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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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라벤더 머리카락 전화 (8)
열렬하였고, 뜨거웠다. 그래서 그것을 손으로 만져본 적이 손에 꼽았다. 그렇게나 A가 저에게 쏟아부은 사랑이지만서도.
자신에게 사랑은 커피 같은 거다. 공복에 마시면 힘들어. 쓰라린 가슴께를 짚어내리는 제 손길이 그 말에 응한다. 물음이었다. 그럼 사랑을 생으로 집어삼키지, 어떡해? 동조하는 감각일랑 없었다. 그저 아우성치는 속만 메스꺼울 뿐. 마찬가지로 부인하는 것 또한 없었다. 손길은 그 침묵이 익숙하다는 듯, 명치를 꾹꾹 눌러 커피의 찌꺼기라고 올려보내려는 양 굴었다. 여전히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A? 좋은 사람이지. 과거, 그의 손을 잡고 집에 오는 길에 그것이 사랑의 시초임을 알았다. 이건 사랑이야. 몰랐어? 아니 아직은 아니긴 한데... . 원두 볶는 향이 났다. 밤의 찬 공기에서, 그런 향이 났다. 이전의 남자 들은 전부 그냥 커피였던 거야. 싸구려 믹스 커피. 그런 그 남자는 티오피냐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친구에게 대답했다. 그것도 그냥 캔커피 아냐? 그 말에 결국 네가 이겼다는 듯 두손두발을 들던 친구는 돌연 물음했다. 근데 왜 사랑이 커피야? 그때는 왜 답을 하지 못 했더라. 그냥, 까매서. 왜 그렇게 대답하고도 자신이 자신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 한 표정을 지었더라. 이상하리만치, 모든 것은 끝장을 보고 나서야 대답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답을 내놓기가 싫었어. 정말 끝장일까봐? ... 응. 빈 커피잔의 바닥에 따듯한 색의 액체가 동그란 자국을 남긴다. 식은 커피향이 가신 코끝을 매만졌다. 커피가 식어서 코 끝이 차가운 거다. 원래 따듯했는데, 그 온기가 너무 그리워서.
왜 사랑이 커피야? 까매서. 그 의중을 헤아릴 수가 없어서. 마지막에 남은 얼룩 마저도, 까맣고 짙어서. 차가우면 맛이 없어서. 그래서 눈물이 나길래. 그런 게 사랑이길래.
이렇게 아픈 것이 사랑일 리가 없다고 징징거리던 것도, 이제는 나이라는 것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쓰다고만 대답한다. 돈 벌러 다니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술자리였다. 사랑에도 그런 것 쯤은 있을 거라고. 그리고 있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쓰다 못해 아픈 커피일 거라고. 속을 알 수 없어 까맣기만 한, 차가우면 슬픈 액체. 그게 사랑의 가장 아픈 부분 일 거라고. 나는 그게 커피라고. 원두를 볶는 냄새가 나던, 그 날의 그 밤이 공기를 안고 내게로 밀려든다. A의 사랑은 열렬하였고, 뜨거웠다. 그래서 선뜻 마실 생각을 못 했어. 식으면 아플텐데. 나의 후회는 고백과도 같다. 그때, 뜨거웠던 너를 받아들였어야 했어. 그것은, 고백이다. 비어버린 커피 잔 안으로, 쉴새 없이 부르는. 닿을 수 없는 고백. 그리고, 후회.
잘린 손목
손목이 잘렸다. 진득한 혈이 배어 나오는 단면이. 아니 사실은 피가, 뇌가, 척추가, 실은 뜨거움이. 무엇인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내게 고통을 선사했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말했다. 손을 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 말이 가장 아팠었다. 그가, 왼손 병신으로 살아야 하는 내 미래를 만들어내는 초석 같아서.
나는 오른손잡이였다. 누군가 그건 다행이라고 했다. 그럼 너도 왼손을 잘라낼래? 내가 웃자 그 애는 미안하다고 했다. 왼손과 함께 잘라냈다. 아파서 예민한 거라고,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대답을 듣게 된다. 아니, 난 안 아픈데. 아픈 부분을 잘라냈잖아.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내 몸에만 신경을 쓰라는 의사의 말을 귀담아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내가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생각하는 게 인간이니까. 코끼리는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분노에 밤잠을 설치고, 뒤척이고. 웃다가 떠올리고, 생각이 끝나갈 때 곱씹고. 종착지는 원망이다. 단면이 되어 맨들한 새살을 돋아내고 있는, 내 몸 어딘가의 단면이 함께 돋아내는 원망 속으로.
아프다는 말을 했는데, 언니가 울었다. 나는 내가 끝내지 못 한 어떤 일 때문에 여기 갖힌 게 아닐까? 어디에? 여기. 여기 이 단면 속에. 과거에 내가 마무리 짓지 못한 우울이 존재했던가. 나는 그 때의 우울을 받고 있나? 그렇다면. 어쩌면 그 우울을 대신해서 받은 것은 언니가 될 것 같았다. 나는 괜찮아. 그렇게 말 하지 못하는 목을 원망한다. 쉰 소리만 나오는, 무늬만 있는 목구멍에 압력이 가해진다. 이건 공기 일 텐데. 그냥 공기 일 뿐일 텐데. 왜냐하면, 나는 내 목도 제대로 조를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선사받았으나, 정작 편한 죽음을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신은 이다지도 나를 미워한다. 그도 한쪽 팔이 병신일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기도하게 된다. 그럼 나는 당신처럼 신이 될 게. 그리고, 나는 절대로 누군가 손을 잃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거야. 그의 언니가 과거의 우울을 대신 전해받고 있는 꼴도. 나는, 절대로. 신에게 불가항력이라는 것은 없을 테니까. 그가 그의 손을 잃게 되었던 것 말고는. 마치 나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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