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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1/05/05 13:25:13 ID : u8i7f9jtck8
시집 기록용 스레. 창소판 가는 게 맞는 것 같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아. 난입Xxx 애초에 스톱걸고 쓰는데 뭐 읽은 시집 이원, 사랑은 탄생하라 류근, 상처적 체질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wFhaoJVe5e0 2021/05/05 13:32:44 ID : u8i7f9jtck8
이원, 사랑은 탄생하라 :어딘가 순수하게 잔인한 시집. 동시에 현실적인 시집. 영상물로 만든다면 모자이크가 범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국 희망찬. 좋아하는 시집에 들어간다. -뜻밖의 지구 -봄 셔츠 -플라밍고 -뛰는 심장 -호주머니칼 -사월사월사월 -애플 스토어 -의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쪽이거나 저쪽 -한 편의 생이 끝날 때마다 -모자는 왜
◆wFhaoJVe5e0 2021/05/05 13:35:25 ID : u8i7f9jtck8
나무들의 침묵을 믿었다 불빛을 방목했다 전파를 믿었다 허공을 분할했다 구름을 최후의 저장소로 선택했다 지도를 완성시켰다 엄지에게 전권을 주었다 표지판을 세우고 길을 잃는 놀이를 멈추지 않았다 -이원, 뜻밖의 지구
◆wFhaoJVe5e0 2021/05/05 13:41:47 ID : u8i7f9jtck8
우리는 자주 길을 잃는다. 흔히 공간지각력이 부족하다고들 한다. 세상의 끝은 여전히 낭떠러지다.
◆wFhaoJVe5e0 2021/05/05 13:45:10 ID : u8i7f9jtck8
당신의 봄 셔츠를 구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만져본 팔이 들어갈 곳이 두 군데 맹목이 나타날 곳이 한 군데 뚫려 있어야 하고 색은 푸르고 일정하지 않은 바느질 자국이 그대로 보이면 했습니다 봄 셔츠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차돌을 닮은 첫번째 단추와 새알을 닮은 두번째 단추와 위장을 모르는 세번째 단추와 전력만 아는 네번째 단추와 잘 돌아왔다는 인사의 다섯번째 단추가 눈동자처럼 끼워지는 셔츠 -이원, 봄 셔츠
◆wFhaoJVe5e0 2021/05/05 13:47:08 ID : u8i7f9jtck8
일정하지 못한 박음질이 있는 셔츠는 많습니다. 저는 손재주가 좋은 편이고요.
◆wFhaoJVe5e0 2021/05/05 14:19:22 ID : u8i7f9jtck8
세번째 단추는 슬쩍 손에 쥐고 셔츠 칼라는 늘 꼭꼭 여며 놓습니다.
◆wFhaoJVe5e0 2021/05/05 14:23:44 ID : u8i7f9jtck8
숨통을 막고 사랑하는 중입니다 사랑하는 중이에요 왈칵 피가 쏟아질까요 (중략) 차오르는 중 중지하는 중 한 칼이 나눠 쓴 시간을 자르는 중 게워내는 중 -이원, 플라밍고
◆wFhaoJVe5e0 2021/05/05 15:59:28 ID : u8i7f9jtck8
소리 내지 말자 귀들이 다 없어지도록 칼날을 내부의 사랑이라 하자 피 묻힌 손으로 얼굴을 지우고 있다 하자 얼굴은 점점 선명해졌다 하자 -이원, 뛰는 심장
◆wFhaoJVe5e0 2021/05/05 16:01:50 ID : u8i7f9jtck8
구름은 서투르게 쓴다 귀만 알아듣는다 빈방을 지나 파도를 넘어 수평선 밖으로 가까스로 내민 발등 서투르게 서투르게 -이원, 호주머니칼
◆wFhaoJVe5e0 2021/05/05 16:03:19 ID : u8i7f9jtck8
中 수많은 모래를 무턱대고 적시는 파도의 두려움 날개는 멀리서 오고 있다
◆wFhaoJVe5e0 2021/05/05 16:13:27 ID : u8i7f9jtck8
이곳은 햇빛의 노점 세상의 모든 길들이 꼬불꼬불 접혀 들어오는 안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밤의 도서관 히브리어 몰타어 스와힐리어 우리 같은 아이들의 말을 점자처럼 만질 수 있는 -이원, 사월사월사월
◆wFhaoJVe5e0 2021/05/05 16:15:45 ID : u8i7f9jtck8
한국에서 외친다면 사어가 될 단어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널리 쓰이는. 몰타어는 유럽,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에 산다.
