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죽음에 관하여 (6)
2.Anorexia (191)
3.서울 (2)
4.책 읽어주는 스레 (72)
5.일기 (1)
6.. (8)
7.Proana (371)
8.일기라도 쓰자. (1000)
9.나란 (3)
10.생활인 (360)
11.우연하게도 잊지 않았습니다 (518)
12.. (237)
13.다이어트 일기 (1)
14.🍰🧁🍨🍭🍫🍓 (1000)
15.그만둘 때까지만 써보자 (59)
16.편집자 일기시작해봄 (난입환영 말걸어주면 ㄳ 질문도 환영) (57)
17.오늘 하루, 내가 살 수 있던 이유 (12)
18.내가 다시 내가 될때까지 (4)
19.오형제 일기장 (1)
20.. (52)
2
이름없음
2020/03/01 20:29:07
ID : r83A0so7wGq
0
사람 하나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쯤 간단하지 않을까.
3
이름없음
2020/03/01 20:40:54
ID : r83A0so7wGq
0
태국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니, 우메자와 리카는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4
이름없음
2020/03/01 20:41:32
ID : r83A0so7wGq
0
사라진다고 해서 죽는다는건 아니고 완벽하게 행방을 감춘다는 뜻이다.
5
이름없음
2020/03/01 20:41:50
ID : r83A0so7wGq
0
그런 일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6
이름없음
2020/03/01 20:42:17
ID : r83A0so7wGq
0
생각하면서 이곳까지 왔다.
7
이름없음
2020/03/01 20:43:49
ID : r83A0so7wGq
0
방콕 중심가만큼의 발전도 소음도 없고 도시 자체도 소규모였지만, 관광객이 많고 긴 여행 끝에 정착한 분위기의 외국인도 많이 보였다.
8
이름없음
2020/03/03 16:48:59
ID : r83A0so7wGq
0
숲을 이루고 있는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 틈새에 끼여서 시내 복판인데도 절이 있었다.
9
이름없음
2020/03/03 16:50:08
ID : r83A0so7wGq
0
밤에는 날마다 거대한 노천시장이 열려, 장사꾼들도 관광객도 터질 듯한 빛 속을 황홀한 표정으로 걸어다녔다.
10
이름없음
2020/03/03 16:52:00
ID : r83A0so7wGq
0
그런 가운데 리카는 관광을 하는 것도 쇼핑을 하는것도 아니면서 그냥 걸었다.
11
이름없음
2020/03/03 16:53:34
ID : r83A0so7wGq
0
젊은 유럽인 커플이 노천 가게 앞에서 티셔츠를 구경하고 있다.
12
이름없음
2020/03/03 16:54:48
ID : r83A0so7wGq
0
일본인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악세사리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 팔찌며 목걸이를 고르고 있다.
13
이름없음
2020/03/03 16:55:31
ID : r83A0so7wGq
0
중국인으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이 코끼리 장식물을 둘러싸고 흥정하느라 침을 튀기고 있다.
14
이름없음
2020/03/03 16:56:37
ID : r83A0so7wGq
0
랩 스커트를 입은 중년 여성이 포장마차의 네모난 그릇에 담긴 반찬을 가리키고, 비닐에 담은 반찬을 받아들었다.
15
이름없음
2020/03/03 16:57:30
ID : r83A0so7wGq
0
시부야 언저리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차림의 이 지역 여자아이가 팔짱을 끼고 걷고 있다.
16
이름없음
2020/03/03 16:58:08
ID : r83A0so7wGq
0
향신료와 기름과 타이 쌀 냄새가 마을을 뒤덮듯이 떠돌고 있다.
17
이름없음
2020/03/03 16:59:05
ID : r83A0so7wGq
0
사람이 많기로 말하자면 방콕이 앞도적이지만, 그래도 리카는 그 도시에서 모습을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18
이름없음
2020/03/03 16:59:52
ID : r83A0so7wGq
0
그래서 언제나 흠칫거렸고, 대부분을 축축한 게스트 하우스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19
이름없음
2020/03/03 17:30:02
ID : r83A0so7wGq
0
하지만 이 도시는 다르다. 방콕보다 훨씬 혼잡하고 그늘이 짙게 느껴진다.
20
이름없음
2020/03/03 17:31:35
ID : r83A0so7wGq
0
기온도 습도도 그리 다르지 않을텐데, 햇살에 하얗게 염색된 도시 곳곳에 그늘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21
이름없음
2020/03/03 17:32:24
ID : r83A0so7wGq
0
오전에도, 한낮에도, 도시 그 자체가 밤에 싸이기를 나른하게 기다리고 있다.
