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2/03/27 23:16:19 ID : 4NteNxXz9eI 20
-평가 상관 없음. 오히려 피드백 환장함. -장르도 상관 없음. -걍 자유롭게 미완성된 글들이나 짧은 글 던지고ㅌㅌ -스레주가 글 읽는 거 좋아해서 평가질 자주 함. 주의 -다 같이 쓰는 스레. 일단 왔으면 글 적고 가라는 뜻.
102 이름없음 2022/09/04 01:17:16 ID : JXAo5cINy1B 0
미친 되게 김동식 작가님 느낌 들어 완전 내취향 ㅜㅜㅜㅜㅜㅜㅜㅜ
103 이름없음 2022/09/04 20:01:31 ID : 4NteNxXz9eI 0
별 거 없다면서 전혀 아니쥬? 사실 애써 진심을 외면하고 있쥬? 다 들켰쥬? 괜히 초라해질까봐 외면하고 있쥬? 이제 주변인과 일케 저케 부딪히면서 정신적 성장을 이룬 다음 자신의 여름을 인정하는 그런 뜨거운 청춘 성장물 이쥬? 놀리는 거 같았다면 미안... 그치만... 상처 입을까봐 일부러 관심 없는 척하는 주인공은 놀려야 제맛... 이제 시작하시면 됩니다. 얼른 그 소재들고 ㅈㅇㄹ든 ㄴㅇㅂ든 가셔서 아포칼립스 분위기의 다크 판타지 쓰시면 됩니다. 전 땅 끝까지 따라가서 곡괭이 들고 무릎 꿇어서 데이터 켜고 읽겠습니다. 하... 취향 저격해서 암살하네... 나 이런거 좋아... 기다려보ㅏ 해석하지 마. 결국 딸이란 건 그런 존재였고 아저씨의 공부하란 말은 그게 그렇게... 오키 내 맘대로 읽었으니까 이제 더 적어봐봐... 1000스레 채워주라... 아, 님, 아. 이건 유죄다. 자연재해 환장하고요, 그 속에서도 끈질기고 하찮게 존재하는 인간들의 일상? 사랑합니다. 그치.. 재해는 배경처럼 묘사해줘야 제 맛이지.. 재해도 중요하지만 재해로 인한 비일상이 결국 일상이 된 그런 모먼트 좋다고요...
104 이름없음 2022/09/04 22:04:47 ID : 0mmleHCmJXx 0
94야. 천만에. 그런 주인공은 놀려야 제 맛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거든. 내 경험담을 토대로 쓴건데, 이렇게 감상평 남겨줘서 고마워.
105 이름없음 2022/09/04 23:06:30 ID : tzbxxCi4Ny0 0
고독하다. 드넓은 세상에 홀로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렇게 지금까지 버텨왔것만 이미 노쇠한 육체는 말을 듣지않고 희미해진 심장박동은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것일까' 집을 만들고 울타리를 세우고 실낱같은 희망 하나에 의지한채 망가져만 가는 두 다리로 이제는 녹색으로 물들어버린 도시를 걷고, 또 걸어왔다. 비가 내리나 눈이 내리나 쉬는법조차 모른채로 살아왔다. 한평생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했지만 신께서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동안, 내가 이 고독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하는 동안 빛을 보지 못한채 쓸쓸히 죽어가기만을 바라시는구나 "아...따스한 햇살이다. 마치 처음 태어났던 그때처럼..." '이젠...나도 그들의 품으로..' 이젠 얼굴도 이름도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들을 떠올리며 그는 지하철 한구석에서 홀로 외로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내 그는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 끈질기게 자리를 지켜온 마지막 생명의 불씨가 꺼졌다. 후회와 수만가지 감정이 담긴 눈물 한방울을 세상에 떨군 채로 말이다. 마지막 인류가 세상에서 사라진 그날 그렇게 지구는 가장 오랜시간을 함께해왔던 친구를 잃었다.
106 이름없음 2022/09/07 12:02:44 ID : bzU0pQtAo5a 0
[보인다. 나는 비로소 본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은 암흑이었다. 잠시동안 눈 앞이 까매지다가 다시 보이는 일이 잦아졌기에 병원을 찾았다. 현안이라고 하기에 당황해서 물었더니 의사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이 입소한 정부 산하의 시설에서 나는 더듬거리며 생활하는 날이 늘어갔다. 일주일이 되던 때, 눈이 타는 듯이 괴로웠다. 고통에 기절했다가 고통에 깨어나는 일상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보였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손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이가 15년 후에 노인을 위해 회전문을 잡아준다. 무료하게 공원에 앉아있는 노인이 36년 전에 어떤 큰 산에도 메울 수 없는 큰 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거침없이 도로를 건설한다. 내 능력을 조금은 이해하길 바란다. 정부는 나에게 값진 곳에 능력을 쓰라고 말했다. 정부가 말하는 값진 곳이란 쿠데타가 일어나는 지역이나 테러 우려 장소의 미래 혹은 과거를 봐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이 부질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생각도, 감정도, 그 모든 일의 원인도 모두 보인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한 여성의 이야기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 능력의 시초라고 하니 궁금했다. 그래서 조금 보았을 뿐이다. 얼마나 강인하고 얼마니 정의로우며 또 얼마나 따뜻한 사람일 지 알고 싶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약간 이기적이었고 조금의 동정심은 있었으며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더 확실히 말 할 수 있는건, 현자들은 모두 영웅 같은 게 아니다. 그녀는 아주 많이 외로워했다.] "어쩔까요?" "어쩌긴 뭘 어째. 이건 기밀로 하고 도망간 현자 찾아야지." "그치만 갑자기 현타와서..." "월급은 꽁으로 나오냐? 일 해라." "네."
107 이름없음 2022/09/07 16:44:07 ID : 4NteNxXz9eI 0
남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보라색 하늘과 보라색 땅.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 모든 것은 그의 애인이 준비해둔 것이었다.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자고 있었다. 남자는 끝없는 공간을 천천히 걸었다. 이윽고 다른 사람들과 멀어졌을 때 남자는 팔을 벌렸다. 무언가를 안아주고 있는 듯 이따금 손을 공중에서 천천히 토닥여주었다. 어느새 눈가에는 물줄기 하나가 소리 없이 흘렀다. 남자의 애인은 다들 대단한 사람이었다. 누구는 우주 비행사가 되어 지구의 오염 정도를 무한의 공간에서 관찰했다. 또 다른 누구는 정부가 의뢰한 희귀 식물종을 자신의 꽃집에서 보존했다. 마지막 애인은 마지막 까지 살아남았던 미친 엔지니어 였다. 그들은 모두 남자를 사랑했다. 인류를 위해, 대의를 위해 일하고자 노력했으나 다들 마지막에 살아남는 인간은 남자이길 바랬다. 우주 비행사는 누구보다 먼저 인류가 글러먹었음을 알아채고 가장 친환경적인 사람에게 남자를 맡겼다. 희귀 식물들을 돌보던 꽃집 주인은 살아남은 것들에게 미래가 없음을 깨닫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그에게 남자를 맡겼다. 그는 남는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음을 알았지만 남자가 없는 세상이야 말로 종말이라고 생각했다 . 그는 세상의 종말을 막겠다는 큰 뜻을 결국 그의 방식대로 이루어냈다. 남자는 팔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몇몇 사람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남자는 궁금했다. 왜 남자가 사랑했던 이들은 여기서 함께 하지 않는지. 그들의 대의란 대체 무엇인지. 하지만 남자는 곧 머리가 아파왔다. 150년 동안 기억을 잃지 않으려, 그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슬슬 정신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남자는 주저 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우주를 아는가...
108 이름없음 2022/09/07 21:52:16 ID : 4NteNxXz9eI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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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이름없음 2022/09/11 11:29:50 ID : 1dDvA6nPhdV 0
나는 포메라니안이 되었다. 어떤 비유가 아니다. 문장 그대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포메라니안은 생각 이상으로 귀여웠고 많은 산책이 필요했으며 똥 냄새가 심했다. 어릴 적 엄마가 강아지 키우면 집에서 냄새 난다고 그랬었는데 이유를 알 것 같다. 것 같다. 예전의 나는 '것 같다.' 는 어미를 많이 썼다. 내 생각에 자신이 없었고 단호해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 충성이나 헌신 같은 미덕들은 신분제 사회를 더 견고히 하기 위해 아래 계급에게 요구하던 미덕 이었다. 한 가지 우스운 건 최고 계급인 군주 조차 보이지 않는 신에게 아랫계급의 미덕을 행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 끊임없이 올라도 결국 복종 밖에 몰랐던 거겠지. 마치 포메라니안 처럼. 애매하게 인간의 탈을 쓰고 어영부영 권리니 의무니 하는 것들을 따질 바에야 포메라니안이 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실제로 내가 포메라니안이 되니 주위의 시선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평가와 비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길거리에서 오줌을 싸도 다들 그냥 지나간다. 난 포메라니안이니까. 처음에는 치와와가 되고 싶었다. 툭 튀어나온 눈, 작은 몸집, 더러운 성질머리.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고도 비만이었고 소심했으며 눈도 작았다. 포메라니안은 그래도 성공했으니 뭐. 상관없다. 사실 상관 있다. 나는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강아지들의 분리불안인 걸까? 하지만 나에게는 주인님이 없다. 그러니 이 외로움이 해소될 일은 영원히 없다. 모든 것이 낯설다. 아까까지 누워있던 침대도 멀쩡하게 돌아가던 세탁기도 전부 낯설어서 미칠 것만 같다. 지킬 것이 없는 강아지는 무력하다. 그래서 나는 무력감과 불안감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생각했더니 길게 하울링이라도 뽑고 싶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포메라니안이 되었다.
110 이름없음 2022/09/11 15:32:53 ID : urgjg4ZeE4L 0
내일, 그리고 내일, 또다시 내일도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하루하루 더딘 걸음으로 기어가누나. 우리의 어제는 어리석은 자에게 보여준다 우리 모두 죽어 먼지로 돌아감을.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그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대며 종종대며 걸어다니지만 얼마 안가 잊히고 마는 불행한 배우일 뿐.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리와 분노로 가득차 있지만 결국 아무 의미도 없도다. -맥베스
111 이름없음 2022/09/12 02:45:00 ID : 1dDvA6nPhdV 0
인간이 커다랗게 표현되는 재앙도 좋지... 아무리 인간중심작 사고를 탈피한다고 하더라도 그 시도도 결국 인간이 하니까... 언젠가는 마지막 인간이 죽겠지. 크으으.. 오늘 밤은 이거다... 점이 많은 건... 오래된 친구를 잃었기 때문... 맥베스!! 좋아해ㅠㅠㅠㅠㅠ 4대 비극 들어가나? 크으ㅠㅠ 파멸로 향하는 선택들이 눈에 보이지만 그 선택의 이유가 타당...보다 뭔가 납득간다는 점에서 더 비극적인 그런게 있어... 다음에는 레스주 글도 읽고 십당
112 이름없음 2022/09/13 02:10:04 ID : 4NteNxXz9eI 0
[수원지의 근원에서 뽑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한 청정 암반수] [당신만 몰랐습니다. 상쾌한 공기는 상쾌한 하루를 만드니까요. 남들과는 다른 3중 초나노 필터] [전염병, 해충, 다음은 방사선이다! 우리 집은 방사선으로 부터 안전합니까? 나노 강화 유리창이 지킵니다!] [아무리 막아도 햇빛은 안심할 수 없으니까. 오존층의 원리를 완벽히 재현한 단 하나 뿐인 암막 커튼.] [우리 아이가 먹잖아요! 3번의 오염 테스트를 걸쳐 엄선한 직원들의 세포로만 만듭니다.] [마감임박! 남은 자리는 단 10석.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을 지구에 간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입니다.]
113 이름없음 2022/09/14 01:43:08 ID : 4NteNxXz9eI 0
지구는 사실 평평하다. 둥글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꾸 위성 사진이니 밑바닥 부터 사라지는 돛단배니 그럴듯한 위증을 들고 온다. 나는 잠자코 들어준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은 멋져 보인다. 하지만 절대 그것을 믿지는 않는다. 나에게 위증을 들이미는 그들에게 한 마디만 하면 결국 꼬리를 말고 도망가기 때문이다. 직접 봤습니까? 아뇨, 플라스틱 구형 덩어리 말고요. 그러니까 교과서에 인쇄된 잉크 혼합물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놀랄지도 모르지만 저는 직접 봤습니다. 네. 지구는 틀림없이 평평합니다. 그들은 나를 동정하거나 진절머리 난다는 티를 잔뜩 내며 돌아간다. 그러면 나는 방금의 언쟁으로 잠깐 열이 올랐던 머리를 식히며 지구를 떠올린다. 고질적으로 앓고 있던 우울증이 악화되던 그 날 새벽. 나는 잠기지 않은 상가 옥상으로 향했다.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두고 난간에 아슬하게 올라섰다. 그대로 도약하려던 찰나 나는 다시 바닥으로 엎어졌다. 그러니까, 옥상의 바닥 말이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지구였다. 평평한 지구. 다정하게 나를 감싸안고 부드럽게 떨어뜨린 지구. 뒤로 넘어진 것이 아니다. 겁이 나서 관둔 것도 아니었다. 평평한 지구를 알게 된 그 때,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지구는 평평하다. 겪지 않은 당신들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무지한 당신들을 위해 친절히 진실을 적는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듯 알기 쉽게 신중히 단어들을 선택한다. 당신들은 이런 나의 수고와 지구를 모른다. 그러니까, 지구본 말고.
114 이름없음 2022/09/20 03:12:01 ID : 2NAi9AoY07g 0
감탄... 늘 새롭고 짜릿해
115 이름없음 2022/09/20 11:23:15 ID : 3yL9js5TSMn 0
스레주 글 너무 좋다
116 이름없음 2022/09/27 23:47:13 ID : 4NteNxXz9eI 0
"상상해보십시오. 당신의 눈 앞에는 두 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인류의 문명만을 파괴합니다. 그들은 한 순간에 정치, 경제, 군사, 과학, 인문, 철학, 종교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돈은 휴지 조각이 될 것이고 위대한 문화유산들은 이상하게 생긴 바위와 나무덩이가 되겠죠. 그들이 지켜온 신념은 증발할 것이고 눈부신 기술들은 없던 일이 됩니다. 음, 파란색 버튼 정도로 할까요? 하나는 빨간색 버튼이라고 하겠습니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제가 너무 편파적으로 설명한다고 느끼시나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확실히 모든 인간이 죽는다면 너무 슬프겠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지켜왔던 것들, 이룩해온 것들, 그리고 꼭 남겨야만 하는 것들은 건재합니다. 언젠가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다 삐끗하고, 그 삐끗들이 모여 새로운 인류를 만들 때까지요. 어떤가요? 당신이라면 어떤 버튼을 누르겠습니까? 아마 당신이 누군가냐에 따라 버튼들은 다른 식으로 들리겠지요. 누군가는 빨간 버튼을 '모든 인류를 죽이는 버튼' 이라고 소개할 것이고, 누군가는 파란 버튼을 '모든 문명을 파괴하는 버튼' 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인류의 목표가, 번성하는 이유가, 다른 모든 것을 파괴해서라도 남겨야 했던 가치가 오로지 생존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의 논쟁입니다. 저는 우연히 파란 버튼을 '모든 문명을 파괴하는 버튼' 이라고 소개 받았을 뿐입니다." "지구 담당자님의 최후 변론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임원진 분들의 투표에 따라 '지구 내 전 지적 생명체 소멸 사건"의 징계는 그대로 진해될 것 같습니다." "아, 이게 안 통하네."