◆wFhaoJVe5e0 2021/05/05 16:20:51 ID : u8i7f9jtck8
하루는 폭우가 오고 하루는 폭염이다 하루는 아는 사람 열다섯 명을 만났고 하루는 뻐꾸기 소리만 들리는 허공이다 왼쪽으로 들어왔다 오른쪽으로 나간다 -이원, 애플 스토어
◆wFhaoJVe5e0 2021/05/07 14:58:48 ID : u8i7f9jtck8
침묵하는 이 짐승은 언제 달리기 시작하나요 창밖 난간으로는 발음을 모르는 혀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밤의 숲에 가면 뼈의 외침이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로잡힌 척 의자에 앉아 우리는 손만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한끼를 위한 너덜너덜한 손의 동작을 왜 멈출 수 없습니까 항문과 입을 동시에 벌리는 법 우리는 어쩌면 이토록 징그러운 동작을 배웠을까요 의자 손잡이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입이라 해도 고해성사의 순서를 알게 되었다면 그것 또한 사소한 습관이 아니겠습니까 뒷모습이 구겨져 있습니다 깜깜한 곳에 우리는 너무 오래 접혀 있었습니다 -이원, 의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wFhaoJVe5e0 2021/05/07 15:10:56 ID : u8i7f9jtck8
오늘 네가 그토록 하찮게 여기던 그가 죽었다 아멘 우리의 친구 -이원, 이쪽이거나 저쪽
◆wFhaoJVe5e0 2021/05/07 15:12:58 ID : u8i7f9jtck8
얼굴을 감쌌다 손목이 남아 있었다 고작, 심장 -이원, 한 편의 생이 끝날 때마다
◆wFhaoJVe5e0 2021/05/07 21:10:42 ID : u8i7f9jtck8
이게 우리야 가죽만 남은 우리야 모자를 만들 수 있어 그게 우리야 모자만 남은 우리야 이제 모자만 녹으면 돼 그러나 우리는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녹아내렸는데 굳기까지 하면 어떡합니까 맞지 않는 모자가 됩시다 우리는 동시에 입술을 움직였습니다 -이원, 모자는 왜
◆wFhaoJVe5e0 2021/05/07 21:11:47 ID : u8i7f9jtck8
류근, 상처적 체질 :1992 등단한 시인. 전체적으로는 통속소설 느낌. 도덕관을 가지고 읽으면 몇몇 시들에는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다. 평화로운 산책 외에는 표현만 보면서 넘긴 시집. 표현은 예쁘다. 2010년에 나온 시집이라기엔 약간 더 옛날 것 같다. -평화로운 산책 -칠판 -상처적 체질 -벌레처럼 울다
◆wFhaoJVe5e0 2021/05/07 22:29:18 ID : u8i7f9jtck8
이런 순간에 나는 평화를 평화, 라고 솔직하게 발음해보는 것이다 내가 지나온 교과서 속에는 아직도 세상의 모든 의미가 세상의 모든 기호들 속에 깃들어 있을 테지만 때로 사람들에겐 알약 하나 꺼내 놓을 수 없는 위독한 행간이 있다 -류근, 평화로운 산책
◆wFhaoJVe5e0 2021/05/07 22:31:11 ID : u8i7f9jtck8
中 이런 시간엔 돌아오는 모든 것들이 눈물겹게 보인다 입술을 적신 새 떼와 손금을 버린 사람들이 돌아오는 시간 모든 외마디의 빛깔들이 한끝을 향해 핑핑 글썽이며 돌아오는 시간
◆wFhaoJVe5e0 2021/05/07 22:34:12 ID : u8i7f9jtck8
나 혼자 노을 속에 남겨져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당신 맨 처음 바라보라고 서쪽 하늘 가르키는 손가락 끝에 청동의 별 하나를 그려두기도 하였다 때로는 물의 이름을 때로는 나무의 이름을 때로는 먼 사막의 이름을 쓰기도 했다 지붕이 자라는 밤이 와서 하늘이 내 입술과 가까워지면 푸른 사다리 위에 올라가 가장 깨끗한 언어로 당신의 꿈길은 옮겨적기도 하였다 내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물고기 한 마리 우산을 쓰고 지평선을 넘어오는 자전거 하나 밤과 새벽을 가르는 한 올의 안개마저 돌아와 아낌없이 반짝이곤 했다 -류근, 칠판
◆wFhaoJVe5e0 2021/05/07 22:37:09 ID : u8i7f9jtck8
지붕은 밤에 한없이 높게 자라고, 밤의 입술은 내게 곧잘 동조하는데.
