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글 이어 쓰기 해볼 사람 9!! (3)
2.투고한 출판사에서 이런 식으로 메일 왔는데 (8)
3.시나리오 쓰고있는데 팁 줄 수 있을까? (3)
4.지켜주고 싶은 사랑 (3)
5.기승전결 정해주면 글 써드림 (4)
6.소설, 시 같은 문학을 쓰다가 생긴 고민들 같이 얘기하고 풀어나가자 (1)
7.생각 날 때마다 올 나의 작은 단편집 (1)
8.꽃, 마녀, 기사. (2)
9.앨리스 딜루션 (124)
10.내 자작세계관 속의 단체명 좀 추천해줘. (3)
11.여주의 짝사랑만 20화 쓰면 재미없을까 (2)
12.중학교 때 쓰던 판타지 소설을 발견했다. (12)
13.최애돌/가수 노래 제목으로 문장 쓰고 가는 스레 (5)
14.환상 기록장 (18)
15.현실 고증같은거 말야 (2)
16.. (3)
17.스린이라 여기 적는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8)
18.내 소설 주연들 이름 좀 추천해주라.. (12)
19.펑 (1)
20.. (3)
1
이름없음
2021/09/11 11:39:04
ID : vvcslvfQleI
3
“날 좀 죽여 줘.”
그렇게 말하는 낯짝이 고백이라도 하듯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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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름없음
2021/09/11 11:39:27
ID : vvcslvfQleI
0
“… 무슨 헛소리야? 내가 범죄자인 줄 알아?”
“설마! 절대 아니지. 아니야. 그런 생각 안 했어.”
대단한 실수라도 저지른 양 황급히 내젓는 고개.
반듯하게 잘린 머리칼이 움직임에 맞추어 이리저리 흔들린다. 하늘이 담긴 눈동자는 이질적이도록 투명했다.
3
이름없음
2021/09/11 11:40:08
ID : vvcslvfQleI
0
“네가 와 주기를 기다렸을 뿐이야. 너라면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봐, 결국 네 발로 걸어오게 됐잖아. 그렇지?”
무려 일 년을 함께한 사이인 터.
그럼에도 나는 이 애가 이렇게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4
이름없음
2021/09/11 11:40:40
ID : vvcslvfQleI
0
“보고 싶었어, 앨리스.”
펜을 든 소녀의 각막에 너덜너덜한 내 모습이 비쳤다.
기이한 미소를 머금은 그 애가 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검붉은 피로 범벅이 된 식칼을 고쳐 쥐었다.
5
이름없음
2021/09/11 11:42:17
ID : vvcslvfQleI
0
“너, 원래 이런 성격 아니었잖아.”
“사람이란 게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지. 이런 성격이 뭔데? 지금 네 눈에 보이는 나? 그거라면 완전히 틀렸어. 나는 처음부터 이랬거든.”
“상황이 미쳤다고 사람까지 미치면 안 되는 거 모르냐? 적당히 하고, 좀….”
“너야말로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 뭐?"
6
이름없음
2021/09/11 11:43:10
ID : vvcslvfQleI
0
“내가 널 몰라? 성급하고 충동적인 이윤정. ‘원래의’ 너라면 지금 나랑 시간 낭비하고 있지도 않았을 텐데.”
환장하게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어디까지나, 예전의 나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7
이름없음
2021/09/11 11:43:29
ID : vvcslvfQleI
0
“나의 앨리스, 완벽한 앨리스.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 좆 같은 앨리스 타령 좀, 네가 날 얼마나 안다고.”
“적어도 지금의 네 마음은 알지. 왜냐하면 너, 전부 알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
산뜻하게 이어진 대답에 목이 콱 막혔다.
나는 대답 대신 새카만 눈으로 그 애를 노려보았다.
8
이름없음
2021/09/11 11:45:01
ID : vvcslvfQleI
0
그래, 이 모든 게 네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악몽이지.
찢어지는 비명, 유리창에 덕지덕지 묻은 혈흔들이 여즉 생생한데도 눈앞에 선 모든 비극의 원흉은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날 죽이고 싶지 않아?”
