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19/07/19 23:46:43 ID : bhglA1vinQk 0
평소와 같은 하루였어. 어제의 소란이 잊혀질 정도로 평범한. 눈부신 햇살아래 네 생각을 하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다 벗어났을 때. 문득 마지막이였을 네 모습이 눈앞을 가득 채웠어. 처음보는 그림자진 방. 왜인지 익숙한 구도.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너.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발은 까치발을 든 모양새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짧은 환각에 숨이 막혀왔었어. 내가 너와 더 친해졌다면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을까. 그곳에 초대 받을 수 있었을까? 나는. 내가 본게 무엇인지 그것이 진실인지 알아야만 했어. 그래서 네 이야기를 들었어.
2 이름없음 2019/07/19 23:51:42 ID : bhglA1vinQk 0
내가 본것이 진실이라서. 그 전날. 지난밤의 꿈 속의 책이 펄럭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거대한 인명부의 차례대로 채워진 글자들 속에 마지막 100번째로 적혀 있는 네 이름이 펄럭이면 보일까 라고 생각했어. 네 이름 옆으로 늘어져 있던 빈공간들은 채워지고 있는걸까. 네 이름이 담겨있는 그 순백의 책을 보는 꿈은 누구의 시선이였을까. 너보다 먼저 적힌 이름들은 누구일까. 그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어.
3 이름없음 2019/07/19 23:57:48 ID : bhglA1vinQk 0
내가 차마 가지못한 그 장소에선 나비가 날아다녔다고 했어. 우중충한 날씨에 무거운 날개짓을 해야했을텐데. 너가 있는 곳의 건물을 나를 제외한 우리들이 있던 주변을 날아다니다 사라졌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는 그 의미를 궁금해하는걸 그만뒀어. 그건 어떤 이야기처럼 또 다른 너의 모습일지도 몰라서. 우리는 괴담을 좋아하던 아이들이였으니까. 이해해줄거지?
4 이름없음 2019/07/20 00:04:13 ID : bhglA1vinQk 0
가지 못했기에 인사를 하지 못해서 어머니와 함께 너를 만나러 가야했어. 네가 들어왔던 정문에서 다 같이 꽃을 들고 있었던걸로는 엉킨 속이 풀리지 않아서. 너를 찾아갔어. 나는 바보같이 어머니가 있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너와 눈을 맞추기만 하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다시 너와 헤어져야 했지. 건물을 나오며 발에 채이는 몬난 동그라미 모양의 자갈들을 차지 않게 조심하며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해. 난 왜그랬을까.
5 이름없음 2019/07/20 00:09:11 ID : bhglA1vinQk 0
선생님이 나를 걱정해주셨어. 나는 괜찮았어. 선생님을 걱정할 정도로 언제나 예상하던 상황이였거든. 언젠가 한번 들은 이야기로 떠올릴만한 상황이였거든. 다들 서로를 끌어안고 토닥였지. 받아 본적이 없어서 어색한 위로가 이상했지만 나쁘지 않았어 단지 그들의 품은 따뜻해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눈물을 터트렸어. 이상하지. 내가 울면 꼭 무언가 하나는 잘못되서 꽃을 놓던 그날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였어.
6 이름없음 2019/07/20 00:14:42 ID : bhglA1vinQk 0
여러 이야기가 들려왔어. 나는 개중 진실을 몰랐고 단지 그 이야기들을 전부 들었어. 모두 네 이야기를 했거든. 모두 너를 궁금해했고 그걸 나에게 묻고 싶어했어. 결국 나는 그날 학원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돌아가야했어. 울고 나면 학원을 끊게 될텐데. 언제나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들려왔을땐. 나는 그 이야기가 정말 지독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사실 모든 이야기가 그랬지만 하나가 되어버린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였어. 네 주변 모두가 이유였을텐데. 네 생각도 묻지 않고 왜 그리 단정 지었을까.
7 이름없음 2019/07/20 00:19:46 ID : bhglA1vinQk 0
학교는 소란스러웠고 교실은 부산스러웠어. 선생님은 그 한달간 우리의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고 지각을 하던 무슨 잘못을 하던 침묵했어. 외부인이 들락날락 거리며 무슨 말들을 했고. 나는 그 이야기들이 네모로 검열되어서 들리는 것만 같아. 듣고 싶지 않아서 시간이 다 끝나갈때 당번을 핑계로 몰래 빠져나와 복도를 혼자 걸었어. 쓸모없는 활동을 굳이 해야하는걸까 하며 교무실에 도착하니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다 나를 다시 그곳으로 되돌려보내서 끝까지 문 앞에 서서 멍하니 있어야만 했어.
8 이름없음 2019/07/20 00:28:15 ID : bhglA1vinQk 0
나는 괜찮았어. 선생님께도 그렇게 말했어. 별거 아니였거든 익숙한 일이였거든. 너 이전에도 몇명이나 봤거든 이야기도 해보고 붙잡기도 해보고 독설을 내뱉기도 했었거든. 결국 너는 내 처음 중 하나를 가지고 가버렸지만. 나는 괜찮았어. 원래 다들 그럴거잖아. 그런데. 이틀이 지나니까 안괜찮더라. 가벼운 우울감이 점차 깊어지고 있었어. 다들 평범하게 웃고 떠들고 하루를 보내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 야자시간에 홀로 남아 엎드려 있다가 문을 닫으며 네게 인사하곤 했어. 난 안괜찮았어. 아무일도 없었단 듯이 웃다가도 입가에 경련이 일었어.