◆wFhaoJVe5e0 2021/05/07 22:38:09 ID : u8i7f9jtck8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류근, 상처적 체질
◆wFhaoJVe5e0 2021/05/07 22:41:52 ID : u8i7f9jtck8
나는 썩지 않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서 남김없이 썩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다 벌레처럼 울자 벌레처럼 울어서 마침내 화석이 되는 슬픔으로 물에 잠긴 한 세상을 다 건너자 -류근, 벌레처럼 울다
◆wFhaoJVe5e0 2021/05/08 18:16:34 ID : u8i7f9jtck8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이 시의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하나가 아니고 나오는 문도 하나가 아니다. 어디로 들어가든, 어디로 나오든 상관없다. 나오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고 나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시집. 안 좋아하는 시가 없어서 전부 적어야 하는지 고민중. 어떻게 단어의 집합이 문장 그 이상일 수가 있나요?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뭐지 싶었는데 곱씹을수록 와닿는 시들이 많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어린왕자의 감성을 끼얹는다면 비슷한 느낌이 나지 않을까. 표현은 직설적인 편. -페루 -분홍 설탕 코끼리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옥수수 수프를 먹는 아침 -우비를 입은 지구 소녀 -요롱이는 말한다 -네이키드 하이패션 소년의 작별인사 -공원의 두이 -무화과나무 열매의 계절 -별 시대의 아움 -그늘의 입 -편지광 유우 -창문 사람 -그림자 정원사 -갈색의 책 -처음의 들판 -단 하나의 이름 -발 없는 새 -아마도 아프리카 -피로와 파도와 -완고한 완두콩 -곱사등이의 둥근 뼈 -고아의 말
◆wFhaoJVe5e0 2021/05/15 11:56:52 ID : u8i7f9jtck8
말이란 원래 그런 거지. 태초 이전부터 뜨거운 콧김을 내뱉으며 무의미하게 엉겨붙어 버린 거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미쳐버린 채로 죽는 거지. 그렇게 이미 죽은 채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거지.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이제니, 페루
◆wFhaoJVe5e0 2021/05/15 12:01:49 ID : u8i7f9jtck8
그래서 머리를 땋아달라고 말할 수가 없지.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없어 낮고 희미해지는 공기. 결국 고산증에 걸렸다. 페루가 고향이 아닌 건 역시 이상한 일이지. 고산증과 드넓은 들판,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분홍 보라.
◆wFhaoJVe5e0 2021/05/15 12:44:57 ID : u8i7f9jtck8
설탕, 하고 발음하면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바보, 모든 설탕은 녹는다. 뚱뚱해지는 건 시간문제 -이제니, 분홍 설탕 코끼리
◆wFhaoJVe5e0 2021/05/15 13:00:17 ID : u8i7f9jtck8
그러나 너는 등을 보인 채 창문 위에 뜻 모를 글자만 쓴다. 당연히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가느다란 입김이라도 새어나오는 겨울이라면 의도한 대로 너는 네 존재의 고독을 타인에게 들킬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니, 후두둑 나뭇잎 소리일 뿐
◆wFhaoJVe5e0 2021/05/15 13:26:10 ID : u8i7f9jtck8
알갱이 알갱이 알갱이 수프 속에 둥둥둥 떠 있고 알갱이마다 생각나는 얼굴 몇개 죽었고 사라졌고 지워졌고 이제는 없으니까 알갱이를 먹는 겁니다 둥글고 따뜻한 알갱이를 먹는 겁니다 국물도 있어요 국물도 맛있어요 -이제니, 옥수수스프를 먹는 아침
◆wFhaoJVe5e0 2021/05/15 13:27:58 ID : u8i7f9jtck8
中 어쩌면 언제든 볼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조금은 그리운 알갱이 알갱이 알갱이
◆wFhaoJVe5e0 2021/05/15 13:29:23 ID : u8i7f9jtck8
아직도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아직도 나와 같은 단어를 쓰나요 -이제니, 우비를 입은 지구 소녀
◆wFhaoJVe5e0 2021/05/15 13:36:54 ID : u8i7f9jtck8
가슴 속 모음이 가슴에서 눈으로, 눈에서 입으로, 입에서 울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는 일은 요롱요롱하다. 울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당신만의 요롱이를 찾지 못했을 뿐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요. 내 잘못이 아니어도 요롱요롱 용서를 구하고 싶다. -이제니, 요롱이는 말한다
◆wFhaoJVe5e0 2021/05/15 13:40:28 ID : u8i7f9jtck8
中 나는 정말 요롱이가 되고 싶어요. 요롱요롱한 얼굴로 요롱요롱하게.
