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zdQmspf83u 2020/05/31 17:07:35 ID : Co5aq5bDs02 0
챙그랑, 그 어떤 생물체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고요한 칠흑 속, 그 정적을 찢기라도 하듯 고철 특유의 높다란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그 마찰음이 들린지 얼마 안 있어 누군가 이탈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 시끄러운 경적음이 주변이들의 귀에 들어서자 그제야 잠을 자던 보초병도 지하 감옥 복도를 어슬렁 거리며 죄수를 감시하던 간부들도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한 달음에 달려왔다. 정작 그들을 반기는 것은 이미 사람이 사라져 텅 비어있는 독방 뿐이었다.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을 터! 어서 찾아내어 잡아라!!!"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일까. 이미 그 죄수는 온데간데 없고, 그런 일 따윈 없었다는 것처럼 조용해진 주변만 존재했다.
2 ◆7zdQmspf83u 2020/05/31 17:08:29 ID : Co5aq5bDs02 0
" 과일 팝니다! 싱~싱하고 달콤~한 과일 팔어요! " " 생선 사쇼, 생선! 아따, 그 싱싱하기가 차원이 달라부려~ 회를 촥! 떠서 먹으면 아직도 펄떡펄떡~ 하는 것이 느껴져버릴 정도여! " " 두부 사세요~ 담백하고 영양가 만점 두부~ 오늘 저녁 반찬은 페리케르(= 된장찌개) 어떠십니까~ " 오늘도 시끄러운 시장 한 가운데. 한시가 바쁜 사람들 틈 속에서 흥겨운 노랫가락이 옅게 나마 울려퍼진다. 그 소리에 사람들은 잠시 흥미를 가졌다가도 그 주인의 모양새를 보더니 다들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거리 한복판에서 자리 잡고 있는 주정뱅이. 이미 한달 전부터 문제가 되어온 인물이었지만 이제는 딱히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몇 번이고 쫓아냈으나 한시간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기에 더이상은 시간과 힘을 소비하려들지 않아했다.
3 ◆7zdQmspf83u 2020/05/31 17:08:53 ID : Co5aq5bDs02 0
" 오늘도 거하게 취해볼까이~ " 항상 술에 취해있지만 않았어도 꽤 사람들을 홀릴 미모인데. 다들 아쉬운듯 혀를 차곤 하나 둘 제 갈길을 찾아 떠날때 쯤, 칙칙하지만 그렇게 오래 입고 다녔던 것은 아닌 것 같은 후드형 망토를 눈, 코, 입만 보이도록 푹 늘어쓰고 다니는 자는 주정뱅이의 앞에 발걸음을 멈춰섰다. 눈 조차 그렇게 잘 보이지 않지만 한 쪽에 작은 가방을 매고 다니는 그는 어떻게 보아도 눈에 띌 가능성이 다분했지만 어찌된 영분일까, 사람들은 주정뱅이와 얽히기 싫었던지 그에게서도 시선을 돌렸다. 사실 간혹 그러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망토는 유행을 탔던 적이 있었고. 그 사실은 사람들을 방심시켰다.
4 ◆7zdQmspf83u 2020/05/31 17:10:28 ID : Co5aq5bDs02 0
" 안녕하십니까. " 낮게 울려퍼지는 딱딱한 인삿말. 라밀은 주정뱅이를 눈 앞에 두고 그 인삿말을 읊조렸다. 주정뱅이, 아니 말리 베세테스는 눈 만 껌벅이며 라밀을 올려다보았다. 곧 익살스런 웃음을 지으며 자신에게 말을 건 라밀에게 답했다. " 뭐셔, 형씨도 1 겔세네 (= 돈의 기본 단위. 한화 약 1000원. 1 gs) 주실랑가? "
5 ◆7zdQmspf83u 2020/05/31 17:12:54 ID : Co5aq5bDs02 0
천연덕스럽게 돈을 요구하는 말리를 라밀은 묵묵히 내려다보더니 더더욱 자연스럽게 말을 다른 곳으로 새었다. " 제 이름은 라밀 레시아 입니다. " " 오야, 그래. 그래서 겔세네는? " " 저를 따라오시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겔세네가 아니라 그레세 (= 10 겔세네. 1 gr) 도 드릴 수 있습니다. " " 옴마... 니 그 진짜제? 좋다. 따라갈끄. " 말리는 싱글벙글 웃더니 라밀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 사람들은 항상 있어야할 자가 없는 것을 보고선 자기들끼리 속닥였다. 돈으로 꼬신 것이다, 협박에 못이겨 따라갔다, 아는 사람이다... 그 소문은 점점 무성해졌으나, 정작 라밀은 신경쓰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6 ◆7zdQmspf83u 2020/05/31 17:13:57 ID : Co5aq5bDs02 0
사실 라밀에게는 여러 말못할 사정이 있었다. 말리를 데려온 것은 자신도 얼추 후회하고 있었다. 왜 이런 주정뱅이를 데려왔냐 함은, 이 사람이 사실 엄청난 검술 실력을 지녔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킬린의 막내 황녀라는 둥, 이미 멸망한 칼세니아의 방계 후손이라는 둥.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실력 하나를 믿고 동료로 삼자 생각했던 이유는, 라밀이 그만큼 절박했음을 알렸다. 그렇기에 찬란한 햇살 밑에서 어느샌가 취기가 가신 말리의 얼굴을 바라보며 약조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 일당은 2 그레세. 잘 따라오면 3 그레세도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 라밀 레시아가 죽기 전까지 제 곁을 떠선 안됩니다. "
7 ◆7zdQmspf83u 2020/05/31 17:18:03 ID : Co5aq5bDs02 0
" 뭐야~ 죽을 때까지가. 그라믄 2나 3으론 안된다. 그랗게 치면은 내도 목숨걸고 다니는 거니께. 흠. 1 데실론 (= 10 시페르. 1d) 정도면 충분할지도. " " 그럼 일당으론 안됩니다. 월급으로 드리죠. " " 뭐라카이. 월급이면 3 데실론 정돈 줘야제. " " ...드리겠습니다. 월급으로 3 데실론. " " 좋~다! 그람 따라갈 맛 나지. 근데 형씨. 내가 쫌 술이 궁해가... "
8 ◆7zdQmspf83u 2020/05/31 17:19:05 ID : Co5aq5bDs02 0
" 안됩니다. " 단호하게 울려퍼지는 라밀의 목소리에 말리는 포기한 듯이 축 늘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눈에 생기를 찾아선. " 내가 들은게 진짜 맞제? 진짜 따라댕기기만 하믄 3 데실론 맞제? 3 시페르 (= 30 그레세. 3s) 아이제? " " 예, 뭐. 위험 수당이니까요. " " 워매... " " 그리고... 숙박비나 기타 먹고 자고 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제가 내겠습니다. " " 순수익이 3 데실론이라꼬?! " 하며 신나했다.
9 이름없음 2020/06/01 17:27:11 ID : 9dA7y3O04Mi 0
헐 재밌는데 여기서 끝인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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