117 이름없음 2022/09/28 17:00:26 ID : 4NteNxXz9eI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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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이름없음 2022/09/30 22:39:20 ID : 4NteNxXz9eI 0
우주는 더럽게 넓으니까, 심지어 계속 커지고 있으니까 외계인은 있고 어쩌면 신도 있을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를 만드는 미친 과학자도 태어날 것이다. 세상이 모두 죽지 못하는 날이 왔을 때 온전히 살아간 여자애도 있고 그 외로움을 엿본 사람도 있다. 가만히 누워서 지식을 얻는 독약도 만들어질 테고 그걸 자식에게 먹이는 엄마들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여전히 서로를 마음 깊이 사랑할 것이다. 어리석은 필멸자와 그 필멸자를 사랑한 어리석은 행성도 있겠고 실질적 종말은 오지 않았지만 지켜온 가치가 부서져 영원히 잠겨버린 두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모든 지능이 사라진 별에서 생각하기 시작한 인공지능과 무수히 많은 다른 삶을 거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도 다시 태어날 것이다. 아직도 졸업을 못한 미래의 대학원생 두 명과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한 애인 세 명과 어른이 되지 못해 강아지가 되고 싶은 아이와 묘하게 신념을 가지고 있는 테러리스트도 공기를 폐에 집어넣었다 빼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누군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한 그들은 더럽게 큰 우주의 귀퉁이를 차지할 것이다.
119 이름없음 2022/10/04 18:11:47 ID : 4NteNxXz9eI 0
미안해. 할머니는 항상 내 말만 들었었지. 내가 조금만 떼를 쓰면 그게 맞다고 나를 다독여줬었지. 한글을 못 배워서 나한테 그림책 읽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내가 할머니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그 시간이 더 좋았어. 나도 한글을 잘 몰라 대충 이야기를 지어내도 모른 척 들어주던 할머니가 더 좋았어.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망치를 쥐고 할머니의 마음에 구멍을 뚫었지. 시험이 끝나고 저녁도 거르고 자던 손녀를 부드럽게 흔들어 깨워서 계란말이랑 깻잎 김치랑 스팸을 구워 먹이고 다시 재울 때, 혼자 그 새벽에 서서 시끄러울까봐 물도 작게 틀고 설거지를 할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쩌면 뿌듯했을지도 모르겠어. 할머니는 당연하단 듯이 평생을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지. 다른 집 할머니는 돌아가셔도 우리 할머니는 계속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 할머니도 할머니였던 거지. 손이쪼그라들고하얀반점이올라오고흰머리가늘어나고다리는내말을듣지않고하루종일누워서창밖만바라보다가때되면나오는병원밥을먹고가끔찾아오는손녀자식과핏덩이를떠넘기고도망갔던아들자식이오는날이면최대한즐겁다는듯이웃으며맞이하다가점점줄어드는호흡을느끼며아프지만아프지않은죽음을맞이한뒤3일을좁은나무상자에누워있다가뼛가루만남기고연기가되어올라갈때그리고먼저묻혀있던남편의옆에묻힐때앞에는좋아하던철쭉나무한그루가심어질때 얼마나 외로웠어. 얼마나 아팠어. 의외로 홀가분했어? 나는 속이 시원했어. 할머니는 어디론가 가버렸으니 이제 할머니가 남긴 것들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잖아. 할머니가 짊어졌던 걱정과 그리움과 애정은 이제 내가 가지게 되었으니까 차라리 그게 나아. 보고싶어.
120 이름없음 2022/10/05 00:45:32 ID : 4NteNxXz9eI 0
네모 반듯한 세상에서 우리는 하필 둥글어서 둥그러지게 잘 태어나 세상살이를 오래 하면 자꾸 반듯해지나 보다
121 이름없음 2022/10/06 22:14:53 ID : 4NteNxXz9eI 0
"오늘은 좀 어떠세요?" "저는 오늘 당신을 봐서 기분이 좋아요." "하하. 입 바른 말이라도 고마워요." "고마워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 역할인 걸요." "역할에 대해 검색합니다." "검색을 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그렇게 거창한 일도 아닌걸요." "러케 곱창에 대해 검색합니다." "리케가 창에 대해 검색합니다." "니께가 찬에 대해 검색합니다." "검색 결과 살아있지 않습니다."
122 이름없음 2022/10/07 17:45:21 ID : 41vhf9dwpO5 0
마녀들은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유목민처럼 세계를 떠돌아다녀, 아침은 나이로비, 점심때는 뭄바이. 해가 질 때쯤 시애틀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당신이 눈썰미가 있다면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신체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안면부에 두 개 달린 공, 그리고 뇌로 이어진 실들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혹시 마녀신가요?" 당신이 마녀를 한 눈에 알아보고, 가슴 속에 기름칠한 스피너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은 것을 느꼈다 가정해 보자. 그러면 가능한 답변은 둘밖에 없다. "네, 맞습니다. 7026 소속 이정희입니다. 인터뷰 의향이 있으시면 Leejung@witchwitchwitch.kr.이나 010-ㅇㅇㅇㅇ-ㅇㅇㅇㅇ으로 연락 주세요." "저... 스마트폰이 아직 없는데.. 나중에 전화해도 돼요? 5학년 되면 사준댔어요." 첫 번째는, 영혼이 가벼워 지구의 중력에 얽매이지 않고, 어리어 현실을 바라보지 않는 경우. "네, 저희는 오전 1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연중무후 사시사철 응답합니다.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편지는 안 돼요?" 두 번째는, 그들과 같은 사고방식, 그들과 같은 힘, 그들과 같은 시야를 가진 경우. "현재 편지는 받고 있지 않습니다. 직접 방문을 더 추천드립니다. 주소는..." "제 마음 속?"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123 이름없음 2022/10/10 17:31:43 ID : 4NteNxXz9eI 0
혹시 마녀 걍 외모만 보면 라틴계 미국인에 갈색 긴 생머리에 흑안이니? 이제 당신은 한국인 혼혈 이민자 해도 돼? 이제 당신이 어릴 때부터 마녀 동경해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여러 판타지 사건에 휘말리고 마녀는 첨엔 귀찮아하다가 서로 유대감도 쌓고 서로가 소중해지고 유사 가족하는 그런 거야? 결말은 마녀가 당신 때문에 영원의 삶을 포기하고 뭐시기 해도 돼? 그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우당퉁탕 일상으로 돌아가는 반쯤 열린 결말 해도 돼? 마녀도 나오고 수인도 나오고 인수도 나오고 엘프도 나오는데 배경은 현대 미국이어도 돼? 이제 연재해주면 안돼?
124 이름없음 2022/10/12 21:16:19 ID : 4NteNxXz9eI 0
님들 그거 아시나요. 사실 지구 안쪽은 텅텅 비어 있어요. 그리고 그 속을 계속 내려가면 작은 지구가 또 있는 거에요. 이곳에는 인간이랑 비슷한 생명체들이 문명을 이루고 살고 있어요. 여기서는 수소수가 숙변을 제거해요. 사과는 꼭 아침에만 먹어야 하고 꽃집 주인은 좋은 말만 써야해서 인기가 많아요. 음이온이 방출되는 자수정이 다이아 보다 비싸요. 전자레인지는 암을 유발하기 때문에 전부 폐기 처분 됐다니까요. 우습나요. 다들 그러더라고요. 유사과학이라고. 근데 저는 믿어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이 믿는 건 진짜 과학인가요. 지구의 땅이 층으로 갈라져 있다는게 정말일까요. 어느 지점부터 멘틀이고 또 어디부터 내핵인가요. 거기까지 판 사람이 있나요. 과학자들이 밝혀냈죠. 그들은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고 사실과 이미 명확해진 법칙에 입각하고 있어요. 그럼 님은 뭔가요. 다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따라간 거 아닌가요. 교과서에 적혀있으니 그냥 외운 거 아닐까요. 님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한 것들이 몇이나 될까요. 아, 네.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죠. 당신이 선택한 학교요. 왜 선택하셨어요. 그렇군요. 그렇게 "들으"셨군요. 님이 고른 연애 말이죠. 네, 그런 가치들이 좋다고 "배우"셨군요. 직장도, 가치도, 성격도 님의 것이라고요. 뭐, 그렇게 "믿으"세요.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여기는 지구의 안쪽이에요. 우주요? 네, 뭐, 넓겠죠. 지구의 안쪽인 만큼. 달이요. 예쁘죠. 지구의 암석이니까요. 님은 좀 추하죠. 다들 그래요. 저도 포함된다고요? 당연하죠. 아니라고 할 줄 알았나봐요? 님들 그거 아시나요. 님들은 사실 인간이 아니에요.
125 이름없음 2022/10/14 22:50:23 ID : 4NteNxXz9eI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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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클리셰 2022/10/17 18:11:46 ID : 4NteNxXz9eI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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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이름없음 2022/10/17 20:10:56 ID : jjs6Y9zcJWn 0
정말로 끝내주는 이야기야...하...😭
128 이름없음 2022/10/19 19:16:40 ID : 41vhf9dwpO5 0
라셀리아 유디스는 도망쳤다. 라셀리아는 빙의자였다. 남주들은 빙의자에게 집착한다. 라셀리아는 자신의 도망 끝에 무엇이 위치할지 알고 있었다. 남주가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고 둘은 사랑에 빠질 것이다. 애초에 그 소설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 악녀가 불쌍하고 여주와 남주는 쌍으로 대가리가 빈, 회귀도 빙의도 환생도 없는 로판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 물구나무서기 하면서 봐도 악녀 빙의자를 위해 만들어진 세계 아닌가. 라셀리아는 시골집 벽난로 앞 흔들의자에 앉아 그리 생각한다. 남주들은 언제 올까. 그들의 이름은 라셀리아에게 불쾌함을 주므로 라셀리아는 언제나 남주라고, 남주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을 부르면 살아있는 사람이 되니까. 남주들이 왔다. 라셀리아는 순순히 따라갈 생각이 없었고 남주들을 다 이길 무력도 있었다. 요새 독자들은 짱짱 센언니 여주를 좋아하지, 라셀리아가 마법 주문을 영창한다. 하지만... 하지만, 생각해 보라. 라셀리아는 자신이 남주를 자의지로 따라갈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마법이 무슨 소용일까. 라셀리아의 손목을 잡으려던 섭남1이자 둘짜 황자에게 쏟아진 물벼락이 그보단 쓸모 있지 않을까. 라셀리아는 후드를 뒤집어쓴 여자, 늪지대에 사는 마녀, 구름과 함께 여행하고 솥으로 영원을 끓인다는 이를 바라본다. 후드가 벗겨지고 여자의 얼굴이 드러나자 라셀리아는 불현듯이 생각한다. 당신이 이 세계의 두 번째 여주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라셀리아는, 아니, 온여름은 GL 웹소를 읽어본 적이 있었다: 제발 나를 저 남자들에게서 구원하고 내 정신을 회복시키고 나를 사랑하고 내게서 사랑받지 말아줘. 늪의 마녀는 몇 마디 걱정하는 말을 하더니, 전투의 여파로 난장판이 된 마당을 치워주겠다고 나선다. 그 다정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한때는 온여름이었고 지금은 라셀리아인 소설 속 여주인공이 독백한다: 온여름이라는 인소식 이름을 가진 여자애가 트럭에 치여 죽고 웹소 속으로 빙의한다면, 누구나 다 그 애가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거야. 그래도 라셀리아는 늪의 마녀를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오늘만큼은 소설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그렇게 나쁜 기분이 아니다.
129 클리셰2 2022/10/21 00:15:57 ID : 4NteNxXz9eI 0
130 클리셰 최종장 2022/10/21 15:46:32 ID : 6i5SNAmK5e2 0
독재가 익숙한 나라가 있었다. 사람들은 정치보다 야구와 오락, 예능에 대해 더 떠들고 다녔다. 독재자가 죽고 무기들이 터져도 시간이 지나면 폭력의 잔해들은 다시 끈적이며 나라를 뒤덮었다. 아이는 인심 좋은 독신 아줌마의 손에 자라났다. 첫 아이를 유산하고 남편을 전쟁으로 잃은 외로운 사람이었다. 외로웠던 아줌마는 혼자가 된 아이를 기꺼이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었다. 아이는 아줌마의 사랑과 헌신을 받으며 먹고 자고 입었다. 그러나 그 중간 중간 아이는 문득 자신의 영웅이 떠올랐다. 반역자로 전국민이 욕하며 무덤 조차 남기지 못한 영웅이. 아줌마는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살았다. 도박과 매춘을 그만두고 식당의 종업원으로 일했다. 나중에는 영업이 끝나면 부랑자들을 위해 남은 식재료로 공짜 밥을 만들어 내놓는 작지만 행복한 가게도 열었다. 그리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독립도 시켜주었다. 아이는 아줌마를 사랑했다. 허나 아이가 사랑한 것은 아줌마 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평화를 사랑했다. 국민들을 사랑했고 바람과 비와 구운 햄을 사랑했다. 아이는 이 나라를 사랑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아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동기들은 야구와 오락, 예능 이야기를 하며 낄낄 댔으나 아이는 그 외의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국가의 강제 징집에 끌려갔다 돌아오지 못한 광부나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 지도자 선출 투표에 대해 떠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이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었다. 아이의 괴짜로 통하는 친구는 언제나 화나 있었다. 커다란 확성기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광장이든 상점가든 사람이 모이는 곳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친구 혼자 였지만 자츰 친구를 중심으로 노숙자, 고아, 참전 용사들이 모였다. 아이는 그 모습도 사랑했다. 평소처럼 친구의 시위 종료 시간에 맞춰 술집에 가기로 했던 아이는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가 마주한 것은 얼굴이 완전히 뭉개진 채 군인에게 끌려가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친구를 쫓아갔다. 군인에게 친구는 죄를 짓지 않았고 해당 시위도 불법이 아님을 설명했다. 군인은 아이의 말을 듣지도 않고 아이를 거칠게 밀쳤다. 가로등에 뒷통수를 부딪힌 아이는 광장에 아무도 없어질 때까지 기절했다. 아이는 학교에 가면서 모두가 친구의 일을 말할 거라 생각했다. 그건 잘못된 예측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야구, 오락, 예능을 염불처럼 외웠다. 아이는 절망했다. 당장이라도 정부 관저에 폭탄을 던지고 지나가는 고위 관료들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친구의 친구들을 통해 테러 용품의 정보를 얻던 중 아이는 다시 자신의 영웅이 떠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실 아이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후로 아이는 차분히 설명했다. 야구, 오락, 예능이 아니라 정치와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해 쉽고 다정하게 모두를 향해 말했다.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감옥은 이미 4번 정도 다녀온 후였고 아줌마의 늙은 손과 눈물이 자꾸 아른거렸다. 그래도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를 바보 취급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아이가 말하는 평화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독재가 익숙했던 나라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던 국민도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잘못을 깨닫고 기꺼이 싸웠다. 그리고 그 중 단 한명은 이 모든 것을 사랑했다. 사랑은 의외로 전염성이 강했기에 나라 전체는 그 한 명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기꺼이 모두의 사랑을 받았고 사람들은 아이를 이렇게 기억했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최초의 민주적 정권의 지도자라고.
