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
1 이름없음 2026/05/17 19:19:48 ID : QleL9dyFfPa 4
[우연히 이 책을 펼칠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그냥 책을 좋아하는 학생 중 한 명입니다. 평소에는 말 주변이 별로 없어서 고심을 하다가 책 속 문장들을 빌려 몇 글자 끄적여봅니다. 별 볼일 없는 이 두껍고 먼지 쌓인 책을 당신이 꺼내 들었다는 건, 어쩌면 당신도 나와 닮은 외로움을 가진 사람이라서일지도 모르겠다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다들 바쁘게 흘러가는 학교 안에서, 가끔은 이렇게 멈춰 서 있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만약 아주 작은 우연으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잠시 머물다 가 주세요. 답장은 바라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라고 쓴 글이 아니니까요. 그저 누군가 내 마음을 읽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하교 길은 조금 덜 쓸쓸할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p.s. 제가 좋아하는 문장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창 속에 있지만, 몇몇은 별을 바라본다, 라는 문장입니다. 신기하죠, 고작 활자가 나열될 뿐인데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잖아요.]
2 이름없음 2026/05/17 19:25:48 ID : QleL9dyFfPa 1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아니면 좋은 밤인가요? 뭐 어때요, 지금은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산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으니 좋은 저녁이라는 인사를 건네드릴게요. 이쯤에서 제 소개를 해드릴게요. 제 이름은 , 갓 모미지가오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적응하느라 기를 쓰고 있는 신입생이랍니다. 세상에나, 전 이렇게 큰 학교 건물은 처음 봤지 뭐에요. 6층이나 되는 건물이라니, 믿어지시나요? 저희 지역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깊은 고등학교라길래 기껏해야 4층 정도 되는 건물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생각보다 규모가 웅장하더라고요. 신입생의 4월은 생각보다 바쁘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어야하고, 무엇보다 동아리에 입부해야 하니까요. 책이 좋아 도서부에 들어갔는데, 세상에나. 제게 가장 오래된 서가를 정리하라고 하지 뭐에요. 전 도서부가 책이나 읽고 책 정리만 조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일이 생각보다 더 고되더라고요. 네, 오래된 서가를 정리하던 중에 낡은 책을 하나 발견했지 뭐에요? 그런 책 있죠, 낡긴 낡은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책이요. 딱 그런 책이었어요. 바다의 정원, 제목은 예쁘긴 하지만 엄청나게 두꺼운데다 지금은 사장된 사어가 많이 나오는지라 굳이 찾아보지는 않는 그런 유형의 책이요. 표지에 먼지가 조금 내려 앉아 있어서 털어주려고 들었는데요, 뭔가 툭 하고 떨어지더라고요. 낡은 책이라 페이지가 떨어진 건가 싶어서 주워드니까 편지더라고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답장 할까요? 아니면 못 본 걸로 넘길까요? 1. 답장한다. 2. 장난 같다, 무시하자. ▪︎스레주가 일본 로코를 좋아하므로 일본식 이름을 지어주시오
3 이름없음 2026/05/17 20:03:42 ID : HzXyZa4JRwr 1
시로츠키 요루 (하얀 달밤 이란 뜻을 담은 성+이름!)
4 이름없음 2026/05/17 20:07:52 ID : jta5V9cq1yL 1
답장한다
5 이름없음 2026/05/17 20:41:48 ID : QleL9dyFfPa 1
[필연적으로 책을 펼치게 될 당신께. 네, 안녕하세요. 저 또한 책을 좋아하는 학생 중 한 명이랍니다. 당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도서부 학생인지라 서가를 정리하다가 우연찮게 편지를 읽게 되었어요. 외로운 문학 소녀를 상정했다면 미리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답장은 바라지 않는다고 적어주셨지만, 추신으로 적어주신 문장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어서요.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이죠? 저도 그 작가를 꽤 좋아한답니다. 특히 행복한 왕자나 캔터빌의 유령 말이에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당신의 설명대로 학교는 참 빠르고 바쁘게 흘러가네요. 그래도 오늘은 당신 덕분에 지루한 서가 정리 시간이 조금은 즐거워졌어요. 혹시 또 편지를 적어주고 싶다면, 네. 언제든 이 책을 찾아주시겠어요? p.s. 저도 문장 하나 추천해드릴게요.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이다. 라는 문장이에요. 사람은 결국 아는 만큼만 말하는 법이잖아요? 저도 늘 반성하고 있답니다.]
