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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간단하게 써보는 판소 (9)
3.떡밥을 던져주세요. (12)
4.자유롭게 연습하려고 만든 스레 (27)
5.//////////////// (1)
6.블러드본 게임 스토리를 소설로 옮기며 연습하는 스레 (3)
7.허접한 글솜씨의 여주먼치킨 판타지소설 (19)
8.갑자기 분위기 조각글 (16)
9.스레주가 심심하면 글쓰러오는 스레 (1)
10.여주를 죽일까 살릴까 (7)
11.로판 클리셰 몽땅붓는 소설 (8)
12.주인공 이름이 이상하면 (28)
13.스팀펑크에 로맨스를 뿌려보았다. (2)
14.이런 로판은 어때? (9)
15.만화 속 클리셰로만 릴레이 소설을 써보자 (40)
16.평범한 아이돌은 가라! 🐶판이 왔다! (4)
17.집착쩌는 소설 추천 좀 (3)
18.얘들아 우리학교 과제인데 평가좀해줘 (7)
19.글인 듯 글 아닌 것 같은 거, 쓰고 가기 (4)
20.쓴다....글.....허접한..... (2)
평소에 판타지 세계관 망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생각만 하기에는 아까워서 얼마 전부터 쓰기 시작한 판타지 소설이 있어
그런데 1달쯤 뒤부터 시험 준비를 할 예정이야 (합격까지 대충 3년 잡고 있음)
머릿속에 자꾸 소설 줄거리가 떠오르고 요즘 바빠죽겠는데 계속 뒷내용 구상하고 있어서
여기에 다 올려버리고 시원하게 미련 버릴거야
줄거리는 대충 니아라는 소녀가 짱짱쎄다는 얘기
글은 처음 써본거라 필력은 기대하지 말았으면
+ 유치뽕짝
1. 니아 캐럿
전생에 니아는 평생 판타지 소설 속 삶을 동경하던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니아는 본인이 전생에 어떻게 생겼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전생에서 읽었던 소설의 내용과 글을 읽을 당시의 짧은 감상을 환생한 후에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의 감상은, ‘이 여자 인생 참 재밌네.’라던가, ‘나도 이런 판타지 세계에서 태어났더라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니아가 그 동경하던 세상에 태어났느냐고?
니아는 신이 있다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존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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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라니, 어디서 또 무슨 해괴망측한 단어를 배워온거니, 니아?”
흔하디 흔한 시골집 주방에서 감자를 씻으며 훈계하는 사람은 니아의 어머니, 티파니 캐럿씨이다.
“엄마, 나 개명 좀 시켜주면 안돼? 니아라니 무슨 중세 로맨스 판타지의 별볼일 없는 하녀 이름같잖아.”
그 옆에서 똑같이 감자를 씻는 남색 단발머리를 한 8살의 소녀가 바로 니아 캐럿이다.
“별볼일 없는 하녀라니, 니아. 나는 네가 귀족 저택에서 하녀 일만 하게 돼도 마을 잔치를 열 거란다.”
니아가 듣기로 티파니 캐럿씨는 어릴 적 자신과 똑같은 이름의 공주님이 나오는 동화책을 읽고 자신도 언젠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공주님이 될 것이라고 무려 15살 때까지 믿었다고 한다.
딸인 니아도 그런 오해를 하며 살까봐 동화책의 하녀 이름 하나를 따와 이름으로 지은 게 틀림없다며 니아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니아 캐럿이라니. 하녀와 당근의 조합인가.
“엄마는 꿈이 너무 작아.”
“소작농 집안의 꿈 치고는 근사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물론 그럴 것이다. '근사한 것을 넘어 분에 넘치는 꿈이었겠지.'
산업혁명도 일어나지 않은 이런 시대의 소작농의 딸이란 평생 아버지의 농사나 어머니의 집안일을 돕다가 적당한 소작농집 아들에게 시집가는, 엄청나게 지루한 삶을 사는 존재다.
“나는 그 근사한 꿈보다 훨씬 엄청난 걸 보여줄 수 있는데!”
“또 산에 올라가겠다는 소리면 그쯤 해두렴. 언제까지 떼를 쓸거니?”
티파니 캐럿씨가 한숨을 쉬며 니아를 돌아보았다. 머리카락색은 니아와 다른 갈색이지만 걱정스러운 빛을 띠는 눈동자는 두 모녀 모두 맑은 푸른 색이다.
'엄마는 몰라. 내가 그 산에서 얼마나 대단한 걸 찾아낼 수 있는지. 가난한 소작농의 삶도 수도 거부의 삶으로 바꿔줄 수 있는 엄청난 보물이, 걸어서 반나절도 안 걸리는 곳에 묻혀 있는데, 왜 가질 못하는 거냐구!'
“그럼 아빠랑 같이 가면? 응?”
“네 아빠한테 가서 얘기해보렴.”
티파이 캐럿씨가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이유는 니아의 아버지도 허락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 8살짜리 여자애가 늑대가 나온다는 산에 같이 올라가자고 하면 허락할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알았어, 얘기해 보고 올게.”
그럼에도 니아가 이렇게 순순히 대답하는 이유는,
‘몰래 가면 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화로 해결하려고 했다가는 저 산에 올라가기까지 5년은 더 걸릴 것이다.
'그전에 누가 가져가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배 아파! 물론 그걸 쉽게 발견해 낼 리는 없지만 말이야.’
니아는 짧은 다리로 전력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의 시각에 환상마법을 걸어 놔서 천천히 걸어도 들킬 위험은 없지만, 도착지가 그렇게 가깝지는 않아서 뛰지 않으면 오늘 안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니아는 산 중턱에 묻혀 있을 주먹만 한 다이아 원석을 떠올리며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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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아 스스로가 환생을 했다는 사실과, 전생에 읽은 소설 줄거리와 감상을 떠올린 때는 태어난 바로 직후였다.
전생의 모든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설을 읽으며 떠올렸던 생각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니아의 정체성은 훨씬 이르게 확립되었고, 많은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
평생 농사와 집안일만 해왔던 캐럿 부부는 니아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얼마나 많이 다른지는 알지 못했다.
참 다행인 일이었다. 5살 때 역사책이 필요하다고 조른 아이는 이 세계에 몇 안될 것 같으니 말이다.
전생의 기억 외에도 니아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마법’이다. 산에 묻혀 있는 다이아몬드도 이 능력으로 찾아낸 것이었다.
“음,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가 기억이 안 나네.”
니아는 눈을 감고 발 아래에 감각을 집중했다.
그 순간 땅의 입자 하나하나가 느끼는 감각들이 머릿속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발 바로 아래의 땅부터 그 아래, 점점 더 깊숙히...
평범한 사람이 이 방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였다가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가 혼절할 테지만, 니아의 손가락 부근에 떠 있는 푸른 문양이 정보를 걸러서 머리에 전달하고 있었기에 가뿐했다.
