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의 글입니다. 일기에 더 가까워 창작소설이 아닌 일기판에서 글을 씁니다. 어딘가에 의탁 중이며, 약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온전치 않을 땐 그 사람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이름은 따로 없습니다. 다만 저는 ‘여월’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언급할 일은 더 없을 겁니다. 이제 자주 나오지도 않을 테고요.

어항 밖을 나온 물고기는 바다로 항했다. 드디어 어항을 탈출한 물고기는 자유를 찾아 떠났다. 그곳이 더 큰 어항인 줄도 모른 채.

산을 보지 말고 숲을 보라 해서 숲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내 삶을,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말은 굉장히 슬픈 말이야. •어째서? 결국 사람은 혼자임을 증명하는 문장이잖아.

거짓말을 하는 건 늘 쉽다. 진실보다 토해내는데 서슴없고, 망설임이 없다. 난 나에게까지 거짓말 하는 걸 쉽게 여긴다. 여기, 한 아픈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이번에 혀를 깨물어 피를 냈다. 그 후로 밥을 먹어도, 양치질을 해도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다.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은 내게 거슬리는 부스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안 아픈 척 하는데에 도가 텄고,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고통이 보내오는 신호를 무시하는 건 거짓말하는 것과 같다. 왜 티를 내지 않느냐는 당신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미 너무 많이 아픈데 신체적 고통까지 더해지면 나는 이대로 죽고 말 거라고. 당신은 죄가 없다. 남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단지 그 반응이 이미 아흔아홉 번을 봐 온 장면 일지라도 말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면서요. 하지만 우리 인간은 지금이 난세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걸요. 영웅이 나타나도 난세를 자각하지 못한 인간들은 그 영웅을 그저 미친사람 취급하겠죠. 동화나 소설 속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픽션이며, 가상일 뿐이에요. 현실 속 세상은 그리 순탄치 않아요.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당장 사람이 총 맞아 죽어도 외면하는 현실인데. 뒤늦게 늦었음을 후회할 때 곁에 남은 이는 아무도 없을텐데.

그럼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 줬어야지. 방치하고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만 잘하지. 그깟 것도 관심이라고 주워 먹으라 던져주며 큰 아량이라도 베푼 양 굴지. 하루빨리 죽어서 벗어나고 싶나 봐. 그깟 것도 죄책감이라고 자기연민에 빠져 참 잘도 몰입하더라. 책임진 적도 없으면서 주제에 보듬은 척은 했다 착각하고. 그냥 죽게 내버려 뒀어야지. 꼴에 인두겁은 쓴 사람이라고 남들 눈치, 시선 볼 건 다 보지. 타인의 수군거림에는 그리 신경 쓰면서 문제의 원인은 파악도 못 하는 머저리일 뿐이면서. 뭐가 그리도 잘났는지 자기 말이 옳다고 개도 안할 헛소리를 지껄이고. 영영 상처받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결국 한 사람 아닌가.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지? 당신, 아님 나?

행복해지고 싶었으면, 낳질 말았어야지.

당신이 먼저 말에 책임을 지지 않았으니, 나에게 거짓말을 했으니. 나도 똑같아. 이건 정당방위일 뿐이야. 내 거짓은 죄가 되지 않아. 내 죄를 늘리고 싶었으면 본인 처신부터 똑바로 했어야지. 이기적인 적반하장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야지.

낡은 단어를 꺼내와 기워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까, 그건 꼭 몰아치는 파도 같다. 물살에 의해 깎여 내려가는 바위처럼 닳고 헤진 단어 말이다. 결국 해안가에 떠밀려와 언젠가 찾게 되는 비린내만 남은 무언가다. 수선할 수 없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어 수습하지 못할 상황을 만드는 짓. 무모한 용기보다 가치없는 행동.

침묵의 통감 아래, 속절없이 부르짖는다. 짙은 푸른 색이 동 트는 태양에 붉게 물들 때, 푹 파인 눈가에 투명한 피가 흘러내린다.