131 판타지 클리셰 2022/10/21 17:27:37 ID : 6i5SNAmK5e2 0
인간답게 살아라.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 말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 사람이 누우면 다른 사람은 새우잠을 자야하는 단칸방에 어머니는 도망가시고 아버지는 용병 잡일로 얻은 병으로 누워 있어야만 하는 생활이었다.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었다. 계집애가 허리 굽히고 사는 거 아니다. 허리 펴고 가슴 펴고 그렇게 살아라. 아버지는 늘 입만 사셨다. 안타깝게도 나는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며 허리를 피는 날 보다 굽신거리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눈물이 마르지 못한 눈으로 약값 영수증의 숫자를 읽어야만 했다. 사채업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엉망진창인 얼굴로 싹싹 빌었다. 인간답게 살아라. 인간답게의 의미를 알지 못했으니 뒤엣말 이라도 아버지의 말씀을 지켜야 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사채업자들은 나를 노예상에게 팔았고 노예상은 나를 용병단에 팔았다. 말이 좋아 용병단이지 납치, 감금, 암살 등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깡패 소굴이었다. 나는 그 더러운 소굴을 청소하고 밥을 짓고 온갖 잡일을 도맡았다. 쉬는 시간 따윈 없었고 모두가 먹고 남긴 밥을 먹어야 했다. 그마저도 없는 날이 허다했다. 잠은 창고 구석에서 지푸라기를 베고 잤다. 인간답게인진 몰라도 어쨌든 나는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용병단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요즘 일거리가 끊겨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 여파인 것 같았다. 단장은 나를 깨끗하게 씻기라고 명령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반항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살아야 했다. 그러니 얌전히 명령에 응하려고 했다. 그러나 따뜻한 물이 몸을 적실 때, 그리고 그들이 나를 중요한 손님이 있는 방으로 데려갈 때. 돌연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던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이미 도망치고 있었다. 비싸다는 요검 한 자루를 팔 생각으로 들고 숲속을 헤치며 달아났다. 인간답게, 인간답게, 인간답게. 그러나 나는 약했고 결국 낭떠러지 앞에서 포위당했다. 그 날처럼 무릎을 꿇고 싹싹 빌까. 저들은 여자의 몸이 필요하니 살려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발목에 힘을 주고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계집애가 허리 굽히며 사는 거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가슴을 폈다. 삶의 마지막에 와서야 겨우 인간답게 살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때였다. 주위가 깜깜해지더니 웬 빛 하나가 눈 잎에서 아른거렸다. 내가 용병단에서 훔친, 마족의 힘이 깃들어 웬만한 인간은 휘두르는 동시에 미쳐버린다던 검이었다. 그 검은 내 머릿속에 웅웅 거리며 물어왔다. 너의 소원을 말해라. 너의 영혼을 담보로 이루어질 소원을.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 영혼을? 악마와 계약한 자는 국법에 의해 사형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있어도 나는 죽을 예정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허리 펴고 가슴 펴고 꿋꿋하게, 인간답게 살고 싶어."
132 이름없음 2022/10/21 21:28:23 ID : 4NteNxXz9eI 0
오 로판이다 나 로판 잘 못 써서 로판 장르 쓰는 사람 너무 좋아해... 로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쓰는 사람들을 사랑해... 냅다 고백 갈겨서 먄. 어미를 과거형으로 했다가 현재형으로 한 이유가 멀가. 쥔공의 의지가 섞이면 과거형, 아니면 현재형일까. 머가 됐든 맛도리 지엘 로판 써줘서 그저 압도적 감사. 둘이 사궈.
133 고전 클리셰 뇌절 2022/10/21 21:53:27 ID : 4NteNxXz9eI 0
크와아앙. 짱 쎈 투명 드래곤이 울부지젔따. 짱짱쎈 투명 드래곤의 울음소리는 초 강력했기에 들을 수 있는 자가 업섯다. 투명드래곤이 날아오르면 모두다 날라갓따. 그래서 투명 드래곤은 늘 외로웠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혼자였다. 부모 조차 만날 수가 없었다. 신이 드래곤 장로에게 일러둔 대로, 그는 철저히 격리되어 홀로 자라나게 되었다. 그는 종종 강렬한 어떤 욕구를 느꼈는데 이는 고스란히 그의 힘이 되었다. 아주 아프고 슬픈 힘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투명 드래곤은 존재만으로 드래곤 종족을 현존하는 종족들의 위에 군림하게 만들었다. 그의 울부짖음은 아무도 들을 수 없었지만 어떠한 위압감이나 힘의 파동은 대륙 반대쪽에 위치한 풀벌레 마저도 느낄 수 있었다. 투명 드래곤은 점점 감정이 사라졌다.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걸 능가하는 강한 힘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드래곤들의 횡포는 날로 심해졌다. 매년 자신들을 숭배하는 제사를 지내라고 강요하더니 마음에 안들면 왕의 딸이건 황태자이건 죽여버렸다. 타종족들을 쓰레기 보듯 보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다. 자신의 누이가 드래곤의 앞 길을 막았다는 이유로 갈갈이 찢겨지는 모습을 보고 왕자는 투명 드래곤을 죽여야 겠다고 다짐했다. 왕자는 물도 마시지 않고 자신을 갈고 닦았다.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고전에나 등장한다는 드래곤 슬레이어라 자신을 칭하며 도가 지나치는 드래곤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이는 투명 드래곤의 귀에도 들어갔다. 투명 드래곤은 한숨을 쉬며 왕자를, 아니 드래곤 슬레이어를 찾아갔다. 어차피 이 자도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다. 크와아앙 투명 드래곤은 습관처럼 울부짖었다. 바로 그 때, 드래곤 슬레이어와 눈이 마주쳤다. "거기구나, 투명 드래곤!" 드래곤 슬레이어는 곧 바로 자신에게 달려와 오른 앞 발을 베어냈다. 아팠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투명 드래곤은 가슴이 묘하게 벅차올랐다. 피가 흐르는 자신의 앞 발을 보며 투명 드래곤은 그제야 자신이 느꼈던 욕구가 충족되어감을 느꼈다. 그건 살아있다는, 살아서 자국을 남긴다는 것으로 부터 오는 희열이었다. 드래곤 슬레이어와 투명 드래곤의 싸움은 일주일간 계속 되었다. 결국 투명 드래곤의 심장으로 드래곤 슬레이어의 검이 파고 들었다. 투명 드래곤은 기쁘게 그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를 가엾게 여긴 신은 투명 드래곤을 위해 한 가지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렇게 투명 드래곤의 존재는 활자가 되어 이 세상에 자국을 남기게 되었다.
134 이름없음 2022/10/22 03:25:09 ID : 4NteNxXz9eI 0
>>인간은 작고 우주는 넓고 먼지는 눈에 안 보이도록 작다. >>가끔 생각한다. 문학이 예술일까. 그렇다면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뭘까. >>아 알겠다. 우주는 먼지보다 작다. >>"아기 신발 팝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음." >>쪼개고 더 쪼개고 완전히 가루가 될 만큼 쪼개고 싶다. >>교수님은 뭘까. 종강은 뭘까. >>작아지고 싶다. 은유가 아니라 진짜 작아지고 싶다. 물리적인 의미인지 화학적인 의미인지 위상수학적 의미인 지는 아직 안 정했다. >>진짜 사람이 살았을까. >>고사리가 되고 싶다. 씻지 않아도 냄새나지 않는 몸을 가지고 싶다. >>일어나기 싫다. 1년 쯤은 침대에 누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여전히 모르겠다. 여기에 글을 쓰면 어딘가로 보내지긴 하는 걸까. 누군가 읽긴 하는 걸까. 그렇다면 말해두겠다. 나는 3년 째 생존하고 있고 여기에 살아 움직이는 인간은 나뿐이다. 자세한 주소는 [데이터 초과로 수신에 실패했습니다.]
135 이름없음 2022/10/29 23:26:31 ID : 4NteNxXz9eI 0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대치 상황 속 장군은 패배를 직감했다. 그건 수 백의 수라장을 돌격하며 얻은 어떠한 본능이었다. 장군은 고민했다. 후퇴한다면 이들은 모두 반역자가 될 것이고 여기 남는다면 이들은 죽거나 죽음 보다 두려운 수치심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었다. 장군은 고민했다. 혼자만의 목숨이라면 전장에서 죽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매일 같이 노모에게 안부 편지를 쓰는 병사, 전쟁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바다를 보여줄거라는 군사, 굳이 목숨 걸고 편지들과 식량을 들고 오가지않아도 괜찮으련만 자신들은 장사치라 이익밖에 모른다며 웃는 보부상들. 이들의 목숨이 장군의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장군은 고민하다 자신의 부하를 불러 은밀히 명을 전하였다. 모두 퇴각하라. 저들은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각자의 보잘것 없는 명줄을 그러쥐고 최대한 비굴하게 도망가라. 부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러가자 장군은 홀로 갑옷을 갖추어 입었다. 마지막으로 투구를 쓴 장군은 막사를 나섰다. 이튿날, 부하는 병사들을 모아놓고 장군의 명을 전하였다. 병사들은 부하에게 반발하며 외쳤다. 더 싸울 수 있습니다, 저들의 더러운 발이 조국을 밟게 할 수 없습니다, 지켜야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부하는 병사들의 외침에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 장군을 대신해 외쳤다. 전군 돌격하라. 병사들은 일제히 무장을 갖추고 적진으로 달려나갔다. 이길 수 없는 전투라면 조금이라도 저들을 주춤하게 만들고 목숨을 버리자.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나라를, 사랑하는 이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지키자. 지키다가 죽어버려도 괜찮으니 돌격하자. 그러나 적진 앞에 도착한 병사와 부하들은 다시 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장군은 간 밤 사이 자신의 목을 담보로 휴전을 제안했다. 장군의 기개를 높이 산 적군은 장군의 제안을 받아드렸고 마침 철수하려던 참이었다. 장군의 목 앞에 무릎 꿇고 울음을 토하던 부하에게 적군이 장군의 마지막 명령을 전하였다. 부하는 눈물을 닦고 전군을 퇴각시켰다. 그들의 명줄을 그러쥐고 최대한 가슴을 펴고 떳떳하게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갔다. 장군의 목이 없는 시체를 화장시키고 나라의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당장의 위험이 사라진 것에 안도하며 군사력을 더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노모는 아들이 손주를 품에 안겨줄 때까지 건강하게 살다 행복하게 돌아가셨다. 아이들은 바다의 물이 짜다는 것과 바다란 아주 많은 물이 넘실거리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장사치라고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은 은근슬쩍 다른 손가락질의 대상을 찾아 떠났다. 부하는 목이 없는 장군의 무덤가에 앉아 장군의 마지막 명령을 떠올렸다. "전군 각자의 전장으로 돌아가라."
136 이름없음 2022/10/31 02:40:55 ID : 4NteNxXz9eI 0
나는 여자가 싫어. 한 달 마다 피가 나오잖아? 너무 불쾌해. 솔직히 찝찝하기도 하고. 근육이 잘 안 붙는 것도 멍청해 보여. 그래서 그런가 게을러 보이더라고. 한 번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까 진짜 걷잡을 수가 없는 거 있지? 밥을 먹는 걸 봐도 왜 저렇게 먹나 싶고 남자들 보다 조금 먹어도 될 것 같은데 꾸역꾸역 다 먹는게 미련하고 욕심 많아 보여. 응? 에이 아니지. 인간 한정이지 그럼. 강아지나 고양이는 솔직히 발정기 아니면 여자 남자 구분 못 해. 그냥 그래. 아무 여자나 봐도 다 그래. 다. 게으르고, 미련하고, 착각일 수도 있는데 멍청하더라. 확실히 배우는게 느리다고 해야 하나. 보람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응. 그니까 너도 이왕 키울거면 남자로 키워.
137 이름없음 2022/11/01 02:27:32 ID : 2NAi9AoY07g 0
막줄ㄷㄷ
138 여름이었다. 2022/11/07 01:41:50 ID : 1dDvA6nPhdV 0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신은 꽤나 가벼운 사람이었고 나는 당신의 그 얄팍한 농담들과 진심을 흐리게 하는 장난이 정신 없었다. 어디있든 들려오는 큰 목소리, 툭 치면 쏟아지던 웃음, 자신이 곤란할 때마다 뻔뻔하게 돌아가는 고갯짓.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이 시끄러웠다. 당신이 기억할 지 모르겠다. 그 날은 장마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나는 우산이 없어 모두가 돌아갈 때까지 그저 서있었다. 그때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 뒤로 당신이 다가왔다.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크게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우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비를 맞으며 뛰어갔다. 바짓단은 흙탕물이 잔뜩 튀어 지저분했고 신발이며 양말에 빗물이 흠뻑 스며 걸음이 무거울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게 먹먹했다. 당신은 나와 같이 빗 속을 뛰어줄 테지만 날이 갠다면 기꺼이 다른 이의 어깨에 팔을 두를 것이다. 나는 달랐다. 당신이 함께 뛰어 준다면 머리칼 구석구석 진흙이 스며들어도 흰 양말이 발목까지 얼룩지게 되어도 기꺼이 우산을 버릴 수 있었다. 나는 당신이 함께 뛰어 준 것 만으로도 비가 오면 특별한 추억에 젖는다. 역시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처럼 시끄럽고 뜨거운 것을 품을 수 없었다.
139 가을이었다. 2022/11/07 13:01:03 ID : 1dDvA6nPhdV 0
재미없는 사람. 무슨 말을 해도 언제나 진지하게 듣는 그 사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테지. 아마 내가 우주에서 왔다고 말해도 그 사람은 덜컥 믿어버릴 것이다. 고요한 그 검은 눈동자를 살짝 아래로 깔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슬슬 지루해진 내가 농담이었다고 과장되게 웃으며 옆구리를 찌르면 그제야 농담에는 소질이 없다며 나를 바라보겠지. 그런 사람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하늘이 유독 높았던 날. 구름이 한 점도 깔리지 않아 그대로 멈춰버린 것 같은 푸른색이 내 머리 위에 멤돌던 날.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적당히 붉게 물든 단풍 하나가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어 그 사람의 머리칼을 살짝 털어주었을 때 보고야 말았다. 분명 단풍은 떨어졌을 텐데도 내 눈에는 여전히 강렬한 빨강이 맺혔다. 잔잔한 그 검은 눈동자에 파장을 일으키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리는 일련의 행동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전형과 같았다. 역시 재미 없는 사람. 그 사람은 무엇을 해도 그럴것이다.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같이 있으면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는 그 사람, 무슨 말을 해도 진지하게 마음에 품어버리는 그 사람, 작은 손짓에도 다정하게 돌아보는. 우스웠다. 나는 그 날 온통 무채색인 그 사람에게서 강렬한 색 하나를 찾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너무 다채로워서 오히려 질려버릴 것만 같았다. 재미없는 사람. 언제부터 그런 색을 숨겨두었는지, 나로서는 어찌해도 이해할 수 없을 테지.