22
이름없음
2020/03/03 17:33:31
ID : r83A0so7wGq
0
그리고 리카에게는 온 도시에 깔린 그 그늘 속에서 관광객도, 지역 주민도 아닌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멍하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23
이름없음
2020/03/03 17:38:46
ID : r83A0so7wGq
0
너무 오래 여행을 해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 싸구려 마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 돌아갈 곳을 잃은 사람들. 사정이 있어 도망쳐 온 사람들.
24
이름없음
2020/03/03 17:40:18
ID : r83A0so7wGq
0
이 도시의 혼잡과 그늘은 그들이 그곳에 계속 멍하니 있는 것을 허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25
이름없음
2020/03/03 17:48:00
ID : r83A0so7wGq
0
리카는 밤이면 밤마다 노천시장 근처를 돌아다녔다.
26
이름없음
2020/03/03 17:48:50
ID : r83A0so7wGq
0
게스트 하우스에 틀어박혀 있기보다 그러는 편이 아무한테 들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27
이름없음
2020/03/03 17:51:33
ID : r83A0so7wGq
0
자신도 그늘에 푹 싸이는 것 같았다.
28
이름없음
2020/03/03 17:58:06
ID : r83A0so7wGq
0
그래서 실크 드레스도, 보석이 박힌 반지도, 하다못해 엽서 한 장 조차도 갖고 싶은 것은 없었지만, 리카는 조명에 비쳐 젖은 듯이 반짝거리는 상품을 구경하며 다녔다.
29
이름없음
2020/03/03 18:03:28
ID : r83A0so7wGq
0
배가 고프면 눈에 띄는 포장마차나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국수나 볶음밥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30
이름없음
2020/03/03 18:04:18
ID : r83A0so7wGq
0
방콕에서 산 조악한 티셔츠와 스커트는 빨아서 입는데도 어째선지 나날이 지저분 했다.
31
이름없음
2020/03/04 00:22:43
ID : r83A0so7wGq
0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갖고 사방으로 튀는 빛과 소음 속을 걷다 보면, 리카는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큼 흥분을 느꼈다.
32
이름없음
2020/03/04 00:23:17
ID : r83A0so7wGq
0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33
이름없음
2020/03/04 00:23:29
ID : r83A0so7wGq
0
어디로든 갈 수 있다.
34
이름없음
2020/03/04 00:23:52
ID : r83A0so7wGq
0
갖고 싶은 것은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
35
이름없음
2020/03/04 00:24:05
ID : r83A0so7wGq
0
아니, 그렇지 않아.
36
이름없음
2020/03/04 00:24:29
ID : r83A0so7wGq
0
원하는 것은 모두 이미 이 손에 있어.
37
이름없음
2020/03/04 00:27:38
ID : r83A0so7wGq
0
리카는 얼마 전에 이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38
이름없음
2020/03/04 00:30:29
ID : r83A0so7wGq
0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39
이름없음
2020/03/04 00:30:56
ID : r83A0so7wGq
0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무엇 하나 없었다.
40
이름없음
2020/03/04 00:31:39
ID : r83A0so7wGq
0
하지만 지금의 기분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41
이름없음
2020/03/04 00:32:34
ID : r83A0so7wGq
0
리카는 신기했다.
나는 무언가를 얻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잃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42
이름없음
2020/03/07 12:24:51
ID : r83A0so7wGq
0
조간에서 빼낸 전단들을 테이블에 죽 펼쳐놓았다.
43
이름없음
2020/03/07 12:25:58
ID : r83A0so7wGq
0
오카자키 유코는 각기 다른 슈퍼마켓의 전단을 대조하며 빨간 펜을 들고 특가품 가격을 비교했다.
44
이름없음
2020/03/07 12:26:26
ID : r83A0so7wGq
0
열어놓은 창으로는 미풍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45
이름없음
2020/03/07 12:27:02
ID : r83A0so7wGq
0
햇볕의 정도에 따라 춤추는 먼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46
이름없음
2020/03/07 12:27:38
ID : r83A0so7wGq
0
어딘가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나고, 엄마가 야단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47
이름없음
2020/03/07 12:33:35
ID : r83A0so7wGq
0
역 반대쪽에 있는 슈퍼마켓에서는 참치 통조림과 식빵이 싸다. 이쪽 슈퍼에서는 고기류를 30퍼센트 할인.
48
이름없음
2020/03/07 12:35:59
ID : r83A0so7wGq
0
먼저 이웃 동네 유자와야에 가서 옷감을 사고, 슈퍼에서 고기를 산 뒤, 동네 슈퍼로 돌아와서 냉동식품 구입.
49
이름없음
2020/03/07 12:45:43
ID : r83A0so7wGq
0
자전거로 돌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50
이름없음
2020/03/07 12:46:19
ID : r83A0so7wGq
0
유코는 일주일분씩 생활비를 넣어두는 봉투를 들고 일어서서 창을 닫았다.