나는 식칼을 든 반대쪽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차갑게 식은 머리에는 단 하나의 명제만이 떠올랐다.
9
이름없음
2021/09/11 11:45:12
ID : vvcslvfQleI
0
이 애를 죽여야 한다.
지금, 여기서.
10
이름없음
2021/09/11 11:45:46
ID : vvcslvfQleI
0
“그래, 그래, 그래…! 앨리스, 그거야!”
빌어먹을 앨리스, 빌어먹을 원더랜드.
피범벅인 몰골로 동급생을 향해 날 선 칼을 들고 달리는 모습이 악귀와 다를 바가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11
이름없음
2021/09/11 11:46:03
ID : vvcslvfQleI
0
그래, 좆 같은 원더랜드.
그 일은 뱀이 모래 위를 기듯 빠르고 조용하게 일어났다.
12
이름없음
2021/09/11 11:47:01
ID : vvcslvfQleI
0
* * * (1)
13
이름없음
2021/09/11 11:47:37
ID : vvcslvfQleI
0
발단은 교내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하나의 글이었다.
― 살아갈 의욕도, 이유도 없는 당신에게.
매일 밤,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잠에 들지는 않나요?
세상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도피할 단 하나의 기회를 드립니다!
검고 흰 자유의 세상, 친애하는 원더랜드로부터.
14
이름없음
2021/09/11 11:48:07
ID : vvcslvfQleI
0
“… 뭐야, 이거.”
나폴리탄 괴담? 광고?
나는 본문을 몇 번이고 확인하며 눈을 깜빡였다.
시시껄렁한 잡담이 주를 이루는 곳이긴 해도 이런 류의 글은 또 처음이다.
15
이름없음
2021/09/11 11:48:36
ID : vvcslvfQleI
0
이 사이트는 명색이 학교 커뮤니티인 만큼 드문드문 업데이트 되는 글들도 비교적 클린한 축에 속했다. 누가 관리하는지도 알 수 없는 마당에 비방성 내용을 올리는 멍청한 학생은 없는 탓이다.
그러니까, 최악을 감수하고까지 이런 글을 올렸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
16
이름없음
2021/09/11 11:48:52
ID : vvcslvfQleI
0
“확실히 그럴싸하긴 하네. 지원자 뽑으면 손이라도 들고 싶게….”
문제가 있다면, 이 글 어디에도 그 기회를 활용할 방법이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일까.
잠시나마 진지하게 여겼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어진 댓글 창에는 온갖 조롱이 가득했다.
17
이름없음
2021/09/11 11:49:23
ID : vvcslvfQleI
0
- 고3? ㅋㅋㅋㅋ 공부나 해
- 관리자님~ 얘 신상 까 주면 안 돼용?
- 알아서 뭐 하게 ㅋㅋㅋㅋ
- 걍 ㅈㄴ 웃기잖아 지가 무슨 신인 것처럼 글 써 놨는데 까 보니까 일반인이면 ㅋㅋㅋㅋㅋㅋ
18
이름없음
2021/09/11 11:49:42
ID : vvcslvfQleI
0
“그럼 그렇지.”
정곡을 찔린 얼굴로 나는 댓글 창을 닫았다. 글의 첫 문장에 갖다 놓은 마우스 커서가 깜빡였다.
19
이름없음
2021/09/11 11:50:05
ID : vvcslvfQleI
0
“확실히 동화 같긴 하네. 판타지 소설 도입부 같기도 하고….”
나는 실없이 웃다가 문득 숨을 삼켰다. 분명 흔해 빠졌어도 나 역시 그런 류의 구원을 바라던 때가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게.
20
이름없음
2021/09/11 11:50:25
ID : vvcslvfQleI
0
그러니까, 그건 정말 충동적이었다. 정말 낚시라고 할지라도 호응해 주는 편이 여러모로 좋지 않겠는가.
그런 합리화로 무장한 나는 다시금 댓글 창을 열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21
이름없음
2021/09/11 11:50:47
ID : vvcslvfQleI
0
― 데려가 주세요.
