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10/20 21:31:35 ID : eJRveFeJXxR 2
깊은 산속에서 자신의 머리카락과 볏짚인형을 태운 후 “귀신님, 귀신님을 뵙고 싶습니다” 라고 부르면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귀신이 온다고 한다
2 이름없음 2020/10/21 13:56:53 ID : ZcspanB9heZ 0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듯 그런 낭설을 믿는 사람은 없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귀신은 커녕 가위도 한번 눌려보지 않아 실제로 겪어본 오싹한 이야기, 귀신 이야기에는 끼어들지도 못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미지에 관하여 두려움과 동시에 가끔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라, 나또한 그 섭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한 호기심으로 부터 시작된 일일 뿐이었다.
3 이름없음 2020/10/21 14:07:05 ID : cr9gZclfO4L 0
갈색, 붉은색… 찬란했던 녹색의 시절이 지난 어느 가을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논밭이 있었고, 마침 가을 걷이가 끝나 짚단이 높게 쌓여있었다. 그것을 보니 문득 그 소문이 생각난 것이다.
4 이름없음 2020/10/21 22:05:50 ID : cpPjwJO5PfR 0
나는 볏짚 한 줌을 뽑아 이리저리 엮었다. 이런 장난은 오랜만이었다. 어른들이 모두 일하러 나갔을 때,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인형놀이는 그 몇 안 되는 놀이 중 내가 특히 좋아하던 것이었다. 엄마 말로는 짚인형이 친구라도 된 양 마루에 앉혀 두고 혼자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깔깔 웃었다고 한다. 어린 나는 몽상에 잠겨 지냈으니 상상의 친구를 만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시절 나는 별의별 이야기를 다 지어내서 동네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사람으로 변하는 호랑이, 귀신들의 행렬, 뒷산의 도깨비 같은.
5 이름없음 2020/10/25 00:05:30 ID : eJRveFeJXxR 0
그 소문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생 때였다 한창 무서운 이야기에 관심 많을 나이지만 유독 그 소문만 진짜라는 증명인이 많았다
6 이름없음 2020/10/25 21:24:17 ID : vBeZfWi4HCq 0
나는 호기심에 머리카락을 뽑아 조금 전 엮은 볏짚인형과 함께 태웠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귀신님, 귀신님을 뵙고 싶습니다”
7 이름없음 2020/10/27 16:11:18 ID : ZcspanB9heZ 0
웃긴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었는지 마지막에 조금 바람빠지는 웃음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분명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지. 무슨 소원을 빌까. 꽤 즐거운 상상또한 했다. 저지른 일에 대한 무게감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귀신이 자주 나타난다는 밤도 아니고, 볏짚은 바닥에 널부러다니는 것을 주워 대충 만든 조잡한 것이었다.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엔 진지함이라곤 없고 웃음기가 가득했다. 나타날리가. 맹신과 같은 생각을 전제에 깔린다. 분명 얕보고 있다고, 괘씸해서라도 꽁꽁 숨어버리지 않을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다발, 먹고 싶었던 음식. 행복한 상상은 주니의 등장으로 연기처럼 흩어졌다. 웡웡! "주니! 오랜만이야. 누나 보고싶었구나?" 잘 익은 벼처럼 누르스름한 주니는 수많은 사생팬을 보유하고 있는 마을의 마스코트다. 궁둥이를 씰룩이며 다가오는 주니의 모습에 당장이라도 꼬순내가 나는 이마에 입술을 부비고 싶었지만, 주니는 쎙하니 나를 바람맞히곤 잘 타고있는 볏짚인형에게로 달려갔다. "어허! 위험하니까 가까이 가면 안돼요." 주니는 내가 말리던가 말던가 피어오르다 허공에 스며드는 연기를 보며 하염없이 짖었다. 불이 무서워서 그러나? 허구헌날 발라당 들어누워 애교를 부리던 순하디 순한 모습과는 달랐다. 집요하게 한곳만을 바라본채 이를 들어내고 그르르- 침이 끓는 소리까지 내기까지 하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개가 아무 이유없이 허공을 보고 짖을 적엔 귀신을 본거라는 미신을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증거없는 미신이었지만 방금까지 한 일이 있으니 괜히 뒷목이 서늘해지고 무서워졌다. "주니야! 주니!!" 참을 수 없는 기분에 애타게 주니를 불러보았지만, 혀를 내밀고 꼬리를 살랑이며 올곧게 마주봐오던 눈동자는.... 조금도 내게로 향해주지 않았다. 결국, 주니가 짖는것을 멈춘건 볏집이 다 타고 재만 남은 뒤였다.
8 이름없음 2020/10/28 21:21:12 ID : eJRveFeJXxR 0
나와 주니뿐인 숲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만 남았다 주니를 데리고 돌아가야겠다고 움직인 그때 “누구니” 낯선 목소리에 전신이 멈추고 소리가 들린 위쪽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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