“아, 찾았다. 뭐야, 바로 코앞이었잖아?”
니아는 원석이 묻혀있는 바로 위에 서서….
‘서서…..’
순간 니아는 작은 문제점을 깨달았다.
“삽을 안가져왔어!”
엄청나게 깊게 묻혀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손으로 파도 문제는 없지만, 그러면 분명 손이 심하게 엉망이 돼서 부모님께 혼이 날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주먹만 한 다이아 원석을 가져가는데 이 정도는 봐주시지 않겠어?”
니아는 바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쯤 후에 니아는 꿈에 그리던 다이아 주먹, 아니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역시 ‘캐럿’가문의 역사에는 뭔가가 있는 거겠지.’
니아는 이렇게 큰 다이아몬드 원석이 아무리 시골집이라고는 해도 하필 ‘캐럿(Carat)가’의 집 근처에 묻혀 있다는 것이 우연일리가 없다고 추측했다.
아빠인 로널드 캐럿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나중에 정보길드를 통해 조사를 하다보면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작은 호기심을 뒤로하고 니아는 그 길로 바로 집에 돌아가 엄마 아빠의 눈물 젖은 환대를,
“산이 그렇게 좋으면 산에 가서 살아, 이 나쁜 년아! 세상에, 손은 또 왜 그 모양이야?”
환대를…
“어, 엄마! 이거 다이아몬든데! 아, 아빠?”
환대를 받았…
“나는 너같이 말 안 듣는 딸 둔 적 없다!”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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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부모님께 혼이 난 것과는 별개로, 니아의 가족은 무사히 다이아몬드를 팔고 부자가 되어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9살 봄 끝자락의 일이었다.
변변한 인맥도 없는 시골뜨기들이 사기도 당하지 않고 다이아몬드를 무사히 파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니아가 다이아몬드를 찾아온 이후로 로널드 캐럿씨는 니아가 하는 말이라면 모두 믿어주었기 때문에, 니아의 뛰어난 선견지명(을 빙자한 마법)으로 믿음직스러운 보석상을 찾아 거래를 할 수 있었다.
“니아, 거기에 있는 상자 좀 이쪽으로 가져오렴!”
“잠시만!”
아직 짐정리가 다 끝나지 않은 집은 어수선했지만, 정리가 되지 않은 모습도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훌륭했다.
니아는 상자를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5살 때 부모님을 졸라 얻은 역사책을 통해 니아는 이 세계가 전생에 읽었던 소설책 속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냈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전생에 니아는 주로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였다는 것이고, 장르는 판타지이지만 이 세계에서 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남자주인공 한 명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의 이름이 레이 카인즈.
카인즈 백작가의 차남이며, 카인즈는 니아 가족이 이사 전에도, 이사 후에도 쭉 머물고 있는 영지의 이름이다.
소설의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애초에 니아가 끝까지 읽은 소설도 아니었다. 레이가 의문의 병을 앓다가 숲에서 요양을 하게 되면서 스토리가 시작되었는데, 성년이 되기 전 레이가 마법의 힘을 깨닫고 모험을 떠나 마수를 물리치는 내용이 소설 중반부까지 전개되었다.
‘뻔한 히어로 소설이네. 요즘은 이런 소설 인기 없는데. 재미도 없고.’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던 것 같다.
아니 책이 아니라 무슨 네모난 장치로 보았던 것 같은데, 전생을 모두 기억하는 게 아니다 보니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 세계에는 마수가 존재하고, 그에 맞서 용병과 기사들이 존재하지만 마법사는 레이와 니아가 유일했다.
'내가 쓰는 힘이 마법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신비한 푸른 빛을 보면 아마 맞을 거야.'
“니아, 여기 안에 든 것도 정리해주렴.”
마법사는 이 세계에 단 두 명이었지만, 마법이 희귀한 이유가 마법사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고대 마법진을 이용한 마도구와 스크롤은 마법사 없이도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마정석이 거의 고갈되어서 이제 황실 말고는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없지만 말이다.
“니아!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거니?”
“아, 알았어, 엄마. 중요한 생각 중이었단 말이야.”
니아는 티파니씨의 말에 대꾸하며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안락한 카펫과 소파가 놓여있는 응접실 창문 사이로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다.
창문 너머로는 작은 정원이, 그 너머로는 크고 활기찬 대로변이 보였다. 대로변 위로는 어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바쁘게 걸어 다녔고, 대로변 너머로는 빵 가게, 옷 가게, 장난감 가게 등등 다양한 가게가 즐비해 있었다.
카인즈 성 바로 근처의 메인 스트리트, 단델리온 거리였다.
이렇게 번화한 거리에 있는 저택은 무척 비싸지만, 니아가 구한 다이아몬드의 반의 반 가격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캐럿가는 아주 부자가 되었지만 로널드씨는 돈을 벌지 않는 것은 영 불안하다며 다음날부터 대로변을 따라 일자리를 알아보러 가겠다고 말했다.
‘내가 알려준 대로 주식 투자만 해도 카인즈 백작가보다 부자가 될 텐데.’
니아는 아버지에게 주식투자에 대해 말했지만 로널드씨는 ‘투자는 투자고, 일하는 건 일하는 거다.’라고 말하며 일을 구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어휴, 민들레 씨가 집안에 다 들어왔네. 먼지때문에 창문을 닫을 수도 없는데, 정말."
티파니씨의 불평과는 달리, 단델리온 거리의 상징인 하얀 민들레 꽃씨는 니아의 새 인생을 응원하는 듯했다.
2. 루나 그린 선생님
니아가 가진 마법 능력은 만물에게서 감각 정보를 얻고 그 감각을 통제하는 능력이었다.
신기하게도 생명체가 아닌 물, 흙, 바람 따위에서도 감각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정령술 같기도 했다.
능력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오감을 모두 통제하는 방식으로 아주 정교한 환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니아가 가만히 서 있어도 상대방은 초절정 미녀가 걸어와서 뺨을 때렸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능력을 바람에 적용하면 바람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바람이 전해오는 거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니아는 방에서 창문만 열고 있어도 동쪽으로 30km가량 떨어진 레티스 후작가 본성의 하녀 둘이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뭐? 에일리 너 포튼 좋아해? 너 얼마 전에 식료품 창고에서 조나단이랑 키스했다며?!’
‘포튼이 더 키스를 잘해?! 포튼이랑은 또 언제 했는데!’
니아는 남의 비밀 이야기를 엿듣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은밀한 취미생활을 끊지 못했다.
에밀리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본인 스스로도 모르게 계속 듣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니아, 어서 자렴. 내일은 아침부터 선생님이 오실 거야.”
“선생님? 무슨 선생님?”
“네 아빠가 얘기 안해줬니? 도시로 이사를 왔으니 너도 더 많은 걸 배워야지.”