51
이름없음
2020/03/07 12:46:59
ID : r83A0so7wGq
0
유코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우메자와 리카를 떠올렸다.
52
이름없음
2020/03/07 12:47:23
ID : r83A0so7wGq
0
유코가 아는 리카는 가키모토 리카였지만.
53
이름없음
2020/03/07 13:02:51
ID : r83A0so7wGq
0
가키모토 리카는 유코의 중고등학교 시절 동창이었다.
54
이름없음
2020/03/07 13:03:08
ID : r83A0so7wGq
0
그렇긴 하지만, 친구였던건 아니다.
55
이름없음
2020/03/07 13:03:31
ID : r83A0so7wGq
0
친구라고 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호하다.
56
이름없음
2020/03/07 13:04:25
ID : r83A0so7wGq
0
신문에 우메자와 리카의 이름이 실렸을 때, 유코도 바로는 그게 가키모토 리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57
이름없음
2020/03/07 13:04:48
ID : r83A0so7wGq
0
거기 실린 조악한 사진을 보고서도.
58
이름없음
2020/03/07 13:20:02
ID : r83A0so7wGq
0
우메자와 리카와 카기모토 리카가 유코의 머릿속에서 하나가 된 것은 벌써 몇 년째 연락하지 않던 고교 시절 동창에게 전화가 온 뒤였다.
59
이름없음
2020/03/07 13:20:49
ID : r83A0so7wGq
0
우메자와 리카, 바로 그 리카야, 가키모토 리카.
60
이름없음
2020/03/07 13:21:29
ID : r83A0so7wGq
0
얼굴도 희미하게 밖에 생각나지 않는 그 동창은 말했다
61
이름없음
2020/03/07 13:22:04
ID : r83A0so7wGq
0
나, 사짱에게 전화 받고 깜짝 놀랐어, 그 리카라고 해서.
62
이름없음
2020/03/07 15:20:33
ID : r83A0so7wGq
0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던 유코는 그런걸 물었다.
63
이름없음
2020/03/07 15:26:18
ID : r83A0so7wGq
0
7년 전 동창회에 오다, 너도 왔었지?
왜 그때 어쩐 일로 리카도 왔었잖아?
생각해보면 그때 이미 리카는 손을 담갔던건가 봐......
뭔가 믿을 수 없어, 엄청 평범했지 않니?
어쩌면 전화 연결이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 전화를 한 건 말이야, 리카 얘기가 아니라 동창회가 또 있어.
곧 안내 엽서가 가겠지만......
64
이름없음
2020/03/07 15:28:36
ID : r83A0so7wGq
0
동창 목소리를 들으면서 유코가 생각했던 것은 가키모토 리카의 일이 아니라, 그러고 보니 나는 오다 유코였다, 라는 것과 이곳에 산 지 벌써 10년이나 지났나, 하는 것이었다.
65
이름없음
2020/03/07 15:30:29
ID : r83A0so7wGq
0
얘, 정말 놀랍지, 그 리카가......
동창은 유코에게 놀라는 목소리를 이끌어내려는 듯이 재차 말했지만, 유코는 그러게, 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66
이름없음
2020/03/07 15:32:49
ID : r83A0so7wGq
0
그러게, 라니 그것뿐이야?
동창은 또 말하고, 유코는
이 전화 나도 누군가한테 걸어야 하는 거야?
하는 소리를 문득 중얼거려 동창이 어이없어 했다.
뭐야, 긴급연락도 아니고. 또 동창회에서 만날 거니까 그때......
동창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67
이름없음
2020/03/07 15:47:49
ID : r83A0so7wGq
0
교외에 있는 와카바 은행 지점에서 마흔한 살의 계약 사원이 약 1억 엔을 횡령했다.
68
이름없음
2020/03/07 15:48:07
ID : r83A0so7wGq
0
그 뉴스가 흘러나온 것은 봄이었다.
69
이름없음
2020/03/07 15:49:18
ID : r83A0so7wGq
0
동창의 전화로 행방불명이 된 그 범인과 유코가 아는 가키모토 리카는 비로소 하나로 합쳐졌지만, 합쳐지고 나니 더 현실감이 없다.
70
이름없음
2020/03/07 15:49:47
ID : r83A0so7wGq
0
1억이라는 숫자에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71
이름없음
2020/03/07 15:55:20
ID : r83A0so7wGq
0
용의자 우메자와 리카는 아직 잡지 못했다. 최근에는 그런 뉴스가 있었던 걸 세상 모두가 잊어버린 듯 텔레비전에서도 신문에서도 새로운 뉴스만 보도하고 있다.
72
이름없음
2020/03/07 15:56:18
ID : r83A0so7wGq
0
리카를 까맣게 잊어버린 언론과는 달리, 유코는 날이 갈 수록 리카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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