◆wFhaoJVe5e0 2021/05/15 13:41:50 ID : u8i7f9jtck8
中 마침표를 잃어버린 슬픔. 양팔을 껴야만 하는 외로움. 그건 단지 요롱요롱한 세상에서 요롱요롱한 틈새를 발견한 요롱요롱한 손가락의 피로.
◆wFhaoJVe5e0 2021/05/15 13:44:08 ID : u8i7f9jtck8
슬픔의 순간에도 운율만은 잊지 않았지.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하이패션이 있습니까. 각운이 아니었더라면 난 더 슬펐을 거야. -이제니, 네이키드 하이패션 소년의 작별인사
◆wFhaoJVe5e0 2021/05/15 13:55:50 ID : u8i7f9jtck8
이제 남은 일은 말하지 못한 말들을 삼키거나 뜻 없는 문장들의 뜻 없는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일뿐. 공원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하염없이 걸으면서. 울적하고 피로한 제자리걸음으로. 공원 밖은 공원, 공원 밖은 공원, 공원 밖은 공원. 무럭무럭 지상의 공원들이 자라나는 밤. 닿을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두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제니, 공원의 두이
◆wFhaoJVe5e0 2021/05/15 13:59:00 ID : u8i7f9jtck8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언제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들일까. 기다리는 것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는 것들일까. 어제의 파도는 어제 부서졌고 오늘의 파도는 오늘 부서지고 내일의 파도는 내일 부서질 것이다. -이제니, 무화과나무 열매의 계절
◆wFhaoJVe5e0 2021/05/15 14:12:34 ID : u8i7f9jtck8
기다리는 것이 되지 않는 방법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되는 것. 우리는 늘 아득하다. 아뜩하다.
◆wFhaoJVe5e0 2021/05/15 14:20:02 ID : u8i7f9jtck8
언제나 우린 멀리 더 멀리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 극동의 자퐁으로 가자, 극동의 자퐁으로. 그러나 그대여, 누군가에겐 우리가 있는 이곳이 바로 극동이다. -이제니, 별 시대의 아움
◆wFhaoJVe5e0 2021/05/15 14:22:03 ID : u8i7f9jtck8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늘 극동이기에 극동은 없는 거지. 우리는 평생 극동에 닿을 수 없는 거지. 모든 곳에서 비둘기는 욕설을 퍼붓고 불모지에선 사람만이 자란다.
◆wFhaoJVe5e0 2021/05/15 14:38:37 ID : u8i7f9jtck8
너는 언제나 회색의 혀로, 회색의 목소리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오해라는 말로 이해하지 않기 위해. 이해라는 말로 오해하지 않기 위해, 이후로 우린 서로에 대한 질문지를 삼켜버렸지. 이후로 우린 꿈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 무수한 말이 적힌 백지를 간직한 채 꿈은 반대라는 말을 괄호 속에 묶어둔 채. -이제니, 그늘의 입
◆wFhaoJVe5e0 2021/05/15 14:39:52 ID : u8i7f9jtck8
中 소리가 노래가 되는 온도에 대해 소리가 노래가 되지 않는 무구함에 대해 서로의 손과 발을 밀치듯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글만을 쓰고
◆wFhaoJVe5e0 2021/05/15 15:16:21 ID : u8i7f9jtck8
지나간 시간에 관대해진다면, 다가올 시간에 관대해진다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면, 자기 자신을 찾는다면. 간직해온 꿈을 버린다면, 간직해온 꿈을 꾼다면. 유우는 영원히 자기 자신과 공통점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제니, 편지광 유우
◆wFhaoJVe5e0 2021/05/15 15:24:07 ID : u8i7f9jtck8
카렌다 레코다 키카이다. 도케이 시케이 만포케이. 메이레이 시레이 한레이. 기어이 운율을 맞추고야 마는 슬픈 버릇. -이제니, 창문 사람
◆wFhaoJVe5e0 2021/05/15 15:25:26 ID : u8i7f9jtck8
中 나는 울지 않는 사람이니까 거리를 달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너는 창문 밖에 서 있는 사람. 한번 창문 사람이면 영원한 창문 사람이다.