티파니씨는 산지 얼마 안된 새하얀 이불을 니아의 어깨까지 덮어준 후 문을 닫고 나갔다.
‘선생님!’
니아가 사는 엔노이아 제국은 고대 마도사들이 세운 나라로, 지식을 추구하는 그들의 성향에 맞게 문자의 보급이 잘 이루어져 있었다.
마정석 고갈을 예견한 괴짜 마도사가 까마득한 고대 시절부터 마정석 없이도 작동하는 타자기를 발명해놓은 탓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촌구석이라도 집집마다 동화책 몇 권 정도는 있었고, 캐럿가는 니아가 생떼를 써서 동화책 외에도 역사책 한 권과 신문 몇 십 부가 있었다.
캐럿 부부는 없는 살림에도 무리해가며 사준 것이었지만, 전생에 얼마나 많은 소설책을 읽었는지 기억하는 니아로서는 그조차도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선생님과의 만남을 상상하는 니아의 볼은 설렘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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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니아는 새로 산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신선한 햄과 토마토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맛있게 해치운 후,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에는 니아와 비슷한 노란 원피스를 입은 갈색머리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어머, 나랑 커플룩이야!가 아니라, 내가 선생님을 기다리게 했잖아?’
“선생님, 죄송해요! 혹시 오래 기다리셨나요?”
첫 수업부터 지각을 했다는 생각에 니아는 다소 시무룩해졌다. 좋은 첫인상을 주고 싶었는데.
“어머, 니아. 사과할 것 없단다. 내가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더 일찍 도착해 버린 게 잘못이지.”
니아를 바라보는 초록색 눈동자는 따사한 햇빛 아래 이슬이 맺힌 풀잎처럼 아름다웠고, 반달처럼 휜 눈매와 고운 목소리는 귓가에 하프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내 소개를 안했구나. 나는 루나 그린이라고 해. 이리 와서 앉으렴. 니아와 하는 수업은 즐거울 것 같아서 무척 기대가 돼.”
상냥한 루나 선생님의 어조만큼이나 수업은 평탄하고 재미있었다.
제대로된 수업이 처음인 니아를 고려해서 루나 선생님은 국어, 수학, 과학, 역사학, 신학 등 각 과목이 어떤 것을 배우는 과목인지부터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수업을 할 때 드는 예시는 아주 생생해서 설명이 니아의 귀에 쏙쏙 박혔다.
“니아가 길을 걷다가 은화 하나를 주웠어. 그런데 한 청년이 와서 자신의 동화 100개와 바꾸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음…선생님이 은화 하나는 동화 100개 가격이랑 비슷하다고 했으니까, 바꿔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사람은 은화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요.”
“아니란다, 니아. 니아는 청년이 건네주는 동화가 정말 100개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니?”
“아니요..?”
“만약 그 청년이 동화를 90개만 주고 니아의 은화를 가지고 도망간다면, 니아는 눈을 뜨고 코를 베이는거야!”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지식도 함께 가르쳐주어서 니아는 수업 내내 똑똑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루나 선생님은 니아에게 세상의 냉정한 면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늘 배려심과 도덕심을 상기시켜주었다.
“니아, 세상에는 고아원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단다. 그 아이들에게는 너의 작은 도움이 큰 희망이 될 수도 있어.”
루나 그린 선생님의 존재는 전생에 이기적인 현대인이었던 니아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정화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3. 단델리온 거리의 인연
단델리온 거리로 이사오고 니아가 루나 그린 선생님과 수업을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흘렀다.
그동안 니아에게는 두 명의 단짝이 생겼다.
한 명은 빵가게 집 딸, 마를린, 한 명은 옷가게 집 딸, 포니였다.
마를린은 곱슬거리는 금발과 금안을 가진 소녀로, 연약해 보이는 외모지만 성격은 정반대였다.
단델리온 거리의 꽤 깊숙한 골목에 위치한 브라운 베이커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을 가장 먼저 맞는 것이 "어서옵쇼!"하는 마를린의 굵고 우렁찬 인사소리였다.
니아가 브라운 베이커리의 스콘에 환장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니아가 스콘을 사러 가면 꼭 하나씩 더 얹어주는 믿음직스러운 친구였다.
옷가게 집 딸 포니는 갈색머리에 갈색 눈동자로, 다소 평범한 외모를 갖고 있지만, 자수를 놓을 때면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아이였다.
소심한 성격이지만 마를린이 하체 비만이라고 놀려도 의외로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언젠가 포니는 니아에게 카인즈 백작성에 옷방 하녀로 취직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기성복을 만드는 것보다 단 한사람을 위해서 바늘을 잡는 것이 훨씬 로맨틱하다면서.
니아가 이사오기 전에 마를린과 포니는 일면식만 있던 사이였지만, 함께 놀기 시작한 이후로 셋은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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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아, 어떡해...! 마를린이 실종됐대!"
그러던 어느날, 니아는 포니에게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를린이 초저녁에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것, 카인즈 영지 소속 수색대의 도움을 받아 단델리온 거리 근처를 샅샅이 뒤졌으나 작은 단서조차 찾지 못했다는 것어었다.
카인즈 영지 바깥으로 사라졌을 가능성도 염두해 두고 있다고 했다.
8살까지 살던 집 바로 뒷산 정도의 면적도 한달에 걸쳐서 탐지마법을 펼쳤다.
넓은 면적을 한번에 탐지했다가는 정보량이 너무 많아 심한 두통이 일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인즈 영지 전체를 하루 안에 모두 훑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만약 마를린이 영지 밖으로 이동 중이라면? 그러면 오늘 안에 마를린을 찾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러다가 마를린이 험한 꼴이라도 당하면, 아니 죽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거야?'
"수색대에 의뢰를 했다니까... 우리는 어른들과 함께 마를린을 찾아보자. 큰 도움은 안되겠지만, 그, 그래도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차근히 해나가면 되는 거야."
포니의 말에 니아는 정신이 들었다.
'맞아. 어차피 하루 만에 마를린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나는...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니아는 포니에게 부모님을 설득하러 집에 가겠다고 말한 후 방에 틀어박혀 탐지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찾는다는 기대는 하지 말자. 나는 그저 최선을 다 하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감각 정보를 읽자. 정보를 걸러주는 마법에 더 집중을 하면 더 넓은 영역을 한번에 훑을 수 있을지도 몰라.'
니아는 집 주변부터 영역을 점차 넓혀가면서 마를린의 형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동이 트기 직전까지도 마를린을 찾을 수 없었다.
'카인즈 영지 중심부는 다 훑었는데... 아니, 찾을 수 있어. 외곽까지 훑자. 영역을 더 넓혀서...'
"윽!"
한계치에서 탐지마법의 영역을 더 넓히려고 하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정보의 깊이를 더 얕게 하자. 손끝에 마나를 더 집중해서, 정보를 더 걸러내면 괜찮을거야. 머리는 곧 괜찮아질 거야. 이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니야. 정보를 거르는 마법을 더 세게, 탐지 영역은 더 넓게...'
