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창작소설판 잡담 스레 2☆☆ (464)
2.청춘은 켜켜이 쌓인 하루하루의 잔상이라고 (27)
3.일상에서 문득 생각난 문구 써보는 스레 (724)
4.If you take these Pieces (487)
5.글 잘 안 쓰는 소재구걸주 (61)
6.이름 남기고 가면 간단한 분위기 대답해주기 (214)
7.ㄱ부터 ㅎ까지 좋아하는 단어 적는 스레 (103)
8.생각난 소설의 개요만 쓰고 가는 스레 (2)
9.나 로판식 제목짓기 잘함 (31)
10.요즘 글 쓰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1)
11.홀수스레가 단어 세 개를 제시하면 짝수가 글 써보자! (705)
12.✨🌃통합✨ 질문스레(일회성 스레 말고 여기!!!!!!!)🌌 (219)
13.네 홍차에 독을 탔어 (208)
14.내가 작가가 된다면 쓰고 싶은 대사 혹은 문장 (89)
15.요즘 릴레이 소설이 너무 하고 싶은데 (4)
16.제일 쓰기 어려운 게 bl 빙의물인듯 (4)
17.다들 캐릭터 이름 만들때 쓰는 방법있어? (33)
18.:D (64)
19.다치거나 아픈 사람 묘사 (2)
20.소설 써보고싶다 (1)
제곧내
글 하나 쓰는데 기억력이 안 좋기도 하고 이 글 쓰는 감각을 잊을 것 같아서 여기에 한 번 더 씀.
다 쓰면 삭제.
여긴 내 방이 아니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내 방이 아니었다. 지저분한 종이 쪼가리도 이번 겨울에 절에서 받은 말라비틀어진 흰 떡도 없었다. 신축인 척 하면서 콘센트 코드에 바람이 숭숭 부는 작은 빌라가 아니었다. 사실 서 있는 건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날고 있는 건가. 떠 있는 건가. 캄캄한듯 밝은듯한 알 수 없는 공허에 내가 있었다. 그냥 역광이 어린 내 손만이 보였다. 허우적거리며 뒤를 돌자 커다란 공이 보였다. 파란 것 같기도 녹색인 것 같기도 한 공이 내 뒤에 있었다. 아니 이제 앞인가? 아 기억났다. 저걸 별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멀티텝과 촌스러운 꽃무니 벽지 사이로 소복하게 쌓인 먼지와 싱글침대 아래로 흘러내리는 오래된 솜이불은 이상하게 선명했다. 근데 제일 중요한 게 떠오르질 않았다. 이를테면 내가 왜 여기 있는가에 대한 것. 저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꺼림찍한 푸른 별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것. 스무 살 생일 날 받은 노란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로 나는 서 있을 뿐이었다. 어쩐지 기분이 더러웠고 끝장나게 허망했다.
나는 몇번의 허우적거림 끝에 그냥 걸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성큼성큼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 어딘가에 내 방이 있겠지. 그런 단순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저 푸른 별에는 가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옆에 있는 절에서 받은 백설기처럼 하얗고 조금 작고 상처 많은 별에게 다가갔다.
그곳에 별지기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라라 아저씨였다. 그냥 자기를 다들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그는 별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자기 이름을 불러줄 사람들이 많았는데 모두가 별을 지키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고 멀리멀리 가버려서 보이지 않게 돼버렸다고 했다. 라라 아저씨는 작은 오두막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 방보다는 근사한 공간이었다. 먼지가 소복하지도 않았고 몹시 춥거나 하지도 않았다. 아저씨가 따라주는 차는 맛있었고 오두막 안은 아늑했으며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신비로웠다. 아저씨는 길 잃은 나그네는 정말 오랜만이라며 내게 작은 빵을 나누어 주었다.
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없나요?
예전에는 많았지. 사람은 훨씬 적었는데 나그네가 되는 사람들은 훨씬 많았어. 지금은 사람은 훨씬 많은데 나그네가 되어도 지구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단다.
지구요?
그래. 우리 옆의 저 푸른 별.