혹여나, 정말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22
이름없음
2021/09/11 11:51:31
ID : vvcslvfQleI
0
“…….”
23
이름없음
2021/09/11 11:51:38
ID : vvcslvfQleI
0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24
이름없음
2021/09/11 11:52:31
ID : vvcslvfQleI
0
“… 뭐야.”
예상은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그대로.
방문 너머의 요란한 소리가 이제 그만 허상에서 깨라고 어르는 듯하다. 그럼 그렇지, 하며 나는 기대감 어린 낯을 지워 냈다.
한 시간째 이어폰 너머로 침투하는 날카로운 소리들을 한데 모아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었다.
25
이름없음
2021/09/11 11:52:56
ID : vvcslvfQleI
0
“중학생 때도 안 하던 행동을 하고 있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잠이나 빨리 잘 것이지.”
나는 노트북을 닫고 꾸역꾸역 침대 위에 올랐다. 눈을 감으니 밖의 소리가 더 선명했다.
26
이름없음
2021/09/11 11:53:14
ID : vvcslvfQleI
0
― 작작 좀 마시라고! 당신 때문에 미치겠어. 알아?
― 씨발, 누구는 안 그렇대? 나는 하루하루가 괴로워, 이 집구석 때문에.
― 닥쳐, 닥치라고! 남 인생을 망쳤으면 책임을 져야지! 네가 싸지른 새끼는 어떻게….
두꺼운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썼다. 늦여름의 더위에 땀이 배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27
이름없음
2021/09/11 11:53:53
ID : vvcslvfQleI
0
전쟁이 멈춘 이 나라에서도 나는 언제나 최전방에 서 있다. 불운하게도 이 전쟁은 내가 첫 숨을 내쉬기도 전부터 시작되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다. 저 글대로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어.
이내 서서히 소리들이 멀어지며 의식이 점차 흐려졌다.
잠들기 직전, 무심결에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28
이름없음
2021/09/11 12:00:56
ID : vvcslvfQleI
0
* *
29
이름없음
2021/09/11 12:01:23
ID : vvcslvfQleI
0
꿈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도륙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즈음 눈앞에는 대뜸 장도가 있었고, 뜻대로 휘두르는 감각이 좋아 멈추지 않았을 뿐 별다른 이유도 없이 벌인 행동이었다.
살점과 내장들이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추락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던 나는 눈을 깜빡였다.
30
이름없음
2021/09/11 12:01:41
ID : vvcslvfQleI
0
‘이거… 꿈인가?’
자각할 수 있는 꿈이 있다며 들어본 기억이 났다.
힘이 풀린 손에서 피와 오물이 붙은 장도가 떨어졌다. 천지를 분간할 수 없이 몰아쉬는 숨 사이로 해방감과 구역질이 느릿하게 흘렀다.
31
이름없음
2021/09/11 12:02:06
ID : vvcslvfQleI
0
― 브라보!
낭랑한 미성이 귀에 박혔다.
지척에서 들린 음성에도 나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32
이름없음
2021/09/11 12:02:49
ID : vvcslvfQleI
0
침대에서 잠을 청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 꼴이다. 자다가 칼이라도 맞은 게 아니면 현실보다는 꿈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살육의 흔적이 가득한 주변은 시간도 알 수 없게 어두웠다. 발치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액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33
이름없음
2021/09/11 12:09:50
ID : vvcslvfQleI
0
나는 칼을 쥔 모양대로 움푹 꺼진 손바닥을 문질렀다.
촉감이 생생했다.
‘이딴 꿈까지 꿀 정도면 진짜 정신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34
이름없음
2021/09/11 12:12:29
ID : vvcslvfQleI
0
헛웃음이 났다.
내가 처한 게 정상인이 버틸 수 없는 환경이긴 하지.
그래도 직접 확인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기에 나는 약간 비참해진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35
이름없음
2021/09/11 12:36:40
ID : vvcslvfQleI
0
달리 꿈에서 깨는 방도가 있나.
