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3/08/22 10:04:51 ID : QtxXyZa08lD 1
아직 사람들의 활동이 시작되기 이전인 새벽 5시. 남들보다 일찍이 잠에서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남자가 있었다.
2 이름없음 2023/08/22 10:10:15 ID : QtxXyZa08lD 0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그림자에 숨어있는 그의 이름은 잭. 그는 새하얀 피부만큼 밝아오는 아침에 맞지 않는 남자였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빈 술병을 치워낸뒤 어제 먹다남은 안주로 아침을 때우고 그는 사우스 시티의 거리로 나왔다. 대충 주워입은 옷에 갈색 코트를 걸친 그는 찬 공기를 들이쉬며 걷기 시작했다. 신문사로 가기위한 그의 발걸음은 빨랐으나 균형잡히지 못했고 극단적으로 절뚝거리기 까지 했다.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였지만 그의 외형과 풍기는 분위기는 그 조차 처량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기에 누구도 그를 우습게 여기진 못하는 듯 보였다.
3 이름없음 2023/08/22 10:13:12 ID : QtxXyZa08lD 0
걷다보니 도시 곳곳에 내걸린 시계는 어느새 7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거리에는 조금씩 사람들이 보이고 거리의 가게들은 개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으나 그는 여전히 그림자 틈에 숨어가며 신문사로 걸음을 재촉했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그의 절뚝거림이 멈췄고 고개를 치켜드니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신문사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웰밍턴 신문사 '당신의 아침을 열어드립니다!' 상쾌한 문구와 함께 내걸린 콧수염을 가진 마스코트 캐릭터는 이미 거의 다 망가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제 그 주위에서 마스코트 캐릭터의 얼굴을 기억하는건 잭 뿐이였다.
4 이름없음 2023/08/22 10:20:13 ID : QtxXyZa08lD 0
잭은 코트의 안주머니를 뒤적여 황금색으로 빛나는 열쇠를 꺼냈다. 그리곤 자물쇠에 힘껏 돌려넣어 문을 열어젖혔다. 매쾌한 먼지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천장에 쳐진 거미줄을 무시해가며 도착한 2층 구석의 한 방 '잭 데이브의 사무실'이라고 적힌 푯말을 거둬낸 뒤에 잭은 사무실의 문 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기분나쁜 소리와 함께 열린 문 너머에는 넓은 서재와 단상 하나 그리고... 창문 옆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잭의 가족사진이 걸려있을 뿐이였다. 잭은 가족사진의 먼지를 털어낸뒤에 주머니에서 또 하나의 열쇠를 꺼내었다. 단상의 서랍장 열쇠였다. 서랍장의 열쇠 구멍 옆에는 자그맣게 글자가 쓰여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한때 웰밍턴 신문사의 사장이자 총 책임자였던 잭의 가장 소중한 것이 들어있는 서랍이였다.
5 이름없음 2023/08/22 10:24:15 ID : QtxXyZa08lD 0
힘겹게 연 서랍의 안쪽에는 한때 그와 긴 시간 활동했던 그리운 동료들의 사진과 가족과 함께 신문사의 첫 개업일에 찍은 사진이 놓여 있었다. 잭은 한참동안 그 사진을 응시했다. 냉소해보였던 그의 붉은 두 눈동자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질때까지.. 그리고는 책장 옆 진열장의 구석에 놓인 술을 챙겨 다시 문을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신문을 찍어내던 넓은 사무실. 이젠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잭은 먼지쌓인 어느 직원의 의자에 앉고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반쯤 들이킨 술을 들고 일어선 그는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구석에 한가득 쌓여있는 기름통을 향해 그것을 던졌다. 불이 번지는 것은 한 순간이였다. 그는 타오르는 열기를 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불길을 마주보았다.
6 이름없음 2023/08/22 10:28:07 ID : QtxXyZa08lD 0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길 속에 방금 보았던 직원과 가족의 환영이 겹쳐보였다. 그는 마지막 술잔을 들이킨뒤에 공상에 빠져들었다. 행복했던 가족들과의 기억은 기름에 붙은 불과 같이 그의 머릿속으로 번져나갔고 그는 그렇게 불타오르며 죽음을 맞았다. 슬프기 그지없는 죽음이였다. 한때 그 누구보다 행복했던 이제는 무엇도 남지 않은 남자의 죽음.. 당연히 그의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은 없었다. 경찰들은 불타버린 그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땅에 묻어버렸고 주민들은 흘러들어온 연기에 한동안 없어지지 않을 검댕이를 걱정할 뿐 화재의 원인인 그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 보였다. 남자의 죽음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죽음'이였다.
7 이름없음 2023/08/22 10:44:18 ID : QtxXyZa08lD 0
그가 다시금 눈을 떴을때 잭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건 죽었을 터인 가족과 동료들이였다. "안나..? 이게 어떻게 된..." 잭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딸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곤 그의 어리고 여린 피붙이를 끌어안으며 잭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지금 천국에 있는 것인가' 어쩌면 고독한 죽음 뒤에 주어진 행복한 안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한 인생의 끝에 이 정도는 바라도 되는것 아닌가라는.. 안일한 생각 말이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그러한 생각과 바램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딱딱하군. 그래 그럴리 없지. 헛된 공상이였던 거야." 잭이 필사적으로 끌어안은 것은 살아생전의 가족, 동료들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한 나무토막이였다. 그는 진흙으로 엉망이 된 코트를 벗어던졌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악질적인 장난이군.' 가족과 똑같은 모습의 인형은 그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분명 죽었을터인 그가 다시금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잭은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을 맞으며 차분히 머리를 식혔다. 시체였을 그의 몸이 끝에서 끝까지 전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를 죽게 만든것은 끊어진 인연의 슬픔이 아닌 남은것들을 지켜내지 못한 무력감과 죄책감 이였다. 그리고 한번의 죽음을 경험한 지금 그는 희망을 얻었다. 공상에 부푼 의미없는 희망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복수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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