아저씨가 오두막에 난 조그마한 창문을 가리켰다. 아까의 커다란 푸른 별이 어둠에 반쯤 먹혀있었다.
왜요? 내가 홀린듯이 물었다.
다들 무언가 두고 온 것이 있다고들 하지.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아저씨의 표정은 조금 굳어있었다.
조금의 정적이 흐른 뒤 아저씨는 내게 빵이나 과자 따위를 조금씩 챙겨주면서 여러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딱히 두고 온 것이 없다면 자리잡을 별을 찾으러 가는 것이 그나마 나을 거라고 했다. 하나의 별에는 한 명의 별지기만. 그것이 별지기들의 오랜 규칙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갈색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 갈색 가방에 넣어주었다. 아저씨의 오두막 안에는 갈색이 아닌 것들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아저씨의 컵, 나의 컵, 작은 빵, 작은 접시, 시침도 분침도 없는 시계와 도톰한 이불도 갈색이었다. 아저씨의 얼굴과 곱슬거리는 머리칼도 갈색이었다.
나는 아저씨의 배웅을 받으며 상처 많은 별을 떠났다. 아저씨는 기억은 아주 무거운 것들이라 그것을 두고 온 건 아주 잘한 거라고 했다. 무거운 건 두고 와야 이 넓은 곳을 여행하기 편할 것 아닌가. 나는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가방을 고쳐맬 뿐이었다.
별과 별 사이의 간극은 말도 안되게 먼 듯 싶었지만 갈 별을 똑바로 쳐다보고 걷다보면 금방이었다. 그렇게 아저씨의 별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새로운 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라라 아저씨처럼 근사한 오두막은 없었지만 대신 기다랗고 좁은 건물이 있었다. 창문 하나 나지 않은 그 건물은 단단해보이는 회색 벽돌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래도 이건 이거대로 근사했다.
탑의 꼭대기에는 모험가가 있었다.
그는 기다란 망원경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는데 나는 집중하는 걸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구석에 앉아 그가 관찰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은 마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런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무엇을 보고 저리 집중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그가 보는 방향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있었다. 별들을 보는 걸까? 아니면 그곳의 별지기들을 보는 걸까? 저 망원경으로 라라 아저씨의 오두막도 볼 수 있다면 한 번 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뒤 그는 망원경에서 눈을 때지 않은 채 인사했다. 자신은 모험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갈 별을 정했다고 했다. 모험가의 눈은 희망으로 가득해보였지만 손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해보였다. 음 나는 그를 모험가 씨라고 부르면서도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모험가는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는 나도 함께 누우라고 했다. 같이 모험을 하자며 히히덕거렸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굳이 안 할 이유도 없어서 그의 옆에 가방을 베고 누웠다. 그는 눈을 감고 푸르른 숲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 울창한 초록색들과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의 빛깔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세차게 굽이치는 강이나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도 떠올려 보라고 말했다. 모험가의 상상 속에서 나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이 되기도 했고 미지의 동물들과 용감히 맞부딪히는 개척자가 되기도 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상상들은 꽤나 즐거웠다. 그는 이 놀이를 진짜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몇 분 뒤 그는 나를 동고동락한 동료 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제 온갖 고난을 겪고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서로 축하의 건배를 합시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나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는 눈을 감고 누운 채로 정말 손에 건배 할 잔이 있는 것처럼 팔을 허우적거렸다. 나는 어째서인지 화가 나 그에게 쏘아붙였다.
이건 모험이 아니에요.
그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하지만 이게 더 재밌잖아. 안전하고 즐겁고 마음 가는대로 상상할 수 있고. 바다가 싫으면 강으로 강이 싫으면 섬으로 섬이 싫으면 다른 별로 가면 돼.
그렇다면 당신은 모험가가 아니군요. 당신은 몽상가에요.
그는 내 말에 불같이 화를 냈다. 그렇게 끔찍하게 화를 내는 소리는 처음이었다. 사실 우리 둘 다 화가 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처음 만났음에도 이유 없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가 진짜 모험가가 맞든 아니든간에 무슨 상관이었을까. 우리는 방금 처음 만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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