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임 나 중학생 때도 스레딕이 있었는데, 그땐 과거 2ch랑 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바뀐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아...아무튼 하소연이니까 익명으로 어디다 나 사는 얘기나 마구잡이로 쓰고 싶어서 들어왔어. 그냥 말 걸듯 편하게 쓰고 나중에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사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살아 온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 난 바닷가 도시의 그저 그런 집에서 태어났다. 감사하게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함은 없었고 어머니는 항상 강조하셨다, 아이들을 버리고 학대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한다고.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사실 내 또래라면 다들 맞으면서 컸을 것이고, 목을 조르거나 내 머리 옆 벽이 깊게 팰 정도로 내 휴대폰을 던진 것 말고는 딱히 기억도 나지 않아. 그보다는 정서적으로 많이 건조했던 것 같다. 나는 철이 들 때부터 내 본모습은 무뚝뚝하고 나쁜 의미로 둔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가끔 그런 생각도 해. 나는 원래 사랑이 넘치는 성격이었을까?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에게 주겠다고 빼빼로를 포장했는데, 어머니는 네가 그렇게 포장한 건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경제적으로 큰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더 부족한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 행복을 느끼자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조건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하는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었어. 정확히는 동생이 있었는데, 동생은 원하는 걸 가질 때까지 울거나 떼를 쓰거나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이런 것 하나 사 주지 않을 거면 나를 왜 낳았느냐고 푸념해서 결국 얻어내고야 말았어. 나는 몇 번의 좌절 이후 한 번 거절당하면 바로 포기했다. 나는 유행하는 장난감을 갖지 못해 열한 살부터 따돌림을 당했어.

그 장난감이 하나 없어서 친구 무리에 끼지 못했다고? 정말이다. 전교의 여자아이들이 그 장난감을 가지고, 특이한 어미를 붙이며 놀았다. 나도 뒤처지기 싫어 그 어미를 흉내냈더니 넌 그 장난감도 없으면서 왜 같이 놀려고 하냐고 했어. 어머니는 믿지 않으셨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수준 낮은 애들이랑은 노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집에서도 나는 위축되었고 학교에서도 위축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어머니께서는 넌 같이 놀 친구들도 없냐고 하셨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그 시작이 중학교라고 생각했어. 내향적으로 사느냐 외향적으로 사느냐...나는 후자를 택했고 중학교 3년 동안 내 또래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뭘 하면 빵 터지는지 엄청나게 연구했다. 덕분에 친구는 많이 생겼다. 외고 입시를 치렀지만 떨어졌고, 그 뒤에 학교 영어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자 어머니는 외고도 못 갔으면서 그런 거 1등 해서 어디 쓰냐고 중얼거리셨다.

중학교 때 부모님과 충돌이 잦았어. 많이 맞기도 맞았지만, 너무 개인적이라 쓸 수 없는 일들도 있고, 상술한 목을 졸리거나 물건을 던지시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네가 미쳐서 그런다며 정신과에 데려가시기도 하셨다. 틱장애와 강박장애, 뇌 불균형이 극심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특별한 재능은 딱 하나 있지만 많은 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거라셨어. 사실 이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그 재능 덕에 그나마 많은 행복과 돈을 얻었고 지금도 내 재능을 살린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아무튼 나는 우리 지역에서 공부를 제일 빡세게 시킨다는 일반고에 진학했다.

솔직히 내가 그곳에서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공부 잘 하는 애들이 특목고 대신 내신을 잘 따기 위해 오는 학교기도 했고, 나는 그냥 내신은 포기하고 정시에만 올인해서 적당히 대학 갈 생각이라 저 그냥 내신 안 한다고 못박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독학으로 국어랑 영어는 수능 선행을 모두 마쳐 놓은 상황이라 1학년 때부터 모의고사 점수가 곧잘 나왔지만, 나를 싫어하는 선생들도 많았어.

그도 그럴 게 그 학교는 내신 따기가 정말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내신 공부를 엄청나게 강조하는 학교였다. 내 생각에는 학생들 기강 잡으려고 그랬던 게 아닐까 싶어.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선생님들께서 모아서 집중관리를 했지만 나는 열외였다. 그냥 아예 대놓고 열외. 나 빼고는 다들 내신만 잘 하거나 내신 모의고사 둘 다 잘 하는 애들이었으니 사실 날 빼놓을 명분은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대놓고 나를 싫어하는 선생들이 제법 많았어. 나는 정말 깍듯하고 예의바르게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싫어하면 그냥 싫어하더라. 지금 생각해 보니 생기부 신경 안 쓰고, 자기 할 것만 하니까 별로 보기도 안 좋고 시끄러운 애니까 면학 분위기도 흐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도 다행히 내게 잘 해 주시던 선생님들이 계셨고, 특히 고1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은사님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졸업까지 많이 신경써 주셨다. 잘 해 주시던 선생님들께서는 내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주셨지만, 그렇지 않았던 선생들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너 같은 애들이 대학 제일 이상한 데 간다는 둥, 면전에서 비꼬거나 시비를 걸고 내 물건을 망가뜨렸어. 수업 시간에 나를 겨냥한 폭언을 하기도 해서 나는 그 과목 수업을 들어가지 않고 도서관에서 자습을 했어. 어차피 수능 때 선택하지 않은 과목이었거든. 그랬더니 내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마음대로 만지거나 망가뜨렸다고 애들이 말해 줘서 알았다.