과할 정도로 손 끝에 힘을 집중하자 머리가 급속도로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영역의 감각 정보가 머리 속에 들어왔다.
'이건...세상에, 이렇게 넓은 영역의 감각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흘러들어오는 정보량은 많지 않은데 마를린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판별이 가능해. 이거 진짠가? 있는데 없다고 막 넘어가버리는 거 아니겠지?'
믿음 반 불신 반으로 탐지마법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찾았어! 오, 맙소사, 마를린!! 대체 왜 거기있는거야!"
[그러게나 말이야.]
니아는 카인즈 영지 경계의 야산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있는 마를린을 찾아냈다.
밤 사이에 짐승 먹이가 되지 않은 것이 기적일 정도로 위험한 위치였다.
니아는 자고 있던 로널드씨에게 달려가 마를린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고, 그와 단 둘이 마차를 타고 마를린을 데리러 갔다.
로널드씨는 니아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8살 때 다이아 원석을 찾아낸 이후로 니아에게 무언가를 찾아내는 신묘한 능력이 있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니아는 부연 설명 없이 로널드씨와 둘이서 마를린을 찾으러 갈 수 있었다.
마를린이 실종된 바로 다음날 정오, 니아는 무릎 속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있는 마를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를린!"
"...니아?"
마를린의 얼굴은 눈물 범벅에 퉁퉁 부어서 니아가 보기에 아주 웃겼다. 웃으면 안되는 상황임에도 니아는 안도감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니아... 나 실종됐다가 지금 극적으로 발견된 상황 아닌가...?"
[그러게나 말이다. 얘가 참 생각이 있는 듯 없네.]
"생각이 있는 듯 없다는 건 뭐야, 아빠."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니아. 어서 마를린을 데리고 돌아가자. 모두가 걱정하고 있으니."
"응? 아빠가 방금..."
니아는 방금 목소리가 아빠의 목소리였는지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무슨 목소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연히 무슨 목소리인지 모르겠지. 애초에 목소리가 아니니.]
"으엣!"
'뭐, 뭐야? 지금 내 머리속에서 들린거야? 귀신? 환청? 내가 드디어 미친건가?'
[귀신 아니고, 환청 아니고, 너 안미쳤고, 나는 마나 덩어리야.]
'마나 덩어리?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지금 이런 걸 묻고 있을 때가 아닌데!'
니아는 마차에 올라 마를린과 눈물젖은 상봉을 한 후 마를린에게 단델리온 거리로 바로 갈 것인지, 아니면 근처 마을로 가서 밥을 먹을 것인지 물었다.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기는 한데,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어떻게 된 일인지도 나중에... 지금은 말할 기운이..."
"그래, 마를린. 집으로 돌아가면 그냥 푹 쉬어라. 자세한 건 내일 말해줘도 좋으니."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고마워, 니아..."
야산에서 밤을 꼴딱 세운 마를린은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도 기절한 듯 잠만 잤다.
니아는 마를린을 찾으러 갈 때 마차에서 잠시 쪽잠을 잤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며 머리 속의 이상한 존재와 대화하는 데에 집중했다.
'저기...여보세요?'
[응. 안녕.]
'누구세요? 아니 왜 내 머리속에 있어요? 갑자기 왜 나타나신 거에요?!'
[나는 마나 덩어리.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야. 너한테 말 걸기 시작한건 오늘 아침이지만, 원래 네가 태어날 때부터 네 속에 있었으니까.]
'에? 예? 제 속에 있다고요...? ...예?!'
[일단 좀 침착하고. 차근차근 설명해 줄테니까. 일단 들어봐.]
==
태초에 신은 본인의 영혼을 본따 마나를 창조했다.
마나란, 영혼의 조각. 모든 생명의 근간이며, 생명체가 본인이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느끼고 주체적으로 사고(思考)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었다.
세계는 신이 만들어낸 마나로 가득 채워졌고, 이후 생명이 탄생할 때마다 주위에 있던 마나들이 생명체 안으로 흡수되었다.
얼마나 많은 마나가 흡수되느냐에 따라서 생명체의 자아가 강해졌다. 인간은 가장 많은 마나를 흡수하는 생명체 종 중의 하나였다.
마나가 흡수되면 마나일 적의 성격과 기억을 잃고 생명체 안의 유전자에 따라서 새로운 성격의 영혼으로 재탄생했다. 생명체가 죽으면 안에 깃들어있던 마나는 자아를 잃고 다시 자연상태로 흩어졌다.
어느날, 신의 변덕인지, 다른 세계의 영혼이 한 소녀의 육체에 안착했다.
원래 마나가 흡수되기 전까지는 육체에 자아가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다른 세계의 영혼으로 인해 소녀는 마나가 접근하기도 전에 다른 세계의 기억까지 보존된 채로 자아가 형성되었다.
자아가 마나로 구성된 것도 물론 아니었고. 육체에 마나가 깃들어있지도 않았으니 자연적으로 마나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소녀의 육체를 지배하는 영혼이 이미 존재하였으므로 마나는 육체의 유전자와 접촉하지 못하였으며, 마나로서의 기억을 보존한 채로 하나의 자아 덩어리가 되어서 소녀의 몸 속에 공존하게 되었다.
생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마나가 아닌 여분의 마나를 가지게 된 육체는 이제껏 없었던 이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마나일 적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아가 다른 마나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자연 상태로 공기, 물 땅 속에 퍼져있는 마나들이 기억하는 정보를 읽어낼 수 있었으며, 다른 생명체의 몸 속에서 마나와 육체가 감각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 간섭할 수 있었다.
소녀는 이 마나 덩어리의 능력을 통해 공기 중의 마나들이 기억하는 소리를 듣고, 물체의 형상과 위치를 파악하면서 이를 '탐지 마법'이라 명명했다.
또, 다른 사람의 감각을 교란시켜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환상 마법'이라 불렀다. 탐지 마법과 환상 마법 도중에 발생한 정보량은 소녀의 정신을 해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소녀는 본능적으로 손 끝에 힘을 실어 몸 속의 마나 덩어리를 몸 바깥으로 실체화했고, 별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던 마나 덩어리는 소녀의 육체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간섭해 중요한 정보만 추려 소녀의 뇌로 전달했다.
소녀가 마나 덩어리를 실체화하는 양이 커질수록 마나 덩어리가 소녀의 정신에 간섭할 수 있는 힘이 강력해졌다. 그래서 바로 오늘 아침, 소녀가 손 끝에 가장 많은 마나 덩어리를 실체화한 순간, 마나 덩어리는 소녀의 머리속으로 말을 거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라는 거지. 여기에 등장하는 소녀가 바로 너고, 마나 덩어리가 바로 나고.]
'우, 우와... 그동안 궁금했던거 80%는 해결된 것 같아...'
[후훗. 질문있나?]