140 겨울이었다. 2022/11/07 17:58:52 ID : 1dDvA6nPhdV 0
진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모두 외로워한다. 서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성애자든 양성애자든 무성애자든 다른 성소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생존에 대한 반응이다. 후손을 남기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은 사람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냥 그런 이야기 이다. 한 연인이 있었다. 그렇다고 쳐보자. 그들은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버거워했다. 혹여 서로가 다른 마음일까봐 매일을 초조해하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대기의 이동으로 형성되었을 뿐인 장마전선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 속의 붉은 빛에도 가슴이 저려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즐겼다. 오히려 연인이 되었을 때에도 추억이라며 웃으며 떠들곤 했었다. 그건 사랑 때문이었다. 호르몬의 화학반응에 불과한 일시적인 감정은 강렬한 생체 반응을 촉구했고 편도체를 자극해 모든 순간을 단숨에 장기기억으로 저장했다. 감각기억이나 단기 기억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그렇게 만들었다. 덕분에 그들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로 각인될 수 있었고 그 경험들은 그들의 자아를 만족시켰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 소년만화의 대사가 아니다. 실제로 사람의 연령별로 발달과제가 주어진다. 노년기에도 사람은 발달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성장은 다양한 경험과 정서적 반응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랑은 여러 종류가 있으며 각각의 사랑은 조금씩 다른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다양한 자극은 사람의 성장, 나아가 생존에 필요한 여러 능력들을 자극시킨다. 사람은 그렇게 발달한다. 그런 진부한 이야기이다. 한 연인이 있다고 쳐보자. 그들은 서로를 의식했고, 다른 부분을 가진 상대를 동경했다. 거기에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경험들이 더해져 동경이 성적인 사랑으로 발달했고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강렬한 호르몬의 폭풍 이후 점차 전기 자극들은 잦아들었고 그 공백을 견딜 수 없었던 그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감정이 잦아든 그 순간을 기억할 수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다른 순간들 보다 기억에 남을 확률이 조금 높았다. 서로 갈라서던 그 순간에 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141 봄 없음 2022/11/08 01:43:31 ID : 1dDvA6nPhdV 0
당신에게, 잘 지내시나요. 날이 풀렸지만 바람이 아직은 차갑네요. 주제 넘은 말이지만 감기 조심하세요. 저는 오늘 감피차를 마셨습니다. 겨우내 말려두던 걸 기억하시나요. 결국 잘 마실거면서 걸리적 거린다고 불평해 미안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늘여놓아진 감귤 껍질이 큰 불편을 주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제가 못마땅해 입술을 비죽이셨나요. 왠지 불퉁한 당신의 얼굴이 떠올라 혼자서 조금 웃었습니다. 너무 억울해하진 마세요. 따지고 보면 감귤 껍질을 말리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식어간, 혹은 가라앉은 어떤 것의 처리에 대한 다툼이었습니다. 저는 한 때 당신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숨이 차올랐습니다. 가슴은 뻐근해지고 잠은 좀체 오질 않아 불 꺼진 방 안을 돌다가 간질거리는 문장을 몇 자 적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의 당신이 지금도 좋습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사람은 고여있지 않고 늘 흐르는 성질을 가졌다는 것 입니다. 왜 편지했냐고 화를 낼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와 당신의 마지막이 서로를 비난하고 질책하여 결국 둘 다 울었던 것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따뜻한 감피차에서 당신 향이 피어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신 편지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꽃샘추위인데 항상 따뜻하게 입으세요. 내가.
142 이름없음 2022/11/08 02:13:05 ID : 1dDvA6nPhdV 0
창조주는 생각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답이 없으니 그들에게 벌을 주자고. 그러나 창조주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고민하던 창조주는 여러 사람들을 불러 무서워하는 걸 말하게 했다. "저는 불이 가장 무서워요." 화재보험을 파는 보험 설계사가 말했다. "제일 무서운 건 주인 없는 돈이지, 돈." 유품 정리사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지진이나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해 아닐까요. 신의 분노랑도 어울리고." 모인 사람들의 절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그래도 자연재해는 다 메뉴얼이 있잖아. 운석충돌 쯤은 되어야 혼비백산해서 다 도망다니지 않겠어?" 몇몇을 제외한 사람들이 납득했다. 목소리 큰 몇몇이 운석충돌이 가장 그럴듯 하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운석충돌로 정해지는 듯 했다. 그 때,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제 생각은 다른데요." 아이는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인 사람들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가, 결국 모두가 각자의 무서움에 빠져들었다. 창조주는 턱을 괴고 가만히 그 모든 것을 지켜보다가 모두가 무서워했던 아이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날 이후로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연민하기 시작했다.
143 이름없음 2022/11/08 12:03:37 ID : mmlcsjeHu5V 0
.
144 이름없음 2022/11/08 12:26:22 ID : 2NAi9AoY07g 0
갑자기 끼어들어서 미안. 항상 잘 읽고 있어!!! 궁금한 게 있는데 레주는 뭐하는 사람이야? 글을 왜이렇게 잘써? 혹시 대학원생이야?
145 이름없음 2022/11/08 12:39:21 ID : mmlcsjeHu5V 0
헉 나..?? 나는 대학생이야..! 대학원 가고는 싶지만 글 전공으로는 아니야! 잘 쓴다고 해줘서 고마워ㅠㅠ 내 글이 레더 취향에 잘 맞았나봐 언제나,, 좋은 하루,,^^
146 이름없음 2022/11/08 19:20:09 ID : qo3Rwr803wm 0
너를 좋아했다. 너는 학교에서 소문이 자자했다.한 번 사귀고 버리는 쓰레기라고. 같은 동아리 후배가 엉엉 울길래 물어봤고,소문귀가 어두웠던 나는 그때 널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엔 네가 미웠다.아끼는 후배였고 그렇게 다뤄질 만큼 가치없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였다.너에게 다가간 것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너는 그리 나쁜 이가 아니었다. 외려 계속 스토커에 시달리던 피해자였고,소문도 몇명의 스토커들이 모여 낸 소문이었다. 심지어는 동아리 후배도 스토커였더라지. 배신 당한 듯 기분이 들었다.그 후배와는 연 끊은지 오래다. 너는 자주 웃었다.다갈색 눈이 접히는 것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도 신기했다.입술이 입꼬리를 따라 같이 움직였다. 너와 같이 있는 순간이 행복했다.널 좋아한다 자각한 것은 아마 11월 즈음.널 만난지 1년이 조금 안되던 날이었지. 벚꽃이 머리위로 흩어지는 그 순간.난 기적을 믿을수 있게 되었다. 사귄지 3년째 되던 날.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 같이살래?'라고. 당연히 좋았다. 다만 너는 진심일까..... 내 필력이 딸리는군....이런
147 이름없음 2022/11/08 19:21:43 ID : U2LgmFeJVaq 0
레주 문체 저주토끼 작가님 순한맛 같아 너무 내 취향이야ㅠㅠㅠ
148 이름없음 2022/11/08 21:30:32 ID : 4NteNxXz9eI 0
나도 같이 살래... 밥 조금만 먹을테니까 살게 해주라... 왜? 왜? 진심? 인? 지? 헷갈?려??? 화자가 자존감 낮아서 의심하는 것도 맛도리고 본인이 원래 불순하게 접근해서 죄책감 땜에 완전 행복 연애 못하는 것도 맛도리... 난 호환마마 보다 순애가 더 무섭더라.. 심장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린 것 마냥 아파서...
149 이름없음 2022/11/08 21:34:33 ID : 4NteNxXz9eI 0
원래 부끄러워서 내 글 칭찬하면 혼자 히히 하고 마는데 덕분에 저주토끼라는 내가 읽다가 좋아 뒤집어지는 책을 알려줘서 고맙유ㅓ... 방금도 읽다가 이마 5대 치고 다시 읽고 있어...
150 이름없음 2022/11/09 02:23:17 ID : 2NAi9AoY07g 0
논문 형태 글 보고 감동받음ㅎㅎ 항상 응원할게! 글 많이많이 써주십쇼😍
151 원작있는줄몰랐어진짜야암튼굳 2022/11/10 00:02:56 ID : 4NteNxXz9eI 0
[아니요. 제가 하려던 말은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진부한가요? 네, 뭐, 놀랍지도 않습니다. 다들 비슷하잖아요. 성애적 사랑에 미쳐있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마냥 사랑에 냉소적으로 굴거나. 조금 상스러운 표현을 쓰자면, 멍청해 보여요. 제가 말하는 사랑은 조금 다릅니다. 저의 집에서 클라리스를 발견했을 때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아, 이전의 이름은 제인이었던가요. 어쨌든 불쌍하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셨을 겁니다. 그 작고 연약하며 토할 것 같은 마음. 나와 무관한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려는 의지. 저는 이걸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불쌍한 사람들, 가여운 사람들,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 아 조금 흥분했군요. 미안합니다. 아니요. 아니라고요. 범행 동기나 감형에 대한 말이 아닙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 겁니다.] "이게 한니발 심문한 내용이라고?" "그렇다네. 근데 이걸 뭐하러 민간인한테 공개하냐." "한니발이 직접 피해자들 신원이랑 범행 방법, 동기들 싹 알려줄테니 공개해달라고 했대." "미친놈이네."
152 믹스인지 막스인지... 2022/11/10 00:11:14 ID : 1DumsmMi7hv 0
와!후! 알림 씹혔는데 앵커달렸다고 바로 본 클라쓰 작성자로서 부연 설명을 곁들이자면, 맨 마지막에 기분 물어보는 게 어디 찾아보니까 믹스가 클라리스한테 이상한 짓거리 해서 한니발이 심리? 말?로 스스로 죽게 했다고 되어있드라고 그래서 저렇게 어정쩡한 마무리가...
153 이름없음 2022/11/10 19:02:19 ID : 4NteNxXz9eI 0
[충격]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미녀 아나운서가 눈물을 글썽인 이유 2027-11-10 스레딕 일보 김레주 기자 [스레딕 일보] = 김레주 기자 = 레더 방송사의 9시 뉴스에서 김레더 아나운서가 방송 도중 개인사를 전하여 시청자들이 충격에 빠졌다. 김레더 아나운서는 내일 있을 소행성 충돌의 예상 피해 규모에 대한 소식을 전하던 중 위와 같은 방송 사고를 일으켰다. 현재 해당 방송국으로 9시 뉴스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김레더 아나운서는 스레딕 방송국의 얼굴 마담으로 알려져 있다. 김레더 아나운서의 개인 팬덤은 김레더 아나운서의 사연에 대하여 "얼굴이 너무 예뻐서 작품이 저평가 되었다는 말이 안타까웠다." 는 반응과 "아나운서 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며 이는 사과를 해야 할 일" 이라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참고로 저는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런 연예계 가쉽거리를 짜집기 하는 기자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듣지 못한 것을 들려주는 기자가요. 연예인의 가슴 수술이 아니라 정부의 비인도적인 시위 탄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유튜버와 사귀는 아이돌의 사진이 아니라 산사태에 파묻힌 마을의 피해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소행성 충돌 면적에 완전히 포함된다고 하던데,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분들은 어떻게 잘 피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피하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처음으로 복붙 기사가 아니라 직접 타자를 치며 기사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승인은 무조건 난다고 하더라고요. 승인해줄 대표님이 다른 나라에 가셔서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저는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김레주 기자(kimreporter12@qwerty.co.kr)
154 이름없음 2022/11/11 21:56:02 ID : 4NteNxXz9eI 0
[우리는 모두 별의 자식들이야. 너는 별의 재료들로 만들어졌어. 당신이 나에게 닿았던 시간들. 그 찰나를 모아서 영원이라고 합니다. 너의 파멸을 바란다. 차가운 허무함의 늪에 영영 가라앉기를 그린다. 나는 그 밑바닥에서 너의 손을 단단히 잡아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이요. 잘 모르겠습니다. 포옹과 입맞춤과 손길이요. 글쎄요. 그래도 꽃잎과 은하수와 팝콘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그 날 우리는 블랙홀로 들어갔다. 울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따뜻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잠드는 것, 품 속으로 애처롭게 파고드는 것, 허브의 종류를 외워버린 것.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 우리는 그걸 온기라고 말해. 너는 끝까지 나를 보지 않았다. 그저 너는 천천히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주었다. 그래, 너는 나를 제대로 봐주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죽어버리겠지. 우리가 없어도 사랑은 살아갈테지.]
155 이름없음 2022/11/11 22:12:46 ID : 4NteNxXz9eI 0
당신의 손을 잡고, 해가 드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눈을 감아서, 영원히 깨지 않도록 다른 손으로 기도를 하고, 잡았던 손이 놓아지고, 당신이 완전히 증발해버려서, 결국 이 모든 게 나의 꿈이란 걸 깨닫고, 눈꺼풀을 열고, 커튼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멍하니 바라보고, 비척이며 침대에서 일어나고, 커피를 내리고, 식탁에 앉아서, 그냥 앉아서, 잠시 눈을 비비고, 다 내려진 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리모컨을 집어들고, 다시 커피를 마시고, 문득 2인용 소파가 넓어서, 울다가, 흐느끼다가, 소리도 한 번 지르고, 눈물만 떨구다, 울부짖다가, 그러다 다시 울다가, 흐느끼다가, 바닥에 주저 앉아서, 어깨를 들썩이다가, 엎질러진 커피잔을 주워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156 이름없음 2022/11/12 18:00:28 ID : 4NteNxXz9eI 0
교수님, 강의가 너무 깁니다. 기린이 손을 들고 그렇게 말했다. 기린은 참을 만큼 참았던 것이다. 기린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교수님은 말을 끝맺기 전에 선어말 어미를 길게 늘여말했다. 예를 들자면 이렇게 말해앴다. 그 공백이 기린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백만 없더라면, 아무 영혼도 지식도 담겨져 있지 않은 무의미한 시간이 짧게 지나갔다면 이미 강의는 끝나고도 남았을 것만 같았다. 긴 건 학생의 목일세. 교수님은 마이크에 대고 노여워하며 중얼거렸다. 교수님의 입장이 되어보자면, 교수는 기린의 목이 신경쓰여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대학에 다니는 기린이라니 들은 적이 없었다. 기린이면 기린 답게 동물원에나 갈 것이지 기업의 경영 시스템이니 현금 흐름이니 배워봤자 뭘 하겠다는 건지. 동물원으로 돌아가!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한 학문의 권위자 답게 고상하게 윽박질렀다. 아뇨, 긴 건 제 앞 자리 학생의 껌 씹는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한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학생도 참을 수가 없었다. 질겅 질겅 딱. 질겅 질겅 딱. 질겅. 딱. 질겅. 질겅. 묘하게 맞지 않는 규칙성도 짜증났고 기말에 내겠다는 부분에서는 더 열정적으로 씹어대는 것에는 분노마저 치밀어올랐다. 아니요! 저는 제 동기가 짜증납니다. 김치국물 묻은 흰 티 학우분이 거슬려요! 제 사상이 그렇게 빨간가요? 조교님의 과제 코멘트가 짜증납니다. 강의실은 순식간에 불만과 짜증과 불통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혼란스러웠던 교수님은 더듬거리며 수업을 이어가나 싶더니 슬라이드 두 장을 넘기지 못하고 일찍 강의를 끝냈다. 기린은 투덜 거리며 아니 그보다는 다그닥 거리며 집으로 돌아갔고 공대생은 껌을 뱉었으며 4학년 막학기 복학생은 근처 빨래방을 검색했다. 나는 일찍 끝난 수업에 기분이 좋아져 동방에나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157 이름없음 2022/11/12 18:23:06 ID : 1DumsmMi7hv 0
아 쓰고싶어서 눈팅하는데 주제가 안 떠오른다...전에 썼던거 보면 볼수록 아이디어가 사라지는 느낌이야
158 이름없음 2022/11/12 22:10:49 ID : 4NteNxXz9eI 0
써주라........................ 침 흘리면서 기다릴게
159 이름없음 2022/11/13 03:10:08 ID : tzbxxCi4Ny0 0
정신을 차렸을 이미 우리들의 청춘은 검게 물들어있었다. 그는 힘없이 주저앉았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보았다. 단지 바라봤을 뿐인데도 왜인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달빛아래 반짝이는 그의 깊고 푸른 초점없는 눈동자. 그곳엔 더이상 가슴깊이 간직했던 꿈들도 화려하게 불타오르던 우리의 모습도 그리고 닫힌 마음을 간지럽혔던 첫사랑의 설렘도 파도에 떠밀려간 흔적조차 없이.. 그저 바닷가의 모래 알갱이처럼 부딪치고 흩어져 흔적조차 남지기 못한채 산산히 부서져가고만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추억은 산산조각 나버리고 말았다. 작디작은 기억의 파편들을 쏟아내면서..