눈물은 안 나와요, 너무 많이 울었거든.

당신이 행사하는 명령은 권력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저 종이조각에 불과한 서약서라는 걸 맹시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개가 아닌 인지를 할 줄 알고,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됐다. 나는 당신의 모든 언행에 따를 이유가 없다. 라고 한때 새장 속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착각한 어느 한 아이가 말했었지.

세상에 기막힌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장한 운명은 존재할 지도 모르지만.

4일이 지나면 자연스레 들어온다. 왜 4일인지는 모르겠다. 내게 불행이 4일 간격으로 일어나서 일까. 약을 먹고도 4시 44분이 되면 눈을 뜨며 공포에 잠식되던 기억이 각인되어 그런걸까. 어쩌면 둘 다 일수도.

너절하기로서니 적선 바란 적 없고, 비굴할지 언정 호의를 기대한 적 없다. 당신은 내가 1을 잘못 했으면 100을 부른다. 100만큼 부풀려 잘못 했다 말한다. 그럼 난 내 행동을 돌아본다. 아주 오래 씹어 되새김질 하듯 하나하나 짚었다. 당신은 나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쏘아붙이는 말은 기름 바른 화살이오, 마지막 일격은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성냥불이다. 불 붙은 화살을 몸에 두른 채 난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고 죽어간다. 살아남은 재만이 내 흔적을 필사적으로 남길 뿐이다.

곧 죽을 내 심장 붙잡지 마.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내려 줄 테니까.

•사랑받고 싶은 적은 없었어? 네. •왜? 받으면 그대로 돌려줘야 하니까. 그런데 난 그럴 수 없으니까.

지겨워. 매 여름은 너무 지겨워. •그럼 겨울은? 겨울이 훨씬 낫지. 볼 게 없으니. 여름은 보고 싶지도 않은 것들 투성이잖아. 벌레라던가, 벌레라던가, 벌레 같은 거 말이야.

사람들은, 박수칠 때 떠나는 이를 더 간절히 그리워하는 법이니까.

차라리 죽이지 그래. 날 취하고 피를 뽑아 갔어야지. 내게 기억을 심어줄 게 아니라, 공포를 각인시켜 놨어야지. 방정맞게 굴도록 두질 말았어야지. 하여튼 당신은 육아에 참 소질없어.

사실 당신은 신이 아닐까 생각해요. 오늘도 죽음의 외줄타기 속 고비를 넘긴 나는 의식이 끊기기 직전 당신을 찾았으니까요. 그래요, 다시 추한 변명을 해보자면 이건 사랑이 아니에요. 어쩌면 나는 당신을 숭배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비록 무신론자지만 당신이라면 믿을 수 있어요. 그것이 어리석은 맹세일지라도···.

오늘 먹은 알약 갯수만 19개. 나는 다시 잠들기 위해 4개의 알약을 더 먹어야 한다. 그리고 내일 일어나서 8개의 알약을.

세상은 내게 너무나 가벼워서, 나는 평행을 이루고자 했기에 무게를 맞출 수 있는 버거운 걸 찾았다. 진정 내 감정을 들춰내고 꺼내 흔들 수 있는 그런 것을 말이다. 무뎌진 심장은 수 없이 난도질 당했는데도. 그 중 내가 한 자해가 반 이상을 넘을 텐데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날 쥐고 올가미를 채울 수 있는 그런 당신을 찾았다. 아주 성공적이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당신의 이야기를 보고, 몇 번이나 봐 온 뻔해진 내용을 눈에 들이 갖다대며, 목이 뜯겨 나간다 해도 울지 못할 눈물을 떨구었으니 말이다.

