 벗고 나서 갑자기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며 일어나는 순간 그 틈을 타 피해자는 탈출을 시도했다. 이때 피해자는 바로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지 않고 반지하방 바로 위층(2층)으로 올라가서 그 집 앞에 놓여 있었던 신발장 뒤에 한동안 계속 숨어있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밑에서 2인 1조의 범인들이 욕하며 나오면서 톱을 들고 '잡히면 죽여버리겠다.'라며 집으로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틈을 타서 정신없이 달렸고, 인근의 초등학교가 나오자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신정동 살인사건이 일명 '신정동 엽기토끼 살인사건'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에는 피해자가 몸을 숨겼던 2층의 낡은 신발장 때문인데, 그 신발장에는 마치 아이들이 공작한 듯한 모양새의 허접한 화분이 올려져 있었으며, 신발장의 측면에는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문제는 이 다세대 주택은 담이 높고 주택들이 비슷비슷하게 생겨 주변 지형지물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구조인 데다가 피해자가 반쯤 패닉 상태였기 때문에 피해자가 범인의 거주지와 주변 환경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납치장소가 반지하라는 것과 그 위층의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여진 신발장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취재진은 전문가와 함께 그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납치 피해자가 뛰어온 경로를 추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납치미수 사건을 끝으로, 신정동에서는 유사한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이에 관해서 주변 관청에서는 "우리는 단순히 전출입 숫자만 조사하고 전출입자의 신상정보까지는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름없음 2020/05/01 19:35:42 ID : 0640qZa5TTR
나 미제사건 파내는거 되게 좋아하는데 여기 완전 보물섬이네
이름없음 2020/05/01 21:57:50 ID : V9gZg3Rwmr8
와...무서워...
이름없음 2020/05/01 21:58:03 ID : V9gZg3Rwmr8
오 나도!
이름없음 2020/05/01 23:10:33 ID : 0640qZa5TTR
왕 동무다!! 나만 이런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ㅠ
이름없음 2020/05/01 23:12:16 ID : 0640qZa5TTR
근데 엽기토끼 사건 갑자기 2018년인가 2019년에 어디 프로그램에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랑 프로그램 이어갔잖아... 나 그거 보고 소름이었음 집에 노끈 많다 한거하고 그런거 다 거의 매치해서 한때 소름이었는데.. 봤어 혹시?
이름없음 2020/05/01 23:16:20 ID : oJQnvfU5bzX
아 그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영한 거야 이거 말하는것같네 나는 방송은 안 보고 예전에 요약본으로 봤고 지금은 나무위키에서 퍼온거야 이날 방송에서는 제작진이 14년 만에 나타난 새로운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는 2006년 9월경 신정동의 한 다세대 주택을 방문했을 때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있는 신발장을 본 것은 물론 용의자의 얼굴을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이에 제보자 진술을 토대로 만든 몽타주가 공개됐다. 제작진은 용의자 중 한 명과 만나기도 했다. 또한 부산의 한 경찰은 과거 신정동 인근에서 성폭행 전과가 있었던 2인조가 신정동 사건들의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검거된 2인조 중 한 명은 신정동에 거주했고, 피해 여성 중 한 명 또한 신정동 1차 살인사건 피해자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중 한 명은 지난 2018년 출소했으며, 다른 한 명 역시 2020년 7월 23일 출소다. 방송 이후 성폭행 전과가 있는 두 명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며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 접속자가 폭주하기도 했다. 유력한 용의자들인 전과자 두명 중 출소했던 한 명의 집에 PD들이 찾아갔을 때, 집 안에 노끈이 매우 많았던 것이 포착됐다.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새로운 첩보를 포함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2020년 1월 13일 "서울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에서 사건 당시 확보한 DNA 자료,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부산지방경찰청에서 최근 제출한 첩보까지 포함해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없음 2020/05/01 23:17:42 ID : oJQnvfU5bzX
이거 근데 스레주한테 계속 알림가려나..?새로 스레만들까..
이름없음 2020/05/01 23:20:51 ID : 0640qZa5TTR
오 마자마자 그것이 알고싶다 였어!!! 그러면 아직 수사 중이라는 건감...
이름없음 2020/05/01 23:21:02 ID : 0640qZa5TTR
흠 그러게 그래야하낭..
이름없음 2020/06/11 12:11:24 ID : dWmMlwliry7
아니 알림 안 와서 이 스레 5월까지 쓰였는줄도 몰랐는데 ㅋㅋㅋㅋ 아이디가 다를 거 같아서 이라고 증명은 못할 거 같지만 나 이야!