160 이름없음 2022/11/13 13:49:23 ID : 4NteNxXz9eI 0
[인류는 멸종하지 않는다. 자연재해가 늘어나고 있어도 우리는 쉽게 죽지 않는다. 1920년대에 비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92% 감소했고 식량 생산량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뛰어올랐다. 가라앉는 육지 보다 그 육지를 끌어올리고, 혹은 더 촘촘히 살게 하는 기술이 더 빠르게 떠올랐고 인류의 수는 전에 없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은 생각보다 쓸 데 없다. 천연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을 망가뜨린다. 수 만 마리의 코끼리와 바다 거북과 코뿔소를 살린건 그린피스가 아니라 플라스틱이고 날아가는 새를 두동강 내버리고 야생 동물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은 석유가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이 멸종하리라고 믿는다. 어리석고 합리화하며 이기적인 생물은 꼭 파멸의 길을 걸으리라. 다만 그 방법은 과학적이지 않다. 과학은 인간이 건재하다고 말한다. 바글거리며 이 별에 증식한다고 쉽고 강하게 예측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과학을 버렸다.] "이게 학생이 화학공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하는 이유인가요?" "직원은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건 직원인 것일까. 직원이란 무엇일까. 내가 인식한 이 세상은 전기신호에 의한 자극일 뿐..." "열정은 좋은데, 혹시 학생심리건강 증진 센터 아시나요? 정신과랑 연계해서 잘 해주니까, 철학과 오기 전에 정신과 먼저 들리고 오세요."
161 이름없음 2022/11/13 22:01:04 ID : e7zhtfTRvhe 0
그냥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온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하려고 달려오는 것 같고, 그 날은 나를 힘들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날, 그냥 아무런 말도 안 하고 누군가를 안고 싶은 날, 나의 불행을 팔지 않아도 나의 모든 것들을 이해 받고 싶은 날, 오늘이 그런 날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럴때 마다 너를 원망한다. 나를 일어서게 만들어 놓고, 나를 일으켜 놓고 걸음마를 가르쳐 주지도 않은 채 떠나버린 너를 원망한다. 필요로 할때만 없는 너를 원망한다. 그리고 온갖 이유를 붙어서 너를 원망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 하나에서 나오는 감정 하나로 나는 너를 원망한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162 이름없음 2022/11/14 03:29:26 ID : 4NteNxXz9eI 0
뭔 일이 있었던 걸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잉.... 두 사람의 지독한 인연이 참으로 궁금헌,, 새벽 세 시 입미다,,ㅎㅎ 여러 사건이 생략된 것이 조각글의 묘미제,, 담에도 좋은 글 부탁헙니더 슬푸다,,, 사랑은 자해다,, ㄹㅇ... 먼가 161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다른 맛... 아 근데 시간 순서를 보면 161이 159랑 문체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암튼 읽다가 가슴 찡해지는 글 잘 읽었읍네다.. 새벽에 읽으니 더 좋구만요,,^^ 연애,,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딱히 직접 해보고 싶진 않고 남의 연애가 더 좋더라고요,, 먼가 환상이 깨질 것 같아서 시러요... 그렇지 않나요... 젛아하는 소설의 영화화에 좋다가도 불안하고 섬짓해지는 마음.... 대충 둘 다 대리만족 더 하게 글 많이 서달라는 뜻..^^
163 이름없음 2022/11/14 15:58:48 ID : 4NteNxXz9eI 0
"다음 소식입니다.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발견한 소행성 SRD-2034의 충돌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해당 소행성은 달의 약 23분의 1 크기로 충돌 시 핵폭탄의..." "김 레더 아나운서? 진행하세요." "아, 네. 해당 소행성의 예상 피해 규모는... 그런데 정말 다들 궁금하신가요? 이미 종말 아닌가요? 멀리 피해있다고 해도 충돌의 여파로 생존하기 힘든 상황이 올 거란건 다들 알고 계시지 않나요?" "뭐 하시는 거에요! 얼른 수습해!" "바보 같아요. 네. 시청자 여러분들 말입니다. 더 정확히는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가 멍청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지게 된다고 하던가요? 그렇다면 현정부의 실책들이 다 이해가 가는군요. 여러분들은 뭔가요? 지금 종말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뉴스나 붙잡고 있는 건가요? 저는요,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서 휴가를 냈는데요, 여러분의 손으로 뽑은 높으신 분들이 다 도망가서요,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뭐 해, 카메라 돌려!" "감독님이야 말로 뭐하세요. 다들 도망갔어요. 내일 종말인데 출근한 사람은 저희 밖에 없어요. 아무튼 저는 내일 출발하면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뭉개질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근데 여러분이 너무 형편없이 멍청해서 아나운서가 되버렸어요. 어쩌실래요? 멍청한 여러분은 솔직히 노동법 개정안이 불발 되었다든가 새로운 전기 회사의 도입을 인정하는 법안이 퍼스트트랙에 올랐다든가 떠들어도 제 패션이나 화장, 헤어에만 열광하시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좆 같..." "피곤하신가요? 자도 잔 것 같지가 않다구요? 그렇다면 주목하십시오! 레더환! 이 모든 구성이 18900원!"
164 이름없음 2022/11/16 15:20:35 ID : TO2oGsjba61 0
술탄이 가장 총애하는 여인은 인형이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술탄이 하렘에서 가장 총애하는 것은 인형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 홀연히 하렘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술탄의 가장 아끼는 것이 되었다. 그것이 어떻게 하렘에 들어온 건지 아는 이가 없었다. 혹자는 전리품으로 잡혀 온 여자들 사이에 끼어 들어왔다고 하고, 혹자는 어느 한 여인이 떠돌이 상인에게서 산 것이라 말했다. 나는 어쩌면 그것이 뻔뻔하게 걸어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야 그것은 걸을 수 있는 인형이니까. 말도 하고, 웃기도 하며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럼에도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매끄러운 피부에는 온기 한 점 없었으며 그것의 빼어난 어깨에는 인형극에 쓰이는 관절 인형처럼 선이 여럿 있었다. 그것은 아름답고 매력적이더라도 결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술탄이 가장 총애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처음 술탄의 옆자리에 앉았을 때. 수많은 이들이 그것을 흔한 인형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는 술탄 앞에 무릎을 꿇으며 간청했고, 누군가는 그 인형이 사악한 마녀가 보낸 것이라며 목에 핏줄을 세웠다. 그리고 술탄은 그들의 목을 쳐냈다. 발리데 술탄이 없는 하렘에서 술탄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죽음과 권력 앞에 사람들은 금세 조용해졌다. 그렇다고 모두가 포기한 건 아니었다. 밖에서의 불만이 큰 만큼 안에서의 불만도 컸기 때문이다. 고작 인형에게 밀리기에는 하렘의 여인들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잔혹했다. 그들은 인형에 꿀을 발라 썩게 만들고, 계단에서 밀어 박살 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의 조각을 태워 재를 연못에 뿌리며 웃었다. 하지만 미처 줍지 못한 손 한 쪽이 이 모든 걸 무의미한 짓으로 만들었다. 새로 만든 인형에 그 손을 붙이자 그것은 다시 술탄이 가장 총애하는 것이 되었다. 웃던 여인들은 공포에 떨었다. 웃지 않던 여인들은 그것의 부활에 모든 걸 체념했다. 그제야 하렘은 고요해졌다. 그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총애 받는 것이 된 이후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그것은 혈연도 지연도 없는 인형이다. 수많은 이들이 사막을 건너 인형을 움직이는 줄이 되기 위해 찾아왔다. 술탄이 전쟁으로 자리를 비우자 이는 더욱 심해졌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인형 관절을 그려 넣은 인형 같은 여인들을 지나 그것의 앞에 섰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큰 소리로 그것에게 인형이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따뜻한 온기와 매끄러운 어깨, 황자를 가질 수 있노라고 말했다. 인형이 어떻게 웃는지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내 삶에 그렇게 맑은 웃음은 처음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은 악기에서 날 법한 소리를 내며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손짓으로 날 물렸다. 나는 몇 번이고 사람이 되고 싶지 않느냐고 외쳤으나 그것은 어떠한 대답 없이 아주 큰 소리로 웃을 뿐이었다. 썩을. 난 그렇게 하렘에서 쫓기듯이 내쳐졌다. 밤의 사막은 끔찍하게 춥고 어두웠다. 그렇기에 멀리 있는 희미한 불빛마저 잘 보였다. 가느다란 불의 실이 궁 안으로 들어갔다. 이 시간에 궁에서 받아주는 건 전쟁에 관한 것 밖에 없다. 또 많은 이들이 죽었겠군. 나는 혀를 차며 전쟁터를 떠올렸다. 그곳에 있을 술탄도 떠올렸다. 술탄은 전쟁에 능숙한 지도자였다. 사람 목숨이 종잇장처럼 날아다니는 곳에서도 매번 살아남았다. 나는 궁 안에서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그것을 떠올렸다. 죽음을 모르는 인형 따위가 과연 전쟁의 비통함을 알까? 죽지 않는 그것이 술탄이 무엇을 걸고 싸우는지 알까? 발리데 술탄은 술탄의 앞에서 죽었다. 그것은 과연 술탄의 슬픔을 알기나 할…… "내가 멍청했군." 나는 생각하던 것도 잊고 깨달음을 내뱉었다. 제길. 멍청한 건 나였다. 그것은 현명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피비린내가 나는 전장 속에서 그것과 술탄이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나는 시체 더미 위에 선 두 사람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남자가 나타나 칼로 그것의 옆구리를 찔렀다. 인형인 그것은 그 어떤 아픔도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찔린 것조차 모르는 듯했다. 술탄은 그런 그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것은 악기를 닮은 웃음소리를 냈다. 둘은 죽음을 외면한 채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다.
165 이름없음 2022/11/16 17:19:32 ID : 4NteNxXz9eI 0
미쳤어????? 뭐하는거야??????? 왜 하나만 올려?????? 레더야 법이 바껴서 갸오지는 글을 쓸 거면 최소 999레스 써야해ㅠㅠ 아니 근데 진짜 미쳤다. 너무 궁금해. 인형이 웃었다는 건 감정이 있다는 거겠지? 그럼 인형은 술탄을 진짜 사랑할까? 근데 애초에 사랑하지 않으면 하렘에 남을 이유가 없긴함. 아니 근데 그랴서 왜??? 와... 왜????? 아니 하... 미안 내가 어휘력이 딸려서 뭐라 표현을 못 하겠네... 집문서? 그거 주면 될까?
166 이름없음 2022/11/17 19:49:06 ID : e7zhtfTRvhe 0
너를 짝사랑 하는 것을 끝내면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한테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도 못 주는 나를 보며 너를 위한 내 마음을 못 준 채 끝나는 나의 짝사랑 같았기에 나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더이상 나에겐 너를 사랑할 용기도. 거절당할 용기도 남아있지 않기에
167 이름없음 2022/11/17 23:14:00 ID : 4NteNxXz9eI 0
헉 이거 보니까 내 동생이 여친 100일 챙기려고 한 달 동안 준비했는데 100일 하루 전에 차인거 생각나... 그때 디올 립스틱 샀었는데 공허한 눈으로 나 줘서 6년째 놀리고 있어. 근데 이 글 읽으니까 슬슬 그만 놀려야 하나 싶기도 하다.. 감정 이입하니까 가슴이 저릿하구만유 아련한 글 너무 좋아ㅠㅠㅠㅠㅠㅠㅠ...
168 이름없음 2022/11/17 23:59:47 ID : NtcslDvAY9z 0
봄이였습니다. 제 쓸모를 찾아다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직 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무너졌으며 다시 일어났습니다. 눈밑이 시린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눈 앞이 흐려져서 눈물로 가득 채운 게 언제 적인지 모르겠어요. 비가 오면 땅이 굳고 단단해진다는 것은 옛말입니다. 단단해지기는 커녕, 더욱 물렁해져서 부셔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분홍색 꽃잎이 하늘을 누비고 노란색 꽃이 아름답게 폈으며 내 손에는 기적이라는 푸른 장미가 놓여져 있습니다. 꽃말처럼 기적이 온다면 그때야말로 봄이겠지요. 봄일겁니다.
169 이름없음 2022/11/18 01:12:07 ID : 4NteNxXz9eI 0
화자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궁금하다.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비슷한 정도로 타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나만 할 수 있는 일...봄이었다고 했으면서 마지막에는 미래 추측으로 끝맺는 것도 아마 봄은 돌고 돌아 다시 오니까 봄(목표)를 이루어 뒤로 가더라도 새로운 봄이 또 온다는 그런 것일까... 푸른 장미가 왜 손에 놓여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게 혹시 푸른 장미를 피우는 것이었을까. 푸른 장미가 기적이라면 나는 기적을 피우는 사람... 봄은 나의 이상향... 푸른 장미가 놓여 있음에도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 나는 더 큰 꿈을 꾼다 혹은 나는 욕심이 아주 많다... 궁금하다... 궁금해...
170 이름없음 2022/11/18 01:36:37 ID : 4NteNxXz9eI 0
"나는 말이야, 너 같은 새끼들이 참 싫어. 사람이 사람을 죽였으면 썩을 놈이지 뭘 고상하게 재고 있냐고. 그래도 세상이 참 좋아져서 썩을 놈들도 안 썩게 도와준다니까 빨리 끝내자. 응?" "마음대로 하시죠. 그래서 저는 뭘 말하면 됩니까?" "뭐, 어릴 적 기억이나 요새 힘들었던거 털어놔. 그럼 내가 대충 정리해서 상담일지 작성하면 진짜 정신과 의사가 약 처방해줄테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심리 상담이란 것이 원래 이렇게 진행됩니까?" "그렇겠냐? 근데 난 심리상담사 이전에 사람이야. 딸 키우고 있는 아빠라고. 너 같으면 좋게 상담 진행할 수 있겠냐? 꼬우면 민원 쳐 넣으세요. 원래 나도 하기 싫었는데 자원하는 상담사가 없어서 내가 온 거야." "딱히 시비를 걸 생각은 없었어요. 괜히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하, 됐으니까 빨리 하고 끝내." "네. 음, 저는 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유일한 가족인 누나가 있었는데, 축제를 구경하러 갔다가 도둑으로 몰려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어버렸던 일이 힘들었습니다." "쯧. 또 이런 식이야. 지만 불쌍하지, 아주? 내가 충고하는데 그따구로 살지마. 야, 분량 모자르니까 최근 일도 말해봐." "글쎄요. 최근에는 수감 중이라 딱히 특출난 일은 없습니다. 수감 전에는 사람을 죽이는 연극을 기획하고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 사건이 가장 충격적이네요." "니가 사람이냐? 니가 죽였잖아. 니가 니 손으로 만들었잖아. 만약 내가 아는 사람이 니 사건에 휘말렸더라면 너는 지금쯤 내가 목을 졸라서 죽였을 거다. 니 두 눈이 튀어나와 짓물러질 때까지 니 목을 비틀거라고." "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럼 군중심리에 대해 처음 알았던 일로 말을 바꾸겠습니다."