◆wFhaoJVe5e0 2021/05/15 15:44:28 ID : u8i7f9jtck8
내가 잡은 푸른 벌레는 매번 죽어 있었지 나는 녹색 병에 든 내 심장을 두 번 흔들었다 거품이 날 때까지 거품이 날 때까지 살아 있으라고 내 취향 내 기행 내 만행 내 악행 내 결백 나는 과거의 사람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다 이 작은 인공의 숲에서 검은색으로 은둔중 거미줄 시계풀 곤충들의 소리에만 귀기울인 채 너는 네가 믿는 유령의 모습으로 희미하게 읽히고 -이제니, 그림자 정원사
◆wFhaoJVe5e0 2021/05/15 15:47:31 ID : u8i7f9jtck8
떨어져나간 겉장, 제목도 없는 책 나는 일평생 나라는 책을 읽어내려고 안간힘 썼습니다 갈색의 갈색의 갈색의 책 -이제니, 갈색의 책
◆wFhaoJVe5e0 2021/05/15 15:48:41 ID : u8i7f9jtck8
中 정말 가슴 아프게 들리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소리내서 말할 리 없잖아 꿈에서 깼을 땐 단 하나의 단어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wFhaoJVe5e0 2021/05/15 15:56:28 ID : u8i7f9jtck8
월요일에 나는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아니 화요일 아니 수요일 아니 목요일 아니 금요일 이미 잃었는데도 다시 잃고야 마는 요일의 순서들처럼 수면양말에 담긴 너의 두 발은 틀린 낱말만 골라 디뎠지 이곳은 너무 어둡고 너무 환하고 너무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다 이 흰색을 이 검은색을 고아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나의 고아에게 오늘의 심장은 어제의 심장이 아니란다 건초더미라는 말은 녹색의 풀이 한 계절을 지나왔다는 말 세계의 끝으로 밀려난 먼지들의 춤도 이와 마찬가지 소리가 되기 위해 모음이 필요한 자음들처럼 이제 그만 울어도 좋단다 -이제니, 단 하나의 이름
◆wFhaoJVe5e0 2021/05/15 16:23:14 ID : u8i7f9jtck8
발 달린 것들의 질주가 어제의 들판을 가득 메운다 이상하고 빠르게 이상하고 기쁘게 오늘의 검은 무늬를 한없이 길게 밀고 나가며 나를 달리게 하는 것은 들판이 아니라 들판에 대한 상상 들판은 들판 너머에 있었다 언제나 거의 언제나 처음처럼 들판 너머 들판 들판 너머 들판 -이제니, 처음의 들판
◆wFhaoJVe5e0 2021/05/15 16:25:55 ID : u8i7f9jtck8
청춘은 다 고아지. 헛된 비유의 문장들은 이마에 새기지. 어디에도 소용없는 문장들이 쌓여만 가지. 위안 없는 사물들의 이름으로 시간을 견뎌내지. -이제니, 발 없는 새
◆wFhaoJVe5e0 2021/05/15 16:27:47 ID : u8i7f9jtck8
中 높이는 종종 깊이라는 말로 오인되지 구체성이 결여된 삶에도 사각의 모퉁이는 허용될까
◆wFhaoJVe5e0 2021/05/15 16:55:09 ID : u8i7f9jtck8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 나는 슬픈가 나는 위안이 필요한가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조금 호랑이, 그것은 나만의 것 따뜻하고 보드랍고 발톱이 없는 것 살고 있나요 묻는다면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나는 아주 조금 살고 있어요 내 머릿속은 반은 쑥색이고 반은 곤색이다 쑥색과 곤색의 접합점은 성홍열 같은 선홍색 열두살 이후로 농담이 입에 배었다 옷에도 머리카락에도 손톱 끝에도 주황색 양파자루 속엔 어제의 열매들 양파가 익어가는 속도로 너는 울었다 눈을 감아도 선홍색이 보이면 다시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너무나 멀리 있지만 아마도 이미 아프리카 나는 하룻밤 사이에도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전문)
