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김재현. "
" 응. "
" 사귈까? "
" 좋아. "
우리의 대화 패턴이다. 가만히 앉아서 서로에게 손하트를 날려대다가,
갑자기 한명이 고백을 툭 갈기면 다른 한명이 받아주는 식이다.
어쩌다 이런 관계가 되어 버린 지는 모르겠다. 분명 지난 달에는
말도 안 하는 사이였는데. 어쨌든,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좋다.
사실, 나는 김재현한테 호감이 있다.
왜냐면,
존나 잘생겼으니까.
" 자기야. 국어 필기 보여줘. "
" 헤어져. "
존나 잘생겼다.
눈 크고, 피부 하얗고, 키 크고, 목소리 낮고, 코 오똑한 전형적인 존잘상이다.
사실 성격까지 완벽해서 우리반 여자애들은 다 얘 좋아한다. 다만 찝쩍대는
꼴은 보기 싫어서 이지랄 떨고 있는 중이다. 질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자기야. "
" 또 왜. 이린채. "
" 수학 필기 보여줘. "
" 나 좀 그만 좋아해. "
... 가끔은 싫다.
왜냐면 이새끼 다른 여사친한테도 이지랄 떠니까.
처음 보는 여자애한테도, 선배한테도 인사한다. 정말 타고난 어장 관리자.
" 김재현 이린채. 그럴 거면 그냥 사귀어. 꼴 보기 싫어 씨발. "
" 그러니까~. 둘이 진짜 잘 어울려!! 우리반 공컾 해줘 제발! "
이렇댄다.
이럴 거면 진짜 사귀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얘가 나를 진짜 좋아하는지, 아니면 그냥 어장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나 같은 인싸들의 놀이에 동참하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진짜로 고백해도 지금까지 고백한 게 있어서 떠보는 것 같고 너무 애매하다.
" 있잖아 재현아, 우리 진짜 진짜 진짜 사귈래?
진짜 진-짜 진짜진짜 사귈래? "
이런 말 밖에 못한다고.
" 맨날 엽떡 사주면. "
진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랄도 정도껏이지.
아무래도 내가 그동안 장난을 좀 심하게 쳤나 보다.
상황이 이지경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씨발.
02
" 있잖아, 김재현. "
" 응, "
나를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면서.
그것도, 다른 여자애 쪽을 보며.
" ... "
말 하려다가, 그냥 말았다. 이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이새끼 내가 자기 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어장에 물고기로 처넣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지금은 부담스러워서 또 철벽 쳐 치고 있다는 거고,
결국 호감이 아니라 어장이었던 거다. 나는 그 어장에 걸려든 거고.
" 왜 말을 하다가 말아. "
갑자기, 김재현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불쑥 다가왔다.
단정한 교복과 가는 머리칼이 순간 시원한 바람에 날렸다.
..... 설렜다.
" .... 응? 아, 아냐. 별 말 아니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