이름없음 2020/06/11 12:12:57 ID : dWmMlwliry7
아마 이 스레 세웠을 땐 회원가입 자체가 없었던걸로 기억... 알림이 오려야 올 수 없지
이름없음 2020/06/11 12:22:48 ID : u62GnA7xRu3
소공자 살인사건 1921년 3월 8일, 미국 위스콘신주 와우케샤의 한 채석장 연못에 남자아이의 변사체가 떠올랐다. 당시 채석장에서 일을 하던 노동자의 신고로 보안관이 출동해 수사가 시작되었는데, 1914~1916년생으로 사망당시에는 5세에서 7세 가량으로 추측되는 이 백인 소년은 107cm의 키에 금발의 머리, 갈색 눈을 지니고 있었고 머리에는 강한 타박상을 입은 것이 확인되었으며 사인 역시 머리에 입은 타박상이 사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신은 꽤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있던 것으로 추측이 되었으며 이점을 미루어보면 사망시점은 최소 한달 전인 1921년 2월에서 수개월 전인 1920년 가을 쯤으로도 추측이 되었다. 소년의 시신은 고급 속옷과 블라우스 위에 회색 스웨터를 입고 하반신에는 검은 스타킹과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사체의 인상착의가 유달리 부유해보였고 이게 당시 미국과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작품 소공자와 묘하게 매치가 되었기 때문에 아이의 시신은 "소공자(Little Lord Fauntleroy)"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찰은 부유해 보이는 아이의 인상착의에서 아이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다 납치되어 살해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소년의 인상착의와 같은 스타일의 옷이 자신의 가게에서 판매된 적이 있다는 백화점 주인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으나 끝내 옷을 사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시체가 발견되기 5주에서 2주 전쯤, 사건현장 인근에 남녀가 탄 포드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고 그중에서 빨간색 스웨터를 착용한 여인이 "어린 소년을 본 적이 있느냐"고 울먹이며 묻는 모습을 보았다는 목격담에 이어 그중 여인이 연못에 투신 자살을 했다는 목격담이 접수되었지만 시신은커녕 그들의 신원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인근 장례식장에 시신을 안치하고, 인근 주민들에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시신의 연고자를 수소문했지만 소년의 신원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 10일이 지난 1921년 3월 17일, 이름도 그를 죽인 범인도 알 수 없이 소공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가엾은 소년은 끝내 인근 주민들의 모금으로 조성된 묘지에 쓸쓸히 안장되었다. 한편 소년이 무덤에 안장된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베일을 쓴 여성이 이 소년의 무덤에 꽃을 두고 가곤 했다고 한다. 왠지 차필드 철도 참사의 두 아이들이 연상되는 대목.
이름없음 2020/06/11 12:33:50 ID : u62GnA7xRu3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사건 1975년 8월 20일 오후 8시,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동에서 7살 김현정양이 실종 후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불과 닷새 후 동구 좌천동에 사는 5살 배준일 군이 실종된 후 살해된 채로 발견된 사건이다. 8월 21일 오전 5시 45분경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용두산공원 산책로 인근 숲 속에서 이른 아침부터 공원을 순찰하던 공원 관리인 35살 문모 씨는 어린아이의 시신을 발견한다. 문 씨는 즉시 '여기 용두산공원에 어린 여자아이가 죽어 있습니다.'라고 파출소에 신고했고 곧 중부경찰서에 보고되었다. 2시간이 지난 8시경에서야 형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신고상으로 들은 것보다 훨씬 참혹한 모습이었다.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었고 죽은 아이는 손발이 움직이지 못하게 속옷을 찢어 만든 끈으로 손발이 결박되어 있었다. 문제는 복부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쓰여진 낙서가 매우 소름돋게 만들었다. "범천동 이정숙이가 대신공원에서 죽었다." 경찰은 단순히 생각하고 상부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8월 25일 오전 6시경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의 어시장의 상자 하차장에서 관련 일을 하던 박 모씨가 한 쪽에 쌓여 있었던 사과상자더미 사이로 작은 손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박 씨는 사과상자를 살짝 들췄더니 사과상자 안에는 손발이 결박된 채 죽어있는 남자아이의 시신이 있었다. 바로 전 날 실종된 배준일 군의 시신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시신을 조사했는데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단했고 손발을 묶은 끈은 아이가 입고 있던 런닝셔츠를 찢어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런닝셔츠를 걷어 올렸더니 복부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빼뚤빼뚤한 글씨로 낙서가 씌여 있었다. "후하하 죽였다." 이것은 일종의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범인의 엽기행각에 수사팀들은 또 한 번 치를 떨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건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범행대상이 10세 미만의 아동이라는 점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상의를 찢어 손발을 묶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점 범행 시간이 해질녘이라는 점 살해 후 피해 아동의 배에 사인펜으로 의문의 낙서를 해놓았다는 점 특히 낙서의 필적이 같다는 점은 두 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이라는 것에 무게를 실어줬다. 뿐만 아니라 범인은 김 양 때와 마찬가지로 배 군의 집에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아동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아 범인은 아동혐오론자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름없음 2020/08/01 22:14:28 ID : nU6mE04Fh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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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0/12/09 16:44:00 ID : s02k5RwtzcH
오랜만에 나도 왔어 방금 그놈 목소리 리뷰영상 보고 왔는데 너무 화난다 진짜 공소시효만 아니었다면... 지금 얼굴이 어떤지도 몰라 아무튼 애새끼 족치고 싶은 맘 밖에 없네 어딘가에서 고독사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화가 날 것 같아 유괴된 아이는 유괴 하루만에 질식사로 죽었는데... 혹시나 해서 링크 남길게 못 본 친구들은 한 번만 봐줘 너무 화나 글 못 써서 차라리 이 유튜브 영상을 봤음 좋겠다 고마워 https://youtu.be/BAU_70rKXpU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은 1991년 1월 29일 화요일 18시경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던 이형호 군(당시 9세)이 30대로 추정되는 남성에게 유괴되어 살해당한 사건이다. 결국 2006년 1월 28일 24시에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2007년에 개봉한 영화 그놈 목소리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영화이다.
이름없음 2020/12/15 12:57:21 ID : xV9jzf9ba1h
이얍 갱신!
이름없음 2021/01/25 17:35:24 ID : Y061BbxB81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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