'어, 음... 설명 중에서 '자아'라는 건... 그냥 뇌의 작용 아니었나요?'
[글쎄. 네가 본래 살고있던 세계에서는 그랬을 수도 있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네가 살던 곳이랑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야. 이곳에서 네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 네가 살던 세계의 인간과는 다른 생명체인 거라고. 그렇지만 네 원래의 세계에서도 그저 뇌의 작용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뇌의 작용이 아니었다고요?'
[그래. 아까 말했잖아? 다른 세계의 '영혼'이 육체에 안착했다고. 네가 있던 세계에 영혼이라는 게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으로 변환시킬 만한 무언가는 있었다는 뜻이겠지.]
'그렇군요... 그러니까 적어도 마력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는 마나가 생명을 이루는 근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영혼의 조각이라는 비유를 한거고요?"
[맞아.]
'흡수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마나도 사고(思考)를 하나요?'
[흩어져있는 마나 하나는 고차원적인 사고는 하지 못해. 그렇지만 정보를 저장하거나 좋고 싫음을 느낄 수는 있지.]
'자연상태의 마나들끼리 모여서 육체가 없는 자아를 형성할 수도 있나요?'
[아니. 애초에 마나는 생명체가 탄생할때 한꺼번에 흡수될 뿐이지 자기들끼리 모이지 않아. 그저 아무 곳에나 흩어져 있을 뿐이지. 생명체가 탄생할 때도 자아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양만 모이면 더이상 마나가 흡수되지 않아. 네가 굉장한 특이 케이스인 거지.]
'당신은 흩어져있는 마나일적의 기억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가요? 이런 마나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은 어떻게 알고 있는거죠?'
[마나일 적의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가 자아가 형성된 순간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면서 퍼즐이 맞춰진 거지. 신에 대한 내용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신이 마나에게 주입한 지식이지 않을까? 아, 그리고 내가 말하는 방식이나 성격은 너와 비슷할거야. 나도 네 영혼와 공존하면서 영향을 받았거든. 그래서 나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있더라도 결국 네 영향을 받은 탓일 확률이 크니까 이해해야해. 그리고 말 놔. 한 몸 쓰는 사이에 무슨 존대람.]
'앗, 응. 뻔뻔한 저 성격을 보니 내 영향이 맞는 것 같기도 하네. 아 그런데 나 지금 마나 밖으로 안꺼내고 있는데 어떻게 말거는 거야?'
[간섭력이 아직 좀 남아있었거든. 네가 오늘 새벽에 좀 무리하긴 했잖니? 이제 슬슬 힘이 떨어져 가네. 마나는 닳는 게 아니니까 나 자주 좀 꺼내 줘. 자아가 생겼는데 할 일이 없으니까 좀 심심하더라. 그럼 나중에 또 봐, 니아.]
'그래, 포포. 조만간 또 보자.'
[포포?]
'너도 하나의 자아니까. 이름은 있어야 하잖아. 혹시 스스로 지은 이름이 있는거야?'
[아니. 뭐, 마음대로 불러.]
'응, 포포!'
==
마를린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니아는 다음날 브라운 베이커리에 들러 요양 중인 마를린의 몫까지 열심히 일하시는 브라운 아저씨를 통해 마를린이 실종되었던 경위를 들을 수 있었다.
길을 가다가 예쁜 파란색 보석이 붙어있는 상자 모양의 물건을 주웠는데, 신기해서 만져보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잃고 일어나보니 물건은 사라져 있고 주위는 그 야산이었다는 것이었다.
수색대가 마를린이 상자를 발견했다던 곳에 되돌아가 주변을 살폈지만, 상자는 찾을 수 없었다.
"그 보석, 마정석이었겠지?"
[그런 것 같네. 일반적인 마정석은 아닌 것 같지만. 상자는 텔레포트 마도구를 말하는 걸 테고.]
니아는 오른손 끝으로는 포포를 꺼내둔 채로 방 바닥에 엎드려 스콘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포포는 기왕이면 귀여운 실체가 있는 게 좋지 않냐며 니아에게 자기를 고양이 모양으로 만들어달라 요구했고, 니아는 흔쾌히 작은 고양이 모양으로 마나를 변형해주었다.
어떻게 변형해야 할지 헤메던 것도 잠시, 니아는 곧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생각만으로도 쉽게 마나의 모양을 바꿀 수 있었다.
"일반적인 마정석이 아니라니 무슨 의미야? 그런데 마정석은 거의 고갈된 게 아니었나? 황실 말고는 소유한 곳이 없다고 들었는데. 마도구도 마찬가지잖아. 혹시 그거 황실의 물건인가? 황실의 물건이 왜 길바닥에 떨어져있지?"
[흠 글쎄. 황실의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엔노이아 제국 황실이 쓰는 마도구는 마나를 운용할 줄 모르면 쓸 수 없어.]
"응? 진짜? 포포 넌 그걸 어떻게 알아?"
[마나일 적의 정보가 남아있다고 말했잖아.]
니아를 살짝 흘겨본 포포 고양이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니아는 포포가 말하는 마나일 적의 정보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지금은 잠자코 포포의 설명을 듣기로 했다.
[마정석에는 마나가 담겨있지만 마정석 안에서 마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마나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몸에 익혀야 해. 엔노이아 제국의 마도사들이나 마도구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기본적인 마나 운용법을 알고 있었어. 네 마나 운용력에는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었지만.]
''그런데 마를린은 어떻게 마도구를 활성화시켰던 거야?"
[그게 미스터리지. 아마 마나를 자연적으로 방출할 수 있는 특수한 마정석이 아니었나 싶은데... 내 기억으로 그런 마정석은 없었단 말이지. 인간들이 최근에 새로 개발해 낸 건가?]
"엔노이아 제국은 이제 마도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잖아. 그런데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마도구를 왜 굳이 개발해?"
[흠 글쎄. 원한다면 알아봐줄게. 마를린 그 애가 마도구를 발견했던 장소를 중심으로 찾다보면 뭐가 나올수도 있으니까. 넓은 영역은 너와 내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무리지만, 단델리온 거리 정도의 영역이라면 나 혼자서도 정보를 모을 수 있어.]
"헉, 정말?"
포포가 혼자서도 정보를 모을 수 있다는 소식에 니아는 아주 유능한 비서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포포는 내 인생에서 최고로 도움되는 존재야. 포포천재. 포포만세. 포포포에버!"
[흠흠흠. 네가 마나 운용에 더 능숙해지면 나 혼자서 더 넓은 범위도 탐색할 수 있어.]
이 사건 이후로 포포는 니아의 숨겨진 초특급 정보요원이 되었다.
세계 최고로 유능함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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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잘리고 싶어서 환장했지?"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쓰고 있던 로브를 한 방향으로 집어던진 사내가 짓씹듯이 말했다.