빌미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억지일 뿐이다. 지난 4일간 나는 물속에 있는 듯했다. 코와 목 속으로 쉼 없이 물이 빨려 들어오고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타들어가는 감각만이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린다. 삶은 자살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 저들은 내게 빌미가 생길 틈을 주지 않았고, 간헐적으로 내뱉는 숨만이 내 목숨을 부지 시켜 놓았다. 멀쩡하잖아, 살아있잖아. 억지를 부리는 그들에게 숨 쉬는 걸 보여주며 그것을 증명시켰고. 나는 다시 내가 혐오스러워졌다. 약을 먹기 위해 깨어 있었고, 잠들기 위해 토해내야 했던 시간 속에서 나는 정상인의 몰골일 수 없었다. 거울이 멀쩡한 건 그걸 깨부술 힘이 없어서고, 키보드를 누르며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건 곧 죽을 나를 위한 애도다.

이명과 난청이 느껴지기 전 내 몸은 이미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안개가 낀 것처럼 탁하고 다시 물에 잠긴 사람이 눈을 뜬 것처럼 흐렸다. 시야에 물이 가득 들어찬 느낌.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떨어트리고 눈을 뜬 채 어떻게든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했던 짓은 광대짓보다 볼일 없었다. 사람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내가 그릇을 떨어트리든 말든, 어지럼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든 말든 말이다. 무시에 익숙해진 인간. 그것이 나의 현주소. 애써 정신을 차리고 엎어진 그릇을 들고 일어났을 때 멀쩡해진 머리에 그릇을 내려치지 못한 게 오늘의 후회다.

비가 많이 왔고, 붉은 달이 떴다. 모든 게 이정표처럼 느껴진다.

사람에게 정붙은 새 한 마리가 창틀을 자주 오간다. 그 새는 내 살을 먹여 키운 새다. 시체 같은 손을 만드는데 한몫한 새이기도 하다. 내 이빨로 손톱을 뜯었다면 그 새는 내 살을 뜯어갔다. 손 위에 올라오면 항상 뜯어진 손가락을 쪼아댄다. 피가 나도 아픔을 호소한 적 없다. 그 새를 피했다면 지금까지 내 곁엔 없었을 것이다. 언제든 떠날 생명 하나에 내 손을 담보하는 삶. 그 작은 일말이라도 내겐 희귀했기에, 살을 내주고 사라질 온기를 쥐었다.

신이 신을 만들지 못해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인간을 만들지 못해 로봇을 만들었다.

너를 살려두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게요, 왜 살리셨어요. 미련하게. 너를 살려내선 안 됐어. 웬일로 옳은 소리를 하시네요. 근데 이건 이거대로 기분 나빠. 널 살릴 수 없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멍청한 새끼. 그러게 처신 똑바로 했어야지.

틀에 박힌 말, 진부한 이치가 세상을 정립하고 언젠가 결국 그 말과 이치를 내뱉으며 이해하는 날이 오기도 한다. 새삼스럽지만 당연한 것, 별 거 아닌 공감이 때로는 더 각별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억제한 지난날들의 내가 안타까워서라도, 나는 홀로 모든 걸 감당하고야 말겠다고 악을 쓰며 심장에 못을 박았다. 언제라도 미련 없이 다 버리고 떠날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금만 참고 버티면 된다고. 텅 빈 길 위에, 방향도 모르는 그곳에 나를 고립시켜 놓았다. 끝이 정해진 순례자가 아닌 정처 없이 떠도는 표류자였음을 모른 채 헤매었다. 기다리지 않겠다는 말은 얽메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미련 따위 없다 한 건 붙잡고 싶지 않아서였다. 되새기고, 재확인하고, 결연한다. 기반없는 진흙 길 위를 걷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날 구하고 싶다면 한 컵의 물을 주세요. 내 손에 쥔 독을 한 번에 마실 수 있게.