6 이름없음 2026/05/17 21:04:01 ID : QleL9dyFfPa 1
[또다시 필연적으로 책을 펼치게 될 당신에게.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들렀다 답장을 보고 까무러치게 놀랐답니다. 덕분에 그제는 체육 시간이 없었는데도 하루종일 심장이 빠르게 뛰어 혼났어요. 그리고 집에 가져가서 편지를 몇 번이고 읽어 보았답니다. 답장이 늦어진 것에 양해를 구할게요, 벌써 20장의 편지지들이 구겨진 채로 제 방에 굴러다니게 되었거든요. 적다보니 생각난 건데, 서로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건 어떤가요? 본명을 밝히기엔... 제가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요. 그리고 왠지 비밀친구 같아서 재미있지 않나요? 꼭 키다리 아저씨 같잖아요. 만약 저와 당신이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이 된다면 제가 주디가 될까요? 좋은 문장이에요. 집에서 컴퓨터로 검색을 해봤는데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이라고 나오네요, 맞나요? 철학자들은 좋은 문장가인 것 같아요, 늘 삶에 대한 통찰을 멈추지 않아서 그럴까요? p.s. 이번에는 노래를 추천해드릴게요. 제가 요새 듣는 노래는 Maroon 5의 memories랍니다. 서정적인 음율이 마음에 들어요, 부디 팝송을 좋아하시길 기도할게요, 도서부 군. 아니면 도서부 양.]
7 시로츠키 요루 2026/05/17 21:12:05 ID : QleL9dyFfPa 1
"도서부 군?" 저는 제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군이라뇨, 1인칭부터 와타시(私) 잖아요? 게다가 글씨만 봐도 여자라는 태가 나지 않나요? 글씨는 나름 동그랗고 단정하게 쓴다고 자부했는데, 제 자부심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답니다. 아, 좋은 생각이 났어요. 남자인 척 해도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어떻게 할까요? 1. 밝히자 2. 남자인 척 하자
8 이름없음 2026/05/17 21:19:17 ID : HzXyZa4JRwr 2
외로운 문학 소녀를 상정했다면 미리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거 때문에 남자라고 생각한거 아님? ㅋㅋ 밝히자
9 이름없음 2026/05/18 10:44:02 ID : cFjtdyMqlA2 1
[양심과 장난기 사이에서 고심하게 만드는 당신에게 서로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제안은 무척 재밌게 생각해요. 도서부 군이나 양이라는 별명도 꽤 재미있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는 도서부 양이라 불러주시면 된답니다. 그럼 저는 당신을 이라 부르도록 할게요. 마음에 드시나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신의 편지를 받고 제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어요. 도서부 군이라뇨. 여자인 태가 꽤 난다고 자부했는데, 아닌 것 같아서 조금 아쉽더라고요. 아예 남자인 척 글씨도 딱딱하게 쓰며 도서부 군처럼 굴어볼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답니다. 숨길 자신이 없기도 했고요. 추천해주신 노래는 잘 들었어요. 팝송은 좋아하는 편이니 마음껏 추천해주시길.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했는데요,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어떻게 되시는 편인가요? 전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긴 한데, 제일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이랍니다. 언젠간 좋은 노래를 추천해드릴게요. p.s. 인간이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도 푸릅니다라는 문장을 좋아해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에서 나온 문장이라고 알고들 있는데, 사실은 침묵을 주제로 쓴 시이고, 나가사키현 소토메 지구 '침묵의 비'에 새겨져 있대요. 엔도 슈사쿠가 소토메의 가난한 농민들을 보고 침묵이라는 소설을 썼다고 하던데, 영감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요.]
10 이름없음 2026/05/18 11:10:47 ID : JRvhardO1il 1
케이
11 이름없음 2026/05/18 12:16:47 ID : i8rApbCqmHA 1
블루스
12 이름없음 2026/05/27 11:41:03 ID : u5Wi1hhAlxz 1
[좋은 별명을 지어준 도서부 양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그런 특징을 잘 발견하지 못하거든요. 덕분에 다섯살 배기 여동생은 늘 절 답답하다며 바보라고 놀려요.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죠. 네, 물론이죠. 절 부디 케이라고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좋은 이름이네요.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케이가 생각나서 무척 마음에 들어요. 사실 현대에 들어서는 소인배 같은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웨일스 전승 시절의 케이는 그 쿠 홀린과 비견될 정도로 강인한 전사였다고 해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든, 아니면 그 시대에 영향을 받든, 문학 하나만으로도 여러 갈래의 가능성이 생겨나가는 건 멋지다고 생각해요. 아쉽기도 하지만요. 추신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도 침묵에서 나온 구절이라기에 읽어 봤었는데 그 구절이 어디에도 나오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야말로 문학이 새로운 문학을 낳은 격이네요. 이번에는 이 노인은 삶과 죽음 위를 걷고 있었다. 라는 문장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모비 딕이라는 소설에서 나온 표현인데, 도서부 양은 모비 딕이라는 소설을 읽어 보셨나요? 전 꽤 어렸을 때 처음 읽어 봤답니다. 철학적인 깨달음은 커녕 보다가 책을 덮고 아쿠아리움에 가자고 졸랐지만요. 그러다 고래가 없는 걸 보고 울어버려서 부모님이 절 달래주시느라 애를 먹으셨죠. p.s. 편지가 늦음에 사과를 드립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요...]