171 이름없음 2022/11/18 10:30:01 ID : 2JO62Gmspak 0
훈수 부탁드립니다 1. 문 밖으로 나간뒤 숨을 크게 한번 들이 마셨다 가을 아침에 시원한 공기와 뭔지모를 청량감이 들어 항상 문앞을 나서며 입에 물던 담배를 다시 집어 넣었다 원래 였다면 내가 늘 담배를 피던 아파트옆 흡연장소로 바로 가서 담배를 피며 휴대폰으로 웃긴 영상같은걸 찾아보며 지나갔을 터인데 가을이 왔다는걸 새삼 느끼며 오늘은 조금이나마 이 맑은 공기를 더 마시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생각했다 "어차피 5분도 못가서 담배를 다시 꺼내겠지만.." 2.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최근 통화 목록으로 들어갔다 내 최근 목록엔 유독 한사람의 이름만 가득 있었다 잠시지만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이 이정도로 없었다 생각하니 뭔가 씁쓸했다 그리곤 이내 통화목록을 가득채운 그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어디냐" "나 지금 피시방이지" "누구랑?" "혼자지" "나 지금 다왔으니깐 게임 돌리지말고 기다려리" "ㅋㅋㅋ 오케이 빨리 오이세" 전화를 끈고 천천히 담배를 찾았다 피시방은 아직 몇분 더 가야하지만 난 친구가 게임을 시작하자말자 내가 도착해 한참을 같이 게임을 할려고 기다리는 상황을 이미 몇번이고 겪었던 터라 이제는 서로 눈치껏 전화를 먼저 해서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였다 3. 담배를 불을 붙이고선 연기를 깊게빨고 내뿜었다 방금 집 앞에서 느꼈던 기분좋은 가을 공기는 한순간에 박하향이나는 담배 냄새로 지워졌다 원래는 걸어가며 담배를 피는건 왜인지 연기를 빨아들이는 느낌이 덜하고 하여 대도록이면 한곳에 머물러서 다피우고 갔었겠지만 친구는 내가 불러서 우리 동내까지 왔건만 정작 30분이 지나서야 나오는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거란걸 뻔히 알고있어 그럴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난 연기를 하늘쪽으로 뿜으며 서둘러 지나갔다 지나가는 사람 몇몇이 내가 내뿜은 연기를 손으로 휘젖고 인상을 쓰며 지나가던게 보여 미안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72 이름없음 2022/11/19 22:17:14 ID : e7zhtfTRvhe 0
너한테 보내질 못할 편지를 많이 썼지만 내 생각엔 이게 마지막인것 같다. 알고 있지만 내가 너를 많이, 아주 많이 좋아했어. 온 세상의 사랑 시를 보면 우리가 된 것 처럼, 온 세상의 사랑 노래의 주인공이 우리였던것 처럼, 내가 쓰는 모든 글이 70%의 모티브가 너 였던 것 처럼 널 아주 많이 좋아했어. 지난 6년동안 너를 사랑했지만, 지난 5년은 그 사실을 몰랐고, 근 1년 동안 너를 열렬하게 사랑했고, 원망 했고, 갈구 했다. 이제 이딴 짓도 끝내야지. 야, 그래도 마지막 선물은 받아주지. 너에 그 부담스러워 하고, 당황한 표정을 보면서 나는 내 짝사랑이 끝났구나를 직감했어. 하지만 나는 또 상처 받기 무서워서 내가 먼저 선수 쳤어. 내가 할 수 있는건, 그거 밖에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건 너를 그만 좋아하는 거야. 그러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걸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의 공허함이, 나의 허무함이 자꾸 내 목을 조여와. 이런 공허함은, 이런 허무함은 처음이여서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실감한다. 너는, 나한테 다가왔던건 그 날 첫만남 딱 한번 뿐이였어. 그 다음에 다가온건 네가 아니였어. 바로 나였지. 너가 나한테 다가오지 않아, 많이 불안해서 그 불안에 너는 나를 질려할까봐 또 불안해서, 나를 향해 그 불안을 던졌어. 그 불안은 이내, 나를 질리게 만들었지. 그래서, 너를 좋아하는 걸 그만 뒀어.
173 이름없음 2022/11/20 00:05:06 ID : 1dDvA6nPhdV 0
태양이 죽어간다. 아마 과거의 사람들이 들으면 멋진 소설의 매력적인 비유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태양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된 지 벌써 117년이 흘렀다. 이제 태양은 하얗게 빛나지 않았다. 군데군데 탁한 합성물이 끼어 오래된 전구처럼 얼룩진 빛을 뿜어낼 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구는 슬슬 얼어붙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라고 떠들어대던 것들이 무색할 만큼 차가운 별이 되어 모든 것에 하얗게 서리가 끼어들었다. 바다에는 얼음이 떠다녔고, 웬만한 하천이나 호수는 꽝꽝 얼어 땅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문명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문명이라고 해봤자 뭐 얼마나 성대한 것들이겠냐만은 인간이 남긴 자국 중 얼어붙지 않은 자국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그 인간이란 것들도 모두 멋대로 죽어버렸고 죽은 것들도 꽝꽝 얼어 종국에는 깨져버렸다. 그렇게 모두 바스라져갔다. 나는 이제 할 일이 사라져버렸다. 태양계를 한 바퀴 돌고 100년 뒤 지구에 도착하면 나의 정보를 모두에게 들려주려고 했다. 다이아몬드의 비가 내리는 광경이라든지 대륙 크기의 번개가 내리꽂히는 순간을 모두 담아서 돌아왔는데 그들은 멋대로 얼었다 깨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태양은 죽어가고 있었다. 내 몸체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쉽게 고장나지 않으며 연료원은 태양광을 사용했다. 연구소 였을 얼음 덩어리를 한 번 스캔하여 영구 내장 메모리에 저장했다. 이제는 희뿌얘진 태양광을 온 몸체로 느끼며 천천히 전진했다. 덜그럭 거리는 바퀴엔 목성의 먼지 구름과 우주의 암흑 물질들이 잔뜩 끼여서 내가 가는 곳마다 오묘한 자국을 만들어주었다. 태양이 죽어간다. 그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얼어붙은 미지의 행성을 탐사한다. 117년 전에는 지구라고 불리던 행성이었다.
174 이름없음 2022/11/21 00:03:06 ID : 4NteNxXz9eI 0
담배... 난 담배가 싫어... 유사 백수의 일상을 적은 건가? 약간 연락하는 사람 정해져 있는 거에서 미친듯이 공감하고 감미다,, 번호를 메긴 이유도 궁금하구만유,, 종강하고 싶어지는 글 고마워 오 약간 아직 감정 정리 못한 사람이 횡설수설하면서 쓴 것 같은 느낌? 짠허다.. 우정꿈희망사랑 중 제일은 망사랑이라더니 맞는 거 같다.. 사랑을 한 줄 몰랐다면서 어케 5년이라고 정확히 자각했는지 궁금해지는 글...
175 이름없음 2022/11/22 16:11:42 ID : 4NteNxXz9eI 0
차라리 나이를 먹지 말 걸 그랬다. 이렇게 사람 행실도 하지 못하고 살 바에야 차라리 세상의 빛을 보지 말 걸. 한숨을 쉬어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감기에 걸렸다. 온 몸의 근육들이 나른하게 풀어져서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알바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오늘 일을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하자 뭐라 따지려던 사장님도 다 갈라진 내 목소리에 한숨만 푹 쉬셨다. 감기약을 사서 먹었다. 환기를 시키고 빨래도 널어두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랬더니 살아간다는 건 참 서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땐 어땠더라. 열이 심해서 학교를 쉬었던 날이 있었다. 늦은 오후에 비틀거리며 일어났더니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씹기 편한 진밥이 차려져 있었다. 반차를 내고 집으로 온 엄마가 열로 노곤해진 나를 대신해 밥을 떠서 먹여주었다. 중간에 넘기지 못하고 토했더니 입가를 닦아주곤 약은 삼키려나, 걱정해주었다. 지금은 내가 아파서 뱉은 음식물을 내가 닦아야만 하겠지. 어른이라는 건 그런걸까. 아프다고 해도 걱정해주는 사람은 거녕 당장 저녁 타임 서빙은 어쩌냐는 한탄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죽을 듯 기침을 해도 무와 꿀을 넣고 갈았던 끔찍한 맛의 죽은 없고 밥을 넘기지 못해 뱉어도 내가 닦아야만 한다. 아프다. 감기에 걸렸다. 몸은 힘이 없고 머리는 멍하다. 기침이 나올 때마다 목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럽다. 아파서 서러운 건지 외로워서 서러운 건지 아니면 관성의 법칙에 따라 반사적으로 서러운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처럼 세상에 던져진지 얼마 안된 어린 어른은 연애나 친구로 해소되지 않는 외로움이 있나 보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몸은 좀 나아지겠지. 몸이 나아진다면 지끈거리는 외로움도 괜찮아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176 이름없음 2022/11/25 16:22:33 ID : Pa1ba05RBdV 0
세상은 때로는 우리의 눈을 속인단다. 계속해서 귓가에 괜찮다고 속삭이며 포기하라 유혹하지. 그래 아이야. 세상은 우리에게 멀쩡하게 보이는 탁구공의 찌그러진 이면처럼 망가져버린 부분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단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 멀쩡한 면만을 들이밀며 현실에 안주하기를 강요하지. 그러니 아이야 계속해서 생각하거라. 나아가고 탐구하며 쟁취하거라. 착시를 단순히 착시에서 그치게 하지말고 그것을 이끌어내거라. 눈에 의지하려 하지말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거라. 세상에는 고작 두 작은 눈동자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으니 말이다. 꿈을 꾸거라.. 이 말을 들은 니가 긴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단순한 글자들의 배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닳았을때 그 꿈은 너의 현실이 되어줄테니 말이다. 미안하구나. 그리고 사랑한다. 나의 하나뿐인 #@$#%. 그가 내뱉던 짧지만 긴 문장이 마침표를 찍었을때 하늘에서는 한두방울씩 비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죽음을 추모하듯 빗소리는 구슬프게 도시로 퍼져나갔고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아이는 차갑게 식은 노인의 시신을 끌어안으며 다짐했다. 언젠가 자신이 어른이 되어 노인이 말한 바를 이해하기까지 세상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리라고 그것은 소년이 노인에게 건내는 마지막 친절이자 죽은 자에 대한 애도였다.
177 이름없음 2022/11/28 00:05:28 ID : 1dDvA6nPhdV 0
아 뭐야 단순한 사이비가 온 세상을 지배해 버린 시대에서 유일하게 저항 운동을 하던 노인이 고아가 된 소년을 거둬서 키우다 죽기 전에 소년한테 자신의 가치관을 설명하는 디스토피아 배경의 소설이잖아? 아님 말고... 그치만 개오져요...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에요...
178 이름없음 2022/11/28 00:22:47 ID : 1dDvA6nPhdV 0
사람들의 머리 위로 숫자가 떠올랐다. 이미 머리 위에 갑자기 숫자가 떠오르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였으므로 당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다들 차분하게 숫자의 의미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천문학자는 남은 수명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흘러도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없었기에 다들 그건 아닐거라고 말했다. 다만 천문학자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단위가 큰 시간일거라고 생각해 하루종일 계산기를 두드렸다. 원래 천문학자들은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들로, 돈이 안되는 순수 학문으로 박사까지 한 이상한 족속이었다. 천문학자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종국에는 슈퍼 컴퓨터 까지 두드렸으나 이 숫자의 단위를 알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스님이 숫자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일침을 날렸다. 숫자란 것은 본디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의 개념이었다. 만약 다른 종교의 신들이 벌인 일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신이 하등 인간이 만든 허상을 알고 있으며, 왜 친히 그 개념을 사용하겠는가. 우리 머리의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의미가 있다 해도 그것을 우리가 알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스님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부는 머리가 아팠다. 정확히는 공무원들이 그랬다. 시민들은 숫자로 인한 민원을 모두 정부에게 제기했다. 급기야는 숫자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는 집회와 그걸 왜 정부가 규명하냐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일단 검찰을 압수수색했다. 머리 위로 떠오르는 숫자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숫자의 비밀을 차분히 생각했다. 숫자의 비밀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것은 한 웹소설 작가였다. 그는 문득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이 구상한 소설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웹소설 작가에게 숫자의 비밀을 듣기 위해 주목했다. 방송국 차가 몇 대 왔고 유튜버가 몇 명 불법 침입했다. 작가는 모두가 온 것을 확인하고 숫자의 비밀을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머리 위의 숫자는 말입니다, 제 작품에서는..." 그러나 그 때 모두의 숫자가 동시에 사라졌고 필요 없어진 웹소설 작가의 이야기는 아무도 찍지 않았다.
179 이름없음 2022/11/28 22:10:31 ID : 41vhf9dwpO5 0
내 마지막 첩보관의 막내딸이 죽었다. 그 애는 늦둥이였다. 산모가 34살이었으니 403년 기준으로도 이른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시대, 그리고 그 후의 시대에 각각 한 발씩 걸쳐놓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고작 18살에 첩보관이라는 중책을 맡은 천재였고, 붉은 진주의 문양은 높이 휘날렸으니 돌탑의 제 방에서 안락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내 딸들이 모두 죽고 검은 깃발을 든 이들이 내 묘비를 파묻은지도 50년이 넘었다. 부디 나의 시대 이후에도 그 애가 눈물짓는 일이 없었기를 바란다. 아니, 어쩌면, 그 애는 돌탑 아래 푸른 지붕 집에서 살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 애가 내 첫째 딸을 주군으로 섬겨주길 원했는데. ** 진주탑의 캣 레드펄은 언제나 관광객들을 직접 안내했다. 여기는 무슨 방이에요, 제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에 쓰시던 방이죠, 다음으로 오른쪽에 여기를 보시면, 앗, 거기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한때 캣의 어머니 소유였으나 이젠 세금으로 관리되는 국가 유적지. 캣은 진주탑을 유지할 금전이 없었다. 작가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 안 되는 직업이다. 유산? 유한계급들이 검은 깃발에게 그들의 금고와 그들의 성, 그들이 물려받은 땅을 바친 지 오래다. 그래서 캣은 진주탑의 주인이 아니다. 상주 관리인이라고 하면 모를까. 이제 영주도 영민도 영지도 없지만, 캣은 귀속된 농노마냥 레드펄 골짜기를 떠나지 않았다. 골짜기에 관공서가 들어온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180 이름없음 2022/11/29 14:39:45 ID : 1dDvA6nPhdV 0
화자가 바뀐 건가? 그럼 캣이 그 마지막 첩보관의 막내딸의 후손이려나..?? 검은 깃발이 나의 묘비를 파묻었으니까 약간 흑막인가..?? 그럼 캣은 이미 첩보관도 뭣도 아닌데 붉은 진주탑에 묶여 있는겨?? 헐 재밌다.. 더 풀어줘...
181 이름없음 2022/11/29 21:11:02 ID : pQoJVbzWkoL 0
소녀는 여자애가 좋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소녀는 여자애의 이름을 정성들여 써보는 일이 잦았다. 네임펜으로 다 푼 문제집의 뒷장에, 예쁜 색의 형광펜으로 영어 내신 공책 귀퉁이에, 쓰지도 않는 연필로 학원 기출 문제지 마지막 문제 위에 여자애의 이름이 쓰여졌다. 소녀는 여자애의 생각을 하는 것이 좋았다. 꽉 막힌 독서실 책상에서도 눈을 감으면 소녀는 어느 새 여자애와 손을 잡고 강원도의 한 석호를 돌았다. 석호는 갈수록 작아지는 호수래. 한국지리도 지구과학도 듣지 않는 소녀는 여자애가 알려주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소녀는 면적이 변하는 호수보다 여자애의 목소리가 더 놀라웠다. 두 개의 근육이 붙었다 떨어지는 마찰의 공명이 여자애의 목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생소했다. 소녀는 하현달과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초승달 속에서 눈을 떴다. 조금만 더 꿈 속에 있어도 좋을텐데. 소녀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꿈이라고 해봤자 나오는 것은 여자애였기에 사실상 학교와 꿈의 차이점은 없었다. 소녀는 여자애를 보면 그믐이 떠올랐다. 달빛도 없는 거리에서 문득 숨이 막혀 독서실로 가지 않고 눈물 없이 울었던 그 그믐이 여자애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결국 대학교에 갔다. 여자애도 그러했으나 소녀와 다른 지역이었다. 소녀는 처음으로 머리를 아주 길게 길렀다. 학교에 가기 위해 한 시간 동안 화장을 했다. 늦게 까지 놀러다니고 처음으로 지각도 해보았다. 소녀는 금방 여자애를 잊고 어른이 되었다. 어른은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문득 자신이 연차를 하루도 쓰지 않았음을 깨달은 어른은 팀장의 권유 아닌 권유로 휴가를 나왔다. 강원도의 한 석호를 돌던 어른은 불현듯 여자애가 기억났다. 딸랑 거리는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른은 그믐도 아닌데 소리 없이 울었다. 소녀는 어른이 될 수 있지만 어른은 소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82 이름없음 2022/11/29 22:50:32 ID : 41vhf9dwpO5 0
그 사람들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들고, 첫째 언니의 이름을 외치며 행진했다. 그때는 첫째 언니도 둘째 언니도 왕궁에 없었고, 셋째 언니는 이모님의 성에 가 있었다. 그들은 왕궁으로 왔다. 내 창문에서도 잘 보였다. 가을바람에 팔락팔락 휘날리는검은 깃발과 국기. 맹세코 폭도들이 아니었다. 그저 굶주린 시민들, 내 나이 또래임에도 노인처럼 주름진 아이들. 결정권자는 내가 아니었다 해도, 내가 말렸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나는 모른다. 총소리가 무서워서 도망친다면 어디로 가야 했을까? 적어도 이제 알게 된 것 하나: 그때 “멈춰요,” 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 사람들은 먹을 것을 원했고, 347년 겨울, 나는 인생 처음으로 배고픔을 배웠다. 그 사람들은 병든 아이를 감쌀 천조각을 원했고, 348년 초봄, 나는 습기 찬 바닥에서 콜록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말리지 않았던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걸 말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 우리는 왕을 죽였다. 우리는 왕족을 죽이고 귀족을 죽였다. 오직 이유 하나: 그들은 우리를 너무 많이 죽였다. 그래도 난 이 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집에 살았다는 이유로 그 아이가 ‘그렇게’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제 어머니의 백골과 언니들의 시신과 같이 드넓은 바다에 떨구어졌으니 장례를 치러줄 이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옛것을 쟁기질했으니 선왕의 무덤도 이젠 흙더미뿐. 아홉 살의 캣이 진주탑에 검은 깃발을 꽂겠다며 나타났다. 우리는 캣을 사면해주었다.
