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4/10/15 16:17:56 ID : WqrteNBBumq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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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름없음 2025/03/22 07:26:12 ID : rArula8mFio 0
필립은 손을 올려 얼굴을 더듬었다. 그의 왼쪽 눈이 있어야할 곳엔 거친 감촉의 살덩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울로 시선을 옮기자 얼굴의 반을 덮을 정도의 큰 흉터가 드러났다. 자신의 상처를 되짚는 그의 얼굴은 꽤나 쓸쓸해 보였다. 그때, 누군가 교태를 부리며 필립의 목을 감싸안았다. "필립, 우울해하지마." 목소리에선 감정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부드러운 살결과 체온은 필립의 마음에 안정감을 찾아주었다. 비록 딱딱한 목소리에 공허한 눈을 가진 그녀지만 필립은 알고있다. 누구보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필립은 자신의 목에 감겨있던 손을 떼어내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조금만 기다려. 우리 둘 다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 있을거야."
3 이름없음 2025/03/22 07:39:26 ID : rArula8mFio 0
둘의 시선이 교차했고 오묘한 분위기가 둘 사이에 맴돌았다. 필립은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에 입을 맞추려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그 순간. 끼기기기긱- 펑- 신경을 긁는듯한 금속 파열음과 함께 배의 앞머리에선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강한 충격에 선체가 흔들렸고 둘은 순식간에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으윽, 무슨 일이야?" 먼저 몸을 추스린 필립은 일어나 클로이의 상태를 살폈다. "난 괜찮아 필립. 그보다 갑판 쪽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둘은 황급히 옷을 챙겨입곤 방을 나갔다. 계단을 통해 갑판에 오르자 거센 비바람이 그들을 덮쳤다. "클로이, 나 혼자 다녀올께. 일단 안에 있어." 그녀를 아래로 다시 내려보낸 필립은 홀로 갑판 위로 올라갔다. 선장으로 보이는 이가 갑판 앞에 나와 사람들을 통제하려 노력 중이었다. -이보시오, 선장. 무슨 일인지 빨리 설명 좀 해주시게. -옳소! 배에서 폭발이 일어났는데 모른다는게 말이 돼?! -구명정을 띄워야하는거 아니예요? 어느새 갑판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제각각 선장에게 불만을 토로하기 바빴다. "여, 여러분 일단 모두 진정하세요. 정비공이 현재 상태를 파악중입니다." 필립 또한 인파에 끼어들어 선장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배가 무언가와 부딪쳤습니다. 아마 암초겠지요. 큰 사고는 아닐겁니다. 저희 배는 튼튼하니깐요."
4 이름없음 2025/03/22 07:46:15 ID : rArula8mFio 0
'암초라면 배의 레이더에 걸렸을텐데...' 뭔지 모를 불길한 감정이 그에게 엄습했다. 운명론적인 이야기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그였지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감각이 말해주었다. 무언가 큰 사건이 다가오고 있노라고.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감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소란스러운 갑판 위로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고 있었다. 필립이 소리칠 새도 없이, 그것은 갑판에 모여있던 인파들 위로 추락했다. 콰직- 쾅- 난생 처음 느껴보는 충격과 함께 배가 기울어졌다. 이미 모여있던 사람들은 전부 다진 고기가 되어 끔찍한 신음을 흘려댔다.
5 이름없음 2025/03/22 07:51:13 ID : rArula8mFio 0
사람들을 짓누른 그것은 거대한 바위였다. 바위의 출처에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배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필립은 빠르게 갑판의 오른쪽으로 뛰어가 금속 난간을 붙잡았다. 곧 버틸 수 없을 만큼 경사가 기울자 난간에 매달리거나, 벽면을 밝고 서지 못한 이들은 전부 바다로 나가떨어졌다. "허억, 헉. 젠장, 클로이..!" 그녀는 당장은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배가 침몰하는 것은 시간 문제고 그럼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수장될 터였다. 필립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배가 완전히 90도로 기울자 벽면을 밟고 선 그는 우선 구명정을 바다에 띄웠다.
6 이름없음 2025/03/22 07:55:26 ID : rArula8mFio 0
살아남은 이들이 어느정도 구명정으로 이동하자 그는 스패너로 선실의 유리창을 깨부쉈다. 가죽 코트로 유리조각을 치워낸 뒤, 선실로 뛰어내리자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ㅅ,살려줘. 물이 너무 차가워. -끄아아악! 살려줘! 죽기 싫다고! 여기서 꺼내줘! 선실의 문을 열자 기울어진 복도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클로이! 어디있어! 들리면 대답해!" 문과 벽 사이를 뛰어넘으며 그녀를 애타게 찾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내 선체는 물에 완벽히 잠겼고, 살아남은 것은 띄워진 작은 구명정 3대와 대충 60명 정도 되보이는 인원들이였다.