◆wFhaoJVe5e0 2021/05/15 16:57:25 ID : u8i7f9jtck8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한적한 한담의 한담 없는 밀물 속에 오늘의 밀물과 밀물과 밀물이 어제의 밀물과 밀물과 밀물로 번져갈 때 물고기들은 목적 없이 잠들어 있다 물결을 신은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이제니, 피로와 파도와
◆wFhaoJVe5e0 2021/05/15 16:58:45 ID : u8i7f9jtck8
中 바다를 향해 열리는 창문이 있다고 쓴다 백지를 낭비하는 사람의 연약한 감정이 밀려온다
◆wFhaoJVe5e0 2021/05/15 17:03:31 ID : u8i7f9jtck8
어째서 완두가 완두 완두하고 운다고 생각하나요 완고한 것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완고 완고하게 우는 당신의 마음속에 -이제니, 완고한 완두콩
◆wFhaoJVe5e0 2021/05/15 17:33:38 ID : u8i7f9jtck8
내가 끌고 온 긴 얼룩들이 어쩌지 못하는 사물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부리다 나아가고 구부리다 나아가는 벌레들처럼. 마른 나뭇가지가 자라나는 몸. 가지 끝이 갈라지는 걸 보고 있었어. 그것은 녹색. 녹색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 내가 잡은 난간은 매번 녹슬어 있었으니까. 나의 것이 아니길 바랐던 녹슨 뼈들이. -이제니, 곱사등이의 둥근 뼈
◆wFhaoJVe5e0 2021/05/15 17:35:46 ID : u8i7f9jtck8
中 물음을 울음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아 물음을 울음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아 둥글게 구부러진 꽃 같은 사람아 둥글게 구부러진 꽃 같은 사람아 나무의 피는 조금 울고 어쩐지 자라나던 그것이 문득 작아진 것 같았습니다.
◆wFhaoJVe5e0 2021/05/15 17:41:12 ID : u8i7f9jtck8
당신은 넘실대고 고아의 말과 한 몸으로 넘실대고 바다는, 고아의 해변은, 매 순간 다른 리듬으로 밀려갔다 밀려오고 슬픔을 따라가면 슬픔의 끝이 나옵니다 슬픔의 끝을 따라가면 더 깊은 슬픔의 끝으로 달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바다의 물걸이 더 큰 진폭으로 울고 있습니다 텅 빈 조개껍데기에서 소리없는 말들이 흘러 나옵니다 이 말들을 따라가면 다시 고아의 해변으로 -이제니, 고아의 말
◆wFhaoJVe5e0 2021/09/17 23:57:52 ID : u8i7f9jtck8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이전 시집인 보라의 바깥은 왠지 모르게 텅 비어 보였다면 이번 건 꽉 차 보인다. 전체적으로 시에 무게가 생긴 기분. 물로 가득 젖은 시들이 많다. 그래서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표현의 변주를 정말 잘 사용하는 시인. 표현 하나하나도 예쁘지만 유기적인 구조가 드러날 때 가장 예쁜 시들이라고 생각한다.어느 한 부분을 뽑아 옮기기 힘든 시집.
이름없음 2022/09/28 22:14:42 ID : 8i5XBze2Mo4
비파가 오면 손깍지를 끼고 걷자. 손가락 사이마다 배어드는 젖은 나무들. 우리가 가진 노랑을 다해 뒤섞인 가지들이 될 때, 맞붙은 손은 세계의 찢어진 안쪽이 된다. 열매를 깨뜨려 다른 살을 적시면 하나의 나무가 시작된다고. 그건 서로의 손금을 겹쳐본 사람들이 같은 꿈속을 여행하는 이유. 길게 뻗은 팔이 서서히 기울면 우리는 겉껍질을 부비며 공기 속으로 퍼지는 여름을 맡지. 나무 사이마다 환하게 떠오르는 진동들. 출렁이는 액과를 열어 무수히 흰 종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어봐. 잎사귀들이 새로 돋는 앞니로 허공을 깨무는 동안. 우리는 방금 돋아난 현악기가 되어 온통 곁을 비워간다. 갈라진 손가락이 비로소 세계를 만지듯이 나무가 가지 사이를 비워내는 결심. 서로가 가진 뼈를 다해 하나의 겹쳐진 씨앗을 이룰 때, 빛나는 노랑 속으로 우리가 맡겨둔 계절이 도착하는 소리. -이혜미, 비파나무가 켜지는 여름(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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