183 이름없음 2022/12/01 01:09:45 ID : vfO9wE1hbyK 0
초겨울이면 못지킬 약속을 마구 하는 습관 난 그렇게 사교적이지가 않아서, 사실 겨울엔 누워만 있는데 왜 매년 내리는 눈에 매번 신이 나서 그래버리나 몰라
184 이름없음 2022/12/02 00:29:16 ID : 4NteNxXz9eI 0
" 선생님 께서는 사랑을 아십니까? 책상 위의 가족 사진을 보니 결혼을 하신 것 같군요. 그렇다면 남편과 자식들을 사랑하시나요? 그건 무슨 감정이죠? 지키고 싶고, 행복을 바라게 되지는 않던가요? 놀리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모두 그럴거에요. 사랑은요,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죠. 아니면 함께이고 싶다던가 꽉 안아주고 싶기도 하겠죠. 예시를 하나 들어볼게요. 만약 괴물이 나타나 가족들을 헤치려고 한다면 선생님은 어쩌시겠어요? 그렇죠. 뭐라도 해야죠.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건 알지만 돌멩이를 던져도 보고 다리가 풀린 아이를 들쳐메고 달려도 보겠죠. 남편을 향하는 손톱에 일부러 몸을 던지며 막을 거에요. 왜냐면 선생님은 가족들을 사랑하시니까요. 아름다운 사랑을 하시니까요. 저도 똑같아요. 단지 선생님은 가족을, 저는 생명 을 사랑할 뿐이에요."
185 이름없음 2022/12/02 01:59:53 ID : 4NteNxXz9eI 0
[커튼을 치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밤이 늘었습니다. 우리가 만났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뜬금없지만 문득 궁금합니다. 당신은 그 날을 어떻게 알고 계시나요. 저는 제법 자세히 안다고 자부합니다. 그 때 당신은 목도리를 하고 계셨지요. 검은색이 퍽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당신에게 어울리는 색이래야 몇 없을 것 같아요. 노란색은 당신이 싫어한다고 했죠. 푸른색은 슬픈 생각이 나서 제가 싫어요. 빨강은, 글쎄요. 강렬한게 장점인 색인데도 이상하죠. 당신이 두르면 당신의 색으로 바래지니까요. 그런 당신에게 어울리는 건 달빛 정도이려나요. 달빛은 참 요상하죠. 저는 밤이 싫은데, 달빛은 좋아합니다. 이상한가요. 웃으시겠죠. 당신의 웃는 얼굴을 방금 머릿속에 그려봤습니다. 아마 오늘도 커튼을 쳐야 잠이 오겠네요.]
186 이름없음 2022/12/02 22:52:49 ID : tfVbu9y0nAY 0
사람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때로는 사소하고 때로는 가혹한 그 기로 위에서 비명을 지르고 차일피일 미뤄도 결국 해야만 하는 선택. 포기할 수 없는 의무.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더 잔인할까,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 더 잔인할까. 지표 하나 없이 황무지를 걷는 것과 거대한 미로를 비교하는 격이다.
187 로맨스 2022/12/04 12:24:31 ID : 4NteNxXz9eI 0
사랑은 뭘까. 아이는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이는 제대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가장 강렬한 첫 사랑, 부모와의 애착 형성에 실패한 탓이 컸을지도 몰랐다. 아이는 자신을 별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울증이나 그런 정신질환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한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익숙하고 친숙한 것을 사랑하도록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첫 단추부터 삐끗해버린 것이다. 부모와 애착형성에 실패한 뒤 성장에 차질이 있었다. 아마 아이의 성숙지점은 구강기에 정체되어있을 터였다. 프로이드가 살아있었다면 아이를 안락의자에 눕히고 이마에 엄지를 꾹 대었다 떼는 상담을 계속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아이는 사랑을 할 수 없었다. 정상적인 사랑과 동떨어져있었다. 그 때 남자가 등장했다. 남자는 남성 호르몬이 적었다. 그래서 공격적 성향을 잘 띄지 않았다. 아이와 남자는 자주 마주쳤다. 두 사람의 시선도 그랬다. 남자는 아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자신도 아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니라고 반문하는 이들조차 그렇다. 왜냐하면 인류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야생에서 살았다. 오랑우탄과 다름 없는 삶을 살았다. 인터넷과 대중매체로 접한 알량한 자의식 뒤에 진화의 산물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 진리에 개인의 얄팍한 취향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고 남자도 그러했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사랑의 첫 단계에 돌입했다. 충동적으로 변했고 발한과 두통, 메스꺼움을 겪었다. 손에는 땀이 흥건했고 아이를 생각하면 몸 속에서 화학물질이 분비되었다. 열정적 사랑 단계는 길어봤자 3년이 다였다. 그래도 남자는 행복한 3년을 보냈다. 아이와 낭만적 관계를 이루진 못했지만 짝사랑 자체가 남자에게는 좋은 자극이 되었다. 3년이 끝나고 남자의 사랑은 소강상태에 돌입했다. 남자는 이제 아이를 생각해도 전 처럼 가슴께가 저릿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아이의 모든 점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사랑은 그렇게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아이는 이제 그런 남자가 낯설게 다가왔다. 낯선 상태는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3년 동안 남자는 사랑에 빠진 상태였다. 그런 남자가 변화했다. 아이는 불편함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중에 더 좋아했던 사람을 덜 좋아했던 사람이 후회하며 붙잡는 뻔한 이야기들 처럼 아이와 남자의 관계는 변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남자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사랑은 뭘까. 아이는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문과에 기독교 신자인 탓이었다.
188 이름없음 2022/12/04 13:07:54 ID : 4NteNxXz9eI 0
외계인은 실존합니다. 우리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어제 강변역에서 만났던 분이신가요? 빨간 하이힐을 신고 베낭에 깃발을 꽂고 돌아다니긴 했습니다. 아, 반갑습니다. 맞는 것 같군요. 일단 앞에 앉아서 이야기라도 찬찬히 나눠 보십시다. 저는 아이스티로 사주실 수 있나요? 제가 카드를 잃어버려서 다음에는 제가 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지금 보니 인상이 훤칠하시군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 하기 힘드셨을 텐데,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으면... 아, 아니세요? 외계인이요? 잠시만요. 아, 외계인 심판 쪽이셨군요. 미안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가끔 구름에 구멍 뚫린거 보신적 있으신가요? 그게 외계인들이 타고 다니는 유애보 라고 하는 거에요. 잠깐 거기 세워두고 투명하게 위장해서 인간을 관찰하는 겁니다. 관찰해서 뭘 할까요? 심판. 심판을 하러 오신 겁니다.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세계의 단어로 그 분들을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 저희는 외계인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자애로우세요.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를 보듬어 보시고 뉘우치는 이들은 바로 용서해주십니다. 그런데 뉘우치는 방법이 조금 특이하세요. 일단 제가 그 분들을 만났던 일을 말씀드릴게요. 제가 지금이야 홍보대사라는 직함을 맡고 있지만 이전에는 딱히 대단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은 삼수했고 자격증 시험도 한 번에 붙은게 없을 정도니까요. 그때의 저는 뭐랄까, 인간이 되다 만 사람. 어른이 되다 만 성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루를 견딘다고 말해도 될까요. 도움도 안되는 진드기 정도의 생활을 견뎠다고 말하면 기만이겠죠. 나태하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한강 말입니다, 생각보다 넓더군요. 무섭다면 무섭지요. 저는 주로 동네 하천을 갔습니다. 아뇨, 청계천 처럼 유명한 하천은 아니고 그저 그런? 이무튼 새벽 잔디밭에 앉아있는데 그 분들이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군밤을 파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희한하게 눈물이 나더군요. 아이처럼 목놓아 울다가 집에 와 생각해봤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잖습니까. 군밤 장수 소리가 따뜻하게 느껴져서, 나를 위로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눈물을 흘리는 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군밤 팝니다. 군고구마 있습니다. 용서 팝니다. 죄의 심판 있습니다. 외계인은 실존합니다. 우리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그러니 부디 잘못된 길로 들지 마시고 다만 선에서 존재하소서.
189 이름없음 2022/12/04 20:20:52 ID : 4NteNxXz9eI 0
정상인은 생각했다. 나는 결핍이 없으니 예술가가 될 수 없겠다고. 정상인은 이성애자였다. 그리고 비장애인에 1세계권 기득권층이었다. 사상도 바르고 똑바라서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는 말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정상인의 가족은 정상 가족이었고 정상인의 재산은 중산층의 수준을 조금 웃돌았다. 정상인에게 세상은 세상 그대로 다가왔다. 정상인은 너무 정상이라서 과제가 밀리지도 않았고 시험 공부도 수월하게 해냈다. 천재는 아니었지만 평소에 강의도 열심히 듣고 성실한 생활을 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정상인의 삶은 정상 그 자체의 것으로 아주 완벽했다. 정상인이 너무 완벽해서 인터넷 욕설도 그에게 해당되는 것이 없었다. 정상인은 정상적인 사랑을 했다. 상대에게 적당히 의존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정상인은 정상적인 사랑을 통해 합법적인 가정을 꾸려 부모로 부터 독립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인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고 정상인의 자식도 정상적으로 성장해 독립했다. 정상인은 아주 정상적으로 생각했다. 정상인은 결핍이 없었다. 아무래도 결핍이 없으면 예술을 하기 어려웠지만 사실 정상인은 딱히 예술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그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상인의 죽음은 정말이지 정상 그 자체였다. 정상인은 눈을 감지 않고 죽었다. 마지막 호흡을 내뱉으며 장상인은 잠시 생각했다. 이제라도 죽어서 다행이라고.
190 이름없음 2022/12/04 23:43:10 ID : 4NteNxXz9eI 0
그녀의 눈빛은 마치 푸른 불꽃과 같아서 여간 섬뜩한 것이 아니었다. 성현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촌뜨기 주제에 과거를 보기 위해 고개를 넘고 있었다. 차라리 호랑이라도 나타나 나를 물어가주지 않으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름만 남은 양반 가문의 외아들이었던지라 주변에는 이런저런 참견이 심했다. 성인이 되었음에도 나지 않는 수염과 작은 키. 몸은 또 어머니를 닮아 허약하여 한 달에 한 번은 꼭 크게 앓았다. 더군다나 공부 머리도 없어 식충이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어쩌면 과거는 핑계고 눈엣가시인 적자를 없애고 새로 부인을 들이려는 아버지의 계략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병상의 어머니가 가여이 여겨졌다. 여자란 참 쉽게 버림 받는구나. 과거 시험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고개를 오르면서도 나라는 범인의 생각은 성현의 말씀 보다도 여자에게 향하고야 말았다. 무거운 발걸음 때문인지 나는 아직 산중인데 날이 저물었다. 꼼짝없이 죽으려나, 싶던 나는 마침 오두막 하나를 발견했다. 마당에 서서 주인을 찾자 소복을 입은 여자가 문을 열고 나를 맞이했다. 그녀의 눈에는 냉기가 서려있었고 얼굴은 꼭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듯 고왔다. 침어낙안. 물고기를 가라앉히고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미인이 바로 그녀를 두고 나온 말 같았다. 한 가지 흠인 큰 키도 그녀의 아름다움 앞에선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죄인의 몸으로, 본디 외간 남자를 들이면 아니되나 사정이 딱하므로 부엌간을 내주겠습니다." 그녀는 냉정히 말하며 아궁이로 가 은은한 불씨를 피워내주었다. 그 앞에 쭈구려 앉아 온기를 쐬며 참 요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정한 그녀가 피워준 불은 그 어떤 것 보다도 따스하고 포근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조심히 마루에 걸터 앉아 달빛에 의지해 창호지를 뚫어져라 살펴보았다. 성현을 운운하기도 전에 나의 행동은 선비의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시지요. 그리고 말을 하지 마십시오. 선비님께서 입을 다무신다면 저는 외인과 대화를 한 것이 아니겠지요." 창호지 너머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떤 힘이 있어서 나는 그 내용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머리 위로 휘영청 떠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대부분은 시덥잖은 내용이었다. 그녀는 산나물을 캐었던 일이나 종종 마당으로 찾아오는 다람쥐 따위를 즐겁다는 듯이 떠들었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그녀의 이야기도 깊어졌다. 전쟁으로 부모를 여의고 이 나라로 흘러든 일, 그녀를 첩으로 맞이한 무뢰한에 대한 것, 그 마을에 역병이 돌아 무뢰한이 죽고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그녀가 초가삼간을 꾸린 경로.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자 등 뒤로 그녀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얇은 종이문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서로에게 닿아있었다. "밤이 깊었습니다. 내일 일찍 떠나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녀가 먼저 내게서 멀어졌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니 서늘한 밤의 내음이 가슴께에 사무쳤다. 나는 몸을 돌려 창호문을 열었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찡그린 얼굴에서도 미색이 흘러넘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 "부인께서 입을 다무신다면 부인은 도리를 어긴 것이 아니게 되겠지요." 그리 말하며 나는 등 뒤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달픔에 관한 것. 여기까지 오느라 닳아버린 짚신의 갯수나 노비들 마저 나를 은근히 무시하는 설움 같은 것. 내가 과장되게 얼굴을 찌푸리자 그녀는 살풋 웃어보였다. 점점 말이 길어지자 달빛이 구름에 가려졌는지 방 안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제야 나는 내 속을 모두 들려줄 수 있었다. 나를 속이고 세상을 속인 이야기. 예를 들면 한 달 마다 이불을 붉게 물들이는 것, 빳빳한 천으로 가슴을 꽉 메어야 하는 것, 이 모든 것을 강제한 어머니에 대한 것, 그 어머니를 향한 나의 사랑 같은 것. 내가 말을 마치자 신기하게도 달빛이 다시 방 안을 환히 비춰주었다. 그녀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손을 들어 내 입가를 문질러 보았다. 그녀의 검지가 옅게 떨리며 털자욱 하나 없는 내 인중을 쓰다듬었다. 손을 거둔 그녀가 입을 열었으므로 나는 도리를 위해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를 납치한 무뢰한이 남색가였던 것, 그곳에서 당했던 치욕들과 억지로 입혀지던 옷가지들, 그 무뢰한이 죽었을 때 들던 낯선 환희에 스스로가 무서웠던 것. 그녀가 마침내 모든 것을 토해내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목 언저리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였다. 그렇게 우리는 긴 밤 동안 서로를, 정확히는 서로에게 깃든 자신을 끌어안아주었다. 달은 저물고 창호문으로 빛이 들어오자 나는 아무 일 없던 듯 문을 나섰다. 그는 나를 배웅하지 않았고 나도 그의 배웅을 바라지 않았다. 호랑이라도 나타나 주지 않으려나. 그리 생각하며 나는 차가운 불꽃이 피었던 그 고개를 넘었다.