여관의 방음상태가 의심스러워 차마 큰 소리는 내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으오오욱." 사내가 집어던진 로브에 맞은 사내가 바보같은 소리를 내었다.
"아니 도대체가...! 하..." 사내는 한숨을 푹 내쉬곤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저기...음 그래도 물건은 네가 바로 회수했고...나도 어제 잘 복귀했고..."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사내가 자신의 얼굴을 강타했던 로브를 엉성하게 접으며 대꾸했다.
"네가 꾸물거리면서 복귀할 동안 이 동네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 줄 알아? 여자애 하나가 갑자기 실종됐었어!"
"그 소식은 나도 통신으로 들었어. 그래도 기적적으로 이웃주민이 찾아서 데려왔다고 하던데..."
"네가 더 기적적으로 생각해야하는 건 피해자가 그 여자애밖에 없었다는 거야, 멍청아.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회수했으면 분명 물건에 대한 정보가 샜을 거라고. 그러면 어떻게 됐겠어?"
"큰일이...났겠지?"
"너는 목이 잘렸겠지. 실수투성이인데 황실의 기밀까지 알고있는 네가 설마 평화롭게 해고로 끝났겠어? 너는 멍청하게 저 침대위에서 뒹굴거릴 게 아니라 바로 배타고 튈 궁리를 하고 있었어야 하는거라고!"
한바탕 호통을 들은 진청색 머리의 사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뚜렷한 이목구비와 강한 인상 때문에 시무룩한 표정이 아니라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보였다.
어제 사내는 '물건'이 담긴 손바닥만한 나무 상자를 거래자에게 받아 황실 조사단 단장에게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고 수행중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물건'에 손이 닿아서는 안되니 나무 상자를 절대로 열지 말고 그대로 전달하라는 거래자의 말이었다.
그런데 앞을 잘 보지 않고 걷던 사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품에 넣어둔 상자가 완전히 파손되었고, '물건'이 길바닥 위로 대굴대굴 굴러갔던 것이다.
당황한 사내는 거래자의 말을 잊고 무심코 '물건'에 손을 대었다가 엉뚱한 장소로 텔레포트 되었다.
그나마 그 와중에 동료에게 통신을 걸어 '물건'을 회수해달라 부탁했던 것이 다행이었다.
"지금이라도 조사단에서 나갈까...?"
어깨를 축 늘어뜨린 사내가 품에서 주섬주섬 통신용 마도구를 꺼냈다.
사내가 본부에서 유일하게 지급받은 물품이었다.
"너랑 동기라는 게 정말....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듯 쳐다보는 동기를 보며 사내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반어법이야, 이 새끼야!"
4. 보스 낸시
3년 후, 루나 선생님과의 수업이 이어진지는 4년이 되는 해에 니아는 13살의 봄을 맞이했다.
캐럿가는 발터 공작가보다도 큰 부를 축적했지만, 니아와 니아의 아버지, 로널드 캐럿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보스를 만나러 왔는데.”
엔노이아 제국에서 가장 큰 장난감 가게, ‘낸시와 친구들’ 가게 안 카운터 뒤에 선 직원에게 한 남자가 은밀히 말했다.
남자의 배는 불룩 튀어나와 있고 정수리에는 원형 탈모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몸에 걸친 옷과 모자는 돈 꽤 있는 귀족도 잘 사지 않는 최상등품이었다.
카운터에 선 직원, 제이슨은 남자의 중지에 고양이 문양이 새겨진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확인했으나, 한쪽 눈썹을 지그시 올릴 뿐이었다.
“오늘 손님이 온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는데?”
“아니, 1년이나 거래를 했는데, 이제 좀 적당히 알아서 만나게 해주면 안되나?”
어디로 보나 고위급 귀족의 사내가 일개 평민일 뿐인 장난감 가게 직원에게 절절 매는 듯한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웠다.
“내 사전에 ‘적당히 알아서’는 없어서 말이야.”
“나, 참. 도대체 그 여자가 너한테는 뭘 해줬기에 이렇게 충성심이 넘쳐?”
“급한 일이면 나한테 말해. 전해줄테니까.”
남자의 퉁명스런 대꾸에도 제이슨은 뻔뻔하게 응수할 뿐이었다.
“뭘 믿고 너한테 말해?”
재차 실랑이가 벌어지려는 차, 허공에서 도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슨씨, 괜찮으니 백작님 올려보내세요.”
가게 내부에는 두 사람 밖에 없었으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 생생했다.
‘역시 소름이 돋는단 말이야.’
태연한 척 가장하고 있지만 팀버 백작은 여자의 능력을 마주할 때마다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근 3년 사이 마정석이 모조리 고갈되어 황실의 마지막 남은 마도사가 밥을 굶는다더라 하는 우스갯소리까지 도는 시기이다.
그런데 마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힘을 마구 써 대는 이 여자는 도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은 ‘낸시의 장난감 가게’의 주인이 그저 수완 좋은 사업가인줄 알지만, 이 가게는 그저 위장용일 뿐, 주인의 실체는 모르는 정보가 없다는 고양이 정보길드의 보스이다.
‘모르는 정보가 없다’는 말로는 고양이 길드의 무서움을 설명할 수가 없다.
바로 자신이 겪지 않았던가. 가주인 자신이 도박의 늪에 빠졌던 탓에,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팀버 백작가를 카인즈 백작가와도 맞먹는 대귀족으로 성장시킨 투자의 모든 정보가 이 길드로부터 나왔다.
‘안 찾아주는 물건이나 사람은 있어도, 못 찾아주는 건 없다지. 도대체 정보원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거야? 실력있는 용병들도 죄다 고양이 정보길드 소속이라고 하던데.’
찝찝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닌 만큼 지금이라도 발을 빼는 게 현명한 판단이겠지만, 이미 정보를 받아먹어도 너무 많이 받아먹어버렸다.
받아먹은 정보에 비해 고양이 길드에서 이제껏 요구한 것은 너무나도 사소한 것이었다.
비밀 엄수.
도박을 하지 말 것.
고양이 길드와 신뢰관계를 이어갈 것.
‘내가 도박을 하는 건 무슨 상관이고, 도대체 뭘 부탁하려고 신뢰관계를 유지해달라는 거지?’
신뢰는 커녕 의심만 쌓이는 상황이다.
'이번에 확실히 알아내야겠어.'
“여기로 들어가면 된다.”
가게 2층 가장 안쪽 문 앞에서 선 제이슨이 말했다. 팀버 백작은 재차 드는 상념을 지우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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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시죠, 백작님? 서신이 아니라 직접 찾아오시다니, 드문 일이네요.”
응접실처럼 꾸며진 고급스러운 방 안에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짙은 남색 머리를 길게 늘여트린 여인이 앉아 있었다.
사실은 13살 어린 여자애일 뿐이었지만, 아무튼 팀버 백작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이제 나에게 준 정보의 대가를 치루고 싶어서 말이네. 내게 무엇을 요구할거지?"