그 선생들 때문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8월 학교 동아리 방에서 자살시도를 했다. 내가 회장이라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교우관계는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3년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오히려 공부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공부하고 있으면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아서 좋았다. 아버지는 내게 너 하나 정도는 희생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느낌 있잖아...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도 굳이 말로 확인사살을 해 버리면 멍해지면서 텅 비어 버리는 느낌...어쨌든 3년간 내 정신은 더 썩어들어갔다.

나 때는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아니었다. 대신 서울대에 지원하려면 한국사를 무조건 쳐야 했다. 솔직히 내가 서울대를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일부러 한국사에 투자하지는 않고 그냥 다른 과목이나 열심히 했어. 수능도 그럭저럭 잘 봤지만, 논술로 연대랑 고대에 최초합을 하면서 내 입시는 의외로 싱겁고 빨리 끝났다. 연대가 고대보다 하루 일찍 났는데, 집안이 잔치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기뻐하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별로 기쁘지는 않고 그냥 입시를 1년 더 안 해도 돼서 좋았어. 자려고 누웠을 때 눈물이 났는데 붙어서 기쁜 눈물이 아니라 이제 한 고비 넘었다는 안도의 눈물이었어.

대학에 와서 내 정신은 완전히 망가졌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에서 편안하다는 느낌을 경험했어. 동생은 양아치가 되었고 동생의 비행이 심해지면서 어머니는 그 화풀이를 나한테 하셨다. 듣자하니 아버지의 외도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어리둥절한 채 수화기 너머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 나는 대학에서도 중앙동아리 회장을 했고 다른 동아리도 하면서 그럭저럭 인싸다운 생활을 했어. 많은 대가를 치렀지만 이건 재미있었고 배운 것도 많았어. 과CC도 하고 그냥 CC도 했고 대학생이 해 볼 만한 건 다 했지만 내가 근본적으로 가진 우울한 기질과 허무한 느낌,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점점 심해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너무나도 커서 때때로 카페에, 강의실에, 길거리에 있는 나를 패닉에 빠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차라리 그냥 죽어 버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해. 조증 에피소드가 심해지면 힘이 생긴다. 가장 심했을 때는 여의도에서 술을 먹고 한강에 들어가다 넘어져서 물가 바위들에 무릎이 온통 다 까진 일이었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릴 때부터 나를 지배해서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엄청난 허무감과 공포감, 아득한 기분이 들게 했다.

KakaoTalk_20220613_221030067.jpg지금은 홍대 근처에 살면서 세브란스 다니고 있어. 정신과에 다닌 지는 4년 정도 됐어. 약은 항상 10알 넘게 먹어 왔지만 지금은 다소 순한 약들로 구성이 바뀌었어. 세브란스 다닌 지 반 년쯤 됐으니 수면제를 3년 가까이 매일 먹었는데 세브란스 가자마자 수면제부터 빼 버리셔서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해. 그간 손떨림, 트라우마틱한 꿈, 수면 중 행동, 성욕의 갑작스러운 증감, 호흡곤란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많이 겪었는데 지금은 손만 조금 떨리는 정도야.

그리고 지금은 회사 다니면서 전문직 관련된 시험 준비 중이야. 지금 너무 힘들어서 딱 시험 끝날 때까지만 담배 다시 피울까 생각한다. 일도 잘 안 풀려서 기분이 썩 좋진 않아. 내 능력과 관계없는 외부적인 사정 때문에 일이 안 풀리니까 더 짜증나. 부모님과의 관계는 학부생 때는 얼음장 같았다면 지금은 완전히 두터워져 버린 빙판 같아. 그냥 잊어버리고 살자는 이야기는 내가 해야 되는 거 아닐까...싶지만 나는 예전부터 부모님을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어릴 때부터. 계속 내가 상처받으니까 이해해 보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니까...다 잘 되라고 하는 말이고...자식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많은 것이 설명되고 또 그런 개념으로 생각하는 건 옛날 사람들한테는, 특히 지방 사람들한테는 당연하니까.

공부 하고 와야지...생각나면 또 쓰러 옴

며칠 전에 응급실 실려갔다 옴 진료기록 열람하더니 폐쇄병동 입원 권유함

그러고 보니 동반자살을 권하기도 하셨다. 그래...그랬지.

나도 점점 꼰대가 되어 간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그 때는 그만큼 힘들었을지 모르면서도, 남의 불행을 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공감보다는 냉정한 판단과 조언이 앞서게 된다.

나는 모임에서 광대 같은 사람이야.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난 웃긴다. 사람들도 모두 정신 차릴 틈 없이 웃는다. 그럴 만도 하지. 사람 웃기는 법을 얼마나 연구하고 사람 사이에 녹아드는 법을 얼마나 연구했는데. 웃기지 않는다면 분할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모임에서 돈 자랑을 엄청나게 하는 사람을 만났어. 다들 불편해하는 기색이었지만 어찌저찌 맞춰 주었지. 나는 실컷 웃기면서 그 사람을 많이 맥였어. 티키타카는 잘 되었지만, 내가 그날 참을 제법 채운 판도라 팔찌를 차고 가지 않았더라면 자칫 무시당할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병원을 다녀왔다. 약을 많이 바꾸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오늘 만난 친구가 올해 생일 선물로 가장 예쁜 판도라 참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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