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보에요 2019/12/03 04:14:30 ID : k1cnxyJRu7a 0
밤 거리의 어느 한 골목길 안, 조그만 술집. 그 안은 무척이나 어두워 보이며, 울적해 보였다. 동시에 폭력적이어 보이기도 했다.   본래 술집이라면 즐겁고 호탕한 느낌은 있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겠지. 이 마을은 이 나라가 전쟁에서 지고, 또 져서 또다시 삼켜질 마지막 장소가 될 거니까.   "계속 지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우린 질거야.. 우리가 한 번이라도 그 나라를, 이긴 적이라도 있긴 해?"   "술이나 먹는게 나아… 이게 마지막 술 일지도 모르잖나"   저 쪽 구석자리에서 병사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저 성질머리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적막한 곳의 주인장은 씁쓸하게 미소 지어 보이며 잔을 닦고 있었다.   딸랑.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볼 정도로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긴 검을 찬 여성이었다. 술꾼들의 이목을 끈 그 찰랑거리는 금발머리는 곧게 위로 묶여 허리까지 내려왔다.   그처럼 곧은 의지를 보이는 눈동자는 슬쩍하고 안을 살폈다. 사실 눈에 띈 이유는 당당해서도, 아름다워서도 아니었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기사복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기사복은 발목까지 내려와야 할 터였다. 그러나 여성의 옷은 움직이기 편하게 하기 위해 긴 치마의 기사복을 짧게 입고 다니는 듯 싶었다.   어쨌거나 성큼성큼 걸어와 주인장 앞의 바에 앉았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칵테일을 주문했다.   "마가리타를."   그는 칵테일을 만들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마가리타는 큰 뜻을 가지고 있습죠, 아시나요?"   "전 그저 마가리타의 그 쌉쌀한 맛이 좋아 먹는 겁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대화를 단칼에 잘라내고는 잔을 천천히 마시는 듯 싶었다. 주인장은 좀 무안한 듯 했으나 다시 말을 꺼냈다.   "마가리타는 어느 바텐더가 자신이 실수로 죽인 애인을 잊지 못 해 만들었다고 하죠."   잠자코 듣고 있던 여성은 묶었음에도 흘러내리는 긴 머리칼을 넘기고는 말했다.   "슬프네요."   라며 간결하고 관심 없다는 뜻의 답을 했다. 그러나 작게 입을 열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죽인 애인을 잊지 못해 만들다니.. 어리석어"   그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또 다른 당당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털썩 앉는 듯 싶었다.   그 후 잔을 기울이는 여성을 보며 주인장에게 "파르페 아무르"라 주문하는 그 였다.   그의 약간은 휘인 갈색 머리칼은 밝은 달빛에 빛났다. 다소 천진난만 해 보였지만 냉정해 보이는 눈빛은 꽤 매력적이었다.   그는 매력적인 그 눈으로 그녀의 기사복에 새겨진 장미를 보더니 여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꽤 높은 직위를 가지셨군요."   여자는 살짝 눈썹을 찡그리고는 딱딱하게 물었다.   "높은 직위가 아닌 이상은 이 문양을 모를 텐데"   그렇다. 일반 병사도 잘 모르는 것은 바로 문양.   일반 병사는 진심과 냉정의 사이인 수국. 재주는 뛰어나다지만 아직 부족하다면, 장미를 지키는 튤립. 그리고 단 한명 뿐인 장미.   장미는 차기 여왕이나 다름없는 문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위가 높지 않다면 알 수 조차 없는 게 장미였다.   "안타깝게도 전 그래도 조금은 높은 쪽이라서."   라며 남자는 그저 친절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 나선, 별 쓸데없는 얘기였다. 여러얘기들로 시간을 채우고, 잔을 비우니 벌써 술집의 문이 닫힐 시간이었다.   "요즘 같은 때 늦게까지 있으셔도 되나요?"   "네"   아무래도 불안하다며 데려다 주겠다는 그를 뿌리치며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못 본 거 에요. 어차피 우리는 싸우는 사람이니까, 볼 일도 없을 거고."   그는 그 말에 반박하듯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나는 말이죠.. 이 옷에 새겨진 문양이 장미이기 전에 지켜주고 싶다는 겁니다."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더니   "이 문양이 가지는 가치는, 그리 가벼운 게 아닙니다. 당신조차도 내 손에 죽을 수 있어요."   “저는 당신의 문양을 알고 있어요. 저도 이 정도면 지위가 있는 편.. 아닌가요.”   그렇게 애절한 목소리를 무시한 차가운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슬펐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들어 올려지는 순간 남자는 숨이 조금씩 막혀 지는 게 느껴졌다. 그 어깨를 잡은 손을 건드리자 곧바로 구토감이 올라왔다.   "이제, 알겠어요? 그래도…. 즐거웠으니까. 잘 가요" *** 때는 그 밤이 지난 새벽이었다. 적의 습격이 들어온 것이다. 폭탄과 온갖 총알들이 날아다녔고, 무고한 사람들은 죽어만 갔다. ‘다 살릴 수는 없는가’ 라는 말들이 오갔지만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긴 검을 찬 여성은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살 길을 찾기 위해 비명을 지르고, 도망 다니며, 울 뿐이었다. 그러다가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뒤에 숨게 되었다. 모두들 이렇게 계속 공격만 받다가는 언젠가 여성의 힘도 바닥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해보였다. “이래서.. 제대로 지킬 수는 있어요..?” “이 전쟁, 끝나기는 해?”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 거야..” “다른 남자병사는 없냐고요!” 하지만 그 생각은 한 순간에 접히고 말았다. 그도 그럴게, 본적도 없는 마법을 쓰며 날아드는 총탄들을 막아내 보였다. 손을 들어 공간을 무중력으로 만드는가 하면 총알이 일직선으로 오다가도 천천히 떨어졌다. 마치 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문제의 시점은 ‘지금부터’였다. 점점 더 많아지는 폭탄들과 수류탄들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을 터였다. 그 때 한 남자아이가 눈물을 물방울처럼 크게 흘리며 앞으로 뛰어 나갔다. 즉, 여자의 방어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반대편의 가소롭다는듯한 표정이나 지은 군사 쪽으로 가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여자의 방어막을 나가 아이를 지키려 몸부림을 쳤지만 그 모습을 두고 볼 리는 없었다. 병사들이 악을 쓰면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도 못 나가게 막은 것이다. 여성은 그런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어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점점 그녀의 발은 앞으로 내딛어져 어느새 아이가 간 곳까지 방어막을 늘려갔다. 그리고 잠깐의 몇 초, 방어막을 풀고 아이를 붙잡는 순간이었다. 적의 한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총으로 여자를 겨냥하고. 그 총을 쐈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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