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것, 사실 이것이 소설이라 불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저 흑과 백. 텍스트의 집합체. 그 안에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그저 허울 뿐인 그릇. 마치 그림자에 물을 붓듯 무엇을 넣어도 그대로 흩어지고 만다. 의미도 없다. 주제도 없다. 이야기도, 맥락도, 설정도, 등장인물도. 그저 흑과 백. 텍스트의 집합.
이름없음2021/06/02 00:51:18ID : 9xXxQranDAk
그렇지만서도 내가 의미 없는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알 수 없는 의무감. 아주 어릴적, 파도를 파고들어 심해에 다다르고 나서야 기억 할 수 있는. 그마저도 심해의 푸른빛에 감춰져 제대로 들추어 볼 수야 없는 시절의 나. 그 때의 나 부터, 이 소설은 이어져 왔다.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써 내려간다. 그렇게 내 소설은 하나 둘 완성되어 간다.
이름없음2021/06/02 00:54:10ID : 9xXxQranDAk
이제부터 올리는 것은 내 무의식의 집합이자, 어릴 적 부터 의미를 찾고 싶었던, 비운의 소년의 흑연이 담겨진, 흐르는 그림자 그릇에 불과하다.
이름없음2021/06/02 00:58:33ID : 9xXxQranDAk
거북이 길을 떠난다.
휘황찬란한 등갑을 지고
아무도 모를 여정에 떠난다.
칼등이 그의 목을 내리치고
쇠 꼬챙이 그의 눈을 도려내고
가시덤불 그의 귀를 찢어내고
불 구덩이 그의 폐를 녹여도
그는 알지 못한다.
휘황찬란한 그 등껍질.
그를 달리게 한다.
그를 달리게 한다.
그를 달리게 한다.
그를 달리한다.
_7
이름없음2021/06/02 01:01:54ID : 9xXxQranDAk
거인의 발
거인의 목
거인의 손
거인의 눈
거인의 귀
거인의 코
거인의 뇌
거인의 발
_5
이름없음2021/06/02 01:05:01ID : 9xXxQranDAk
그는 너무 크게 웃었다.
웃는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크게 웃었다.
산 너머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크게 웃었다.
바다 너머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크게 웃었다.
하늘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그는 크게 웃었다.
그는 크게
크게
웃었다.
더 크게.
웃었다.
_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