노인은 말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관대해져 큰일이야.’ 그러며 노인을 넘어트린 사람에게 ‘가시오. 난 괜찮으니.’ 라고.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봤니?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봤구나. 왜 나이를 먹으면 관대해 지나요? 예끼. 말 돌리는 것 보세. 노인은 뜸 들이다 말했다. 감정이 마모되기 때문이다. 왜 마모되는데요? 너무 오래 살아 그런다. 이미 백 번 느낀 것을 새롭게 느낄 순 없기 때문이지. 행복하세요? 예전에는. 길 가다 익은 감나무라도 발견하면 그리도 좋아했지. 하나 몰래 서리해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지금은요? 글쎄다. 넌 어떻게 보이는데? 침울해 보여요. 행복하진 않은 거 같은데. 허허허. 어린 게 당돌하네. 겁이 없어서 그런가 보죠. 얘야, 난 방금 웃었지만 기쁨을 느낄 수 없고 즐거움을 알 수 없다. 넌 최대한 많이 행복해하거라. 왜요. 그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지···. 근데요, 나는 곧 죽을 건데요. 여기 온 사람들은 다 죽기 전에 오는 곳인데.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 8월의 마지막 어느 점심 산책 시간의 대화.

오르트 구름에 널리고 널린 게 얼음덩어리라면, 지구에는 인간이 넘쳐나지. 너무 넘쳐나 문제야. 차라리 별이 되지 못한 돌덩이가 나을 텐데.

그 밖에 쭉정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속이 텅 비어있는 겉껍질. 인간이 되다 만 것의 비유. 혹자는 죽지 못한 영혼의 옷이라 하였다. 미지에 가두고 열쇠를 버린 후 떠난 무자비의 살인자를 훔친 가여운 이의 발로.

유일하게 좋아하는 꽃이 석산화입니다. 산책을 나가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입니다. 검은 나비가 앉아 있는 걸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죽음의 색만 모아놓은 자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제의 표본과 슬픈 꽃말을 가진 것들이 거기 모여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이유는 아직은 어울릴 수 없기에 멀어졌습니다. 왜 아니겠나요. 나는 이번에도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멀쩡한 햇빛 밑에 있는 게 덜 이질스러운 걸 어쩌겠나요.

입에는 칼을 물고 눈은 독기로 가득하며 온몸에는 진득한 살의를 둘렀구나.

괴팍한 것. 뭐가요? 너 눈이 왜 그래? 알 바 아니잖아요. 말본새하고는. 노인은 내가 있는 벤치 앞에 등을 굽힌 채 마주 앉았다. 멀쩡한 얼굴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쯧쯔. 맞은 거 아니에요. 선반에 부딪혀서 멍든 거예요. 앞을 잘 보고 조심했어야지, 요 녀석아. 지가 무슨 홍길동이야, 말을 이리했다 저리했다···. 뭐? 으허허허! 왜 웃으세요. 감정 없다던 분이.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아닌데. 나 되게 잘 웃는다. 봐라. 아, 네. 어느 태풍 전 오후.

귀순했어. 더 이상의 무가치한 언쟁이 지긋지긋해서. 징그러워.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 목소리 한 음까지. 실어증 환자처럼 살았어. 말을 안 해서 그런가, 책을 안 읽어서 일지도. 이젠 정말 걸어 다니는 송장이네. 아니, 놀랍지는 않아. 하루하루 날 죽여가는 건 이토록 평범한 일상이니까.

만남에는 이별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에 언제든 배웅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던 새가 벌써 한 달째 오지 않고 있다. 나는 이 새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걸 불현듯, 그러나 아주 당연하게 알 수 있었다. 헤어짐을 직감한 순간 더는 창틀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다만 준비해둔 인사를 하지 못한 게 유감이다.

튀는 행동을 하지 마. 알아서는 안 되며,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한다. 나서지 말고 끼어들어선 안 된다. 쥐 죽은 듯이 숨죽이며 살아. 살아있다는 걸 인지하게 두지 마라. 한 걸음 물러서고 입을 다물어. 네 행동과 말이 낳을 처참한 결과를 두 눈으로 확인시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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