갑작스레 찾아온 두통에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내 귓가에 또 다시 앳된 목소리가 속삭였다.
― 왜 기뻐하지 않아?
36
이름없음
2021/09/11 12:37:18
ID : vvcslvfQleI
0
기뻐해야 하나?
해방감이 들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전례 없던 상황이 불안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음성은 즐겁게 덧붙였다.
37
이름없음
2021/09/11 12:37:40
ID : vvcslvfQleI
0
―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기는 무의식의 영역이거든.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네 마음대로. 부디 즐기길 바라, 이상….
분명 저 음성, 어디선가….
38
이름없음
2021/09/11 12:37:52
ID : vvcslvfQleI
0
빠르게 점멸하는 의식과 함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어 알 수 없는 웃음소리와 함께 시야가 뒤바뀌었다.
39
이름없음
2021/09/11 18:22:33
ID : vvcslvfQleI
0
* *
40
이름없음
2021/09/11 18:22:52
ID : vvcslvfQleI
0
“이번 주에 벌써 세 명째래.”
반의 누군가가 느리게 속삭였다.
41
이름없음
2021/09/11 18:23:07
ID : vvcslvfQleI
0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고개를 틀어 확인한 아이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첫 번째는 삼 반 모채빈이었잖아. 두 번째는 일 반 현다영. 그리고 세 번째….”
“야, 안 닥쳐?”
42
이름없음
2021/09/11 18:23:25
ID : vvcslvfQleI
0
왼편에서 새된 소리가 났다. 두 손 가득 국화꽃을 든 이연우가 그렁그렁한 눈을 사납게 치켜뜨고 있었다.
“죽은 애들 번호 매기니까 좋냐? 씨발, 너는 눈치라는 게 없어?”
43
이름없음
2021/09/11 18:23:41
ID : vvcslvfQleI
0
나는 잠자코 창밖을 바라보았다. 운동장 한 귀퉁이가 폴리스 라인으로 막혀 있었다.
“어제까지 같은 교실에 있던 애가 죽었다는데, 아무 감정이 안 느껴져?”
44
이름없음
2021/09/11 18:24:10
ID : vvcslvfQleI
0
그 꿈을 꾼 지도 꼭 일주일째.
다음 날 확인해 본 커뮤니티의 글은 신고 누적으로 지워져 있었다.
남은 한 줌의 미련마저 완벽하게 떨쳐 낸 나는 다시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딱 하나만을 제외한다면 모든 게 예전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45
이름없음
2021/09/11 18:24:24
ID : vvcslvfQleI
0
정확히 그날부터, 누군가가 죽기 시작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46
이름없음
2021/09/11 18:24:39
ID : vvcslvfQleI
0
‘… 우연이라고? 정말?’
오늘 아침, 운동장에서 몸이 뒤틀린 시체가 발견되었다.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그 애는 내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죽은 자리가 중앙 문 바로 앞인 탓에 거기 놓인 ‘다온 여고’ 라는 석비 아래 피가 흥건했다.
47
이름없음
2021/09/11 18:25:19
ID : vvcslvfQleI
0
“멀쩡히 살아있던 애들로 괴담 만들지 말고 애도나 하라고, 그냥…. 다 우연일 테니까.”
죽은 애의 절친이던 이연우가 작게 흐느꼈다.
48
이름없음
2021/09/11 18:25:33
ID : vvcslvfQleI
0
이어 곳곳에서 터진 희미한 울음소리가 반을 휘돌았다.
가득 차도 텅 빈 것만 같은 내부가 불안감과 착잡함으로 들끓었다.
49
이름없음
2021/09/11 18:25:58
ID : vvcslvfQleI
0
“아니, 근데… 이상하잖아. 왜 우리 학년만 죽어? 고3도 아닌데?”
“그럼 다른 학년도 죽길 바래?”
“그 말이 아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연우가 소설 쓰지 말라잖아!”
“씨발, 그럼 너는 이연우가 죽으라면 죽을 거야?”
“말하는 꼴 봐라, 미친 새끼.”
