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맘에 드는 문장 기록하는 스레 적당한난입 O 책 추천 O _____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17

그녀는 계기판의 창백한 빛에 비친 자신의 길고 잘 손질된 손가락에 힐긋 눈길을 주었다. 정맥이 드러나 손가락 쪽으로 돌진하며 이리저리뒤얽혀 있었다. '내 삶을 반영하는 것 같군.'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저는 수습 변호사입니다. 일이 많죠. 자정에 자고 새벽에 일어납니다……." 시몽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 10시인데요?" 폴이 환기시켰다. "오늘 아침 제 중요한 고객이 사형을 당했거든요." 그가 여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여자 친구들은 모두 바지만 입나 보군요." "저는 그런 사람 없는데요." 그가 말했다. "여자 친구가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죠?" "모르겠어요."

그는 고양이처럼 언제나 은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사람 같았다.

"좋다고 해. 지금 당장. 당신도 좋다고……." "지금 당장." 하고 여자의 말을 따라하면서 그는 그녀를 끌어당겼다. 여자는 킬킬거리며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사랑도 어리석게 이루어질 수 있군 하고 그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시간이란 마치 길들여야 할 한 마리 나태한 짐승 같지 않은가.

'오늘 6시에 프레헤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사실 저는 연기를 하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 저는 촉망받는 젊은 변호사이자 사랑에 빠진 연인이자 버릇 나쁜 아이 역할을 연기했지요. 하지만 당신을 안 이후 제가 연기한 그 모든 역할은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당신이 다시는 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당신의 시몽.'

"…시몽(그녀는 그의 이름을 한 번 더 쓴 다음 정말이지 근사한 이 두 마디를 덧붙였다.), 빨리 돌아와요."

그들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들이 서로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겁에 질린 듯 떨리는 동공, 빛과 어둠으로 채워져 반짝거리는 서로의 눈동자뿐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조심스럽고 감동되어 각자 자고 있는 체하며 상대가 깰가 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맞대고 서로를 지켜보며 밤을 지샜다.

"내겐 당신밖에 없어, 폴." 그녀는 그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재빨리 차를 출발시켰다. 눈물때문에 시야가 흐릿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와이퍼를 작동시켰고 그런 행동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줄곧 손에 들고 있던 재떨이를 놓쳐버렸다 재떨이는 바닥에 나동그라졌지만 깨지지 않았다. 재떨이가 깨져 그를 이 무기력으로부터 끌어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사방으로 유리조각이 튀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재떨이는 깨지지 않았다. 이런 경우,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반짝이는 것은 소설 속에서나 영화속에서의 일일 뿐이었다. 프리쥐뉙 슈퍼마켓에서 파는 이런 싸구려 재떨이가 아니라, 폴의 아파트에 있는 그런 비싸고 작은 유리 재떨이여야 했다.

사강의 작품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니다. 실제로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농담 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 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 두죠."

실패한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괜찮은 변명거리다 누구나 실패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순 없다

우리 언제 마지막으로 봤지 반말을 했던가 너는 "언제 한번 놀러와" 하고 환히 웃었고 너를 생각하면 의자와 서랍장을 싣고 서울에서 철산까지 차를 몰고 온 일이 제일 먼저 생각나 그것들은 답십리로 이사해서도 썼고 파주로 오면서 버렸어 여름에 받은 네 편지는 겨울이 돼서야 다 읽었어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 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 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 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 위였다 그사이 곰팡이가 늘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들을 씻어 정리했다 멀쩡해 보여도 이 집에는 곰팡이가 떠다녔다 넓은 집에 살면 베란다에 화분도 여러개 놓고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우 고 싶다고 그러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하고 몇년은 성실히 일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키스를 하다가도 우리는 생각에 빠졌다 그만할까 새벽이면 윗집에서 세탁기 소리가 났다 온종일 일하니까 빨래할 시간도 없었을 거야 출근할 때 양말이 없으면 곤란하잖아 원통이 빠르게 회전하고 물 흐르고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암벽을 오르던 사람도 중간에 맥이 풀어지면 잠깐 쉬기도 한대 붙어만 있으면 괜찮아 우리에겐 구멍이 하나쯤 있고 그 구멍 속으로 한계단 한계단 내려가다보면 빛도 가느다란 선처럼 보일 테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어두워질 거라고 우리는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뜻해지길 기다렸다

넌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구나 난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 그건 모두 두려워하는 거지

슬픈 마음이 안 슬픈 마음이 될 때까지 나는 슬플 때마다 슬프다고 말했다

0 내일 아침 편지를 부칠까 해 주소 좀 적어줘 잘 자고 보낸다는 마음만 받을게 잘 지내고 계속 나아가지 않으면 고이기 마련이지 우리에게 다음이 있다면 얘기해줄게 꼭

살아남기로 다짐한 사람은 얼마나 작은가

누군가의 삶이 짓밟힐 때 자갈 구르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아무도 모르게 인생이 꼬이고 사랑을 하고 결국 시를 끄적이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향해 가라앉는 이것은 모두 이번 여름의 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과 얼마나 멀어진 걸까 폭우가 계속되는 계절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피하는 걸까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끝끝내 살아간다는 것을 들것에 실려 나가기 전에

첫곡을 마친 친구의 첫마디는 "저는 개와 떡을 좋아합니다 개떡 같은 세상도요" 였다

2. 잠언 한때는 부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했으나 부모만큼 하고 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다

0. 흑백 쓰는 것과 쓰지 않은 것이 대화한다면 사랑하다 이별할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인생을 던져버렸다고 오해했다 이룰게 없는 나이였는데

우리는 죽지 말자 제발 살아 있자 폴리에스터 충전재를 거위털로 속이고 야 진짜 따뜻하지 않냐, 웃으며

과학자가 자연을 연구하는 이유는 쓸모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이다 만약 자연이 연구할 가치가 없다면 우리 인생 또한 가치가 없을 것이다.

어떤 문장에서 사족을 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우리는 돈이 없고 돈이 없어서 슬프고 슬퍼서 좋아하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외할머니는 죽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자주 절망하되 희망을 잃지 말거라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자고로 겨울은 추워야 한다 그래야 벌레들이 죽고 내년에 새 벌레들이 살 수 있다 죽기 전에 사랑을 나누는 벌레, 벌레들

난 언제나 느끼고 있어. 누군가에게 내가 한명의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재밋거리로 보여지는 비참한 기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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