13 시로츠키 요루 2026/05/27 11:52:06 ID : u5Wi1hhAlxz 1
바쁜 일이라, 네. 아무렴요. 고등학생에게 5월은 바쁨과 동의어일 지도 몰라요. 수학여행, 시험, 운동회까지. 엄마는 그 나잇대에만 누릴 수 있는 청춘을 즐기라고 제 등을 밀어주시지만, 더운 날엔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방 안에서 뒹굴거리고 싶은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려나요? 그런데요, 편지를 읽다보니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케이 씨? 케이 군? 아무튼 케이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외에는 모르겠어서 궁금한 걸요. 같은 학년이라면 괜찮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음, 케이 씨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저는 왠지 동그란 안경을 끼고 머리카락을 단정히 땋아내린 문학 소녀일 것 같은데.
14 시로츠키 요루 2026/05/27 12:08:18 ID : u5Wi1hhAlxz 1
"시로츠키 양, 여기 좀 도와줄래?" 짧은 제 공상은 여기서 끝이랍니다, 상상 속 세계도 좋지만 현실을 살아야죠. 도서부원이니까요. 무거운 책을 나르고, 서재를 청소하고, 아. 누굴까요. 다 읽은 책은 반납대에 두라고 안내했는데 꼭 다른 서가에 꽂아두는 분이 계신다니까요. 점심 시간의 휴식도 마다하고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5교시가 시작될 시간이네요. 슬슬 일을 마치고 교실로 가야, 잠시만. 제 학생 수첩이 어디 갔죠? 분명 주머니에 잘 넣어놨는데요...? 더듬더듬 몸을 수색해보니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쩌죠, 교무실로 찾아가야 할까요? 1. 도서관을 잘 찾아보자. 2. 다른 도서부원에게 물어보자. 3. 사서 선생님께 찾아가 분실물에 대해 물어보자.
15 이름없음 2026/05/27 12:26:02 ID : ak5Xtjy42K2 0
1
16 드디어 계정 찾은 레주 2026/06/15 20:34:20 ID : QleL9dyFfPa 0
저는 도서관을 꼼꼼히 찾아봤습니다. 이럴 땐 왔던 길을 가는 게 좋으니까요. "...요." 아까 닦았던 선반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도서관을 꼼꼼히 찾아봤습니다. 이럴 땐 왔던 길을 가는 게 좋으니까요. "...요." 아까 닦았던 선반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아, 이쪽은 물기가 덜 말랐네요. 휴지로 닦아야겠죠, 소중한 책이 젖을지도 모르니까요. "... 기요..." 이런, 하마터면 책더미에 걸려 넘어질 뻔 했어요, 이쪽 서고는 분명 나카지마 선배가 맡은 구역인데, 나중에 부장 언니에게 일러야겠어요. 일은 제대로 해야... "저기요." "부르셨나요? 무슨 일인가요?" "이걸 떨어뜨려서..." "아." 5월인데 꽤 두터워보이는 베이지색 가디건을 걸친 2학년 선배가 제게 학생 수첩을 건네주었습니다.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었나요? 일단 저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조심히 받았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1. 감사하다고 한다. 2. 감사인사 후 이름을 물어본다. 3. 저희 어디서 만난 것 같지 않나요? 4. 자유
17 이름없음 2026/06/15 22:59:56 ID : eIIFfWmJQsr 0
2번! 이름 묻자
18 시로츠키 요루 2026/06/16 00:11:16 ID : QleL9dyFfPa 0
"저기, 감사합니다. 전 요루라고 해요. 시로츠키 요루(白月 夜). 괜찮다면 선배의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나? 나는... 코우라고 해. 나기사 코우(汀 光). 시로츠키... 양이라고 부르면 될까?" 나기사 선배는 오른쪽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바닥에 두었습니다. 제가 불편할까 싶어 한 발자국 멀어지니, 그제야 선배가 고개를 들며 저를 바라봤습니다. 선배는 겨울 바다 같은 짙은 청록색 눈동자가 느리게 좌우로 흔들리더니,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리며 시선을 다시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미, 미안해. 유치원 이후로 여자애랑 얘기하는 건 처음이라서..." "아." 호오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라 쑥맥이라서 그렇다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저는 잠시 단어를 고르다 마땅한 단어를 찾는 것에 실패해서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 가려고 했는데요... "..." "..." 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희는 가는 방향이 같았습니다. 어색한 동행이네요, 어떻게 할까요? 1. 말이라도 걸어본다. 2. 계속 말 없이 걸어본다. 3. 자유