50
이름없음
2021/09/11 18:47:17
ID : vvcslvfQleI
0
불현듯 모든 게 갑갑했다.
나는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따가운 아침 햇살이 머리를 덮었다.
51
이름없음
2021/09/11 18:47:32
ID : vvcslvfQleI
0
그렇게 가물가물한 정신을 수마에 내맡기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꿈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52
이름없음
2021/09/11 22:44:19
ID : vvcslvfQleI
0
* * *
53
이름없음
2021/09/11 22:44:34
ID : vvcslvfQleI
0
서걱.
손짓 한 번에 무엇인지도 모를 것들이 잘려 나갔다. 살점이 갈리는 소리가 끔찍할 법도 한데 손에 감기는 느낌이 그저 좋을 뿐이었다.
54
이름없음
2021/09/11 22:44:49
ID : vvcslvfQleI
0
… 꿈에만 오면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내재되어 있던 폭력성이 이리도 강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한 차례 더 검을 휘둘렀다. 무언가의 잘린 단면에서 따끈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55
이름없음
2021/09/11 22:45:10
ID : vvcslvfQleI
0
‘아, 튀었다.’
이제는 자각몽 아닌 자각몽에도 제법 익숙해진 터.
56
이름없음
2021/09/11 22:45:23
ID : vvcslvfQleI
0
처음 깼을 때는 생생한 꿈의 내용에 퍽 당황했다. 이후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으나 그 어디에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는 없었다.
‘진지하게 상담이라도 받아 볼까 했지.’
57
이름없음
2021/09/11 22:45:46
ID : vvcslvfQleI
0
실상 내용이 꺼림칙할 뿐이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묵혀 두었던 스트레스가 풀리며 숨통이 조금 트인 것이 특징이랄까.
58
이름없음
2021/09/11 22:46:02
ID : vvcslvfQleI
0
잔 것 같지 않은데도 피로는커녕 씻은 듯이 개운하다. 하물며 꿈과 현실도 의지대로 오갈 수 있는 상태인 터.
이쯤 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나 있는 단점은 이거란 말이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 속으로 말할 수 있어서 상관은 없다만….’
59
이름없음
2021/09/11 22:46:21
ID : vvcslvfQleI
0
그리고 그 음성.
첫날 귓가에 아른거렸던 목소리는 이후 두 번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넘기기에는 무언가 찜찜한 게 사실이지.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었다.
60
이름없음
2021/09/11 22:46:41
ID : vvcslvfQleI
0
‘… 어?’
무언가 이상했다.
61
이름없음
2021/09/11 22:46:58
ID : vvcslvfQleI
0
이 꿈에서, 나는 한 번도 근처의 풍경을 본 적이 없다.
‘원래 이것보다 어둡지 않았나? 어둡다기보다는, 꼭 안개가 낀 듯이….’
직후 기다렸다는 듯 시야가 맑아졌다.
현실인 듯 깨끗한 풍경은 생동감이 넘쳤다.
62
이름없음
2021/09/11 22:47:15
ID : vvcslvfQleI
0
문득 든 호기심에 나는 장도를 내려놓고 아래를 살폈다. 가까이에 낯익은 교정이 보였다.
‘우리 학교?’
내 허리 정도 되는 위치에 차례로 교문과 중앙 문이 있다. 정교한 미니어처인지 내가 커진 것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63
이름없음
2021/09/11 22:47:35
ID : vvcslvfQleI
0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한 발 뗄 때마다 핏자국과 뭉개진 형체들이 달리기 트랙을 따라 길게 늘어졌다.
‘… 하필이면 찜찜하게 학교에 있다고?’
64
이름없음
2021/09/11 22:47:57
ID : vvcslvfQleI
0
질퍽, 질퍽.
걸음을 옮겨 중앙 문 앞에 도달한 나는 무릎을 꿇고 유리문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안은 온통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65
이름없음
2021/09/11 22:48:14
ID : vvcslvfQleI
0
꿈에서도 여기까지는 구현할 수 없던 걸까.