"요구라면, 글쎄요. 백작님께 제공하는 투자처들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켜달라는 것 정도?"
"그런 것 말고 좀 더 길드에 도움이 될 만한 일 말이네!"
본인이 줄 수 있는 도움이 없냐며 성을 내는 백작의 모습을 보며 니아는 유쾌해졌다.
니아가 처음에 팀버 백작을 돕기 시작한 것은 귀족만이 해 줄 수 있는 일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내가 너무 만능이라는 거지.'
공기중의 마나을 통하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고, 땅 속의 마나를 통하면 세상에 묻혀있는 모든 보물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거리에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포포를 만나고 마나 운용 능력이 발달해 가면서 반경 1,000km 이내의 모든 정보를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엔노이아 제국의 절반은 니아의 손 안에 있는 셈이다.
[네가 아니라 내가 만능인거 아니야 그럼?]
'네가 나고 내가 넌데 그런 구분이 무슨 소용이 있어, 포포.'
니아는 주기적으로 대규모 탐지 마법을 사용하여 도움이 될 만한 정보란 정보는 모두 모아 제이슨을 통해 정리해두었다.
실제로 고양이 정보길드의 귀중한 정보 대부분은 니아와 포포의 합작품이었다.
니아는 겸사겸사 실력있는 용병들을 찾아서 스카웃 해놓고 용병 길드도 몇 개 만들어놓았다.
'그뿐이야? 반경 5km이내의 생명체에는 환각 마법까지 걸 수 있다고. 마법을 걸 수 있는 생명체의 수에 제한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1년 전 환각 마법을 통해 황실과 귀족들의 눈을 속이고 숨겨진 마지막 마정석 광산까지 손에 넣어 채굴해낸 니아에게 '제한'이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체내의 마나 운용만으로는 5명이 한계지만, 평범한 사파이어처럼 보이는 내 마정석 귀걸이들 중 하나만 사용해도 100명에게 거뜬히 마법을 걸 수 있는걸. 채굴 당시 광부 전원에게 정교한 환각을 거느라 애를 먹었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어.'
[사실 고생은 내가 제일 많이 했지.]
'그러니까 너랑 나의 구분은 의미가 없대도.'
이런 와중 팀버 백작의 도움은 니아에게 별 필요가 없었다.
"귀족들의 동태 파악을 해주신다면 제가 수고를 덜긴 하겠죠. 그런데 이런 일을 부탁드리기에는 백작님이 워낙 귀한 몸이시고."
"허, 흠. 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받은 도움이 있으니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네. 그래서, 정확히 어떤 동태를 파악해주면 되는 건가?"
니아는 3년 전 마를린이 실종되었던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포포가 단델리온 거리 주변을 탐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꽤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황실 직속 조사단이라...'
마를린 사건이 마무리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포포는 니아에게 단델리온 거리의 여관에서 수상한 두 사내를 발견했다고 말해주었다.
그 두 사내의 대화내용을 토대로 황실 조사단 단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결과 참으로 흥미로운 내용이 도출되었다.
'엔노이아 제국이 팔레 왕국에 밀리고 있다니.'
엔노이아 제국의 황실은 팔레 왕국의 수많은 소드마스터들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의문인 특수한 마도구들에 전력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특히 팔레 왕국의 마도구를 조사한 결과, 엔노이아 제국의 고갈된 마정석과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진 마정석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엔노이아 제국과 함께 팔레 왕국도 마정석이 고갈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근 몇 년 사이 팔레왕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마정석을 발견해낸 것이다.
제국은 마도국가 시절부터 팔레왕국을 긴 시간 핍박해왔다. 하물며 전력이 제국을 넘어섰을지도 모르는 이 시점에서 팔레왕국에게 대놓고 마정석을 수출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제국 황실의 체면이 살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황실도 비밀리에 조사단을 만들어 팔레왕국 마정석의 정체와 그 출처를 파악하려 한 것이었다.
[황실은 그게 마나를 방출하는 형태의 마정석인줄도 모르지만 말이야! 몇 년 동안 조사하고도 그걸 못 알아내다니 제국의 고대 마도사들이 무덤에서 울고있겠어.]
'비록 한 명 뿐이지만 황실에는 마도사가 남아있는데... 왜 팔레 왕국의 마도사가 알아차린 사실을 엔노이아 제국의 마도사는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왕국의 마도사가 마나의 흐름을 눈치챌 정도의 천재인가보지. 이 포포님이 없어도 마나를 느끼다니! 진짜 천재네 천재.]
니아는 포포의 말을 대충 무시하며 조사해야 할 목록을 속으로 정리했다.
'우선, 팔레왕국의 마도사들에 대해 알아봐야겠어. 그리고 소드마스터들도. 제국에는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소드마스터가 팔레왕국에는 몇 년 사이에 3명이나 나왔다는 게 수상해. 그리고... 음... 팔레왕국의 전력을 제국의 귀족들이 눈치채고 있는지도 알면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
생각에 잠겨있는 니아를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팀버백작에게 니아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팔레왕국에 대해 다른 귀족들이 언급하는 것을 들으시면 저한테도 얘기해주셨으면 해요."
"흠? 그 야만 국가에 대해?"
팀버백작은 니아가 팔레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의아한 듯 했다.
"네. 필요한 정보가 있어서요."
"뭐, 일단 알겠네. 생각해보니 귀족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하는 얘기라면 자네라도 알 도리가 없겠구만. 고양이 정보 길드에서도 수집하기 까다로운 정보가 있었다니! 허허, 나만 믿으시게. 고오위 귀족들만 알 수 있는 정보를 친히 내가 알려줄테니."
백작은 들어올 때와는 다른 매우 의기양양한 태도로 가게를 나섰다.
==
"낸시님, 아까 팀버 백작이 굉장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가던데요."
"아하하, 정말요? 참 재밌는 양반이라니까."
니아는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며 다시금 유쾌해졌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자기가 도와줄 일이 없냐고 자꾸 묻길래, 일거리를 하나 던져줬죠. 그러니까 갑자기 고양이 정보길드에도 처리하기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냐며 자기만 믿으라고, 고오위 귀족만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겠다고 하고선 당차게 나가시는 거 있죠? 아하하하."
"정말 같잖네요. 낸시님이 아니었으면 도박에 빠져서 가문을 모조리 말아먹을 뻔한 주제에."
제이슨은 낸시가 팀버 백작에게 투자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에게는 팀버 백작이 낸시의 귀중한 시간을 뺏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낸시의 충실한 부하, 제이슨이 낸시가 만나게 된 것은 2년 전 겨울이었다.
그는 낸시라는 소녀가 찾아왔던 그날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 단언했다.
유독 추웠던 겨울날. 어머니의 마른 기침소리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들으며 제국 내의 모든 무능력한 의사들을 향해 욕을 내뱉을 때.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으며 정보길드의 제법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돈도, 지위도 어머니의 병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할 때. 남색 단발머리의 한 소녀가 집 문을 두드렸다.
