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1/09 21:28:45 ID : IGmoK0q440t 0
살면서 한번쯤은 그런 경험을 했을것이다. 가만히 있을땐 입술을 어떤 모양으로 해야 하는지, 걸을때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숨은 얼마나 크게 들이쉬어야하고 또 크게 내쉬어야하는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없는 아주 사소한 행동을 어떤식으로 '자연스럽게' 행동해야하는건지 의문이 든다. 종국엔 내가 어떻게 살수있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그럴때면 밀려오는 오싹함에 고개를 저으며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것이란 생각을 한다. 평범한 사람들.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능숙한 사람들말이다.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고 또 잊는다. 눈을 뜨면 느껴지는 부자연스러움에 몸부림을 친다.
2 이름없음 2020/01/09 21:29:38 ID : IGmoK0q440t 0
나는 이곳에 있으면 안된다고. 그런 생각이 불쑥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온다. 적응을 할수없었다. 이곳에서 누릴수있는 것들에관한 권리가 없다고도 느꼈다. 밤늦게까지 자지않고 집에 초대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수있는 권리, 가족들에게 어리광 부릴수있는 권리, 형제의 옷장에서 옷을 빌려갈수있는 권리.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얻는 권리가 나에겐 없는것만 같았다.
3 이름없음 2020/01/09 21:31:41 ID : IGmoK0q440t 0
나는 내 삶에서 언제나 이방인이였다. 내가 있는 모든 장소에서, 시간속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이방인이여야만 한다. 모두와 다른 모습에 손가락질 당하는 이방인. 행동 하나하나에서 부자연스러움이 흘러나오는 이방인. ****
4 이름없음 2020/01/09 22:07:09 ID : IGmoK0q440t 0
이불이 너무 무겁다. 잠에서 깨어난 남이가 처음으로 한 생각이였다. 숨을 한번 들이키고 상체를 일으켰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이불위로 흩날렸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남이는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늘은 아직 한밤중인것같이 어두웠지만 시계는 벌써 일어나야할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전에, 남이는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이불을 갤까말까 고민하던 남이는 평소처럼 가만히 내버려두기로 했다. 너 침대에서 안자? 바닥에서 자는 애는 처음 본다. 악의없는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인상을 찌푸리고 벽걸이에 걸려있는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조용한 집에서는 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들린다. 어짜피 자신의 방에 귀를 귀울이는 사람은 없으니까. 남이는 신경쓰지않고 셔츠에 팔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보니까 넌 참 특이해. 이름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이남이라니. 고전소설에 나오는 이름같다. 남이는 거울을 보며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묶었다. 태명이였어. 이번에는 남자애일거라고 그렇게 지었는데 난 여자애였던거지. 실망해서 그대로 남이라고 출생신고를 한거야. 한없이 맑은 목소리에게 그렇게 말했던것같다고 남이는 생각했다.
5 이름없음 2020/01/11 20:15:08 ID : IGmoK0q440t 0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옆머리를 조금씩 빼낸 남이는 고개를 이리저리돌리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주 잠시동안 거울속 자신의 눈을 바라보다가 의미없이 씩 웃었다. 물론 금방 무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괜히 탈탈 털고는 방문을 열었다. 오래된 문에서 끼이익 하고 가느다란, 그리고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남이는 조용히 부엌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소리가 나지않게 식은 밥과 국을 떠 식탁에 차렸다. 반찬하나없는 조촐한 아침식사였다. 남이는 그런것을 신경쓰지도 않고 숟가락을 들어 밥을 입으로 밀어넣었다. 너는 왜 그렇게 조용해? 너는 걸을때면 발소리가 하나도 안나더라. 다른애들은 걸어오는게 느껴지는데, 너는 하나도 안느껴져. 고양이 같아. 우리집 고양이도 그렇거든. 발소리가 하나도 안나고 울지도 않아. 그러면서 나한테로 자꾸만 가까이 다가오니까 난 걔를 발견할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거지. 너도 걔를 봐야해. 너랑 걔는 진짜 닮았으니까. 그래서 너가 참 좋아. 실없는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남이는 밥을 씹어 삼켰다. 아침엔 입맛이 없었지만 억지로라도 먹어야했다. 안먹으면 걱정하니까. 쓸데없이 내 눈치를 살피며 왜 안먹었냐고 묻는 그 눈빛이 보기가 싫었다.
6 이름없음 2020/01/14 14:29:45 ID : IGmoK0q440t 0
설거지통에 그릇과 수저를 담았다. 남이가 몸을 돌리자 도둑질하다 걸린 아이마냥 뻣뻣히 굳은 모양새를 한 자신의 엄마를 볼수있었다. 한참을, 아니 아주 찰나의 시간이였을지도 몰랐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멍한 얼굴속에 담겨있는 죽은 눈을 한채로. 잘잤어? 남이에게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엄마는 멍하니 대답했다. 그러곤 다시 방안으로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한마디의 말로 시작되고 끝나는 대화였다. 그 대화가 끝나면 남이의 엄마는 눈에 살짝 생기가 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는듯 엄마는 돌아선다. 하루에 한번 있는 대화로 엄마는 생기를 얻는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고 또 다음날이면 생기를 얻고 또 살아가고... 그게 일상이였다. 남이는 엄마에게 있어 생기를 주는 존재이자 또 죽고 싶게 만드는 존재였다. 남이는 옅은 구역감이 몰려와 입을 꾹 다뫌었다. 생기든 죽음이든 그걸 느끼게 하는 존재라는 이름표가 붙은것이 남이에게 있어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웠다. 버튼을 눌러 화장실 불을 켰다. 노란빛이 도는 전등은 아주 작게 깜빡거리는 소리를 냈다. 칫솔에 치약을 짜고 입에 가져다댔다. 무의식적으로 앞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남이는 이번엔 괜히 웃지않았다. 그저 조용히 자신을 응시했다. 소리가 안나서 좋다고? 너랑 나는 역시 다른 세상에서 살다가 만난거야. 이렇게나 불쾌한데. 너는 뭐가 그리 좋다는 거야? 남이는 조용히 불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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