19 이름없음 2026/06/16 02:09:32 ID : vBgqmE8nU6j 0
1
20 이름없음 2026/06/16 16:18:34 ID : QleL9dyFfPa 0
"..." "..." "... 저기..." "응?" 저는 머리를 최대한 굴려내어서 어색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나기사... 선배는 도서관에 자주 들르셨죠? 책을 좋아하시나요?" "응? 응, 좋아하는 편이야.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통점이 있어서일까요?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제법 굳었던 나기사 선배의 입매도 흐물흐물하게 풀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농담을 주고 받을 때면 선배는 가느스름하게 눈꼬리를 휘어 접으며 웃었는데, 눈 아래의 그늘이 다른 사람보다 더 짙었습니다. 밤을 새워서 책을 읽으시려나요? "그 부분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도요..." "이상하게 두꺼운 책은 손이 가지만 얇은 교과서는 손이 안 가요..." "나도 그래, 책은 밤 새서라도 읽지만 교과서는 펴면 잠이..." 소리 내어 웃다보니 벌써 교실이 지척이네요, 조금 아쉬워요. 짧은 작별 인사 끝에 저는 5교시를 준비하러 갔답니다. 아, 수학이네요. 담임 선생님도 너무하시지, 왜 하필 잠이 오는 시간에 잠이 오는 과목을 배치했을까요?
21 이름없음 2026/06/16 17:08:23 ID : QleL9dyFfPa 1
[케이 씨에게. 다섯살 배기 여동생이라, 한창 귀여울 나이네요. 제게도 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한 마리 있답니다. 방금 문장에서 멈추셨죠? 애석하게도 저는 제 남동생을 사람이 아니라 동물에 가까운 무언가로 보고 있답니다. 정말로 언제쯤 사람이 될련지, 방금도 한바탕 싸우고 온 참이에요. 제가 아껴둔 초콜릿을 멋대로 먹지 뭐에요. 아서왕 전설이라, 중세 유럽 문학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는 걸 들어본 적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문학이 달라지는 건 어디에도 적용되는 건가 봐요. 민속학적으로 전설이라는 건 세대를 거치며 사회상에 맞게 변화하니까요. 인터넷에서 떠도는 잔혹 동화들이 특히 그렇죠. 아쉽지만 좋아하긴 해요, 특히 한여름밤 불을 끄고 몰래 듣는 괴담 얘기는 미스터리해서 좋아해요. 저는 요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있습니다. 산티아고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나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도 없었다. 그 자신 말고는, 라는 글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다른 글도 좋아하지만 유독 와닿은 이유는... 웃지 않으실 거라고 약속 하실 거죠? 사실 제 꿈은 소설가거든요. 그런데 누가 제 글을 보면 부끄러워서 박박 찢어 숨기게 돼요. 누군가 괜찮은 글이라고 칭찬할 때면 더더욱이요. 제 글 솜씨는 갓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 치고는 나쁘진 않다고 자부하지만, 글쎄요. 저는 제가 성공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사고 방식이야말로 성장에 가장 방해되는 것이지만, 저는 아직까지 달팽이에요. 네, 집 안에 숨어 연약한 살을 숨기고 싶은 달팽이요. p.s. 괜찮아요, 저도 많이 바빴거든요. 들떠서 너무 솔직하게 털어놓아버린 것 같아요. 부담스러웠다면 말씀해주세요.]
22 이름없음 2026/06/16 21:38:34 ID : 8jeIK3WkpSF 0
4살!
23 시로츠키 요루 2026/06/18 16:15:38 ID : QleL9dyFfPa 0
밤에 쓸 땐 괜찮아 보였는데, 낮에 보니 부끄럽기 그지 없네요. 다른 문단은 그렇다 쳐도 마지막 문단이 특히 더요. 아무리 얼굴을 모르는 분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케이 씨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요? 다른 문단을 생각해내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그대로 보내는 게 나을까요? 1. 마지막 문단은 지우고 바꾸자 2. 그냥 두자
24 이름없음 2026/06/18 16:20:59 ID : 3Wo1AZhdO1j 1
"들떠서 너무 솔직하게 털어놓아버린 것 같아요. 부담스러웠다면 말씀해주세요"만 마지막에 덧붙이고 그대로 보내자 안된다면 2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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