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1/12/18 00:59:39 ID : Qso43TXze5d 0
익명성을 빌어 이곳에 적어본다. 말 그대로 나는 죽은 사람이다. 나는 바닥이라는게 있을줄 알았는데 내가 딛은 저 아래는 늪이었더라. 내 유일한 희망이었던 어린 딸을 가슴에 묻고 나는 살아갈 의미가 없어졌다. 결심이 서니까 무서울게 없더라. 그렇게 나는 죽었다.
2 이름없음 2021/12/18 01:05:12 ID : Qso43TXze5d 0
내가 눈을 떴을때 난 시도가 잘못되었는줄 알았다. 숨이 막히고 혀가 말려올라가기 일보 직전에 나는 처음보는 집에서 목에 옷걸이를 벌려서 걸고 있었다. 옷걸이는 방문 손잡이에 걸려있었고 나는 그 옷걸이에 목을 매단채로 주저앉아있었다. 몸을 일으키고 옷걸이를 빼내고 한참동안 기침을 했던것같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옷도 처음보는 옷이고 여긴 우리집도 아니고 하물며 병원은 더더욱 아니었다. 꾹 닫힌 방문들을 열어보며 욕실을 찾은 나는 거울을 보고 놀랐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키도 조금 컸나...?
3 이름없음 2021/12/18 01:10:55 ID : Qso43TXze5d 0
집안은 완전 난장판이었다. 몇달은 관리를 안한듯한 모습. 마치 내가 딸을 잃은 초반과 흡사했다. 비교할수는 없겠지만 이사람도 필시 내 고통과 견줄만한 어떤 일을 겪었거나 겪고 있었음이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대충 주변을 정리하고 급격한 피로감에 난장판인 침대 구석에 기어들어가 몸을 뉘었다. 체력이 약한것같다.
4 이름없음 2021/12/18 01:15:01 ID : Qso43TXze5d 0
그리고 난 꿈에서 이 몸의 주인이라고 해야하나. 어떤 기억을 꽤 오래 보게되었다. 정말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의 기구한 인생이나 나와 닮아있었다. 나 역시 한두가지로 극단적 선택을 한건 아니었으니. 그 때문에 내 정신이 이 신체랑 감응한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기억들은 내가 잠에 들면 비디오를 틀어주듯 어김없이 재생되곤 했다. 같은 부분을 반복하기도 하고 이십대의 어느날을 비췄다가 갑자기 어린아이로 돌아가기도 했다.
5 이름없음 2021/12/18 01:18:38 ID : Qso43TXze5d 0
내가 이 신체에 적응할 무렵엔 솔직히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린것 같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본래 나였을때의 기억과 이 신체의 기억이 혼합되어 나조차도 어느것이 내가 겪은 일인지 헷갈릴 정도가 되어버렸는데, 신체는 내 신체가 아니니 내가 겪은것이라고 해야하나.. 나도 잘은 모르겠다.
6 이름없음 2021/12/18 01:23:46 ID : Qso43TXze5d 0
이 몸을 얻고나서 변화가 몇가지 있었다. 나는 본디 술을 잘 하지 못한다. 소주 한병도 채 마시지 못할정도고 몇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주변에서 말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 몸은 술을 꽤나 잘 먹었는가보다. 집에 소주병이 박스로 쌓여있었으니 본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것같다. 꿈속에서 보이는 기억도 그걸 반증해주었기도 했다.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소주를 서너병씩 먹었던것 같은데 내가 이 몸을 갖게되고나서는 점차 줄어들더니 예전 내 주량이랑 비슷하게 맞춰지게 되었다.
7 이름없음 2021/12/18 01:28:59 ID : Qso43TXze5d 0
그리고 난 식이알러지가 있는데 처음엔 먹어도 괜찮던것들이 이 몸에도 알러지 반응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약을 늘 구비해두고있다. 그리고 내가 안가지고 있던 질병이 몇가지 있는데 이 몸 주인의 기억을 토대로 짚어본 바 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질병은 개선이 잘 안되는것 같다. 예를 들자면 난 양 안 1.2의 정상시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몸은 눈이 안좋은지 집안에 안경이 몇개 있기도 했고 기억을 짚어보자면 꽤나 어릴적부터 안경을 써왔던듯 하다. 측정시력이 상당히 낮더라. 이 부분은 영 적응이 안되어서 잘 안보이지만 안경은 못끼겠더라.
8 이름없음 2021/12/18 01:35:00 ID : Qso43TXze5d 0
또 변화가 좀 있었는데 나는 아이를 낳고나서 튼살이랑 체중증가가 있었다. 이 몸은 처음엔 날씬하고 피부도 고왔는데 내탓인건지 내가 아이를 낳았을때 생긴 튼살과 비슷한 패턴으로 자국이 조금씩 짙어지며 생기기 시작했다. 체형 역시 이전 나와 비슷하게 점차 맞춰지더니 예전 나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살집있는 체형으로 바뀌더라. 얼굴 역시도 나는 본디 고양이상이라고 불리우며 속쌍커풀이 있는 타입이었는데 이 몸은 짙은 쌍커풀에 강아지상이었으나 점차 고양이상으로 바뀌며 쌍커풀이 얇아졌다.
9 이름없음 2021/12/18 01:40:05 ID : Qso43TXze5d 0
여기까지가 일단 나와 이 몸의 융합과정이라 불릴만한 일들이었다. 나는 이 몸을 갖게된지 지금 햇수로 5년정도 되었다. 그럼 내가 이 5년동안 내 본래 몸이 어디갔는지 찾아보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것이다. 물론 찾으려고 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본디 가족과는 연을 끊고 숨어살고 지내고 있었으며, 하나있던 딸아이도 먼저 보낸 후로 연이 닿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니던 직장엘 찾아가 보았는데 얼굴이 변하면서 내 본래 이미지와 닮아졌었는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포기하게 되었다. 어찌 둘러대었지만 의심하는 눈치였다.
10 이름없음 2021/12/18 01:47:08 ID : Qso43TXze5d 0
나는 이쯤에서 한가지 고민에 봉착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몸 주인인가?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일부가 되어버린 본래의 나인가? 혹여 이 기억이 오히려 내가 만들어낸 꿈의 일부분인건 아닌건가? 나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전혀 다르다. 나는 대체 왜 이렇게 된건가? 정신과에도 방문해봤지만 전혀 믿질 않았다. 혼자 고민하고 생각해보다 우연히 알게된 이곳에 털어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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