7 이름없음 2025/03/22 08:06:14 ID : rArula8mFio 0
필립이 배에 탄 인원 중 클로이가 없는지 찾고있을 때, 한 남자가 소리쳤다. "아, 아직 안심하면 안됩니다. 태풍이 강해지고 있어요!" 큰 배라면 강한 태풍에도 문제가 없겠지만 이 작은 구명정은 아니였다. 벽면을 짚고 흔들리는 구명정에서 버티고 있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익- 좀 전에 배를 부쉈던 거대한 바위. 그 바위가 또다시 바다 한 가운데로 날아들었다. 펑- 수면에 부딪힌 바위는 그 질량만큼 큰 충격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높은 파도가 구명정을 덮쳤고, 결과는 참담했다. 암초 쪽으로 날아가듯 떠밀린 구명정이 박살나고 만 것이다. 필립은 어두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파손된 조각들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버텼다.
8 이름없음 2025/03/22 12:55:46 ID : rArula8mFio 0
··· 쏟아지는 빗줄기는 필립의 뺨을 두들겼다. 그의 코와 입으로 바다와 비의 텁텁한 습기가 흘러갔다. 필립은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되찾았다. 장시간 젖어있던 몸이 덜덜 떨렸고, 그는 이대로 가다간 곧 죽게되리라 직감했다. "불, 불을 피워야해." 다행히 배의 부숴진 잔해 더미에서 플레어를 찾은 그는 뚜껑을 열어 마찰시켰다. 이내 막대의 끝에선 지독한 연기와 함께 붉은 빛이 발광했다. 미비한 빛이었지만 반파된 구명정을 지붕삼아 몸을 덥히기엔 충분했다. '...빌어먹을.' 파도는 점차 거칠어지고 있었고, 태풍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안가엔 그를 제외한 생존자 또한 없어보였다. "절망적이군.."
9 이름없음 2025/03/22 13:22:37 ID : rArula8mFio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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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름없음 2025/03/28 04:04:06 ID : rArula8mFio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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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름없음 2025/03/28 04:05:27 ID : rArula8mFio 0
텅- 도끼를 든 사내가 있는 힘껏 나무를 내리찍는다. 그러나 숲에 울리는 것은 금속과 나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따위가 아니었다. 맞부딪친 도끼날과 나무껍질 사이에 스파크가 튀어올랐다. 찌직- 쩍- 단 한번의 도끼질. 그 한번에 도끼는 불을 뿜듯 격정적으로 나무의 껍질을 찢어발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도끼를 깊게 박아넣자 움직임이 멈추었다. 강철과도 같은 나무의 속이 도끼날을 물어버린 것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남자는 이것이 익숙하다는 듯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거대한 크기의 망치. 그는 그것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이내 그것을 있는 힘껏 휘두르자. 쾅- 도끼날의 뒷부분에 망치가 적중했다. 비어있는 드럼통을 두들기는듯한 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퍼졌다. 남자는 개의치 않고 연신 망치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두들길 때마다 도끼와 망치는 점차 마찰열에 의해 뜨겁게 달궈져갔다. 붉은 색으로 달아오른 도끼날의 표면에선 강한 악취와 함께 김이 세어나왔다. 한계까지 달궈진 도끼가 나무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쿠궁- 쿵- 거목이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방금 전까지 하늘 높이 솟아있던 거목이 한 남자의 손에 의해 쓰러진 것이다. 그것은 직접 눈으로 보지않고는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는 나무가 완전히 베어진 것을 확인한 뒤, 잠시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전신에는 땀이 비오듯 흘렀고 거칠게 다듬어진 근육은 각자 생명을 가진 듯 꿈틀거렸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점은 손이었다. 관절이 괴기하게 비틀리고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은 그와 숲이 보낸 인고의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다. 양 손을 맞댄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상처와 굳은살을 쓸어내렸다. 보람에 차있던 표정엔 왠지 모를 어둠이 드리웠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시 시야에 나타난 푸른 창 때문이었다. 그곳엔 그렇게 쓰여있었다. [2461일째] 그가 이 절망적인 숲에서 보낸 날짜였다.
12 이름없음 2025/03/28 04:12:02 ID : rArula8mFio 0
그는 나를 향해 소름끼치는 조소를 지어보였다. 주름진 얼굴을 따라 퍼져나가는 미소에선 광기를 엿볼 수 있었다. "죽어! 죽으라고!" 옆에서 튀어나온 여자는 식칼을 들고 악을 쓰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말라붙은 피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아마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뿐이다. 남자에겐 그 무엇도 통하지 않는다. 억겁의 경험도, 각고의 노력도, 하늘이 내린 재능도.. 이미 전부 봐왔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콰직- 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그녀의 왼팔이 날아갔다. "끄억..꺽..." 언제 박살낸 것인지 성대가 뜯겨나가있다. 저 상태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겠지. 곧 그는 머리와 다리를 교차해 그러쥐었다. 위아래로 천천히 압박을 가하자 그녀는 처참히 뭉개지고 찢어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되었다.
13 이름없음 2025/03/28 04:15:11 ID : rArula8mFio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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