소녀는 처음보는 약초와 주소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고선, ‘약초로 차를 달여 마시게 하고 어머님이 쾌차하시면 주소에 적힌 장소를 찾아달라’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수상한 소녀였다.
쉬이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숨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는 것을 느낄 때, 제이슨은 약초물을 달일 수밖에 없었다.
기적적이게도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고, 감동에 젖은 제이슨은 종이에 적힌 장소를 찾아갔다.
그곳은 텅 빈 가게였다.
아무것도 없어서 무슨 가게인지도 모르겠는 곳이었다. 사람 또한 없었다.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와중, 가게의 문이 열리고 그 소녀가 들어왔다. 본인을 낸시라고 소개하는 소녀가.
“제이슨씨, 제 직원이 되어주시겠어요?”
라고 말하며.
그렇게 직원이 두 명 뿐인 고양이 정보 길드가 탄생했다.
==
"니아, 요즘 수업 중에 너무 자주 조는 것 같은데?"
오늘도 천사같은 외모의 루나 그린 선생님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루나 선생님과 수업을 시작한지 한달이 되어가던 때, 선생님은 니아가 천재라고 판단하고 그에 맞는 영재교육을 시켜주었다.
실재로 니아가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진 것은 맞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천재'까지는 아니었다. 전생의 불완전한 기억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덕분인 듯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하비 경의 아침 훈련이 오늘따라 빡셌거든요."
니아는 단델리온 거리로 이사온 바로 다음해부터 카인즈 백작성의 기사, 하비경에게 호신술 교육 및 기초체력 단련을 받았다.
마를린이 실종되는 사고가 있었던 바로 그 해였다. 마를린은 납치를 당한 것이 아니라 애먼 마도구를 주웠을 뿐이었지만, 니아의 아버지인 로널드 캐럿씨는 니아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판단했다.
니아는 작고 귀여운데다가 특별한 능력까지 지니고 있었으므로 진짜 납치를 당할 우려가 있었다.
아무튼 니아는 10살 때부터 호신술을 배우고 체력단련을 하였으며, 11살부터는 호신술을 마스터하고 기초 검술을 교육받았다.
몸 쓰는 일에 큰 재능이 있지는 않았지만 착실히 기초를 쌓아가는 중이었다.
[선생님 아침에 너 봤어.]
"아침에 보니 훈련 시작하기 전부터 피곤해하던걸?"
'수업 전부터 출근해 계시다니. 루나 그린 선생님은 지나치게 부지런하셔서 탈이야. 그나저나 그런 건 미리 말해줬어야지, 포포.
"사실은 어젯밤에도 고민거리가 있었거든요."
"요즘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는지 물어봐도 되니?"
고아원을 만드는 데에 고민이 많아 밤잠을 설쳤다고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니아는 대충 어릴 적 궁금했던 것들 중 하나로 둘러대었다.
"캐럿가는 왜 이름이 '캐럿(Carat)가인가에 대해서요."
사실 니아는 이 주제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래전, 평민에게는 성을 짓는 것도 허락되지 않던 시절에, 윌튼이라는 평민이 길을 가다가 나무조각이 달린 볼품없는 목걸이 하나를 발견했다.
청년은 별 값어치도 안나가 보이는 목걸이를 굳이 주워서 근처 치안대에 신고를 했는데, 사실 그 목걸이는 당시 황제의 하나뿐인 황녀가 처음으로 황제에게 한 선물이었다.
황제는 황녀가 준 목걸이를 아주 소중히 여겼지만 그 목걸이가 길을 가다가 누군가 밟아도 신경도 쓰지 않을 만큼 볼품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목걸이를 잃어버린 티를 냈다가 영영 찾지 못하면 황녀가 속이 상할 것을 예상한 황제는 황녀에게 말도 못하고 마음만 졸이고 있었더랬다.
그러던 와중 그 윌튼이라는 청년이 고맙게도 목걸이를 찾아준 것이다.
황제는 아주 기뻐하며 윌튼에게 캐럿이라는 성과 주먹만한 다이아몬드 원석을 하사했다.
그런데 그 윌튼이라는 청년은 아주 소심해서, 보석을 어디에 내보이지도 못하고 시골 고향집 뒷산에 파묻어 두었다.
그 보석이 바로 니아가 8살 때 찾았던 그 다이아몬드였다.
아주 오래되었기도 하고, 별로 재미도 없는 이야기라서 니아의 탐지마법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정보였다.
그냥 문득, 예전에 궁금해했던 것이 기억나 다른 정보길드에 의뢰해 조사해보았던 것이었다.
"음, 그에 대해서는 선생님도 아는 바가 없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니아."
"괜찮아요. 이제 그 고민은 그만하기로 했거든요."
"그래, 니아. 무조건 고민을 해결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단다. 그냥 모르는 채로 두는 것이 좋을 때도 있어."
오늘도 지나치게 현실적인 조언을 내뱉는 루나 선생님이었다.
==
"호호, 과일 드시면서 하세요, 선생님."
한창 수업이 진행되던 중 티파니씨가 공부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 니아 요즘도 잘 하고 있나요? 아카데미 입학은 가능할까요?"
아카데미는 신분과 성별의 구별없이 돈 좀 있는 집안의 자제가 15살에 입학해 17살까지 3년간 다니는 교육시설이었다.
입학 인원에 제한이 있어서 매년 봄에 입학시험이 실시되었는데, 기초 지식의 응용력을 평가하는 시험었기 때문에 웬만큼 '수재' 소리를 듣지 않는 이상 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다.
"'입학은'이라뇨, 캐럿 부인. 니아는 아카데미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재가 될 거예요!"
"서, 선생님..그건 아니에요..!"
니아는 솟아오르려는 광대를 막으려 노력하며 겸손을 떨었다. 사실 속으로는 격하게 동의하는 중이었다.
"맞아요, 니아가 인재라뇨. 너무 띄워주시지 마세요. 호호."
'아니, 이 아줌마가?'
티파니 캐럿씨는 딸을 정말로 사랑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장난스런 말들을 하는 재주가 있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이에요, 부인! 니아는 아직 13살인데도 경제학에 나오는 거의 모든 그래프를 이해할 수 있다고요. 수업을 할 때마다 놀란다니까요."
니아에게는 13살 짜리에게 경제학 그래프를 가르칠 생각을 한 루나 선생님이 더 놀라웠지만, 선생님은 니아의 비정상적인 이해력을 칭찬하며 연신 니아를 쑥쓰럽게 했다.
'2년 후면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걸까.'
원작의 남자주인공, 레이는 지금 요양을 하러 티타니 숲에 들어가 있다.
어릴적 숲에 들어가 성년을 맞기 직전에 나온다고 했으니 아마 니아가 아카데미에서 레이를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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