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2/12 02:38:24 ID : p8001eLak5U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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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름없음 2020/02/12 04:01:53 ID : xSNs7dQk2rf 0
말간 얼굴에 헤벌어진 입. 딱 눈썹이 보일 정도로 다듬어져 있는 소위 바가지 머리. 쪼그려 앉아 벙쪄서 나를 올려다 보는 이 아이는 내 심문 대상자다. "그러니까 본 적이 있다?" 재차 물어보는 질문에 아이는 엉덩방아를 찧고 무릎에 팔을 올려 턱을 괴었다. 퍽 거만한 자세다. 어린아이가 취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배짱인 것이다. 나는 눈을 굴리며 눈썹을 씰룩였다. 뭔 애가 이렇게 타산적이람, 그러나 나는 지갑에서 기어코 배춧잎을 한 장 꺼내들어 협상을 시도했다. 자, 어떠냐. 턱을 괴고 짐짓 모른체 하던 아이가 힐끔 눈짓으로 경황을 살폈다. 곧바로 푸헹, 하고 코웃음이 터져나왔다. 협상 결렬이다. 하늘을 찌르는 건방에 이가 갈렸다. 멍청하게 생겨서 뭐가 이렇게 얍실한지 저 조그만 대굴빡이 야속했다. 나는 입을 비죽 내밀면서 그 위에 두 장 더 얹었다. "이야, 김장 담가도 되겠어. 이제 됐냐, 요 꼬맹아?"
3 이름없음 2020/02/12 04:06:27 ID : xSNs7dQk2rf 0
들은 체 만 체 하던 녀석이 어느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넋을 놓았다. 벌어진 입이 동굴만해져서는 파리도 들어갈 기세다.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니 아이스크림을 낼름 핥으며 지나가는 아이가 보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얼른 근처 슈퍼로 달려가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아이스크림을 담고 놀이터로 다시 돌아왔다. 미끄럼틀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아이가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젠장, 고단새 내뺐냐..." "뭐?" 아무렇지도 않게 놈이 미끄럼틀 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화들짝 놀라서 그만 봉지를 떨어트리자 아이스크림이 와르르 쏟아졌다. "어!" 후다닥 미끄럼틀에서 나와 내 앞에 녀석이 다시 쪼그렸다. 적중이다.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는 녀석에게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스크림을 집어들었다. 초코 취향이군.
4 이름없음 2020/02/12 04:07:33 ID : xSNs7dQk2rf 0
"자, 그래서 꼬마야. 교동초등학교 다닌다고 했지?"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쥐고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나를 흘낏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아이스크림을 봉지에 모두 담은 후 하나 봉지를 뜯었다. "2학년? 그래그래, 확실히 너희 학교 애가 맞다 그지?" "근데 아저씨 누군데요?" 빠르게 하나를 해치우고 다른 하나를 핥아먹던 와중에 갑자기 나를 수상하게 바라보았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의심을 무마하려 애썼다. 큰일이다. 녀석이 내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 나는 그... 선생님인데, 곧 그 학교에 근무할 예정이라 사전 조사 겸해서 학생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거야."
5 이름없음 2020/02/12 04:08:07 ID : xSNs7dQk2rf 0
완전히 개소리다. 그러나 아홉 살 꼬꼬마는 이상함을 간파하지 못했다. 녀석이 눈썹을 찡그리며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이 나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학교는 요새 별 일 없고?" "응." "그래서 걔는 몇 반이라고?" "그건 몰라."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겨우 내뱉은 말이 고작 이거다. 모른다니, 이 망할 꼬마 녀석이!
6 이름없음 2020/02/12 04:31:44 ID : xSNs7dQk2rf 0
"뭐 좋아하는지는?" "몰라." "인형을 좋아한다던가?" "몰라." "하교할 때 누구랑 같이 가는지도?" "몰라." "너 이..." 부글부글 끓는 속에 아드득 이를 갈았다. 결국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다. 사진을 보여주니 얼굴을 아는 모양인지 어, 하고 알은체를 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녀석은 내 눈치를 슥 살피고는 아이스크림을 한 개 더 집어들고 잽싸게 내뺐다. "야, 거기 서 봐!" 소리를 뻑 지르자 놀랐는지 휘청거렸다. 우왕좌왕하며 고민하는 눈치였다. 손짓으로 오라는 언질을 주니 쭈뼛거리면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내게 집어든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나는 녀석의 아이스크림을 홱 잡아 봉지에 넣었다. 그리고 다 먹은 막대 두 개를 양손에 쥐고 꾸중을 기다리는 아이에게 척 들이밀었다. 삽시간에 웃음이 얼굴 곳곳 퍼졌다. "감사합니다아." 봉지를 받아들고 씩 웃으며 녀석이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흥얼흥얼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친해질 건덕지가 생긴다면야 아무래도 좋았다. 투자한 셈 치지 뭐. 뭐가 됐든 저 녀석이 얼굴을 아는 것만은 확실했다.
7 이름없음 2020/02/12 04:47:32 ID : xSNs7dQk2rf 0
한숨을 쉬듯 담배 연기를 내뱉자 머리가 맑아졌다. 정자 기둥에 기대어 담배를 줄곧 피우는데 풀숲 사이로 웬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왠지 딱하게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다리로 차는 시늉을 하며 내쫓았다. 나는 갑자기 이제 지나가던 괭이도 딱하게 보는 신세가 돼버린 것 같았다. 한숨을 푹 쉬며 나는 휴대폰 갤러리에 꼬마아이에게 보여주었던 사진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여자아이가 아이들 틈에 서 있는 사진이다. 아이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하며 각도 하며 아무리 봐도 몰래 찍은 듯한 구도다. 그래 맞다. 몰래 찍었다. 심지가 짧아져버린 담배를 밟아 끄고는 정자에 벌렁 드러누웠다. 머리가 아팠다. 그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결국은 때가 왔다. 아이가 이보다 더 머리가 굵어지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이다. "으으…"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몰래 그 아이를 지켜봤던 시간 동안 끊임없이 망설였다. 그러나 이것은 책임의 문제다. 그리고 그 꼬마처럼 아홉 살은 상황을 이해하기에 머리가 썩 잘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눈을 감았다. 곧 그 아이를 만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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