9 이름없음 2019/07/20 00:33:28 ID : bhglA1vinQk 0
그날 생각나는 말들을 직직 그어 스케치북 한장에 한가득 채우고 버리려다 누가 볼새라 집에 챙겨와 책장 한구석에 박아놨어. 내가 심란했던건 단지. 내 SNS 계정에 있는 네 계정이 보여서였고. 네가 하는 또 다른 SNS 계정에 사진이 너가 사정 사정해 찍은 우리 둘의 하나뿐인 사진이였기 때문이였을거야. 내 얼굴에는 내가 붙이라해서 붙은 스티커가 네 얼굴에는 만개한 미소가. 그 아래로는 그 순간의 시간이 적힌 그 사진이 있었으니까.
10 이름없음 2019/07/20 00:38:22 ID : bhglA1vinQk 0
그것도 아니라면 언제보다 밝게 웃었던 날. 그날의 저녁 너의 고민을 더 들어주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단둘이서 시답지 않은 짧은 대화를 했고. 단지 월요일에 다시 보자는 말을 하지 않고 잘가라고 했기에 그랬을지도 몰라. 우리가 그렇게 친하지도 친하지 않지도 않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너를 좋아했나봐. 점점 사라지는 애들의 뒤로 단 둘이 남아 공부하고 책 읽던 우리의 야자시간에 생각보다 많은. 추억이 쌓였었나봐.
11 이름없음 2019/07/20 00:42:28 ID : bhglA1vinQk 0
곧 학원을 끊고 불을 끄고 침대에 드러누워 멍하니 있었어. 잠이 오지 않아서 뜬 눈으로 나보다 더 큰 인형을 꼭 끌어안았어. 복잡한 생각이 지나치다 나는 네 웃음만 생각이 났어. 파란색을 좋아해서 온통 파란색을 가지고 다니기에 별 생각 없이 줬던 파란색 물건에도 웃던 네 생각을 했어. 중간에 들어온 부모님은 조심스럽게 나를 보고 자기들끼리 떠들었고 나는 한참을 그러다 잠들었어.
12 이름없음 2019/07/20 00:46:23 ID : bhglA1vinQk 0
우리는 웃으며 이런저런 애기를 했지. 정작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아는건 없었으면서 비슷한 성격이라 짧게도 툭툭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었지. 네가 어려워 하던 수학문제를 나는 더 어려워하며 선생님을 불렀고 설명을 듣는 너를 보다 웃으며 책을 읽었던 기억도 있었지. 친구의 친구. 같은 반 친구. 잘 웃는 이쁜 아이. 열심히 하는 아이. 사랑스러운 다정한 아이. 그게 너였어.
13 이름없음 2019/07/20 00:54:00 ID : bhglA1vinQk 0
너는 몰랐겠지만 다들 너를 그렇게 생각했어. 그러다. 원망도 하고 화도 내보고 그리워했지. 나는 남들처럼 웃다가 집에 오면 계속 누워있었어. 휴대폰도 만지지 않고 네 생각을 하다 멍하니 울다지쳐 잠드는 날의 연속이였어. 열명도 넘은 아이들의 자살기도를 막아내었을 뿐이었던 내가 뭐라도 되는 마냥 자책했고 미안해했어. 그리고 암흑이였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하지 못했어.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네기 그걸 이해시켜줬어.
14 이름없음 2019/07/20 01:10:41 ID : bhglA1vinQk 0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모두가 침묵하던 한달이 지나니. 어머니는 그동안 가고 싶어했던 미술학원을 보내주셨다. 보내 준 이유가 너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집중하기 힘들었다. 웃어야하는 시간이 늘어 집에선 표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전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신기했고 생각보다 유용한 감정이라 좋았다. 그냥 그랬다. 나는 이렇게 지냈다. 이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아가려 발버둥쳤다. 늘 죽지 못해 살았지만 이젠 살기 위해 살았다.
15 이름없음 2019/07/20 01:18:48 ID : bhglA1vinQk 0
수많은 이야기들 중 겨우 털어놓게된 네 이야기가 나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지만. 이제는 한글자로 인해 울며 숨을 골라야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우울감에 무기력함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고. 버리지 못한 네 모든 것들을 품고 눈을 감았다. 늘 그랬듯 나는 아무것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듯 널 기억할것이다. 복잡한 사정으로 애기하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적지 못한 자잘한 이야기들도 모두 우리가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힘들면 되집어보다. 이렇게라도 작게나마 털어놓고 잠시 도망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살거다. 살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살아보려한다. 미안하고 정말 좋아하는 내 친구야. 세상의 끝에서 다시 만나 웃어보자.
16 이름없음 2019/07/20 01:22:42 ID : bhglA1vinQk 0
언젠가 다시 찾아올 이곳에 이렇게 과거의 기록을 남긴다. 곧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어 한시름 놓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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