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2/05/23 22:23:04 ID : oE5Wi5SK3O3 0
일단 문제를 정리하자면 0. 극도로 소극적인 성격과 불안한 정서 1. 무의식적인 반추 2. 늘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있음 3. 늘 최악의 경우부터 상정함 4.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 5. 타인의 탓을 하는 걸 두려워함 대충 이 정도 스무살. 여자. 중학생 시절 범불안장애 진단 이력 있음. 약 복용했었고 상담치료 받았었고 고1인가 그때까지 손목 그었음. 아직도 자기 뺨 후려갈기거나 벽에 대가리 처박는 정도는 함.
2 이름없음 2022/05/23 22:29:23 ID : oE5Wi5SK3O3 0
1번은 내 성향이랑 관련이 있는 문제같다고 생각해. 내가 과거의 어떤 경험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되새기며 분석하고, 나중에 갑작스럽게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이성적으로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대책을 미리 찾아두려는 것 같아. 그때가 되면 이성이 날아갈 걸 아니까. 늘 최악의 경우부터 상정하는 것도 그래서겠지. 예전 일을 되새기며, 그때의 상황을 조감하고 다시 판단해서 자기 스스로를 납득시키면 그제서야 한번의 사이클이 끝나. 하지만 그 결과를 납득하고 나면, 당연히 그랬어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우울해져. 그리고 또 다시 무의식적으로 그 일에 대해 생각하게 돼.
3 이름없음 2022/05/23 22:41:28 ID : oE5Wi5SK3O3 0
과거의 여러 사건에서 오는 불안감과 우울함을 내가 소화시킬 수 있는 형태로 바꾸기 위한 되새김질인데, 이게 멈추지 않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객관적으로 '당연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할 증거가 필요한데, 그 증거를 찾아내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사건 자체는 충분히 받아들였음에도, 그에 딸려오는 우울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거야. 납득하고 나서도 사고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게 가장 끔찍한 일이야. 실제 동물의 되새김질 행위로 비유하자면, 보통 소는 여물을 마구 씹어서 반추위로 넘긴 뒤 적당히 효소로 물러진 걸 다시 입으로 가져와 제대로 씹고 본 위로 넘긴다고 해. 그렇게 하면 제대로 소화가 되는 거고. 하지만 내 방식을 소의 되새김질에 적용하면, 씹어서 넘긴 풀죽이 본 위로 넘어간 뒤에도 반추를 하는 것이 멈추지 않아서 위액을 입으로 가져오고, 혀를 씹어가며 다시 짓씹다가 피 섞인 위액을 도로 목구멍으로 넘기는 느낌.
4 이름없음 2022/05/23 22:46:39 ID : oE5Wi5SK3O3 0
뭐가 문제였지? 아하, 그렇구나. 그게 문제였어.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이런 일은 안 생기는데? 생각해보니 그때 이 행동은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던 것 같아. 그럼 그것도 고치자. 이런 식으로만 가면 모를까, 이대로 내버려두면 그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뭐였지? 그 전까지는 그런 방식으로 살았으니까. 그런 방식이 굳어진 이유가 뭐지? 어째서지? 이렇게 사고가 확장되고, 결국 태어난 것이 문제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
5 이름없음 2022/05/23 22:49:08 ID : oE5Wi5SK3O3 0
생각해봤는데, 남 탓을 하지 않는 건 어쩌면 내게 있어 가장 편한 방법일 지 몰라. 전부 내 잘못이었던 게 되면 그냥 다 편하잖아. 그냥 나만 참으면 편해지지. 생각하기가 싫어서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다니 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야. 내 권리를 포기하면 남들이 더 얻어갈 수 있다는 것도, 결국 그런 식으로 자기 스스로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자위질하는거나 마찬가지지.
6 이름없음 2022/05/23 22:52:12 ID : oE5Wi5SK3O3 0
이렇게 자꾸 사고방식이 불안한 쪽으로만 흘러가. 그럴 때마다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밀어내려고 해. 가능하다면 외국어인 편이 좋아. 한국어 가사면 아무래도 모국어다보니 직관적으로 꽂히는 감이 있어서 금방 다른 걸 떠올려버리거든. 발음만으로는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외국어 가사의 번역문을 기억해내며, 최대한 그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불안했던 일들은 생각이 안 나거든. 잊어버리니까.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멍청해서 다행이야. 그래도 이젠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냥 생각을 그만둬버리고 싶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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