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인기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가난한 시민들은 먹고 살기 바쁘고 귀족들은 온갖 사치와 향락에 눈이 멀었다. 아이들은 글을 몰라 종이를 불쏘시개로 썼다. 부유한 옆 나라에서는 책이 그렇게 소중하다던데. 콜린은 몇 년간 안 팔린 먼지 쌓인 책들 옆에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색 바랜 책표지가 페렌의 하늘과 같았고 그 회색빛 가죽도, 이 무채색 페렌도 언젠가 낡아 없어질 게 뻔했다. 어차피 먼지가 되어 사라질 나라라면 불태워 시뻘건 하늘이라도 만들어 볼까. 그 세기 말의 몽상을 하노라면 콜린의 마음은 살그머니 뛰었다. 유일하게 바라는 미래. 춤추는 글자들과 넘치는 잉크.... 얼마나 기대되는 광경이겠어? 늘 몽상의 끝엔 불타는 길거리와 재가 되어 사라지는 책들이 눈에 어른거렸지만 겁 많은 콜린은 이제 와 도망칠 용기도 없었기에 애써 불안을 잊으려 했다. 현실을 눈 감고 도망친대도 어쩔 수 없어. 결국 더 많은 책들을 위한 도망이니까. 혁명은 가슴 뛰고 몽상을 달콤했기에 그녀는 조용히 기다렸다. 승리를 써내려 갈 붉은 잉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