자연히 중앙 문 옆의 석비에 시선이 갔다.
66
이름없음
2021/09/11 22:48:30
ID : vvcslvfQleI
0
⌜다온 여자 고등학교⌟
그 아래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그대로였다.
67
이름없음
2021/09/11 22:50:24
ID : vvcslvfQleI
0
… 핏자국?
68
이름없음
2021/09/11 22:50:38
ID : vvcslvfQleI
0
순간 잊고 있던 것이 퍼뜩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어 초기화한 핸드폰을 백업하듯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범람했다.
69
이름없음
2021/09/11 22:50:53
ID : vvcslvfQleI
0
― 이번 주만 벌써 세 명째래. 첫 번째는….
― 왜 우리 학년만 죽어?
― 커뮤니티, 글, 삭제.
― 그날, 시체, 우연?
70
이름없음
2021/09/11 22:51:14
ID : vvcslvfQleI
0
‘… 아.’
왜 이걸 잊고 있었지?
71
이름없음
2021/09/11 22:51:29
ID : vvcslvfQleI
0
커뮤니티의 글을 본 날, 괴이한 꿈을 꾸기 시작한 날.
그리고 죽은 세 명의 아이들.
72
이름없음
2021/09/11 22:51:39
ID : vvcslvfQleI
0
… 정말 우연일까?
73
이름없음
2021/09/11 22:51:56
ID : vvcslvfQleI
0
나는 앉은 모양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체육관의 긴 창문에 내 모습이 비쳤다.
허리에 아슬하게 닿는 검은 생머리, 일자로 잘린 앞머리. 머리칼만큼이나 검은 눈동자에, 입고 있는 옷은….
74
이름없음
2021/09/11 22:52:17
ID : vvcslvfQleI
0
그래, 본 기억이 있다. 과하게 사랑스럽고 대중적인 어느 동화의 겉표지에서.
파란 칼라 원피스 위로 덧대어진 흰색의 에이프런, 기억을 지나가는 작은 금발 소녀의 이름.
인지하자 의지와는 무관하게 입이 열렸다.
75
이름없음
2021/09/11 22:52:34
ID : vvcslvfQleI
0
“앨리스.”
쉽사리 나오는 목소리에 당황도 잠시, 직후 세상이 까맣게 물들었다.
76
이름없음
2021/09/11 22:52:53
ID : vvcslvfQleI
0
― 원더랜드는 앨리스를 환영합니다!
온통 암흑인 주위에서 키득대는 속삭임이 귓전을 울렸다.
77
이름없음
2021/09/11 22:53:07
ID : vvcslvfQleI
0
… 그래, 그 목소리다.
‘존나, 이게 무슨….’
78
이름없음
2021/09/11 22:53:20
ID : vvcslvfQleI
0
나는 어느새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곳곳에 피가 튄 모습은 섬뜩한 광경을 자아냈다.
핏자국이 말라붙은 창백한 볼.
거울 위에는 흐릿한 네온으로 유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79
이름없음
2021/09/11 22:53:37
ID : vvcslvfQleI
0
― 단 하나의 원더랜드, 나가는 방법은 스스로만이.
아무래도 그 커뮤니티의 글이 뇌리에 깊게 박힌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원더랜드라는 단어가 꿈에까지 나올 일은 없을 테니까.
80
이름없음
2021/09/11 22:53:57
ID : vvcslvfQleI
0
깨고 싶다, 깨고 싶다.
나는 주문처럼 말을 외었다.
그러자 이내 서서히 의식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81
이름없음
2021/09/11 22:54:36
ID : vvcslvfQleI
0
당황스러운 전개가 펼쳐졌대도 꿈의 통제는 아직 유효한 듯했다. 다행이라 안도하는 마음이 성급히 치솟았다.
― 건투를 빌어…. 앨리스.
82
이름없음
2021/09/11 22:54:49
ID : vvcslvfQleI
0
이 음성의 주인은 누구일까.
물음을 입밖으로 내기도 전에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또 한 번 시야가 뒤바뀌었다.