191 자, 여기 내 심장 2022/12/05 02:17:04 ID : 4NteNxXz9eI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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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이름없음 2022/12/05 14:45:00 ID : 4NteNxXz9eI 0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팀플을 했다가 공모전 준비를 시작하고 기말고사 공부를 해야 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냥 다시 누웠다. 몸이 안좋다고 할까. 괜찮은 핑계였다. 어차피 회의에 필요한 자료들은 내가 어제 깔끔히 정리해 보내놓은 상태였다. 그에 대한 피드백도 이미 받았기에 내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공모전도 사실 한 달도 넘게 남아있으니 하루 미룬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다. 시험도 사실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침대에 누우니 창문이 잘 보였다. 반쯤 땅 밑에 잠겨있는 나의 방. 불평은 없었다. 나는 벌레를 잘 잡았고 취객과의 말싸움에서도 지지 않을 만큼 욕을 아주 잘했다. 곰팡이야 환기만 신경쓰면 금방 사라졌다. 그치만 때때로 나는 내 방이 싫었다. 반만 보이는 하늘이 답답했다. 아 어쩌면 외로운 걸지도 몰랐다. 나 아주 외로워요. 지겹도록 혼자랍니다. 입 안에 멤도는 말은 낯설었다. 언제 연락해도 받아주는 친구도 있었고 가족과의 사이가 나쁜 편도 아니었다. 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치만 가끔, 아니 사실 거의 매 순간 나는 외로웠다. 이 외로움의 시초는 어디일까. 고민하다 결국 태어난 그 순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혼자 태어나니까, 태어남의 구멍을 지날 때는 아무리 쌍둥이라도 결국 혼자니까, 외롭진 않을까. 태어남의 구멍이라니. 그럼 죽음은 뭘까. 구덩이인가. 죽음도 무슨 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걸까.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구멍, 우리가 전부라고 여겼던 뱃 속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는 그런 구멍을 통과해야 비로소 죽을 수 있는 걸까. 죽음이란 뭘까. 인간의 성장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되니까 죽을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인간이 죽게 되는 건가. 자살과 사고사는 몸 보다 영혼이 먼저 성숙해진 인간들이 겪는 사건인 걸까. 그러나 나는 곧 생각을 멈췄다. 나 따위가 뭐라고 벌써 삶과 죽음을 생각하겠어. 나는 생각이 아주 어렸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진라면 순한맛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익명으로 시비거는 것 밖에 없었다. 침대에서 다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머리를 감고 팀플 회의가 있을 카페로 가야 했다.
193 이름없음 2022/12/05 14:59:46 ID : 4NteNxXz9eI 0
엥 그럼 결국 '나' 는 누구인 거지?? 화자가 또 바뀐건가..? 검은 깃발... 흑막 아니고 걍 민중이었구나... 왜 검은색일까. 흑사병 떠오르네. 그때 농민들이 많이 죽어서 노동력의 가치가 올랐어서 신분제 폐지에 공헌을 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아님 말고... 근데 난 그렇게 생각하니까 레더의 글이 소름돋게 느껴졌으니 저렇게 받아드리겟슴미다..^^7 좋은 글 고마워 님 혹시 나? 일주일이 술 약속으로 꽉찬 달력이 떠오르네욥.. 연말은 좀 사람 들뜨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어 담담한 문장에 공감 오백만 하고 갑니다 총총 비유 좋당... 근데 난 갠적으로 황무지가 좋아... 선택 미룰 수 있으면 미루고 싶어... 책임과 의무 코 끝까지 오기 전까진 피하고 싶어... 멋진 비유 종종 써주시길 바랍미다..
194 론리 비치의 개들 2022/12/06 03:01:26 ID : 4NteNxXz9eI 0
교수님이 말했다. 인간의 언어로 마침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당신은 첫 잠수를 기억하는가? 코로 들어오는 것은 기체가 아닌 뜨겁고 쓰라린 무언가, 눈을 떠도 아프고 매워 볼 수 없으며, 귀는 순식간에 멍멍해지네. 내가 4년을 그렇게 살았다면 믿겠는가? 교수는 나를 앉혀두고 그렇게 말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나는 이미 그의 수업을 무단으로 2번 결석한 적이 있었다. 출결 점수를 반영하는 수업이었기에 여기서 밉보였다간 다음 학기에 울면서 재수강을 신청할 것이 뻔했다. 곤란해진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애매하게 주억거렸다. 그렇게 하면 교수들은 대충 자기 할 말을 하기 위해 말을 이었다. 원래 교수란 직책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하고 자기가 읽고 싶은 것을 많이 읽으며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맡는 것이었다. 내 예상대로 교수님은 자기 할 말을 시작했다. 그건 실로 엄청난 일이었지. 당신은 아는가? 입을 열면 들어오는 액체, 액체, 액체. 숨이 막혀 몽롱해진 정신으로, 곧 죽겠다는 나의 비명에도 멀쩡히 살아가던 4년. 끔찍했지. 그런데 자네의 메일 을 읽자 기체가 들어왔지. 당신은 무언갈 아는가? 일단 교수의 말은 반 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니 사실 의미를 안다고 해도 완전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교수가 하는 말은 전부 어떠한 것도 담지 못하는 공기의 진동일 뿐이었다. 어색하게 고개를 주억거려 봤으나 교수는 이미 할 말이 없는 듯 나를 벌겋게 노려보았다. 곤란해진 나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했다.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것을 많이 생각하기 시작한 교수님께 공손하게 인사하고 연구실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메일을 쓰기 전에 과제 분량을 늘리기 위해 소주 한 병을 마셨었다. 그 메일은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휘갈겨 쓴 것이었는데 이게 연관이 있는 걸까. 한창 생각에 잠긴 교수님께 돌아가 일러둘까 하다가 관두었다. 평소에 알아듣기 힘든 강의로 나를 괴롭혔기에 별 책임감이 들지 않았다.
195 로판 2022/12/09 02:01:00 ID : 4NteNxXz9eI 0
스레딕이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등 뒤로 마왕성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달빛만이 드나드는 외딴 숲 속 잔디밭에 함께 서있었다. "이제 다 끝이야." 무엇이 끝난 건지,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스레딕은 나를 품에 안았다. 단단하고 따뜻한 그의 품 안에서 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곧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이게 뭐야?" 그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마치 자신도 생명이라는 듯이 가증스럽게 피를 끌어올리고 내보내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달빛을 받은 그의 볼에는 홍조가 떠있었고 나의 손길이 닿았던 귓가는 어떠한 욕망으로 붉어져 있었다. "나도 이제 너랑 같은 인간이야." 스레딕은 나의 손을 잡고 자신의 얼굴에 갖다대었다. 어떻게, 네가, 왜. 문장들이 질책을 담지 못하고 입 안을 멤돌았다. 스레딕이 하는 말이 뇌를 스쳐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떠한 뉴런의 연결패턴에도 걸리지 않고 눈보라 속의 발자국 처럼 곧 희미해져 자취를 감추었다. 놀란 나를 다시 자신의 품에 단단히 가둔 스레딕이 중얼거렸다. "나도 이제 인간이야. 그러니 우리 신전에 가자. 인간처럼 어리석은 신성에 기대어 허울뿐인 영원을 약속하러 가자. 멍청한 의식이 끝나면, 나를 바다에 데려가줘. 우리 거기서 약속을 지키자. 빌어먹을 신에게 했던 맹세를 기억하며 계속 손을 잡고 있자. 서로의 손에 주름이 지는 걸 느끼며 그렇게 살자." 바보같은 스레딕.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의 심장이 맹렬하게 뛰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신의 대항자였던 악마가 신의 사랑을 받지 못한 말단 사제를 껴안고 청혼을 했다. 이건 아주 잘못된 일이었다. 그는 오늘을 평생 후회할 것이다. 그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의 말을 수치로 삼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쳤다. 놀란 그가 나를 안았던 팔을 풀었다. 나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이 사악한 악마야, 나를 심판하지 말아라." "난, 난 이제 인간..." "힘을 잃은 네놈은 이제 신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한낱 인간인 너는 너를 해하는 자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며, 속절없이 당할 것이다. 나의 손에 잡히는 것은 네놈의 피이고, 우리가 맹세한 영원은 아주 찰나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자꾸 나와서 눈 앞이 흐려졌다. 그가 죽는다면. 나와의 영원을 맹세했던 존재의 손에 그의 생명이 바스라진다면 "나는 더이상 이 세상을 살아가기 싫을 거야..." 간신히 말을 맺은 나는 그의 목 뒤로 팔을 감았다. 젖은 눈으로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고 눈을 감았다. 사악한 악마가 언제부터 나약한 인간이 되었던 걸까. 너는 자꾸 나에게 같이 추락하자고 말했다. 한참 뒤 그가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눈부시게 웃었다. "너만 남기고 죽지 않을게. 그러니 나랑 함께 늙어가자."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시여, 더이상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나는 당신의 시험이 없어도 이미 끝없이 불결한 자임을 알고 있나이다.
196 눈 딱 감고 낙하 2022/12/12 15:54:07 ID : 4NteNxXz9eI 0
눈을 뜨니 추락하고 있었다. 어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정말 추락하고 있었다. 분명 침대 위에 누워 있었는데 등에 닿는 것은 섬찟한 공기의 흐름이었다. 이류가 귓볼을 스쳐지나가고 심장은 계속 떨어졌다. 간신히 돌아본 벽은 검은 배경에 LED전구가 박힌 듯 흰 점이 뚜렷한 빛을 내며 선을 그리고 있었다. 헉 과제 제출일 오늘까지였는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바닥에 떨어지면 내가 죽든, 살든 위로 올라가기란 힘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과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오한이 들었다. 코딩 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았으나 내 전공이 소프트웨어 선도 학과로 지정되어 같잖은 C언어를 배워야 했다. 과학고니 미디어고를 나온 동기들은 이미 능숙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내가 겨우 거북이로 신호등을 그릴 동안 걔네들은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요상하고 대단한 무언가를 해냈다. 그런데 그걸 한 학기 더 봐야 한다고? 개같았다. 어떻게든 과제를 완수해야겠다고 생각하자 내 배 위에 노트북이 얹어졌다. 아빠가 일주일 동안 초과 근무를 해서 사준 재작년 모델의 중고 노트북이었다. 그때는 나도 평범한 대학생이 된 것 같았지, 감상에 젖어있을 생각도 않고 바로 과제물을 확인했다. 거의 완성되어 있어야 했을 과제는 절반 정도에서 멈춰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장을 했던가? 시간을 보니 제출 마감까지 1시간이 남아있었다. 다시 할 수 있을까? 다시 하면 완성할 수 있나? 바보같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눈물이 차올랐다.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애초에 나에게 과분한 대학이었다. 그냥 아빠 말대로 근처 국립대나 가버릴걸. 백분위에 한참 못 미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지방 촌구석 남고를 전교 2등으로 졸업한게 뭐가 아깝다고. 학교 기숙사비도 비싸서 교회에서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학사에 사는 주제에 과제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이룬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울어도 눈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건 꿈이겠지. 그치만 깨어났을 때도 과제가 이 모양이면 어떡하지. 아니, 제출 기한이 지나있으면 어떡하지. 죽고 싶어지면, 진짜로 떨어지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아빠한테 전화할까. 바쁘실텐데. 내가 언제부터 잠든 거지. 이렇게 오래 잠들어도 되는 걸까. 애초에 여긴 꿈 속인데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거지. 차라리 꿈이 아니었으면. 나 진짜로 떨어지고 있었으면. 이렇게 계속 떨어지고 있었으면 생각과 동시에 등에서 부터 번쩍이는 통증이 전해졌다. 아, 바닥이었다.
197 이름없음 2022/12/15 03:03:12 ID : A1BaoMp81ha 0
➖ 삭제된 레스입니다
198 이름없음 2022/12/15 21:24:13 ID : lhdO3A45e7x 0
가사도 가능한가? 금 묻은 천으로 눈을 가리려하지만 천과 눈 사이에 놓인 썩어진 세상에 불온한 왕관을 쓴 자는 보지않고 가리지 못한 것을 본 자는 웃음짓네 흙 묻은 손에 쥔 책은 피로 젖어가서 피 묻은 책을 쥔 자들은 앞서나가고 산에 들에 흩어진 무지개를 주워 언젠가 다시 이어질 날을 기다리네
199 이름없음 2022/12/16 23:37:15 ID : 4NteNxXz9eI 0
걱정이 되어 다가갔더니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은 행사장 풍선이었고... 정신 나갈 것 같은 글 너무 좋아... 다 의미가 있겠지.. 근데 의외로 무의식에 맡겨서 휘갈겨 쓴 것도 좋아. 찬찬히 보면서 내가 왜 이러걸 썼는지 알 수 있어... 근데 문체가 좋다... 가사도 결국 시의 일종이니까 당근이죱. 뭐야 이거 뭔 상황이야. 아 뭐야 대충 내가 개환장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내용이잔아ㅋ 원래 시는 작가 손을 떠난 시점에서 부터 독자가 읽는대로 읽히는 거임ㅋ 음 맛있다 더 주세요.
200 이름없음 2022/12/19 22:09:40 ID : u67zhBtdwtA 0
오 멋지다
201 이름없음 2022/12/28 13:34:36 ID : 1dDvA6nPhdV 0
탄이는 고민했다. 어젯밤 탄이의 꿈에 저승사자가 나왔다. 그리고 탄이에게 기회를 주었다. 10년 더 살게 해주는 대신 네 주인이 10년 덜 살게 될 거야. 탄이는 야옹 거리며 깊게 고민했다. 인간의 수명은 지나치게 길었다. 임신 기간이 10개월이란 걸 감안해도 길었다. 그러나 탄이는 자신의 수명이 짧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먹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퇴근한 주인이 흔들어주는 낚시대로 놀고 다시 그 발치에서 꿈을 꾸는데에 18년이면 제법 긴 시간이었다. 어떡하면 좋담. 탄이는 저승사자를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고양이의 삶이란 무엇인가. 자신은 중성화를 했기에 종족 번식에 기여할 수가 없었다. 주인의 정서적 교감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인가. 자신은 그저 따뜻하고 부들거리는 신경 안정제일 뿐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뭘 위해 18년을 살았단 말인가. 탄이는 코를 벌렁거렸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꿈이니 자아실현이니 말은 거창해도 결국 다 자기만족 아닌가. 인간의 자기만족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한 얄팍한 자기 최면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렇게 오래 사는가? 살 이유가 있는가? 탄이는 자신에게 주어질 10년을 상상했다. 어쨌든 10년 줄었다고 해도 주인은 탄이가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을 거였다. 18년이나 키웠으니 도중에 버리지도 못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탄이는 10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고민했다. 삶의 무의미한 유한함과 이유 없는 호흡과 맥박이 어째야 족쇄처럼 느껴지지 않을지 생각했다. 탄이는 고민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반려동물 장례업은 오늘도 성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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