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4/01/03 00:34:31 ID : k2q1DteJSFj 0
내가 5살이었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지만, 엄마는 아빠가 사내 비리를 캐다가 회사의 누군가에게 독살당한 것 같다고 했다. 아빠의 회사는 지금도 알아주는 대기업이었고, 연관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실종되었으나 쉬쉬하며 묻혔다고 한다. 부검을 했다면 밝혀졌을 수도 있지만 엄마는 도저히 아빠의 부검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와서 엄마의 상태를 미루어 생각해보면, 엄마의 말로만 전해들은 이야기라 저게 정말 일어났던 일인지는 확실하진 않다. 그렇지만 아빠가 정의롭고 따뜻하며 가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은 믿는다. 그것은 아빠에 대한 단 한 조각 남아있는 기억이 토끼풀꽃으로 만든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주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2 이름없음 2024/01/03 00:39:45 ID : k2q1DteJSFj 0
엄마는 최근 경계선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증상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것으로 보아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아빠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그 때부터 였는지, 아니면 엄마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로부터 받아온 편애 때문에 어느 순간 그렇게 됐는지. 아무튼 내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엄마는 항상 화가 많았고 논리가 없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3 이름없음 2024/01/03 00:51:49 ID : k2q1DteJSFj 0
초등학교 1학년, 컴퓨터 학원에서 생일 초대장 만드는 법을 배웠다. 난 밝고 외향적인 아이였고 친구도 많았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집에서 생일파티를 해도 되는지 물었고 허락을 받았다. 반 전체에 초대장을 돌렸더니, 서너명을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나를 축하해 주러 집에 모였다. 엄마는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올 줄 몰랐다고 했다. 퇴근 후 집에 와보니 집은 이미 아이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엄마는 급하게 치킨과 피자를 시키며 파티를 열어주었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엄마는 행복감에 부풀어 선물을 뜯고 있는 나를 다용도실로 불러냈다. 그리고 엄마의 생리대를 보여주며 "오늘 너 때문에 힘들어서 피가 덩어리져 나왔다. 보이느냐." 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생일파티를 열지 못했고, 엄마는 훗날 성인이 된 내게 너는 왜 생일파티를 한 적이 없냐고 물었다. 이 때의 이야기를 하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망상에 빠져있는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4 이름없음 2024/01/03 00:56:14 ID : k2q1DteJSFj 0
엄마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었다. 어떤 날은 천사를 대하듯이 숭배했고, 또 어떤 날은 꼭 나를 죽여버릴 것처럼 굴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날은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엉덩이를 토닥였고, 또 어떤 날은 마음같아서는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다며 성을 냈다.
5 이름없음 2024/01/03 01:04:58 ID : k2q1DteJSFj 0
내가 조금씩 자라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것은 점점 심해졌다. 초등학교 4학년, 엄마는 개학식 날 내가 흰색 공주 드레스를 입고 등교하길 바랐다. 나는 티와 바지를 편하게 생각하는 아이였고, 사촌오빠에게 초등학교 6년 내내 옷을 물려 받아도 옷 투정 한 번 하지 않는 옷차림에 무던한 아이였다. 입학식도 아닌 개학식에 내 취향이 아닌 드레스는 입고 가기 싫다고 했더니, 엄마는 빗자루로 내 엉덩이를 때리며 억지로 옷을 입혔다. 나는 이날 엉엉 울면서 등교했다. 엄마는 훗날 성인이 된 내가 꺼낸 이 이야기에 그러게 얌전히 입지 그랬냐고 하며 깔깔 웃었다.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는 없다는 듯이.
6 이름없음 2024/01/03 01:16:08 ID : k2q1DteJSFj 0
엄마가 주로 행하는 신체적인 폭력은 손에 잡히는 대로 나에게 던지거나, 머리를 수십차례 연속으로 때리는 것이었다. 대체로 숙제를 하지 않았거나 엄마 몰래 그림을 그리다가 들키면 그랬다. 두꺼운 서적 모서리에 머리를 가격당하기도 하고, 과외선생님 앞에서 뒷통수를 열몇번 가격 당하다가 도리어 엄마가 과외선생님한테 애를 그렇게 때리면 안된다고 혼난적도 있었다. 난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엄마의 화가 사그라들때까지 쥐죽은듯이 웅크려 맞았다. 그러다 중학생 무렵, 당구 큣대 비슷한 걸로 관자놀이를 맞았는데 맞다가 시야가 까매진 적이 처음이라 너무 놀랐었다. 정신이 들고보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엄마는 그 이후로 나를 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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