83
이름없음
2021/09/11 22:55:09
ID : vvcslvfQleI
0
“…….”
84
이름없음
2021/09/11 22:55:49
ID : vvcslvfQleI
0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아직도 꿈속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85
이름없음
2021/09/12 15:48:55
ID : vvcslvfQleI
0
* * *
86
이름없음
2021/09/12 15:49:13
ID : vvcslvfQleI
0
의문하기에 앞서, 나는 먼저 잠들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학교였지. 조례도 하기 전이었고, 누구 죽었다고 단체로 울던 중이었고. 시간은 대략 아침 여덟 시 반 정도였을 건데….’
87
이름없음
2021/09/12 15:49:31
ID : vvcslvfQleI
0
따갑게 비치는 햇살이 창가 자리의 비애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목도한 하늘이 온통 검었다.
88
이름없음
2021/09/12 15:50:02
ID : vvcslvfQleI
0
‘스트레이트로 야자 시간까지 잤다거나. … 아니, 미쳤냐. 내가 아무리 잠이 많아도….’
89
이름없음
2021/09/12 15:50:18
ID : vvcslvfQleI
0
뒤이어 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찾아냈다.
전원 버튼을 눌러 켜자 흰 화면이 보인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잠금 화면이 아니고…
90
이름없음
2021/09/12 15:50:42
ID : vvcslvfQleI
0
‘이거 진짜 미친 거 아니야?’
91
이름없음
2021/09/12 15:50:54
ID : vvcslvfQleI
0
말 그대로 희기만 한 화면이.
92
이름없음
2021/09/12 15:51:22
ID : vvcslvfQleI
0
어쩌면, 정말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주변이 보였다.
잠들기 직전과 똑같이 전부 제 자리에 앉아있는 반 아이들. 아무래도 태평하게 자고 있던 건 나뿐인 모양이다.
93
이름없음
2021/09/12 15:51:42
ID : vvcslvfQleI
0
“윤, 윤정아.”
옆자리에서 들린 가는 음성.
94
이름없음
2021/09/12 15:52:00
ID : vvcslvfQleI
0
“너, 핸드폰 작동돼?”
목소리에 묻어난 희망이 적나라해 안쓰러울 지경이다.
나는 말을 건 아이의 명찰을 보며 대답했다.
95
이름없음
2021/09/12 15:52:14
ID : vvcslvfQleI
0
“안 되던데.”
“아, 나랑 다른 애들도… 아까부터 안 되어서. 다 먹통인가 봐, 어떡하지….”
“전부?”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분명 밝았는데 지금은 밤이고, 선생님도 안 계시고…. 다 방금 정신 차렸거든, 단체로 다른 세상에 온 게 아니라면 이게….”
96
이름없음
2021/09/12 15:52:37
ID : vvcslvfQleI
0
아이, 윤겨울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다.
꼭 호랑이 앞의 토끼 같은 얼굴.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충동적으로 마음에도 없던 말을 불쑥 건넸다.
97
이름없음
2021/09/12 15:52:51
ID : vvcslvfQleI
0
“괜찮겠지.”
“… 어?”
“학교잖아. 여기에 한두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든 뭐든 올 거야, 금방.”
98
이름없음
2021/09/12 15:53:04
ID : vvcslvfQleI
0
내가 내고 있음에도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다.
이내 윤겨울의 얼굴이 서서히 원래의 낯빛을 되찾았다.
99
이름없음
2021/09/12 15:53:22
ID : vvcslvfQleI
0
“그, 그렇겠지? 학교니까….”
100
이름없음
2021/09/12 15:53:38
ID : vvcslvfQleI
0
말 한마디에 즉각 반응하는 게 퍽 신기했다.
내 옆자리에 저런 애가 있었던가. 워낙 주변을 차단하며 살던 터라 나는 반 아이들 대부분의 얼굴을 몰랐다.
애초에 알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101
이름없음
2021/09/12 15:54:04
ID : vvcslvfQleI
0
“너, 진짜 침착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겨울이 고개를 푹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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